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은 계속된 무역수지 적자와 파운드화 평가 절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비틀스에게 훈장을 준 지 11년 후인 1976년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우리가 1997년 받은 구제금융의 20 년 선배가 바로 영국이다. 당시 영국 노동당 정부는 IMF에 39억 달 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했는데, 이는 구제금융 사상 최대 규모 였다. 영국은 실제로 구제금융으로 받은 자금 중 절반을 사용했고, 5년 만인 1970년 이를 모두 갚았다. 3년 만에 구제금융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이는 1977년 석유 수출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가끔 잊 서러리기도 하는데, 영국은 엄연한 산유국이다. 1970년 초 북해유 전을 개발했고 1975년 스코틀랜드 동해안에서 본격적으로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1976 IMF 구제금융'은 영국 경제의 고질병을 드러낸 사건은 영국이 내세우던 복지국가 이념을 끝내게 했다. 영국은 1920년 그 사회민즈즈의를 표방하는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혁명적 사회주 의를 격하고 간접민주제를 바탕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혼합 경제모델과 복지국가 노선을 지향했다. 노동당의 주요 지지층은 노동조합이었다. 그러나 노동당은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1979년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의 보수당에게 정권을 잃게 된다. 무려 18 년이 흐른 1997년에야 토니 블레어 Tonyelair의 노동당이 선거에 승리 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노동당이 아니었다. 블레어 총리는 당수 시절인 1994년 '신 노동당 New Labor' 이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했다.
영국은 1942년 경제학자이자 노동부 차관이었던 윌리엄 베버리지 William Beveridge 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했다. 하지만 과도한 복지 운영과 1970년대 노동조합의 투쟁에 따른 임금 상승, 국영 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영국을 소위 고복지 · 고비용·저 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악순환에 빠지게 했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영국은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게 된다. 영국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 GDP 은 1960년대 세계 9위에서 1971년 15위, 1976년 18위까지 떨어졌다.
- 위기 속에서 등장한 정권이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다. 대처 총리는 복지 지출의 축소, 노조 활동 규제와 노동 시장의 유연화, 국영 기업의 민영화, 한계 세율 인하, 금융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저항은 거셌다. 광산 부문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하자 1984년 광산 노동자의 3분의 2가 파업에 들어갔다. 대처는 광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작은 섬 포클랜드의 영유권을 두고 싸운 포클랜드 전쟁에 비유하면서 노조를 내부의 적'이라 규정했다.
정부의 강경 대응과 여론의 압박 속에서 1985년 광산 노조는 조건 없이 항복했다. 여세를 몰아 대처 정부는 가스, 전기, 철도, 수자원 공사의 민영화를 추진했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1980년대 초 영국의 실업률은 큰 폭으로 증가해 실업자 수만 300만 명에 이르렀 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많은 실업자였다. 복지 천국으로 불리던 영국이 제조업의 쇠락으로 전혀 다른 국가가 된 것이다.
- 영국이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의 어둡고 긴 터널을 탈출하고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2년, 사자로 상징되는 대영제국이 하이에나로 불리는 헤지 펀드의 사냥감이 된 사건이 일어난다. 대처 총리는 규제를 완화하 고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완화하고자 유럽 통화(특히 독일)에 영국을 묶어놓는 외환 정책을 도입했다. 고물가, 고실업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90년 10월 ERMEuropern Exchange Rate Mechanism 가입을 선택한 것이다. ERM은 일종의 환율 조정 장치로 유럽 가입국들이 회원국 통화의 기준 환율을 설정하고 이에 기초해 각국 통화 환율의 변동폭을 설정하는 제도였다. 상대국과 상하 6퍼센트 범위 내에서 환율을 유지해야 했다. 예를 들어, 1파운드의 기준환율이 2.95 마르크인데 이것이 6퍼센트 범위 밖인 2.773 마르크가 되면 영국 정부가 개입해서 파운드의 가치가 더 이상 하락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1979년 ERM 출범 때부터 가입을 거부한 영국이 ERM에 가입한 것은 불안한 파운드 환율을 마르크에 묶어놓고 자신들은 실업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국내 정책을 펴기 위 해서였다. 그러나 환율 하나를 묶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남미의 사례만 봐도 익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결과 적으로 조지 소로스 George Soros와 스탠리 드러켄밀러 Stanley Druckenmiller 가 운영하는 헤지펀드 퀀텀펀드 Quantum Fund가 이 틈을 노리고 영국 의 마지막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사건을 일으킨다.
