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지능

과학 2023. 9. 5. 12:17

- 1858년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와 함께 영국 린네 학회 (Linnean Society)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 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 간에 변이가 존재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heredity)한다.
셋째,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가 태어나기 때문 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 (competition)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자연선택)

- 변이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 한복판에서 변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변이가 없으면 애당초 선 택도 없다. 자연 선택은 변이를 먹고산다.
염색체에는 각각의 유전자가 앉는 자리 (locus)가 있다. 인간 을 포함한 생물들은 각 세포 안에 한 쌍의 동일한 크기와 모양을 가 진상동 염색체들을 갖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세포 안에 모두 23쌍, 즉 46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난자와 정자를 만들려고 감수 분열 (meiosis)을 하기 전에는 언제나 염색체를 쌍으로 갖고 있 는 배수체 (diploid) 생물이다. 이 때문에 각각의 유전자 자리마다 하 나 또는 두 종류의 대립 인자(allele)를 지닌다. 만일 두 상동 염색체 의 동일한 유전자 자리에 동일한 대립 인자를 갖고 있으면 동형접 합(homozygous) 상태라고 하고 다른 대립 인자들이 앉아 있으면 이형 접합(heterozygous)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한 개체는 각 유전자 자리에 최대 두 종류의 대립 인자까지 지닐 수 있지만 개체군 전체를 놓 고 보면 그 유전자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대립 인자는 두 종류 이상일 수 있다. 한 유전자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대립 인자의 수가 많을수록 유전적 변이가 다양한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대립 인자들 의 총합이 바로 유전자군을 이룬다.

- 야생 조류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 기 때문에 그들 중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좀처럼 전체로 번지지 않 는다. 그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한 개체들 일부가 죽어 나 갈 뿐 유전적으로 다른 대부분의 개체들은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려 죽은 개체들이 비워 준 공간을 메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기르 는 닭은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 선택 (artificial selection)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비록 유전자 복제 기술을 통 해 만들어지진 않았어도 거의 '복제 닭' 수준의 빈곤한 유전적 다양 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단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 안으 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이 감염되는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기르고 있는 닭은 원래 동남아시아 열대림에 서식 하는 붉은멧닭 (red junglefowl)을 가축화한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자 연계에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그저 알 낳는 기계 일 뿐이다. 알이란 닭들이 우리 식탁에 올려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아리, 즉 자식을 얻기 위해 낳는 것이다. 도대체 자식을 하루에 하 나씩 낳는 동물이 이 세상천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닭은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괴물'이다. 그 괴물이 이제 우 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을 공격하던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인가 인간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우리가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킬 수 있는 인수 공통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 몇 년 전 나는 조류 인플루엔자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생물 학적 사실을 설명하고 매년 예산 낭비를 되풀이할 게 아니라 기초연 구를 통해 근본적인 방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장기간의 기초 연구라면 두드러기 증상을 보이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득달에 즉시 사용 가능한 방안을 하나 제시할 수밖에 없 었다. 구체적인 방법은 어찌 되었든 닭장 안의 유전적 변이를 높이는 게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야생에 사는 새들처럼 닭장 안의 닭들도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갖게 된다면 바이러스가 유행한 다고 해도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 가는 닭들만 제거하면 될 뿐 닭장을 통째로 초토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전적 변이가 개체군의 건강을 담보한다. 섞여야 건강하다.
- 참으로 기막힌 모순이다. 유전자 치환은 개체는 보다 탁월하게 만들어 줄지 모르지만 개체군은 더없이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 다. 자연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유전자를 섞어 왔다. 유전 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탁월한 개체군은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 는 동안에는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 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개 체군은 바로 유전적 변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진정 섞여야 건강하다.

- 고층 아파트에 사는데도 거실 한가운데 로 줄지어 행군하는 작은 개미를 보곤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집에 서 사는 집개미 중에서 아주 작다고 하여 애집개미라는 이름을 얻은 개미다. 영어 이름은 '파라오개미 (pharaoh ant)'인데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그리 부르기로 한 것이다. 개미들의 제국은 본래 어 느 따뜻한 날 서로 다른 군락으로부터 날아 나온 공주개미들과 왕자 개미들이 이른바 혼인 비행을 하며 짝짓기를 한 다음 충분한 정자를 비축한 차세대 여왕개미가 양지바른 곳에 굴을 파는 식으로 건설된 다. 그런데 애집개미의 공주들은 오라버니들과 잠자리를 같이하여 정자 주머니 가득 정자를 채운 다음에는 그저 여행 가방이나 이삿짐 에 올라타 어디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그곳에서 애써 같 은 종의 수컷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곧바로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애집개미는 지금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아 파트를 석권했다. 자연계에는 모든 상황에서 언제나 불리하거나 유리한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진화에서 유효 개체군의 크기가 중요한 것은 유효 개체군이 작을수록 개체군 내의 대립 유전자 빈도가 임의로 변화하는 현상인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의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과 유전적 부동은 진화의 양대 메커니즘이다. 자연 선택이 다분히 결정 론적인 작위적 과정이라면 유전적 부동은 개체군 내의 대립 유전자 빈도가 말 그대로 임의로 변하는 무작위적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유 전적 부동은 종종 자연 선택이 애써 다듬어 놓은 적응 체계 (adaptive system)를 해체시켜 버린다. 자연계의 진화가 방향성을 지니기 어려 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계학적 개념으로 보면 유전적 부동은 다름 아닌 '표본 오차(sampling error)'에 지나지 않는다. 무작위적인 표본 추출로는 결코 훌륭한 적응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하릴없 이 변화하는 유전자 빈도, 그것 또한 엄연한 진화의 모습이다.

