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어느 크리스마스날 이웃의 투신자살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 이후 저자는 죽음 그 자체가 두려워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 기쁨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후회가 밀려올까 두려워하게 된다. 원했던 삶을 살아가진 못해도 최소한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고 싶어하게 된다. 

저자는 다양한 업종의 크고 작은 기업에서 13년간 마케터로 근무해 왔다. 비정규직으로부터 시작해서 팀장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저자는 보통의 직장인이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고자 점집을 찾기도 하는 우리 시대 평범한 사람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들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크고 작은 사건들과, 무겁고 때로는 가벼운 고민들을 담백하게 적어내고 있다. 

매사에 주눅이 들고, 움츠려드는 성향의 저자는 '착한 친구'라는 가면을 통해 심리적 약점을 감추고 살았다고 한다. 남이 나를 높게 사면 내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며 살기도 했다. 상대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평가절하를 당하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러나 나의 영역을 수호하고 그 안에서 내 소임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때로 세차고 때로 약한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인 것이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오래 겪어서인지,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구절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보다 기회도 다 놓칠 것 같았다. 결국 뒤처지다가 끝내는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암감 속을 사는 나에게는 세상과 맞서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했다."
" 우리는 갑과 을의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병과 정의 놀이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 소위 젊은 피에겐 지칠 권리도, 좌절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가진 능력이 사실 이것밖에 안 된다는 말을 감히 어떻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 회의실을 나올 때면 그래서 누가 뭘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지...라는 의문점만 남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세상과 화해할 겨를도 없이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사회는 지옥이라며.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과도 속시원히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참고 지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소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도, 나의 불행이 특별히 애처롭고 비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은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는 의도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니 의도대로 살아갈 수도 없다.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밖에. 결국 나 자신을 위로할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수용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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