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통계는 고령자를 독거와 동거, 두 가지로만 비교했지만 쓰지가와 씨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동거 고령자를 더 여러 층으로 나눠서 동거인이 1명인 경우, 2명인 경우, 3명인 경우, 4명 이상인 경우로 구분해서 비교했다. 그 결과 동거인이 1명 늘어나, 즉 2인 가구가 되면 생활 만족도가 최저로 떨어졌다. 동거인이 다시 1명 더 늘어나서 3인 가구가 되면 생 활 만족도가 조금 상승하고 4인 이상, 즉 다세대(世代, 여러 세대) 가구가 되면 생활 만족도가 독거 고령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2인 가구란 '부부 가구' 아니면 '부모 1인과 자녀 1인'인 경 우를 말한다. 부부 가구는 이른바 '빈 둥지' 시기로서 육아가 끝나 목표를 상실한 커플이 얼굴을 마주하는 위기의 시기다. 부부만 남게 되면 서로 다른 문화가 격돌하여 당연히 생활 만족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중간에 완충가구를 두는 게 좋다. 자녀가 함께 살거나 반려동물을 통해 대화하는 커플도 있다. 그러니 3인 가구가 되면 생활 만족도 가 조금 상승하는 게 이해가 된다.
동거 가족이 3명 늘어서 총 4인 이상의 다세대 가구가 되 면 생활 만족도는 1인 가구와 비슷해진다. 일본 정부는 3대 의 동거를 권장하고 2대가 함께 사는 주택의 건설비를 지원 하겠다는 안까지 냈다. 이런 정책을 만든 정치가들도 3대가 함께 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일왕 일가도 절대 3대가 함께 살지 않는다. 다세대 가구의 만족도가 높다는 결과를 보고 '역시 노인은 가족과 함께 있어야 행복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쓰지가와 씨의 결론은 '혼자사는 것'은 '3대가 함께 사는 것과 맞먹는 만족도를 얻을 수 있다' 이다.
- 쓰지가와 씨는 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몸에 여러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시간 의 흐름에 따른 조사 대상의 변화를 따라가 보니, 건강 상태 가 나빠져도 혼자 사는 사람의 만족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 았다.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애초에 타인의 고통이다. 말 해봤자 어쩔 도리가 없다. 혼자 참는 수밖에 없다는 싱글의 체념과 각오가 전해지는 듯하다.
혼자 사는 고령자라고는 해도 일단 가족을 형성했다면 따 로 사는 자녀가 있을 수 있다. 쓰지가와 씨의 조사에 따르면 혼자 사는 고령자 중 자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생활 만족도는 다를 게 없다고 한다. 
- 부모와 자녀 세대를 분리할 때는 노인을 집에서 빼내는 게 아니라 젊은 사람이 나오는 게 도리다. 젊은 사람은 환경 변 화에 적응하기 쉽고 애초에 집도 부모 집일 테니 말이다. 자 신명의의 집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사례가 있었다. 도쿄 고쿠분지시에서 방문 진료를 하 는 의사 닛타 구니오 씨에게 들은 이야기다. 오랫동안 해외에 서 살던 딸이 중년이 되자 '엄마의 노후가 걱정된다'며 혼자 사는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왔다(사실은 '자신의 노후가 걱정'이 었겠지만). 며칠이 지나자 딸이 "엄마가 이상하다", "시설에 보 내드려야 할 것 같다"며 닛타 씨를 찾아왔다.
닛타 씨는 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당신이 나가세요"라고 조언했다. 결국 딸은 근처에 아파트를 빌려 따로 살기 시작했다. 세대를 분리하자 어머니의 상태도 좋아졌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먼저 살고 있던 사람을 내쫓는다니 당치도 않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나가면 된다. 전작 『누구 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에도 쓴 적이 있는데, 따로 살아도 가족은 가족이고 서로 오가면서 '파트타임 가족'을 하면 된다.
- 젊은 사람이 감염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게 효과적이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온 고령자에게 는 무리한 연명 치료를 한들 소용이 없다. '마지막은 병원에 서'라는 생각은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과거의 사고방식 이다. 임종 때 한 번이라도 좋으니 아버지를 진료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병원 에서 죽는 비율이 요즘 드디어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그 대신 재택사와 시설 간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시설에서조차 임종기의 노인은 병원으로 보냈지만 이제는 시설에서도 간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사로 변화하는 이러한 흐름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재택'이라고 해도 그곳에는 이미 가족 이 없거나 있어도 간병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의 '탈 병원화' 현상은 '병원화'가 한 바퀴를 돌고 난 후의 새로운 재택사다. 
