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대부분은 인프라를 단순히 집단생활에서 많은 사람을 결속하는 발판 정도로 여기지만, 인프라는 사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 새로운 인프라 패러다임은 사회집단의 존립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네가지 구성요서의 결합으로 이루어짐. 바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태, 에너지와 동력의 새로운 원천, 새로운 운송, 물류방식,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새로운 수권 관리법이다. 이 네가지 기술진보가 매끄럽게 결합할 때 사람들이 일상적인 경제생활과 관련해 소통하고 작동하고 움직이는 방식, 사회와 정치규범을 확립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다
- 요점은 세계관이 수자원 인프라를 만드는 게 아니라 수자원 인프라가 세계관을 창출한다는 것. 이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음. 보통 인간의 주체성이 인프라 사용방식을 결정한다고 믿을테니 말이다. 우리의 지력과 상관없이 단일 종인 인간이 지구의 수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놀라운 오만함을 상상해 보라. 그것이 바로 6000년 전에 세계 곳곳에서 우리가 해보겠다고 나선 일이다. 그렇게 6000년 동안 물을 길들인 결과, 지구라는 행성과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 미치는 엔트로피 영향은 압도적인 수준이 되었다. 지구 전체 바이오매스의 1%가 안 되는 호모 사피엔스가 05년 기준 광합성에 따른 순 1차 생산량의 25%를 썼으며,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2050년 쯤에는 44%를 써서 다른 생명체 몫은 56%만 남을 것으로 예상됨. (순 1차 생산량은 광합성과 호흡작용 간의 순차이로 계산한다. ... 식물이 광합성 중에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에서 호흡작용으로 방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뺀다는 의미)
지구의 저장고에 대한 이 엄청난 점령과 소비는 수자원 인프라를 통해 물을 격리하고 그 배치를 관리함으로써 가능함.
수력 문명의 역사에서 인류가 겪은 갈등의 상당수는 물 접근권을 둘러싼 것이었다.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 종은 물을 인류가족과 동료생물이 함께 나누는 열린 공유물로 여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함. 수자원에 대한 공유형 접근은 수력문명의 급습에도 세계 여러곳에서 계속 번성했다.
수자원의 격리는 곡물저장과 잉여 식량 분배에 큰 진전을 가져와 인구수와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들판의 노동력 수료를 줄임으로써 도시 생활의 출현을 불러왔다. 그러나 수자원 인프라의 본질적 특성이 부과하는 제약은 수천년의 역사동안 우리 종의 갈등과 전쟁의 주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 수자원 인프라의 단점과 실패가 비밀은 아니었다. 6000년의 역사에서 수자원 인프라의 부침은 전체 문명이 흥망성쇠를 상징했으며, 각 문명은 엔트로피 청구비용의 상승과 급격한 기후변화로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특히 서구에서 인류가 지구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 특별한 언약을 주님과 맺었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수자원 인프라 사업에 대한 신뢰는 계속해서 되살아나곤 했다. 우리 종을 자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우리 종에 맞추는 것, 이것이 문명의 특징이자 홀로세 내내 우리가 내면화한 세계관의 핵심. 우리의 어리석음을 변명해 본다면, 현세의 온화한 기후가 수권을 격리하고 아쿠아 행성의 작동을 재조정해서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환상을 준 것 같다. 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 수력문명의 가장 초기에 기록된 역사에는 강력한 남성 신들이 뱀 형상의 물의 여신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마르두크가 뱀 여신인 티아미트를 살해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가이아 여신의 뱀 자식인 타이폰을 물리치고 올림피아 신들의 통치를 확립했다.
신석기 시대 조상들에게 물은 모든 존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자궁으로 인식되었지만, 수력문명과 도시생활이 도래하면서 물은 남성적 상징물로 바뀌었고 길들여야 하는 위협적 존재로 여겨짐.
베어울프와 페르세우스,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선원들 등 신화와 고대사에등장하는 남성영웅들이 대부분 심해와 여성적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역동적 심리치료에 게재된 윌리엄 경과 루이스 드코스타의 '꿈가 환상 속의 물 이미지'에대한 연구는 신화의 남성영웅들이 물의 여신을 스토킹하고 죽이기 위해 심해로 뛰어들었다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 태양광 및 풍력발전의 시장보급이 가속화되면서 물-화석연료-원자력의넥서스가 해체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지각변동과 같은 큰 변화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화 시대는 각국이 전력생산을 위해 수자원이나 화석연료, 발전용 우라윰의 통제권을 놓고 싸우면서 글로벌 지정학의 부상과 보조를 맞추며 움직였다. 2015년 담수 및 전체 물 소비량 기준 상위 4개국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인데 이들 주요 4개국은 모두 화석연료 기반 경제질서의 지정학과 결합된 대규모 군사조직이 세를 과시하는 나라임.
