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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1 소셜시대 십대는 소통한다

 


소셜시대 십대는 소통한다

저자
다나 보이드 지음
출판사
처음북스(CheomBooks) | 2014-06-17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네트워크화 된 세상에서 십대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이해 못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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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는 온라인 커뮤니키의 본질을 바꿈. 유즈넷이나 게시판같은 초기 온라인 커뮤니티 도구들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반면, 블로그는 사람들이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더라도 홈페이지라는 말처럼 개인을 중심으로 구성됨. 연결고리는 친구들은 물론,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돋보이게 만들었음. SNS는 관심사의 중요성을 낮추고 관계자체를 주요 구성요소로 세웠다. 초기 사용자들은 타인과 소통하는 용도로 인터넷 기술을 오랫동안 이용해왔지만, 주류 문화권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 소수 괴짜들이나 사회의 낙오자들만이 즐기는 활동으로 자주 비치곤 했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지고 소셜미디어, 그중에서도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그리고 트위터가 주목을 받게 되자,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특히나 그 당시 십대에 접어든 이들에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됨. 소셜 미디어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하위문화적 활동으로 비치기보다는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음
- 많은 십대들은 소셜미디어의 정보요구를 권고사항으로 받아들이지, 필수조건으로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사이트들을 이미 자신들이 다른 상황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반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보기 때문. 십대가 자신이 뭘하는지 공유하는 이유는 임의적이지도, 그들이 어울리는 소셜미디어 사이트의 관리를 따르기 때문도 아니며, 어른들이 사이트를 사용하는 관습을 따르기 때문도 아님. 십대 스스로부터 비롯되는 사회맥락이 중요. 십대는 소셜 미디어를 자기자신처럼 굴거나 대체 자아를 만들어서 택일해야 하는 가상 세계로 보지 않음. 그들에게 소셜미디어는 보안과 안전과 유머와 표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며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 십대가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을 적절하게 포장하고자 노력함에 따라 한가지는 확실해졌다. 인터넷은 아직 사람들이 물리적 세상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한가로운 공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다는 것. 십대는 맥락이 네트워크화되고 붕괴되었으며, 관중은 보이지 않고,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너무도 쉽게 맥락에서 분리될 수 있는 환경속에서 여전히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른도 마찬가지의 갈등을 겪지만, 십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채 지속적인 감시하에 싸우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십대는 지독한 문화의 미래를 헤매고 있다.
- 일상적인 장면에 의미를 숨기는 행위는 새롭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이 장거리 메시지를 보낼 때 그들은 보안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전령이 쉽게 잡히거나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 사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애초에 메시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었음. 역사기록을 보면 그리스인이 이용했던 온갖 독특한 방법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밀랍판에 메시지를 숨겨놓거나 노예의 머리에 문신으로 새긴 뒤 수신자에게 보내기 전에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두기도 했음. 굳이 꼭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면 이런 메시지를 찾아볼 수 도 있겠지만, 애초에 어딜 찾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만 보일 수밖에 없다. 암호 해독가들은 이렇게 일상적인 장면에 메시지를 숨겨놓는 행위를 스테가노그래피라고 부름. 사회적 스테가노그래피는 가사와 농담, 그리고 기술적으로 접근가능하지만 동시에 특정 문화를 참고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는 메시지들까지, 수많은 언어적, 문화적 도구를 이용해왔음. 어떤 십대는 남들이 지칭하는 사건을 대명사로 대치하거나, 별명을 사용하고, 잡담을 나눌때 근처에 숨어있는 어른이 해석할 수 없는, 미리 정해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함. 많은 십대는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거나 어른이 해석할 수 없게 어우러지도록 글을 쓴다. 학교에서의 잡담이나 짝사랑, 짜증나는 선생님에 대한 대화는 모두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의미없다고 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므로 발견되지 않고 넘어감
- 사생활이 아이들이 가질 수 있거나 없는 권리이건 십대가 노력을 통해 벌어야 하는 특권이건, 어른의 감시는 사생활에 대한 십대의 이해와 경험을 좌우함. 감시와 처벌에서 미셸 푸코는 감시가 제어의 기제로 작용한다고 설명. 수감자들은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감옥의 관습과 간수의 기대를 따름. 감시는 강력한 단체가 약한 개인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기계임.
- 다른 충동과는 달리 십대가 소셜 미디어에 깊게 참여할 때는 사회성을 잃지 않음. 오히려 소셜 미디어에 참여하는 이들은 주로 매우 사교적인 편. 소셜 미디어 중독에 대해 십대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들의 관심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심지어는 특정 소셜 미디어 사이트보다는 서로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십대의 소셜 미디어 중독은 전형적 인간관계의 새로운 연장선이다. 십대가 사교의 주된 방법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모의 제재나 빡빡하게 짜인 삶 등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화 역학의 부작용인 경우가 많음. 십대는 친구와의 연결을 허용하는 그 어떤 환경으로든 결국 고개를 돌리고 집착함. 대부분 십대는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 있지 않다.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면 서로에 중독되어 있다.