1989년, 영국은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금리는 15 퍼센트에 이르렀다. 높은 실업률 역시 큰 사회문제였다. 한편 통일 후유증을 겪던 독일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 ERM 규칙에 따라 환율 밴드를 지키려면 영국은 독일과 같이 금리를 인상해야 했는데, 이미 금리가 높은 데다 실업 자도 늘어난 상황이라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 었다. 또한 영국의 주택대출 금리는 단기 금리에 연동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주택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 즉각 전가되는 구조여서 금리를 올리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로스와 드러켄밀러는 독일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판단했다. 바이마르공화국 당시 수레에 돈을 싣고 가서 식빵을 사야 했던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독일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국가적 트라우마가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고금리 정책을 써야한다. 하지만 경제가 엉망이었던 영국은 독일을 따라서 금리를 인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일이 고금리 정책을 고수하면 파운드는 실제 가치에 비해 고평가 될 수밖에 없었다. 퀀텀펀드는 고평가된 파운드가 대폭 절하되거나 영국이 ERM을 탈퇴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파운드를 대거 팔기 시작했다. 그 규모는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Bank of England 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정도였다.
결국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영국은 ERM을 탈퇴하고 파운드 가치는 급락했다. 검은 수요일 Black Wednesday 이였다. 1993년 2월에 이 르자 파운드 가치는 ERM 고정 환율 대비 26퍼센트 하락했다. 소로 스는 이 거래만으로 거의 10억 달러가량을 벌어들였다. 외환 거래 에서 한 국가가 헤지펀드에 패배한 대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히 영국과 헤지펀드의 싸움이 아니라 영국의 쇠락이 외환 시장을 통해 표출된 사건으로 봐야 한다. 제조업 강국이자 한때 패권 국가였던 영국의 쇠락은 파운드 쇠락과 궤를 같이한다. 파운드 쇠락의 역사는 하루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 제조업의 아버지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공업국의 지위를 위협 받았다. 공업 총생산 면에서 미국은 1880년대에 영국을 앞질렀고, 독일은 1890년대에 영국을 앞질렀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영국은 세계 무역량의 6분의 1을 차지했는데, 미국과 독일이 이미 이에 육박하는 규모를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4년 유럽에서 최고의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영국 국민의 생활 수준은 절정기였지만 저변의 흐름은 이미 하락의 변곡점을 넘은 상태였다. 후발 공업국의 도전과 20세기초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경제의 성장 엔진은 차갑게 식어갔다.
영국은 파운드 가치 하락을 방어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1979년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과정에서 성장률은 더욱 떨어지고 실업률은 대공황 시기에 버금가는 수준이 됐다. 그 와중에 1992년 영란은행이 헤지펀드 공격에 굴복하면서 영국은 유럽과 환율 고리를 끊었다. 그리고 20년 후인 2016년 브렉시트 Brexit 를 결정하고 2020년 1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하면서 유럽과의 경제적 고리마저 끊었다. 이것이 제조업의 쇠락과 함께 100년간 영국이 겪은 방황의 역사다.