- 조물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종의 기원』의 불온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다윈에게 가해진 종교적 또는 사회적 탄압은 사실 그리 심하 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는 다윈의 주검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시 는 것에 대해 그리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보다 나은 형질이 자연적 으로 선택되는 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라면 자연 선택의 궁극적인 결과로 신의 선택을 받은 '완벽한' 종인 인간이 진화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영국의 종교계는 다윈의 이론을 신 의 인간 창조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이해하고 자연 선택의 메커니 즘을 다분히 진보의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복잡한 생물이 보다 단순한 생물로 부터 진화한 것은 사실이나 모든 생물의 구조가 언제나 단순한 데에 서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보다 복잡한 생물도 등장한 것이지 결코 모든 생물이 좀 더 복잡하 게 변화하는 방향성 같은 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단세포 생물 중에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변화도 겪지 않고 살아남 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분화된 것들도 있다. 이렇듯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
2002년에 타계한 하버드 대학교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 드는 그의 저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Wonderful Life)』에서 만 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가 담긴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설명 한다. 한 종의 인간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 도 아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 (amoral)이며 비효율적인 자연 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 다윈의 자연 선택 메커니즘을 설명할 때 흔히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표현을 쓴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윈 자신의 표현이 아니다. 스스로 '다윈의 불도그'를 자처하며 다윈의 이론을 알리고 변호하던 스펜서가 1864년에 만들어 널리 퍼뜨린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최적자의 생존이라고 해야 한다. 나는 이 표현이 알게 모 르게 '최고', '일등', '유일' 등을 앞세우며 과열 경쟁을 부추긴 죄인 중 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선택 과정에서 언제나 최고의 단 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체군 내에 존 재하는 변이의 스펙트럼 어느 지점에 자연 선택의 칼날이 내려칠지 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함께 경쟁하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 도나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만큼 생존과 번식에서 유리한 위치를 갖게 되리라는 의미에서 'survival of the fitter'라는 비교급의 개 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윈은 뒤늦게 '적자 생존'이라는 용어 와 거리를 두려 노력했고 사과까지 했지만 스펜서가 씌운 굴레를 걷 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다윈이 최상급이 아니라 비교급을 제안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미리 예정해 놓은 것을 펼쳐 보인다는 의미 를 지닌 영어 단어 evolution이 동양으로 건너오면서 얻은 번역어인 '진화(化)'에는 아예 '나아갈 진(進)'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의 신학 자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그의 저서 『오시는 하느님 (Das Kommen Gottes)』에서 미래를 'Futurum/Future'과 'Adventus/Advent' 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Futurum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과거일 뿐 이고, 기독교적인 시간인 Adventus는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 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이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다윈 이 오랫동안 evolution이라는 용어 사용을 꺼린 데는 상당히 깊은 신 학적 이해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서양의 이 같은 심란한 단어를 동 양에서는 너무 쉽게 처리하는 바람에 진화와 진보의 관계를 더욱 혼 란스럽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언론에서는 '진화'라는 단어 를 '변화'의 대용어쯤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은연중 에 '바람직한 변화', 즉 '진보적 변화'를 말할 때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듯이 보인다.
- 비록 나는 이 글에서 진화는 결코 진보적 변화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사실 진화 생물학계는 이 문제를 두고 두 진영으로 갈려 있다. 다윈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양 진영을 왔다 갔다 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던 로마의 철학자 프 로타고라스(Protagoras)처럼 지금도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지성이 나 감정 이입 등 우리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속성들 은진보적 진화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나의 스승인 하버 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생물의 진화를 전체적으로 바라 봤을 때 엄연히 진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믿는 쪽이다. 하 지만 그의 제자인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굴드 진영에 가깝다.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굴드는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온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전 글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얼마나 굴드를 불편해 하는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게 싫은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진화이 론의 발달에 여러모로 공헌했다. 진화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그의 명쾌한 설명도 그중 하나다.

- 적응(adaptation)은 진화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진 화 생물학에서 말하는 적응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얘기하는 적응, 즉 새로운 환경 조건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과정과는 다른 것이 다. 진화적 적응은 그것을 지닌 생명체로 하여금 보다 잘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전적 특징을 말한다. 1996년 윌리엄스는 "진화적 적응은 오로지 자연 선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단언 했다. 1859년 『종의 기원』 6장에서 다윈이 했던 다음 말을 이어받은 것이다. "만약 수많은 연속적인 사소한 변화들을 통해서는 형성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기관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나 의 이론은 완전히 뒤엎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윈은 그의 이론에 대 한 확신을 다음 문장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경우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윌리엄스는 진화적 적응은 자연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면 절대 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특별하고도 성가신 개념이며, 우연이 아니라 분명히 설계에 따라 만 들어진 게 아니면 어떤 효과라도 기능이라고 일컬어서는 안 된다."

