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라는 착각

심리 2024. 4. 28. 05:50

-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우리의 뇌는 시종일관 주어지는 감각 데이터로부터 지각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부 분 명확하고 안정된 해답에 이른다. 뇌는 외부 세계에 직접 접근 할 수 없기에 지각을 만들어내야 한다. 뼈로 이루어진 깜깜한 공 간에 들어앉아 감각기관이 그에게 공급해주는 신호를 이해해 야 한다(이런 신호들은 절대로 외부 세계를 명확하거나 완전하게 보여주 지 못한다). 우리의 뇌는 발달 과정에서 바깥의 사건 중 어떤 것이 이런 신호를 유발하는지 학습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지각을 만들어내고, 이런 지각을 세상이 어떠하며, 이 세상에서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이론, 생각, 아이디어, 예감, 의견, 신념, 확신으로 분류할 수 있다.
'뇌가 어떻게 지각을 만들어낼까'라는 질문을 연구하다 보니, 나는 지각의 변화 증상이 나타나는 심리 질환에 점점 더 관심이 생겼다. 현실과 유리된 세계상을 지니고 있어 즉 그들의 뇌가 현실과 유리된 세계상을 만들어내 타인들이 볼 때 ‘미쳤다’는 생각이 드는 질환 말이다. 그런 질환 중 하나는 조현병이다. 조 현병 환자는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현실과의 연결 을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환각 증상, 즉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지각과 망상, 다시 말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생각과 확신을 경 험한다. 그리하여 나는 신경과에서 신경정신과로 방향을 틀어 뇌가 세계상을 만들어낼 때 어떤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변하는 지에 천착해보기로 했다.

- 이 책에서 나는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최 근 뇌과학 이론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확신이 생겨나는 기본 메 커니즘과 기능을 설명할 것이다. 신경과학 외에도 철학, 진화론, 유전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정신의 학을 넘나들며 논의해보려고 한다.
핵심 명제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 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종종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견하게 해주고, 그런 사건에 더 쉽게 대응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설은 가설일 따름 이다. 즉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정이므로, 언제든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확신하고 싶어 하고, 확신을 고집스럽게 부여잡고 싶어 하는 경향은 심리학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이 다. 하지만 확신은 가설에 불과하므로,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다 른 관점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중요한 전제다. 이 책이 보여줄 관점이 우리 모두가 열린 태도로 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끔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덱사메타손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를 약리학적으로 본뜬 것이라 그것을 투여하면 뇌가 극도로 예민해지기에, 지각 이 변해 있지도 않은 위험을 감지할 수 있고, 편집증적 증세를 보일 수 있으며, 나아가 환각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 면서 그런 증상이 금방 사라져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담당 의사 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그 약을 투여할 때는 약간 조심 해달라 말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뇌에 전이되지는 않았겠지만, 만일을 위해 뇌 MRI를 한번 더 찍어보라고 한다. 헬렌 S.는 친구 에게 솔직히 말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녀 는 믿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이성적인 인간인 내가, 스트레스 호르몬 과다로 잠깐 돌아버릴 수 있구나. 정말 완전히 홱 돌아버릴 수 있구나!'

-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깊은 고랑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이렇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사고한다. '정상'과 '비정상' 같은 이분법적 분류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뜻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카테고리적 사고는 심리학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윌 러드 올포트 Gordon Willard Allport의 말마따나 "인간의 정신은 카테 고리를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 다. 정돈된 삶을 살려면 그래야 한다."
- 그러나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경향은 참으로 위험하다. 흑백 논리로 이어지고, 극복하기 힘든 고랑이 파일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 사이의 고랑은 특히 깊다. 정상과 비정 상의 중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머릿속에 그어진 이 두 카테고리 사이 경계선은 너무나 예리하다. '정상'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비정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다 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며, 낯설고 끔찍하고, 심지어 공공에 위험 한 사람이다.
