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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할 것인가

경영 2014. 12. 10. 20:57

 


어떻게 일할 것인가

저자
안상헌 지음
출판사
책비 | 2012-01-2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SK그룹 추천도서!스티브 잡스, 일하는 당신을 위한 멘토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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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쉬나 아담 오펠의 아들들이 그들 기업의 노동자들을 보살핀 사례는 가히 전설적. 그것이 공장의 약속이었다. 즉, 공장기계의 훌륭한 톱니바퀴가 되어준다면, 공장도 당신들을 보살펴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복지는 바로 이런 건설시대의 약속을 발판으로 쌓인 것. 그 약속은 오늘날 우리를 먹여살리는 산업의 힘의 뿌리가 되어준 토양이었다. 이렇듯 당시의 계약은 성실했고 존경할만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귀에는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당시의 노동자는 미성년자 같은 대우를 받았음. 요즘엔 누구도 그런 대접을 원치 않음. 하지만 그럼에도 노동의 세계에는 아직도 이런 고장의 옛 약속이 숨어 있음. 물론 요즘엔 노동자 주택이나 기업 의료보험같은 것은 없다. 그런 것은 국가가 다 맡아서 하고 있다. 하지만 암묵적이건, 말로 표현하건 약속은 여전하다. 당신이 일만 잘하면 다 잘될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약속은 더이상 이행되지 않고 있다.
- "당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 모든 것을 동시에. 남들은 해내는데 만약 못해낸다면 당신이 잘못된거야. 더 노력해야 해." 이런 조언들이 우리에게 죄책감을 유발한다. 그리고 죄책감은 우리를 채근한다. "모두 다 하는데 나만 멍청하고 게을러서 못하는구나. 그러면 안돼." 절망의 수위는 치솟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관리됨. 주말에도 열심히 일했다면 보상으로 적어도 한창 뜨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외식 한끼는 해도 된다. 아니면 멋진 터키블루색 옷 한벌을 장만하든지, 사우나에 가서 마사지를 받든지, 우리는 속삭인다. "난 이정도는 누릴 자격이 있어." 여행업계, 미용업계, 건강산업, 자동차업계, 소비산업 전체가 이런 대리만족을 먹고 산다. 이것이 다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지친 우리 일버에게 진정제와 각성제를 파는 제약업계와 약국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의 직업병은 더 이상 망가진 관절이나 유황중독이 아니라, 심리장애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우리의 직업병이다. 일은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약과 힐링, 트레이닝과 자기관리를 위한 서적이 필요하다. 이들 산업은 그래서 전도유망하다. 그렇게 시스템은 작동을 유지하고, 나선을 그리며 돌아간다.
- 독일과 유럽 교육 시스템의 또 다른 뿌리는 르네상스-휴머니즘, 계몽주의, 산업혁명이다. 초등학교란 말은 1779년에 처음 나옴. 독일어권에서 초등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한 사람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다. 1717년 그는 5세에서 12세까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반교육의무 칙령을 발표. 이 나이의 아이들은 반드시 학교에 가야하고 읽고 쓸 줄 알아야 학교에서 졸업을 시켜준다는 내용이었음. 지금 수준을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농부의 자식들은 그냥 들판에서 뛰어놀았지, 인쇄된 글자를 구경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국민교육 차원에서 대단한 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 세금으로 지원하는 무상의무 공립교육의 이념은 매우 혁명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절대로 지배자의 사심없는 인류애의 표현은 아니었다. 군주들이 의무교육을 도입한 이유는 국민을 국가가 바라는 얌전한 시민으로, 젊은이들을 훌륭한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대교육의 기본배경은 이렇다. 훗날 산업시대 교육 시스템 역시 이런 목적 지향적 학교이념의 산물이었다. 학교는 공장교육에 걸맞은 인간을 양성하는 제도였다. 다시 해석하면, 국민을 단순노동을 하는 다수의 계측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소수집단, 그리고 의사, 변호사, 교사, 목사 등 고등교육이 필요한 더 적은 숫자의 집단으로 삼등분한다는 의미. 그러니까 일반교육의무는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공장과 산업체에 필요한, 읽고 쓰고 셈할 수 있는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한 제도였던 것.