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A는 1920년대가 돼서야 생겨났지만 금리라는 개념은 기원전 고대 세계에서 이미 생겨나 금융 혁신을 일으켰다. 그 시절은 신의 존재가 절대적이었고, 풍년을 기원하려고 동물을 제물로 바치며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닭의 내장을 살펴보던 때였다. 이런 시절과 걸맞지 않게도 고대 수메르의 상인들은 지금 살펴봐도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금융 감각을 갖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1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드레헴에서 나온 점토판에서 세계 최초의 스프레드시트표행식으로 이루어진 데이터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점토판에 나와 있는 행과 열은 고대에도 금융 소프트웨어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이다. 이 점토판에는 축산업 투자에 대한 추정과 예측이 담겨 있다. 요즘 투자 모델처럼 이 점토판에도 가축의 출생과 사망에 대한 데이터, 번식력과 사료를 비롯하여 투입된 자원에 관한 데이터가 담겨 있다. 그 당시의 금리로 이 사업을 추진했을 때 수익과 손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투자자들은 일정한 공식을 기준으로 다양한
이 기술 시나리오를 예상함으로써 해당 사업의 수익률을 추측할 수 있었다 드레헴 점토판은 젖소의 산유량을 토대로 향후 성장을 예측한 장기 계획용 소 사육 사업 모델이었다. 재무 계획과 스프레드시트 분석이 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오늘날 자본을 끌어모으기 위해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사업계획서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쐐기문자로 기록된 이 고대 사업 모델은 동물의 사망률 같은 데이터에 근거한 고성장 시나리오와 저성장 시나리오 양쪽을 다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의 주당 순이익(EPS) 모델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수준이다. 이 스프레드시트가 시사하는 바는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수메르인들은 금융, 이자, 화폐 및 상거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더 나아가 그들은 수확량과 수익. 손익분기점, 그것이 사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예측했다
수메르 문명은 글쓰기. 회계. 복잡한 법체계. 정교한 금융시스템까지 만들었는데 이 모든 것은 금리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금리란 시간을 가치로 환산한 것인데, 이는 그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추상적 사고로 결국 채권자와 채무자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시장으로 이어졌다.
금리는 은과 같은 비활성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수메르인들의 영향력하에 화폐는 인간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살아 숨쉬는 가치 로 탈바꿈했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쿠심의 사례다. 돈은 이자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더욱 역동적으로 변신한다. 은은 보석이라는 이름보다 화폐라는 이름일 때 훨씬 더 큰 가치를 뽐내게 된다. 화폐로서 은을 대출해주면 이자가 붙고 이자는 곧 수입이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정말로 돈이 돈을 버는 시대였다
이렇듯 기술의 첨단을 걷던 수메르인들은(그 지역에서 수메르인의 뒤를 이은 것은 바빌로니아인들이었다) 계약에 기반한 상업 체계와 조직체계를 만들어냈다. 초기에 사람들은 돈의 개념을 머릿속으로 헤아려야 했지만 곧 주머니 속에서 돈의 실체를 만질 수 있었다. 주화의 탄생이라는 화폐 혁신으로 상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 아테네를 일종의 자유시장 민주주의라고 상상하기보다는 민주주의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던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남부 같은 곳으로 여기는 편이 아마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지적으로 혁명적이었던 다른 다양한 가치관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철학, 경제학, 의학, 민주주의 사상이 그리고 현대적인 참여형 시민과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꽃을 피웠을까? 그리스 이토록 발전한 것은 은화를 필두로 한 화폐의 대중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화폐의 대중화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통제력과 책임감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스인들도 앞시대를 살았던 리디아인들처럼 2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는 제빵사가 역시 2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는 왕자와 똑같은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화폐를 통한 거래는 이렇게 위계질서를 무너뜨렸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혁명적인 변화나 다름이 없었다
- 한 나라의 통화량이 경제 수요를 충족하기에 부족할 때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통화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해서 신규 주화를 발행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무역이나 생산이 늘어나 유통되는 상품이 증가하면 임금을 비롯하여 모든 것의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된다. 동일한 액수의 부채를 감기 위해 사람들은 노동 시간을 점점 늘릴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경제학에서는 이 과정을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1930년대에 미국은 부채 디플레이션을 겪다가 결국 대규모 채무 불이행까지 갔고, 경기침체는 불황으로 이어졌다. 금이나 은이 부족 한 나라의 두 번째 선택지는 무역이든 차입이든 약탈을 통해 귀금속을 더 획득하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무역도 하고 차입도 했지만 결국 군국주의 사회였기에 약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결국 은광과 금광이 있는 정복지가 바닥났다
세 번째 선택지는 속임수다. 국가는 화폐의 가치를(즉 품질을) 떨어 뜨리는 속임수를 쓸 수 있다. 한동안은 이 방법이 먹힐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사람들이 눈치챌 것이고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초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인들이 채택한 방법이다.
