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인문 2020. 2. 4. 08:11

- 무분별한 선행은 오히려 무익할 때가 많음. 플레이펌프가 대표적인 예다. 트레버필드와 그의 지원자들은 사실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감정에 치우쳤다.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즐겁게 놀고 있을 뿐인데도 마을에는 깨끗한 물이 공급된다는 발상에만 도취된 것이다. 케이스 재단도, 로라 부시도, 빌 클린턴도 플레이펌프가 실생활에 유용하다고 납득할 만한 분명한 증거가 있어서라기보다 혁신적인 기술에 매료되 지원한 거였다. 플레이펌프 캠페인의 비판자들이 필드와 그 지원군에게 악의가 있었따고 비난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아프리카 시골 주민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따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선의에만 의존하면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펌프가 경솔한 이타주의의 유일한 사례라면 좋겠지만 실상은 훨씬 더 만연한 흐름 속에서 부각된 한 가지 사례에 불과. 우리는 남을 도우려 할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곤 함. 숫자와 이성을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 탓에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은 오르빈스키처럼 딜레마에 직면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거래를 통해 절충하는 것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즉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한 가지 행위에 더 큰 가치를 두기란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타적 행위를 비교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효율적 이타주의의 첫번째 핵심질문이다.
- 남을 도우려 할때 돈을 잘 쓰는 것과 가장 잘 쓰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을 시행하는 게 돈을 잘 쓰는 일일까? 라고 묻는데 그칠 게 아니라 이 사업을 시행하는 게 돈을 가장 잘 쓰는 일일까? 를 물어야 한다.
- 수확체감의 법칙은 어떤 사건이 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켜 돕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이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당신처럼 감정에 휘둘려 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을 것이기 때문. 따라서 재난 사고를 접했을 때는 일단 울컥 솟는 감정을 억누르고 유사한 재난이 항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관심이 온톤 쏠려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의 돈이 가장 큰 보탬이 될 곳에 기부해야 함. 또한 수확체감의 법칙은 남을 돕고 싶다면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보여준다.
- 어떤 행위의 잠재력을 평가할 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리가 없다는 이유로 묵살해서는 안됨. 지금은 상식이 된 대다수의 윤리적 관념들도 과거에는 매우 급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성, 흑인, 비이성애자도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은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해도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여겨졌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1790년 미 의회에 노예제 종식을 청원하면서 철벽같은 반대에 부딪쳤다. 의회는 이틀간 논쟁을 벌였고 노예제 옹호론자들은 "노예 소유주에게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인종이 뒤섞이면 미국의 가치와 특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라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결국 노예제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같은 반대론은 용납하기 어렵다. 여성, 흑인,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해 힘쓴 운동가들은 승리가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이뤘을 때의 보상이 매우 컸기 때문에 활동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경제학자들은 노동착취 공장이 가난한 나라에 득이 된다는 데 의문을 달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좌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고용증대 방식이 전 세계 극빈층에게는 반가운 희소식이라는 게 압도적 주류 견해"라 말했다.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제프리 삭스는 "내가 걱정하는 건 노동착취 공장이 너무 많다는 게 아니라 너무 적다는 것"이라 말했다. 경제학자들이 이처럼 입을 모아 노동착취 공장을 옹호하는 건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저임금 농업 위주 경제사회가 더 부유한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 산업혁명기의 유럽과 미국이 100년도 넘게 노동착취 공장의 저임 노동력을 활용했으며 그 결과 생활수준이 훨씬 개선된 게 사실이다. 산업화를 나아가기 위한 기술이 막 도입되던 시대에는 이 단계를 거치는 데 수십년이 걸렸지만 기술이 정착된 21세기에는 이 발전단계를 단기간에 통과할 수 있다. 동아시아 호랑이 경제권 국가인 홍콩, 싱가폴, 한국, 대만이 대표적인 고속성장 살예다. 이 국가들은 20세기 초만 해도 농업사회였지만 20세기 중반들어 제조업 위주 노동착취 공장으로 변모했고 이후 수십 년 만에 산업화된 경제강국으로 부상. 가난한 나라들은 오히려 노동착취 공장이 절실하다. 선진국에서 불매운동을 벌인다면 가난한 나라에 사는 빈곤층의 삶은 더 궁핍해진다. 이는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93년 아이오와주 신진 상원의원 톰 하킨이 아동노동 착취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할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수많은 아동이 기성복 제조공장에 고용돼 있었다. 법안 통과를 우려한 공장 측에서 5만명에 달하는 아동 노동자들을 발빠르게 해고했는데, 알고 보니 이 아동들은 학교로 돌아가거나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대다수 아동이 더 영세한 미등록 하청 의류공장이나 기타 업종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기업의 하류공장이나 기타 업종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공장이 현지 하청업체에 비해 임금이 높은 게 현실이다 보니 이들 아동의 생활고는 더 극심해졌다. 유니세프 조사 결과 해고당한 미성년 의류 노동자 다수가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길거리 사기단, 성매매 등에 내몰린 사례까지 있었다.