- 단일통화가 유럽 각국에 미친 영향을 좀 더 자세히 추적해보자. EU 11개국은 1999년 1월 1일 0시부터 단일통화인 '유로'를 도입 했다. 도입 당시 환율은 1유로=1ECU였다. ECU는 유럽 통화 단위로, 회원국 화폐의 가치를 가중평균한 일종의 바스켓 통화다. 이에 따라 1유로는 독일 마르크 1.95583, 프랑스 프랑 6,55957, 이탈 리아 리라 1936.27, 스페인 페세타 166.386로 사용되었으며, 2002 년 1월 1일부터 모든 실생활에서 쓰이게 됐다. 단일통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환율에 각 국가의 거시경제 상황이 평균적으로 반영됨을 의미한다. 쉽게 풀어보자. 예를 들어 5개 국의 경쟁력에 따른 환율이 2, 3, 3, 5, 7이라고 하면 평균 4가 된다(2+3+3+5+7):5=4). 그러면 1유로는 4가 될 것이다. 이렇 게 되면 2인 국가는 환율이 고평가되고 7인 국가는 환율이 저평가 된다. EU 회원국들은 경상수지, 재정수지, 물가, 실업률 등 모든 지표가 국가마다 다양하다. 경쟁력이 7에 해당하는 독일은 환율이 4 로 저평가되니 EU 역내 시장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
- 기축통화라고 해서 무조건 주조차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주조차익을 얻으려면 금의 족쇄에서 풀려나고 신뢰를 확대해야 한다. 미국이 달러를 기축통화의 위치에 올려두고 막대한 주조차익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전쟁 배상금 문제가 풀리지 않았을 때 달러의 국제화를 시도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받을 돈이 있었고, 독일은 유럽 국 가들에 배상금을 주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은 독일에 달러를 빌려 줘 이 달러로 독일이 유럽 국가들에 돈을 갚게 하고 그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했다. 달러 국제화의 시작이었다. 전후 재건 시기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에 달러 선물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 여파로 미국은 1971년 금 태환을 중지하고 5년 후 변 동환율 제도를 채택하면서 금이 아닌 다른 것의 가치를 통해 달러 의 가치를 유지해야 했다. 자칫하면 독일이나 일본에 기축통화의 지위를 내줘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극복 하고 경제, 군사, 문화, 정치, 외교 등 다방면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달러는 명실상부하게 기축통화 레이스에서 선두로 치고 나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우연의 결과인지 전략의 결과인 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고히 한 덕 분에 미국의 혁신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기축통화는 최후의 안전판 기능을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 정책을 취하거나 회사채, 주식을 중앙은행이 직접 사들이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혹은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사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런 정책을 지속적으로 남발하면 문제가 되지만, 일시적인 어려움에 대응해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것은 통화의 신뢰성 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는다. 최후의 안전판이 있으면 경제 주체들은 큰 부담 없이 리스크를 떠안는 경제 행위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주식이 오를 것이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주식 투자도 많이 한다.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국민들의 주식 보유 비중이 높다. 주식 시장에 자본이 꾸 준히 들어오니 당연히 벤처 투자도 활성화된다. 상업의 신 헤르메스는 뱀 두 마리가 DNA 구조처럼 서로 엇갈려 있는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미국의 혁신과 기축통화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처럼 서로 엮여서 시너지를 낳고 있다.
미국은 영국, 일본, 독일처럼 제조업 국가로 출발해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슈퍼파워를 갖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기술(혁신)과 기축통화의 역할이 컸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거대 제조업 국가인 중국이 제조업 국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술과 기축통화를 지향하고 있는 이유다.
- 자산 가격은 현금흐름을 할인해 계산하기 때문에 할인율이 떨어지면 자산 가격이 오른다. 풀어서 설명해보자. 금리가 하락 하면 부동산 임대 수익률이 이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므로 부 동산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임대료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 우,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임대 수익률은 하락한다. 결국, 금리가 하 락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 임대 수익률이 다시 금리에 근접 하는 수준까지 오른다. 영구적인 현금흐름을 상정하면 자산 가격은 '현금흐름/할인율'이 된다. 할인율(금리)이 하락하면 자산 가격이 오르며 그 정도는 금리에 따라 다르다.
매년 1000만 원의 임대료 수입(현금흐름)이 발생한다고 가정할 때 할인율이 10퍼센트면 자산 가격은 1억 원이 된다. 할인율이 9퍼센트면 자산 가격이 1억 1111만 원으로 1111만 원 오른다. 할인율이 1퍼센트면 자산 가격은 10억 원이 되고, 0.5퍼센트면 20억 원으 로 2배가 오른다. 그래서 제로 금리에서는 자산 가격이 앵커anchor 없이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다. 최근 제로 금리가 되면서 주택 가격이 쉽게 급등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주택 가격은 제로 금리 근처에서는 이론적으로 변동성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하락하면 주택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도 2000년 이후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금리는 계속 하락하고 주택 가격은 계속 상 승했다. 하지만 앞으로 금리의 추가적인 하락이 없다면 주택 가격의 상승 모멘텀은 사라진다. 주택 시장은 단기적으로 제로 금리의 이점을 향유하겠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주택 가격을 올리는 힘은 떨어질 것이다. 비유 하자면, 지금까지 금리는 부동산 시장이라는 아궁이에 장작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넣을 장작이 없는 상태다.
