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설계

과학 2023. 10. 21. 17:17

- 지구상에서 알려진 모든 생명체는 DNA가 사용하는 4글자 알파벳을 단백질이 이용하는 20글자 알파벳 체계로 번역할 때 똑같은 암호를 사용한다. 생명 탄생의 필연성을 따지는 데 있어 핵심적인 부분은 이런 기발한 암호체계가 어떻게 등장하였는가 하는 것이 다. 생각이 없는 원자들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프트웨어 를 썼으며, 첫 세포를 구축해서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그 특정 형 태의 정보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이 해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이 주제와 관련해서 과학자들은 전 통적으로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진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을 통해 일어났다고 믿는다. 생명이란 불가사의한 화학적 요 행의 결과라는 것이다. 무작위의 화학적 혼합물에서 분자들이 우 연히도 적절하게 뒤섞여 생명 탄생에 필요한 정교한 배열을 만들 어낼 확률을 계산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럼 아주 숨이 턱 막힐 정 도로 낮은 확률이 나온다.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형태가 우 연에 의해 등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건은 분명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은 우연은 부차적으로 작용했을 뿐 이고, 자연의 법칙이 호의적으로 작용한 결과 올바른 분자들이 형 성된 것으로 가정한다. 일례로 미국 생물속생설(biogenesis)의 개척 자 시드니 폭스(Sidney Fox)는 화학이 호의적으로 작용해서 아미노 산들이 생물학적 기능을 갖기에 알맞은 적절한 조합으로 연결된 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연 속에는 생명을 촉진 하는 물질이 만들어지게 하는 내재적 편향(in-built bias)이 존재하 는 셈이다. 이 편향을 음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 학과 화학 법칙에 생명을 위한 청사진이 들어 있다는 주장이 과연 믿을 만할까? 생명 탄생에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량이 그런 법칙 안에 암호화되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 물과 감람석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물질에 속한다. 태양계 여러 행성의 대기에는 CO2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렇다면 CO2 역 시 우주에 흔하다는 의미다. 사문석화작용은 자발적 반응이기 때 문에 물과 바위가 많은 행성이라면 어디서든 그 반응이 대규모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단순 세포들로 가 득해야 한다. 생명은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어디서든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지구 위에서 적절한 조건 이 형성되는 순간 거의 순식간에 생명이 탄생했다고 여겨지는 것 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일단 단순한 생명체가 등장하고 나면, 조건만 적당히 주어지면 차츰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화한 다고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일 어나지 않았다. 단순 세포가 처음 등장한 이후 복잡한 생명체로 진 화하기까지는 엄청나게 긴 공백이 있었다. 거의 지구 수명의 절반 에 가까운 시간이다. 더군다나 40억 년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 중 단순한 생명체에서 복잡한 생명체로의 진화는 딱 한 번밖에 일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진귀한 예외적 사 건이다. 이는 이러한 진화가 대단히 기이한 사건이었음을 암시하 고 있다.
만약 단순 세포가 수십억 년에 걸쳐 천천히 복잡한 세포로 진화했다면 온갖 종류의 중간단계 세포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일부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간단계 세포가 전 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만 남아 있다. 한편에는 세포의 부피와 유전체의 크기 모두 작은 세균(bacteria)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군살을 빼고 최소의 형태로 간 소화됐다. 세포의 전투기인 셈이다. 다른 한편에는 거추장스럽 고 거대한 진핵세포가 존재한다. 이것은 전투기보다는 항공모함에 가깝다. 전형적인 단세포 진핵세포는 세균보다 15,000배나 크고, 유전체도 그에 버금가게 크다.
