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벳의 실험실에서는 당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서의 자유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지를 따지기보다는 고개를 들어서 당신 주변의 환경이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라. 리벳은 미소를 지었고 그의 인상적인 연구를 학자들이 검증하려 하 면 할수록 리벳의 실험 결과는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리벳의 연구는 교실에서 밀려난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단서가 된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자인 클로드 스틸은 낮은 점수를 받는 학생들이 부정적인 환경의 신호에 둘러싸여 있고, 그럴수록 학생들 은 학교가 자신이 성공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확인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부정적인 환경의 신호들 은 그들을 악순환으로 더 경쟁에서 밀려나게 만든다. 이것은 대단히 반직관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은 교실에서 밀려난 학생들을 노력의 부족으로 판단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노력을 하게 만드는 환경의 신호에 주목한다. 그들이 관찰할 때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고난이도 문 제를 의욕적으로 풀려 하지 않고 이미 자신은 풀 수 없다고 먼저 생각한다. 이것은 노력과 무관한 문제다.
- 누군가의 낮은 위치와 무너진 열등감은 반대의 사람에게는 조용한 우월감과 성취감이 된다. 심리학자들이 관 찰하면 할수록 이 환경의 신호가 누군가에게는 선순환이, 또 다른 누 군가에게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거대한 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예 일대학 심리학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은 우리가 어렸을 때의 아주 사 소했지만 결정적이었던 '인지 문화 에서부터 답을 찾고 있다.
심리학자들의 관찰 결과 전문직 부모는 시간당 2,000개의 단어를 아이들에게 구사하지만 노동 계층의 부모는 고작 1,300개의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이 세 살만 되어도 전문직 가정의 아이는 3,000만 개의 단어를 듣게 되지만, 노동 계층에서는 2,000만 개 이상은 듣지 못한다. 아이들은 여기서부터 이미 학습량의 상당한 차이를 겪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교실 문을 밟을 때 교사의 눈에는 3,000만 개의 단어를 접한 미래의 명문대생과 2,000만 개 이하의 단어를 접한 공장에 있을 아이들이 구분된다. 그리고 파리 우에스트낭테르대학의 패트릭 고슬링은 교사들이 제자들의 성적을 어떤 식으로 해명하는지 연구했다. 연구 결과 교사들은 성적 부진의 이유를 주로 가정 환경에서 찾은 반면 우수한 아이의 성적은 하나같이 교육진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라고 여겼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재능은 상당 부분 무시되고 긍정적 환 경의 신호가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이 중위권 성적의 학생으로 눌러앉게 된다. 그러나 한 번 상위권에 진입한 아이들의 성적은 로즌솔의 손가락으로 '누적 되고 '강화' 된다. 스틸이 바꾼 것은 이렇게 파괴적인 신호들에 대한 차단이었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의 지적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상당부분 타인의 판단” 에서 온다. 스틸은 그 잘못된 판단을 차단시키는 중요성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다' 는 최소한의 생각마저 차단하고 공부 자체에 몰입하는 암묵적 학습 현상은 최상의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에겐 분명 유리한 점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이 잘 발휘하는 암묵적 학습 성취도는 명시적 학습과 달리 지능 지수와 무관하며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전혀 손상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능 지수가 낮아도 차단을 하면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고 재능 계발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가 있다.
- 이상하게 학자들이 밝혀내는 개인의 성공은 극단의 지점에서 관찰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금을 만져본 아이가 계속 금을 만지게 되고, 가난한 아이는 주류에서 밀려나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은 계속 중간 지점에서 평범 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류에서 밀려난 아이들 중에 새롭게 조명을 켜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글자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성적표에서 처참한 기록을 보이던 학생들이 왜 새롭게 등장할 수 있 을까? 겉으로 보면 지독한 노력들이 관찰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그들이 애초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환경 속의 부정적인 신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다른 길을 걷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호를 만난다.
- 만약 내가 지금부터 당신을 이 글을 더는 못 읽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글을 잘 읽고 있다. 어떻게든 사회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 최고가 되지는 못했지만, 바닥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강하게 싸우면서 차단할 원동력이 없었던 것이다.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평범하다는 신호는 우리를 지금도 계속 평범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그 익숙한 신호를 차단하지 않는다.
