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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경제 2014. 10. 22. 20:58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저자
마조리 켈리 지음
출판사
북돋움 | 2013-03-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일하지 않는 주주 몫은 ‘이익’인데, 왜 직원 몫은 ‘비용’인가...
가격비교

- 경제 귀족주의의 6가지 원칙
(1) 세계관 : 기업 재무제표 이면의 세계관은 주식 소유주의 몫을 최대한 많게, 직원의 몫을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2) 특권 : 주식 소유주는 부의 창출에 별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부에 대한 권리를 가짐. 과거 귀족들이 무위로 특권을 누리던 것과 마찬가지임
(3) 재산 : 주식회사는 봉건영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재산으로 여겨지므로 재산가가 소유하며 사고팔 수 있음
(4) 통치 : 주식회사는 재산가 계급만이 투표권을 가지는 귀족주의적 통치구조에 따라 운영함
(5) 자유 : 기업자본주의는 주식 소유주만을 위한 전 민주주의적 자유개념을 따름. 이 개념은 직원과 지역 공동체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제대로 작동함
(6) 주권 : 주식회사는 자신이 민간주체이며 자유시장은 자기조정적이라고 주장함. 봉건영주들이 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주권을 주장했던 것과 닮을 꼴임
- 경제민주주의의 6가지 원칙
(1) 계몽 :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으므로 기업의 직원과 기업이 속한 공동체도 자본의 소유주와 같은 경제적 권리를 누림
(2) 평등 : 시장 원칙에 따르면 주식 소유주에게만 귀속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음. 주식회사의 부는 그 부를 창출한 이에게 속하며, 공동체의 부는 모두에게 귀속됨
(3) 공공선 : 상장 주식회사는 반 공적 정부로서 사적재산이나 사적 계약 이상의 존재임. 따라서 공공선에 대한 책임을 짐
(4) 민주주의 : 주식회사는 사람으로 이뤄진 공동체이며, 기업이 속한 더 큰 공동체가 그러하듯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것이 가장 좋음
(5) 정의 :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이 부유한 이가 다른 이들보다 더 큰 권리를 행사해서는 안되며, 주식회사가 인간의 권리를 누려서도 안됨
(6) 혁명적 진화 :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음
- 내부자인가 외부자인가 정하는 문제가 핵심임. 문화사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외부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국주의자들의 근원적 도구라고 말함. 그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원주민에게 식민지 예속의 역사는 지역성을 외부자에게 빼앗기면서 시작되었고 그 외부자들의 현존 때문에 처음에는 상상을 통해서만 그들의 토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했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핵심에는 이야기가 있음. 사이드는 이야기하는 힘, 혹은 다른 방식의 이야기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 힘이 문화를 규정한다고 말함. 존재의 거대한 사슬은 구세계의 이야기였고, 그 안에는 누구든 자신의 자리를, 그 자리가 아무리 낮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 이씀. 재무제표는 기업의 이야기임. 그 안에는 직원의 수입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한마디로 가능한 한 적은 액수여야 한다는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음
- 주식시장은 더 이상 투자의 장이 아님. 생산적 산업과 기업이 의존하는 자본수집 및 조달 시스템과 그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주식 매입자는 저축자금을 기업에 제공하지 않음. 그저 주식의 가치가 오를 가능성을 추정하는 일을 할뿐. 주식 매입이 매입자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하는 공헌이 있다면 자신의 보유주식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길 원하는 다른 주주를 위해 유동성을 유지해주는 것뿐임
- 주식거래의 주된 목적은 유동성, 즉 투자자산을 유동화해 현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것. 물론 주식을 팔 수 없다면 주식은 별 가치가 없어질테니 분명 필요한 기능임. 하지만 유동성은 투자가 아니라 추출을 위한 기능임. 귀족사회에 비유하자면 고생없이 수수료와 사용료를 거두어 들이는 것과 비슷함
- 적대적 인수라는 가혹한 현실, 거기에 마찬가지로 이익극대화를 원하는 새로운 초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요구탓에 이사회는 드디어 잠에서 깨어남. 깜짝 놀란 곸은 몸을 움직여 CEO를 덮쳤음. 더 무자비했어야 한다면서. 91년부터 93년은 전설적 시기로 기록됨. 이 기간중 행동에 나선 이사회들은 제너럴 모터스, IBM,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닥, 웨스팅하우스, 보든 등 24개에 이르는 거대기업의 CEO들을 해고. 살아남은 CEO들은 주가가 오른다면 수백만 달러에 달할 스톡옵션을 받음. CEO들은 명백한 갈림길에 있었음. 주주에게 충성해 엄청난 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쫓겨날 것인가. 이런 압박아래 주식회사의 세상은 경영자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투자자 자본주의 시대로 재빠른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을 발걸음을 옮김
