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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승리인가 자본의 위기인가

저자
울리케 헤르만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14-1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는 현재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고작 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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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는 영국에서 시작. 하지만 왜 영국이었을까? 영국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그다지 앞서 있지 않았으며, 고대 로마인들의 수준보다 더 나을게 없었음. 증기기관은 아르키메데스 이후 잘 알려져 있던 원칙에 바탕을 둔 것이었음. 그렇다면 영국에 특별하고 남다른 게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상에는 어울리지 않음. 요컨대 당시 영국의 임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았으며, 이 때문에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역사상 최초로 이득을 주었다. 영국의 경험은 아직도 유효함.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실질 임금이 상승하는 한 안정적으로 발전. 많은 기업가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만, 낮은 임금이 아니라 높은 임금이 성장을 촉진하고 회사를 부자로 만들어줌
-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무역을 할 줄 알았다. 아울러 이런 거래는 다양한 장소 사이의 가격차이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경제는 오로지 노동력의 생산성이 증가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성장을 원한다면 그와 같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 부유해서 더 이상 재산을 늘릴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소유한 대규모 농장은 항상 제후와 같은 소득을 안겨다 주었따. 심지어 농작물을 잘 관리하지 못할 때조차 그러했다. 게다가 부유한 로마인은 자신의 재산을 구경할 기회도 드물었따. 그들은 농사의 '농'자도 몰랐으며, 도시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 농지 관리인을 살피라 가끔 시골을 방문하는 게 고작이었다. 부자들이 주로 했던 고민은 고용인들이 진실하지 못해서 소득의 일부를 자기 주머니에 채워 넣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핀리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이는 경찰관의 시각이며, 기업가의 시각은 아니다." 부자들이 더 나은 기술에 투자하기에는 너무나 부유했던 반면,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했음. 대다수 농부는 너무나 적은 땅을 소유해 가족을 부양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음. 이들은 계절 노동자가 되어 이웃에 있는 대규모 농장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최저임금을 받아 생활. 이런 방식으로 악순환이 거듭됨. 요컨대 고대 로마인과 그리스인은 노동력이 너무 쌌기 때문에 자본주의자가 되지 못했던 것.
- 최근 연구에 의하면 중국의 쇠퇴는 완만하게 진행되었음. 1800년 경 중국은 정치적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었으나 경제적으로는 서유럽 지역과 비교할 때 이미 뒤떨어짐. 이는 교육을 받은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의 실제 임금에서 나타남. 하류층이 주식으로 삼았던 밀 혹은 쌀을 기준으로 보면, 1820년 중국인은 1인당 영국인 하루 품삯의 38%에 해당하는 실질임금을 받았음. 요컨대 영국의 보통 사람들은 중국인보다 한층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했음. 물론 이와 같은 부는 처음에는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만 가능했음. 남부 이탈리아나 동유럽의 형편없는 임금과 비교하면 중국인은 오랫동안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음. 중국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 것은 상인들이 존경은 받았으나 어떤 정치적 삶도 누릴 수 없었다는 데 있음. 그들은 막강한 행정관료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이 관료들은 상업과 생산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음. 대신 중국 관료들은 무엇보다 농업에 관심을 기울였음. 수확량을 늘려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였음. 또한 관료들이 겉으로만 외국문화에 개방적이었던 점도 발전을 방해한 요소임. 유교적 국가이념은 중국을 야만민족들에게 둘러싸인 중국, 즉 가운데 나라로 규정했고, 하늘의 축복을 받은 제국으로서 다른 나라로부터 공물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음.
- 중국 궁정은 낯선 민족과의 무역을 경제적 시도로 보지 않고, 정치적 특권에 관한 문제로 이해했다. 황제에게 무역이란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 다시 말해, 다른 국가에서 가져온 물건을 받는 행위는 그들이 중국보다 더 나은 제품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음. 이로써 유럽이 중국에 자본주의적 비약을 의미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 동시대인들은 결코 영국이 전 세계 경제를 변혁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대영제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주 작은 나라로 1760년에는 대략 7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음. 당시 유럽의 강대국은 2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프랑스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세계를 영원히 변화시킬 발전이 시작되었음. 즉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 것. 훗날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산업혁명이라고 불렀지만, 초기에는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 하나의 생산분야(섬유)를 기계화했는데, 그것도 아주 천천히 산업화가 진행됨. 손으로 짜던 베틀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데는 1780년부터 1830년까지 50년이 걸림. 오늘날까지도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분명한 해답은 없음. "비록 이처럼 놀라운 현상에 관해 수천권의 책이 나왔지만, 아직도 그 의문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음.
