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생물과 산다

과학 2023. 11. 5. 14:03

- 미생물은 또한 우리가 세상에 데뷔할 때, 제일 먼저 나와 환영해 줍니다. 분만 과정에서 산모가 엄청난 산고를 치르는 동안 아기는 산도“를 지나며 거기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온몸으로 맞이합니다. 따라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와 자연 분만된 아기는 처음부터 다른 미생물을 접하게 됩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가 자연 분만으로 나온 아기에 비해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보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작은 친구들이 아기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 아기는 세상에 나온 다음부터 자기를 보듬어 주는 사람들과 음식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다양한 미생물을 받아들입니다. 특히 모유는 좋은 음식뿐만 아니라 좋은 미생물까지 아이에게 전해 주죠. 대표적으로 모유에 많이 들어 있는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a는 아기의 면역계 형성을 돕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연 분만과 모유 수유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착한 미생물 집단'이 아기 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몸바탕, 즉 '체질' 형성에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 우리 대장균은 대표적으로 비타민 K와 B 등을 생산한다. 혈액 을 응고시키는 효소 가운데 일부는 비타민 K가 있어야만 가능하니 까, 우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작은 상처에도 곤혹을 치를 것이다. 비 오틴biotin이라고도 하는 비타민 B1은 또 어떤가? 신진대사를 활발 하게 해 주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하여 인간의 탈모를 막아주니 말이 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 우리가 건재하는 한 인간은 이런 비타민 결핍증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대장 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먹은 음식과 함께 들어오는 잡균들은 끼 어들 틈이 없다. 결국 우리가 제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해가 되는 미생물이 인간 몸속으로 침입하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 는 우리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한 인간에게 성심껏 보답하고 있다. 
- 고균은 다른 생물이 살 수 없는 험악한 환경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미생물 집단이다. 고균의 영문명은 'Archaea' 이다. '고대의' 또는 '원시의'를 뜻하는 접두사 'archaeo-'에서 유 래했다. 이들의 서식 환경이 원시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되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끓는 물에 가까운 온천수나 사해처럼 염분 농도 가 높은 곳이 고균의 보금자리다.
흥미롭게도 방귀 성분의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메탄가스 는 일부 고균만이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고균만의 특별한 작품이다. 결국 우리 장 속에도 많은 고균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고균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극한 환 경에서 자랄 수 있는 고균의 특성은 생물공학적 응용 측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예컨대 섭씨 100도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고균의 효소는 산업적 응용 후보 0순위로 꼽힌다.
세균 또는 박테리아Bacteria 영역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능력을 지닌 원핵생물이 속해 있다. 능력에 비해서 이들의 모양은 단순하 다. 대부분의 세균은 동그랗거나 갸름하다. 동그란 세균을 구균 또는 알균, 갸름한 세균을 간균 또는 막대균이라고도 부른다. 어중간 한 경우도 있는데, 이를 구간균이라고 한다. 또 강낭콩처럼 구부러 진 막대균은 비브리오, 구불구불한 모양의 세균은 나선균이나 스 피로헤타라고 부른다. 세균의 크기는 보통 0.2~10마이크로미터 정도다.
작은 균이라는 뜻의 세균은 이름부터가 비호감이다. 국어사 전에서도 균을 "동식물에 기생하여 발효나 부패, 병 따위를 일으 키는 단세포의 미생물로 정의하고 있다. 심각한 오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일부 병원균 때문에 모 든 세균이 박멸의 대상으로 매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 낙동강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큰 강은 모 두 서해와 만난다. 이는 서해로 오염 물질(영양분)이 더 많이 유입 되고, 그만큼 부영양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적조는 서해보다 남해에서 더 자주 발생한 다. 왜 그럴까? 중요한 해답 하나는 갯벌에 있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우리나라의 서해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갯벌 생태계의 생동감 넘치는 근간은 바로 미생물이 이루고 있다. 갯벌 1제곱킬로미터 km2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하루에 분해하는(먹어 치우는) 유기물 양은 웬만한 도시 하수처리장에서 처리하는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갯벌의 탁월한 정화 능력이 서해를 적조로부터 지킨다고 볼 수 있다. 숲이 '지구의 허파'라면, 갯벌은 '지구의 콩팥이다. 그리고 콩팥의 정화 기능은 미생물이 담당한다. 어디 이뿐인가? 갯벌에서 왕성하게 자 라는 미생물은 좀 더 큰 생물들의 먹이가 되어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니 조개와 소라, 낙지 등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맛난 해산물은 미생물이 주는 선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 광합성 능력의 원조는 바로 '남세균' 또는 '시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라고 부르는 세균이다. 남세균은 진핵생물인 조 류와 마찬가지로 광합성을 한다. 이 때문에 한때 남조류bluegreen algae라 불리기도 했다. 광합성 과정에서 산소를 생성하는 남세균 은 지구상 생명체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시 지구에 는 기체 상태의 산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식물보다 수백만 년 앞 서 광합성을 시작한 남세균 덕분에 식물이 출현할 즈음에는 지구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이미 10퍼센트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세균의 형태는 다양하다. 이분법으로 분열하는 단세포도 있고, 다중 분열법으로 군체를 형성하는 것도 있으며, 사슬 모양으로 증식하는 것도 있다.
