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배신

etc 2022. 11. 10. 16:10

- 물로만 씻어도 효과가 있다. 물, 특히 따뜻한 물은 분비샘에서 수분을 지키려고 분비하는 유분을 서서히 제거한다. 피부를 건조하게 하고 모공 을 넓히는 행위는 자극제나 알레르기 항원에 민감하게 반응할 확률을 높 인다. 스코트니키는 피부 건조와 모공 확장이 지나치게 씻어서 피부가 손상되는 과정이라고 확신하며 유전적으로 습진에 취약한 사람은 발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습진은 심신을 약화시키지만 단독으로 발병하지는 않는다. 이 질환은 면역체계의 불발이 원인인 여러 질환 중 하나다. 습진을 심하게 앓는 아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아토피 행 진으로 불리는, 면역체계의 과민 반응에 속하는 알레르기성비염이나 천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 식품 알레르기를 예방하기 위한 피부 관리 개념은 아직 완전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최근의 권고사항에 따르면 아이에게 무작정 땅콩을 숨겨두지 않고 오히려 노출시키면 심각한 땅콩 알레르기로 발전할 가능성 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감염병을 이겨내도록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백 신 겁증처럼 소량의 땅콩에 노출되는 것으로 면역체계를 조절할 수 있다. 고 믿는다. 하기만 면역과 관련된 피부질환은 여전히 정반대 치료법으로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일반적인 치료법은 면역 억제제와 항생제를 기방하고 꼼꼼히 씻고 보습제를 바르는 것이다. 습진이 너무 흔하다 보니 단순한 골칫거리 정도로 여기 간단히 처치하는 일이 잦고 실제로도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습진으로 심하게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간지럽지만 않다면 바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특히 밤에는 더 심해지면서 수면과 생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습진은 피부장벽을 무너뜨리고 미생물 개체군에 불균형을 초래하며 면역세포가 증식해 피부가 망가지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다. 몸을 씻거나 긁어서 피부장벽을 교란시키면 미생물 개체군에도 변화 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면역체계가 활성화하면서 피부 세포에 신 호를 보내 신속히 증식해서 염증 단백질을 가득 채우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이 염증에서 시작해 가려움, 장벽 붕괴, 미생물 불균형으로 이어지며 자체적으로 순환 반복된다. 스코트니키는 추측한다. “사회 풍조에 따라 과하게 씻어서 습진을 일으키고 있다면 어떨까요?”
- 피부에는 기름기와 여러 화합물을 분비하는 세 종류의 분비샘이 있다. 몸 전반에 분포한 에크린 땀샘Eccrine Sweat Glands 은 몸을 식히기 위해 땀을 분비한다. 피지 분비샘은 피부를 윤기 있게 만드는 피지를 분비해 피부장벽이 위태로워 미생물이 들어오더라도 항균 작용을 하고 피부가 메마르지 않고 갈라지지 않도록 한다. 비교적 덜 알려진 아포크린 땀샘Apocrine Sweat Glands은 사춘기에 발달하며 특히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에 분포돼 있다. 이 땀샘은 특유의 기름진 분비물이 나오는데 과도하게 분비되면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우리가 발한억제제를 사용해서라도 막으려는 것이 바로 아포크린 땀샘이다.
- 최근 아포크린 땀샘이 피부의 또 다른 부분을 유지하는 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바로 우리 몸 안팎에 서식하며 피부의 넷째 층을 이루는 수조의 미생물이다. 몸에서 나는 냄새의 원인인 공기 매개 화학물질은 피부, 특히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서식하며 피지를 먹이로 삼는 세균이 만들어낸다. 이러한 미생물 개체군은 우리가 분비하는 피지 의 양과 종류, 땀을 흘릴 때 쏟아져 나오는 나트륨, 요소, 젖산 같은 여러 화합물에 영향을 받는다. 연구 결과, 땀에는 더미시딘 Dermicidin, 카델리시닌, 락토페린 Lactoferrin 같이 항균성을 지닌 펩타이드가 포함돼 있다고 발혀졌다. 이런 화합물은 미생물의 균형을 유지하고 복구하는 데 관련이 있다. 땀을 많이 흘려 남들의 시선이 의식된다면 주위 사람에게 나 몸은 그저 정교하고 불가사의한 생화학 춤을 추고 있을 뿐이라고 설 명해도 괜찮을 듯하다.