- '돌았다', '미쳤다'는 단어는 명백히 부정적 어감을 지니고 있 고, 다른 사람들과 관련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 보통 그 사 람들이 기본적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신 경정신과 의사의 경우는 다르다. 전문가는 사람들을 낙인찍지 않고자 증상을 명명하는 개념을 사용하고, 증상을 분류하기 위 해(때로는 너무 빠르게) 진단을 내리며, 이런 토대 위에서 치료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 심리적 증상과 신경정신과적 진단은 돌에 아로새긴 것처럼 변치 않는 것이 아니며, 종종 없던 일이 될 수 도 있다. 즉 증상이 없어지고 진단이 철회될 수도 있다. 이런 단 순한 이유만으로도 신경정신과 의사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비정 상이라고 낙인찍는 개념을 무조건 피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런 식의 낙인을 단호하게 저지하는 것이 바로 신경정신과 의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보기에) 잘못된 확신을 부여잡고 있는 이유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우리에겐 아주 명쾌하게 보이는데 다른 사람은 왜 올바로 보지 않으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 특히 유혹적인 추론은 이것이다. 바로 그 사람이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렸다는 것! 간단하게 말 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자신의 확신을 그렇게 확고하게 믿을 까? 이 질문을 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굳은 확신이 우리에 게 어떤 역할을 할까, 그것이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겨날까, 그리 고 어떻게 심리 질환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종종 현실 과의 연결을 잃을까? 여러분은 우리의 세계상이 환상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때는 현실과 더 많이 일치하고, 어느 때는 더 적 게 일치하는 환상이다. 더 적게 일치할수록 '제정신이 아닌 것' 이 된다.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 앞서 말했듯 '내게 도움이 되니까 믿는다'라는 진술을 종교적 믿음의 적절한 근거로 받아들이면서, 많은 신자에게 실용적 합 리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 신자들에게 인식적 합리성은 믿음이 주는 실용적 유익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진다. 삶에서 의지가 되 고, 방향을 제시하고, 의미를 주는 것에 대한 필요가 경험적으 로 검증 가능한 진실에 대한 필요보다 크다. 이제 이런 데 비중 을 두는 건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선험적 확신으로 표방되는 신념은 위험과 부작용도 동반한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확신을 지닌 개개인이나 집단이 충돌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종교를 빌미로 일어난 전쟁 목록은 길며, 여기에 희생됐고 여전히 희생되는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 다. 열정적으로 종교적 믿음에 반기를 드는, 확신에 찬 무신론 자가 주로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방금 전에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신무신론자'가 바로 그런 논지를 편다.
- 그러나 우리는 이런 논쟁에는 끼어들지 말고, 종교적 믿음이 인식적으로 비합리적 확신이며, 이는 종종 볼 수 있는 '정상적 인' 형태의 비합리적 확신이라는 점만 확인하기로 하자. 종교적 믿음은 '어쩌다 보니' 비합리적이 된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인식적 합리성의 원칙을 그 자체로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 종교적 믿음이 널리 퍼져 있음을 감안할 때 나아가 인식적으 로 비합리적인 확신이 합리적인 확신보다 훨씬 더 '통상적'이라 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식적으로 비합리적 확신이 근본적으로 망상적인 것이며, 심리 질환의 특성이라고 말하는 건 상당히 위태로운 주장이 되는 것이다.
- 음모론은 모든 사건 에서 원인 혹은 의도를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이용한다. 우리는 순수한 우연이나 카오스를 참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일 더하기 일'을 하고,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고,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단순한 설명을 좋아하고, 인과관계, 패턴을 찾아낸다. 심 지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부분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권모술 수나 어떤 힘을 찾아낸다. 우리는 이웃한 사건을 서로 연결한다. 그 사건들이 그냥 서로 우연히 가까이 있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우리의 사고는 이런 인지 왜곡에 취약해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 볼 예정이다) 종종 비합리적 판단에 이른다. 음모론이 꽃피는 아 주 비옥한 토양을 형성하는 것이다.
비합리적 확신의 모든 예는 인식적 비합리성이 결코 망상만의 특성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도 만연한 것 임을 보여준다. 종교적 믿음이나 미신처럼 인식적 합리성에 크 게 신경 쓰지 않는 확신이든, 이성의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는 굉 장히 비이성적인 음모론이든, 인식적 비합리적 확신은 예외라 기보다는 규칙에 가깝다. 대부분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평범한' 것들이다.

- 자신의 인지 왜곡을 보지 못하는 맹점 편향은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환상을 갖게끔 한다. 대부분은 스스로와 스스로 의 신념을 인식적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 를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합리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면 서 자신의 비합리성을 증명하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 두가 '제정신이 아닌 것일까, 모두가 자신이 합리적이라는 망상 에 빠진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확신이 얼마 나 합리적인지에 대한 숙고가 보여주는 것은 인식적 비합리성이 결코 망상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말은 망상과 '정상적' 확신을 구분해야 하는 신경정신과 의사에게는 나쁜 소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망상과 '정상적' 확신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 만 《DSM-5》에서 제안하듯 합리성을 기준으로만 구분하는 것 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다른 저자들도 종종 추가적 인 기준을 도입했다(물론 이런 기준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능적 제한, 망상적 확신으로 말미암은 주관적 고통, 또는 이런 확신을 비슷한 문화적 배경에서 대부분의 사람과 어느 정도로 공유하는가 하는 질문도 기준이 된다. 56 그러나 여기서 나는 망 상에 대한 신경정신과적 진단의 개선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 다. 그 문제는 심지어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망상적 사고와 '정상적' 사고 가 우리 생각만큼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망 상은 인식적으로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상적' 사고 역 시 우리 생각만큼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제정신 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생각보다는 '더 제정 신이 아닌 듯하다. 또는 최소한 소위 '정신 나간' 확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신이 헤까닥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 조현병 발병에 유전적 요인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 는 것은 현대의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동원한 연관성 연구가 제 공하는 중요한 인식 중 '하나'일 따름이며, 이런 연구들은 이외 에도 이 질환의 발병 메커니즘에 대해 다른 중요한 정보를 제공 한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유전적 위험 변이가 어떤 기능을 하 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소위 유전 자 발현gen expression이다. 유전자에 암호화된 유전 정보가 어떻 게, 유기체의 어떤 세포에서 번역되어 기능이 발현될까? 조현 병에 대한 GWAS에 따르면 (그리 놀랍지 않게도) 확인된 유전자 중 대부분은 뇌에서, 더 정확히는 글루타메이트 glutamate나 도파민 같은 특정 뇌 메신저의 기능과 관련해 발현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더해 (약간 더 놀랍게도) 면역 체계의 세포에서 발현되는 몇몇 유전적 위험 변이가 발견됐다. 12 이런 중요한 발견은 이후 조현병 연구자들로 하여금 면역 기능이 조현병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다수의 유전적 위험 변이가 있고, 해당 유전자가 여러 조직에서 발현된다는 것은 유전학의 역할이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경우를 '다인자 적 polygenic' 영향이라고 말한다.