- 감자칩 한 봉지에는 가상수 185리터가 들어감. 커피 한 잔에는 원두를 재배하고 포장하고 배송하는데 가상수 140리터가 필요. 버터 1파운드에는 가상수 1만 3635리터가 들어감. 아몬드 한개를 생산하는 데 물이 12리터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물이 우리 식습관을 정하는 범위와 정도를 이해할 수 있음. 아몬드의 주 생산지는 전세계 아몬드의 80퍼센트를 생산하는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 지역이다. 해마다 캘리포니아 농업용수 중 10%가 센트럴밸리에 있는 아몬드 나무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쓰이며, 이는 로스앤넬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전체 인구가 1년 동안 소비하는 물보도 많은 양.
모든 국가의 물발자국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됨. 전 세계 인구의 17퍼센트가 거주하는 인도는 전 세계 물발자국의 13%를 차지. 반면 미국은 1인당 물발자국이 가장 큰 국가임. 가상수 계산은 상품을 생산할 때 사용된 물의 양을 비교하는 데 쓰이기도 함. 예를 들어 밀 1톤을 생산하는 데는 물 1300톤이 소비되지만, 소고기 1톤을 생산하는 데는 물이 1만 6000톤이 사용됨.
- 중동, 인도, 중국의 수력제국은 인류의식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며 인류 최초로 세계주의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 모두 열역학 제2법칙의 진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수력문명의 흥망성쇠를 조사한 다수의 연구에는 수력문명의 궁극적 멸망 원인에 대해 많은 설명이 나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토양염분과 퇴적물의 변화가 불러오는 엔트로피 청구서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충적토가 강물과 관개수를 따라 내륙으로 운반되었다. 관개용수에는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등이 포함된. 물이 증발하면 칼슘과 마그네슘은 탄산염으로 침전되고 나트륨은 땅속에 묻힘. 나트륨 이온은 지하수로 씻겨 내려가지 않으면 콜로이드성 점토입자에 흡수되고 토양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됨. 고농도 염분은 발아과정을 지연시키고 식물의 수분 및 영양소 흡수를 방해함.
예를 들어, 이라크 남부는 기원전 2400년에서 기원전 1700년 사이에 심각한 염분문제를 겪었고, 이라크 북부는 기원전 1300년에서 900년 사이에 비슷한 위기를 경함. 토양의 염분이 증가하자 그들은 밀재배에서 염분에 잘 견디는 보리작불 재배로 전환해야 했다. 기원전 3500년에는 밀과 보리의 생산비율이 거의 같았다. 하지만 10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염분에 덜 강한 밀작물은 농업생산량의 고작 6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기원전 2100년에는 같은 지역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중이 2%에 불과했고, 기원전 1700년에는 이라크 남부 충적평야에서 밀재배가 완전히 중단됨.
- 토양의 염분화는 비옥도의 감소로도 이어짐. 예를 들어 기르수라는 도시에서 기원전 2400년의 평균 농업생산량은 헥타르당 2537리터였지만 기원전 2100년에는 헥타르당 1460리터로 감소. 인근도시 라르사에서는 기원전 1700년경 헥타르당 897리터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이것은 도시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구 대부분이 잉여 농산물에 의존하는 도시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정치적, 경제적 혼란에 휩싸였고, 이에 따라 복잡한 인프라의 상당부분이 황폐해지거나 도시문명을 이룩하고 원시적 세계주의를 확립하며 개인의 자아개념을 발전시키도록 물의 흐름을 대폭 늘려준 바로 그 수자원 인프라가 지역 생태계에 대해 운명적인 엔트로피 영향을 초래하며 그 동안 얻은 이득의 상당부분을 상쇄하고 수력 도시문명을 확립하려던 초기 실험을 좌초시키며 그 주변 환경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 물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슬로워터라는 말을 고안한 에리카 기스는 자연상태의 물이 항상 지표면을 가로질러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토양으로 스며들거나 습지에 정착하거나 지하수 동굴에 자리잡는 등 느린 단계를 거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거기가 바로 위와 아래의 많은 유형의 생명체에 서식지와 먹이를 제공함으로써 마법을 일으키는 곳'이라고 말한다. 기스는 '회복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은 물이 물답게 되도록 놔두고 물이 땅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되찾아줄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제안. 문제는 우리의 글로벌 수력문명이 물을 빠르게 격리하고 인공저수지에 저장한 후 파이프를 통해 목적지까지 보내 농경지에 관개하거나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거나 가정과 기업에 공급하도록, 다시 말해 물을 끌어다 쓴 다음 페수를 정화시설로 보내 빠르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제작되어 있다는 사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복잡한 수력시스템 구축으로 도시와 교외지역으로 갈수록 많은 인구가 몰려들며 이전의 습지나 강, 하천이 불투수성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이는 바람에 빗물의 토양침투가 차단됨으로써 토양이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뿐 아니라 공동체 전역이 대규모 홍수의 급습에도 취약하게 되었다는 점. 