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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본능

사회 2014. 10. 3. 11:51

 


사회학 본능

저자
랜들 콜린스 지음
출판사
알마 | 2014-05-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세계 사회학의 명저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책 사회학적 사고의...
가격비교

- 불화와 갈등의 존재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합리성의 힘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자체로는 대단히 합리적인 여러 정책이 입안자들조차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임. 예를 들어 관료제도는 대단히 합리적인 조직으로 설계되었음. 합리적 계획과 회계야말로 조직을 관료적으로 만드는 요소임. 전문가들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계획을 짜고, 모든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도록 규정과 절차가 만들어짐. 그리고 모든 일을 세심하게 설명하기 위해 기록이 작성됨.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서류작업이 때로 일을 지루하게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규정과 규제가 전적으로 부적절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함. 그래서 최대효율을 위해 설계된 관료제가 오히려 비효율로 악명이 높음. 많은 사회학자들이 바로 이점에 초점을 맞췄음. 관료제도란 기록 작성 전문가들이 합리적 계산을 이용하는 조직이라는 이론을 만든 막스 베버 역시 합리성이 서로 반대되는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음을 깨달았음. 기능합리성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냉정하게 계산하는 절차를 따르는 것을 말함.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합리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임. 하지만 기능합리성은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반면 실질합리성은 목적자체를 고려함. 이 점을 상세히 설명한 사람은 1920년에 베버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몇년 디에 글을 내놓은 카를 만하임이었음. 그는 기능적으로 합리적인 절차가 실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결가를 낳을 수 있다고 보았음. 관료제도는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은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수단에만 관심을 쏟음.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걱정해야 할 일임. 관료제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때로 심한 분통을 터뜨리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 전문가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함. 관료제를 향해 불평을 해봤자 통하지 않는 것은 바로 관료들이 너무나 쉽사리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구조 때문. 그런데 이것은 관료제도에 관여하는 개인의 잘못이 아님. 조지그이 합리성 자체로 인해 관료들이 조직의 전체적인 목적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임.
-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대와 중세에 경제적 생산성을 높일 자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님. 또한 중세 중국이나 이탈리아 또는 고대 그리스의 상인들이 상대에 대한 의심을 조금 풀고 기꺼이 장기적인 계약을 맺으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만큼 합리성이 떨어졌다고 말할수도 없음. 우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들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합리적이었음. 그들은 단기적 수지타산뿐 아니라 장기적인 득실도 고려했음. 만약 현대 미국인이 어느날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 위의 내용을 읊어댄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이 상대를 의심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훨씬 더 많은 돈을 잃게 될 것이라고 대답할 것임. 그리고 이것이 당시에는 옳은 생각이었음. 중요한 것은 현대의 계약사회가 도래한 방식이 정확히 뒤르켐의 예언과 일치했다는 점. 현대사회가 가능해지는 데는 신뢰라는 새로운 유대관계가 필요했음. 자본주의의 등장은 확실히 의심이 가득했던 중세의 거래방식으로부터 변화를 의미했음. 사업가들은 많은 거래를 통해 느리지만 꾸준하게 적은 이윤을 거듭 축적하는 방식을 강조하기 시작. 이는 계약조건을 지키겠다는 뜻이었음. 중세상인들은 수상쩍은 흥정과 단발성 거래 때신 장기계약이 등장. 대량생산이 실용성을 띠게 된 것도 바로 이 덕분이었음. 물건을 팔 길이 없다면 기계를 돌려서 대량의 물건을 만들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산업기술 덕분에 현대경제가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이런 거래방식의 변화덕분에 산업혁명이라는 기술발전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음.