동물, 식물, 곰팡이 등 지구상의 모든 복잡한 생명은 진핵세포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똑같은 선조로부터 진화했다. 따라서 진핵세 포의 선조를 만들어낸 그 단 한 번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식물도, 어류도, 공룡도, 유인원도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순 세포들 은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로 진화하기에 적합한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2010년에 나는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의 선구적인 세포생물학자 빌 마틴(Bill Martin)과 이 주제를 탐험해보았다. 우리 는 다양한 세포의 대사율과 유전체 크기에 관한 자료를 활용해서 단순 세포가 몸집을 불린다면 가용한 에너지가 얼마나 될지 계산 해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몸집을 불리는 데 따르는 에너지 불이익 이 상당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세균을 진핵세포의 크기로 키 운다면 유전자당 가용 에너지가 대등한 크기의 진핵세포에 비해 수만분의 1로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세포들은 유전자당 에너지가 더욱 많이 필요해진다.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대단히 에너지 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세포의 에너지는 대부분 단 백질 생산에 쓰인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세포보다 훨씬 큰 세균도 일부 존재하기 때 문에 언뜻 보면 세균이 몸집을 키워서 얻을 것이 없다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 듯 보인다. 검은쥐치(surgeonfish)의 장 속에 사는 에 플로피시움(Epulopiscium)이 그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에플로피시 움은 자신의 완벽한 유전체의 복사본을 최고 200,000개까지 가지 고 있다. 이 다중의 유전체를 모두 함께 고려하면 DNA의 총량이 어마어마한데도 유전자 복사본 각각의 가용 에너지는 일반적인 세균과 거의 똑같다. 아무리 잘 봐줘도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세포 라기보다는 여러 세포가 하나의 세포로 융합한 공동체(consortium) 에 불과하다.
- 그렇다면 거대 세균은 왜 그렇게 많은 유전체 복사본이 필요할 까? 세포가 막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는 역장에서 에너지를 획득 하고, 이 막전위는 번개 불꽃의 전위차와 대등하다는 사실을 떠올 려보자. 세포가 이 전위차를 잘못 다루었다가는 큰일을 당한다. 막 전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세포는 죽음을 맞이한다. 유 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있는 동료 생화학자 존 앨런(John Allen)은 거의 20년 전에 막전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유전체가 필수적이 라고 제안했다. 유전체가 단백질 생산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전체들은 자신이 통제하는 막과 가까운 곳에 자리해야 한다. 그래야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앨런과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진핵세포에도 해당하는 사실이며, 단순 세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 한 증거를 상당히 확보했다.
그러면 단순 세포가 직면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더 크고 복잡 한 형태로 자라려면 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켜야 한다. 단 순 세포가 이것을 가능하게 할 방법은 에너지 수확에 이용하는 막 의 면적을 넓히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막의 면적을 넓히면서 막전 위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면 유전체 전체를 추가로 복제해야 한다. 즉, 실제로는 유전자 복제본당 획득 에너지가 전혀 커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단순 세포는 유전자가 늘어날수록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유전자가 가득 들어 있는 유전체를 사 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존재다. 세포가 좀 더 복잡 하게 자라려고 할 때 이것은 커다란 장애물이 된다. 어류나 나무를 만들어내려면 세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수천 배나 많은 유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핵세포는 이런 문제점을 대체 어떻게 해결했을까? 바로 미토콘드리아의 획득이다.
약 20억 년 전, 한 단순 세포가 어쩌다 다른 단순 세포 안에 들어 가 살게 됐다. 이 숙주세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 지만 그것이 한 세균을 포획했고, 그 세균이 숙주세포 안에서 분열 을 시작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이 세포 속의 세포들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경쟁했다. 그래서 에너지 생산 능력을 잃지 않으면서 가장 신속하게 복제할 수 있는 세포가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다 보니 이 내공생 세균(endosymbiotic bacteria)은 ATP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막과 막전위를 통제하는 데 필 요한 유전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소형 발전기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부분은 이 세포들이 가장 기본적인 요 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요소 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균 스타일 이라 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3,000개 정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불과 40개 정도의 유전 자만 남아 있다.
- 숙주세포에게는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숙주 유전자는 복사본당 가용 에너지가 커져서 숙주세포 자신의 유전체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토콘드리 아 부대가 ATP를 넘칠 정도로 제공해주는 덕에 숙주세포는 DNA 를 마음껏 축적하며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미토콘드리아는 DNA 를 세포의 핵 속에 맡겨놓고 다니는 헬리콥터 부대로 생각할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체는 자신의 불필요한 DNA를 버림으 로써 더욱 가벼워졌고, 따라서 더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어 세포핵 유전체가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거대해진 유전체가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로 이어지는 유 전적 재료를 제공해주었다. 미토콘드리아가 복잡성 자체를 이끌어 낸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복잡성이 허용된 것이다. 이것 말고는 에너지 문제를 극복할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모든 진핵세포가 하나의 공통 선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을 보 면 이런 일이 지구 위에서 딱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복잡한 생명체의 등장은 전적으로 단 한 번의 우연한 사건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바로 한 단순 세포가 또 다른 단순 세 포를 자기 안에 끌어들인 사건 말이다. 이런 연합이 복잡한 세포들 사이에서는 흔할지 몰라도 단순 세포에서는 대단히 희귀하다. 그 리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전혀 확실하지 않았다. 이 긴밀한 두 파트너가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함께 적응에 성공하 고 나서야 그 후손들도 번성할 수 있었다.
