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안데르탈인은 인류 진화라는 게임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우월한 현생인류와 대비되는 열등한 야수로 늘 그려져왔다.
그런 그들이 완벽하게 멸종하지 않고 우리 몸속의 유전자 안에 살아 있 다니! 한때 인류 진화의 곁가지에 불과한 종이라 치부했던 그들이 오늘날 까지 살아남아 우리의 핏속을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소 름끼치는 반전이다. 말하자면 한때 우리가 완전히 흡수했거나 우리의 우 수한 문화로 완전히 멸종시킨 줄 알았던 네안데르탈인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오늘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였을 뿐 아니라 연인이자 배우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또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처럼 친구가 죽으면 슬퍼했고 동료가 불구가 되면 그가 정해진 삶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보살폈다. 사냥을 나갈 땐 함께 전략을 논의했고, 무리의 일원이 죽으면 그를 매장하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경이롭기까지 한 기술로 돌을 떼어내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고, 다양한 형태의 장신구로 자신의 몸을 꾸밀 줄 아는 감각도 지니 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단지 사라졌기 때문에 불완전했던 옛 인류로 평가 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 네안데르탈인은 약 13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무렵까지 주로 유럽과 서남아시아 일대에 퍼져 살았다. 화석은 주로 독일과 벨기에, 스페인, 이탈 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었지만 근동과 중동 지역, 중앙아시아 까지 그들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된다. 또 화석들이 대부분 동굴에서 발견 되었기 때문에 주로 동굴을 근거지로 삼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몇 번의 빙하기를 거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에게 동굴보다 더 바람직한 주거환경 은 없었던 것 같다. 네안데르탈인에서 시작된 동굴 속의 원시인에 대한 이 미지 때문에 옛 인류들은 대부분 동굴 속에서 살았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동굴 속에서도 살았지만 시야가 확 트인 동굴 밖 에 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동굴이냐 동굴 밖이냐가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 뒤로는 병풍 같은 산이, 앞으로는 시원하게 강이나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배 산임수는 정녕 오늘날 우리에게만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 고고학 자들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의 동굴은 주로 입구가 남쪽으로 트여 있고 앞으로 작은 평원을 굽어보는 자리에 위치했다. 그러니 우리가 저 푸른 초 원 위에 집을 짓고, 앞으로 잔잔히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도 알고 보면 아주 오래된 진화의 유산일지 모른다.
- 한편 네안데르탈인의 키는 우리보다 작았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근육 을 가졌고 주로 포유동물을 사냥하여 먹고살았다. 처한 환경에 맞춰 그때 그때 닥치는 대로 먹고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네안데르탈인은 극 단적인 육식주의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육식에 의존해 살았다. 말하 자면 그들은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삼겹살을 먹듯 오래전 그들은 순록고기를 주로 먹으며 살았다. 멧돼지와 말은 물론 심지어 들소 와 매머드까지 잡아먹었다.
네안데르탈인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 사냥을 했고, 사냥을 위해 도구를 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숙련된 도구제작자이기도 했다.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무스테리안이라는 석기제작 문화Mousterian industry는 프랑스의 르무 스티에 Le Moustier 유적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는데, 석기로 만들 몸돌core 을 잘 준비하여 거기서 떨어져 나간 돌 부스러기, 즉 격지 flakes를 수차례 잔손질해 만들어졌다. 네안데르탈인은 이 정교한 석기 제작 기술을 오랫 동안 유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내는 석기에 비해 다양성 면에서는 많이 뒤처졌다.
- 네안데르탈인은 지구가 극악무도하게 추웠던 약 13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무렵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연대로 치자면, 그 들은 약 18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의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에 속하는 마 지막 빙하기에 살았고, 지금 우리는 1만 년 전 무렵부터 시작된 홀로세HO- locene 라고 하는 따뜻한 시기인 간빙기에 살고 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겪는 한겨울의 추위는 아무리 추워봤자 빙하기 사이의 따뜻한 간빙기이 기 때문에 사실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따뜻 한 겨울이다.