우리가 미생물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세균을 배양할 수 있게 됐을 때부터 과학자들은 면봉으로 사람 피부를 문지르면 거대한 미생물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최 근 10년에서야 새로운 DNA 염기서열결정 기술이 도입되며 미생물의 규모와 다양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피부 위에 서식하는 미생물과 소화관에 있는 미생물을 합하면 1~2킬로그램 정도 된다. 우리 겉과 속에 는 인체 세포보다 미생물 세포가 더 많다.
- 우리는 지금껏 피부가 외부 세계에서 우리를 막아주는 장벽이라고 생 각해왔지만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을 알아갈수록 피부가 주위 환경과 우 리를 잇는 활발한 접점이라고 느끼게 된다. 미생물 생태계는 사실상 우 리 자신의 연장선이다. 장을 채우고 있는 미생물처럼 피부의 미생물도 여간해서는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 다. 그리고 우리가 피부에 하거나 하지 않는 행동이 모두 이 개체군에 영 향을 미친다.
우리는 몸을 씻으면서 미생물을 없애거나 미생물이 이용하는 자원을 바꾸면서 잠시나마 미생물 개체군에 변화를 준다. 항균 성분 포함' 이라고 구체적으로 표기된 세정제를 쓰지 않아도 화학적 성분은 미생물의 성장 환경에 영향을 준다. 피부에서 기름기 분비를 줄여 보송보송하게 해주는 비누나 수렴화장수도 미생물이 먹이로 삼는 피지를 제거한다.
- 우리는 누구나 모낭충을 지니고 별 탈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갑 자기 모낭충의 개체 수가 급증하거나 급증이 원인이 돼 이상 반응이 나 타나면 피부질환이 생길 수 있다. 최근 48건의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드기 개체 밀도와 주사Rosacea(주로 코와 뺨이 빨갛게 되는 만성 염증 질환)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됐다. 미생물과 관련한 여러 질환처럼 진드기와 주사 의 관계도 비율과 환경이 중요할 뿐, 단순히 '나쁜 생물에게 침략당했기 때문에 염증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모낭충은 보통 유순하고 이로울 때 도 있지만 환경이 바뀌면 병원성을 띠며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 람이 타인을 해칠 성향을 지니고 태어날 확률이 거의 없지만 한창 교전 중인 지역에 뚝 떨어져 사격 명령을 받으면 다수가 망설이지 않고 적을 죽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진행되며 피부 관리법을 설명하는 기본 가설조차 뒤집힐 기미를 보이고 연구 결과도 힘을 보태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피부학과 교수 리처드 갤로 Richard Gallo는 얼 마 전 한 연구를 마쳤다. 갤로의 연구팀은 한 무리의 쥐에게 사람 피부에 흔히 존재하는 표피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Epidermidis을 발랐다. 다른 무리의 쥐는 몸을 깨끗이 닦아 같은 세균이 남아 있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두 무리를 모두 햇볕에 그을렸다. 세균을 바른 쥐는 피부암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갤로가 세웠던 가설에 따르면 표피포도상구균 이 종양 세포의 DNA 복제를 막는다고 알려진 6-N-하이드록시아미노퓨 린 6-N-Hydroxyaminopurine 화합물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 연구일 뿐이며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다(사람을 자외선에 노출시키고 암에 걸리는지 확인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필수라고 배운 대로 피부에서 세균을 마구 박박 닦아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 여느 도구처럼 초기 비누도 쓸모가 있었다. 물로는 지워지지 않는 검댕이나 끈적거리는 얼룩이 몸에 묻었을 때는 비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누는 19세기 후반까지 주로 세탁할 때 쓰였다. 17세기 제임스타운에도 '비누 제조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식민지 개척자들은 남는 동물 지방과 잿물로 비누를 만들어 심하게 오염된 옷을 세탁할 때만 사 용했다. 