- 마르크스의 계급갈등이론도 어떤 의미에서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가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민중, 특히 노동계급이 효과적으로 힘을 쟁취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 대개 이 문제는 계급의식을 만들어내는 문제, 즉 각각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서 자신의 이익을 인식하게 만드는 문제로 묘사됨. 하지만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음. 사람들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는 두 집단에 맞춰 자동적으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순전히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으로 행동함. 예를 들어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기업들이 결코 동맹이 되지 않는 것처럼 노동자들도 같은 직장이나 승진을 놓고 경쟁할 때는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함
- 사회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종교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를 좋아하는 태도와 싫어하는 태도가 아님. 이 두가지 외에 세번째 선택지가 존재. 뒤르켐은 종교에 관한 뻔하지 않은 이론을 만들어 냈는데, 거기서 종교의 핵심요소는 믿음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의례임. 종교는 사회적 유대감의 열쇠이며 종교적 믿음은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은 아니라 사회집단의 상징으로서 중요함. 따라서 종교는 비합리적인 현상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최고의 사례로서 사회학적 의미를 가짐
-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다음 두가지임. 모든 신도가 공유하는 믿음과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의례. 종교는 기본적으로 세상이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두가지로 나뉘어 있다고 믿음. 신성한 것은 정령, 눈에 보이지 않는 신, 특정한 동물이나 나무, 제단, 십자가, 경전, 믿음에 입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등 다양함. 신성한 것의 뚜렷한 특징은 그것이 위험한 동시에 최고로 중요하다는 점. 우리가 그것에 접근할 때는 진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하며 정해진 준비과정을 거쳐야 함. 반면, 세속적인 것은 신성한 것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말함. 우리가 기분내키는 대로 자신이 보기에 유용하거나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평범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모든 것임. 이처럼 세상을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것이 종교의 기본 믿음. 이와 함께 종교의 기본행동, 즉 의례가 이루어진다. 의례는 평범한 행동과는 다름. 거리를 걷거나 일을 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등 평범하고 실용적 행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음. 일단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담녀 그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든 달라질 것이 없음. 반면 의례는 아주 엄격하게 정해진 행동임. 의례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임. 기도, 찬송가, 원시적 희생제, 춤, 행렬, 우상 앞에 무릎 꿇기, 성호 긋기 등은 반드시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함. 의례는 실용적인 행동과 달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님. 따라서 목적을 이룰수만 있다면 그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든 달라질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음. 의례의 형식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 의례는 올바르게 수행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방식이 틀렸을 때는 아무런 가치도 없음. 이처럼 종교를 구성하는 믿음과 의례는 서로 연관되어 있음. 의례는 사람들이 신성하다고 믿는 것 앞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절차임. 이 두가지와 정반대인 또 다른 두가지도 짝을 이룸. 의례가 아닌 평범한 행동은 세속적 환경에서 이뤄지는 우리의 행위임.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은 믿음보다 의례를 우선시. 어떤 의미에서 의례의 올바른 수행이 신성한 것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낸다는 것.
- 사회는 우리 바깥에도 있고 우리 의식의 핵심에도 있음. 종교의 상징체계가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종교의 상징은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을 표현함. 그래서 종교적 상징체계에는 사회적 의무뿐 아니라 인간의 정체감에 대한 관념들이 통합되어 있으며, 우주를 다스리는 신이나 영적인 존재뿐 아니라 영혼이라는 관념도 존재. 종교가 사회의 중요한 현실적 측면들을 상징화하기 때문에 그 상징체계 속에 항상 사회적 갈등의 여지를 마련해둘 수밖에 없었음. 사회는 결코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는 법이 없으므로 종교는 항상 경쟁관계인 다른 신들, 이교도, 악령, 악마 등의 존재를 말할 수 밖에 없음. 종교의 상징체계는 사회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음.
- 정치와 종교는 뿌리가 같음. 특히 종교지도자나 정치웅변가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에서 커다란 개인적 에너지를 얻는 경향이 있음. 군중의 관심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고 청중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지도자는 특별한 에너지를 가득 받아들일 수 있음. 집단이 충분히 흥분하면 지도자도 영감을 얻어 평범한 수준을 뛰어넘음.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유명인사, 영웅은 물로 심지어 신성한 인물까지 될 수 있음. 이런 변화를 일궈내는 에너지의 원천은 지도자가 아님. 집단의 에너지가 군중 속을 돌아다니며 더욱 힘을 얻은 뒤, 군중을 대변하며 군중에게 말을 거는 지도자의 손에 의해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집단에너지가 흐르는 채널이며, 바로 그 점때문에 군중속의 개인들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는 듯함. 하지만 지도자가 지닌 힘의 비결은 바로 집단 그 자체임. 청중이 예언자를 만들고 사회운동이 지도자를 만듬
- 수렵채집부족에서부터 위대한 세계제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사회들을 돌아보면 각각의 사회에서 잉태된 신들의 유형이 사회의 크기나 구조에 상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신은 일반적인 의미뿐 아니라 세부적인 면에서도 사회를 대변함. 각각의 사회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유형의 신이 있음. 그렇다면 역사적 의문이 하나 생김. 종교와 사회 중 어느쪽이 먼저 변하는 걸까? 종교가 사회변화를 야기하는걸까, 아니면 그 반대인걸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모든 사회들의 경우 어느쪽이 답이었는지 증명해보려고 시도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음. 하지만 역사속의 특정한 변화에 대해 주장을 내놓은 사람은 있었음. 뒤르켐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베버는 현대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등장은 종교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음. 초기 저작에서 그는 특히 개신교의 특정종파(칼뱅주의)의 등장을 지적. 그리고 다른 글에서는 현대사회의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모두 기독교와 고대 유재교의 특징에서 자라 나왔다고 설명. 다른 사회학자들은 이 가설의 인과관계를 뒤집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종교가 지배계급의 권력과 그 기반이 된 재산권을 강화해주는 사회구조속에서 자라나온 이념이라고 주장.