이를 약간 자세히 살펴보자. 단일 유전자로 말미암은 유전병 도 있다. 유전자 하나가 변화되어 유기체의 작동 방식에 특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단인자 유전병의 대표적인 예가 낭 포성 섬유증이다. 이 질환에서는 하나의 유전자 변이가 기도에 서 지나치게 걸쭉한 점액을 만들어, 종종 폐렴 같은 중증 호흡기 감염을 일으킨다. 이런 단인자 유전병은 대물림된다. 즉 부모 모 두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자녀에게 물려주 면 자녀는 불가피하게 이 질병에 걸리는 것이다.13
조현병 같은 다인자적 질환은 이런 방식으로 직접 유전되지 는 않는다. 그러나 유전적 소인이 전달되어 질병 발현에 위험을 높인다. 질병의 위험은 유전된 유전자 변이 수에 비례해 증가하 는데, 이들 각각은 그 자체로 질병을 유발하지 않지만, 합쳐져서 위험성을 높인다. 이를 유전적 '위험 프로파일risk profile'이라고 한다.

- 모든 현상이 또는 더 일반적으로 모든 생명현상이 나타 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늘 다양한 차원에서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이 문단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상 앞에서 일어나 물을 가지러 부엌 쪽으로 갔다.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단박에 떠오르는 대답은 '목이 말라서'라는 것이다. 생리학자는 물을 찾는 내 충 동을 자신의 지식에 기초해 인간의 수분 및 전해질 대사의 조절 로 설명할 것이다. 심리학자의 대답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심리 학자는 내가 방금 집중력이 떨어졌으며, 부엌으로 간 것은 잠시 쉬고 싶은, 혹은 더 나아가 -프로이트적 시각에서 볼 때 구 강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표시였다고 말할지 모른다. 프 로이트를 신봉하는 사람은 하필 지금 물을 마시려는 욕구가 내 유아기의 성 심리적 발달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럴듯하게 설 명할지도 모른다. '왜'라는 질문에서 내 인생사를 환기하는 것이 다. 반면 진화생물학자는 내 개인사보다는 호모사피엔스의 발 달사에 시선을 맞추어, 위험한 탈수에 처하지 않게 하는 반응으 로 인간이 갈증이라는 주관적 느낌을 느끼도록 한 유전적 장비 가 어떻게 자연선택에서 이점으로 작용했는지 설명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동물학자이자 행동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Nikolaas Tinbergen은 어떤 범주로 유기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몰두해 각각의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왜'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 질문은 메커니즘과 관계된다. 즉 행동의 기반이 되는 생리학적 과정이다. 두 번째 질문은 개인의 발달사, 곧 어떤 행동이 일생에 걸친 유기체의 발달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로써 이 두 질문에서 '왜'라는 물음은 직접적 원인(근접 원인이라고도 한다)과 관련된다. 이런 원인들은 직접적으로 개인에게서, 그리고 개인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데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막 물 한잔을 가져온 것에 관련된 직접적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는 생리학자들과 생리 학이 약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틴베르헌의 세 번째, 네 번째 질문은 근본적인 원인과 관 련된다(궁극적 원인이라고도 한다). 이런 원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 니라, 진화 과정의 결과로 전반적인 종족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 을 말한다. 근본적 원인은 말하자면 진화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세 번째 질문은 소위 어떤 현상의 적응적 adaptive 가치와 관련된 다. '특정 행동(내지 이런 행동에 기반이 되는 유전자)이 우리 종족에게 자연선택상 이점을 동반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잔의 경우 내 행동의 적응적 가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탈수를 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하는 개인은 더 건강하고 오 래 살며, 그로써 재생산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질문은 진화 과정에서 행동 양식이나 다른 생명현상 이 계통발생적으로 생겨난 것과 연관된다. 종이 발달하는 동안 특정 행동 양식 형성에 기여한 메커니즘이나 상황에 대한 것이 다. 현재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는 복잡한 체액과 전해질 조절이 계통발생적으로 더 오래된, 옛날의 단순한 체액 조절 형태에서 어떻게 형성됐는가 하는 질문도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내가 왜 물을 가져왔는가, 하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진화생물학자 가 가장 잘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작은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고, 빠듯한 자원을 두고 적과 경 쟁해야 했던 선조들에게는 불신과 편집증적 경향이 생존에 유 익을 주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더욱 조심하고 위험을 더 빨리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초자연적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사회집단에서 명망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조현병의 특징으로 보는 정신병 증상은 원시사회에서는 저세상의 영이나 귀신과 접촉하는 것으로 해석됐을 것이고, 