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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과학 2014. 12. 25. 14:29

 


통섭(지식의 대통합)

저자
에드워드 윌슨 지음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 2005-04-2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올 2005년은 특수 상대성 이론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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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오니아의 마법 : 세계는 질서정연하며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
2.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 매일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쟁점들 중 대부분, 예컨대 인종갈등, 무기경쟁, 인구과잉, 낙태, 환경, 가난 등은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 사회과학적 지식이 통합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음. 경계를 넘나드는 것만이 진짜 세계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제시할 것임.
3. 계몽사상
- 서양과학이 앞서 나갔던 이유는 환원주의와 물리법칙을 통해 우리의 감각을 넘어선느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했기 때문.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발전은 우주의 실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낯선 것으로 만들었음. 20세기의 과학의 부적이라 할 수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인간의 마음에는 궁극적으로 낯선 것임.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를 비롯한 이론물리학의 선구자들이 창안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인류뿐 아니라 외계인들도 알 수 있는 진리임. 즉 이 이론들은 인간의 마음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량 가능한 진리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확립되었음. 물리학자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음.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들은 수학의 도움을 받지 않는 직관이 가지는 한계를 드러내 주었음. 그들은 매우 힘들게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었음. 이론물리학과 분자 생물학은 원래 인간에게 잘 맞는 것은 아니었음. 과학적 발전의 대가로 인간은 실재가 인간의 마음으로 쉽게 잡을 수 없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했음. 이것은 과학적 이해의 주요 교의임. 인간이라는 종과 인간의 사고방식은 진화의 목적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임.
- 모든 운동은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임. 오늘 우리는 이 극단의 지점에 서 있음. 낭만주의에서 모더니즘에 이르는 열광적인 자기실현은 철학적 포스트 모더니즘을 불러왔음. 포스트모더니즘과 계몽주의는 완벽한 상극임. 왜냐하면 계몽사상가들은 우리가 모든것을 알 수 있다고 믿지만 급진적인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
4. 자연과학
- 과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모아서 그 지식을 시험가능한 법칙과 원리로 응축하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탐구임.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반복가능성임. 즉 다른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수행해도 같은 현상이 나와야 하고, 그런 현상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분석과 실험을 통해 입증되거나 반증되어야 함. 둘째 기준은 경제성임. 과학자들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적은 노력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정보를 추상화함. 이것을 우아함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음. 세째 기준은 측정임. 만일 어떤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척도에 따라 적절히 측정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일반화는 명확해짐. 넷째 기준은 발견기법임. 최고의 과학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후속발견들을 자극함. 그리고 새로운 지식은 원래 원칙의 진위를 다시 시험해 보게끔 함. 마지막으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가르는 다섯째 기준은 통섭임. 즉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들을 서로 연결하고 일치시킬 수 있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설명이 됨.
- 과학의 최전선에는 언제나 자연을 자연적 구성성분으로 쪼개는 환원주의가 있음. 자연을 쪼갠다는 말 자체가 틀린표현은 아니짐나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잘 전달되지는 않음. 과학에 대한 비판가들은 환원주의를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여김. 즉 환원주의자들은 종착점까지 내려가야만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는 것임. 어떤 이는 최근에 이것을 환원적 과대망상증이라고 부르기도 했음. 하지만 이런 묘사는 기소당할 수독 있는 명백한 오진임. 입증가능한 발견들을 산출해내는 실제 과학자들은 환원주의를 이와는 완전히 다르게 보기 때문. 환원주의는 다른 방도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복잡한 체계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채용된 탐구전략임.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복잡성이지 단순성이 아님. 환원주의는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임. 환원주의 없이 복잡성을 추구하면 예술이 탄생하지만 환원주의로 무장하고 복잡성을 탐구하면 그것은 과학이 됨.
- 과학적 연구는 하나의 예술임. 즉 당신이 어떻게 발견했는가는 중요치 않음. 단지 당신의 주장이 참이고 확실히 타당한지만 문제시됨. 이상적인 과학자는 시인처럼 생각하고 회계사처럼 일함. 그리고 혹시 재능이 넘쳐나는 과학자라면 저널리스트처럼 현란한 글쓰기도 할 수 있을 것임. 화가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서 작품을 구상하듯이, 그리고 소설가가 눈을 지그시 감고 지난 경험들을 회상하듯이 과학자는 결론을 위한 고민만큼 주제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해답을 위한 고민만큼 질문에 대해서도 고민함.
-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뚜렷이 구분짓는 특성은 (1) 창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호하게 정의된 문제진술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점진적으로 구조화하며, (2) 상당한 기간동안을 그 문제들에 천착하고, (3) 그 문제들과 관련되거나 잠재적으로 관련된 분야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는 점.(허버트 사이먼) 요컨대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박학, 강박관념, 그리고 대담성이 필요하다는 의미.