세탁을 자주 하면 돈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옷감과 피부도 함께 상했다. 하지만 비누는 점차 개선됐고, 비누를 사용해도 참을 수 있을 정 도가 됐다. 비누 제조자들이 새로운 염기성 물질인 가성칼리를 사용하 면서 비누 목욕이 평범한 일상이 됐다. 재를 가공하는 방법은 미국에 등 록된 첫 특허였다. 1790년 한 단락으로 된 문서를 당시 국무장관이었 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승인하고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이 서명하면서 자본주의 미래를 좌우할 특허 절차가 탄생했다. 지식재산권은 비누 업계 성장에 중심이 됐다. 영국에서는 비누를 독점으로 제조하고 판매하면서 수량이 늘 부족했고, 비누세를 부과해 값도 비쌌다. 1853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윌리엄 글래드스턴 William Gladstone 이 마침내 비누세를 폐지하면서 가격이 적당한 선까지 떨어지자 업계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목욕을 죄스러운 호사라고 여기던 대중에게 오히려 인간의 기본 품위를 위해 목욕이 필요하다고 알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케팅과 광고를 통해 업계는 건강, 아름다움, 청결의 개념을 다시 세웠 다. 자주 씻으면 안 된다는 유럽인의 금기를 완전히 뒤집었다. 그 뒤로 수 십 년이 지나자 반대로 자주 씻지 않는 것이 금기가 돼버렸다.
- 비누의 구성 요소와 성능을 결정하는 기본 원리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에서 지방을 얻었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지방은 탄소 분자 사슬로 이 루어진다. 수소로 가득 찬 지방(포화지방)도 있고 수소가 붙을 만한 공간이 비어 있는 지방(불포화지방)도 있다. 두 지방 모두 비누가 잘 만들어지고 대부분의 비누에는 두 지방의 혼합물이 들어 있다. 불포화지방으로 만든 비누가 세안제로 더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더 건조하다. 포화지방을 더 함유한 비누는 거품이 잘 난다.
- 지난 10년간 고체 비누 판매량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다룬 미국 CNN 방송은 젊은 사람들이 고체 비누를 '촌스럽다'고 느낀다고 이유를 밝혔다. 스피츠는 샤워 젤과 액체비누의 등장을 탓하며 부정적 인 감정을 담아 설명한다. 종이로 포장된 고체 비누와 달리 플라스틱병 이 낭비될 뿐 아니라 액체비누 자체가 무겁다 보니 환경 측면에서 볼 때 운송 또한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액체비누는 대부분 진짜 비누가 아니라 일종의 세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비누의 원료였던 라드가 부족하자 미육군이 개발한 제품이다. 액체비누는 비누 역할을 흉내 내는 인조 화합물로 분류된다.
- 소비자에게 이런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비누 장인이나 업계에는 틀림없이 문제가 된다. 세제는 비누 업계가 시작된 이래로 청결의 세계에서 가장 중대한 기술 발전이었다. 세제는 보통 석유로 만드는데, 이는 동물 지방이나 순수한 식물 기름을 얻기 힘든 지역에서도 세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제는 비누와 달리 다양한 제조법에 응용될 수 있으며 세탁과 설거지에 주로 쓰인다. 하지만 샴푸, 바디워시, 액체비누도 거의 대부분 세제다.
내부 경쟁을 통해 비누 업계가 발전하고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비누는 필수품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비 누 업계가 간과하게 만들었다. 자사 제품을 차별화하고 매년 새로운 제품 라인으로 확장하기 위해 비누 회사들은 비누 하나로는 부족하니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자매품과 함께 써야 한다는 개념을 퍼트려야 했다. 샴푸만 쓰면 모발이 건조하고 뻣뻣해졌다. 그래서 컨디셔너 역시 필요했 다. 비누를 쓰면 피부가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진다. 그래서 로션과 수분 크림 역시 필요했다.