- 플라이스토세는 10만 년을 주기로 빙하가 늘어났다가 줄어들면서 지 구의 기후가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때이기도 하다. 이때에는 북극 권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폴란드, 스칸디나비아, 캐나다, 미국 대부분의 땅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전 지구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또 이 기간에는 지구상에 거대 동물군群이 번성했는데, 2만 년 전의 빙하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만화영화 <아이스 에 이지>의 주인공인 땅나무늘보, 털매머드, 검치호랑이가 바로 이때에 살 았다.
이러한 거대 동물들과 함께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약 200만 년 전에 가장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구대륙으로 이동한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하여 갈라져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약 10만 년 전에서 5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집단의 후 손이다. 따라서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다. 이 때문에 우리의 몸은 네안데르탈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 네안데르탈인은 떡 벌어진 어깨와 짧지만 다부진 팔다리를 가졌다. 네 안데르탈인의 몸매를 오늘날 현생인류와 비교해보자. 서로 키가 같을 때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몸무게가 평균적으로 30퍼센트 정도 더 많 이 나간다. 생전의 몸무게는 허벅지뼈의 가장 윗부분 머리가 얼마나 큰지, 또는 골반뼈의 넓이가 얼마나 넓은지를 측정해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 면 이 부분의 크기와 너비가 몸무게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 남성은 대략 165~167센티미터의 키에 70~85 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여성은 158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60~75킬로 그램의 몸무게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네 안데르탈인이 우리보다 훨씬 작아서 키는 160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분명 오늘날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몸매는 아 니다.
- 대부분의 포유류는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항상 자신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만약 체온이 과도하게 올라가거나 떨어지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따라서 몸의 열을 유지하거나 밖으로 내보내는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와 이전에 살았던 인류를 포함해 모든 포유동물의 몸 크기와 형태는 기후 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운 기후에서는 가느다란 몸통이, 추운 기후에서는 굵은 몸통이 체온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 덩치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중에 누가 추위와 더 위를 더 많이 타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추운 환경에서는 비슷하게 생긴 포유동물 가운데 몸집 작은 동물이 몸집 큰 동물에 비해 확실히 체온 을 더 빨리 잃는다.
그러니 몸집 큰 동물은 추운 기후에 더 잘 적응하고, 몸집 작은 동물은 더운 기후에 더 잘 적응한다. 이 법칙은 19세기 독일의 동물학자인 크리스티안 베르크만Christian Bergmann이 발견하여 '베르크만의 법칙'이라고 불린 다. 한편, 몸집이 비슷하다면 팔다리가 길고 가는 동물들이 팔다리가 짧고 두꺼운 동물보다 더 빨리 열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팔 다리가 긴 동물들은 더운 기후에 더 잘 적응한다. 팔다리뿐 아니라 귀와 코 를 비롯한 몸의 말단 부위도 추운 곳에 사는 항온동물일수록 더 작고, 더운 곳에 사는 동물일수록 더 크다. 이 법칙은 조엘 앨런Joel A. Allen이 정리해서 '앨런의 법칙'으로 불린다. 이제, 자신이 어느 기후에 적합한 몸매를 지녔는 지 자신의 체형을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평균 기온이 높은 지역일수록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체형이 적응 에 더 유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는 왜 짧고 두 꺼운 팔다리를 가진 체형이 더 유리한 것일까? 그것은 열이 몸의 부피에 비 례해 생산되고 표면적에 비례해 소실되는 원리 때문이다. 즉 팔다리가 길고 가느다랄수록 몸의 표면적은 커지고 부피는 작아지는 반면 팔다리가 짧고 굵을수록 몸의 표면적은 작아지고 부피는 커진다.
-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고위도 지역은 적도와 가까운 열대 지역에 비 해 일조량이 절대적으로 적었다.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연구 에 따르면 고위도에 사는 현대인은 저위도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빛 의 양의 적기 때문에 뇌 안의 시각과 관련된 부분이 더 발달하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2013년 옥스퍼드대학교의 피어스Eiluned Pearce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에서 눈굼eye bits의 면적을 비교했다. 그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눈굼 면적은 1404제곱밀 리미터로, 1223제곱밀리미터에 불과한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훨씬 컸다. 이에 대해 피어스는 이러한 차이가 바로 뇌 구조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설 명했다.
