가난의 문법

사회 2021. 3. 9. 20:29

- 현재 가장 문제인 지점은 노인계층의 가난이다. 최근 국제 비교 통계에서 우리가 처한 노인빈곤의 심각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전체 인구 중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의 비율)은 17.4%로,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볼 때,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였다.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에서 한국(45.5%)은 아이슬란드 (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즉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노인 중에서도 여성의 상황은 어떨까? 여성노인의 취 업률은 1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고 있다. 비단 남성보다 여성노인의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활동인구연보(통계청, 각년도)을 살펴보면, 65세 이상 여성노인은 2000년에 22.7%, 2015년에는 22.9%가 고용되었다. 2019년, 60세 이상인 여성들의 고용률은 33%에 달했다. 60세 이상의 여성들은 고용률이 낮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인 경우도 많다. 〈경제활동인구연보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의 2016년 3월호는 60세 이상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를 133만8천 명(전체의 21.7%)으로 보고했다. 전체 비정규직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60세 이상 여성이라는 뜻이다.
- 통계의 역설 : 우리는 이 통계에서 무엇을 읽고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노인을(특히 여성노인을) 질 낮은 노동이라는 구렁텅이과 가난이라는 늪에서 구할 수 있을까? 정부의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제도와 노인일자리라는 사업, 사회복지 정책 내에서의 서비스 전달체계 확충이라는 답이 이미 실행 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노인들의 빈곤율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래는 희망적이다. 빈곤율은 점 점 낮아지리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인의 처지가 나아져서가 아니다. 교육 수준이 더 높고,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많은 전후 세대들이 노인이 될수록 빈곤을 가리키는 통계적 수치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 세대 이전의 노인들은 차츰 사망하며, 동시에 전후 세대로 인해 노인의 전체 수는 늘어난다. 이렇게 빈곤율의 추이가 나아질 수 있다고 안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다림은 잔혹하다.
- 골목에서의 '문전수거 방식'은 빈틈을 낳는다. 다르게 말하자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낚아챌 수 있는 가능성을 낳는다.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은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다. 도시가 비대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세대/다가구주택과 좁은 골목들에 정책과 제도라는 공공영역이 침투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앞과 골목에는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방치될 수밖에 없다. 재활용품 수집은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들어낸 변종의 직업이라야만 이루어지는 결과이므로.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노인이 “사회보장제도가 안착되 기 전에 이미 노령기에 접어든 이들이라 노후생활의 안정 위한 도구가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한 인구집단”이라는 특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의 노인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생존 연령이 길어져 늙어감에 대처해야 하며, 다음 세대에 비해 국가 사회보장망의 보호가 미약한 상황 속을 버티고 있다. 무엇보다 생계에 대한 책임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인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비공식적 영역도 발견됐다. 북아현동의 경우, 인근에 상가지구가 꽤 크게 존재한다. 북아현동 내부만 하더라도 웨딩 거리가 있고, 서쪽으로는 이 대 앞 상가군과 신촌 상가군, 동쪽으로는 충정로에서 광화문, 멀게는 종로까지 있다. 노인들은 주거 지역에서의 일을 어느 정도 마친 후, 쓰레기가 배출되는 시간에 맞춰 상업지구로 이동했다. 상점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후쯤 그 인근을 다니는 노인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몇 상점은 노인들에게 재활용품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다. 찾아오는 모든 노인에게 주는 건 아니다. 상점 주인과 안면이 익은 사람이거나 주인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특정한 사람을 정해 재활용품을 가져가게끔 한다. 노인들은 이런 경우 단골을 잡았다'며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노인들을 자신의 비용 절감에 이용한다. 한 여성은 매일 아침마다 옆 동네의 상가건물에 가서 청소를 하고, 쓸 만한 재활용품을 수집해 온다. 이런 경우는 더 있다. 다세대주택을 소유한 한 건물주는 노인들을 데려와 건물 내부 청소를 하게끔 하고, 그 대가로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 건물주들이 자신이 소유한 상가 혹은 공동주택에서 노인들을 비공식적으로 '유사 고용'하는 형태다. 청소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는 일에 걸맞은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노동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해야 하건만, 돈을 아끼기 위해 노인들을 끌어들인 셈이다. 여기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해도 노인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