그 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게 종종 사회적으로 특별한 샤먼이라 는 지위를 부여했을 것이다.25 정신분열증을 경험하도록 하는 유전자 변이는 원시인류가 수천 세대에 걸쳐 발달하는 과정에 서-싯다르타 무케르지의 말을 빌리자면 유전적 향상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유전적 질환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 가벼운 정신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창의적일 뿐 아니라 재생 산율도 더 높은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재생산율도 높아야 해당 유전자 변이에 대해 긍정적 선택이 일어난 것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영국의 행동생물학자 대니얼 네틀 Daniel Nettle은 이 런 주제에 천착했다. 그는 몇 년 전 동료 헬렌 클레그 Helen Clegg와 함께 성인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통해 정신증 경 향, 창조성, 재생산 성공 간의 연관을 연구했다. 조사 대상자 중 에는 작가, 예술가, 영화제작자를 비롯해 창조적 직종에 종사하 는 사람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35 설문 조사 결과, 신비한 생각 이나 눈에 띄는 지각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보고하는 사람 중 창조적 직업군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도 드러났듯 여기서도 정신증 경향과 창조성의 연관성 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의 결정적 발견은, 특이한 경 험을 한다는 응답과 삶에서 한 사람이 맺는 파트너 관계의 수사 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연구는 늘 한계가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36 네틀과 클레그의 이 연구에서는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파트너를 구하는 데 성공한 정도 여기서는 단순히 파트너 관계의 수- 를 정말로 재생산의 성공으로, 그로써 성적 선택에 의미 있는 것 으로 봐도 될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연구에서 정신증 경향과 자녀 수의 상관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해 피임 수단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시대에 자녀 수를 따지는 건 별로 신빙성 있는 잣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연구의 한계를 염두에 두더라도 네틀과 클레그의 연구 결과는 최소한 망상적 사고를 포함해 가벼운 정신증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창조적이고, 더 쉽게 파트너를 구할 수 있음을 시사 한다. 이런 결론은 최신 유전 연구를 통해서도 뒷받침된다. 즉 조현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 프로파일37을 지닌 사람 중 예술 협 회에 속하거나 창조성이 요구되는 직업에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밖에 조현병에 대한 위험 프로 파일과 섹스 파트너의 수도 긍정적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 여성의 경우에는 조현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 프로파일이 첫 출 산을 더 빨리 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녀 수와는 지금까지 기껏해야 아주 미미한 상관관계만 입증 됐을 따름이다.  실제 성적 선택에 대한 증명이 분명히 이루어 지지 않았다 해도, 확실한 것은 유전 연구가 보여주는 이런 결과 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파트너 관계를 맺거나 자녀를 두는 경우가 더 적다는 사실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것이다. 조현 병에 대한 유전적 위험이 약간 있지만, 건강한 사람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는 데 전혀 불이익을 당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파 트너 관계 혹은 자녀 수가 더 증가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 이다.
- 요약하자면 신경정신과 의학자들은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 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연구 결과는 정신적 으로 건강한 상태와 병든 상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최소한 증상의 심각성만 가지고 결론을 내릴 수 없음을 말 이다. 연구 결과들은 '정상적' 확신과 '정신 나간' 확신이 생겨나 는 토대가 되는 메커니즘, 즉 뇌 속 가정과 관련해 범주적 구분 은 존재하지 않고 연속체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지각과 생각, 행동에서의 비합리성이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실수 失手의 비용을 계산하다 보니 나타난다는 생각을 오류 관리 이 론 Error Management Theory, EMT이라 부른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와 마티 헤이즐턴 Martie Haselton이 창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지 왜곡과 그에 기반한 잘못된 확신은 결코 진화의 과실이나 인지적 충수돌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전 반적으로 적합성을 높이기 때문에 적응적인 특성이다.5 비합리 적 확신은 실수율을 더 높일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낮은 실수는 용인하고 높은 비용이 드는 실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실 수율을 높이더라도 적응적인 행동인 것이다.
