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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권력의 시대

사회 2014. 11. 25. 21:11

 


기업권력의 시대

저자
마이클 페렐먼 지음
출판사
난장이 | 2009-07-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 미국에서 자유로운 시장과 자유로운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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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가 기업권력에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기업권력을 강화함. 사람들은 광범위한 사회단데, 즉 구서원들 각각의 힘이 가진 잠재성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단체와 함께 해야만 기업권력에 성공적으로 맞설수 있음. 사람들이 자신들의 힘이 전적으로 각자의 개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스스로를 기만할 때, 기업권력은 여타 사회적 권력에 비해 커질수 밖에 없음.
1. 기업경제에 종속된 개인
- 시장사회는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을 시장의 필요에 맞출 것을 요구하며, 개인의 역할을 기업사회에서 필요한 두가지 차원으로 국한해 버림. 하나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 어느 한가지도 게을리 하면 안됨. 그뿐만이 아님. 개인들에게는 품행 방정하고 열심히 일하고 소비하는 고분고분한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하는 짐도 지워져 있음.
- 50년 제너럴모터스의 찰스 윌슨 회장은 전미자동차노조에 확정급여형 연금제도라는 새로운 기준을 내놓음. 피터드러커는 이 제도의 이면에 드러나지 않게 숨어 있는 기업의 계산을 알아차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 윌슨의 제안은 연금제도를 민간부문의 사업으로 만들려는 포석이다. 그리고 당시 전미자동차노조는 미국 대부분의 노조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사회보장 제도에 전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윌슨의 제안은 제너럴모터스의 연금기금을 관리하는 모든일에 있어서 노조에게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는 것이다. 대신 회산느 기금에 대한 책임을 지며, 전문적 자산관리자들이 그 일을 맡을 것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회사가 자금을 조달하고 회사가 관리하는 민간 연금제도가 조합원들 사이의 충돌을 야기하지 않을까 매우 염려했다. 나이 많은 노동자들은 연금 지급액이 최대한 커지는데 관심이 있고, 젊은 노동자들은 당장 주급봉투 안의 현금에 관심이 있다. 노조는 무엇보다도 윌슨이 이를 제안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노동자들이 회사의 이윤과 회사의 성공에 매달리는 것을 가시화함으로써 노조의 전투성을 무디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2. 소비자로서의 대중
- 오늘날 미국에서는 직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드뭄. 소수의 유명인사나 전문가 집단을 제외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매우 불안정한 조건속에서 자신조차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음. 어떤 노동을,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할 것인지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 불가능해 짐. 또한 노동시장이 심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평생 한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도 드뭄. 안정적으로 한 공동체에 속해서 서로서로를 알아가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제 사람드은 소비의 과시를 통해서 타인들에게 자신들의 지위에 관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서로를 구별짓게 됨
- 애덤스미스는 사치품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류의 산업을 계속 유지, 활성화하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음. 스미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어떤 사람에게 원하는 모든 것을 주는 순간, 그 모든 것은 더이상 모든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했음. 스미스와 칸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자기기만과 불만족감은 시장경제 이전에도 존재했음. 그렇지만 이전에 어떤 경제에서도 이 수수께끼가 핵심적 구성원리였던 적은 없었음.
- 일반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확실히 행복함.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복이 자신의 부유함 정도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더 부유한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 로마황제들은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음식과 오락을 제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만끽하는 그 순간 어떤 외형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려, 소비하는 자로서 실망, 지루함 또는 갈망을 느끼거나 할 경우 그 감정을 표출할 대상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3. 기업사회의 노동자
- 시장경제하에허는 순수하게 상업적 동기를 가진 일들, 광고, 마케팅, 과대포장, 재무조작, 관료적 팽창 등이 점점 증가하게 되는데, 이 중 어느하나도 일반대중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것은 없음. 그럼에도 이러한 상업적 동기에서 비롯된 활동에 참가하는 노동력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음. 이 낭비적 활동을 최소화하고 사람들을 유용한 노동력에 매진케 한다면 그들은 생활수준의 하락 없이도 상당한 유연성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임.
- 노동자들의 힘을 억제하는 데 있어 무역정책이란 수단은 비교적 간접적임. 게다가 정부가 무역정책을 신속하게 조작하여 경제의 부침에 적절하게 대응하기란 쉬운일이 아님. 이런 점에서 통화정책이 이상적인데, 연준을 통해 순식간에 통화정책을 바꿀 수 있기 때문. 임금이 오르기 시작하면 통화긴축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게 연준의 오랜 전통이었음. 마찬가지로 노동계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할 때에는 돈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시키곤 했음.
- 신분상승 가능성은 꿈도 꾸지 않음녀서 스스로를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여기는 유럽 노동자들의 성향과는 달리 미국의 숙련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종류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곤 함. 결과적으로 유럽의 노동운동은 미국의 노동운동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정치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음.