- 영국의 경우 명예혁명은 민주주의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음. 하지만 모든 이를 대변하는 주권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만을 대변하는 주권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고작 한걸음을 내디딘데 불과. 오랜 시간에 걸쳐 투표권을 갖는 계층이 확대되었고, 이런 구도에도 변화가 일어남.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로부터 3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기업통치에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주식회사는 여전히 재산가 계급의 이름으로만 통치됨. 그 뿌리를 보면 실제로 주식회사를 통치하는 것은 존재의 거대한 사슬이라는 정신적 유산, 바로 부를 소유한 이들만이 중요하다는 사상이 있음. 여기에는 이들만을 기업사회이 진짜 일원으로 여기는, 따라서 이들만이 유일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더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음. 이런 사고에는 귀족만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17세기 영국 사회의 편견이 그대로 남아 있음. 당시의 영국사회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가 구현하는 사상들이 사실상 통치하는 사회였음. 그 사상이란 귀족의 이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며, 귀족만이 통치의 권한을 지닌다는 생각임. 오늘날 상장 주식회사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관념이 존재. 주주의 이해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며, 주주만이 통치의 권한을 가짐
-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닫힌 사회의 원형이 부족적 귀족사회라고 지적. 이러한 고대문명에서는 사회의 운명을 지배계급의 운명과 동일시함. 오늘날 주식회사의 운명을 주주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닫힌사회에서는 기본전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 태양이 뜨는 일처럼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는 법과 관습, 변치 않는 금기가 있고, 그런 것들로 이뤄진 주술적 구조 안에서 부족들이 살아가기 때문. 포퍼는 금기에 의한 통치, 다시 말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규범에 의한 통치가 닫힌 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함. 이런 문화에서는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을 구분하지 않음. 예컨대 중력의 법칙과 왕권신수설이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임. 이런 사회는 관습이 자연법칙과 같은 힘을 지닌다고 믿으며, 그런 관습이 영영 변하지 않을수도 있음.
- 포퍼에 따르면 이런 사회에서 통치의 기술은 일종의 목축기술로 인간무리를 관리하고 억압하는 기술과 다름 없음. 인간무리란 노동자와 하인들을 일컫는데, 그들의 유일한 기능은 지배계급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해주는 것일 뿐임. 포퍼는 모두가 자신의 자리가 적절한 것이라고,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이 정해준 자연스러운 자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아무도 이 같은 사회질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함. 이런 사회에서는 심지어 노예조차 사회적 긴장을 일으키지 못함. 노예는 사회의 일원이라기 보다는 가축무리의 일부이기 때문. 그들의 열망, 그들의 문제에서 지배층이 사회문제라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생겨나는 것은 아님. 고대의 닫힌 사회가 부족적 귀족사회라면 포퍼는 그 현대식 변형을 전체주의 국가에서 보았음.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출간한 것은 1943년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이 세계 무대를 활보하던 시대였음. 그는 이 책으로 전체주의를 비판. 포퍼는 전체주의적 도덕론에서는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속한 부족, 내가 속한 국가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함. 따라서 지배족속에게 유리하다면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나 자국의 시민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것고 허용됨. 닫힌사회는 명백히 비도적적임
- 오늘날 주주들이 기업통치를 장악하는 것은 자연법칙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규범법칙에 불과. 규범의 표현이요, 누가 중요한지에 대한 믿음일 뿐. 한마디로 말하면 편견에 불과.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주주 중심주의를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봄. 고전적 닫힌 사회의 사고로는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을 구분하지 못함. 우리는 액튼이 권력이 토지와 함께 간다는 옛 교의라고 표현한 사상, 즉 소유에서 통치의 권리가 나온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임. 그리고 이런 사상은 다시 주식회사가 일종의 재산이며, 주주가 주식회사를 소유한다는 가정을 바탕에 둠. 재산을 통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
- 계약의 자유가 자유개념의 법적 변형태라면 경제적 변형태는 자유시장임. 여기서 자기조정적 자유시장의 교의,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이 개인을 이끌어 모두의 이익을 끌어낸다는 개념이 등장. 보이지 않는 손은 애덤 스미스에게서 왔다고 흔히 알려졌지만 사실은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세상에 내놓은 예정조화설과 연결되어 18세기 초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개념이었음. 예정조화설이란 신이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를 미리 정해놓았으며, 그 덕분에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가 실현된다는 생각.