-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뇌 크기가 동일하다고 가정했을 때, 네안데르탈인의 뇌 조직은 시각에 관여하는 부분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많은 반면, 신경에 관여하는 부분의 영역은 더 적다. 우리 현대인의 뇌 는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많은 신경조직을 인지활동 처리에 사용했던 것 같다. 이는 늘 변화무쌍하여 불안정했던 환경에서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 했을 때, 그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며 살아가는 데에 큰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 차가운 음식물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면 맨 처음 입천장을 자극하고, 그다음에 뇌와 연결된 동맥을 재빨리 수축시킨다. 이러한 반응은 동맥에 피가 갑자기 차오르게 하면서 우리에게 독특한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이 현상을 뇌가 어는 느낌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brain freeze'라고 한다. 이 현상은 우리 머리뼈가 입속과 콧속의 신경과 동맥들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추운 겨울날 100미터 달리기를 하면 된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입으로 한꺼번에 들이마시면서 달리면 가슴이 금방 뻐근해진다. 이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몸속에서 데워지지 못하고 폐로 급하게 전달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 폐조직에 가해 지는 자극이 기도를 수축하면서 가슴에 통증이 나타나고, 마치 천식 발작 처럼 잠깐 동안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그러나 코로 숨을 쉬게 되면 이러한 고통이 훨씬 줄어든다. 코로 들어 온 공기는 콧속의 작은 혈관들과 점막으로 인해 이내 따뜻해지고 촉촉해 질 수 있다. 따라서 빙하기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에게 큰 코는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즉 코가 크다는 것은 콧속의 표면적도 크다는 뜻이므로 외부 의 공기가 폐로 들어가기 전에 더 빨리 공기를 따뜻하고 습해지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 방식에는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코가 추운 기후에 대한 적응의 결과라면, 현재 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코 도 네안데르탈인의 코와 비슷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 다. 오늘날 춥고 건조한 기후에 사는 사람들의 콧구멍은 넓지 않고 오히려 좁다. 네안데르탈인처럼 넓고 큰 콧구멍은 극지방 사람보다는 열대지방 사람에게서 흔히 관찰된다.
현대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코의 형태, 즉 코의 길이와 너비는 기 후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온도보다는 습도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춥든 덥든 건조하면 길고 좁은 코 모양이 많고, 습 한 열대우림 같은 기후에서는 상대적으로 넓은 코 모양이 흔한 것으로 보 고된다. 따라서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자면 길고 좁은 코가 네안데르탈인 의 삶에 더 적합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긴 코는 정말로 추운 기후에 대한 적응의 결과일까? 아니면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이 유전자 표류를 경험하면서 진화한 형질일 까? 코가 길어진 원인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긴 코가 추운 기후 를 이겨내는 데에 상당히 유리한 형질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 네안데르탈인의 뼈 시료를 이용해 안정 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는 네 안데르탈인이 늑대나 사자처럼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즉 네안데르탈인의 뼈에 남아 있는 화학적 암호는 육 식동물의 뼈에 남겨진 암호와 일치하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이 육식동물 과 같은 식단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여러 원소의 안정 동위원소 중에서도 질소 값으로 뒷받침되는데,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올라 갈수록 질소 값이 더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육식동물의 뼈에는 초식 동물의 뼈보다 질소가 더 많이 들어 있다.