약 30억 년 전에 출현한 원조 광합성 세 균들의 활동으로 원시 지구의 대기 산소량이 꾸준히 늘어났다. 화 석 증거에 의하면, 지구 대기 중에 산소가 축적되는 시점부터 다양 한 생명체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소로 호흡을 하면 상대 적으로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크고 다양한 생물이 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셈이다. 다시 말해서, 미생물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다양한 삶은 애당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 말라리아 병원체는 인류가 아프리카 안에서 활동하던 시절 마 주친 유인원류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탈아프리카를 감 행한 인간 숙주와 함께 말라리아 병원체도 퍼져 나갔다. 인류가 정 착 생활을 하기 전에 유행했던 말라리아는 주로 잠복기가 길고 치 사율이 낮았다. 간혹 짧은 잠복기와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돌연변 이체도 있었지만, 이렇게 숙주를 급사시켜 버리는 병원체는 곧 사 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미처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전에 기존 숙주 와 함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규모로 무리를 지어 이 동 생활을 하던 고인류를 상대로는 고병원성 말라리아가 위세를 떨치지 못했다.
신석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정착하여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 다. 이전 시대보다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게 되면서 정주 인구가 늘 어났다. 말라리아 병원체 입장에서는 감염할 수 있는 숙주가 늘어 난 것이니 그야말로 물고기가 물 만난 격이었다. 특히 그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인류와는 잘 맞지 않았던 (짧은 잠복기와 높은 치사율 때 문) 말라리아 병원체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한 곳에서 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새로운 삶의 형태는 공격적인 말라리아 병원체가 번성하기에 아주 좋은 기반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 간이 열대열원충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 즉 신석기부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인간과 이 미생물이 서 로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열대열원충의 맹독성에 대한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 유산균(또는 젖산균)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젖산을 만드는 세균 무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들이 만드는 대표적인 발 효 식품으로 김치와 요구르트 등을 들 수 있다. 젖산균의 일종 인 '락토바실루스 아시도필루스Lactobacillus acidophilus'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장에 사는 세균이다. 라틴어 학명을 그대로 풀어 보면, 산성을(acido-) 좋아하는(-philus) 젖에 있는(lacto-) 막대균 (-bacillus)이다. 이름 그대로 이 세균은 산성 조건(pH 5.0 이하)에서 잘 자란다. 1900년에 갓난아기의 똥에서 처음으로 분리된 이 세균은 현재 미국식품의약국US FDA에서 그라스GRAS 등급, 즉 일반 적으로 안전하다고 간주되는generally recognized as safe 물질로 분 류하고 있다.
- 「프롤로그」에서 언급한대로, 산모는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품은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자신의 미생물을 한껏 전달해 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엄마의 유익균은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본 격적으로 전달된다. 미생물이라고 해서 젖가슴 주변에 있는 피부 미생물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충격적일 수 있겠는데, 모유는 무 균 상태가 아니다. 유산균을 비롯하여 다양한 세균이 들어 있는 일 종의 프로바이오틱 음료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모유에 있는 유산균은 가슴 피부에서 발견되는 세 균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유선염을 앓고 있는 산모가 건강한 모유에서 분리한 세균 무리를 먹었더니 항생 제보다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섭 취한 세균이 그 여성의 모유에서도 발견되었다.
먹은 세균이 모유에서 나오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해당 세균이 창자에서 유선 (젖샘)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는 사실인 것 으로 밝혀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유익균이 면역세포의 에스코트(?) 가운데 엄마의 장에서 젖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 뱃속 아기는 양수에서 물장구치며 이를 마시기도 한다. 따라서 양수에 미생물이 존재한다면 태아의 장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테 다. 실제로 배내똥 세균의 절반 이상이 양수에도 존재한다. 결론적 으로 자궁과 태아 모두 무균 상태가 아니라는 얘기다. 믿기지 않겠 지만, 미생물 친구들은 우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미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면 양수에 있는 세균들은 또어 디서 왔단 말인가? 놀라지 마시라! 이들의 근원지가 산모의 입과 장(창자)이란다. 양수 속 세균도 모유 속 세균의 경우와 같은 방법 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입과 장에 사는 세균이 모유와 양수로까지 건너가 살고 있다 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마음을 추스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 다. 우리는 세상에 나오기 전에 부모에게서 유전자와 함께 다양한 미생물을 받는다. 그렇다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몸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 즉 체질은 유전자와 미생물의 합작품이 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 냐하면 체질이란 것이 일단 타고난 후에는 교환 불가능한 유전자 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었다면, 체질 개선은 원천적으로 불가 능할 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미생물을 통해 체질을 개 선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장내미생물상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은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단백질 분해 능력이 강한 장내미생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 유산균이 풍부한 음 식은 일차적으로 건전한 장내 세균 집단을 복원시키고, 이차적으 로 건강을 지켜준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아셨던 걸까? 다양한 발효 음식을 남겨 주 신 조상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튼튼한 장을 유지해 주는 건 강식을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김치와 젓갈, 된장, 고추장에다 식혜와 막걸리까지 우리 음식 중에는 발효 음식이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서구식으로 변화된 우리 식 습관이 염증성 장질환자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이 5000년 동안 먹 어 온 고유의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 자칫하다 남의 똥을 먹 을 수도 있으니! 반대로 좋은 장내미생물상을 유지하고 있으면 건 강에 덤으로 돈까지 찾아온다. '똥값'이 '금값'이 된 시대가 왔으니 말이다.