- 현대의 자아는 때에 따라 아주 복잡해질 수 있음. 고프먼은 층마다 그 안에 다양한 층들, 즉 사람들이 공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겉치장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겉치장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노력이 필요. 고프먼은 후기에 이르러 사용한 은유법을 통해 이것을 일련의 사진액자와 같다고 비유. 그의 비유에 따르면 이미 존재하는 액자들 주위에 언제나 또다른 액자를 배치하는 것이 가능. 그렇다면 자연스레 생기는 의문이 있음. 이 모든 층들 뒤에 최종적인 자아가 존재하는가? 만약 모든 종류의 겉치장을 계속 벗겨낸다면 개인의 의식 중에서도 고갱이, 모든 꼭두각시 인형들을 조종하는 인형사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임. 하지만 고프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그가 묘사한 사회적 자아들 중 어느것도 협력적인 사회적 상호작용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음. 사실 우리 각자가 내면에 이 모든 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사회 덕분. 우리의 내면이 이토록 복잡성을 띠게 된 것은 우리가 다양한 집단상황들 속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자, 각각의 상황들마다 이상적 자라를 제시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기 때문. 간단히 말해 우리는 결코 핵심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내면의 층들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임. 이 층들은 밖에서부터 덧붙여지며 우리 의식의 내면에 반영됨. 사람이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하나씩 늘아날 때마다 자아도 한층 더 생겨남. 전(pre)사회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음. 고독한 개인의 자아는 오로지 복잡한 형태의 사회가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이 결론이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종교가 사회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 개인주의는 현저히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종교의 새로운 형태임을 이미 보았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생활이라는 무대 뒤를 우리에게 허락해주고, 타인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행동을 이상화할 가능성을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현대사회의 구조다. 개인이 내면에 자기만의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관념은 이처럼 현저히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상호작용 패턴에서 나옴. 사회적 의례를 통해 창조된 성물이 그렇듯이 현대적 자아도 일종의 신화다. 겉으로는 자율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척하지만 실제는 그런것과 거리가 멀다. 이것 역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신화적 상징 밑에 사회라는 똑같은 현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주관적인 자아라는 관념으로 스스로를 상징화하는 것은, 복잡한 분업이 이뤄지는 가운데도 우리가 여전히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 교회처럼 대단히 전통적인 조직은 이제 경제에서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조직이 자기만의 의례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능. 예를 들어 장교들은 사관생도 시절의 의례들과 군대의전에서 커다란 의욕을 얻음. 해병대 같은 조직들은 자신들의 영웅적 이미지를 크게 강조하며 해병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구성원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남자다움을 시험하는 다양한 의례를 끊임없이 시행함. 오늘날 높은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도 초임자들을 사회화할 때 의례를 많이 이용. 예를 들어 의대생들은 사실 의대에서 실용적 의학을 많이 배우지 않음. 대신에 자신을 평범한 사람과 분리해 생각하고, 의사라는 지위의 특수함과 의사다운 행동을 받아들이게 하는 긴 통과의례를 거침. 이런 자체교육 덕분에 의사들은 일과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며, 의사들에 대한 외적 통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됨
- 평범하 직장에서도 의례는 조직이 계속 작동하도록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 앞에서 보았듯이 사무직 노동자들은 임금체계에 그리 면밀히 통제당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을 할 때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까지 발휘하는 경향을 보임. 이는 주로 그들이 조직내의 다른 사람들이나 자신이 맡은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지만 의미심장한 사회적 의례에 참여하기 때문. 고프먼이 증명했듯이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소한 의례들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보이며 사람들이 그 이미지를 수용하게 만듬
-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도의 문제임. 남보다 더 큰 권력을 손에 넣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를 위해 그들은 갖가지 미묘하고 명민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함. 가장 효과적인 통제방법은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임. 순전히 힘으로 직접 냉혹하게 통제하는 것이 가장 뻔한 형태의 권력이기는 해도 일을 해내는 데는 가장 효과가 없음. 돈의 힘 또한 실제보다 더 크게 보임. 의례의 힘이 비교적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은연중에 작용하기 때문이지만 바로 이런 성질 때문에 이 힘은 조종하기가 어려움. 의례를 이용한다는 것은 대개 조직구성원들에게서 전반적인 복종을 얻어내는 대가로 권력을 나누어준다는 뜻.
