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ㅈ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일이다.
- 원시공동체의 경우, 농부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었더라면 얼마 안되는 잉여를 전사와 사제들에게 나눠주기보다 차라리 잉여가 생기지 않도록 생산을 줄이거나 소비를 늘렸을 것이다. 처음에, 전사와 사제들은 힘으로 강제하여 농부들을 생산케 하고 잉여를 내놓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한 대가의 일부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로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농부의 본분이라는 윤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방법을 쓰게 되자 강제력을 쓸 일이 적어지고 따라서 지배에 드는 비용도 줄어들었다. 오늘날까지도 왕이 근로자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려선 안된다고 주장하면 영국의 임금생활자의 99%가 아마 큰 충격을 받을 것임. 의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자의 평일 근로시간이 15시간이었다. 아이들도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고 어른만큼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 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도시 근로자들이 막 투표권을 따낸 직후였는데 몇몇 공휴일이 법으로 정해지자 상류층에서 대단히 분개했다. 나는 한 늙은 공작부인이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가난뱅이들이 휴일에 뭘 한다는 거지? 그 사람들은 일을 해야만 한다구"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보단 덜 노골적이지만 그 정서는 그대로 남아 경제적 혼란의 뿌리가 되고 있다.
- 모든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일정량 소비하게 되어 있다. 노동이란 것을 전반적으로 불쾌한 것을 여긴다면, 자신이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물론 의료인치럼 상품대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먹고 자는 데 따르는 대가로 뭔가를 제공해야만 한다. 이 정도 선이라면 근로의 의무를 받아들여 마땅하다. 그러나 오직 이정도까지만이다.
- 농부들의 무도회는 외진 시골지역들을 제외하곤 사라져 버렸지만 그들을 도야시켜주던 그 충동은 여전히 인간의 본성 속에 남아 있음에 틀림없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은 대체로 수도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시합을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 식이다. 여기가 더 있다면, 그들은 과거 적극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맛보았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 과거에는 여가를 즐기는 계층은 소수였고 일하는 계층은 다수였다. 유한계층이 누리는 편의는 사회정의란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 결과 유한계층은 압제적으로 되어갔고 자기들만의 공감대 내로 좁혀지고,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만들어 내야 했음. 이 같은 점들은 이 계층의 우수성을 상당히 위축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계층은 이른바 문명이란 것을 담당하가는 공헌을 했다. 예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발견들을 이루었다. 책을 쓰고, 철학을 탄생시키고, 사회적 관계들을 세련시켰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 운동조차도 흔히 위로부터 일어난 것이었다. 유한계층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결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의무를 지우지 않은 채 유한계층을 대대로 세습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다. 이 계층의 구성원 그 누구도 근면하라고 가르쳐지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이 계층이 전바적으로 유별나게 똑똑한 것도 아니었다. 이 계층에서 어쩌다 다윈 같은 사람이 하나 나왔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여우 사냥이나 하고 밀렵자를 벌 주는 일 이상의 지적인 일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는 시골 신사들이 수만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왔다. 