- 사람으로 치면 친척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종류의 세균이 있다. 이름만 잘 살펴보아도 이들 세균의 독특한 특성을 알 수 있 다.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Deinococcus radiodurans의 속명은 구균coccus 앞에 '끔찍한' 또는 '소름 끼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deinos'가 붙어 있다. 종명은 방사능(radio)과 내구성(-durans)을 뜻하는 말의 조합이다. 결국 소름 끼칠 정도로 방사능에 잘 견디는 세균이라는 얘기다. 보통 4개가 붙어사는 이 세균은 인간 치사량의 1500배에 달하는 방사능에 노출되어도 살아남는다.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는 1956년 미국의 한 농업 시험장 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방사선을 이용한 통조림 식품 멸균법을 개발하던 연구진이 강한 방사선 처리에도 살아남아 깡통 속의 고 기를 상하게 한 세균을 분리한 것이다. 이들은 같은 유전자를 여러 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사선에 의해 손상된 유전자를 즉시 대체 할 수 있고,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 덕분에 강력한 방사선에 견딜 수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이 세균을 방사능 폐기물 처리 및 오염 지역 정화에 응용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 하고 있다.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는 '열'을 뜻하는 그리 스어 'thermos'와 '물'을 뜻하는 라틴어 'aqua'에서 유래한 세균명 이다. 1966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온천수에서 분리된 세균이다. 1966년,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온천수에서 분리된 세균 답게 섭씨 70도에서 가장 잘 자라고, 80도까지도 거뜬하다. 하지만 50도 아래로 내려가면 얼어(?) 죽을 판이다. 고온에서 사는 만큼 이 세균의 효소들은 내열성이 강하다. 대표적으로 이 세균의 DNA 중 합 효소Taq DNA polymerase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험관에서 원 하는 유전자를 증폭하는 데 널리 쓰였다. 유전자를 증폭할 때는 열을 가해 이중나선을 떨어뜨리는 과정이 들어가는데, 기존의 효 소들은 열에 약해 한 번 복제할 때마다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번 거로움이 있었다. 또한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었다. 반면 열에 강한 Taq는 계속 재사용될 수 있어서 그만큼 널리 쓰이면서 현대 생명공학의 핵심 기술이 되었다. 이 기술은 범죄 수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사건 현장에 있는 혈흔 또는 머리카락 한 올 에 있는 소량의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증폭하여 결정적인 증거 를 확보하는 바로 그 기술이다."

