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경영 2021. 3. 28. 14:53

- "인간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한 가지뿐이다. 몸을 던지는 것,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 안전했던 모든 것을 뿌리치고 훌쩍 몸을 던지는 것이다." (헤르만헤세)
- 각종 온라인 콘텐츠에서 자막, 이모티콘 등은 이제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개인이 만든 영상과 전문 스튜디오, 제작사가 만든 영상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얼마나 자막, 이모티콘을 적절하게 잘 사용했는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막 없는 영상이 몰락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막, 이모티콘 등에 좋은 점만 있을까요? 앞서 예시한 사례인 연인에게 바닷가의 느낌을 증강시켜 전해주는 방법에 좋은 점만 있을까요? 이런 증강 요소들은 우리가 많은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우리의 이해와 감정을 콘텐츠 제공자가 의도한 방향으로 손쉽게 이끌어갑니다. 정보와 콘텐츠를 접했을 때 나의 인지, 판단보다는 콘텐츠 제공자의 의도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게 합니다. 지역, 공간에 새로운 스토리, 상호작용 규칙을 입히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원래 그 지역, 공간이 품고 있는 배경,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메타버스 창작자가 보여준 스토리, 상호작용에만 몰두하여, 그 지역 과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본래의 감정을 잊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을 추리하거나, 외계 생명체의 비밀 을 파헤치는 식의 증강현실 메타버스를 구현한 경우, 자칫 참가자들은 그 도서관이 원래 갖고 있던 특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를 조금만 기울여도 정보를 받아들이고, 콘텐츠 제공자의 의도대로 지역과 공간을 이해하는 것, 이 상황은 자칫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상상력을 퇴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 "일기는 신기하다. 당신이 빠뜨린 것이 당신이 쓴 것보다 더 중요하다.” (시몬드 보부아르)
- 메타버스의 대부분 콘텐츠, 플랫폼은 디지털의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디지털 기반의 메타버스는 우리 뇌를 조금은 다르게 작동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일한 텍스트를 출력해서 읽는 경우, 파일 형태로 태블릿으로 읽는 경우,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합니다. 뇌파 검사를 해보면 출력물을 읽을 때 우리 뇌의 뇌파는 여유 있는 안정 상태를 보이지만, 디지털로 읽을 때 우리 뇌는 흥분상태가 됩니다. 디지털 메타버스에 있을 때 우리 뇌가 더 각성한다는 의미입니다. 각성, 뇌가 더 활발하게 깨어있으니 꼭 좋은 걸 까요? 일단 확실한 것은 디지털 메타버스에서 우리 뇌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이 아날로그 세상보다 40% 정도 짧아집니다. 이런 빠른 처리에는 긍정과 부정, 양면의 얼굴이 있습니다.
- 내가 라이프로그를 올리면 메타버스 속 친구들은 빠른 속도로 내 라이프로그를 읽고 반응해줍니다. 반대로 메타버스 속 친구들이 라이프로그를 올리면 우리도 내용을 빨리 읽고 반응을 남겨줍니다. 서로서로 빠르게 많이 움직이면서, 반응에 목마른 서로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친구들이 올려주는 라이프로그를 대충 읽고 댓글을 남겨서 나중에 수정한 적이 없나요? 한 명의 친구가 내가 일주일 동안 올린 10개의 포스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한꺼번에 좋아요를 눌러서 당황하신 적은 없나요? 디지털 지구, 메타버스에서 살아갈 때 혹시 내가 누군가의 메시지를 너무 빠른 속도로 읽고 넘어가다가 무언가를 놓치지 않는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읽고 판단하는 시간이 40% 줄었지만, 우리의 뇌가 그만큼 빨리 움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당신이 외톨이가 되고자 굳게 마음먹은 게 아닌 이상 메타버스에서 외톨이가 될 가능성은 정말 낮습니다. 우리는 현실 세계보다 메타버스에서 서로 쉽게 친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카페, 술집들은 조명을 조금 어둡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상대의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심리적 경계를 낮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면서, 상 대에게 쉽게 다가가게 됩니다. 이런 특성을 암흑효과라 부릅니다. 소셜 미디어 메타버스에는 현실 세계와 비슷한 암흑효과가 존재합니다. 상대 방의 프로필 사진은 보통 웃고 있는 표정, 맑은 날씨의 풍경 등입니다. 상대가 내게 남겨주는 감정 이모티콘은 주로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 줍 니다. 따라서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상대가 내게 품은 감정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 만난 이들끼리 서로 이렇게 생각하니, 메타버스에서 외톨이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만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을 현실 세계에서 처음 만나면 주로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람, 이미 현실 세계에서 여러 번 만난 사람 같은 느낌이 드셨을 겁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암흑효과가 존재하는 메타버스에서 이미 알고 지낸 사람이기에 상대방을 현실 세계에서도 역시 가깝게 느낍니다. 둘째, 노출 빈도가 가져오는 친밀감에 관한 착시현상이 있습니다.