-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긴급 상황에서 고령자가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에게 전화하는 경우다. 긴 급한 상황에서 직접 전화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몇 시간이 걸리는 자녀보다는 15분 정도면 올 수 있는 방문 간호사나 간병인이 더 도움이 된다. 자녀들도 의료나 간병에는 초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기 힘들다. 게다가 부 모가 이용하는 기관의 연락처를 반드시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뿐이다. 예전에는 한밤중에 연락이 오면 첫 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어서 그런 변명은 통하 지 않는다. 부모의 긴급 전화를 받을 때마다 자동차로 4시간 을 걸려 달려오는 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근처 에 있는 전문가에게 부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죽음은 평온하게 서서히 진행된다.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슬슬 때가 됐네요"라고 하면 그 예측은 거의 맞다. 119를 부르고 마치 화재 현장처럼 난리가 나는 죽음은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 람에게 알리고 병원사가 절대 바람직한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 독자 중에도 마지막은 병원이나 시설에서 죽을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2장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병원 은 사람이 죽는 곳이 아니다. 정부는 비용이 드는 병원을 더 늘릴 예정이 없다. 앞으로는 119를 불러도 고령자는 환영받 지 못할 것이다. 이미 다 알겠지만 간병 보험은 건강 보험 비 용을 줄이려고 만들었다. 게다가 병원에 있으면서 행복한 노 인은 없다. 병원은 애초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마지막에는 시설에서 지내야 할까? 최근에는 시설에서 간호까지 해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슬슬 내리막길에 접어든 노인을 병원으로 보낼 필요는 없다. 시설에 들어갈 때, '가족과 직원이 방에서 간호한다. 불필요한 의료 개입은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의 동의서를 받는 곳도 있다.
시설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솔직히 시설과 데이 서 비스(우리나라의 노인주간보호센터와 비슷하다. -옮긴이)에는 모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집단생활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세가와 가즈오 씨는 치매 전문의로 치매 환자는 낮에 돌보는 데이 케어가 중요 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치매에 걸렸을 때 데이 서비스에 가보더니 하루 만에 싫어졌다고 한다. 역시나 그렇 다. 데이 케어는 주로 가족이 권한다. 노인이 집에 있는 게 싫 기 때문이다. 속아서 혹은 억지로 떠밀려 갔지만 생각보다 괜찮다면서 즐겁게 다니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조차도 자발적으로 간 것은 아니다.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와 마찬가 지다.
- 사실상 전 세계 고령자 간병의 흐름은 시설에서 주택으로 완전히 이동하고 있다. 1988년 덴마크에서는 '프라이엠'이라 는 노인 홈 시설이 법률로 금지되고 '프라이보리'라는 고 령자 주택으로 바뀌었다. 프라이엠에 1인실을 확충하고 방마 다 우편함을 다는 정도로 끝난 경우도 있지만 기본 목적은 고 령자를 주택에 살게 하여 가능한 한 자립해서 생활하도록 하 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주택이 집합주택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안 된다. 게다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노인만 모여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령자는 이를테면 중도 장애인과 비슷하다. 고령자나 장애인이나 남녀노소가 모이는 보통의 마을에서 보통으로 사는 것을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이라고 한다. 마을이 바뀐다면 시설 따위는 필요가 없다.
- 재택사 이야기를 꺼내면 반드시 천정부지로 솟는 비용을 걱 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임종을 앞둔 고령자에 게 누군가가 24시간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는 임종기라 하더라도 병원과 시설 모두 누군가가 24시간 옆을 지키지 않는다. 몇 시간 간격으로 회진을 돌 뿐이다. 그 렇다면 집에서 정기적인 방문 서비스를 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병원에 있으면 항시 모니터를 통해 상태 체크는 해주겠지만 어차피 알람이 울려야 간호사가 달려온다. 교대 시간마다 간호사가 바뀌며 시시각각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에서 모니 터에 연결된 상태로 죽는 경우도 있다. 오가사와라 씨는 이를 '병원 내 고독사'라고 부른다. 너무 걱정된다면 집에 긴급 전 화를 설치하는 게 낫다. 긴급 전화조차 누를 수 없는 상태라 면 호흡, 혈압, 혈중 산소 포화도 등을 측정하는 모니터를 설 치하여 의료 센터와 연결하는 원격 시스템 등도 지금의 기술 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 고령자의 죽음은 서서히 진행된다. 간병인은 평소 노인의 일상을 지켜보기 때문에 그때가 슬슬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아챈다.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상복을 준비해오라고 말해줄 수도 있다. 그러니 혼자서 죽고 싶지 않고 누군가가 지켜볼 때 죽고 싶다면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평소에는 혼자 지내던 사람이 임종 때만 친족에게 둘러싸인 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자연스럽다. 가능하면 조용히 가게 해 주면 좋겠다.- 케어 매니저와 주치의가 있으면 사망진단서는 써준다. 의료법에는 '사망 전 24시간 안에 환자를 진료하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좀 더 유연하다. 방문 진료는 통상 2주에 한번정 도고 죽음이 가까워져도 1주일에 두 번 정도다. 상당한 말기 라면 매일 올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방문 진료 대상에 들어가 있으면 주치의가 사망진단서를 써준다. 사망진단서에 '심부 전'이나 '노쇠'라고 쓴다면 '사실상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말이다. 죽어가는 사 람을 굳이 죽일 일은 없을 테니 '사건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시신을 옮기고 119나 112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케어 매니저나 방문 간호 스테이션, 주치의에게 전화하면 된다.