지금가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 짜증들이 많은 사람의 좋은 성격과 즐거운 인생을 망쳐 놓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 순간의 문젯거리와 약간의 연관이 있을 뿐인 동 떨어진 지식에서 의외로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설사 그 문제와 아무 연관이 없는 지식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의 골칫거리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격분해서 안색이 하얗게 된 사람이 마구 공격해 올 때는, 데카르트의 '열정에 관한 논문'에 나오는, '분노로 안색이 하얘지는 사람이 안색이 빨개지는 사람보다 두려움을 더 많이 타는 이유'란 제목의 장을 돌이켜보면 즐거워질 것이다. 국제적 협조를 확보하기 어려워 초조해질 때는, 성인 대접을 받는 국왕 루이 9세를 떠올리면 초조감이 줄어들 것이다. 루이 9세가 십자군 성전에 들어가기 전, 세상 사악함의 절반들 대표하는 어두운 배경인물로 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하는 산노인과 제휴했던 일 말이다. 자본가의 약탈이 자꾸 심해져 압박감을 느낄 때는 브루투스를 생각하라. 지조있는 공화주의자의 본보기로 알려진 부루투스가 한번은 한 도시에 40%의 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는데 이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그는 돈을 풀어 사병들을 고용해 그 도시를 포위했던 것이다. 진기한 지식은 불쾌한 일을 덜 불쾌하게 만들 뿐 아니라 즐거운 일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 나는 복숭아와 살구를 즐기는 데 그것들이 맨 처음 중국에서 한 왕조 초기에 재배되었다는 것, 카니스카 대왕에게 볼모로 잡혀온 중국인들이 그 과실을 이녿에 소개한 이후 페르시아로 퍼져나갔으며 기원 후 1세기에 로마제국에까지 당도했다는 것, 살구가 일찍 익는다고 해서 apricot이란 말이 precocious(조숙한)란 말과 동일한 라틴어 어원에서 파생됐다는 것, 그런데 어원을 잘못 아는 바람에 실수로 a자가 맨 앞에 덧붙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현재의 세계는 상난 자기 중심적 집단들로 꽉 차 있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한발 양보하는니 차라리 문명을 파괴시키고 말겠다는 태세들이다. 이 같은 편협증에는 아무리 많은 과학기술적 지식으로도 해독제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개인 심리에 국한된 편협증이라면 역사, 생물학, 천문학 및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학문들에서 해독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여기에는 예술, 역사, 영웅적인 사람들의 인생 접하기, 우주 차원에서 볼 때 인간은 한심할 정도로 우연적이고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 특유의 것에 대한 일종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해하고 아는 힘, 도량있게 느끼는 힘, 올바르게 사고하는 힘을 키워준다. 비개인적인 감정과 결합된 폭넓은 인식으로부터 비로소 지혜가 솟아나오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인생은 고통으로 차 있었지만 앞선 두 세기보다 우리 시대의 인생이 더 고통스럽다.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면 인간은 하찮아지고,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고, 엄청난 집단 신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완화책은 장기적인 고통의 근원만 증가시키는 꼴이다. 개인적 불행이든 공적인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극복될 수 있다. 의지에는 약을 피하고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포함됨. 지성에는 그 악을 이해하고, 치유가 가능하다면 찾아내고, 만일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벗어난 다른 영역, 다른 시대, 행성간의 공간에 놓인 심연들에는 무엇이 놓여 있나를 되돌아봄으로써 그 악을 참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 사람들은 아무리 싸우고 살아도 '가정'이란 프라이버시를 좋아하며 그 안에서 자존심과 소유욕의 충족을 찾는다. 과거 수도원들에서 볼 수 있었던 독시주의적 공동생활에서는 그런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다. 결국 프라이버시 본능을 초래하는 것은 결혼과 가정이다. 나는 이 본능을 충족시키는 데 있어 이따금 가스 곤로로 뭘 만들어 먹는 정도 이상의 개별취사가 정말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선 자기 가구가 딸린 개인아파트 하나면 족하다. 개인적인 습관을 바꾸기란 언제나 어려운 법. 하지만 독립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바람이 존재하는 한, 점차 더 많은 여성들이 밖에 나가 생계비를 벌어오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것이 역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본 이런 제도를 바람직해 보이게 만들 것이다.