- 권력은 때로 모든 도전을 깨부수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 작용하기도 함. 정치적 논쟁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음. 반대편의 주장을 탈선시키고 싶다면 그들이 핵심적 주장을 내놓기 전에 말을 끊고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를 내려보라고 하면 됨. 그러면 이야기가 쉽사리 곁가지로 빠져서 핵심적이 주장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게 됨. 어떤 것의 의미를 놓고 벌이는 모든 논쟁은 이렇게 질문의 무한반복으로 빠질 잠재성이 있음. 이와 관련된 전술로 반대편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음. 반대편이 자신의 제안이나 불만사항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면 나는 앞에 나서서 발언하는 사람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면 됨. 상대방이 완전한 발언권을 지닐 자격이 있는지,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동기가 순수한지 등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 최소만족과 문제해결이라는 전략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절대적인 효율성이라는 순저히 허구적인 수준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덜 합리적인 방법임. 조직의 복잡성은 인간의 정보처리능력을 뛰어넘음. 인간이 지닌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사회는 기계처럼 움직일 수 없음.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에 순응해서 좀더 방어적 전략을 추구해야 함. 방어적 전략이란 대부분의 일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많은 것들이 부분적으로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는 전략을 말함
-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에 대해 자기만의 독특한 접근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남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 전문가가 실제로는 불확실성에 잘 대처하는 능력이 없다 해도 그들은 상황에 대한 해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음. 그리고 이처럼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분위기가 그들을 더욱 존중하는 분위기로 이어져 그들이 은영중에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임. 전문가들 중에서 특히 많은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 따지고 보면 각자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탈이 난 부분을 고치는 문제에서 의사보다는 자동차정비공이 훨씬 더 믿을 만한 솜씨를 발휘함. 하지만 바로 이 이유때문에 사람들은 정비공의 기술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음. 내일 아침이면 차가 반드시 수리되어 나올 것이라고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 만약 차가 수리되지 않으면 다른 정비공을 찾아가면 그만임. 하지만 의사는 진단과 치료가 훨씬 더 어려운 질병을 다룸. 의사가 특히 정해진 날짜까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를 탓하지 않고 자신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임. 의학은 자동차정비보다 더 신비로운 분야라는 것이 의사들에게 더 많은 특권과 힘을 부여하는 중요한 원인임. 권력을 잡는 기술 중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을 최대한 신비하고 인상적으로 보이게 포장하는 것. 의사들은 자신이 무대 뒤에서 하는 일과 자신에게 치료를 받는 대중 사이에 단단한 장막을 친다. 의학지식이 신비롭게 느껴지는 데는 의사들이 대중에게 속 시원히 말해주기를 꺼린다는 점과 전문용어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
- 처벌의례는 지배구조를 유지해준다는 점에서 사회를 하나로 묶어줌. 처벌의례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의례를 통해 정치인과 경찰이 감정적 지지를 얻는다는 점. 특히 무엇보다도 특권계층의 유대감을 강화해 그들이 자신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줌. 범죄에 대한 분노는 사회적 위계구조를 정당화해줌. 범죄의 처벌이라는 의례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는 계층화된 사회이다. 이런 의미에서 범죄는 사회구조 속에 내장되어 있다. 지배집단이 통제를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거기에는 상응하는 범죄가 따라온다. 집단들은 지배권을 놓고 계속 투쟁을 벌이는 중이므로 일부 집단이 다른 집단의 기준을 어길 수 밖에 없음. 또한 어떤 집단에서든 가장 통합되지 않은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이 믿는 도덕을 신경쓰지 않고 개인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일도 일어난다. 따라서 사회의 많은 집단이 불쾌하게 여기는 행동들이 부족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지배집단도 이런 행동들을 어느정도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범죄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처벌이라는 예식을 치를 기회를 얻어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형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 자기들만의 특별한 범죄가 있음.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왠지 범죄와 처벌이 발생하도록 법이 제정된다는 점. 부족사회에는 금기가 있어서 금기를 어긴 사람들은 지독한 처벌을 받음. 도덕을 무섭게 강조한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마녀의 주술행위라는 범죄가 있다고 믿었음. 자본주의 사회에는 재산과 관련된 범죄행위들이 한없이 규정되어 있음. 사회주의 사회에도 집단의 활동에 전심전력으로 참여하지 않는 개인의 범죄와 국가에 대한 불충이라는 정치적인 범죄 등 나름의 범죄가 있음. 의례를 기준으로 보면 모든 사회가 자기나름의 범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음.