- 그런데 정말 척추동물의 눈은 완벽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척추도 없는 무척추동물 중에도 우리와 상당히 비슷한 구 조의 눈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바로 오징어, 문어, 낙지 등 연체동물이다. 오징어의 눈과 인간의 눈을 위아래로 잘라 단면을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서로 전혀 다른 진화의 역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갖게 된 이른바 ‘수 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의 좋은 예다. 그런데 오징어의 눈과 우 리 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한 가지 뚜렷하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시신경과 실핏줄이 망막의 뒷면에 붙어 있는데 비해 다른 하나는 망막에 구멍을 뚫고 시신경과 실핏줄을 동공 안 으로 끌어들여 망막의 내벽에 붙여 놓았다. 도대체 왜 멀쩡한 스크린 에 구멍을 뚫고 깨끗한 상이 맺혀야 하는 스크린의 앞면에 그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일까? 과연 오징어와 인간 중 누가 그런 어리 석은 구조를 가진 눈의 소유자일까? 답은 뜻밖에도 우리 인간이 그 렇게 비합리적으로 설계된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 인간은 누구나 시각적 맹점 (blind spot)을 갖고 있다. 시신경 다발 을 눈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뚫어 놓은 구멍에 간상세포와 원추세 포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눈높이에 들고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만 지우개 끝에 초점을 맞춘 다음 눈의 방향을 고정시킨 채 연필을 서서히 오른쪽으로 움직여 보라. 연필이 시선 방향으로부터 20도 정도 움직인 지점에 이르면 지우개가 보이 지 않을 것이다. 왼쪽 눈도 마찬가지로 중앙선에서 약 20도 왼쪽 지 점에 맹점을 가지고 있다.
망막 위에 분포하는 혈관들도 그들의 그림자 때문에 작은 맹점 을 여럿 만든다. 어쩌다 혈관들을 망막 위에 붙여 놓는 바람에 생긴 이 문제 때문에 비유를 하자면 진화의 역사 내내 엄청난 소비자 진정 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리콜(recall)'을 해서 문제 해 결을 위해 노력한 결과 우리 눈은 순간순간 조금씩 다른 각도를 보려 고 끊임없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이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가 두뇌 에 전달되어 끊임없이 분석 종합되는 덕분에 우리는 우리 시야에 있 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잘못된 설계를 근본 적으로 뜯어 고치지는 못하고 그저 보완책을 강구한 것이다.
- 이 같은 이른바 역망막 (inverted retina) 현상은 단순한 시각 감손 은 물론 각종 심각한 임상 문제들을 일으킨다. 대수롭지 않은 출혈도 망막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심각한 시각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 또 간상세포와 원추세포가 망막으로부터 쉽게 분리되어 눈 안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일단 이런 증상이 발생하면 그 진행 속도가 점진 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시각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 안과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 백내 장 수술이고 다음이 바로 망막 박리 방지 수술이다. 이런 여러 설계 상의 문제점을 고려해 보면 오징어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훨씬 더 합 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셈이다. 만일 완벽한 눈을 설계하는 사람에 게 상금 1억 원을 주는 공모전이 벌어진다면 멀쩡한 망막에 구멍을 내는 설계도를 제출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왜 인간의 눈은 이렇게도 불합리하게 만들어졌는가? 자연 선택은 왜 좀 더 완벽한 설계를 만들어 내지 못했는가? 문제는 바로 인류 가거쳐 온 진화의 역사에 있다. 뒤집힌 망막의 설계는 인간만의 문 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척추동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 이다. 척추동물의 눈은 작은 조상 동물들의 투명한 피부 밑에 있던 빛에 민감한 세포들로부터 발달했다. 당연히 이 세포들에 혈관과 신 경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상태에서는 다분히 합리적인 설계였을 것 이다. 하지만 수억 년이 흐른 오늘에도 빛은 어쩔 수 없이 혈관과 신 경을 지나쳐야만 시각 세포에 도달할 수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 은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화에는 이처럼 역사적 제약(historical constraint), 또는 계통적제약(phylogenetic constraint)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제약 때문에 애꿎게 해마다 수많은 사람 이 음식물로 기도가 막혀 목숨을 잃는다. 갓 앞니가 나온 아이들이 특별히 자주 희생 제물이 되는데 소시지나 당근을 앞니로 끊어 삼키 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몇 차례씩 저녁 뉴스 시간에 이른바 하임리히 (Heimlich) 응급처치를 훌 륭하게 해내며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엄마의 목숨을 구한 꼬 마들이 등장한다. 기도에 음식물이 막혀 캑캑거리는 엄마의 명치를 주먹을 쥔 채 순간적으로 압박하여 막혀 있던 음식 덩어리가 튀어나 오게 한 꼬마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디에서 배웠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유치원 또는 캠프에서 배웠다고 대답한다. 
- 그런데 도대체 왜 음식물이 가끔 기도를 막는 일이 발생하는 것 일까? 문제는 우리 몸의 배관에 있다. 코로 들이마신 공기와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목 부위에서 무슨 까닭인지 애써 교차하며 서로 자 기관을 찾느라 힘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를테면 교통사고다. 입 보다 위에 있는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애써 목의 앞쪽 관으로 올 필요가 없도록 기도가 식도 뒤에 위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우리 몸은 어찌 보면 식도와 기도의 위치가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반면 코 밑에 있는 입을 통해 들어온 음식물은 억지로 기도의 뒤에 위치하는 식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 문제 역시 소비자들의 빗발 치는 원성에 못 이겨 거의 눈가림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그게 바로 후두개(喉頭蓋, epiglottis)다. 후두개는 우리가 음식을 삼킬 때는 기도를 막았다가 숨을 들이마실 때 열어 주는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 는데 때로 실수를 해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게 되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구조적 결함 역시 다 조상 탓이다. 그 옛날 우 리가 물고기였을 시절에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을 했다. 입으로 물을 들이마신 다음 아가미를 통해 빠져나갈 때 산소를 걸러 마시던 물고기들 중 일부가 뭍으로 올라가기 위해 숨쉬기 운동을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을 하려고 생겨난 콧구멍이 배에 있는 물고기보다 등에 있는 물고기들이 훨씬 유리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때 엇갈린 두 관의 위치를 바꾸지 못한 채 대대로 물려받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무슨 재료라도 가져다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공학자와는 달리 자연 선택은 이처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가지고 그 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적응과 자연 선택』의 저자이자 다윈 의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조지 윌리엄스는 1957년 국제 학술 지 《진화(Evolu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주 좋은 예를 들어 이를 설 명했다. 칼슘의 대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유전자는 사고로 부러진 당신의 뼈에 부지런히 칼슘을 공급해 빠른 시일 내로 뼈가 다시 붙을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젊 었을 때 얘기고 나이가 들어 어쩌다 골반에 금이라도 갈라치면 젊었 을 때처럼 그리 활발하게 돕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연신 동 맥 구석구석마다 칼슘을 쑤셔 넣는 짓에는 열심을 다해 결국 심각한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며 호시탐탐 당신의 목숨을 노린다. 한 유전자 가 한편으로는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주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죽음의 벼랑으로 떠미는 것이다. 이처럼 표리부동(表裏不同) 한 유전자들을 데리고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 으리라.