- 가족과 함께 살아도 가족이 자고 있거나 외출하는 경우도 있다. 지방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지만 낮에는 일 하러 모두 나가서 간병 필요도 4등급이나 5등급을 받은, 한 마디로 자리보전한 고령자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일이 흔하다. 요즘은 '며느리'라는 이름의 성인 여성이 24시간 집 을 지키지도 않는다. 가족이 미처 지켜보지 못할 때 죽으면 그것도 입회인이 없는 죽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시설이나 병원에 있으면 고독사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시설도 직원이 몇 시간 간격으로 보러 올 뿐이다. 간호사가 병실을 순회한 후 다음 순회를 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 병원이라고 간호사가 24시간 주시하지도 않는다. 각종 모니터가 붙어 있으니 이상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누군가가 달려오겠지만 그도 결국은 기계가 알려주는 죽음이다. 그뿐 아니라 의사가 매뉴얼에 따라 전기 쇼크나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면 평온해야 할 죽음이 화재 현장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 임종을 맞을 때, 사람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느냐고 호스피스 의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니요, 알 수 없어 요. 임종 직전에는 뇌 내 마취약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이 나 와서 옆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요"라는 답변도 있었고, "누가 손을 잡아줘도 모를 거예요"라는 답변도 있었다. 그래서 "선 생님은 죽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시죠?"라고 물으니 죽 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오감 중 청각만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서 말을 걸어주는 게 좋다는 의사도 있다. 이런 에피소드도 들었다. 자녀와 손 자들이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말을 걸었더니 할아 버지가 확실한 발음으로 "시끄럽다"고 했다는 일화였다. 죽 을 때만이라도 조용히 죽게 해달라는 그 기분을 나는 이해 한다.
- 그렇다면 '입회인 없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일까, 남겨지는 사람일까? 취재하면서 보니 임종을 지켜 보고 싶어 하는 쪽은 죽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지는 사람이었 다. 나는 이를 '임종 입회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오랫동안 간병해온 지인은 자신이 외출한 사 이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 께 시간을 보냈으니 마지막 잠깐을 놓쳐도 괜찮지 않나 싶었 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동안 작별 인사 와 감사의 말을 전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꼭 죽어가는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초고령 사회의 죽음은 속도가 느리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죽음이다. 작별 인사 와 감사의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리미리 하는 게 좋다.
또 다른 하나는 약물 투여다. 알츠하이머의 진행을 억제한 다고 알려진 도네페질 등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 야 한다는 점에서 고혈압 약이나 당뇨병 약과 똑같다. 게다 가 병이 진행될수록 투약하는 양은 점점 늘어간다. '치매 환 자 700만명 시대'는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에 제약 회사가 만 반의 준비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히가시다 쓰토 무씨의 『치매의 진실認真実」)』(2014)을 보면 투약하 는 양이 늘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 고 놀랐다. 약을 먹으면 의식 상태가 저하되면서 환자가 얌전 해지지만 약이 뇌 활동을 억제한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은 약을 줄이거나 아예 끊은 이후에 오히려 상태 가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뿐이다.
- 혼자 사는 치매 환자의 상태가 좋은 이유
대부분의 치매 환자는 가족의 결정으로 시설에 들어간다. 여 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치매 증상으로 의사 결 정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속아서 끌려온 치매 고령자가 "나 가게 해달라",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망상'도 '폭언'도 아니다. 만약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면? 약 을 사용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치매 전문의 다카하 시 유키오 씨의 '조종 이론'에 따르면, 문제 행동은 모두 '조종'을 받는데 그 원인을 만드는 누군가가 반드시 주변에 있다고 한다
- 그렇다면 혼자 사는 치매 환자는 누군가의 '조종'이 없는 환경에 있는 것이다. 역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사례 가 많지는 않지만 다카하시 씨는 자신이 경험한 임상 사례를 통해 "혼자 사는 치매 환자의 BPSD는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 다. 확실히 흥분이나 폭력은 적고 간병을 거부하거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망상, 사람을 착각하는 망상, 물건 도난 망상이나 질투 망상 등도 많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와 달리, 혼자 사는 치매 환자는 매일 지적을 받지(혼나 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히 적다”고 했다.