- 소셜미디어는 십대가 서로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온라인 상에서 연결하고, 수다떨고, 어울리고 싶은 그들의 욕구는 십대가 살아가야 하는 매우 체계적이고 제한된 생활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볼 때 비로소 합리적이다. 소셜 미디어는 집에 갇힌 십대에게 친구를 사귀고 사람을 구경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쉴 기회를 주기도 함
- 십대는 어떤 책임이 따를지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성인기의 완전한 권리를 얻는 게 절실함. 십대는 어른들이 정의한 성공의 조건을 성취하라고 그들을 규제하고, 보호하고, 억압하는 시스템에 갇혀 있음. 많은 십대가 이 경계의 시기의 어정쩡함을 관리하기 위한 강력한 대응방법을 발달시켰다는 것은 이들에게 힘이 있다는 증거. 유혹적인 트로이목마와는 거리가 먼 소셜 미디어는 해방의 밸브로, 청소년이 그들 주위의 억압과 제한에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있는 사회성을 재탈환할 수 있도록 함. 성인기를 향해 나가면서 십대는 성숙의 주요요소, 즉 자기표현, 사회관계 관리, 그리고 주위 세상에 대한 이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워야 함. 십대의 삶을 구성하는 구조적이고 제한적인 조건은 이들에게 이런 문제를 탐색할 여유를 조금밖에 허락하지 않지만 소셜 미디어는 이들이 잃은 것을 만회할 수 있는 플랫폼과 공간을 제공함
- 십대의 소셜 미디어 참여에서 중심에 있는 활동은 기존 세대가 즐기던, 양말 댄스 파티나 디스코, 풋볼 게임 관중석과 같이 공유된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과 꽤 비슷해 보임. 십대는 어울리고, 잡담하고, 서로 호감을 갖고, 사람을 구경하고, 농담을 던지고, 자격을 두고 다툼. 이런 역동성은 십대 생활의 중심에 있고, 온라인 세상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십대는 네트워크화된 대중을 통해 펼쳐지는 십대 중심의 세상에서 또래와 접속해서 어울릴 수 있는 그 어떤 기회라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음. 하지만 이것은 자녀들이 또래와 사귀는 데 시간을 더 적게 보내고 인정하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에게는 불편한 사실임. 십대의 소셜 미디어 참여와 이에 동반되는 또래간 어울림은 상당한 시간을 소비할 수 있음. 많은 어른들에게 이런 활동들은 집착처럼 보이고 가치 없어 보일 수 있음. 네트워크에서 교육적인 환경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에도 기존 매체들은 소셜 미디어에 참여하는 것이 파괴적이라는 관념을 퍼뜨림. 많은 어른들은 십대에게 어른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더 많은 시간을, 또래와 어울리는 데 더 적은 시간을 투자하도록 억누르며, 십대가 서로 교류할 때 일어나는 배움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데 실패함. 십대가 어른들로부터 멀어져 또래에게 다가갈 때,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우려함. 부모의 목적과 십대의 욕구 사이의 단절에 대한 답은 십대의 행동을 병리화하려는 관점도, 십대의 교제를 공황상태에 빠져 규제하는 것도 아님. 오히려, 어른들이 십대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인지하고, 그들과 함께 균형을 찾고 그들이 마주친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도와야 함
- 비록 가십이 좋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지만 십대가 공유하는 대부분의 가십은 순수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음. 공유되는 거짓이나 사적인 정보일수도 있고, 내용은 라이벌에게 해를 끼치고 다른 관계를 희생함으로써 또 다른 관계를 쌓거나 다른 사람의 평판을 파괴하기 위한 악의적 목적으로 순환되기도 함. 관계를 맺는 작동방식에 첨예한 사회적 대립을 조장하기도 함. 다른 사람에 관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이를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은 사회적 상황에서 권력으로 작용함. 가십은 좋건 나쁘건 간에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중개하는 것을 도움. 한 개인이 높은 지위를 가질수록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사적인 세부사항은 더욱 가치를 지님. 그리고 권력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가십을 사용할 때 왕따의 형태로 나타나곤 함. 누군가에 대한 사적인 정보를 알게되면 뭔가를 대가로 공유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특히 유리하다. 이는 다른 이들에게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이 가진 정보와 공유하도록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동시에 가장 덜 긍정적 의미를 갖고 가십은 퍼져나간다. 가십은 소셜 미디어에서 생명력을 얻은 듯 보인다.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거나 퍼뜨리려고 들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넓은 범위의 연결된 관중에게 쉽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루머는 기존의 학교 루머보다도 멀리 빠르게 퍼져나가며 오래도록 남아 있을 잠재력이 있음. 이는 페북이 가십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아님. 오히려 메시지를 퍼뜨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네트워크화된 대중의 특성을 쉽게 이용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기업은 때로 제한된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을 설계하고, 시행하고, 시험한다. 이러한 상품이 시장에 들어올 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기술의 요소나 설계가 특정 사용자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편견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음. 예를 들어, 많은 영상촬영기술은 빛을 이용하는데 빛은 밝은 물체를 더 잘 반사하므로 역사적으로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음. 결국 사진과 영상은 흰 피부를 더 잘 포착하는 반면 어두운 피부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변화시켰음. 이와 비슷한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넥트라는 디지털 기술에서 다시 나타났는데, 이는 얼굴인식에 의존한 게임 플랫폼임. 많은 얼리어답터들의 불평을 표시했듯, 시스템은 종종 어두운 피부를 가진 이용자를 인식하는 데 실패. 영상촬영을 이용해 얼굴인식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키넥트 엔지니어들은 기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편향된 시스템을 만들었음. 다른 기술에서는 편견이 시험과정에서 부산물로 나타날 수 있음. 애플의 목소리 인식 소프트웨어인 시리는 스코틀랜드, 남부 미국, 그리고 인도와 같은 특정 억양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있음. 시리는 언어를 반복적으로 인지하도록 설계됨. 제작자들이 시스템을 주로 내부에서 시험했기 때문에 애플에서 가장 흔하게 들리는 미국영억 억양을 더욱 잘 인식했던 것이다.