- 네안데르탈인이 이처럼 다양한 고기를 육식동물이 먹어대는 수준만큼 섭취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사냥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 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네안데르탈인의 고기 편식이 후에 호모 사피엔 스와 경쟁하여 그들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더 널리 퍼지는 데에 방해요 소가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서 나온 해부학적 현대인은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식료로 활용해 좀 더 폭넓은 생태적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모 사피엔스 조상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육지 포유동물을 잡아먹기도 했지만, 물고기도 잡아먹고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도 식단에 넣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수만 년 동안 고기 위주의 식단을 고수했다. 2002년 뉴욕주립대학교의 시어도어 스티그만Theodore Steegmann 등이 수 행한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경우 오늘날 하루 권장 칼로리 를 훨씬 넘는 3400~4500킬로칼로리 정도를 섭취했을 거라고 한다. 이들 은 극지방 근처에 살고 있는 오늘날 인구 집단을 관찰한 민족지적 기록을 참고하고,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시기의 기후와 그들의 형태적 특성, 수 렵 활동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다.
-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추운 기후, 그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높은 열량의 에너지원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육식이야말로 네안데르탈인 에게는 최적의 식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이 채식 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음식물의 잔여 성분이 치아에 붙어서 석 회화된 치석과 석기에 남아 있는 미세 잔존물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네안 데르탈인이 때때로 녹말이 많이 함유된 대추야자, 풀씨, 야생 밀이나 보리 류 같은 식물들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브롤터 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분석한 결과는 그들이 해양 포유류, 토끼, 연체동물 들을 잡아먹었다고 말해준다. 따라서 육식 위주의 식단을 고수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식단을 바꾸기도 했던 것 같다.
- 요즘처럼 먹을 게 풍족한 환경에 사는 우리에게 하루 3000~4000킬로 칼로리를 채우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맘만 먹으면 한 끼로도 그 정도의 열량은 충분히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사냥하고 사냥에 실패했을 경우 열매나 풀씨 따위를 채집해 먹어 야 하는 환경에서는 다르다. 아마 매일 필요한 칼로리를 채우기 위해 거의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플라이스토세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네안데르탈인은 그 들의 육중한 몸을 유지하는 데에 드는 많은 에너지를 충분히 채우지 못했 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보다 훨씬 다양한 식단을 꾸리고 옷도 만들어 입으며 추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 엔스의 조상들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존재였으리라.
- 해부학적 현대인의 경우와 비교하면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청소년기 사 망률 역시 월등히 높다. 예로 북유라시아 지역의 유적에서 출토된 네안데 르탈인 중에 43퍼센트는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개체들이었는 데에 반해, 해부학적 현대인 집단에서는 청소년의 비율이 30퍼센트 정도였다. 네안 데르탈인 유적인 크로아티아의 빈디자Vindija와 크라피나에서 유소년 개체 를 포함한 청년층의 사망률은 각각 46.2퍼센트, 43.5퍼센트에 달한다.
성장기에 해당하는 유소년층을 포함한 젊은 연령대의 사망률이 높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네안데르탈인 사회에서 이들 계층의 사망률이 높 은 걸까? 이유는 네안데르탈인 사회가 유아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사적 단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이 주로 무슨 일을 하나? 그들에게 주어진 사 회적 역할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 사회에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성인들과 함께 사냥 같은 위험한 활동에 참여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아이 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본다. 이와 관련해 에릭 트린카우스는 네안데 르탈인 집단의 경우 신생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사망률이 증가하는 데에 반해,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서는 사망률 패턴이 이와 정반대로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사실 거의 모든 사회에서 5세 미만의 영유아 사망률이 어떤 연령대의 사 망률보다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네안데르탈인의 사망률 패턴은 상당히 놀랍다. 트린카우스는 1987년에 데이비드 톰프슨David D. Thompson과 함께 152명의 네안데르탈인 중 단지 8.6퍼센트만이 35세를 넘겼고, 40~45세까 지산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명이 이처럼 짧았기 때문 에 네안데르탈인의 가족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있을 수 없었다.
- 유아 사망률이 높고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네안데르탈인 무리는 현생 인류 집단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작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대부분 의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대략 30명에서 140명 정도의 무리를 구성 하여 살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처럼 수만 년 전에 살았던 옛 인류 집단 의 규모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지금이야 국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인구총조사라는 것을 하지만, 이러한 인구 조사가 시작된 역사도 따지고 보면 불과 200년 남짓이다.