- 사람마다 산성막이 중요하다 아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용어 자체는 근거가 있다. 사람 피부에 있는 화합물은 기름지기 때문에 산성을 띠고 있다. pH지수로 볼 때 (7이 중성으로 이보다 낮으면 산성이다) 피부는 대략 5 정도다. 이것을 산성막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피부과 전문의
알프레드 마르키오니니 Alfred Marchionini와 동료들이 100년 전 작성한 독일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문 〈피부 산성막과 세균 방어에서 그 는 침습성 미생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피부 표면의 막을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했다.
만약 산성이 미생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면 위험하지 않은 미생물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유지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산성은 피부 생태계의 정상 상태로 우리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미생물이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pH지수가 바뀌면 미생물 개체군도 바뀐다. 다른 형태로 침입하는 확률보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 역시 질병을 야기하 는 불균형 상태다. 피부 건강을 논할 때 pH지수가 중심이 된다면 비누는 좋은 일은 아니다. 비누는 본래 높은 염기성을 띠며 pH지수는 10.3에 달 한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비누는 염기성이 약할수록 기름기 얼룩에 잘 달라붙지 않는다. 도브는 피부 연화제가 첨가돼 pH지수가 7이 다. 연화제는 도브를 덜 건조하게 만든다. 다른 말로 하면 기름기와 잘 결 합하지 못해서 제거를 잘하지 못한다. 또 바꿔 말하면 비누로서 제 할 일 을 다 하지 못한다. 비누계의 무알코올 맥주라 할 만하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듀센베리는 피부에서 유분을 제거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여러 제품으로 피부를 벗겨내고 있던 것이 문제였다고 깨달았 다. 게다가 그녀가 더 꼼꼼하게 씻을수록 피부는 부족한 유분기를 자꾸 만들어냈다. 그녀는 여드름과 싸웠지만 이제는 그 싸움 자체가 문제였다. 고 확신하게 됐다. 마침내 그녀는 두 손을 들고 모든 싸움을 멈췄다. 그녀 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수년간 얼굴에 물도 묻히지 않은 사람들의 경험담 을 읽었다. 물조차 질병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념은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듀센베라는 샤워를 계속했지만 비누나 샴푸는 쓰지 않았다. 얼굴은 극세사 천에 물만 아주 조금 묻혀 닦았다. “나아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더 나빠졌어요.”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기름기로 힘들게 두 달을 보내자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건조함과 과한 유분기를 오락가락하던 급격한 변화는 더는 없었 다. 그녀의 피부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이는 비누 사용 을 줄이기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비누와 수렴수 를 써서 피부가 건조할 때 피지샘이 실제로 기름을 더 분비해서 균형을 맞춘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미생물 개체군에는 확실히 영향을 미친 다. 기름기를 먹고 사는 세균 개체군을 계속해서 씻어내면 피부는 더 기 름지게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듀센베리의 사례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처방 은 보통 나쁜 의도가 없는 손쉬운 방법이라는 점이다. 대신 이런 약물은 우리에게 필요한 미생물에 해가 될 수 있다. 증상만 서둘러 처리하려는 방식은 독기 이론만큼 구식이며 곧 의학 역사의 잔재로 남게 될 것이다.
- 완두콩만 한 림프샘은 우리 몸 전체를 흐르는 림프관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만약 몸에 염증이 생기면 그곳에 있는 림프샘이 백혈구로 채워 지고 평소 크기보다 몇 배는 부어오른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할 때 턱 아 랫부분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림프샘이 부었는지 확인한다. 림프샘이 커 지지 않았어도 매일 수십억에 달하는 백혈구, 즉 림프구가 이곳을 지난 다. 고완스는 쥐의 림프구를 제거하면 어떻게 면역 결핍 상태가 되며 염 증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다시 림프구를 주입하면 염증과 싸우는 능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  림프구는 때로는 혈액 안에 있고 때로는 림프샘 안에 있지만 대개 몸의 조직으로 빠져나와 감시 역할을 한다. 림프구는 우리 몸에 침입하는 이물질(미생물 등)'을 찾아다닌다. 그러고 나서 림프액을 타고 림프샘으로 돌아와 따끈따끈한 소식을 건한다. 모든 것이 깨끗하다면 림프구들은 조용히 머물다가 그거 다시 외출에 나선다. 하지만 뭔가를 발견하면 다른 맹렬한 림프구 무리를 모아 항원의 근거지를 찾아가 공격한다. 이 반응을 염증이라고 부른다.