- 우리나라 주택가격지수는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5분기 동안 2.7퍼센트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3분기 동안 하락했으나 하락폭은 1.8퍼센트에 그쳤고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과 영국이 각각 18퍼센트, 16퍼센트 하락한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주택 가격은 주식 가격에 비해 변동성(위험)이 월등하게 낮고 수익은 더 높다. 이처럼 가격 하락폭이 제한되어 있으면서 꾸준히 상승하는 자산은 빚을 내서 투자하는 데 제격이다. 당국은 주택을 필수재로 간주하여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투자재로 생각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의도치 않은 결과다. 이는 정책당국이 주택 투자자에게 가격 안정이라는 풋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구조를 살펴보자.
주식의 경우, 풋옵션을 사면 주식 가격이 하락할 때 돈을 벌고 상승하면 수익은 없다. 따라서 주식을 보유하면서 풋옵션을 살 경 우,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을 지키고 상승하면 돈을 버는 수익 구조 가 된다. 우리나라 주택 시장에서 정부가 가격 하락은 막고 적정한 가격 상승은 용인하는 행태가 이와 유사하다. 정부가 주택 투자자 에게 풋옵션을 주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풋옵션을 세금 감면 등 정책 비용을 통해 거의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풋옵션을 주는 이유는 주택이 필수재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서 주택 가격이 급등락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계와 정책 당국 등 사회 전체가 부동산에 포박되어 있다. 부동산에 포박된 사회와 부동산의 투자 시장화는 서로 강화 작용을 해왔다. 부동산에 포박된 사회는 부동산 투자를 이끌고, 여기서 투자 수익이 계속 나서 가계는 부동산 비중을 높이게 되고, 정부는 더 강하게 부동산 정책에 포박된다.
- 다가올 고령사회를 알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구 구조의 세계적 변화를 함께 보아야 한다. 고령화 현상이 선진국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다 보니 마치 온 세계가 한꺼번에 늙어가고 인구가 정체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2050년 세계 인구는 지금보다 25퍼센트 이상 증가해 100억 명에 육박할 것이다. 같은 기간 생산가능인구도 21퍼센트 증가한다. 선진국에 이어 우리나라, 중국 등이 고령화 대열에 참여하는 반면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는 경제 성장에 유리한 인구 구조를 가지게 된다.
-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발빠르게 인구가 젊은 동남아시아 국가로 자본을 옮기고 있고, 아프리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의 끝점은 아프리카다. 일본, 중국 모두 자신들의 인구 구조가 지닌 핸디캡을 만회하기 위해 세계를 무대로 인구구조 거래를 하고 있다. 다양하게 그리고 시간 차로 전개되는 세계의 인구 구조 변화를 이해하고 우리에게 맞는 고령화 탈출 해법을 찾아야 한다.
- 미국, 중국, 인도 3국의 향후 30년 동안 인구 구조 변화를 보면 중국이 가장 큰 도전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좋기만 했던 인구 구조의 장점이 사라진다. 반면 미국과 인도는 유리한 인구 구조가 지속될 것이다. 인도는 지난 30년간 중국이 누렸던 유리한 인구 모멘텀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발람이 백인의 세상은 지나가고 인도와 중국의 세상이 다가온다고 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백인의 세상 중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은 유리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다. 중국은 고령화라는 도전을 극복해야 하고, 인도는 교육, 즉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라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발람의 이야기가 반이나마 실현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인구의 관점에서 볼때 앞으로 30년은 미국이 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인도는 좋은 인구 모멘텀이라는 도약의 기회를 살리려면 인적 자본 육성에 신경써야 한다. 중국은 인구 구조의 이점이 사라지고 생산성 향산을 통해 14억 인구의 1인당 GDP를 올 려야 한다. 중국이야 말로 중진국 함정을 돌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만도 벅찬데 고령화라는 과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2040년이 되면 인구 구조의 변화로 여러 불협화음 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20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다. 나스닥, 코스닥 버블을 겪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다. 인구 구조만 보면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를 뜨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자산이라도 국외로 돌리라고 권하고 싶다. 일부에서는 고령화의 한 복판에 와 있는데도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 고령화의 영향도 잘 넘어가리라 낙관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시작하되 천천히 달리는 게 아니라 F1 경주 차들이 출발하는 것처럼 바로 시속 150킬로미터로 내달린다.