고고학자들은 동물 뼈와 석기, 불 탄 자리들이 발견되면 그것들이 차지 하는 공간의 패턴과 분포로 집단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추정한다. 네안데 르탈인이 근거지를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반경을 어느 정도로 사용했는지 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남긴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추정한다. 네 안데르탈인은 근거지를 중심으로 5~10킬로미터까지 활동반경을 유지하 다가 주변의 자원이 고갈되면 이동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기후 조건이나 먹잇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상태를 고려하여 활동반경의 범위를 결정했던 것 같다. 서남부 유럽의 경우는 근거지에서 5~10킬로미터 정도를 활동반경으로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고, 좀 더 북쪽의 북서부 유럽에서는 근거지로부터 45~50킬로미터 떨어 진 곳까지 활동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생활방식에 대해 미시간주립대학교 리처드 호런Richard Horan은 이들이 주로 20~30명 정도 규모의 가족 단위로 살았으며, 다른 집 단과는 거의 교류를 하지 않으며 살았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네안데르탈 인의 인구밀도가 낮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해부학적 현대인 이 이주해왔을 때 오래도록 함께 살지 못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 유전자는 유전체의 기능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들이다. 사람의 유전체에는 약 2만여 개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백 질 암호화 유전자가 유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퍼센트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양이 매우 적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때는 유전체의 98퍼센트 에 달하는 나머지 부분이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단백질 정 보가 담겨 있지 않은 부분을 '쓰레기 DNA'라고 불렀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 '쓰레기 DNA' 가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능을 하는 RNA (리보핵산ribonucleic acid)를 암호화하는 수많은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RNA 유전자에는 마이크로RNA와 '긴 비암호화 RNA' 등 이 있다. 쓰레기 DNA에는 단백질 및 RNA 유전자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 나 활동할지를 정해주는 '조절 요소regulatory elements'들도 가득 들어 있다. 이쯤 되면 쓰레기 DNA라기보다는 보물창고 DNA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DNA의 생체정보는 겨우 네 글자(A/C/G/T)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네 글 자를 조합하여 의미를 저장하는 문법은 매우 다양하다. 같은 네 글자로 단 백질이나 RNA의 서열을 기록하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 얼마나 많은 단 백질이나 RNA를 생산할지 결정하는 조절 요소를 만들기도 한다. 언어학 자들이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언어를 기록한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 를 하나하나 해독했던 것처럼, 유전학자들은 지금도 DNA의 다양한 문법 을 해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저명한 집단유전학자 기무라 모토木村生가 처음 제시한 '분자 진화의 중립 이론'에 따르면, 유전체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의 대부분은 개체의 생 존과 번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유전자 표류를 통해 중립적으로 진 화한다고 한다. 유전체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염기서열이 아무런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방랑자처럼 진화하고 있다니. 실망스러울지도 모 르겠다.
하지만 유전체의 대부분이 중립적으로 진화한다는 사실은 집단유전학 자들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다. 왜냐하면 중립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 는 유전체의 변이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집단의 과거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집단 크기의 변화나 집단 간의 유전자 교환은 유전체에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중립진화를 가정하면 이 흔적을 해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존재 라고 생각해왔다. 즉 사람만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알고, 문화를 가 지며, 언어를 통해 정교하게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 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물행동학 연구의 역사는 사람과 동물을 질적 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왔다. 침팬지나 뉴칼레도니아까마귀가 사냥이나 먹이를 손질할 때 여러 가지 도구를 능 숙하게 사용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을 통해 전파하며, 범고래 가 집단마다 독특한 노래를 통해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언어가 사람만이 갖는 특징은 아닐지라도 이런 특징들이 언제 어떻게 진화했는지 연구하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다. 현대인의 공통조상이 언어를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면 여태까지 알려진 모 든 민족들은 복잡한 언어 체계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복잡한 언어 체계는 네안데르탈인의 조상이 아 프리카를 떠난 후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수십만 년 전에 살던 네안데르 탈인과 우리의 공통조상도 언어를 갖고 있었을까? 아프리카를 떠난 현대 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만났을 때 그들은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을 했을까? 네안데르탈인의 골격 형태가 언어 능력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있을까? 목젖 바로 위에 있는 U자 모양의 목뿔뼈는 성대의 움직임과 밀접한 연관 이 있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있었는지 알려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의 케바라 동굴에서 6만 년 전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목뿔뼈를 갖고 있었는데, 다른 영장류의 목뿔뼈와는 형태가 전혀 다르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성대 구조가 언어에 필요한 여러 소리를 낼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언어 능력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피부색과 ABO 혈액형은 관련된 유전자들이 비 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언어 능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혈액형이나 피부색은 다양한 변이가 있어 연구가 용이하 지만, 언어 능력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모국어를 익 히고 사용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에 연구에도 제약이 따 른다. 언어 사용에 장애가 있는 경우 대부분은 언어 능력에 직접적인 장애 가 있다기보다는 청력이 손상되었거나 언어 사용에 필요한 근육에 문제 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른바 '언어 유전자'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 여 있다.