- 버스와 헤이즐턴의 오류 관리 이론은 원래 남성과 여성이 상 대방의 이성적 관심을 평가하는 데 서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이성의 호감을 과 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이 여성의 성적 의도를 과대평가 하면, 과소평가할 때보다 번식의 성공이라는 면에서 중대한 오 류를 범하지 않게 된다. 진화적 적합성에 관한 한 이성의 호의를 얻고자 하다 실패하는 것보다 번식 기회를 놓치는 것이 손해가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는 이성의 호감, 정확히 말하면 남성이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면에서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역시 오류 관리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평가의 오 류를 범했을 때 어떤 값을 치러야 하는가로 말이다. 여성이 남성 이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고 과대평가해 그의 구애 에 쉽게 응하면, 임신할 경우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남성이 임신시켜놓고 나 몰라라 할 경우에 말이다. 반면 남성의 그런 관심을 과소평가하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좀 늦어 질지는 몰라도 번식의 성공 면에서 피해가 더 적을 수 있다. 따 라서 오류 관리 이론에 따르면 남성의 호감 표현을 극도로 진지 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는 여성의 진화적 적합성이 더 커진다.
-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의 세계상이 부모나 교 사, 다른 권위자(가령 의류 매장 판매원)가 진실이라고 전달해준 데 기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의 말마따나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 가기 위해 굉장히 방대한 지식이 필요한데, 모든 지식을 세부적 으로 검증할 시간이 없다. 가령 당신이 한 부족의 구성원이고 그 부족에서는 건강한 아이를 얻기 위해 신에게 염소를 제물로 바 치는 관습이 있다면, 당신이 아이를 가졌을 때 제물을 바치는 걸 그만두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건 안전한 거니까! 15 우리가 믿는 것과 관련해서는(그리고 실질적 이유에서 세부적으로 는 검증할 수 없는 것에서) 그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보다 누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했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따라서 사 람들이 진화론을 믿지 않고 지적 설계를 믿는다면, 그건 그들이 과학자보다 자신에게 이런 '진실'을 가르쳐준 사람을 더 신뢰하 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과학은 믿 을 것이 못 된다고 말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진화적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확신을 형성하는 행동은 굉장히 적응적이다. “자연선택은 어린아이의 뇌가 부모와 부족 의 어른들이 하는 말은 뭐든 믿고 보게끔 한다.” 

- 우리는 비합리성이 확률은 낮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치명 적 오류를 피하는 데 도움을 주므로 적응적이라는 것과, 때로는 진실을 탐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다 보니 비용편익 을 위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적응적이라는 걸 살펴봤 다. 또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도 비합리적 경향이 생 겨난다(그런 다음 확증 편향의 도움으로 비합리적 확신이 굳어진다). 아 울러 우리가 실용적인 이유에서 지식과 확신과 신념을 다른 사 람에게서 그냥 넘겨받기 때문에도 비합리적 경향이 생겨난다. 확실한 진실을 추구하느라 섹스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진화 적 적합성에 마이너스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비합리적 확신 이 이렇듯 단지 부정적 결과를 피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도 있을까?
우리 스스로와 세상을 더 좋게 바라보게끔 하는 인지 편향이 라 할 수 있는 긍정적 환상이 그런 적응적 이점을 줄 수 있다. 무 엇보다 '평균 이상 효과(대부분의 운전자는 자신이 평균 이상으로 운전 을 잘한다고 확신한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가)'나 '낙관적 편향(대부분 의 사람은 현재보다 미래를 실제보다 더 낙관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을 실제보다 더 건강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직업적 실패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다)'이 이에 속한다. 이런 긍정적 환상은 다른 많은 왜곡과 마찬가지로 오류 관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장기간 직장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곤 할 때 드는 비용이 한번의 성공으로 만회되고도 남는다면, 취직에 대한 낙관적 편향이 장기적으로는 좋게 작용한다고 하겠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 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더 성공적이라는 경 험적 증거도 존재한다.