- 공정무역 인증상표가 처음 등장한 1988년 이후로 공정무역 상품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전 세계 공정무역 인증상품 매출이 69억 달러에 육박했음. 타국의 농부가 공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사실은 감동적이다. 그런데 일반 커피보다 몇 달러 더 주고 공정무역 커피를 사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객관적 증거에 따르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첫째,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에 수익이 돌아가는 건 아님. 공정무역 인증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움.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공정무역 커피산지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이다. 에티오피아 같은 최빈국과 비교하면 10배나 부유한 나라들이다. 설령 공정무역 제품그입이 농부들에게 더 많은 몫을 되돌려주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최빈국의 비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소득 수준에 따라 돈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전 세계 경제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떠올려 보자. 코스타리카는 에티욒아에 비해 10배 부유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코스타리카인이 체감하는 몇 달러의 가치보다 평균적인 에티오피아인이 체감하는 1달러의 가치가 더 크다.
둘째,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이유로 소비자가 추가로 지불한 돈 중 실제로 농부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건 극히 일부다. 나머지는 중개인이 갖는다. 공정무역재단은 소비자가 추가로 지불한 금액 중 얼마가 커피생산자에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진행한 연구를 참고해야 한다. 세계은행 경제자문관 피터 그리피스가 영국 카페 체인점의 의뢰로 수행한 용역연구에 따르면 추가 금액 중 가난한 나라의 커피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1% 미만이다. 핀란드의 요니 발킬라, 페르티 하파란다, 니나 니에미 교수가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에서는 핀란드에서 판매된 공정무역커피의 추가 금액 중 11%만 커피생산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남. 중앙아메리카경영관리대학원의 버나드 킬리안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미국에서 공정무역 커피가 일반 커피보다 파운드당 5불 더 비싸게 팔리고 있지만 커피 생산자가 추가로 받는 돈은 파운드당 40센트라고 밝혔다. 기브디렉틀리에 1불을 기부하면 90센특 수혜자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큰 차이다.
셋째,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그 적은 몫마저 더 많은 임금으로 바뀐다는 보장이 없다. 공정무역 인증은 인증받은 단체가 생산한 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쳐주는 절차이지 해당 단체에 소속된 생산자들에게 더 높은 임금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런던대 크리스토퍼 크래머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 4년에 걸쳐 에티오피아와 우간다의 공정무역 노동자의 임금을 조사한 결과, 공정무역 노동자들은 비공정무역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더 낮고 노동조건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정무역이 큰 성과로 내세우는 지역공동체 사업에서도 정작 극빈층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크래머 교수는 "영국인드은 좀더 비싸더라도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 차, 꽃 등을 구입하면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될 거라는 인식을 주입받는다. 하지만 4년 동안 면밀한 현장조사를 시행한 결과 연구대상 지역에서는 공정무역이 임금노동자, 즉 농촌 극빈층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기존 연구들을 종합검토한 보고서에서도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객관적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공정무역 인증이 농촌에게 공정무역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공정무역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 기껏해야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에게 미미한 금액을 보태줄 따름이다. 차라리 더 저렴한 상품을 사고, 그렇게 절약한 돈을 비용효율성이 높은 자선단체게 기부하는 게 낫다.
- 기부를 하면 당신의 돈을 가장 효율적인 사업에만 집중시킬 수 있다. 최선의 활동과 그럭저럭 좋은 활동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만 봐도 효율적인 기부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윤리적 상품을 더 많이 구입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건 목표를 정확히 공략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데 윤리적 소비와 기부의 차이는 이게 다가 아니다. 윤리적 소비물결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한 까닭이 있다. 바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허가 효과 때문. 이는 착한 일을 한번 하고 나면 이후에 선행을 덜 실천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향을 말한다.
- 도덕적 허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줌. 에너지 절약 전구를 구입하는 행위로 '내 몫을 했다'고 생각하면 조금 뒤에 잔돈 몇 푼을 훔쳐도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인식이 흔들리지 않는다. 도덕적 허가효과는 결심을 비틀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효율적인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향후 남을 돕는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이타적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면 의미가 없다. 작은 선행에서 출발해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효율적인 선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해야 도덕적 허가 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이 문제가 되는 건 이때문이다.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에 취하면 이후에 이타적 행동을 할 여지가 줄어들 수 있음. 가령 다른 사람에게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라고 권했더니 그보다 효율적인 선행에는 정작 시간과 돈을 덜 쓰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공정무역 제품구매를 장려하는 일 자체가 해로울 수 있다.