- 18세기 끝 무렵 철학자들은 숨어있는 손과 기본적 조화라는 개념을 거의 버림. 프랑스 혁명에서의 폭력에서 조화가 시대정신이 아님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 하지만 경제학 강의실에는 이 개념이 여전히 남아 있고, 경제학 교수들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으로 이 개념을 가르침. 이 개념이 귀족시대에 탄생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님. 귀족들에게 그 시대는 실제로 가능한 최고의 세계였을지 모름. 하지만 다른 모든 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음.
- 재산과 주권이 얽혀 있는 관습은 토지자산에서 비롯되었지만 다른 형태의 부가 생겨나면서 그리로 확대됨. 기업이 바로 그런 새로운 부의 형태중 하나였음. 경제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상업의 수레바퀴: 문명과 자본주의 15~18세기에서 최초의 주식합명회사는 자본만의 연합체로 그 안에서 자본 혹은 주식이 회사자체와 동일시되는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했다고 말함. 따라서 회사는 주식을 보유한 이들이 통치했음. 학자들은 오늘날 주주가 잔여 청구권자라는 지위로 주주 통치권을 정당화할지 모르지만 잔여 청구권자로서의 지위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함. 주식소유와 주권을 연결짓는 것은 최소한 7세기 동안 이어진 전통임. 멀리는 13세기, 브로델이 시에나 부근 은광이나 프랑스 구리광산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던 때라고 표현했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감. 이 지분을 보유한 이들이 곧 회사였음
- 사유재산을 소유한 자들은 투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부터 이어져오는 편견에 따라 경제권 주권을 양도받음. 우리는 이런 선택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선택을 바꿀 힘이 없다고 느낌. 사람들은 경제 시스템이 부를 지닌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부의 권력이 커지고 견제받지 않으며 부자연스러울 만큼 강력해지는 것임. 부의 권력은 글로벌 자유무역을 통해 국가경계를 넘나들면서 모든 사회적 경계에서 벗어남. 그 과정에서 따라다니는 유일한 규칙은 재산권 보호의 규칙이다.
- 주주가 곧 주식회사라는 개념은 말할 것도 법적 허구임.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허구가 있음. 주주는 끊임업시 재산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 주주들이 개인으로서는 아무리 관대하고 생산적 사람들이라 해도, 시스템 안에서는 부를 추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수동적이고 대체로 비생산적이며 기업안에 자리잡지 않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투기꾼의 집합체일 뿐임. 이에 반해 주식회사는 물건을 만들고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교적 안정적 공동체임. 따라서 주주를 주식회사와 동일시하는 것은 명백한 허구, 너무도 대담해서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허구임
- 주식회사는 아주 이상한 종류의 사람이다. 너나 나보다 크고, 국경을 넘나며 거주하고, 곳곳에 존재함. 진짜 사람은 그가 사는 곳이 거주지이지만, 기업이라는 사람은 맘에 드는 법 체제를 골라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거주지로 삼을 수 있음. 또한 기업이라는 사람은 불사의 존재로 항구적 수명을 누림. 왕처럼 기업에게는 두개의 신체가 있음. 하나는 기업자체의 건물과 직원들(자연적 신체)이며, 나머지 하나는 주주들로 이뤄진 신체(정치적 신체)임 주식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 다니므로 정치적 신체는 빈번하게 영혼의 이동을 겪음. 정치적 신체로서 주주들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불가능함. 따라서 주주들은 유한책임의 교조아래, 주식회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당연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음. 주주들이 요구하는 행동이 아무리 냉혹할지라도 그 행동은 모두 옳은 것임. 주주의 정치적 신체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생각조차 할 수 없음. 왕에 대한 허구와 마찬가지로 주시고히사에 대한 허구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함. 바로 현재의 권력구조를 보호하는 것임.