- 오류 관리 측면에 더해 긍정적 환상은 진화적 적합성에 직접 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미치기도 한다. 이런 효과 중 하나는 평 균 이상 효과 중 한 가지 버전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관련한 평 균 이상 효과다. 경험적 연구에서 응답자의 95퍼센트가 지능, 매 력, 유머 감각 같은 특성과 관련해 자신의 배우자가 평균적인 배 우자보다 더 낫다고 답했다. 자녀와 관련해서도 이런 효과를 증명할 수 있다. 자기 자녀의 자질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열렬히 칭찬하는 부모를 보면서 속으로 눈을 흘겨본 경험이 없 는 사람들이 누가 있겠는가? 캐나다 심리학자 데니스 크레브스 와 캐시 덴턴의 말처럼, 자녀의 약점을 간과하는 부모의 능력은 때로는 어느 정도 망상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이런 과대평가는 배우자 관계를 안정시키고, 후손을 더 잘 돌볼 수 있게끔 만들어 번식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진화적 적합성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 법률가이자 사회과학자인 예일대학교 댄 카한 Dan Kahan 교수 는 확신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 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31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기후변 화나 진화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확신은 관련 정보가 얼마 나 있는지, 혹은 그 지식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게 전달되는 지와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그런 확신이 자신 이 속한 집단이나 정치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지느 냐가 중요하다. 가령 단결이 중요하냐, 자기 결정이 중요하냐,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느냐, 이익을 관철시키느냐, 자연과 조화 를 이루어 사느냐, 자연을 지배하느냐.32 카한에 따르면 확신은 그 자체로 독립된 산물이 아니라 늘 배경에 좌우된다. 그는 서 로 다른 집단이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이 다르 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다른 견해 사이의 논쟁은 오히려 '문화적 지위 경쟁'이라는 것이다.33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데이터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34 민주당 지지자 중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 중 89퍼센트는 기후변 화가 인간의 활동으로 초래되었다고 보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지지자는 41퍼센트만 그렇게 보았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에게 서는 교육 수준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는 교 육수준과 무관하게 기후변화가 인간이 초래한 것이라고 믿는 비율이 25퍼센트 이하였다. 이런 데이터 역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보다 정치적 성향이 기후변화에 대한 확신에 더 강 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스포츠든, 종교든, 정치든, 기타 이데올로기적 질문이 든, 우리가 표방하는 확신이 인식론적 의미에서 진실한가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은 많은 부분에서 어느 사회집 단에 소속되는지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 메르시에와 스페르베르에 따르면 확증 편향은 흔들림 없이 자 신의 확신을 고수해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생각하도록 설득하 고,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에 진화적으로 적응적이다. 이런 생 각은 실험으로 뒷받침된다. 실험 결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이론의 반대 증거나 논지를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하지 않 았지만, 자신이 대변하는 이론에 관한 한 반대 논지를 받아들이 는 걸 힘들어했다.41 우리의 확증 편향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논증하고 대변하도록 해준다. 스스로가 자신의 의견을 정말로 확신해야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신의 이런 의사소통적 기능이 진실된 내용을 검증하고 경우 에 따라 수정하는 능력보다 사회적 존재로서 진화하는 데 더 중 요했던 듯하다.

- 자연선택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인식적 합리성에 대한 선택적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에 대한 선택적 압력은 인식적 합리성이 선택의 이점을 동반하 는 만큼만 존재한다. 그리하여 선택적 압력은 아주 다양한 방향 에서 작용하므로 우리는 지각, 사고, 믿음, 행동 등 여러 면에서 비합리적일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됐다. 다시 말해 인식적 비합리성은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며, 결코 병리학적, 즉 망상 적 확신이나 취약한 인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진화적 안경을 쓰 고 관찰하면 인식적 비합리성은 '버그'가 아니라 '특징'이며, 오 류가 아니라 기능이다.
인식적 비합리성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승격시키자는 이야기 가 아니다. 그러나 인식적 비합리성을 악마화하거나 법적으로 금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진화론적 설명은 비합리성을 좋은 것 으로 여겨야 하는지, 나쁜 것으로 여겨야 하는지 판단하지 않는 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의 비합리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아무것 도 배울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 뇌는 긴 세월 얼굴에 대한 경험에 근거해 얼굴이 바깥쪽으로 볼록하다는 예측에 굉장히 높은 정확성을 부여한다. 뇌는 이런 예측을 너무나 강하게 '신뢰하는 바람에 오목한 얼굴(가령 음영 때문에도 그렇게 보일 수 있을 때)에서 기인한 감각 데이터는 전혀 주 목하지 못한다. 이는 볼록한 얼굴이 아니라 오목한 얼굴을 한 생 명체가 사는 행성으로 여행한 뒤에야 달라질지도 모른다. 오목 한 얼굴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얼굴이 밖으로 볼록 하다는 예측에 정확성을 덜 부여하고, 감각 데이터에 더 높은 정 확성을 부여할 것이다. 즉 감각 데이터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예측 처리 이론에 의하면 뇌는 엄밀히 말해 예측 기계일 뿐 아니라, 정확성 가중치 부여 기계이기도 한 것이다.
- 예측 처리 이론이 주장하듯 뇌가 정말로 예측 기계라고 할 때, 뇌의 예측은 확률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로지 확 률을 기준으로 예측한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인식적 - 합리적 존 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 예측 기계의 작업 방식은 오히 려 학술 논문을 정확히 살피기보다는 직감에 이끌리는 학자와 비슷해 보인다. 이런 학자는 자신이 수행할 실험을 선택할 때도, 진실을 캐내는 면보다는 혹시 가설에 위배되는 실험 결과가 나 와 커리어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더 신경 쓴다. 그 때문 에 본인의 가설을 확인해주는 데이터에만 주목하고, 가설에 모 순되는 데이터는 애초에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보거나, 다른 학 자들이 조작한 결과로 본다. 그리고 데이터에서 본인이 원하는 패턴만 임의로 읽어내고, 스스로를 대부분의 학자보다 훨씬 우 월하다고 느낀다. 이런 학자는 진실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 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추구한다.