- 자연 생태계의 얽히고설킨 관계망 속에서 무수히 많은 다른 생물들과 공진화하며 어느 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적응 체계를 만들 어 낸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피터 미어 래섬 (Peter Mere Latham)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완전한 계획을 세우려는 것은 쇠퇴의 징조이다. 흥미로운 발견이나 발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완벽한 연구실을 설계할 시간이 없다." 자연의 강은 완벽의 정상을 향해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그저 구불구불 흘러갈 뿐이다.

- 남용과 오용 모두가 문제다. 예전에 미국에 살 때 열이 너무 심하게 오르거나 콧물이나 재채기가 멈추질 않아 병원 을 찾으면 우선 그런 증상을 유발하는 장본인이 세균인지 바이러스 인지를 가리기 위해 병원균 배양시험부터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 서 세균성으로 밝혀지면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만일 바이러스가 원 인으로 판정되면 집에서 편히 쉬며 물을 많이 마셔 몸 안에 들어온 바이러스를 열심히 씻어 내라며 약도 주지 않고 돌려보낸다. 바이러스는 완벽한 의미의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로는 구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환자들은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주사도 놓아주지 않고 약도 주지 않은 채 돌려보내면 의사가 돌팔이라며 몰 아세운다. 그래서 단순한 감기 환자도 애꿎은 주사도 한 대 맞고 두 툼한 약봉지를 손에 쥐어야 뿌듯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선다. 그 주사액과 약 속에는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성분이 들어 있다. 내일 아침 중요한 시험이 있어 지금 그 준비를 해야만 한다면 그런 약의 도움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른바 '감기약' 을 복용한 사람은 당장 몸은 조금 편할지 모르나 병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오래 앓는 것으로 밝혀졌다.
- 세균성으로 진단되어 항생제를 처방받는 과정에도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의사들은 대개 2주일 분량의 항생제를 주 며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다 복용하라고 당부한다. 하 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달랑 3일 치 를 주는 게 고작이다. 미국 의사들이 2주일치의 약을 주며 전부 복용 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몸이 설령 증상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안해 지더라도 잠입한 세균을 모두 제거한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방된 약을 끝까지 복용하는 것은 환자 자신에게도 좋은 일 이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공동체 전체에도 좋은 일이다. 어느 정도 몸이 편안해졌다고 약을 끊은 채 외출해 콧물 훔친 손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손도 잡고 얼굴에 재채기를 해 대면 아직 채 박멸되지 않은 세균들이 감염되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며칠 동안의 투약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세균들은 그만큼 내성이 강한 것들일 확률이 높으며, 이런 일들이 사회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결국 우리 주변에는 내성이 강한 균주들만 득시글거리게 되는 것이 다. 우리의 무책임이 불리한 자연 선택을 부추기는 셈이다. 남용뿐 아니라 오용도 심각한 결과를 빚는다.

- 오랫동안 벌새의 꽃가루받이 생태를 연구한 진화 생물학자 폴 이월드(Paul Ewald)가 쓴 명저 『전염성 질병의 진화 (Evolution of Infectious Disease)』(1993년)의 출간과 더불어 우리는 병원균의 독성이 그 전염 메커니즘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감기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람을 너무 아프게 만들어 전 혀 외부 출입을 못하게 하면 다른 기주로 옮아 갈 경로를 스스로 막 는 셈이 된다. 반면 직접 전파(direct transmission)에 의존해야 하는 바 이러스와 달리 말라리아 병원균은 감염된 사람이 중간 숙주인 모기를 쫓을 기력조차 없을 정도로 아프게 만드는 게 더 유리하다.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가 파리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처럼 민첩하면 말라리아 병원균은 다음 숙주로 전파 되기 어렵다. 감기에 걸려 죽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말라리아는 여전히 우리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간접 전파(indirect transmission)에 있다.
- 사회적 감염으로 집단 면역을 얻으려면 구성원의 50~90퍼센 트가 감염되고 최소 60퍼센트가 면역돼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연 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사망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집단 면역은 다분히 진화론적 발상이다. 야생 동물 집단에서는 수시로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내 생명은 더욱 소중하다. 국 가가 집단면역 정책을 채택할 경우 사망하는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된 다면 나는 결코 그 정책을 따를 수 없다. 진화는 낭비를 선택했다. 엄 청나게 많이 태어나 대부분이 죽고 극히 일부만 살아남아 번식에 이 르는 게 냉혹한 진화의 현장이다. 그 어느 정부도 함부로 진화적 정책을 추진해 국민의 목숨을 낭비할 수는 없다.