5. 아리아드네의실타래
- 하나의 현상을 그 요소들로 분해하는 작업은 세포를 소기관으로 소기관을 다시 분자로 분해하는 경우처럼 환원을 통한 통섭으로 간주됨. 반면 그것을 재구성하는 일, 특히 환원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자연이 그것을 처음에 어떻게 조립했는지를 예측하는 일은 종합을 통한 통섭임. 자연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두가지 방법을 차례로 동원하여 연구함. 즉 분석을 통해서 다양한 하위수준의 조직들로 내려간 다음 종합을 통해서 여러 상위 수준의 조직들로 올라감.
6. 마음
- 우리가 의미라고 부르는 것은 심상(imagery)을 확장하고 감정을 개입시키며 확산되는 흥분을 통해서 창조된 신경망들간의 연관임. 그렇다면 의사결정은 시나리오들간의 경쟁적 선택을 지칭함. 승리한 시나리오는 그에 따른 감정의 종류와 강도를 결정함. 감정의 일정형태와 강도가 바로 기분임. 창조성은 새로운 시나리오들을 생산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고르는 뇌의 능력이며 현실성과 생존가치를 결여한 시나리오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망상임
7.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며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함. 한편으로 문화는 은유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삶ㅇ르 획득했음. 인간조건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함.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채 이해하려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 됨. 인간진화의 실재성을 인식하면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함.
-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은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 내는 듯함.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문화를 만들고 동시에 문화가 인간의 행위를 만든다는 점. 하지만 우리가 인간의 조건을 동물계에 널리 퍼져 있는 환경과 행동 사이의 호혜성과 비교해보면 그런 모순은 사라짐. 아프리카 코끼리는 많은 수의 수목과 관목을 먹어대면서 나무들이 성긴 삼림지대를 창조함. 그 코끼리의 다리 밑에서 우글대는 흰개미는 죽은 초목을 소비하고 땅과 배설물을 이용해 밀봉된 집을 지음. 그리고 놀랍게도 수분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서 자신들의 생리작용이 잘 적응하게끔 소기후를 만들어냄. 인간을 홍적세(200만년~1만년)에 이들의 서식지와 동일한 곳에서 진화한 존재로 보려면 환경의 일부를 문화로 대체하기만 하면 됨. 사회적으로 학습된 복잡한 행동이라고 엄격히 정의되는 문화는 확실히 인간에게만 한정되어 있음. 따라서 유전자오 문화간의 호혜성도 독특할 수 밖에 없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원리는 동일함. 따라서 인간의 행동이 문화에서 나오면서 동시에 문화가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음.
8. 인간 본성의 적응도
- 근친상간을 통해 생겨난 자식들이 처하는 위험은 잘 알려져 있음. 평균적으로 개인은 23쌍의 염색체의 두 부위에서 열성 치사 유전자를 가짐. 그 부위는 염색체상에 거의 아무데나 될 수 있으며 사람마다 그 위치와 수가 서로 다름. 두 상동 염색체 중 하나만 치사유전자를 가지게 되면 다른 염색체에 있는 정상적인 유전자에 의해 영향이 나타나지 않음. 만일 두 염색체 모두 특정한 부위에 치사유전자를 가지게 되면 태아는 유산되거나 일찍 죽음.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기가 일찍 사망할 확률을 그렇지 않은 아기의 약 2배가량이 됨. 그리고 살아남은 아기들은 소인증, 심장이상, 심한 정신지체, 농아장애, 결장이상, 요도이상 등의 유전적 결함을 가질 확률이 정상아보다 10배 이상 높음. 근친삭안의 파괴적 결과는 인간 뿐만아니라 다른 동식물에게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남. 근교약세에 취약한 거의 모든 종은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생물학적 프로그램을 갖고 있음. 19종의 사회정 종에서 개체들은 인간의 족외혼을 연상케 하는 짝지식 패턴을 보임. 예를 들어 몸이 어른 크기가 되기전에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을 떠나 다른 집단에 합류함. 근친교배에 대한 거부는 번식집단에 남아 있는 이성개체들이 성적행동마저도 피하는 행위로 나타남. (웨스터마크 효과)
- 인간은 웨스터마크 효과를 근친상간 금기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본능에서 순수하게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행하는 것처럼 보임.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경로를 정말로 밟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합리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안적인 정신적 시나리오들을 궁리해 보다가 최강의 후성규칙을 만족시키는시나리오를 문득 찾게 되는 그런 것이리라. 인류가 수십만년 동안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게 된 것도 이런 규칙들 그리고 그 규칙들의 상대적 힘의 위계 때문임. 이런 근친상간 회피현상은 유전자/문화의 공진화의 한가지 사례로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음. 오히려 이 사례는 유전자/문화 공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행동의 전반까지 엮어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름.