- 온갖 종류의 희귀한 사건이 우연히 종분화를 촉발할 수 있다. 물 리적 격리나 유전자의 큰 변화들뿐만 아니라 환경적, 유전적, 심리 적인 사건들도 종분화를 일으킨다. 산맥이 솟아올라 종을 두 지역 으로 나누었을 때도 종분화가 일어날 수 있고, 바닥 근처에서 새끼 를 낳던 어류를 수면에서 낳게 만드는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때도 종분화가 일어날 수 있고, 암컷 도마뱀이 짝을 찾을 때 빨간 점 대 신 파란 점이 있는 수컷을 더 선호하는 변화가 일어났을 때도 종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
통계적 증거에서 드러나는 핵심 포인트는 종분화의 촉발 요인은 어떤 단일하고 급격한 운명의 변화, 진화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예 측 불가능한 운명의 변화여야 한다고 페이젤은 강조한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돌연변이는 모두 어떤 식으로는 이롭게 작용 했던 것들입니다.”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돌연변이가 '올바른'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생기는 편견 때문이다. 혹스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 다 벌어 진 다음에 전체 과정을 뒤돌아보면 마치 놀라운 일련의 사건이 벌 어졌던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 행운의 조건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라 느끼는가? 행운은 우주가 당신에게 안겨주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일련의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당신이 로미오 같은 운명의 꼭두각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 대신 그(셰익스피어나 로미오가 아니라 와이즈먼)가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 행운은 당신이 무작위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이득을 뽑아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자신의 행운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 행운의 여신을 자기편으로 만들다
19세기의 화학자 윌리엄 퍼킨(William Perkin)은 콜타르로부터 무색의 항말라 리아제인 퀴닌(quinine)을 합성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결과물은 선명한 보 라색의 화합물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합성 유기염료였다.
하이킹을 다녀온 후 가시 돋힌 풀씨들이 바지에 자꾸 달라붙는 것에 영감을 받아 발명가게오르그 데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은 벨크로 접착테이프를 개발했다.
듀폰사의 화학자 로이 플런킷(Roy Plunkett)은 새로운 프레온 냉매에 대해 연 구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담아둔 용기가 미끌미끌하게 코팅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테플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는 코팅 방법의 시초다.
1930년대에 벨연구소의 공학자 칼 잰스키(Karl Jansky)는 대서양 횡단 무선 통신에서 발생하는 잡음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이 수신기 잡음이 하늘의 한 고정된 방향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으로 전파천문학(radio astronomy)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한다.
1960년대에 바넷 로젠버그(Barnett Rosenberg)는 전기가 세균에 미치는 영향 을 연구하다가 일부 세포가 세포분열 능력을 잃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결 국 그 범인은 백금 전극에서 나온 부산물로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가장 효 과적인 항암제 중 하나인 시스플라틴이다.
- 사실 2가지 방법론 모두 강점과 약점이 있다.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가 희박하고 실험을 반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경우, 어떻게 든 정보를 쥐어짜내는 데는 베이즈식 방법론이 훨씬 효과가 뛰어 나다. 천체물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1987년 근처 은하계인 대마젤 란은하에서 초신성 폭발이 관찰되어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 오는 중성미자의 흐름에 관해 오랫동안 제기된 이론을 검증해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관측이 어려워 겨우 24개밖에 감지되지 않았다. 반복 가능한 자료가 풍부하게 존재하지 않는 한 빈도주의 방법론은 소용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정보를 빌려 오는 유연성을 가진 베이즈식 접근방법은 여러 경쟁 이론들의 장 점을 평가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분석을 할 때는 충분한 근거를 갖춘 이론이 제공하는 좋은 사전정보가 도움이 된다. 그런 사전정보가 없으면 베이즈 분석이 결국 쓰레기 정보를 입력해서 쓰레기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법정에서 베이즈식 방법론의 도입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에 베이즈식 방법론은 여러 원천에서 얻은 뒤 죽박죽 섞인 증거를 종합하기에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이런 문제 가 있다. 베이즈 통계를 사용한 1993년 뉴저지의 친자확인소송에 서 법정은 배심원들이 각자 얻은 사전정보를 이용해 피고가 아이 의 친부일 확률을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자 배심원마다 친부 가능 성을 최종적으로 예상한 통계치가 제각각으로 나왔다. 카네기멜 론대학교의 래리 와서먼(Larry Wasserman)은 이렇게 말한다. "베이 즈식 방법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습니다. 아주 포스트모더니즘적이 죠.”