- 월바키아 Wolbachia는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감염 세균 집단일 것이다. 1924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1990년대까지 이 세균에 대 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곤충과 선충 등의 세포 안에서 내부공 생체의 형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보통의 배양 방식으로는 검출하기 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곤충과 선충 종의 75퍼센 트 가량이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부분의 선 충은 월바키아가 안에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요컨대 항생제를 처리해서 이 세균을 죽이면 숙주인 선충도 따라 죽는다.
월바키아는 일부 곤충에게 극단적인 성차별을 한다. 수컷을 없 애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당 곤충의 수컷에 감염하면 남성 호 르몬을 억제해서 수컷 곤충의 성을 서서히 암컷으로 전환시켜 버 린다. 반면 암컷에 감염하면, 암컷이 알을 낳을 때 모두 암컷만 태어나게 만든다. 월바키아를 지닌 채 말이다. 이처럼 난자가 정자와 수정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생식 방법을 단성 생식 (또는 처녀 생식)이라고 하는데, 여러 곤충뿐만 아니라 일부 어류와 양서류, 파충류에서도 발견되는 생식 방법이다. 단성 생식에 월바 키아가 항상 관여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자연 상태에서 그 구성원들끼리 교배하여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생물 집단을 생물학적 종biological species이라고 한다. 독특한 구애 행동처럼 자연계에는 다른 종과의 교배를 막는 여러 가지 생식적 격리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각 종의 고유한 특성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월바키아에 감염된 말벌에 항생제를 처리했더니, 이 말벌 은 다른 종과 교미하여 잡종 말벌을 낳았다. 월바키아가 말벌의 바람기를 막고 있었단 말인가?
최근에는 월바키아가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숙주로 전달할 수 있고, 전이된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세균이 곤 충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고, 미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 다. 나아가서 아주 오래전에 어떤 세균들이 숙주 세포로 들어와 미 토콘드리아와 엽록체로 진화했듯이, 월바키아 또한 세포소기관으 로 진화될지 모를 일이다.

- 면역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선천성 면역'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가지고 있는 방어 체계다. 건물의 무인경보시스템처럼 선천성 면역은 항상 감시 활동을 하면서 신속히 대응한다. 이 방어 체계가 특정 침입자를 인식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 일범이 재차 들어와도 더 신속하고 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간혹 길을 가다가 불량배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혈액도 온몸을 돌아다 니다 보면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때 일차 적으로 백혈구가 나서서 식균 작용을 통해 침입자들을 물리친다. 메치니코프가 발견한 면역 반응이다
- 선천성 면역의 방어가 뚫리면 '후천성 면역'이 나선다. 후천성 면역은 선천성 면역보다 많이 느리지만 확실히 기억한다. 따라서 특정 침입자에게 특이적으로 반응하며, 다시 만나면 훨씬 더 빠르 고 강하게 응징한다. 이런 맞춤형 반응은 식세포가 침입자를 파괴 해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후천성 면역은 다시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세포성 면역은 감염된 세포 자체를 직접 공격하여 파괴하는 방식이다. 체액성 면역 은 흔히 면역 반응으로 알려진 항원-항체 반응이다. 에를리히가 주장한 면역 반응이다.

- 학적으로도 흙냄새는 생명의 향기가 맞다. 그 냄새의 실체는 '방선균菌, Actinomyces'이라는 특정 토양 세균 집단이 뿜어내는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1200여 종의 방선균은 대부분 흙에서 산다. 자연의 흙 1그램에는 수백만 마리의 방선균이 들어 있다. 가장 흔 한 토양 세균이다. 실처럼 뻗어 자라는 세균이라는 한자 이름대로 방선균은 마치 곰팡이처럼 자라면서 땅속 영양분을 빨아들인다. 토양 방선균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 가운데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휘발성이 강한 물질이 있다. 우리의 후각은 이 화합물에 민감하다. 한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 질 때나 숲 속의 촉촉한 오솔길을 거닐 때 흔히 맡을 수 있는 냄 새다. 지오스민은 흙냄새의 주성분이다. 