- 자연계에서 아주 드물게 수컷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모르몬 귀뚜라미 (mormon cricket)의 경우에는 암컷에게 구애 선물로 바치는 정 낭(spermatophore) 하나를 만드는 데 수컷 몸무게의 거의 27퍼센트가 소모된다. 하룻밤에 네 번만 정사를 나누면 그야말로 공중 분해를 면 치 못하는 엄청난 수컷의 투자가 수컷으로 하여금 선택의 권한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 수컷 경쟁 체제를 택한 수컷들은 자기들끼리 경쟁 과정을 거쳐 순위를 정함으로써 암컷의 선택권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다. 흔하진 않지만 때로는 수컷 경쟁을 통해 정해진 '내정 (default)' 순위를 거부한 채 버금 수컷(beta-male)과 짝짓기를 하는 암컷들이 있다.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논 문으로 펴내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민벌레 (Zorotypus barberi) 연구에 서 꼭 버금 수컷과 짝짓기를 고집하는 암컷들을 추적 관찰한 경험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수컷들 간의 경쟁 구도가 바뀌었을 때 다른 암 컷들처럼 새로 등극한 으뜸 수컷과 또다시 짝짓기를 해야 하는 번거 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몸길이가 비록 2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곤충이지만 마치 권력 구도의 변화를 예측이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 하는 그들이 내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 아름다움과 힘으로 승부할 수 없을 때 선물 공세로 암컷의 환심 을 사려는 수컷들이 있다. 밑드리 (scorpionfly)라는 곤충의 수컷들은 먹이가 될 만한 곤충을 잡아 암컷에게 선사하고 암컷이 그 선물을 먹 는 동안 짝짓기를 한다. 식사와 정사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결코 낭만 적이지 않은 밑드리 암컷을 위해 수컷들은 조금이라도 더 큰 선물을 잡아 바치려 노력한다. 미국 뉴멕시코 대학교의 랜디 손힐 교수는 이 구애 선물이 크면 클수록 암컷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 론, 큰 선물일수록 암컷이 먹는 시간이 길어지며 보다 많은 정자들이 암컷의 난자들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갈매기를 비롯한 많은 새들도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이 암컷에 게 먹이를 선물로 바친다. 새끼가 태어났을 때 과연 먹이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가장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듯 암컷은 선물 을 다 먹어 보고 나서야 수컷에게 짝짓기를 허용한다. 인간사회에서 도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할 때 흔히 반지를 선물하는데 동물들의 구 애 선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 춤파리과(Empididae)에 속하는 파리 수컷은 다른 곤충을 먹이 로 잡아 그것을 암컷에게 청혼 선물로 주고 암컷이 그 선물을 먹 는 동안 교미를 하는 풍습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풍선파리 (balloonfly)라고 불리는 종들은 더욱 정교한 구애 행동을 보인다. 풍 선파리 수컷들은 먹이로 잡은 곤충을 스스로 분비한 생사(生絲)를 이용해 선물 포장을 한 다음 암컷에게 바치는 상당히 세련된 구애 행 동을 보인다. 그런데 어떤 수컷들은 이보다 한술 더 떠 먹이를 잡지 도 않은 채 속이 텅 빈 선물을 포장해 암컷에게 준 다음 암컷이 그 선 물을 뜯는 동안 교미를 마친다. 요즘 환경 보전을 위해 상품의 과대 포장을 줄이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쯤 되면 과대 포장의 극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짝짓기를 마친 다음에도 수컷의 시름은 끝이 나질 않는다. 초여름 연못가에서 한가롭게 나는 실잠자리나 늦여름 온 하늘을 뒤덮는 잠자리들이 종종 마치 2인승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처럼 앞뒤로 붙 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잠자리와 잠자리의 수 컷 생식기에는 마치 주걱처럼 생긴 기관이 있어서 수컷이 일단 암컷 의 질 속으로 들어간 다음 만일 다른 수컷의 정액이 있는 걸 발견하 면 그걸 죄다 긁어 낸 다음에야 자신의 정액을 사정한다. 그래서 짝짓기를 마친 다음에도 암컷을 놓아 주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붙들고 다니는 것이다. 이 같은 정자 제거 (sperm displacement) 전략은 꼴뚜기 에서도 관찰된다. 꼴뚜기 수컷은 셋째 다리를 사용해 암컷의 구강막 (buccal membrane)에 붙어 있는 다른 수컷의 정자 덩어리를 제거한다. 유럽의 바위종다리 (dunnock) 수컷은 교미하기 전에 암컷의 꽁무니 근처의 배설강(claoca) 부위를 계속 쪼아 대어 결국 암컷으로 하여금 이전 수컷의 정액을 분출하게 만든 다음에야 짝짓기를 한다. 상어는 우리 여성들이 관수기 (douche)로 질을 세척하는 것처럼 암컷의 질 속으로 엄청난 양의 물을 뿜어낸 다음 자신의 정액을 주입한다.