-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확실하게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확신이 사실은 그리 확실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뇌가 부여하는 정확성과 무관하게, 확신은 언제든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 뇌가 예측 기계로서 아주 유능하게 확신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이런 확신을 굳건히 고집한다 해도, 확신은 가설일 따름 이다. 게다가 확률에 의거할 뿐 아니라, 미래에 우리에게 돌아올 유익에 의거해 만들어지는 가설인 것이다. 밖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정신 질환의 경우가 이에 해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험적 증거는 확실하다19- 예측 오 류 신호에 대한 볼륨이 한껏 높아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금 예측과 감각 데이터의 조절이 균형을 잃었음을 의 미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아주 약한 오류 신호만 발생시키 는, 정확도가 별로 높지 않은 감각 데이터가 한껏 높아진 도파민 의 볼륨 때문에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측 기계에서 '소리 높은' 예측 오류는 예상이 틀렸으며, 내적 세계 모델을 합당하게 조절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강한 예측 오류 신호를 발생시키 는 감각 데이터는 중요한 게 틀림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도파민 이 과잉되면 일반적으로는 주목하지 않았을 감각적 자극이 중 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비정상적 현저성aberrant salience'이라 한다.
- 버밍햄에서 연구하는 이탈리아 철학자 리사 보르톨로티는 망 상과 비합리적 확신에 대한 논문에서 명백히 부정적 결과를 초 래함에도 망상을 고수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 음을 강조했다. 33 비정상적 현저성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스트 레스를 겪어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 제 할 일을 하면서 일 상을 살아내기 어렵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 망상적 설명을 통해 '아하!' 경험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인지적 기능 수준도 향상된다. 보르톨로티는 나아가 세계가 혼란스럽게 지각되는 상태에서 망상은 일관성의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경험하는 사건에 다시금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혼 란 속에서 질서가 생기며, 통제감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에 부합하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연 구에 따르면 망상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정신 질환에서 회복된 사람들보다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들은 직업상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종교에 심취한 사람보 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되찾은 의미감과 통제감을 다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십 분 이해가 간다. 비정상적 현저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이 자신의 확신을 더 꼭 붙잡게 하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불안감에 대처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상으로 고통스럽거 나 절망하거나, 여러 가지 문제가 빚어진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망상적 확신을 부여잡을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로 써 망상적 확신은 최소한 실용적 의미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게 다가오는 현실 세계보다 통제감을 가지고 '돌아버린 세상에 사는 것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 잠시 요약해보자. 우리는 확증 편향이 뇌의 일반적 기능 원리를 보여준다는 걸 살펴봤다. 뇌는 과거에서 미래를 추론해 예측을 한다. 이런 기능 원칙이 우리의 생각뿐 아니라 지각도 결정한 다. 경험적 연구가 보여주듯 망상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지각적 확증편향이 상당히 약하다. 이것은 예측 위계질서의 낮은 수준 에서는 상대적으로 감각 데이터에 비해 예측에 별로 비중 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로써 비정상적 현저성이 나타 나며, 망상도 생겨난다.
반대로 망상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인지적 확증 편향이 상당히 강하다. 이것은 다시금 위계질서적으로 높은 수준의 예 측에 상당히 높은 가중치가 부여된다는 뜻이며, 망상적 확신이 교정 불가능한 것이 이로써 설명된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정 보가 나와도 기존 확신에 맞는 것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기 때문 이다. 위계질서상 높은 수준에서 이렇게 예측에 높은 비중을 두 는 것은 위계질서상 낮은 수준에서의 예측과 감각 데이터의 균 형이 무너진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확실성을 상쇄하는 메커니즘일지도 모른다.

- 화재경보기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법적으로 모 든 공간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단 볼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나는 최근까 지 전단 볼트가 무엇인지 몰랐다. 전단 볼트는 농기계의 엔진이 나 프로펠러 엔진 같은 기계에 과부하 보호 장치로 종종 설치된 다. 강한 과부하가 일어났을 때 갑작스러운 힘의 전달을 막음으 로써 기계 부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단 볼트에는 과부하가 일어났을 때 브레이크 포인트 break point 역할을 하는 홈 이 있다. 전단 볼트가 절단된 후에도 기계는 계속 돌아갈 수 있 다. 단, 기능이 제한된다.
그런데 전단 볼트와 망상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호주의 심리학자 라이언 매케이 Ryan McKay와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 이 편집증적 망상이 일종의 전단 볼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을 맨 처음 제안했고, 이후 다른 연구자들이 이에 착안해 연구 를 계속했다. 이 생각에 따르면 편집증적 망상은 감정적으로 심 한 스트레스를 받는 등 극심하게 힘든 상황에서 '믿음 형성 기계 belief formation machinery'가 무너지는 걸 막아준다. 즉 평소 '정상적' 확신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는 메커니즘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망상적 확신의 형성은 전단 볼트와 같은 일종의 보호 메커니즘이며, 그 때문에 적응적일 수 있다.