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으로 나누는 지금의 단계별 교육제도는 무엇보다도 19세기 프로이센에서 독일의 사상가 훔볼트가 주도한 신인문주의 교육개혁의 작품이다. 세계 무역이 막 개시된 시대였던 만큼, 고전어인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이외에 당시 많이 사용되던 여러 외국어가 학습과목에 추가되었다. 국어와 자연과학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미 추가된 과목이었다. 대학 입학 여부를 결정했던 마투라 시험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1834년 도입한 제도로, 지금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의 전신. 이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시스템이 완성되었고, 그날 이후 교육원칙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 요컨대 오늘날의 학교는 교회가 장악한 중세에 고대의 정신을 회복하고 싶었던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세속화된 자연과학을 받아들인 계몽주의, 노동자계급의 기본교육을 요구한 산업혁명, 마지막으로 국제주의를 주창한 프로이센의 패권주의가 한데 뒤엉켜 만들어진 작품임. 이런 여러 소품들이 빈틈없이 짜깁기 되어 현재의 학교형태, 수업방식, 시험, 커리큘럼, 시간표, 수업시간, 교칙이 만들어짐. 그러니 이런 학교의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수도 있음. 하지만 이런 현대적 교육제도의 탄생과정이 약 150년전에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함. 교육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은 각기 180년, 250년, 800년 전의 것들임. 그날 이후 학교구조의 기본은 거의 변하지 않았음. 물론 교실에 컴퓨터가 들어왔지만 학생들은 1000년전 라틴어학교의 학생들과 똑같이 배치된 교실에 앉아 있다. 교회 의자터럼 똑같이 줄지어 놓인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신의 대리인처럼 교실 앞에서 연설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함.
- 우리아이들이 학교에서 실제로 배우는 것들
(1) 혼란 : 지금의 시간표는 모든 수업내용을 서로 연관성 없도록 갈기갈기 찢어 놓으며 피상적으로 훑고 지나감
(2) 사회의 계층화 : 똑같은 성적의 아이들을 한 학교, 한 학급에 모음.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학급의 종류에 따라 사회적 피라미드 안에서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배움
(3) 무관심 : 종이 울리면 아무리 재미있는 수업도 중단되므로 아이들은 끝까지 마칠 가치가 있는 일은 없다고 배움.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참여를 하지 않음. 혹은 참여하는 척함
(4) 정서적 종속 : 교사의 칭찬과 체벌을 통해 아이들은 미리 정해진 명령의 사슬에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켜야 한다고 배움
(5) 지적 종속 : 학생이 무엇을 생각하고 배워야 할지를 교사가 말해줌. 따라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위계질서와 자율성 결핍, 비독립성을 내면화함
(6) 불안한 자의식 : 학생의 성적과 태도가 쉼없이 평가받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에 매달리게 됨
(7)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관찰당하는 것이 아님. 숙제를 해야 하므로 집에서도 감시당함
- 우리의 사회와 교육 시스템, 경제, 기업에서는 늘 이 다섯가지 질문이 제기됨. 산업의 시대에 뿌리를 내린 질문이다. 어떻게 측정할 수 있나? 비용은 얼마인가? 얼마나 걸리는가? 모범사례는 무엇인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특정한 마음가짐을 반영하기에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고 생각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게 됨. 이런 마음가짐, 이런 세계관은 너무 단순하여 많은 것을 놓치는 순수합리적 세계관임. 단순한 인과관계를 믿고 정해진 일의 순서를 신뢰하며, 중요한 것은 수량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보다 반응을 더 선호. 물론 이런 태도가 틀렸다는 것은 아님. 그저 불충분하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면서 이것만이 유일하게 옳은 유일하게 전문적인, 유일하게 제 기능을 다하는 관점이라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
- 시스템을 박차고 나와 나의 일을 시작한 사람의 대부분은 시장의 반응을 얻지 못함.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세상이 그를 무시하는 것이다. 시장이 그를 무시하는 데는 일련의 이유가 존재.