- 물리학에서 확률에 대한 의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초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는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의 결정론적 법칙 때문에 우주의 미래가 영원히 결정 되어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러다가 양자역학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은 전자나 다른 기본 입자처럼 아주 작은 대상을 기술하는 이론으로, 물질의 속성을 이 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근본이 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 논 란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근본적인 수준에서 확률과 무작위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을 크게 못마땅해하며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십 년 후에는 비선형 동역학(non-linear dynamics) 연구 를 통해 심지어 뉴턴의 고전물리학조차 그 핵심에는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있음이 밝혀져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쯤 되고 보 니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마치 하나의 통합원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희망을싣고 온 운석
약 1억 년 정도마다 거대한 것이 지구를 강타한다. 만약 그 일이 지금 일어 난다면 우리를 모두 싹 쓸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마지막으로 일어났던 충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약 6,550만 년 전에 직경 10km 정도 되는 운석 하나가 오늘날의 멕시코 지역에 있는 유카탄 반도를 강타했다. 탄소와 황 성분이 풍부한 기체가 폭발 한 바위층에서 분출하면서 범지구적 재앙을 촉발했다. 여기저기 불꽃이 솟 아오르고, 하늘은 암흑으로 변하고, 지구가 냉각되고, 산성비가 쏟아져 내렸 다. 그리고 불과 몇 달 만에 공룡들은 죽고 말았다. 암모나이트, 대부분의 조 류(birds), 육상식물을 비롯해서 바다를 헤엄치고 하늘을 날던 다른 거의 모 든 파충류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반면 포유류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됐다. 포유류 역시 종의 절반 정도가 멸종했지만 여기서 살아남은 포유류는 체구가 작고, 번식이 빠르고, 재주가 많은 동물들이었고, 이 충격으로 풍부하게 생겨난 동물 사체 등을 먹고 살 수 있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숨어서 불길과 산성비를 피할 수 있 었다. 이들은 민물 생태계 안이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물 생태계는 죽은 생물체의 유기물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 때문에 바다나 육 지보다 재앙에 직면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더 뛰어났다.
이 생존자들이 결국 지구를 물려받게 된다. 생물권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포 유류는 공룡이 차지하고 있다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해양파충류의 생태적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됐다. 화석 기록을 보 면 진화적 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나오던 6,500만~5,500만 년 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친척뻘 생물종의 유전체를 비 교해서 진화계통수를 재구성하는 분야인 '분자 시계(molecular clock)' 연구에 서는 살짝 다른 그림이 나온다. 여기서는 운석 충돌 후 1,000만 년이 지날 때까지도 포유류가 진화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간에, 그때 데뷔한 한 포유류 혈통이 바로 우리 영장류다. 만약 그때 그곳에 운석이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지금 여기 있지 못했으리라 말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레이엄 로턴)
- 있었다. 이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거나 숨어서 불길과 산성비를 피할 수 있 었다. 이들은 민물 생태계 안이나 그 주변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물 생태계는 죽은 생물체의 유기물질이 꾸준히 유입되었기 때문에 바다나 육 지보다 재앙에 직면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더 뛰어났다.
이 생존자들이 결국 지구를 물려받게 된다. 생물권이 점차 회복됨에 따라 포 유류는 공룡이 차지하고 있다가 비어버린 생태적 지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해양파충류의 생태적 지위까지도 차지하게 됐다. 화석 기록을 보 면 진화적 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나오던 6,500만~5,500만 년 전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친척뻘 생물종의 유전체를 비 교해서 진화계통수를 재구성하는 분야인 '분자 시계(molecular clock)' 연구에 서는 살짝 다른 그림이 나온다. 여기서는 운석 충돌 후 1,000만 년이 지날 때까지도 포유류가 진화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어쨌든 간에, 그때 데뷔한 한 포유류 혈통이 바로 우리 영장류다. 만약 그때 그곳에 운석이 충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지금 여기 있지 못했으리라 말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레이엄 로턴)
- 지금은 진화가 우리보다 선수 쳐서 이 기술을 사용했음이 밝혀 지고 있다. 생명은 이미 무작위 신호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것이 다. 어떤 상황에서는 잡음을 조금 넣어주는 것이 주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감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가재의 경우 고요한 물보다는 난류로 흐르는 물속에서 포식자 물고기의 미묘 한 지느러미 움직임을 더욱 잘 감지한다. 사람도 살짝 잡음이 보태 졌을 때 스크린 위의 희미한 이미지를 더 잘 인식하는 것으로 밝 혀졌다.