- 정상적으로 피부에 사는 미생물의 90퍼센트 정도가 포도상구균이다. 피부에 있을 때 이들은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 만 잘못된 장소, 예컨대 피부에 상처가 나서 살속으로 들어가게 되 면 문제가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제공되는 수분과 양분 덕분에 이 들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여기서 세균의 성장이 우리에게는 감염 이기 때문이다.
'황색포도상구균'을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식중독 관련 기사는 여름철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이들은 노랗기 때문에 라틴 어로 금색을 의미하는 종명을 붙여 Staphylococcus aureus라는 학명이 생겼다.
포도상구균은 건조와 염분, 자외선 등 여러 환경 스트레스에 상대적으로 잘 견딘다. 이 런 특성은 피부 표면에서 살아가는 데에 안성맞춤이 다. 우리 몸에서 황색포도 상구균의 주 서식지는 콧 구멍이다. 인구의 약 20퍼 센트가 이 세균을 콧속에 늘 간직하고(?) 있다. 나머 지는 일시적으로 있기도 하고,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차이는 개개인의 면역계 특이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황색포도상구균을 가지고 있어도 별 문제 는 없다. 콧구멍을 후빌 때에만 각별히 주의하면 된다. 자칫 사방에 이 악명 높은 세균을 묻힐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사소한 부주의로 황색포도상구균이 음식에 들어가면 식중독이 생길 수 있다.

- 효모는 한마디로 숨은 요리사다. 각종 빵과 음료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쳐 가기 때문이다. 현재 1500종 넘는 효모가 알려져 있지만, 우리의 파티를 위해서는 단 1종, 바로 빵효모와 그의 형제 들만 있으면 된다.
빵효모의 학명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 Saccharomyces cerevi- siae'는 각각 '당Saccharo'과 '곰팡이myces', '맥주cerevisiae'를 뜻하는 라틴어를 조합한 것이다. 어원만 보면 '맥주효모'로 부르는 게 맞 다. 하지만 이 효모는 빵과 맥주의 발효를 모두 수행하니까 빵효모 라 불러도 무방하다. 게다가 맥주 발효에는 다른 '형제 효모(변종)' 들도 참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빵효모라는 명칭이 더 나 은 것도 같다.
- 효모는 발효 과정에서 탄산가스(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 때문에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고 맥주 거품이 생긴다. 사실 효모를 뜻하는 영어 yeast (이스트)는 네덜란드어 gist에서 넘어왔고, 이 말은 '끓는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맥주 발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효의 산물로 생성되는 이산 화탄소 때문에 위로 떠오르는 효모(상면 발효 효모)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뭉쳐서 바닥으로 가라앉는 효모(하면 발효 효모)도 있다. 상면과 하면 발효 효모를 각각 따로 사용하여 만든 맥주가 에일ale과 라거lager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가 대표적인 상면 발효 효 모이고, 유명한 하면 발효 효모로는 사카로미세스 카를스베르겐 시스 Saccharomyces carlsbergensis를 들 수 있다. 보통 상면 발효 효모 는 하면 발효 효모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발효가 더 빨리 끝난다.

-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들
위 소제목은 단순한 문학적 은유가 아니다. 과학적 사실이다. 연소와 호흡은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 반응이기 때문이다. 인공호 흡과 모닥불에 하는 부채질을 생각해 보자. 모두 꺼져가는 생명과 불을 살리기 위한 노력 아닌가! 핵심은 산소다. 도대체 여기서 산 소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
국립국어원에서는 연소燃燒를 "물질이 산소와 화합할 때에 많 은 빛과 열을 내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과학 용어를 사용 하여 재정의하면, 물질이 산화(산소와 화합)되면서 에너지(빛과 열)를 내는 현상이다. 우리도 각 세포에서 음식을 소화해서 얻은 영양분 을 태우고 있다. '칼로리를 태우라'는 다이어트 구호에서 이런 사실 을 엿볼 수 있다.
- 연소와 호흡은 모두 같은 산화 반응이고, 반응의 최종 산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이다. 연소 과정에서는 빠르게 한꺼번에 에너지 가 방출되지만, 호흡에서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에너지가 방출된 다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떤 물질이 산소 원자(O)와 결 합하거나 수소 원자(H)를 잃어버리는 것을 산화라고 한다. 이 것의 정반대는 환원이다. 상대적으로 더 환원된, 즉 수소 원자 가 더 많은 물질은 그만큼 에너지가 많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외워도 좋다.
원자는 물질의 기본 구성 단위다. 원자는 하나의 핵과 이를 둘 러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의 수는 원자에 따라 다르다. 핵과 전자는 각각 양성(+)과 음성(-)을 띠는데, 평소에는 이 둘이 상쇄되어 있어서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원자 수준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자는 수시로 원자 사이를 오간다. 이 것이 화학 반응이다. 따라서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가 전자를 잃 으면 양이온이 전자를 얻으면 음이온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가 먹은 밥이 몸 안에서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살펴보자.
녹말(다당류)이 주성분인 밥은 입과 위, 소장 등을 통과하면 서 소화되어 포도당과 같은 단당류 형태로 분해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 혈액에 의해 각 세포로 전달된다. 세포에 도달한 포도당 (GHzO)은 단계적으로 산화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최종적으 로 이산화탄소(CO2)로 전환된다(광합성의 역반응임을 주목). 달리 말 하면, 포도당이 분해되면서 여기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수소 원자(H)와 전자(e)에 담겨 방출되는데, 이 에너지를 세포가 사용 한다. 그리고 남겨진 빈 용기인 수소 원자와 전자는 산소와 결합하여 물(HO)이 되니, 산소는 수고하고 지친 수소 원자와 전자를 품에 안아 쉬게 함으로써 대부분 생물(모든 생물이 그러한 것은 아님에 유의 바람. 271쪽 참조)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생명체 내에서의 에너지 흐름은 결국 전자의 흐름이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른 힘이 야구공에 실려 이동 하는 것처럼, 수소 원자(H)와 전자(e)를 매개체로 이루어진다. 이 는 193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örg, 189~1986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생명이란 쉴 곳을 찾는 전자다."