- 북유럽의 토양은 물이 쉽게 고이긴 했지만,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만큼 잠재력도 있었다. 만약 깊고 강력한 쟁기가 있어서 밭을 제대로 갈 수만 있다면, 어마어마한 수확량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중세 초기에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더 많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더 많은 땅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 장에서 우리는 로마인들이 북유럽을 침략해서 땅을 정복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로마인 들이 떠날 때, 로마의 대군도, 조직적 지혜도, 돈도 함께 떠났다. 그 후 유럽의 인구는 주기적 기근과 높은 사망률, 그리고 이런저런 질병 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인구가 너무 빨리 증가하면 생활수준이 낮아지고. 이것이 식생활에 악영향을 미쳐 사람들은 다음 흉년이나 다음 역병, 다음 기근이나 다음 홍수에 더욱 취약해진다. 인구 성장이 토지의 제약에 부딪치는 이런 난제는 훗날 맬서스의 함정이라 불리게 되는데, 그 결과 생활수준 혹은 1인당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유지한다.
- 1000년경 헝가리에서 전해졌다고 추정되는 심경쟁기는 대규모 경작지를 개간할 수 있게 해주었고,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밭을 한 번만 갈아도 충분했다. 수확량은 늘고 인력의 투입은 줄어든 셈이다. 이렇게 되자 수확량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예측도 가능해졌다. 이는 로마 시대 이후 최초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질 거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새로운 쟁기의 발명 이후 잉여농산물이 증가하면서 식량 가격이 하락했고 이는 인구 증가와 함께 신문물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뭔고 하니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했으나 바로 가처분소득 disposable income, 세금이나 법적 공제액을 제외한 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이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여가 시간이 었다. 이때부터 현대 경제가 아주 서서히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쟁기의 역할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상업의 발달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술이 필요했다. 그 기술이란 바로 수 세기 동안 쇠퇴했다가 다시 번성하게 될 화폐였다.