- FOXP2(Forkhead box protein 2)는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언어 유전 자인데 희귀한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영국의 한 가족을 통해 발견되었다. KE라는 이니셜로 통칭되는 이 'KE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절반 정도가 언 어장애를 갖고 있었고, 희한하게도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서만 이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 이 가족을 비롯하여 FOXP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언어장애 환자들은 인지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말을 하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와 더불어 이들은 언어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 뇌의 부위인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이 덜 활성화된다는 것도 보고되었다.
- FOXP2 유전자는 뇌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 으며 포유류 전체에 걸쳐 진화적으로 잘 보전되어 있다. 진화적으로 잘 보 전되었다는 의미는 다른 유전자들과 비교해볼 때 종 사이의 염기서열 차 이가 매우 적다는 것을 뜻한다. 염기서열 차이가 적으려면 돌연변이가 많 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즉 이 유전자 자체가 망가지면 안 되는 매우 중 요한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진화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자연선택을 통 해 제거되었다고 봐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현대인이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FOXP2 유전자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바꾸는 돌연변이를 두 개나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이 돌연변이들이 사 람의 언어 능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러면 현대인이 갖고 있는 두 돌연변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의 조상이 갈라진 후에 생겨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다 른 영장류들처럼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확 인하기 위해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요하네스 크라우제Johannes Krause는 스페인에서 얻은 네안데르탈인 뼈 두 점을 분석하였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두 개체 모두 현대인과 같은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돌연변이들이 현대인의 언어 능력을 정교하게 한 원동력이라면 네안 데르탈인이 이 유전자 때문에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다.
- 1980년대에 이르러 분자생물학 분야의 실험기법들이 발전하면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비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와 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의 생물학자 레베카 칸Rebecca Cann은 이를 이용 해 현대인의 기원과 여러 민족들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선두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칸은 1987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및 뉴기니에서 수집한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의 계통수를 재구성하여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계통수상의 가지 대부분은 오직 아프리카인들로만 이루어 진 반면, 아프리카 밖의 모든 사람들은 단 하나의 가지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비아프리카인들이 속한 가지에는 일부 아프리카인들도 포함되어 있 다. 즉 모든 비아프리카인들은 비교적 최근에 존재했던 공통조상의 자손 인 반면, 아프리카인들은 훨씬 더 다양하고 오래된 미토콘드리아 계통들 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지치기 패턴은 현대인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고,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작은 이주민 집단이 현재 유럽과 아시아, 오스트레 일리아를 포함하는 모든 비아프리카인들의 조상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칸이 발견한 두 번째 사실은 학계를 더욱 술렁이게 만들었다. 칸은 아 프리카인과 비아프리카인을 모두 포함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이 하나의 공통조상으로 유합 coalescence하는 시간, 즉 '가장 가까운 공통조상 the Most Recent Common Ancestor(MRCA)'의 나이를 약 29만 년 전에서 14만년 전 사이로 추정하였다. 