- 영국은 가장 비싼 노동력과 가장 싼 에너지를 갖고 있었음. 이와 같은 조합은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며, 산업과하 영국에서 시작된 이유를 설명해줌. 영국에서만이 사람을 대체할 경우 이득이 되었다.
- 낙후한 농업국가로서 경제를 현대화하고 싶은 나라는 바로 가차없이 표절하고 복사해야 했음. 이것이 단 하나의 기회임. 오늘날 중국인들이 롤렉스와 거의 비슷한 시계를 만든다고 흥분하면 공평하지 않음.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그리고 스위스인도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들은 다만 베틀과 기관차를 훔쳤을 뿐이다. 하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경우가 보여주듯 그들은 계속해서 모방만 하지는 않았따. 복사판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금세 자신들이 직접 물건을 만들었다. 중국도 이런 수순을 밟으며 발전하고 있을 따름이다. 중국의 성장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애초부터 순전히 서구적인 경제형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탄생한 까닭은 노동력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 하지만 자본주의를 발명하자마자 다른 사회는 이를 받아들였고 또 다양화시켰다. 일본은 비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1867년부터 체계적으로 자체적인 산업을 구축하기 시작. 일본은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라를 개방. 이웃 나라인 중국이 유럽인들에게 어떻게 패하고 굴복했는지 자세히 관찰. 이와 같은 위협을 고려하면서 일본은 한때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패했을 때처럼 반응. 즉 메이지 황제 주변에 있던 소수 엘리트들이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 무사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오래된 계급제도를 폐지. 현대적 소유권도 확립. 의무교육제를 도입했으며, 1873년부터 최초의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 일본인들은 서구의 산업기술을 매우 창조적으로 다루었음. 낮은 임금으로는 기계를 도입해도 유리하지 않으므로 기업가에게 이득을 안겨다 줄 때까지 서구의 장비를 바꾸고 개조. 일본은 몇십년 만에 서구 열강을 따라잡았음. 일본이 1905년 거대한 국가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겼을 때, 전 세계는 이를 상징적 순간으로 받아들임. 자본주의가 동양에도 도래한 것이다.
- 허버트 사이먼은 아무것도 모르는 화성인이 우리경제를 어떻게 묘사할지 자문해 보았다. "화성인은 지구인이 시장경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지구인은 조직화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이를테면 경제활동 대부분을 회사가 시장에서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회사라는 경계내애서 조정되는 조직경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이다."
- 현대 자본주의는 비록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일종의 계획경제이다. 물론 계산을 중앙부처에서 하는지, 아니면 민영회사들이 분산적으로 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계획은 계획이다. 만일 위험(수익도 포함해서)을 계산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감독하지 않는 경쟁은 파괴적이기 때문에 그런 경쟁은 애초부터 차단해야 한다. 이는 기업연합이라는 경제적 권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적어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사실 또한 여기에서는 중요함. 상류층에 속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알고, 만나고, 결혼한다. 신고전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또한 일찍이 어디에서나 늘 부정한 일이 벌어지는 것에 분노했다. "동일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결탁해서 대중에 반하는 일을 꾸민다거나 가격협상 같은 계획을 의논하지 않으면서 함께 모이는 경우는 (파티나 휴식을 즐기는 시간에도) 매우 드물다."
- 자칭 공평한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믿음은 자기관리라고 부르는 사회 전반적 트렌드와 가장 잘 어울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가능한 한 시장에서 잘 통용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함. 요컨대 다른 육체 및 뇌와 경쟁해 이길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함. 대형 서점에 가보면 그와 같은 현상을 쉽게 볼 수 있음. 독자들을 좀더 똑똑학 좀더 부유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 동기유발이 좀더 잘되고 좀더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음. 자기관리에 대한 이런 충동은 산업화가 낳은 자식이라고 할 수 있음. 사람들은 자신을 마치 기계에서 나온 제품처럼 본다. 이를테면 여러 단계를 거쳐 가능한 한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여긴다. 자기관리에 대한 책이 최초로 나온 것은 이미 1920년대의 일이지만 자신의 몸이 튼튼하고 좀더 건강하고 스트레스에 잘 견디게 하려면 책만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육체적 움직임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30년 전부터 헬스클러이 호황을 누렷다. 700만명 이상의 독일인이 이런 헬스장에서 체력을 단련한다. 평균 40세 이상인 그들이 올려주는 매상은 해마다 40억 유로에 달함.