- 독일의 배상문제가 우리 불행의 유일한 원인이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연합국측이 미국에 지고 있던 빚도 한 원이이 되었으며, 그보단 규모가 작긴 해도 높은 관세벽이 채무자와 채권자를 갈라 놓고 있어 상품으로 지불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적, 공적인 모든 부채들도 원인이었다. 독일의 배상문제가 불행의 전적인 원인이라곤 결코 할 수 없지만 사고의 혼란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 가장 극명한 예임에는 분명하다. 우리의 불행을 초래한 사고의 혼란은 소비자의 입장과 생산자의 입장에 대한 혼란이다. 배상금을 부과할 당시 연합국측은 스스로를 소비자로 간주했다. 독일인들이 생산한 것을 소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즐거워했던 것.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이 확립되고 난 후 그들은 자신들 역시 생산자라는 것과 자신들이 요구로 만들어진 독일의 상품들이 유입되면 자신들의 산업이 피해를 보게 되리란 점에 생각이 미쳤다. 대단히 당황한 그들은 그제야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합국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앉아 국제회의란 것을 열어 보아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세계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들이 너무도 무지하고 어리석어 그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과 게다가 자만심이 강해서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하기 위해 연합국측의 한 나라를 한 개인, 이를테면 무인도에 살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라 가정해 보자. 독일인들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거해 그에게 모든 생필품을 공짜로 제공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가 앞에선 본 강대국과 같은 자세로 나온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오, 나한테 석탄을 가져오지 마시오. 그러다간 장작 줍는 내 산업이 망할 테니까. 빵도 가져오지 마시오. 내 농사가 망쳐질 것이고 원시적이긴 하지만 내가 발명한 제분기도 쓸모 없어질 테니까. 내게 옷을 가져오지 마시오. 내겐 짐승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초기 산업이 있으니까. 금을 가져오다면 상관없소. 그건 나한테 아무런 해도 주지 않을 테니까. 난 금을 지하실에 넣어 두고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배상하는 건 그 어떤 것도 받지 않겠소" 가상의 로빈슨 크루소가 이렇게 말했다면 우리는 그가 고독하게 살다보니 정신이 돌아버렸나 보다고 생각할 것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세계 주도국들이 독일에게 한 말 그대로다. 한 개인이 아닌 한 나라가 정신이 나갔을 땐 마치 산업면에서 대단한 지혜를 발휘한 것처럼 여겨진다.
- 소수가 다수를 능가하는 힘을 획득하는 경우 그들은 어김없이 다수를 지배하는 일정한 미신의 도움을 받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 일식과 월식현상이 당시 대중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을 때 사제들이 그것을 예견하는 방버을 발견해냈다. 결국 사제들은 다른 방법으론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공물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왕들은 신성한 존재였고, 따라서 찰리 1세의 목을 자른 크롬웰은 신성 모독의 죄를 지은 것으로 여겨졌음. 우리 시대의 금융업자들은 금을 숭배하는 미신의 도움을 받고 있음. 금 준비금이니, 어음발행이니,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리플레이션, 기타 온갖 전문용어들을 나열하면 보통 시민은 놀라서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청산 유수로 말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느끼면서 그들의 말에 감히 의문조차 품지 못한다. 보통 시민에게 금의 기능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단히 당황하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금이 차지하는 역할이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막연히, 자기 나라가 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더 안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금 준비금이 증가했다고 하면 기뻐하고 줄었다고 하면 서운해한다. 일반대중의 이러한 어리석은 면은 금융업자가 민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물론, 그에겐 여론을 다루는 데 필요한 이점들이 그밖에도 많다. 그는 엄청나게 부자이기 때문에 대학에 재산을 기부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 있는 부분을 자신의 편으로 확실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는 금권 정치의 우두머리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꽉 찬 정치사상을 가진 모든 이들의 지도자가 된다. 경제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는 전 국가들을 골라잡아 흥망을 분배할 수 있다. 그러나 미신의 도움이 없다면 이러한 무기들 중 어느 것도 충분치 못하다.
- 어느 정도 만연된 회의주의는 지적 원인보다는 사회적 원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 주요원인은 언제나 힘이 없는 것에 대한 위안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제의 희생자들도 냉소적이지 않다. 그들은 증오로 가득 차 있으며 증오란 것은 다른 강한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부수적인 일련의 믿음들을 수반하기 때문. 교육과 민주주의와 대량 생산이 등장히기 전까진 어느 곳에서나 지식인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수뇌들이 쓰러졌더라도 영향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인들은 대단히 달라진 상황에 처해 있다. 선전가가 되거나 법정의 어릿광대가 되어 어리석은 부자들에게 서비스를 팔 마음이 있다면야 좋은 일자리와 높은 수입을 확보하는 것이 결코 힘들진 않다. 대량생산과 초등교육으로 인해 어리석음이 문명의 발흥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 바람직한 것은 복종도 반항도 아니며, 선한 본성과 사람들 및 새로운 사상들에 대한 일반적인 호의다. 이러한 자질들은 부분적으로 선천적인 기질에서도 기인하지만, 활기찬 충돌들이 저지되었을 때 생겨나는 좌절된 무력감으로부터의 해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들이 호의적인 어른들로 자라날 수 있기 위해선 자신의 주변을 호의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아이의 중요한 소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해 주어야 하고 아이들을 단지 신의 영광이나 국가의 위대함 따위의 추상적인 목적에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또한 가르칠 때도 아이가,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그 지식이 진실일 때 말이다. 학생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때 학습의 속도는 두 배로 빨라지고 피로감은 반으로 줄어든다. 이 모든것들이 많은 자유가 필요한 명백한 이유가 된다.