모든 비아프리카인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 의 공통조상은 이보다도 훨씬 최근인 22만 년 전에서 6만 년 전 사이에 살 았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신 연구들은 더욱 정확한 추정치들을 보여주 는데, 모든 현대인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의 조상은 약 15만 7000년 전, 모든 비아프리카인이 속한 가지의 공통조상은 약 7만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현대인 미토콘드리아의 공통조상, 즉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나이가 8만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지역 기원설에 큰 타격을 준 반면에 최 근 아프리카 기원설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만약 다지역 기원설이 주장하 는 것처럼 아프리카 밖의 현대인들이 100만 년 이전부터 그 지역에 살던 고인류의 후손이라면 이들 모두의 모계 공통조상은 적어도 100만 살은 되 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나이가 8만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려면 아프리카 밖의 고인류는 최소한 모계 쪽으로는 현대인 의 유전자 풀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토콘드리 아 연구는 모든 현대인의 모계 쪽 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네안데르 탈인과는 관계없는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그렇다면 인간 유전체 다양성 프로젝트를 포함한 다수의 상염색체 변 이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류의 역사에 대해 어떤 밑그림을 그리게 되 었을까? 가장 중요한 발견을 꼽자면, 상염색체 변이 자료가 앞에서 소개 한 인류의 '최근 아프리카 기원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점을 들 수 있 다. 우선 사람은 다른 종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유전적 다양성 및 집단 간 분화 정도가 매우 낮은데, 이는 빠르게 영역을 확대한 젊은 종, 즉 진화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종한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 만 진화사에서 사라져간 다른 무수한 종들에 비해 우리 종의 역사는 결코 길지 않다!
여러 민족 간의 유전적 분화 정도가 매우 낮다는 주장은 서로 확연히 외모가 다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동아시아인을 떠올려보면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와 머리카락, 눈동자색 및 체형과 같은 형질들은 알고 보면 예외적인 형질들로, 자 연선택에 의해 빠르게 진화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일부의 예외적인 사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형질들과 유전적 변이들은 유전자 표류를 통 해 무작위적으로 느리게 진화한다. 그 결과, 현대인의 유전적 다양성 중집 단 간 차이로 돌릴 수 있는 부분은 겨우 5~7퍼센트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 면 한국 사람 두 명의 유전적 차이를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 사람과 독 일 사람의 유전적 차이는 그것보다 아주 조금 더 큰 105 정도인 셈이다! 상염색체 연구가 찾아낸 '최근 아프리카 기원설'의 또 다른 강력한 근 거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집단일수록 유전적 다양성 이 낮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여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을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전적 다양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로 이형접합도heterozygosity라는 것이 있다. 이형접합도는 한 사람의 유전체에서 어머니 쪽에서 물려받은 염기와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은 염기가 서로 다른 비율을 나타내는 값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의 경우 이형접합도가 약 0.11퍼센트 정도인 반면, 유럽인과 동아시아인의 경우는 0.08~0.09퍼센트로 아프리카인에 비 해 낮고, 지리적으로 가장 먼 지역인 아메리카 및 오세아니아 원주민의 경 우에는 0.07퍼센트 수준으로 이형접합도가 유럽과 동아시아인보다 더 낮 다. 아프리카인의 이형접합도가 가장 높다는 것은 그 집단의 유전적 다양 성이 가장 높다는 말이며, 그 말은 곧 그 지역이 기원지일 가능성이 높다 는 의미이다.
- 전 세계 여러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통계량을 계산한 결 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은 네안 데르탈인 혈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 사는 사 람들은 아프리카인에 비해 네안데르탈인과 훨씬 더 가까웠던 것이다. 이 결과의 의미를 짚어보자면, 현대인이 아프리카를 벗어났을 때, 이미 유라 시아에 진출해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만났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네안 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얻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우리 몸속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풀이 아프리카 밖의 사람들에 기여한 비율은 약 2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2퍼센트라고 하면 아주 작은 수치라 고 생각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리 작은 값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유전체 는 부모님으로부터 각각 50퍼센트를 받아 만들어지고, 한 세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네 명의 조부모로부터 각각 25퍼센트를 받는다.