- 인구를 거래한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는 사회는 장기 침체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할까? 인구 구조를 바꾸려는 단기적 노력은 소용없다. 최소 20년 간 인구 구조 미래는 이미 정해졌다. 주어진 인구 구조 환경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자본을 젊은 국가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은 지형과 인구에 단점이 있다. 산이 많아 전 인구가 국토의 6분의 1에 몰려 살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산업 시설이 파괴될 위험이 상존한다. 에너지가 부족해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지만 지진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극동에 위치해 있어서 제품을 바닷길을 통해 수출하려면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인구 구조는 어떤가! 인구는 너무 늙어버려 젊은이들의 노동력은 날로 비싸지고 있다. 반면 자본은 풍부하다. 그래서 일본은 산업 모델을 디소싱 desourcing 으로 바꾸고 있다. 아웃소싱은 국외에서 상품을 생산해서 자국으로 가져오는 것이고, 리소싱은 생산을 다시 국내로 이전하는 것인데, 디소싱은 국외에서 생산해서 그 나라 시장에 파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디소싱으로 인구가 안정적이거나 성장하는 국가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일본 기업을 유치한 국가는 그 기업의 물류 활동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 생산 시설이 있으면 원자재를 실은 배가 미국으로 가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대신 일본은 진출한 국가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자국으로 송금한다. 배당 송금 기간마다 엔화가 강세 압력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감소해 줄어드는 세금을 메우고 자국의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소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디소싱으 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일본은 제조업 국가임에도 무역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
-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대규모 투자도 이런 맥락 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천연자원뿐 아니라 인구와 성장 잠재력에 주목해 계속 투자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자국 기업 들의 아프리카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6년 나 OZH10111 73 0 127 ] Tokyo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frica's Development, TICAD에 참석해 3년 동안 3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고, '일-아프리카 관민경제 포럼'이라는 상설 기구를 만들겠다고 약속 했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과 앞으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 행될 중국의 글로벌 전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국내 인구 구조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글로벌 인구 구조를 보면서 사업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 자국과 타국의 인구 구조를 효율적으로 결 합시킬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타국의 젊은 인구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외국에 생산 기지를 설립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 구조가 다른 나라들이 서로 인구 구조를 거래하는 Demographic Bargaining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세상을 그야말로 완전하게 바꾸고 싶다면 기술적 혁신은 반드시 거대한 인구통계학적 혹은 경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 (마우로 기옌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교수)
- 가상현실은 특히 고령자들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관절이 약해서 뛰지 못해도, 움직이기 힘들어도, 늙어서 주름이 많아도 상관 없다. 가상현실에서는 누구든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가상현실 속에서는 어느 곳이든 여행할 수 있다. 가상 캠퍼스 는 어떤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10가지' 같은 것도 시간, 공간의 제약 없이 해볼 수 있다. MIT의 스타트업 렌데버 Rendever는 결혼 등 가족 영상을 바탕으로 가상현실을 만들어 고령층을 공략하고 있다. 일본 기업 모구라 Mogura는 가상현실을 활용한 해외여행 체험 서비 스 퍼스트 에어라인 FIRST AIRLINES'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가상현실 플랫폼의 경쟁은 점점 더 격화될 것이다. 그런데 가상현실을 이용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잠'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령자는 시간이 가장 여유로운 집단이라 가상현실에 적합한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가상현실의 출발점은 게임이다. 지금도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미 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AR 기능을 갖 춘 고글과 장갑, 스틱을 활용한 게임이 시판되어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해서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금까 지 게임은 오락, 사행성, 중독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었지만, 게임에 가상현실이 결합되면서 앞으로는 관점을 바꾸어야 할 것 이다.
첫째, 게임을 삶(라이프)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 10 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로블록스 Roblox는 게임이 단순 한 즐길거리를 넘어 하나의 완결된 사회로서 기능할 가능성을 열었다. 로블록스는 블록으로 구성된 3D 입체 가상 세계에서 개인들이 아바타를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게임이다. 둘째, 게임은 젊은이 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령층도 충분히 수요자가 될 수 있다. 시간과 소득에 여유가 있는 고령층은 게임을 통해 치매 예방, 간단한 오락, 가상 체험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삶을 체험해볼 수 도 있다. 실제로 이런 것이 가능해지면 게임의 수요층이 크게 확대 될 것이다.
