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향된 독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기 쉬움. 객관성이 부족한 독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텍스트를 해석함. 제 멋대로 읽는다는 뜻. 공정하지 않은 독자는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논쟁적 상황에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읽지 못함. 편을 든다는 의미.
우리는 기존 경험이나 신념을 틀 삼아 새로운 정보를 재단하는 경향이 있음. 그 틀이 견고할수록 제멋대로 글을 읽을 가능성이 크고, 패턴이 특정 방향을 가리키면 편을 들며 읽는다. 이런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함. 흔히 확증편향을 가리켜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이라고 함.
- 앎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소극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굳이 질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큼. 이런 사람은 소박한 인식론적 신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함.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 같음. 경쟁위주의 경직된 입시제도 아래서 학생들은 주어진 지식을 그대로 수용행만 좋은 성적을 받음. 논술평가가 확대되고 고교학점제로 체제를 개편하는 등 크고 작은 변호가 있지만, 그럼에도 대학에 진학하려면 주요 교과의 지식을 외우고 또 외워야 함. 잘 외워서 수능만 잘 보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하다.
- 인공지능에 묻고 답하는 질문과정은 온라인 읽기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던 탐색, 평가, 종합의 과정을 대신함. 인공지능은 독자가 검토할 만한 텍스트를 대규모 데이터로 학습한 상태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저 질문만 던져도, 이전에는 스스로 직접 탐색하고 종합해서 얻어야 했던 잠재 텍스트를 응답의 형태로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음. 인공지능은 한 편의 완결된 에세이를 내어주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 뉴미디어 학자 제이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은 매채가 변화해도 이전 매체가 새로운 매체로 온전히 대체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를 재매개라고 정의. 새로운 매체는 이전 매체가 지녔던 표상양식이나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의 일부를 차용하면서 발전해나간가는 것. 즉 새로운 매체라고 해서 말 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전에 없던 무언가가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은 아님.
- 판단유보는 독자가 자신이나 사회의 영향력을 재점검해서 최종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려는 태도. 기사나 영상의 댓글에서 판단을 유보하려는 독자들의 의식적 점검과 조절행위를 찾아볼 수 있음. 다소 표현이 거칠지만 중립기어를 박는다고 함. 주어진 텍스트를 섣부르게 믿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비판적 독자들은 어떤 정보나 사건에 대해 현재의 텍스트만이 아닌, 또 다른 텍스트를 통해 해석의 타당성을 확보함. 또 이를 댓글로 남기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중한 해석을 요청하는 매우 적극적인 실천행위라 할수 있음.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는 텍스트의 불완전한 속성을 이해해야 가능. 그리고 텍스트를 읽은 직후에 환기한 느낌과 생각이 자신의 편향성에서 비롯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텍스트 내용이나 가치에 대한 판단을 잠시 지연하려고 노력하는 것임. 이는 자신의 사전지식이나 신념이 텍스트 해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할 때 가능해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편향된 나 자신에게 속지 않는 엄청난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제법 멋들어지게 쓴 텍스트와 아무렴 옳다고만 여겨지는 나 자신에게 눈드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한발 물러나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차분히 관망하면서 질문이 비집고 들어갈 빈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 여러분이 화면에서 마주하는 질문의 대상은 인공지능 챗봇이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는 질문창이지만요. 하지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다른 것이 쥐고 있다. 바로 대규모 언어모델. 우리는 대규모 언어데이터를 또 하나의 질문대상으로 고려해야 함. 엄밀히 말해, 질문에 답을 내주는 것은 데이터이기 때문. 현재의 인공지능 모델은 자연어를 이해하고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갖추어 인간친화적으로 대화장면을 구현하지만, 질문에 답을 하려면 학습한 데이터에 의존. 결국 질문의 대상은 챗봇이 아니라는 것.
언어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에서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이 곧 좋은 텍스트를 생성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 생성형 인공지능은 학습한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토대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와 관련된 자료를 탐색함. 이때 데이터를 선정하는 기준은 질보다 양. 정보의 질을 고려하지 못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끌어모아 분석함. 그렇기에 학습된 자료 다수가 오염되어 있다면, 결괏값 또한 부정확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누구나 텍스트를 만들어 게시하는 온라인 환경에서는 텍스트의 질을 담보하기 어려움. 그중에는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도 포함되어 있음. 인공지능은 디지털 텍스트를 학습해서 가공하기 때문에 원텍스트의 오류를 고스란히 가짐.
대규모 언어 데이터를 질문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답하는 대상이 가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줌. 이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응답의 출처를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함. 교사가 질문의 대상일 때, 학습자인 독자는 교사가 가진 정보를 신뢰하고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음. 다중 텍스트 읽기에서 저자의 권우가 높다고 평가하면 정보의 질을 되묻지 않는 것과도 같다.
-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다중 텍스트를 처리하는 일은 단일 텍스트와 비교할 때 인지부하를 가중함. 출처가 다른 텍스트를 비교해 가며 통합하는 일에는 더 높은 수준의 사고과정이 필요하기 때문. 어떤 한 주제에 관해서 한편의 텍스트가 모든 지식을 다 담고 있을 수는 없음. 그래서 우리는 여러 텍스트를 읽어야 함. 그런데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고 있다.
독자가 텍스트를 직접 읽으려는 시도를 줄이면서 자신의 궈한과 주도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읽기에서 큰 문제임. 인공지능에 의존해 지식을 학습하는 독자는 텍스트를 검토하고 종합하는 탐구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큼. 무비판적이거나 다중 텍스트 읽기 과업에 부담을 느기는 독자가 계속해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텍스트만을 취한다면, 그들은 자력으로 텍스트를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지식을 탐구하는 주도적 독자로서의 힘을 잃게 될지도 모름.
우리는 지식의 소비자가 아닌, 구성자로서의 지위를 잃지 말아야 함. 그러러면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지만 말고 '정말 그렇다고?' 하고 질문하는 독자가 되어야 함. 즉 질문할 수 있는 능력과 질문하려는 태도를 갖춘 독자가 되어야 함.
- 인공지능이 소설이나 시를 써 주면 좀 어떻습니까? 그림은 또 어떻구요? 얼핏 완성되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빈 부분을 확인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산출물은 결과가 아니라 그릇을 빚을 찰흙이다. 식재료에 비유해도 좋고, 벽돌에 비유해도 좋다. 무엇이든 그것은 최종결과물을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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