- 17세기까지 거대 한자도시들이 전 세계의 무역을 지배했지만, 이들 도시는 작은 자본주의의 섬처럼 더 넓은 봉건국가라는 바다 위에 떠 있었음. 그런데 18세기가 되자 이런 상황이 변화. 최초로 국가 전체가 자본주의적 이익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바로 영국이 그러했다. 이미 언급했듯 1688~89년 일어난 명예혁명은 바로 이같은 변화의 상징이었음. 권리장전은 의회에 광범위한 권리를 보장했으며, 이들의 권리가 왕의 권력을 제한. 외형상으로 보면 이로써 영국은 입헌군주제가 되었지만, 투표권은 최소한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음. 무엇보다 지방귀족이나 상인으로 구성된 소수 엘리트들이 영국 의회를 장악했으며, 영국의 정치를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에 도움이 되게끔 이용. 이런 목적으로 그들이 선택한 왕은 우연이 아니었음. 즉 영국인들은 1688년 카톨릭을 신봉하던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윌리엄 3세에게 왕관을 주었다.
-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국가의 지속적 개입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작동하지 못함. 그럼에도 왜 시장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완강하게 무시하는 걸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러함. 즉 국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전혀 유쾌하지 않기 때문. 그들에겐 끊임없이 수백만명의 시민과 함께 해야 하는 것도 힘들고, 사람들이 도망갈 수 있는 경제적 섬이 없다는 것도 무척 힘들 뿐이다. 이와 반대로 시장이라는 이념은 그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준다. 즉 이곳에서는 오로지 개인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개인은 자신의 성과를 바탕으로 삶을 구축할 수 있고, 전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떠맡을 수 있다. 그들에게 이런 동화는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 게다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부를 이룰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을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자신이야말로 성과를 이루어낸 장본인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운다. 오늘날 대처의 연설장면을 보면, 너무나 뻣뻣해서 약간 놀랄 수 있음. 대처의 연설은 마치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는 것처럼 보임. 그럼에도 그 연설은 파장을 일으켰음. 영국의 수장이 자유시장과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동화를 완벽하게 이야기했기 대문. 86년 대처는 공공시설은 수도와 철도, 그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모두 매각한 뒤 이를 정당화하는 연설을 했다. "우리 정치가들에겐 모두 꿈이 있습니다. 내 꿈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에게 자주성을 심어주기 위해 힘과 책임을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의 위대한 개혁은 점점 더 많은 시민에게 선거권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개혁은 점점 더 많은 시민을 재산권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민족자본주의는 믿음을 심어주려는 대대적인 캠페인으로서 많은 사람이 영국의 경제에 참여할 수 있게, 자유롭고도 능력있게 해주는 십자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겐 자극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겐 책임감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겐 뭔가 자신의 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자유와 존엄도 필요합니다. 우리 정치의 힘은 바로 우리 민족의 건전한 직관에서 나오며, 재산, 절약, 정직한 노동과 공평한 보상이라는 직관에서 나옵니다." 개인은 이렇듯 정직한 재산이 있는 세계에서 살고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아름다운 동화일 뿐이다. 실제로는 소수 금융 투자자들이 독점적 이윤을 휩쓸어간 반면, 영국의 철도와 수도는 망해버렸다.
- 흔히 세계화 시대에 정치를 실행하는 게 가능한지 의심을 많이 한다. 이런 의심의 배후에는 기업이 국제적으로 행동하면 민족구가는 힘을 잃고 만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 역시 착각이다. 민족국가는 결코 세계화와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계화와 함께 발생했고, 또 세계화를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역사가 배울만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요컨대 독일제국을 이룩한 1871년에야 비로소 독일은 세계적 수출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 달리 표현하면, 오로지 강력한 민족국가들만이 세계화에 참여함. 국제적으로 다른 많은 국가와 지극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국가들만이 세계화에 동참한다는 의미. 오스트리아,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는 모두 수출강국임과 동시에 훌륭한 행정 및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 따라서 세계화란 국제적 기업연합과 은행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이를테면 전 세계적인 무정부상태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말이다. 국내정치도 아주 큰 힘을 갖고 있다. 다만 지난 30년 동안 국내정치가 이와 같은 권력을 자주 포기했을 따름이다. 금융시장과 기업연합에 대한 이와 같은 복종은 유감스러울 뿐 아니라 위험하다.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 감독을 받아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과 정치가들에게는 이런 자각이 부족하다. 시민과 정치가들은 은행과 은행이 다루는 재화인 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선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 독일인은 인플레가 두렵고 중앙은행의 금 정책을 신뢰할 수 없어 금을 구입. 그런데 정작 금가격을 유지해주고 이로써 신화(금은 금융위기가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치를 지녔다는 신화)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은 바로 중앙은행이다. 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금 구입은 그 어떤 행위보다 위험하다는 사실을 재빨리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실은 바로 금에서는 이자도 나오지 않고, 배당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저축통장이 훨씬 낫다.