- 우리가 비난을 보내는 대상은 부자들이 아니라 빈부 차별이 가치체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함. 부를 얻을 권리에 대한 존중은 미국의 정신에 없어서는 안될 일부임. 많은 사람이 언젠가는 부를 누리고 싶어하며, 그럴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함. 하지만 그 가능성은 기업가에게뿐 아니라 종업원에게도, 주주에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원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어야 함. 그리고 부를 얻을 가능성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 부의 편중을 가져오는 주된 요인을 바꾸어야 함. 그 요인은 바로 상속의 메커니즘임
-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적 광고에 항의했던 것처럼 우리는 주식시장이 부를 창출한다는 금융기고가들의 주장에 항의해야 함. 페미니스트들이 mankind라는 단어를 거부했던 것처럼 주주가 주식회사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함. 마찬가지로 주주를 소유주라 부르며 통치권을 주장하는 데 이의를 제기해야 함. 대신 우리는 주주를 투자자라고,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투기꾼이라고 불러야 함. 봉건영지의 권리를 연상하게 하는 재산권이라는 말대신 부유권이라고 불러야 함
- 도처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 개념 옆에 스미스의 다른, 더 혁명적 사상을 불러냄으로써 애덤 스미스를 되찾아야 함. 애덤 스미스는 기업의 커다란 이익이 다른 시민들의 어깨에 가해지는 터무니 없는 부담(absurd tax)이라고 보았음. 여기서 스미스 역시 제한없는 자본가의 전유의 변호자로 이용되었지만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를 주장했음. 스미스는 이윤은 낮은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었음. 그러나 이 사실은 종종 간과됨. 그는 가장 빠르게 파멸로 치닫는 국가를 보면 언제나 이윤이 가장 높다고 지적. 그런 상태는 오직 소수의 배만을 불릴 뿐임. 스미스는 덧붙여 자연스러운 수준 이상으로 이윤을 올림으로써 부자들은 사실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동료시민들에게 터무니 없는 부담을 지우는 셈이라고 말함
- 오늘날 사용되는 재무제표는 주주의 대리인이 주주에게 주주의 투자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고하려고 처음 만들었던 간단한 시스템으로 시작. 주식회사 전체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었음. 하지만 이 보고서는 결국 기업성과의 표준지표가 되고 말았음
- 조르주 뒤비는 사생활의 역사에서 봉건화는 권력의 사유화를 가리킨다고 말함. 10~11세기에 벌어진 그 사유화 과정을 고전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음. 이 기간 로마제국이 무어진 이후 공적 권력이 사그라지고 사적권력이 성장. 뒤비는 이에 대해 각 거대가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적 국가가 되었다고 설명함. 거대귀족이 왕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대였음. 19세기 들어 주식회사가 새롭게 규정되면서 미국 역시 비슷한 봉건화 과정을 거쳤음. 이 시대가 새로운 귀족제의 시대, 철도왕들과 록펠러, 모건, 카네기, 밴더빌트, 굴드 등과 같은 자본영주의 시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님. 역시가 매튜 조셉슨은 1934년 저작 약탈귀족에서 신흥귀족들의 봉건혁명을 이렇게 기술함. '이 신흥지배계급은 대개, 아주 적절하게도, 귀족, 왕, 제국설립자 심지어 황제라고 불림. 이들은 최초의 봉건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격적이다.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미국은 상농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떠날 때...미국은 다른 모습이었다. 단일화된 산업사회로 지배층 일부의 손에 효과적 경제통제권이 쥐어져 있었다. 신흥귀족은 국가의 천연자원과 거래망을 장악하고 정치기관들을 정복하고, 사회의 철학을 금전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 90년대에는 주식시장이 연 15%의 속도로 끊임없이 커질 것이라 믿게 된 사람이 많았음. 하지만 GDP가 연 3%로 성장하는 세상에서 이런 믿음은 위험한 환상임. 경제의 한 부문이 전체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는 일은 경제의 다른 부문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이익을 빼앗아 오든지 (임금수준을 압박하거나 탈세를 저지르는 행위를 통해), 혹은 지속불가능한 방법으로 가치를 인공적으로 부풀려(부정회계를 저지르거나 실물경제를 부풀렸다가 꺼뜨리는 거품을 만드는 짓으로) 가짜 돈을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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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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