(1) 내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탈출, 즉 직장인의 따분한 일상탈출에 중점을 두다보니 목표를 미처 고민하지 못함.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 아이디어를 시장에 맞는 제품으로 탈바굼시킬 계획이 없음.
(2) 내일을 하는 사람들은 변덕이 심함. 흥미있고 스릴있고 전도유망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있다 싶으면 무조건 달려듬. 그러다보니 이것 찔끔, 저것 찔끔, 간만 보다 만다
(3) 내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할뿐, 하기 싫은 일은 안하려 함. 컨셉은 멋지게 짜놓고 막상 그것을 실행하는 데는 관심이 없음.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도 그것을 판매하는 데 겁을 먹음
(4) 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너무 강한 확신을 갖고 있어서 남의 비판을 듣지 않음. 선의에서 나온 바람직한 평가도 화를 내며 부인. 고객은 만족을 모르는 불평꾼들이며 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식꾼들이다. 주변에서 그에게 선의의 비판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조리 질투심에 눈이 먼 인간들이다
(5) 그들은 자신의 불충분함을 모른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한다. 도무지 믿을 인간이 없다. 자기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의 일이 그만의 일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까
(6)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가 모든 우주가 됨. 시장의 복잡한 사정에는 눈을 감는다. 한마디로 근시안이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가망 없다는 사실을 보고도 남음이 있는데 실현 가능하다고 우긴다. 가망이 없는 것을 붙들고 있자니 결국 심각한 불만에 휩싸인다.
- "질문을 던지고 찾고 세상을 활용하는 대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 주저하거나 그냥 익숙한 길을 택하고 만다." 그는 말한다. "하지만 더 나은 제품과 더 나쁜 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온갖 콘플레이크 상자들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다. 삶도 다르지 않다. 판단기준이 없으면 많은 선택사항은 스트레스만 유발할 뿐이다." (찰스 핸디)
- 좋은 대답에는 항상 좋은 질문이 선행한다. 질문의 품질은 대답의 품질을 결정한다. 어떤 종류의 질문은 "왜 인간은 날 수 없을까?"와 같은 질문처럼 문을 닫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들은 울타리를 쳐서 우리가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한정시킨다. 다른 품질의 질문은 문을 여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인간이 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다. 그런 질문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우리가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크게 확장시킴. 문을 여는 질문 뒤편에는 새로운 것을 긍정하는 개방적 자세가 숨어 있음. 비용, 기간, 실행방법, 측정가능성, 기대 등을 묻는 전형적 질문들은 문을 닫는 공허한 질문의 범주에 속함. 이것들은 오로지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합목적성, 유용성에만 초점을 맞춤. 따라서 우리의 사고를 가두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가려버린다.
- 의식적인 삶을 위한 다섯가지 질문
(1)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하루를 마친 나에게 기분좋고 뿌듯한 피곤함을 선사하는가? 기분좋은 피곤함이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는 기분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밖으로 뿜어져 나가는 에너지, 이런 종류의 에너지는 힘껏 쏟아붓고 나서도 기분 좋고 또 계속해서 채워지기 때문에 고갈될 위험이 없음
(2) 내가 하는 일이 정말로 내게 중요한 것을 목표로 삼는가? 나에게 의미있는 일인가?
(3) 내가 하는 일이 타인에게 가치를 부여하는가? 나에게 주는 의미와 타인에게 주는 의미가 상호작용을 하는가? 이를 통해 나와 타인들 사이에 일종의 반향이 생겨나는가?
(4)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성장과 배움,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5)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고맙고 그 일에 투자한 시간이 보람되다는 느낌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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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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