-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의 재능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타협하며 놓쳐왔던 걸까? 제한된 집중과 차단은 지능에 상관없이 특별한 재능을 선물한다. 그러나 그 재능을 완성하기 위해 서는 사회가 쉽게 한계를 그어대던 많은 것들을 차단하고 싸워야만 한다.
- 학생들의 성적은 엉덩이가 의자에 앉아 있던 시간만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서 그들이 '잘한다'는 신호를 받는지, 못한다'는 신호를 받는지를 봐야 한다. 못한다'는 신호를 받는 학 생들은 독일의 교육심리학자인 카롤린 슈스터가 지적하듯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는 데 상당한 작업기억력을 소모한다.  작업기억력이 높을수록 수학 점수도 높고, SAT 점수도 높고, 명문 대학 입학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못한다는 신호 속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열등감과 싸우느라 상당한 정신적 자원 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 "카라얀은 주위의 이러저러한 지시를 받는 체질이 전혀 아니다.”
카라얀은 자신을 완전히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 한 가지의 일, 즉 그 자신의 운명을 절대적으로 지배할 일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카라얀의 형 볼프강은 동생이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즈음에 말한 것을 기억했다. "형, 방향은 중요하지 않아. 지휘, 스키든, 아니면 자동차 경주든 최고가 되고 싶을 뿐이야.”
- 슈미트도 완전히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이 젊은이가 작곡 작품을 제출할 수 없다면 최소한 관현악 편곡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고 슈미트는 주장했다. 카라얀은 다행히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 나타 제3번 C장조 작품 2의 제1악장을 관현악용으로 편곡하는 데 성 공했다. 그러나 최종 지휘 시험에서는 카라얀은 한 번 더 자기 방식 대로 할 것을 고집했다. 다음 기록을 읽어보자.
“리허설은 전문가들 전원 앞에서 했다. 프란츠 슈미트가 심사위원 장으로서 심사를 시작했다. 나보다 앞서 지휘한 동기들은 자신의 솜 씨를 발휘했고 그 상황에서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기량을 보여주려 고 했다. 내 차례가 왔고 나는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일을 벌였다. 사 람들은 우리가 단순히 그 서곡을 한달음에 지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무대에서 오히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주문했다. “트럼펫, 한 사람씩 해주세요” 라든가 “아니요, 그 부분에 리듬이 없잖아요” 라 든가. 이런 식으로 트럼펫의 첫 도입 부분에만 약 십 분을 썼다. 그러자 프란츠 슈미트가 일어나 시험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편곡 시험에서 카라얀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학생들은 긴장 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는데, 오히려 카라얀 은 진짜 지휘자처럼 군 것이다. 오히려 트럼펫을 지적하는가 하면 리듬이 빠졌다는 식으로 실제 리허설 현장처럼 말이다. 게다가 트럼펫의 첫 도입 부분에만 약 십여 분을 낭비했다고? 슈미트는 당황한 심 사위원들의 표정을 뒤로하고 선을 그었다.
“여러분, 제가 보기에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 카라얀은 슈미트의 인정을 칭찬으로 간주했다. 카라얀의 성적표 에는 예외적으로 '합격'이 붙었다. 당대 가장 완벽한 음악가' 라는 평을 받던 슈미트가 앳된 카라얀의 손을 들어준 것은 카라얀의 기가 더 쎄다거나 노력이 빛을 발했다 따위의 상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는 가장 완벽한 음악가로 불리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가장 완벽한 지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설득했다. 가장 완벽한 지휘자의 모습에는 어설픈 작곡 실력과 음악사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어설프게 오케스트라를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르르 몰고 가는 아마추어 학생들 보다, 완벽한 지휘를 위해서는 꼼꼼히 트럼펫부터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는 것을 카라얀은 보여주려 했다. 슈미트는 지휘자의 본질을 찾 으려는 이 아이의 손을 대학의 전통적인 규정을 깨고 인정해주었다.