- 아, 다행이다! 다카하시 씨뿐만 아니라 치매 대응 업무를 하는 다른 많은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혼자사는 치매 환자가 훨씬 증상이 가볍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물론 개인차는 있 지만).
그래서 치매 환자가 혼자서 살 수 있냐고? 생활 습관을 유 지할 수 없게 되어도 방문 간병인이 있다면 식사와 입욕이 모 두 가능하다. 친근한 간병인이 있다면 시설처럼 저항할 일도 없다. 스스로 식사 준비를 할 수 없게 되면 배식 서비스를 부탁하면 된다. 치매 환자도 음식만 제공해주면 혼자서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식욕은 삶의 욕구 중 가장 기본이다. 먹을 수 있는 동안은 잘 먹으면서 즐겁게 지내다가 먹는 게 어려워지거나 누워 지내게 되면, 그때는 치매가 있든 없든 필요한 간병 은 똑같다. 실제로 혼자 사는 치매 고령자가 집에서 임종을 맞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 매일 조깅하고 호기심이 강하며 친구가 많은데도 치매에 걸린 사람을 나는 몇 명이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치매 진단 검사인 '하세가와 치매 척도'를 만든 의사 하세가와 가즈오 씨도 치매에 걸렸다고 공개한 마당이다. 2019년 9월 26일자 <아사히신문>에는 하세가와 씨의 일상이 보도되었다.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이제 실수해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기억 장애라는 '치매의 효용'일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치매 에 걸린 정도로는 죽을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치매 당사자의 발언도 늘어났다. 치매 당사자는 무엇을 어떻 게 느낄까, 어떤 취급을 받는 것이 싫을까,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을까. 사토 마사히코 씨는 "치매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39세에 청년성 치매를 진단받은 단노 도모후미 씨는 기억 장애가 진행 중인데 이전보다 웃는 일이 늘었다고 말한 다. 단노 씨의 주치의인 치매 전문의 야마자키 히데키 씨는 '치매 환자는 무엇을 할 수 있나?'가 아니라 '치매 환자와 무 엇을 할 수 있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치매에 걸 리거나 말거나 '함께' 울고 웃으면서, 가능한 한 많이 웃으면 서 살아가면 된다.
- '존엄한 생'과 '존엄하지 않은 생'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스스로 배변과 배뇨를 할 수 있는 상태를 '존엄' 의 지표로 보고, 타인에게 배변과 배뇨를 부탁해야 하는 상 황이 되면 '존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설 처리도 움을 받는 장애인이나 환자, 고령자는 수없이 많다. 기저귀를 차는 것 정도는 죽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자기 결정 능력이 있는 동안은 괜찮지만 만약 자기 결정 능력이 사라지면 '존엄'도 사라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시다 씨뿐만 아니라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사 람이 많다. 자신이 낳은 아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라면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치매의 곤란한 점은 그런 상황을 맞이했을 때는 이미 자기 결정 능력을 잃은 후라는 점이다.
- 교토의 의사 하야카와 가즈테루 씨는 '노망이야말로 축복' 이라고 말한다. 치매 환자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사라지고 현 재만 존재한다. 사별의 슬픔도,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다. 마쓰다 씨는 '많은 치매 환자를 진료해온 네덜란 드의 의사 케스 후드할트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치매 환자의 안락사는 말이 안 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 노망을 굳이 치매라 바꿔 부를 것도 없다. 노망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다. 노망이 나도 즐겁 게 살아가는 노인은 얼마든지 있다.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은 없다. 죽는 것을 스스 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만약 내가 노망이 난 다면? 먹을 수 있는 동안은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를 내고 나서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을 낼 때까지 8년, 그 후 또 6년이 흘렀다. 나도 순조롭게 나이를 먹었고 그사이에 사회도 변했다. 무엇보다 혼자 사는 고령자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불쌍함' 의 대명사였던 '싱글'의 이미지가 완전히 변했다. 최근에 어 떤 남성 주간지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 실패하는 이유'라는 특집 기사를 발견했다. 그 이유는 "자녀와 함께 산다", "손자 의 교육비를 내준다", "자녀에게 재산을 다 넘겨준다”, “재혼 한다"였다. 기사를 읽으면서 약 10년 만에 노후의 상식이 이렇게 바뀌다니, 감개무량했다.
- 고작 10년 만에 노후의 상식이 180도 바뀌었다.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에서 '함께 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로 바뀌었다. '혼자 사는 것은 불쌍하다'에서 '혼자 사는 것은 편하다'로 바뀌었다. 그 '상식'을 바꾸는 데 나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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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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