- 인터넷은 기존 기수로가 달라야 한다. 기술전문가들과 얼리 어답터들은 인터넷이 인식가능한 시각단서가 없기 때문에 인종과 계층이 무의미해지게 만드는 대단한 조정자가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기술 유토피아 주의자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났다.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바로 그 편견이 인터넷으로 중개된 경험들도 구성했던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인종이라는 저서를 소개하며 베스 콜코, 리사 나카무라, 그리고 길버트 로드먼은 "인종이 사이버 공간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 중 대부분이 오프라인에서 인종을 중시하는 그 방향으로 영향을 받았고 로그인할 때 우리의 지식과 경험, 가치를 함께 가져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 문화적 편견은 소셜 미디어에 스며듬. 드러난 편견은 댓글이나 선동적 웹사이트에서 악의 담긴 욕설의 디지털 버전으로 번영하는 한편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사회분열의 온라인 복제판을 생산함. 어떤 십대는 자신의 경험이 문화적 차이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조직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카테고리를 굳힌다.
- 소셜 미디어로 정의되는 기술적 시대에서 정보가 네트워크를 따라 흐르고 사람들이 동료를 위해 정보를 관장하는 때에는 누구를 아는지가 무엇을 아는지를 좌우함. 사회분열이 온라인에서 강화될 때면 정보의 불평등 또한 재생산됨. 정보에 대한 증가된 접근성이 정보의 과부하를 초래하면 주어진 정보더미를 훑어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시간과 능력이 들어감. 정보의 배경을 조사하고 맥락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은 그러한 정보작업을 하는 데서 적은 경험을 가진 친구와 가족을 둔 이들보다 더 특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음. 많은 정보의 필요성에 대해 사람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함. 사회학자들은 소셜 네트워크가 사람들의 취업전망, 건강, 그리고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음. 사회적, 경제적 지지를 위한 기회는 개인연둘에 매우 의존함. 십대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입시 기회에 관해 배움. 그들은 또한 주위 사람들을 관찰함으로써 무엇이 규범인지 개념을 확립함. 정보와 기회에 청소년이 누구를 아는지는 중요함. 십대에게 그 어떤 곳 그 누구와도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서 지식과 기회에 대해 평등한 접근성이 있는 것은 아님.
- 우리는 인종 너머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으며, 소셜 미디어는 어떤 사람들이 바란 것과 달리 문화적 치유책이 아님. 오늘날 청소년은 실질적이고 만연한 사회분열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 이런 역할은 온라인에서 재생산되며 십대가 공공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데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 사람들은 서로 친구와 지인들이 무엇이 규범인지 정의하는 것을 도움. 그리고 모든 사람의 기회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의존. 인터넷을 통해 주어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이미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과 사회분열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임. 인터넷은 그 자체마으로 세상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지 못하며, 오늘날의 청소년을 보다 관용적인 세상으로 자동으로 밀어넣지도 않을 것임. 그 대신, 존재하고 뻗쳐 있는 사회분열을 드러낼 뿐이다.
- 점점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에서 얻는 결과들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 되어감. 구글이 검색을 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즉 인류통계학적 정보, 검색기록,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집한 자료 등에 의존함. 이런 과정은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차이로 이어지며 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 어떤 이들은 이런 접근이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개인화에 대해 냉소적임. 앨리 프레이저는 생각조종자들: 당신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위험한 집단에서 알고리즘의 개인화는 정보를 숙지한 대중을 만들어내는 그 어떤 능력이라도 저하시켜 사회적 격차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뉴스 자료를 클릭하는 기록을 가진 사용자에게는 그들의 정치관에 부합하는 결과만 나타나기 마련이며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정치적 견해만 더욱 강화할 수 잇음. 하버드의 버크만 센터 학자들이 보여줬듯이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은 청소년이 경험하는 정보의 질을 결정. 십대는 구글을 디지털 정보세계의 중심으로 여겼으며 이는 그들이 보는 개인화 효과들을 의식하는 것은 둘째치고, 그러한 검색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데도 그러함. 십대는 대부분 어른들이 그러하듯 비판없이 구글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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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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