염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그 차이는 주어진 노출에 림프구가 언제, 얼마만큼 공격적으로 반응할지 판단할 수 있도록 면역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는 끊임 없는 훈련 이 필요하다. 소아과 의사가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설명한다고 치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면역체계는 특정 대상을 공격하도록 훈련할 수 있는데 그 방식은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배우 크리스 프랫이 벨로시랩터(이하 랩터)를 훈련한 방식처럼 공룡들 앞에 목표물의 살점 한 덩어리를 매달아두면 된다. 이렇게 제한적인 노출이 백신 접종의 기본 개념으로 면역세포가 침입자인 적을 알아보고 싸우도록 예비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훈련된 면역세포는 영화 속 훈련된 랩터처럼 쥬라기 공원(몸)을 누비며 목표물을 찾고 가차 없이 잔인하게 적을 사냥하지만 움직인다고 아무거나 죽일 정도로 악의적이지는 않다.
랩터와 일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이는 끔찍하게 잘못되기도 쉽 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랩터와 마찬가지로 강력해서 결정적인 힘을 기꺼이 사용한다. 훈련이 (목표로 정해진 항원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온순한 항원에도 노 출되면서)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면역체계는 해롭지 않은 침입자나 우리 몸속 정상 세포까지 공격할 가능성이 커진다. 공룡 공원에 있는 포식자들이 서로 죽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스릴 있는 영화를 한 편 본 것이지만 면역체계가 자기 몸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것이다. 이 질환들은 유전적 경향과 인생을 살면서 겪은 노출이 영향을 끼치며 발생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가면역질환에 걸릴 사람은 걸리겠지만 그 가능성만은 적어도 (크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면역체계를 훈련시키 는 노출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노출이 중요한 열쇠다. 아이의 마이크로바이옴은 만 3~4세까지 자리를 잡고 면역체계는 대부부 의 훈련을 마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자가면역질환이 안 생긴다 해도 염증 반응의 토대는 태어나서 몇 년 안에 마련된다고 본다.
- 파라벤이 우리 미생물 개체군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한 데다 누구도 파라벤에서 자유롭지 못해 비교 대상을 찾을 수도 없다. 공 중보건 지지자들은 미국에서 파는 제품에 파라벤을 금지하도록 FDA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12년에 이를 승인했지만 미국에서는 업계의 경제적 영향을 우려해 아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벤 같은 항균성 방부제는 수많은 식중독을 예방하고 음식폐기물을 줄여왔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위 환경을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몸에 항균 제품을 바를 때마다 그 영향이 계속 누적될 것이다.
- 생물다양성 가설은 위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미생물을 잃으면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미생물, 즉 병원균을 비롯해 유익하거나 무해한 미생물에 대한 노출이 부족해 현 대인이 염증성질환과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균 제품을 사용해 몸을 씻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않고 살균 소독에 집착하며 너무 깨끗한 세상에서 사는 것 모두 그 원 인이라고 말한다.
루크는 커피를 마시며 나와 화상통화를 하면서 어린 나이에 미생물에 자주 노출되면 면역체계가 위협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된다고 설명했다.