계속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다섯 세대 전에는 32명의 조상에게서 각 각 약 3.1퍼센트씩을, 여섯 세대 전에는 64명의 조상에게서 각각 약 1.6퍼 센트씩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셈이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 유전체가 차지 하는 비율인 2퍼센트는 다섯 세대 내지 여섯 세대 전의 우리 조상 중에 네 안데르탈인이 있었던 것과 비슷한 비율이다. 우리의 증조할머니가 어렸을 때 네안데르탈인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다고 상상해보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더 와 닿지 않을까?
- 먼저 20세기로 돌아가보자. 1900년경, 세계 인구는 약 16억 명 내외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당시 인구는 현재 인구의 4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수 준이다. 다시 100년을 더 되돌려 1800년경,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후 기쯤의 세계 인구는 10억 명 내외였다. 이렇게 시간을 조금씩 계속 되돌려 보자.
유럽에는 로마 제국이 중국에는 한나라가 있던 1세기에 세계 인구는 약 2~3억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 오래된 시대의 인구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한 작업이지만, 농경이 막 시작되었던 약 1만 2000년 내지 1만 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세계 인구는 겨우 500만 명 정도 였던 것 같다. 서울시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으니, 말하자면 당시에는 서울 인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었던 셈이다. 유전자 자료가 말해주는 것도 이러한 추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전자 자료는 과거에 실제로 몇 명의 사람들이 살았는지를 알려주지는 못하지 만, 이와 비슷한 개념인 유효집단 크기 effective population size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유효집단 크기'란 인구수가 변하지 않는 단순한 집단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 집단이 실제 유전자 자료와 여러 면에서 같은 특성을 보여주려면 인구수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값 이다. 여러 가정이 만족될 경우에 유효집단 크기는 실제 인구수와 일치 한다.
- 유전자 자료를 통해 과거 인류의 유효집단 크기를 추정해보면, 농업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가장 환경조건이 좋았던 시절에도 세계 인구가 1만~2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라시아인의 조상은 아프리카 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인구 병목 현상population bottleneck을 겪었는 데, 이때의 유효집단 크기는 겨우 1000명 남짓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의 인구규모가 이 정도인데, 과거 유럽과 중동에는 대체 얼마나 되는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던 걸까? 여러 증거들에 따르면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네안데르탈인의 숫자도 결코 많지 않았다. 네안데르탈인 유전 체를 이용해 추정한 유효집단 크기 역시 네안데르탈인의 수가 매우 적었 음을 뒷받침한다. 알타이산맥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에 따르 면 네안데르탈인의 무리는 현대인의 유효집단 크기 궤적에서 갈라진 이후 급격히 감소한 뒤, 꾸준히 1000명 남짓한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안데르탈인의 이형접합도 역시 1만 염기쌍당 2개 수준인 0.02퍼센트(현대 비아프리카인의 약 22~3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앞에 서 설명했듯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두 염색체가 서로 다른 염기를 갖고 있을 확률인 이형접합도는 낮은 값을 가질수록 과거 이 집단 의 크기가 작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의 이형접합도가 현대인보다 낮다는 말은 이들의 인구가 과거 현대인의 인구보다 훨씬 적 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 돌아오자. 6만~5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 이웃과 유전자를 나누었던 우리 조상들은 고작 수천 명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현재 세상에 살고 있는 약 60억 명의 비아프리카인은 모두 이 작은 무리의 후손들인 셈이다. 당시 아프리카를 벗어나 이주라는 도박을 선택한 결과는 배당률이 높게는 100만 배나 되 는 성공적인 투자였다! 이러한 성공을 거두리라고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 는가.
네안데르탈인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세기의 도박에서 2퍼센트 정 도의 지분을 확보했다. 60억 명의 2퍼센트라면 단순히 계산해보아도 1억 2000만 명이다. 만약 60억 명 모두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2퍼센트씩 가지고 있는 대신, 네안데르탈인 1억 2000만 명이 오늘날 우리와 이웃해 살아가고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네안데르탈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유전적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60억 명 의 2퍼센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오늘날 우리 삶 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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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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