편집증적 사고 경향의 적응적 가치를 비유하는 화재경보기 원 칙과 달리, 전단 볼트 원칙은 정신 질환 증상으로서 편집증적 망 상에 관련한 솔깃한 설명을 내놓는다. 전단 볼트 메커니즘은 특 히 정신 질환의 초기에 개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비정상적 현 저성을 강하게 경험함으로써 굉장히 불안한 상황에서 말이다. 모든 것이 의미 있어 보이는데 설명할 수 없고, 위험하게 다가온 다. 지금까지의 내적 세계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자칫 무너지려 한다. 이런 경우 편집증적 사고는 시스템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걸 막아준다는 의미에서 전단 볼트 역할을 할 수 있다. 기계는 계속 작동하지만 제한된 기능을 갖는다. 즉 현실과 더 이 상 부합하지 않는 확신의 도움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주관적으 로 매우 불안하게 경험되는 세상에서 편집증적 망상은 당사자 가 제대로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기능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망상은 적응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절단된 전단 볼트(즉 망상의 형성)는 마비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대신 세상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망상의 주된 공통점은 둘 모두 불안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망상과 연관해 우리는 이런 긍정적 효과를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 적 현저성이 있을 때 망상적 설명이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심리 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우리는 망상적 확신을 하고 그 확신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예측과 감각 데이터의 비중 변화 로 말미암은 비정상적 현저성에 대한 상쇄 메커니즘이라는 점 을 예측 처리 이론에 근거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화재경 보기와 전단 볼트 원칙을 비유로, 망상 경향이 제공하는 적응 적 이익도 도출해봤다. 이렇듯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점은 음 모론에 대한 믿음과 기타 인식적 비합리적 확신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머릿속 예측 메커니즘의 가장 우선되는 원칙은 장기적으 로 예측 오류를 줄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또는 가까운 친척) 에게 특히 힘든 결과를 초래하는 예측 오류를 말이다.18 예측 오 류란 우리의 내적 모델이 세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뜻 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불안은 늘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종류의 스트레스 말이다. 우리는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어 한다. 그것이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고, 잠 재적 위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볼 때 어떻게든 이런 스트레스를 경감 시키고 싶은 건 자명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적응적인 일일 것이 다. 우리 머릿속 모델은 모델일 뿐, 결코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세상은 100퍼센트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논리적으로 일관 성을 유지하려다 보면 늘 예측의 오류가 생기고, 많은 것이 설명 할 수 없는 듯 보인다. 혼란스럽고 무작위적이고 모순적이다. 그 러므로 우리가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모든 설명 모델을 대대적 으로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 우리가 피하고 싶은 종류의 스트레스 말이다. 우리는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어 한다. 그것이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고, 잠 재적 위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볼 때 어떻게든 이런 스트레스를 경감 시키고 싶은 건 자명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적응적인 일일 것이 다. 우리 머릿속 모델은 모델일 뿐, 결코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세상은 100퍼센트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논리적으로 일관 성을 유지하려다 보면 늘 예측의 오류가 생기고, 많은 것이 설명 할 수 없는 듯 보인다. 혼란스럽고 무작위적이고 모순적이다. 그 러므로 우리가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모든 설명 모델을 대대적 으로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 주관적으로 더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독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통제 상 실감'을 동반하는 힘든 사건으로 음모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 다고 보고했다.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거나 행운이 그들에게 언제 나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그들은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 주관적으로 더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독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통제 상 실감'을 동반하는 힘든 사건으로 음모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 다고 보고했다.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거나 행운이 그들에게 언제 나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그들은 미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 머릿속에서 확신이 생겨나는 것을 살펴보면, 망상 역시 다른 확신과 기본적으로 똑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한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은 우리 모두의 머릿속 에서 작동한다. 종종 드러나는 인식적 비합리성에도 적응적이 기 때문이다(진화는 진실성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실행되는 정도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때로는 현실과의 접점이 별로 없어질 만큼 극단적 형태를 띨 수도 있다.

-망상을 유전적 요인에 의해 촉진되고, 상황적 영향으로 말미망상을 유전적 요인에 의해 촉진되고, 상황적 영향으로 말미암아 유발되는 인식적 비합리성의 극단적 형태로 본다면 '정상' 과 '비정상'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것이 다시금 분명해진다. 이 는 기본 메커니즘 차원에서뿐 아니라 현상적인 차원에서도 그 러하다. 망상이 생겨나는 것과 '정상적' 확신이 생겨나는 것에는 범주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만든 고 랑은 인위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표명하는 확신을 보고 '미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대부분 이런 '정신 나간' 확신은 이해력이나 논리적 사고력의 장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 런 확신은 우리 자신의 확신과 정확히 마찬가지로 나름의 주관적 경험 가운데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다.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우리의 확신은 주변의 이해가 가 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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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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