“선진국 아이들이 어릴 때 충분한 감염을 겪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생물에 노출되는 빈도가 이전보다 훨씬 줄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미생물은 분만 중에 아기의 장으로 이주하고 면역세포는 모유수유로 전해 진다. 어린아이는 밖에서 흙을 만지고 놀면서, 개가 핥으면서, 친구와 장 난감을 갖고 놀면서 집단 구성원과 접촉할 때마다 미생물 무리를 계속 축적한다. 모든 미생물은 면역체계가 발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출생 후 몇 년 동안이 가장 발달이 잘 이뤄지는 시기다. 마치 갓 압출돼 나온 따뜻한 비누가 쉽게 모양이 변하는 것과 같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알레르기와 천식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반려동물을 기르면 발병률이 줄어들 수 있다. 어릴 때 항 생제(병원균보다 다른 세균을 훨씬 더 많이 죽이는)를 사용하면 천식, 우유 알레르기, 염증성 장질환, 습진에 취약해진다. 루크의 주장에 따르면 청결도 문제기는 하지만 섬유질이 부족한 식습관도 장내 미생물 개체군을 바구고 항생제 사용으로 몸 안팎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변화가 생긴다고 한다.
- 파킨슨병의 냄새를 탐지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는 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게스트는 개에게 질병을 감지하도록 훈련하는 데 시간을 하도 많이 쓰다 보니 이제는 자신도 파킨슨병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고 믿는 다. 실제로 몇몇 간호사들은 말기 단계의 암을 냄새로 알 수 있다고 주장 한다. 최근까지 사람들이 무엇을 감지할 수 있을지 과학자들은 짐작도 못 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피부 마이크 로바이옴이라는 신과학이 한몫을 할 수 있을 듯하다.
100년 전 파킨슨병은 피지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됐다. 피지 변 화는 마이크로바이옴에 변화를 주고 더불어 마이크로바이옴이 생성하는 휘발성 물질에도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가설도 충분히 세울 수 있다.
- 변하는 것은 피부의 화학적 성질만이 아니다. 우리가 내쉬는 숨도 마찬가지며, 숨 쉴 때 나는 냄새는 대부분을 입이나 목에 있는 미생물에서 나온다. 말라리아 기생충이 침입하면 무슨 원리에서인지 사람이 자연스 레 내쉬는 (혹은 다른 방식으로 배출하는) 화합물을 개조시킨다. 2017년에 열 린 미국 열대의학 및 위생학회 연례 회의에서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학교의 생체공학 전문가들은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이 독특한 숨지 문Breath Print'을 내쉰다고 보고했다. 이를 활용한 검사법을 개발해 예비 검사 단계에서 말라리아 환자를 83% 찾아내는 성과를 보였고 말라위 아 이들을 진단하는 데도 사용했다.
생체공학 전문가들은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의 숨에는 보통 사람의 숨에서 감지되는 여섯 종의 화합물이 비정상적 수치로 나타난다고 밝혔 다. 이는 기생충이 특정 대사 과정 하나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균형을 통째로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문가들은 기생충에 감 염된 아이들의 숨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질을 발견했다. 테르펜Terpene 으로 알려진 두 종의 화합물인데 보통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풍기는 강한 향과 관련이 있다. 그중 한 종은 식물이 자신의 꽃꿀을 먹도록 모기를 유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기생충이 냄새에 이끌리는 모기의 본능을 이용해 모기가 감염된 인간을 물도록 조장한 뒤 사람 몸에서 빠져나와 다른 숙주로 이동하는 식으로 질병을 확산시킨다고 판단했다.
“기생충에게 테르펜은 생존 수단일 겁니다."
- 어떤 동물은 발 냄새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박벌은 개체마다 독특한 발 냄새를 풍긴다. 발 냄새가 자취를 남기면 동 료들은 냄새나는 발자국을 따라가 서로에게 이르거나, 먹이가 있는 곳으 로 모여든다. 사람의 발 냄새가 그리 이로운 목적을 주지 않는데도 냄새 를 생성하는 세균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 다른 면에서 쓸모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던이 주목하는 한 가지 가능성은 인간이 최근까지 맨발로 걸 어 다니다 보니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발의 상처나 찰과상에 예민했다. 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항생제가 등장하기 전에는 경미한 감염도 때로 는 치명적이었다. 무좀 같은 곰팡이 감염에 걸리면 대개 위험 수준이 낮 아서 골칫거리 정도로 끝나지만 피부가 갈라져 곰팡이가 혈류로 들어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그래서 진화론적으로 감염을 예방해줄 무해한 미 생물종이 발에 서식했을 것이다.