-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창조적 인간에게는 상기, 기억보다 망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망각은 능동적,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닫는 저지 능력이라 했습니다. 보다 고차원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식의 자리를 백지상태로 비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브이로그는 어쩌면 이런 망각, 능동적 백지화와는 반대의 길로 우리를 이끄는 듯 내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다시 보며, 의식의 빈틈 에는 다른 이의 일상을 담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보를 나누고, 대리 경험을 하며, 따듯한 공감과 소통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활동이지만, 망각의 의미를 짚어준 니체의 조언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 우리는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와 소통에서 현실 세계와는 다른 통제감controllability을 느낍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보기 싫은 글, 보기 싫은 사람이 생겨도 내가 결정하면 언제라도 끊어버릴 수 있어.'라는 강한 통제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그런 통제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소셜미디어와 현실 세계에서 보기 싫은 글, 보기 싫은 사람을 똑같이 마주한다면, 현실 세계의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하지만 소셜미디어 메타버스에서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통제감, '언제라도 내가 버튼만 누르면 그를 자를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이를 통제감 효과라 부릅니다. 불편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무조건 참기만 해야 하는 경우와 지금은 좀 참아주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중지할 수 있는 경우의 차이입니다. 통제감 효과를 바탕으로 메타버스에서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이들을 보면, 이 시대의 우리가 현실 세계 인간관계를 너무 무겁게 짊어지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책은 거울과 같다.바보가 들여다보면서, 천재가 보이기를 기대할 수 없다." (J.K. 롤링)
- 우리의 정서와 관련된 여러 호르몬 중에서 도파민, 테스토스테론, 코르티솔을 살펴보겠습니다. 도파민은 자극과 관련된 호르몬인데, 태어나면서 20세 전후가 될 때까지 그 수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합니다. 그 시기까지 점점 더 많은 자극을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지배욕과 관련된 호르몬이며, 계속 상승하다가 20~30세 무렵에 최고치가 됩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는 그 시기까지는 누군가를 힘으로 누르고, 이기고 싶은 마음도 덩달아서 계속 커집니다.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정점을 찍은 후에 나이가 들면서 꾸준히 감소합니다. 코르티솔은 균형과 관련된 호르몬인데, 앞서 얘기한 도파민, 테스토스테론과 반대 모습으로 수치가 변합니다. 코르티솔은 주로 불균형한 상황,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분비되어, 우리가 스스로를 빨리 안정시키고 균형을 유지하게 유도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20대가 넘는 지점까지 코르티솔 수치가 계속 내려갑니다. 균형을 잡고, 안정을 유지해야 겠다는 마음이 그 시기까지는 별로 안 생긴다는 뜻입니다. 중고등학교 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의 호르몬 상태를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높아 지는 도파민 수치는 지속적인 자극을 추구하게 만들며, 치솟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주체하지 못하여 누군가와 부딪히면 어떻게든 싸워서 이기려고 합니다. 반면에 코르티솔 수치는 낮아서, 이런 자극과 싸움이 만드는 불균형한 불안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인간의 뇌와 호르몬은 덜 성숙하고 불안전한 모습입니다. 한스 게오르그 호이젤의 저서인 Brain View'의 한글 번역서인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서는 이런 우리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을 젊은 야만인' 상태라고 했습니다. 좀 거칠어 보이지만, 꽤 그럴듯한 비유입니다. 젊은 야만인이다 보니 가상 세계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좌충우돌합니다. 뇌와 호르몬이 원래 그런 것이어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가상 세계가 아이들의 난폭함과 무모함을 만들어내는 원흉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건, 가상 세계에서건 그 시기의 아이들은 언제 위험한 곳으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과 같습니다. 양쪽 세계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균형을 잃고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잘 관찰하고 지켜줘야 합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가 얘기한 철학적 이상의 인간상인 초인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니체가 얘기한 초인은 초능력자superman는 아닙니다. 의미적으로 보면 자신을 넘어선 사람, Overman에 가깝습니다. 기존 환 경을 지배하는 시스템, 사회의 일반적 도덕 등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인간을 뜻합니다. 위험을 극 복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초인이 되기 위해 니체는 세 단계 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순서대로, 낙타, 사자, 어린아이입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등에 얹고 살아갑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 기대에 순응하는 모습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채 복종하며 사는 삶입니다. 