- 소비자들은 우선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경향이 있음. 하지만 가격이 내려가면 수익도 떨어진다는 점에서 디플레는 항상 위험함. 많은 기업은 수익이 떨어지면 더 이상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러면 성장은 멈춘다. 바로 이와 같은 순환을 19세기에도 관찰할 수 있었다. 디플레의 효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1878~96년의 경제를 살펴보면 매우 유익. 이 시기에는 경기위기와 함께 가격에 대한 구조적 압박이 동시에 일어났음. 장기적 인플레이션의 시기 혹은 장기적 우울의 시기에 가격과 수익이 너무나 떨어져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한 위기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가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당시에도 경제는 성장했음.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함. 사람들은 무엇보다 수익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많은 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만 경험. 그리하여 가격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임금도 내려갔음. 심지어 철강산업과 광업에 종사하던 근로자의 임금은 절반으로 떨어졌음. 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났음. 시골지역의 상황은 더욱 끔찍했다. 이와 같은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1880~93년 전례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만큼 많은 독일인이 이민을 떠남. 180만명의 독일인이 미국으로 향했음.
- 좋은 시기라 해도 고대와 중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저생활보다 약간 나은 삶을 살았을 뿐이다. 1500년에 전형적인 유럽인 한 사람은 1년에 180킬로그램의 빵을 먹었고, 180리터의 맥주를 마셨다. 당시의 맥주는 알콜 함량이 적었고 실제로 액체형태의 빵이었다. 여기에 26킬로그램의 고기, 5킬로그램의 버터와 치즈, 그리고 52개의 달걀을 소비. 이 식량을 구입하려면 총수입의 80%를 지불해야 했음. 아울러 수입의 5%는 난방비에, 10%는 초와 전등에 넣을 기름을 구입하는 데 들아갔음. 그리고 나머지 얼마되지 않는 돈으로 비누와 직물을 구입.
- 모든 내기처럼 파생상품도 처음에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 편이 따면 다른 편은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생상품 사업은 그 다음날이면 잊어버리는 포커게임처럼 결과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제로섬 게임과 달리 파생상품 사업은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기는 주가를 왜곡하고 급격히 요동치게끔 한다. 원료든, 통화든, 이자든 모든 가격은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실제 세계에서는 대부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파생상품은 주가의 변동만 부추길 따름이다. 이처럼 주가변동은 그야말로 비합리적이며 아무도 계산하지 못함. 그 때문에 기업들은 변동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 그래서 파생상품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때 수수료는 은행의 몫이다. 이렇게 투자은행은 스스로 내기사업을 벌일 뿐 아니라 실물경제로부터 일종의 특별세금을 챙기기도 함. 요컨대 은행 스스로 불러일으킨 금융혼란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물경제로부터 특별세금까지 거둬들이는 것이다. 12년 한해동안 미국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만 가지고 벌어들인 수익은 490억 달러에 달했음. 그중 93%는 오로지 4개은행에 집중되어 있었음. 물론 은행들이 파생상품만 가지고 돈을 벌어들인 것은 아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필리퐁은 최근 은행들이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경제부문에 강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을 위해 떼어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았다. 그 결가 80년대 금융산업이 올린 수익은 미국 경제적 성과의 5%나 되었다. 2010년에는 8% 이상이었다. 이 같은 3% 상승을 지금가치로 계산하면 매년 약 4700억 달러에 해당. 투자은행은 이 세상에서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스스로 시장을 조작할 수 있는 유일한 업계임. 이런 점은 금융시장이 실제 시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