-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에게 해로운 돌연변이들이 축적되어 결국에는 멈추게 되는 현상을 흔히 '멀러의 깔축톱니 (Muller's ratchet)'라고 부르는데, 그 반대로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DNA 복구 메커니즘(DNA repair mechanism)'을 이용해 수시로 유전자의 결 함을 제거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 같은 '유전자 다양성 (genetic diversity)' 가설들은 처음에는 다분히 집단 선택 가설에 기반 을 두고 개발되었지만 차츰 개체 수준의 설명으로 다듬어졌다. 유전 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 내면 그만큼 오랜 기간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간적인' 가설들과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이 생태적으로 다양한 니치(niche)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공 간적인' 가설들이 제기되어 이제는 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 이 세상에는 도대체 몇 개의 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성이란 당연히 암수 둘뿐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그렇다면 현화식물, 즉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를 들여다보 자. 절대 다수의 현화식물은 한 꽃에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고 있 다. 적어도 형태적으로는 암수한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화식물 에서 같은 꽃의 암술과 수술 간에는 서로 꽃가루를 주고받지 않는다. 동물계에서 근친상간을 피하는 적응 메커니즘들이 진화한 것과 마 찬가지로 식물에서도 자가 수분을 방지하는 다양한 메커니즘들이 개발되어 있다. 암술과 수술의 시간차 발달이 그런 메커니즘의 하나 로 대부분의 꽃에서는 수술이 먼저 발달한다. 꽃이 피면 우선 꽃가루 를 다른 꽃으로 보내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벌이나나 비가 꽃가루를 거의 다 실어 나르고 나면 수술들은 시들기 시작하여 차츰 고개를 숙이고 그들 사이로 암술이 우뚝 서게 된다. 그때부터는 주로 남의 꽃가루를 받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 의 꽃은 우선 수컷으로 태어났다가 점차 암컷으로 변해 간다. 살면서 자연스레 성전환 수술을 받는 셈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꽃의 성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처음 에는 온전히 수컷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꽃가루를 보내 기도 하지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암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능적인 암수한몸이다. 수술들이 모두 시들고 난 후에야 거의 완벽한 암컷이 된다. 식물학자들은 이 과정을 식물, 또는 더 엄 밀히 말하면 꽃의 젠더가 변화하는 과정으로 본다. 한 지역의 꽃들을 놓고 볼 때 형태적으로는 암수한몸인 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로 다른 사회적 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한 꽃 을 지켜본다면 처음에는 100퍼센트 수컷으로 시작했다가 이를테면 78퍼센트 수컷 (즉 22퍼센트 암컷), 36퍼센트 수컷 (64퍼센트 암컷)을 거 쳐 99퍼센트 암컷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화식물에는 도대체 성 이 몇 개가 있는 것인가? 온전한 수컷에서 거의 완전한 암컷에 이르 기까지 그 모든 정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성 이 존재한다.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역시 우리 인간의 관점이 언제나 자연계의 가장 보편적인 관점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 동성애 성향을 발현하는 유전자가 중립적 (neutral)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번식의 측면에서 분명히 불리해 보이는 형질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직접적으로, 또는 적어도 간접적 으로 동성애 유전 형질은 선택적 이득을 갖고 있어야 한다. 2004년 에 발표된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교의 연구는 지금까지 시도된 연구 들 중 가장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들은 100명의 이성애자 남 성과 98명의 동성애자 남성들을 대상으로 친척들의 인적 사항에 대 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4,600명의 정보를 분석한 결과 동성 애자 남성들의 여자 친척들이 이성애자 남성들의 여자 친척들보다 더 많은 수의 자식을 낳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자 남성들의 어머 니들이 평균 2.7명의 자식을 낳은 데 비해 이성애자 남성들의 어머니 들은 2.3명의 자식을 낳았다. 이모들의 경우도 2.0명과 1.5명으로 동성애자 남성들의 집안이 훨씬 더 높은 번식 성공률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외가쪽에서만 나타났지만, 남성의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 형질이 여성들의 생식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동일한 유전자가 남성의 경우에는 동성애를 유발 하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이성, 즉 남성에 대한 성적 호감을 더욱 자 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유전자는 동성애를 유발하는 유전자라기보다 남성에 대한 성적 호감을 자극하는 유전자라고 보 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강조하건대 이런 경우 '유전자'라고 할 때 그것은 결코 하나의 유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 성향처럼 복합적인 심리 또는 행위의 조절이 달랑 유전자 하나에 달려 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
동성애 유전자가 반대 성의 생식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같은 성에도 이득을 줄 가능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동성애 유전자 는 남성은 좀 더 여성적으로 만들고 여성은 보다 남성적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이 4,904쌍의 쌍둥이들에게 익명으로 그들의 성적 성향, 스스로 판단한 자신의 젠 더 인식, 평생 경험한 성 상대자의 수 등을 물은 결과, 보다 여성적인 남성과 다분히 남성적인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은 성 상대를 경험한 것 으로 나타났다. 다른 진화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이 배란 시기에 임박했을 때에는 다분히 마초 기질의 남성에게 끌리는 경 향이 있지만 다른 시기에는 보다 부드럽고 배려 깊은 남성을 선호하 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여성들이란 때로 우락부락한 남성 과 바람은 피울지 모르나 남편으로는 다정다감하고 협조적인 여성 적 남성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이 온통 불륜 으로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 많은 자식들은 결국 남편들의 자식일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 성향을 유발하는 유전 형질이 때로 소수의 사람들 에서 극적인 발현을 보여 그들을 동성애자로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 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적절히 여성적으로, 또는 남성적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이성에게 보다 매력적이 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 해밀턴의 이론에 따르면 번식이란 결국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복사체들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교 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표현을 빌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흔히 뜰에 돌 아다니는 닭들이 각자 모이도 쪼아 먹고, 때론 싸움도 하고, 짝짓기 도 하고, 알을 낳고 살다가 죽는 걸 보며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은 당 연히 닭이라는 개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틀러와 윌슨의 관점에 서 보면 닭은 기껏해야 몇 년 동안 알을 낳고 살다가 한 줌 흙으로 돌 아가는 덧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닭을 만들어 낸 유전자는 그의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고 어쩌면 영원히 그의 후손으로 이어져 갈 존재이다. 