- 모든 중대한 혁신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는 데서 가능했다. 케플러는 점성술로 살았고 다윈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살았으며,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맨체스터의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해서 보내주는 돈으로 살았다.
- 부자들의 실업은 또다른 종류의 해악이다. 세상엔 놀고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개는 여자들인데 그들은 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돈은 많아서 자만심이 강하다. 또한 돈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안락을 위해 타인들의 노동력을 바치게 만들 수 있다. 스스로의 진정한 문화 따윈 거의 없지만 그들은 예술의 주요 후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데도 쓸모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비현실적인 감상주의로 만들기 때문에 활기찬 성실성을 싫어하게 되고 따라서 문화에 개탄스러운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돈을 버는 남자들은 대개 그것을 쓸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기 때문에 부를 키워가는 기술이 있는 남편을 두었다는 것 외엔 존경받을 아무 자격도 없는 여자들에 의해 문화가 크게 좌우되고 있다. 예술하기엔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더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과거의 귀족정치만 생각했지 현재의 금권정치는 생각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다. 노는 부자들의 존재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불행한 결과들을 낳는다. 현대의 주요 산업은 작은 기업 여러 개보단 큰 기업 몇 개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난 경우들도 여전히 많음. 런던에 있는 불필요한 작은 가게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부잣집 여자들이 쇼핑하는 지역을 가보면 모자 가게가 수도 없이 많다. 주로 러시아 백작부인들이 지키고 앉아 있는 이 가게들은 저마다 다른 가게들보다 좀더 고상한 척한다. 그들의 고객들은 이 가게 저 가게 옮겨다니며 몇 분이면 살 것을 수시간씩 낭비한다. 가게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력과 거기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시간, 모두가 낭비되고 있다. 보다 심각한 해악은 다수 사람들의 생계가 무익한 것에 묶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소비는 그에 기생하는 인구들을 다수 양산하게 된다. 그들 자신은 부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상품을 사주는 게으른 부자들이 없으면 자신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힘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게 의존해 삶으로써 그들은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예술적으로 고통받는다.
- 자신이 속한 문명을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확실한 수단이 있다. 바로 여행, 역사, 그리고 인류학이다. 그러나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셋 중 어느 하나도 생각만큼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행자는 자기가 관심 있는 것만을 본다. 예를 들어 마르코 폴로는 중국 여인들의 발이 작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에 따라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한다. 이를테면 로마 몰락의 원인으로 제국주의 기독교, 말라리아, 이혼, 이주민의 유입 등등 여러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 중 이혼과 이주민의 유입은 각각 미국의 목사들과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이유들이다. 인류학자는 그 시대의 지배적 편견에 따라 사실들을 선정하고 해석함. 늘 집에 박혀 있는 우리가 미개인에 대해 뭘 알겠는가? 루소주의자들은 그를 숭고하다고 하고 제국주의자들은 그를 정숙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반면 이혼법 개혁주창자들은 그가 자유 연애주의자라고 말한다. 제임스 프레이저 경은 그가 늘 자신의 신을 죽이고 있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종교입회 의식들로 늘 바쁘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이 미개인은 인류학자들의 이론에 따라 무엇이든 되는 친절한 녀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역사와 인류학은 그래도 가장 좋은 수단이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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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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