사자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것과 싸웁니다.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이겨내고 자기 스스로 움직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기존의 것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진 자가 사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수를 상징합니다. 낙타와 사자 단계에서의 경험을 편견 없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규칙을 만들며 놀이를 즐깁니다. 자신이 겪어낸 삶의 과정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삶을 놀이처럼 즐겁게 만들어갑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언제 미술가나 음악가처럼 새로움을 마음껏 만들어낼까요?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은 늘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미션,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전략을 짭니다. 도전했다 실패해도 그리낙담하지 않습니다. 새로움을 만드는 과정을 그저 즐깁니다. 실패에 대한 비난의 무게로부터 벗어난 가상 세계에서 마음껏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가상 세계에서 우리는 사자가 됩니다. 그 사회를 지배하는 오래된 규칙이 있어도, 아무리 지배자의 힘이 강해도, 자신을 가로막는 것과 사자처럼 싸워서 이겨냅니다. 그리고 아이처럼 순수하게 서로 어울려 놉니다. 패배하거나, 게임이 잘 안 풀려도, 금세 털어내고 다시 놀이를 이어갑니다. 가상 세계 메타버스에서 사람들은 플라톤이 얘기한 최고의 인간, 니체가 얘기한 초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상 세계에서 아무리 그렇게 살아도 현실 세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 절하하는 분들이 있으나, 가상 세계에서 내가 선택하고 행동한 모든 것들도 내 경험, 내 삶의 일부입니다. 내가 직접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만지면서 경험한 게 아니어도, 우리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가상 세계 메타버스의 경험은 우리 현실 세계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대부분 메타버스의 시스템은 벌금, 처벌, 비난 등의 빼기가 아닌 상금, 레벨업, 축하 등의 더하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세계의 상호작용을 좋아합니다. 빼기 구조인 현실 세계를 더하기로 바꾸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현실 세계의 구조와 비슷하게 메타버스 세계를 빼기로 바꾸는 게 좋을까요? 빼기가 싫어서 더하기를 찾아 도피를 했다고 보기에는 현실 세계에 지나치게 많은 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하기가 많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더 많은 도전을 꿈꿉니다. 빼기보다.는 더하기를 중심으로 탐험하고, 소통하고, 성취하고자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무언가 실패하면, 실패에 따라오는 빼기가 우리를 깊은 좌절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망치거나 낮은 성적을 받으면, 보너스가 깎이거나 부모님이 던지는 비난을 견뎌야 합니다. 반면에 메타버스에서는 무언가를 실패해도 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번 더 해보라고 부추깁니다. 그 상황에서 실패에 대 한 경험은 우리에게 오히려 더 강력한 도전 동기를 제공합니다. 이를 좌절 효과 frustration effect라 합니다.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 이 둘 모두는 우리에게 좌절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도전의 세계여야 합니다.
- 누군가는 메타버스를 새로운 사업 플랫폼으로, 누군가는 새로운 놀이터로, 누군가는 현실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통제 불가한 고민, 불행이 당신을 짓누른다면 메타버스에서 잠시 기분을 전환하며 잊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메타버스가 현실을 완전히 잊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메타버스 속 삶이 아무리 빛날지라도, 현실이 있기에 메타버스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 우리가 책임져야 할 무언가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메타버스에 머문다면, 메타버스는 현실의 삶을 망치게 됩니다.
- 메타버스는 인류의 삶을 확장하기 위한 영토여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한 도피처, 누군가를 위한 수용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메타버스를 창조하고자 꿈꾼다면,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당신의 메타버스가 우리 삶을 어떻게 확장할지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타버스의 사용자라면, 당신이 그 세계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세계가 당신 삶을 어떻게 확장하고 있는지 돌아봐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깊은 세계관, 많은 사람들, 수많은 상호작용을 메타버스 안에 넣고자 노력해도, 메타버스에 담기지 못하는 현실의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을 그 안에 담지 못할까요?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인 탄생과 죽음을 메타버스에 담기는 어렵습니다. 메타버스는 출입이 가벼운 세계입니다. 한 번의 탄생으로 시작해서 한 번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삶의 무게를 메타버스가 짊어지지는 못합니다. 저는 메타버스의 활용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메타버스가 우리 삶을 대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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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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