- 1. 부동산과 예금에서 혁신 기업 투자로 이동한다.
2. 국내 자산에서 글로벌 자산으로 넓힌다.
3. ETF와 리츠 REITS를 활용하여 분산한다.
4. 혁신투자와 현금흐름의 바벨 형태로 자산 배분을 한다.
5. 자산 운용 기간을 단기에서 장기로 이동한다.
- 골프 코치는 오래 골프를 치던 사람의 폼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한다. 반면에 새로 배우러 온 사람은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20년 동안 골프를 쳐서 나름 골프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사람이 요즘 공이 잘 안 맞으니 폼을 좀 바꾸어달라고 찾아오면 난감하다. 몸에 익숙한 폼을 버리고 새로운 폼을 몸에 새겨 넣는다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석학 폴 사무엘슨 Paul Samuelson은 세상의 혁신과 발전은 사람의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기존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는 어렵고, 새로운 세상은 다른 생각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만들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존 구조에 익숙하지 만 그 구조를 버리고 바뀌어야 한다. 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득이나 인구 모멘텀은 성장을 멈추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은 수명이 자꾸 길어져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렵게 됐다. 구조가 변할 때는 구조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자산 관리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다.
- 나만의 바벨을 들어라
개별 기업을 ETF를 통해 분산투자하더라도 특정 테마 ETF의 가격 하락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혁신 ETF와 함께 따박 따박 현금흐름을 주는 자산을 가지면 좋다. ETF만 보유한 것에 비 해 자산 가격 하락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꾸준한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자산 배분 전략을 현금 흐름과 자산 성장이라는 성질이 다른 양극을 지향하는 바벨babell 자산 배분'이라고 부른다.
예일대학 기금 운용 최고책임자 데이비드 스웬슨 David Swensen은 전설적인 기금 운용 수익률로 자산 배분의 구루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스웬슨의 《포트폴리오 성공 운용 Pioneering Portfolio Management 》을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스웬슨이 한국을 방문했 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는 190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체격에 견고 한 성城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때 그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스웬슨은 자산 배분에서 고수익 채권 high yield bond 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수익 채권은 신용등급이 BB 이하로 채권 수익률이 국채나 우량 등급 채권에 비해 높다. 스웬슨은 고수익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이익은 제한되어 있고 손실은 주식처럼 움직이는 좋지 않은 투자라고 봤다. 채권 수익률이 높다고 하지만 투자 수익률이 기대만큼 높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반면에 기업의 부도율이 증가 하면 채권 가격이 크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수익 채권에 100을 투자하는 것보다 50은 장기 국채에, 50은 주식에 투자하라 고 했다. 장기 국채는 경제가 침체할 때 가격이 오르면서 자산의 최 소 가치를 방어해주며, 주식은 상황이 좋을 때는 상한이 없을 정도 로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단히 말하면 어정 쩡한 자산을 안전하다고 많이 보유하기보다는 확실하게 성격이 다 른 양극단의 두 자산을 보유하라는 뜻이다.
- 쉽게 말해, 시장의 중위험 자산은 조금씩 이익을 주다가 한 번씩 크게 당할 수 있는 구조인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 자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사pseudo 안전 자산일 따름이다. 유사품에 주의해야 한다. 중위험 자산은 그 위험이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다가 가끔씩 크게 나타나는 구조여서 위험이 적어 보일 따름이다. 한 번씩 위험이 크게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은 투자이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면 차라리 옵션에 투자하는 게 백배 낫다.
중위험 자산 상품에 전폭적으로 투자해서 중간 정도의 수익률을 얻으려는 방식을 불릿bullet 투자라고 한다. 총알 모양이 중간에 집중되어 있는 모습과 닮은 자산 배분 분포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 이다. 반면,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을 섞어 중간 정도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은 바벨 barbell 자산 배분이라 한다. 중위험 자산에 집중 하는 불릿의 수익률 경로는 수익률이 일정하다가 한 번씩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바벨의 수익률 경로는 평소에 진동하듯 수익률이 오르내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중간수익률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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