- 재활용품 수집 생태계서의 경쟁은 속도에서 생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은 재활용품 수거 체계를 비롯한 자원순환 정책의 미진한 수거 제도와 (수집한 재활용품을 재자원화하는) 재활용 산업 사이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더구나 이 일을 하는 노인은 대개 동료가 없다. 그렇잖 아도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노인들은 이 속도 경쟁에 서도 뒤로 밀린다. 즉, 여성노인들은 대개 자신의 편없이, 자신보다 신체적 능력이 나은 모두와 경쟁한다. 주인 없는 재활용품을 둘러싼 외로운 노인들 간의 경쟁은 계속해서 심화되는 중이다. 이 생태계를 유지하게 하는 건, 노인들의 일과 그 안의 경쟁뿐만은 아니다. 이 생태계는 보다 젊은 세대들 혹은 보다 부유한 계층의 책임을, 더 나아가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의 의무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노인은 젊은 세대와 부유한 계층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셈이다. 착취하는 세대와 계층은 재활용품 수집에 나선 노인들을 보며 그 이유를 두고 골목에 상자가 널려 있기 때문이며, 노인들은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종이상자의 생산량 · 배출량이 늘어나는 현상은 노인을 착취하는 일을 심화시키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종이상자의 사용량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집과 가게마다 다 쓴 종이박스의 배출량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폐품의 배출과 처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은 종류에 따라 분리수거'를 하면 자신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게다가 종이박스가 늘어나면, 노인들이 수집할 것도 생기니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가 노인들에게 돈을 더 벌 기회를 준게 아니다!) 무엇보다 종이박스가 골목에 쌓여 있는 데 대한 책임은 대개 정부와 위탁 청소업자에게 있다고 여긴다. 사실 착취의 문제는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서 시작된다. 즉, 상품과 함께 포장재를 생산한 제조업자와 소비자에 포장재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이를 노인들이 전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인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틈을 타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것이다. 즉,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 우리는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사회 체제의 불안정함과 미비함을 깨닫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깨달음은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스스로의 상대적 안정감을 확신하고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으로 이어질 따름이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빈곤층의 존재란, 끊임없이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소비자의 삶이 야기하는 혐오스럽고 끔찍한 결과를 상쇄하는지도 모른다.
- 경로당에 있는 노인이건, 집에서 생활하는 노인이건, 일을 하는 노인이건 '거동이 힘들어지는 순간에 대한 걱정이 많다. 그러고는 '거동이 힘들어지는 순간에 발생할 변화를 꽤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양로원'이나 '실버타운'에도 갈 수 없는 팔자니, 요양원'으로 일단 갔다가 건강이 더 나빠질 때는 '요양병원'으로 갈 거라는 말들을 공통적으로 했다. 게다가 돈이 없는 노인들은 더 싼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걸 체념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요양원에 가기 전에 노인들이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미리 '장례식장'의 손님을 만드는 일이었다. 노인들은 ( 자신이 죽어 확인하지 못할지라도) 장례식장이 비어 있으면 어쩌지하는 고민이 상당히 많다. 더구나 요양원’ (과 ‘요양병원')에 가게 된다면, 이전처럼 지역의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 게다가 또래의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장례식에 올 사람이 몇이나 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의 종교시설을 통해 입교하는 건 중요한 전략이 된다. 예컨대 굳이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설에 등록된 '신자'들이 자신의 장례식장을 채워주리라는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비) 장례식장 손님을 마련했더라도, 묫자리가 없는 이들은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묫자리는 가난한 이들을 항상 쫓아다니는 계급적 문제로, 가난한 노인들은 싸지만 목이 좋은 묫자리를 확보하는 것을 마지막 과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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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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