4. 기업의 책임
- 기업을 개인처럼 대우한다는 의미는 다름 아니라 기업은 인간과 명백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어떤 인간도 상상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두를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 예컨대 영업특허는 그들에게 보통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
- 기업의 권리를 옹호하는 자들은 개인이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추궁하는데 재빠르지만 기업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제나 책임을 묻는데 미온적임. 심지어 기업의 부정행위를 눈감아 주거나 그 법적 구실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함. 이런 점들로 볼 때 만약 법적으로 기업을 하나의 개인이라고 하면 그 개인은 법을 무시해도 되는 특권을 가진 사람일 것임.
5. 책임과 책무
- 자본가들은 전통적 수공업 생산방식을 무너뜨리고 생산과정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면 무슨일이든 다 했지만 이 과정은 더디게 진행되었음. 그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생산과정의 바탕에 깔린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 즉 제철공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연철공처럼, 몇몇 전통적인 숙련노동자들은 19세기 내내 존속했음. 그러다가 경영자들이 작업에 대한 통제권을 성공적으로 확보하자 개별노동자들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음. 이제 노동자들은 명령에 따라 일할 뿐이었고, 사용자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노동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게끔 감시하는 책임을 맡게 됨. 후자의 일을 하려면 사용자들은 직무를 매우 자세하게 구분해야 하고,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능력을 가져야 함.
6. 리스크의 역할
- 기업들이 사회를 위해 리스크를 부담하는 대가로 이윤을 얻는다는 나이트의 주장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류투성이임. 재미있게도, 이윤이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에 대한 대가라면 리스크가 줄어들 경우 이윤도 감소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 적은 없었음. 오히려 리스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기업 이윤의 주된 원천이었음.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더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와 힘있는 자들은 여전히 수익의 상당부분을 가져감.
- 정부는 미래의 리스크로부터 기업들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여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바로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에 들어감. 9/11테러는 기업들에게는 좋은 기회였음. 당시 의회는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틈타 항공사들에 대한 지원을 서둘러 마무리했는데, 테러가 발생하기전부터 항공사들은 이미 휘청거리던 상태였음. 물론 의회는 항공사 부실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었음.
- 기업가들은 흔히 소심한 사회를 위해 용감하게 위험을 부담하는 이타적인 모험가로서 그려지곤 하지만, 오늘날의 경영자들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위험회피자일 것임. 미국은 기업들을 사회화하지는 않았지만, 사회과학자 시어도어 로위가 말한 리스크의 사회화에는 누구보다 충실했음. 기업은 민간부문에게는 이윤을 주고, 모든 리스크들은 납세자의 등에 교묘하게 떠넘기면서 공공부문에 부담시킴. 이렇다면 두 부문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에서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도대체 정부간섭으로부터의 자유를 왜 그리 애타게 찾겠는가?(벤저민 바버)
-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 대신 전적으로 이윤의 실현에만 관심을 가지는 전지구적 기업공동체라는 가공할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있음. 미국에 의해서 주도되는 이 공동체는 부자와 힘있는 자들을 지원하는 반면,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요구. 그런데 오늘날 리스크를 다루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기업공동체에 안성맞춤임. 가난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이 듣는 말은 고작 기운차리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 삐뚤어진 공동체의 눈에 비친 고용보험이나 생계보조비는 단지 게으름에 대한 보조금일 뿐이지만,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은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많음. 사실상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는 개인주의 (또는 자본주의)를 , 부자들에게는 사회주의를 배우고 있는 셈.
7. 식품, 공포, 테러리즘
- 지나친 수감은 사회에 막대한 비용을 부담케 하지만 정치전략으로서는 아주 훌륭한 기능을 하기도 함. 정치인들은 범죄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더 절박한 민생법안들을 뒷전으로 밀려나게 하고, 사설교도소 업자들을 포함해 돈 많은 기부자들을 얼마든지 챙겨줄 수 있게 됨. 공포의 정치학은 국제적 차원에서도 작동됨. 공산주의가 실제로는 미국에 큰 위험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교묘하게 세뇌되어 왔음. 이러한 종류의 공포분위기 역시 보수주의자들의 이해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음. 결국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펜타곤이 주는 떡고물에 의지하게 되었고 국방비에 쏟아붇는 예산이 막대했기 때문에 규제와 같이 기업들이 싫어하는 정책들에 편성되는 예산은 항상 부족했음. 가장 결정적인 것은 기업에 덜 우호적인 정치인들에게 공산주의 성향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모략하는 것이었음. 종국에는 적극적으로 불안정한 상채를 만들어내고 해외까지 그 힘을 뻗음으로써 미국의 무기업자들에게 더 커다란 시장을 만들어 주었음.
8. 시민으로서의 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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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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