- 이 사건에 대해서는 1960년대 시카고대학의 제이콥 게첼스와 세 계적인 심리학자인 칙센트 미하이가 시행한 창의성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미술 전공 학생들에게 정물화 과제를 제시했 다. 그리고 과제를 수행하는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한 집 단은 물체를 간단히 보고 바로 슥슥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학생들은 단순히 '어떻게 하면 그림을 잘 그릴까?' 하는 생각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집단은 물체를 살펴보고 만져보고 다르게 배치하는 데 시간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었다. 이 학생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면 가장 완전한 그림이 될까?' 하고 그림 자체를 완전하게 표현하려는 데 한참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험이 종료된 후 미하이가 발견한 것은 매우 놀랍다. 그림을 그리라는 타인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바로 그림을 그린 미술 성적이 높은 학생들보다. 그림 자체를 의미 있게 접근하려고 한 학생들이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미술 전문가들로부터 훨씬 더 창의적이라고 평가받았다. 미하이는 이 발견을 위해 학생들의 성적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학생들을 성적대로 줄을 세우지도 않았다. 미하이가 확인하려 했던 것은 자신이 하는 분야에 의미 있게 접근하는 것이 정말 그 학생을 탁월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학생이 과거 몇 점짜리 학생인가 따지기보다 얼마나 자신이 하는 분야에 분명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지가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장기적으로 조사되었다. 십 년 후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현재 실력과 상관없이 가장 뛰어난 미술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한 학생들이 10년 후 미술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 공부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 가? 그 질문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겐 모두의 오두막을 짓고 들소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키신저처럼 환경의 신호를 차단하는 오 두막이 만들어지고, 카라얀의 경우처럼 적당한 과학자의 가운을 주 변에서 입히려 할 때 들소처럼 지휘봉을 들어봐야 한다. 그것은 몇 점대의 학생인지, 어디 출신인지, 지금까지 얼마를 노력했는지 따 위와 관련된 질문이 아니다. 지금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것이 없다. 면 평범의 신호가 우리를 평범하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평범하게 만들어나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것을 벗어나려면 우리도 스승을 찾아가서 그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 한 분야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노력보다 노력의 정도가 같더라도 얼마나 장기간 그 분야에 몸을 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수백 건의 논문들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학자들은 이것을 간격 효과' 라고 부른다. 간격 효과는 당신이 어느 분야에 있던 간에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정통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노력의 총양이 같더라도 학자들은 학생의 시작점과 끝점을 놓는다. 끝점을 길게 갖다 놓을수록 학생이 새로운 발견을 하고 세계적인 성취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이 현상은 개인의 지능과 출신 학교를 고려하지 않고도 설명이 가능하다.
-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왜 모든 인간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그중 몇 사람만이 자아를 실현하는 것일까? 정말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존재일까?
매슬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먼저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위대한 꿈을 품지 않는 모습을 '요나 콤플렉스' 라고 부른다. 성서에 나오는 요나는 중대한 사명을 지우려고 그를 찾는 신의 부름에 겁먹고 도망치 려 한 소심한 상인이다. 그는 '요나 콤플렉스' 를 답으로 제시한다. 매슬로는 인간이 자신의 단점만큼이나 장점을 두려워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저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데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라.  
“우리가 느끼는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둠이 아닌 우리의 빛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내가 뛰어나고 멋지고 재능 있고 굉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사실 당신이 안될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 움츠러들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 주변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은 정작 아무런 빛을 비출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빛을 비출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승인을 해주는 것이다. 
-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2천여 명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의 장기 연구를 실시했다. 장기간 학생들의 추적을 통해 매슬로의 교훈이 얼마나 학생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관찰했다. 그 연구 결과는 이러하다.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공부에서 자기 초월적인 'WHY'를 가질 때, 지루하고 불편한 문제를 푸는 'HOW’를 견뎌냈다.  그리고 그는 연구 결과를 네 단계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다.
1. 지루한 문제를 끝까지 참아내는 힘이 만들어졌다. 언제든지 인터넷 미디어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적 신호를 주어도 끝까지 참아냈다.
2. 그리고 몇 달 뒤 STEM 성적이 올라갔으며,
3. 지루한 시험 질문 앞에서도 두 배 이상의 집중 시간을 확보했고, 
4. 그 결과 수학 문제에서 35%나 되는 성적 향상이 발생했다. 
- 결론적으로 오늘날처럼 대학이 서열을 만들고 그 서열이 만드는 신호에 학생들이 익숙해지기 전에 학번 없는 평균적인 사람들이 근대화의 모든 혁신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세계적 교육학자인 켄 로빈슨이 경고한다. 산업혁명 이후에 표준화된 엘리 트를 양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학에 모든 신호를 결집시킬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오히려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또 이렇게 평가하지 않을까? 학교 교육은 되려 창의적인 정신을 둔화시키는 데 이바지했을 따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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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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