- 열정을 따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됨. 어이없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적성에 꼭 맞는' 직업을 찾아야 된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미 가슴속에 품고 있던 열정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직업을 찾으라는 건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한번 자문해 보자. 열정을 보이는 분야는 직업세계에 들어맞지 않는다. 캐나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열정을 쏟는 분야가 있다고 답한 84%의 학생 중 90%가 스포츠, 음악, 예술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통계 자료를 보면 스포츠, 음악, 예술산업과 관련된 일자리는 3%에 불과. 열정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해당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음. 같은 분야에 열정을 가진 수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 유달리 뛰어난 재능을 지닌 (또는 운이 좋은) 소수만 안정적으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는 스프츠 및 음악 분야가 그렇다. 미국 고등학교 운동선수 중 프로로 진출하는 사람은 1000명 중 1명꼴도 안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열정이 없다.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은 그런 사람들을 어설픈 자기성찰로 내몰아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둘째, 관심사는 변하기 마련. 심리학자 조르디 쿠아드박, 대니얼 길버트, 티모시 윌슨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생각보다 훨씬 자주 변하며, 따라서 관심사를 과대평가해선 안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10년전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현 관심사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지금 열정을 갖고 있는 분야에만 초점을 맞추면 곧 열정이 식어버릴 분야로 뛰어들 위험이 있다. 이는 열정에만 이끌리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세번째 이유와 직결됨. 직무만족도를 가늠하기 위한 최선의 예측지표는 직무 자체의 성격이지 개인의 열망과 관련된 사항들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현재 관심을 갖게 된 분야에 연연하지 말고 직업의 주된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일을 찾으면 열정은 저절로 솟아나게 마련. 관련 연구에 따르면 직무만족도를 가장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지표는 일 자체의 매력이며, 이는 아래 다섯가지 요소로 이루어짐
* 자율성 : 업무에 대한 주도권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 완결성 : 맡은 업무가 전체 업무의 완결성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최종 결과에 대한 기여도가 단순한 부품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눈에 띌 정도로 큰가
* 다양성 : 다양한 역량와 재능이 필요한 폭넓은 활동이 요구되는가
* 평가 :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가
* 기여도 :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 열정에 맞는 직업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거라 넘겨짚고 진로를 선택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일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면 열정은 자연히 뒤따라온다.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다. 잡스는 젊었을 때 선불교에 열성적이었다. 인도를 여행했고, LSD를 자주 복용했으며 삭발을 한 채 법복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승려가 되려고 일본행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잡스가 기술 분야에 발을 들인 건 열정 때문이 아니었다. 올원팜이라는 공동체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기술에 밝은 스티브 워즈니악의 사업을 부업으로 도운 게 계기가 됐다. 애플조차 우연의 산물이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도락가들에게 서킷보드를 판매하다가 어느 컴퓨터 상점 주인이 완전조립된 컴퓨터를 사겠다고 하자 돈을 벌려고 그 일에 뛰어들었다. 애플과 컴퓨터 기술에 대한 잡스의 열정이 불타오른 것도 사업이 관심을 끌고 성공을 거둔 뒤부터다
- 린스타트업은 많은 기업가들이 시험제품이나 아이디어에 혹해서 해당 시장이 있는지 검증하지도 않고 무조건 달려드는 오류를 저지른다는 데 착안한 결과임. 기업이 이런 우를 범하면 대개의 경우 제품은 실패함. 제품을 시험해야 할 시간에 머리만 굴리는 탁상공론에 매몰되기 때문. 리스는 아이디어나 제품을 하나의 가설로 보고 끊임없이 검증하되 최종제품은 잠재고객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이와 유사한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일찌감치 결정을 내리고는 악착같이 거기에만 매달린다. 다른 가능성을 무시한 채 그 일이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소명을 찾아 융통성 없이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과학자가 된 것처럼 여러 가설을 검증해야 함. 이를 위해 다음 세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경력을 진행중인 사안으로 봐야 함. 진로를 정해 두기보다 하나의 경력 모델, 즉 새로운 증거나 기회가 나타날 때마다 끊임없이 수정하는 임시적인 목표들과 가설들을 세워야 함. 계획이 아예 없는 것보다야 형편없는 계획이라도 있는 게 낫지만 그것도 계획을 기꺼이 수정할 의향이 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다.
(2) 진로선택을 할 때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을 파악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함. 이를 위해서는 지금 눈에 보이는 장단점만 저울질하면 안된다. 그보다 이렇게 질문하라. 내가 직업을 결정하는 데 가장 유용한, 결정적인 한가지 정보는 무엇인가? 그 정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3) 다양한 경로를 시험해 봐야 한다. 과학자들이 가설을 검증하듯 다양한 진로계획을 두고 실험을 해보자. 어떤 직업이 적합한지 사전에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만큼 이는 중요한 문제다. 일례로 8만시간에 진로상담을 의뢰한 어떤 사람은 자산관리회사의 인턴으로 사회생활에 첫발을 뗐다. 그 분야에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자기한테 맞지 않는 일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터였다. 막상 일을 해보니 역시나 그 일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였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다른 경로로 뛰어들 수 있었다. 실패가 도리어 매우 값진 경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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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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