- 공생의 길을 개척한 미토콘드리아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는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 들어내는 세포내 발전소다. 앞서 소개한 믹소트리카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생명체를 제외한 모든 진핵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 다. 그런데 이 세포내 발전소의 모양과 특성이 심상치 않다. 미토콘 드리아는 세포의 핵에 있는 유전물질과는 별도로, 자기만의 유전 물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제와 단백질 합성도 독립적으 로 수행한다.
1967년,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미토콘드리아가 스파이로헤타와 비슷한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내놓았다. 그녀에 따르면, 먼 옛날에 유산소 호흡을 하며 자유생활을 하던 세균이 다른 세포에게 잡아 먹혀 내부로 들어와 독립성을 거의 잃 어버리고 자리를 잡으면서 현재 진핵세포(49쪽 그림 참조)가 탄생했 다는 것이다. 발표 당시에는 냉소를 받았던 (특히 남성 과학자들로부 터) 그녀의 '세포내공생설細胞內共生說, Endosymbiotic theory'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를 지지하는 증거가 많이 발견되어, 이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 세균은 여러 면 에서 닮은꼴이다. 일단 크기가 비슷하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 리 보솜ribosome은 세포질에 있는 것과 다르고, 세균의 것과 똑같다. 게다가 미토콘드리아와 세균의 유전체가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 마굴리스의 이론에 대해 우리나라의 철학자 김동규는 “포식자 내부에서 공생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이야말로 미토콘드리아에게 배워야 할 지혜"라는 통찰력 있는 설명을 내놓았다(자세한 내용은 그 의 책 『멜랑콜리아』를 참조하자). 먹잇감 입장에서는 포식자의 내부라 는 엄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이고, 반대로 포식자는 이 먹잇감을 소화시키려고 갖은 애를 썼을 터인데, 결국 이 둘은 새로운 공존의 기술을 터득했고, 진화의 신기원을 이루어 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 철학자의 생각을 접하고 나 니, 살아있는 모든 개체는 혼자가 아니라 미지의 다수가 우연히 만 나 장구한 생명의 역사 속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 생체'라는 생각이 든다.

- 2015년 독일의 한 연구진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는 대장균과 흙에서 흔히 발견되는 세균인데, 연구진들이 아시네토박터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각각 다른 아미노 산의 생산 능력을 없애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얄궂게도 이들이 만들 수 없는 아미노산을 뺀 배양액에 두 세균을 함께 넣고 지켜보았다. 우리에게는 호기심 천국이지만, 불의의 장애를 입은 세균들 입장 에서는 죽음이 기다리는 지옥 전차에 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세균 모두 꿋꿋하게 자라는 것이 아닌가! 최첨단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대장균이 자기 몸 길이만한 가는 관을 만들어 아시네토박터 세균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나노튜브nanotube가 두 세균의 세포벽을 관통하여 서로 필요로 하는 아미노산을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라진 환경에 맞추어,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절묘한 공생의 기술이다.
우리 인간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타인의 노력을 존중해 주고 타인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 능력을 나누어 서로를 돕는, 그런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공생하며 사는 법을 미생물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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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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