9. 사회과학
- 사회과학의 역설 : 친숙함은 편안함을 주고 편안함은 부주의와 실수를 낳음. 대부분의 사람들느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심지어 제도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등을 안다고 믿음. 그러나 그들은 틀렸음. 그들은 잘못된 개념들에 젖은 상식에 입각하여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이른바 통속 심리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셈. 그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개발된 개념들에 비해 그저 조금 발전된 논의일 뿐임. 세련된 수학모형을 오랫동안 사용해 온 사회이론가들도 똑같이 통속 심리학에 만족함. 결과적으로 그들은 과학적 심리학과 생물학의 발견들을 무시함.
- 후성설은 개체가 유전과 환경의 공동영향 아래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한 개념으로서 원래 생물학에서 나왔음. 감각체계와 뇌의 선천적 작용들의 집합체인 후성규칙은 개체가 환경에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빠른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일종의 어림법임.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끔 선첝거으로 규정하고 자동적으로 특정한 선택을 하게 함. 우리는 이 후성규칙들 때문에 무지개를 파장의 연속체가 아니라 네가지 기본색으로 봄. 우리는 근친상간을 피하고 문법적으로 정합적인 문장으로 말하고 친구에게 미소지으며 혼자일 때 낯선이에게 공포를 느낌. 후성규칙들은 대개 감정을 통해서 작동되는데 모든 행동범주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반응을 하도록 하여 결국 생존과 번식에 더 성공적이도록 만듬.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규칙들은 문화적 변이들과 조합들이 발생할 수 있도록 열려 있음. 예컨대, 특히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 규칙들이 건강과 복지에 더 이상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음. 그 규칙들이 지시하는 행동이 굴절되어 결국 개인과 사회의 이득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음.
- 선사시대 사람들의 추론방식은 직관적이고 독선적이며, 물리적 인과성에 집착하며, 논리적 추상화나 가설적으로 가능한 것들에 아둔하고 개념적 장치보다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며, 정량적 측면에서 빈도와 희소성에 대략적으로 민감하고 부분적으로 환경에서 연유한 마음이 다시 환경으로 투사될 수 있다고 여김
- 체계적인 논리연역 추론은 고도로 특수화된 서양문화의 산물로서 발휘하기가 매우 힘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전히 드물게 나타남. 이 추론양식을 완벽하게 다듬으면서도 낡은 방식의 추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훈련시키는 것이 좋음. 또한 낡은 추론방식이 우리를 현재까지 생존하게 만든 적응적인 인간 본성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임.
10. 예술과 그 해석
- 과학은 예술의 직관과 은유의 힘을 필요로 하며 예술은 과학으로부터 신선한 수혈을 필요로 함.
- 아름다움과 연관된 산업전체가 정상을 벗어난 자극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음.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는 눈을 크게 보이게 해주고, 립스틱은 입술을 빛나게 해주며, 연지는 뺨의 홍조를 유지해줌. 또한 적절한 색깔의 파운데이션은 얼굴 윤곽을 선천적 이상형에 맞도록 부드럽게 재조정해주고 매니큐어는 혈액순환이 손끝까지 이르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머리 염색은 머리카락을 풍부하고 젊어보이게 만듬. 이런 모든 것들은 젊음과 생식능력이라는 자연적인 생리신호들을 모방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음
- 큰 척도에서 보면 신화와 열정이 가득했던 고대세계도 오늘날처럼 전 범위의 원인과 결과들로 인식될 수 있음. 모든 지형과 그 속에 사는 모든 동식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인간의 지성도 결국 물리적 실체로서 이해될 수 있음.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우리는 조상들의 본능적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음. 만일 우리가 인간의 독특한 니치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처음에 우리를 사로잡았던 미감과 신비감을 간직한 채 수많은 예술품을 즐길 수 있음. 과학의 물질세계와 수렵인과 시인의 감수성 사이에는 그 어떤 장벽도 없음.
11. 윤리와 종교
- 한편으로는 윤리와 종교가 여전히 너무 복잡하여 오늘날의 과학만으로는 깊에 있게 설명될 수 없다는 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와 종교는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진화의 산물임. 과학은 윤리와 종교 속에서가장 흥미롭고 아마도 자신을 겸호하게 만드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반면 종교는 자신의 신빙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과학의 발견들을 한데 통합시키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 할 것임. 종교는 경험적 지식에 모순되지 않는 인류 최고의 가치들을 불후의 시적 형식 속에 집어 넣을 수 있을 때 그만큼의 힘을 소유하게 될 것임. 이것이 바로 강력한 도덕적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
- 두가지 세계관의 경합이 가져다줄 최종 결과는 인간 서사시의 세속화와 종교자체의 세속화가 될 것임.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더라도 그것을 위해서는 상호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공개토론을 계속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는 지적 엄격함을 견지해야 함.
12.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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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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