- 사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먹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밝 혀졌다. 관찰해 보니 기린들은 먹이가 귀한 건기에도 나무 꼭대기가 아니라 어깨 높이에 있는 잎들을 주로 따 먹는단다. 기린의 목이 길 어진 진짜 이유는 짝짓기에 있었다. 길고 굵은 목을 가진 수컷들이 싸움도 더 잘하고 암컷들에게도 더 매력적이란다. 그러니까 기린의 목이 길어진 과정에는 자연 선택보다 성 선택의 영향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범 한 형질들의 배후에는 성 선택이 자연 선택보다 훨씬 자주 버티고 서 있는 듯싶다.
하지만 이쯤에서 조금 엉뚱한 질문을 해 보자. 기린의 목이 정말긴 것인가? 기린은 사실 목보다는 다리가 긴 동물이다. 기린이 물을 마실 때나 땅에서 자라는 풀을 뜯을 때는 다리를 굽히거나 양쪽으로 벌려야 한다. 그렇다면 다리 길이에 비해 기린의 목은 사실 짧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기린의 목은 몸통에 비해 긴 것일 뿐 다리를 포함한 몸 전체와 비교하면 그리 긴 게 아닐 수도 있어 보 인다. 몸통도 위아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을 뿐 거대한 심장을 담기 위해 양옆으로 상당한 부피를 갖도록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동물에 대해 면밀한 상대 성장(allometry) 에 대한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사뭇 신기한 일이다. 아울러 수컷 기린의 목이 길고 두꺼워진 과정을 성 선택 메커니즘으 로 설명한다면 암컷 기린의 목과 다리도 만만치 않게 길어진 점도 설 명해야 할 것이다.

-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2013년 내가 출간한 책의 제목이자 평생 자연을 관찰하고 내린 내 나름의 결론이다. 내가 관 찰한 바에 따르면 이 세상은 손잡은 자들이 미처 손잡지 못한 자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을 전수 조사한 것은 아니 지만 내가 아는 한 살아 있는 생물 중 짝이 없는 생물은 없다. 1967년 에 발표된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세포 공생설은 가히 혁명적 이었다.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가 원래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세균이었는데 더 큰 세균 안에 들어가 공생하게 되 었다는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1976년 가을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 대학생 생물학 심포지엄"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학자로서 내 삶이 시 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먼 훗날 나는 서울대 교수가 되어 헌법 재판소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여성 유전 현상을 설명하며 남성 중심 '호주제의 모순을 지적하게 되었다.
마굴리스의 연구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이제 생물학은 세포 수 준을 넘어 개체 수준의 공생을 연구하고 있다. 키, 몸무게, 나이, 성별 에 따라 다르긴 해도 인간 어른은 대개 30조개의 인간 세포와 39조 개의 미생물 세포로 이뤄져 있다. 세포 수로만 보면 나는 진정 내가 아니다. 거대한 미생물 생태계와 손잡은 공생체다.

- 전중환 교수는 2019년에 펴낸 『진화한 마음』에서 진화 심리학의 핵심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복잡한 구조는 기능을 반영한다.
둘째, 마음은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 채집 생활에서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된 심리적 적응들의 묶음이다.
셋째, 서로 다른 적응적 문제들에 각각 맞춰진 다수의 특수화된 심리기제들이 진화했다.
넷째, 적응은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므로 오늘날에도 반드시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는 것은 아니다.

- 진화 심리학은 사회 생물학에 대한 탄압이 약간 수그러들기 시 작하던 1990년대 초에 태동했고 다수의 사회 생물학자들이 기꺼이 진화 심리학으로 전향했다. 나도 그중 하나다. 2003년 국제 학술지 《진화 심리학 (Evolutionary Psychology)>이 창간될 때 편집진으로 초대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전향은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 이다. 현대 인간사회의 대부분은 일부일처제 사회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포유동물의 번식 구조는 거의 어김없이 일부다처제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영장류로는 올빼미원숭이 한 종과 긴팔원 숭이들뿐이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는 일부일처제로 보이지만 유전 적으로도 그런지는 들여다봐야 한다. 도덕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었던 지미 카터 (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도 언젠가 성인 잡지 《플레 이보이 (PlayBoy)》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음으로는 수없이 많은 간통 을 저질렀다.”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심리와 실제로 드러나는 행동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회 생물학이 드러나는 행동의 사회적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진화 심리학은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심리 기제의 진화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 선택 이론을 진화의 기 본 메커니즘으로 제시했지만, 실제로 생존의 현장보다 더 극적인 진 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이 번식이다 보니 1871년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제시한 성 선택 이론이 인간 심리 분석에 훨씬 큰 영향 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짝짓기와 부모의 투자는 진화 심리학에 서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주제다. 다음으로 활발한 연구 주제가 역시 짝짓기와 집단 생활이 빚어내는 문화의 진화이다 보니 기존의 전통적 심리학 분야들 및 인접 학문들과 진화 심리학의 관계 정립 또한 중요하다.