- 투자은행은 독특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돈을 돈으로 바꾼다. 다만 형태가 바뀔 뿐이다. 은행자산은 외국환이 되고 외국환은 주식으로, 주식은 채권으로, 채권은 원료파생상품으로 교환된다. 원래 이와 같은 사교 무도회에서는 가치라는 것이 발생하지도 않으며 이윤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교환행위는 순전히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도하게 자산이 상승하거나 이득이 생긴다면, 이런 돈은 실물경제에서 회수한 특별세금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로지 새로운 신용대부를 지속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지속적인 가치상승이 일어난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는 서류상으로만(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컴퓨터의 바이트로만 존재. 한 사회의 진정한 부는 사회가 매년 생산해내는 상품과 서비스에 존재하기 때문. 하지만 신용대부로 자금을 확보한 슈퍼거품이 자산을 급격하게 부풀리는 동안, 경제적 성과는 다만 천천히 증가할 뿐임. 이와 같은 신용대부 메커니즘이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은 아님. 국제통화기금이 1970~2011년 발생한 위기를 헤아려보니 은행위기 147회, 통화위기 218회, 국가채무위기가 66회나 되었음. 하지만 이런 소동은 대부분 중요하지 않은 지역, 이를테면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 혹은 러시아에서 일어났음. 반면 월스트리트는 항상 눈이 부시도록 잘 돌아갔음. 이런 의미에서 2000년은 그야말로 최초의 전환점이었음. 이때부터 슈퍼거품이 너무나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음. 많은 투자은행가들은 이렇게 되길 원치 않지만 그들의 시대는 종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 투자은행가들이 세운 금융건물이 얼마나 흔들릴지는 1929년과 비교하면 알 수 있음. 당시 미국 모든 주식을 합한 가치는 대략 경제적 성과와 같았음. 좀더 정확하게 계산하면 미국의 모든 주식을 합한 가치는 경제적 성과의 1.1배였음.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 주식시장이 붕괴하지는 않았을 것임. 이와 반대로 2000년 초 미국 주식의 가치는 한층 급격히 올라 경제적 성과의 1.7배나 되었음. 금융의 잠재적 가치는 산더미처럼 커졌고, 2000년부터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 산을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에 골몰. 산사태처럼 무너녀 실물경제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 모든 투자자 가운데 가장 영리한 부류들은 오로지 국가만이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파악. 미국의 억만장자 워렌 버핏은 자신에게 좀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라고 여러차례 미국정부에 요구. 그는 여러 신문기사에서 자신이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나 겨우 17.4%의 세금만 냈을 뿐이라고 밝힘. 반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평균 36%의 세금을 낸다고 했다. 슈퍼 부자들이 혜택을 누리는 반면 중산층은 피를 흘리는 것이다. 버핏에게 이런 불균형은 지나치게 불평등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멍청한 짓이다. 그는 부자들의 세금을 경감해주면 어떤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 그럴 경우 오히려 정반대 결과가 나옴. 70년대 미국 회사들은 세금을 훨씬 많이 냈으나 더 많은 투자를 했음. 버핏은 이처럼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쉽게 설명함. 즉 기업은 이윤을 올릴 기회가 있으면 투자를 함. 버핏에 따르면, 투자를 하고 난 뒤 얻는 수익에 대해 나중에 세금을 얼마나 낼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음. 중요한 것은 우선 수익을 내는 데 있음. 버핏이 부자에게 부과하는 높은 세금은 경제의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촉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일한 사람은 아님. 이렇듯 모순처럼 보이는 사실은 독일 경제학자 슈튀첼이 58년 상세하게 설명한 잔액역학과 상관이 있음. 잔액역학은 지극히 복잡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간단한 회계법이다. 기본은 이러하다. 국민경제에서는 모든 분야가 동시에 절약할 수 없다. 만약 국가, 기업, 민간 모두가 잔액 혹은 흑자를 쌓아두기만 한다면 경제는 무너져 버릴 것이다. 누군가가 절약을 하면 다른 어떤 사람은 빚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은 은행에 들어가 있고 수요가 부족해진다. 그러면 경제는 위축되고 저축도 사라진다. 볼프강 슈튀첼은 케인스 학파가 아니었으면, 자신을 자유로운 시장경제학자라고 봤다. 어쨌거나 저축이 있으면 신용대부를 받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 돈은 먹을 수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소박한 지혜를 끊임없이 망각함. 모두가 미래를 위해 안전자산을 마련해두려고 돈을 저축. 하지만 사회 전체가 돈을 쌓아둠으로써 미래를 준비할 수는 없다. 돈 하나만으로는 어떤 부도 창출하지 못한다. 돈은 사회적 윤활제일 뿐이며 계좌에 있는 숫자일 따름이다. 부란 원래 내일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오늘 행하는 투자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돈은 자본으로 변할 때라야 비로소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은행에 들어 있는 돈은 장기적으로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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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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