어떤 세균은 항곰팡이 성질을 띤 화합물을 생성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발에서 흔히 보이는 미생물종인 고초균Bacillus Subtilis은 무좀이나 발 톱곰팡이처럼 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종류의 곰팡이에 치명적인 화 합물을 만들어낸다. 안타깝게도 고초균은 냄새가 지독하다. 던은 발에서 풍기는 특유의 고약한 '쓰레기 냄새가 대부분 이소플라빅산soflavic Acid이라는 화합물에서 나온다고 밝혀냈는데, 이 화합물은 고초균이 우리 땀 속에 있는 아미노산인 류신 Leucine을 먹고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서 생성 된다.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발에서 나는 땀에는 류신이 많이 포함돼 있 다. 던은 이것이 우리와 피부 미생물이 서로 영향을 주며 진화한 결과라 고 믿는다. 이런 특정 사례는 아직 가설일 뿐이지만, 류신 같은 화합물이 어떤 역 할도 하지 않으면서 발에서 쏟아져 나올 리 없고 고초균도 순전히 우리 를 짜증 나게 하고 창피하게 만들려고 발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 간의 발은 류신을 함유한 땀을 많이 만들어 곰팡이를 죽이는 특정 세균 에게 먹이를 주고 발 감염의 위험성을 줄이도록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썩은 내가 나는 발은 잠자리 상대를 찾는 데는 장애물이 됐을지 는 모르지만 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발 곰팡이로 패혈성 쇼크가 와서 사망한 사람 대신 종족 번식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 제품이 오염되지 않는 한 살균하거나 헹궈내는 행동이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여성들이 걸린 감염병은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감염되는 종류가 아니었다. 주로 임질 과 클라미디아 Chlamydia 감염증 같은 성병이었다. 학장 스텐 버먼드 Sten Vermund는 2002년 그의 동료인 제니 마티노 Jenny Martino와 공동 집필한 논문에서 질 세척으로 인해 질관에서 서식해야 할 정상 미생물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판단했다. 정상 미생물들이 씻겨나가면서 공간이 생긴 조직에 성병이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며 서식하게 됐다.
- “병원에도 좋은 세균 공동체가 살고 있는데 만약 누군가가 소독제와 항생제를 지나치게 사용해서 그 좋은 세균 공동체를 없애버린다면 사실 상 푸른 들판과 피부라는 보호층을 파괴하는 것이며, 그 결과 나쁜 세균이 파괴된 공간에 올라타서 병원 내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미생물 세계에서는 건강이 곧 균형이며, 개인 건강과 공중보건 사이 의 균형, 지나친 노출과 지나친 고립 사이의 균형을 의미한다. 부자들 사 이에서, 고립주의 경향을 부추기는 마케팅은 대부분 성공한다. 2017년에 사업가 (이자 '책을 여든여섯 권 이상 쓴 작가인)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웰니스 Wellness (신체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넘어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상태를 일컬음 옮긴이) 부동산'을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을 막 시작했다. 뉴욕과 마이애미에 있는 수백만 달러 호화 아파트는 최청단 공기정화 시스템과 살균 조리대를 갖추고 있었다. 웰니스 부동산 사업이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했다면 아마 반대되는 접근법을 택했을 것이다. 아파트라면 사회 유대와 노출을 최대화했을 테고 주택이라면 공간 내부와 외부에 무해하고 유익한 미생물을 살게 하는 특별 서비스까지 제공했을 테다. 우리는 이제 세균 룸스프레이(구프는 현재 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출시돼 있었다)와 세균을 공기 중에 뿌리는 가정용 집 미생물 기구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입증됐고 가성비까지 좋은 방 법은 창문을 여는 것이다. 물론, 대기오염지수가 괜찮을 때에 한해서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1) 2022.11.26
부를 이끄는 마음체력  (0) 2022.11.20
조금 서툴더라도 네 인생을 응원해  (0) 2022.11.08
우연하고도 사소한 기적  (1) 2022.10.29
대화의 기술  (0) 2022.10.29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