다양한 도시 및 교외 지역사회에 반복적용할 수 있는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인구밀도가 높은 중국의 많은 도시에서 건물과 포장도로에서 떨어지는 강수의 20% 미만만 토양으로 스며들고 대부분은 배수구와 파이프로 흘러덜아가 소실됨. 베이징의 경우 오랫동안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증가하는 인구에 식수를 공급해 왔지만, 매년 수위가 1미터씩 낮아지는 바람에 최근까지 무시되었던 결과가 초래되고 있음. 물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찾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인류가 지구상의 삶에 다시 적응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 새롭고 더 성숙한 신물활론이 우리 종에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잇는 구조선을 띄우고 있다. 그 미래는 장소에 대한 애착과 정주생활이 지배적이던 온화하고 예측가능한 기후의 짧은 기간 동안 인류가 예상하던 그림과는 전혀 다름. 우리는 짧은 정주생활이 수반되는 유목생활을 준비해야 함.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생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우리 인류가 고대 유목민 조상들이 오랜세월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생물학적 구조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야생화되는 고도로 역동적인 지구에서 우리가 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강점이다. 존재의 일시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더 일시적이고 유목적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다.
- 풍력전기를 공유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세계를 지정학의 시대에서 상존하는 태양과 바람을 활용하는 생물권의 시대로 이끌어 감으로써 우릭 살고 일하는 곳에서 공동으로 태양광 및 풍력전기를 생산하고 갈수록 확장되는 글로벌 에너지 인터넷을 통해 지역, 대륙, 대양, 시간대를 가로질러 재생에너지를 공유하도록 도울 것임.
화석연료 기반 산업문명과 물-에너지-식량 넥서스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수권 및 암석권을 포획하는 일은 인류가 땅과의 관게를 생각하는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임. 암석권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존 로크가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는데 이를 받아들인 후학들은 사유화 논의를 수권까지 확장. 사유재산의 본질과 역할에 관한 로크의 논문은 자본주의 발달의 지적 근거를 제공했음.
- 건축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접근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대비되는 곳은 ㅇ마도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방식일 것임. 서양에서는 적어도 20세기부터 계절에 따른 날씨 변화와 무관하게 쾌적함을 최적화하기 위해 밀폐된 환경에서 실내온도를 대략 21도로 유지할 수 있도록 주택을 설계. 이에 비해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지역의 건축물은 날씨변화와 계절의 흐름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반투막 같은 기능을 더 수행했다. 아시아의 도시계획가 마쓰다 나오노리는 일본의 건축가들이 날씨변화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내부와 외부를 밀접하게 연결하는 얇은 외피로 숨 쉬는 건물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실제로 극한의 날씨에 따르는 신체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계절에 따른 날씨와 식생의 변화를 접하길 선호한다. 이것이 서구의 관찰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의 도시 건축 전통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연의 과정과 패턴, 흐름과 어우러지는 건축환경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의 친밀한 일부이므로 자연세계와의 조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다. 물론 실제로는 그것의 실천이 항상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 존재의 일시성은 이론이 아니라 138억년 전의 빅뱅 이후 우주가 작동해온 방식.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은 지구라는 우리의 작은 오아시스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곳에서 우리 존재를 지배함. 플라톤과 그의 철학적 사상을 추종한 칸트와 유럽 계몽주의 철학자 및 과학자 등 후세의 모든 이들은 존재의 일시성이 신기루이거나 기껏해야 다른 세계에 속한 높은 상태의 순수한 존재를 형편엇이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파. 이것이 지금까지 많은 서양철학자들의 존재의 본질을 정의한 방식이다.