- 겨우 몇세대 전의 우리 사회에서 사촌간 결혼은 근친상간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촌수가 더 먼 사람과 결혼해야 했음. 반면 많은 부족사회에서는 기회만 된다면 사촌들의 결혼을 당연히 여김. 이는 가문들 사이에 정기적으로 동맹을 맺는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사촌들(특히 고종사촌)간의 지속적인 결혼은 세대가 거듭되어도 가문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함. 참고로 이런 사례들은 사람들이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결함을 걱정한 탓에 근친상간 금기가 생겨난 것이 아님을 증명해줌. 사촌간 결혼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사회는 확실히 근친교배를 금하는 방침과 반대로 가고 있기 대문. 게다가 바로 이런 사회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근친상간 금지규칙을 갖고 있음. 우리가 보기에는 생물학적으로 그리 가까운 친척이 아닌데도 순전히 혈통을 문제삼아서 많은 사람들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근친상간 금기가 생겨난 이유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성적 소유권 교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음. 우리 사회에서 가문들 사이의 대대적인 동맹은 이미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근친상간 금기도 최소한의 수준으로 줄어들었음. 하지만 자녀들에게 가정을 떠나 넓은 결혼시장에서 성적 파트너를 구하라고 요구하는 규칙은 아직 남아 있음. 그렇다면 근친상간 금기는 세대적 소유권 체제의 부정적 규칙인 셈. 이 규칙은 자녀들이 서로에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정해놓았음. 세대적 소유권의 긍정적 규칙으로는 여러가지가 있음. 우선 부모는 자녀에 대해 어느정도 물리적 소유권을 갖고 있음. 부모는 자녀를 집안에만 있게 할 수도 있고, 학교에 보낼수도 있으며 그 밖에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음. 부모는 또한 여러 면에서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음. 부모는 또한 여러 면에서 자녀의 행동에 대한 지시를 내릴 권리도 갖고 있음. 옷차림, 종교적 교육, 사귀어야 할 상대 등 많은 것들을 정해줄 수 있따는 뜻. 요즘은 부모들이 이런 권리를 딱히 강력하게 행사하지는 않음. 아버지가 마음 내키는 대로 자식을 처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까지 내릴 수 있었던 로마시대의 가족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전체적으로 최근 추세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간섭이 줄어드는 쪽으로 가고 있음. 세대적 소유권의 중요한 측면, 즉 자녀의 결혼상대를 정해줄 권리를 부모가 잃어버린 것이 여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 자녀의 결혼에 대한 통제권은 세대적 소유권을 직계자녀 너머까지 확장시켜서 여러세대에 걸친 후손들의 혈통까지 통제할 수 있게 해주었음. 하지만 혈통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세대적 소유권도 움츠러들어 지금은 핵가족 내에서 아이들이 어릴때만 적용되는 수준이 되었음. 세대적 소유권에는 경제적 측면도 있음. 법적으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녀의 소득은 부모의 재산임. 하지만 이것 역시 오늘날에는 그리 강력하지 않음.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의 소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더 많음
- 어떤 대화는 짧고 실무적이어서 업무가 끝나면 함께 끝남. 사교적 분위기를 내려고 애쓰지만 대화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음. 번갈아가며 이뤄지는 대화 중의 침묵과 재촉이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임. 대화에 참가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기 때문. 어색한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상대에게 할 말을 쉽게 찾아낼 수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화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뭔가가 표면아래 잠복해 있기 때문이기도 함. 발언권을 놓고 자주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대화 참가자들이 같은 것에 주의를 집중할 수 없어서 주구의 지위가 더 높고 누가 지배자인지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음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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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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