- 자연 과학은 분야마다 그 분야 전체를 포괄하는 이론적 체계가 있다. 물리학에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있다면, 화학에는 원자 론이 있다. 생물학은 다윈의 진화론이 포괄하고 지질학은 판구조론 으로 통합된다. 심리학에는 다양한 심리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통합 이론이 없다. 심리학자들은 그동안 특정한 방식으로 마음을 움 직이는 근접 원인(proximate cause)을 찾는 데 천착하느라 마음이 왜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지 궁극 원인 (ultimate cause)을 찾는 데 소 홀했다. 2009년 4월 나는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을 집필하기 위 해 하버드 대학교 언어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를 인터뷰했다. 나는 그 에게 진화 심리학의 미래에 관해 물었고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진화 심리학이 심리학의 독립된 분과 학문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심리학 전반에 걸쳐 제기되는 질문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심 리학의 한 분과가 된다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진화적 기원과기 능에 관한 질문들은 독립된 분야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 심리학 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야 한다." 진화 심리학이 심리학 전체를 관 통하는 이론적 바탕을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 영국 리버풀 대학교 진화 생물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음악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는 일종의 '상호 털 고르기 (mutual grooming)'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침팬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장류 동물이 서로 털을 손질해 주며 관 계를 돈독히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던바는 언어란 결국 서로 털 고르기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기 위해 진화했 다고 주장한다. 음악 역시 상당히 대규모로 동료의식을 고취하고 결 속을 다지는 데 사용된다. 우리 대부분은 「아침 이슬」과 「오필승코 리아」를 부르며 서로 어깨동무가 되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던바의 가설은 최근 대표적인 집단 선택론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에 의해 새롭게 포장되어 부활했다. 음악 활동은 개인에게는 손 해를 끼치지만 집단 전체에는 이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 선택되 었다는 윌슨 특유의 논리로 던바의 개체 선택 이론에 야릇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는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 선택론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인간은 진화의 역사 대부분을 가까운 친족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설령 음악 활동으로 인해 자신에 게는 손해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것은 결국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기적인' 행동인 셈이다. 음악 의 진화에 구태여 집단 선택론을 끌어들일 까닭이 있을지는 좀 더 생 각해 볼 일이다.
그리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짚고 넘어 가야 할 가설로 캐나다 맥길 대학교 심리학과 샌드라 트레헙 (Sandra Trehub) 교수의 이른바 '자장가 가설 (lullaby hypothesis)'이 있다. 칭얼 대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흥얼거리기 시작한 자장가로부터 음악이 탄생했다고 설명하는 가설이다.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는 모든 인 간 문화권에 다 존재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타나고, 어린 시절 습득하는 언어와 관련하여 음악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언어 영역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가설 의 타당성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을 제외한 그 어느 영장류 동물에서도 자장가와 흡사한 그 어떤 흥얼거림도 관 찰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진화 생물학적 가설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 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가설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스티븐 핑커가 주장하는 것인데, 앞의 가설들과 달리 독특하게 비적응주의 적 가설이다. 일명 '치즈케이크 가설 (cheesecake hypothesis)'이라 불리 는 그의 가설에 따르면, 음악이란 그저 다른 목적으로 진화한 우리 두뇌의 어떤 메커니즘의 우연한, 그러나 "행복한" 부산물에 불과하 다고 설명한다. 배꼽이 탯줄이라는 적응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 처럼 음악은 그저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auditory cheesecake)"란다. 치즈케이크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게끔 진화한 우리 신경 회 로를 보다 효율적으로 자극하도록 제작된 인공물일 뿐 생존과 번식 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핑커의 주장은 사실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윌리엄 제 임스(William James)의 의견을 이어받은 것이다. 제임스는 일찍이 음 악을 "어쩌나 생겨난 순전히 청각 기관을 갖고 있는 바람에 생 겨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핑커의 설명은 진화심 리학에 기반하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이란 어느 한 가지 기능만을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다뤄야 하는 '다목적 사고 장치 (all-purpose reasoning device)'라고 믿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두뇌는 각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여 러 '모듈'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기왕에 다른 기 능을 위한 모듈을 설정한 다음 그것의 부산물로서 음악을 설명한 까 닭은 무엇일까? 음악 또는 예술을 담당하는 모듈을 가정하지 않는 핑커의 가설이 제시하는 '특별한' 이유들이 내게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따라다니는 가장 더러운 욕 중의 하나가 바로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진화 생물 학자도, 이 점에 있어서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매 순간 유전자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믿 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란 유전자와 환경이 함께 조율하며 연출해 내 는 것이다. 유전자란 도킨스의 설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들의 생각처럼 이기심이라는 심성을 지닌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전자 는 그저 어떤 단백질을 만들라는 지령을 담고 있는 화학 물질에 지 나지 않는다.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거의 한치 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백질들이 모여 생명체 의 몸과 정신을 이룬다. 이 과정에는 상당한 변이가 나타난다. 아무 리 동일한 단백질들을 가지고 만들어도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형태 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행동이란 형태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는 더욱 많은 편차가 존재한다. 한때는 행동도 과연 유전하느 냐는 질문을 놓고 생물학계에서 논쟁을 벌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행동의 유전적 근거를 의심하는 과학자는 없다. 만일 문화를 '한 개 체군의 모든 행동 유형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면 문화도 그 근원을 파고들면 결국 유전자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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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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