하지만 지구에 살아온 오랜 시간동안 우리가 쌓은 상식은 이 철학적 기이함이 이상하고 심지어 섬뜩하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특히 서양 철학과 종교 전통에는 지구상 생몇에의 시작과 경과, 소멸 그리고 재생에 대한 전망을 두려워하는 허구의 현실, 즉 삶의 경험의 물리성과 일시성을 폄하하는 유토피아적인 다른 세계의 존재를 에워싸는 강력한 기류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를 선호하는 갈수록 난해한 설명을 아무리 쏟아내도 우리의 일상 경험은 모든 삶이 일시적이라고 가르친다.
- 자연을 우리 종의 요구에 맞춰 조종하는 사치는 이제 영원히 끝났다. 기후변화와 재야생화되는 수권이 이제 모든 카드를 쥐고 있다. 의문은 오직 이것이다. 우리가 과연 오랜 잠에서 깨어나 지구 생명체의 생태 역학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는 수권 및 그 자매 권역의 재야생화에 우리종을 적응시키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댐을 해체하고 하천과 강이 자연스런 흐름을 따르도록 놔두고 바다가 연안지역을 잠식하도록 내버려 두며 더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지형으로 이주하는 일은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수십, 수백년에 걸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임. 상황이 손 쓸 수 없이 악화하기 전에 반유목적이고 일시적 삶의 방식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피함. 우리 인류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측할 수 있는 인지능력과 한 종으로서 함께 뭉쳐 협력할 수 있는 신경회로의 공감적 사회성을 타고났으며 나아가 우리의 확장된 진화가족은 동료생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생명애적 감수성도 갖추었다.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얼마든지 재설정과 도약의 여정을 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난 모든 정교한 정신적 통찰력을 동원해 자연의 부름에 적응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은 낡은 진보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롭게 부상하는 회복력 시대에 동참하는 것이다.
- 유토피아적 행복의 최신 화신인 메타버스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깝다. 인류를 자연세계에서 빼내 현실을 복제한 가상세계로 데려간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생명의 본질적 리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물리적 존재는 수권, 암석권, 대기권, 생물권 등 지구의 다른 모든 체계 및 그 요소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모든 세포와 조직, 기관 내부의 무수한 생체시계는 지구의 일주기, 조석, 계절, 연주기 리듬에 시간적으로 맞물린다. 또한 우리를 에워싼 전자기장이 주기적으로 우리 몸의 세포와 장기, 조직을 통해 흐르며 유전자가 정렬되고 발현되는 과정과 패턴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가상세계를 완전히 포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가상 세계를 세상의 전부로 만들지 말자는 것 뿐이다. 가상 세계는 놀이터와 실험장으로, 때로는 재야생화되는 지구에 닥칠 폭풍우나 가뭄, 폭염, 산불, 허리케인을 견뎌낼 수 있는 안전한 항구로서 필요성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메타버스가 우리의 대리세계가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격변하는 지구에서 번성은 커녕 생존수단도 없이 외톨이가되어 결국 추방당할 것이다.
확실히 기후는 계속 더워지고 지구의 작용들은 수문순환을 따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변화하며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버리고 숨는 것은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행성의 일원이며 지구상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수권과 암석권, 대기권, 생물권, 생물군계 및 생태계 그리고 시간적, 공간적 리듬의 연장선상에 속한다.
- 지구기후의 격변 속에서 우리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가상세계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장기간의 시기가 존재할 것임을 인식해야 함. 이는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자연환경과 교류하는 생명애적 감각과 강인한 결단력을 갖추고 외부에서 뉴노멀에 용감히 맞서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구를 길들이기 위해 칸트가 주창한 분리된 이성의 복잡다단한 상황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쇼펜하우어와 괴테 등이 받아들인 길, 즉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생명애적 애착을 통해 생명을 보충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 종의 많은 특성 중 하나는 유전적으로 유목 생활방식을 선호하며 지구상에 존재한 95%의 시간 동안 극한의 기후체제를 견디면서 그렇게 살아왔다는 점이다. 가상세계에서 부분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행성의 권역들과 생물군계 및 생태계, 특히 수권에 다시 내포되는 것은 우리 종이 어떤 조건 아래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번성할지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플래닛 아쿠아에 살고 있고, 그것이 단순한 현실이다. 수문순환은 지구의 다른 모든 작용을 조절하는 원동력이다. 모든 생명체가 생겨나고 모든 생명체가 의존하는 물은 지구상의 존재가 부인하거나 바꿀 수 없는 실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우리가 먼 미래까지 번영할 수 있도록 돕는 구원의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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