- 영국 생물학자 마이클 챈스(Michael Chance)는 버밍엄대학교에 있 을 당시인 1959년에 변화무쌍한 행동을 의미하는 '프로테우스적 행동(protean behaviour)'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 을 진화적으로 설명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런 설명은 영 국의 두 생태학자 피터 드라이버 (Peter Driver)와 데이비드 험프리 스(David Humphries)가 경쟁자나 먹잇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 록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동물이 많다는 사실을 관찰하면서 시 작됐다. 그럼 자연선택은 예측이 어려운 행동을 만들어내는 메커 니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이에 따라 그 천적은 더욱 뛰어난 예측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진화의 군비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당장 떠오르 는 2가지 전략은 실제 의도를 숨기는 것과 거짓 신호를 내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2가지 모두 적이 훨씬 뛰어난 지각 메커니즘을 진화시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진화론적으로 안정적 인 전략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군비경쟁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 다는 뜻이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이렇게 군비경쟁이 악화일로를 걷지 않게 막는 방법은 게임이론가들이 말하는 '혼합전략(mixed strategy)'을 채택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은 확률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 전략이다. 이렇게 되면 예측 능력을 아무리 구사해도 소용 이 없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지휘관들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 고 주사위 던지기로 순찰항로를 무작위로 골라 다녀서 적군의 구 축함을 피했다. 자연에서는 천적 간의 상호작용이 이와 비슷한 방 식으로 일어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양미리(sand eel)는 보통 떼를 지어 빠르게 움직이는 방식으로 포식자에 반응한다. 하지만 얕은 물에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아주 다른 행동이 나온다. 어군이 깨지면서 각각의 양미리가 무작위 방향으로 쏜살같이 움 직이며 포식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드라이버와 험프리스는 프로테우스적 행동이 종에게 경쟁력을 부여해주기 때문에 주변에서 흔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 다. 그러고 나니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사례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갈매기들이 사방에서 급강하하며 침입자 를 떼로 공격하는 행동이나, 임팔라 무리가 교란을 당했을 때 갑작 스럽게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것 도 다 그런 사례였다.
- 이 프로테우스 전략(proteanism)으로 포식자와 피식자 간의 기이 한 상호작용도 일부 이해할 수 있다. 새들은 새끼들이 들어 있는 둥지로부터 천적의 관심을 따돌리기 위해 부상 입은 척할 때가 많 다. 이 어미 새들은 속도와 방향을 무작위로 변화시키면서 새끼들 로부터 포식자의 관심을 돌리고자 하는 목적과 자기 자신의 생존 을 확보하려는 목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방, 도 마뱀, 쥐가 공격받을 때 경련을 일으킨 듯 행동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유도 포식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전략이라 생각하면 의미가 통한다.
- 경쟁 상황이 찾아오면 사람들 속에서 잠자고 있던 프로테우스 가 밖으로 튀어나온다. 여기서 생물학자들은 사람과 다른 동물들 간에 중요한 차이를 알아챘다. 인간의 경쟁자는 또 다른 인간인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뉴멕시코대학교의 심리학자 제프리 밀러 (Geoffrey Miller)는 이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인간만의 독특한 인 지 방식을 갖게 된 것은 우리 선조들의 행동에서 일어난 이런 개 선이 핵심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지닌 무작위로 생각할 줄 하는 재주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해주는 창조적 재능의 원천 인지도 모른다.
- 진화이론가들은 진화적 적응을 질서와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과 정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연선택은 무작위적인 무질서로부터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규칙성을 구축하는 것 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프로테우스적 행동은 이런 단순한 관점을 거부한다. 프로테우스적 행동은 무작위적이면서도 적응에 이롭고, 카오스적이면서도 자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생물학 자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 즐거운 사건이긴 한데 불확실할 경우에는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가 더 어렵기 때문에 더 오랜 시간 거기에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 고, 따라서 고조된 감정도 그만큼 더 오래 지속된다. 심리학자들이 '즐거움의 역설(pleasure paradox)'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이것 때문 에 생긴다. 즉,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이해하게 되면 뜻하지 않았던 사건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린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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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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