- 새로운 성씨가 등장한 이유
만약 당신이 이 시대에 장인으로 살았다면 지방의 기사나 남작의 지배를 받는 농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로마 시대 이후 사라졌던 상인은 중세 초기에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독일어 문구인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케 하리 라'에서 잘 알 수 있다. 도시에는 자유와 개인 주권이라는 급진적 사상의 바람이 불었고 이는 급진주의자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전통, 가문, 혈통의 중요성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도시에서는 능력과 인맥, 그리고 용기가 월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출세에 성공한 부르주아 장인은 가문과 세습 중심의 권력구조에 도전하는 세력이었다. 돈이라는 대항 세력과 그 돈을 움직이는 상인은 결국 교회와 지주가 쥐고 있던 강력한 지배력을 서서히 뒤흔들었다 도시는 어느 정도의 익명성을 보장했다.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다 보니, 도시로 들어오는 신규 전입자에게는 자신을 차별화할 성씨가 필요해졌다. 노팅엄 출신의 존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노팅엄 출신의 존으로는 더 이상 살기가 힘들었다. 그 대안으로 성에 직업을 붙이기 시작했다. 장인의 작업실에서 완성되는 기술은 스승에서 도제로 전수되었는데, 주로 아버지와 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직업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거나 최 한 다른 사람과 구별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잉글랜드에서는 보이어(Bowyer, 활 만드는 사람), 플레처(Fletcher, 화살 프랑스어/노르만어로 화살을 flech라고 하므로 만드는 사람), 스트링거(Stringer, 활의 줄string 만드는 사람) 같은 대중적인 성씨가 등장했다 영어권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 하나인 스미스(smith, 대장장이)는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금속 가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생겼다. 이 성씨가 널리 퍼진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거리와 수입 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은 자녀들을 건사할 수 있었고, 대대손손 살아남아 더 많은 후손을 남겼다. 이러니 계속해서 더 많은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 견습생을 자처했고 이들은 훗날 대장장이로 성장한다. 이들의 급성장과 풀무, 철 가공 기술의 발달로 여러 슬라브어로는 코바치(Kovac)및 그 변형, 독일어로는 슈미트(Schmidt), 프랑스어로는 포르주(Forges),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로는 페레라(Ferrera), 아일랜드에서는 맥고완(MacGowan) 같은 성씨가 대중화되었다
- 아랍인들은 0의 개념을 혁신적으로 활용했지만, 기독교의 세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0은 무를 뜻하는데 그리스 철학은 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등은 모두 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인들은 만물을 입증 가능한 비율과 패턴, 기하학적 대칭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서구 세계가 0의 개념을 거부하는 수 세기 동안 과학, 상업, 회계 등 수많은 분야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유럽과 기독교가 0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동안 인도의 힌두 문명은 무와 무한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인도인들은 일찍이 3세기부터 0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영혼이 천국에 가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과 달리 힌두교도들의 목적은 아무것도 없음'이다
죽어서 바라나시 (Varanasi, ,인도 북부 개지스강 연안에 있는 도시로 힌두교의 성지다* 에서 화장하는것) 외에,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사물의 본질을 깨달아 공을 이루는 것이다. 이들은 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떠날 때,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날지 여부는 생전에 쌓은 업보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끝없는 윤회를 통해 영혼은 배움을 얻고 좋은 업보가 충분히 쌓이면 영혼은 육신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영적인 존재, 우주와 하나인 존재, 다시 말해서 무한한 존재가 된다
- 피렌체 사람들이 유럽 전역으로 상거래를 확대해 나가면서 플로린은 교환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피렌체의 힘을 상징했다. 무게 3.25그램에 순금으로 만들어진 플로린은 상업 중심의 유럽 사회에서 기축 통화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미국 달러처럼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유럽 전역에서 물건을 플로린으로 거래했고, 빛을 플로린으로 갚았으며, 대출도 플로린으로 해줬다. 사람들은 플로린으로 부를 축적했다. 헝가리 화폐는 아직도 플로린(또는 포린트)이라고 불리며, 네덜란드 화폐인 길더도 한때 같은 이름을 썼다(실제로 길더의 약칭 기호는 'f'였다). 오늘날 네덜란드령인 아루바(카리브해 남부에 위치한 국가로 네덜란드 왕국 내 자치 국가이다)는 아루바 플로린을 공식 화폐로 사용하고 있다.
플로린은 순식간에 유럽에서 가장 신뢰받는 안정적인 화폐가 되었다. 이 말은 북쪽으로는 런던과 브뤼허에서 남쪽으로는 알렉산드리아와 티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플로린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 전 세계가 특정 화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 화폐는 언제든 쉽게 쓰고 바꿀 수 있는 힘, 즉 유동성을 갖게 된다. 유동성이 높을수록 거래가 쉬워진다. 만약 어떤 화폐를 뒷받침하고 있는 상품의 수요가 많다면 그 화폐의 공급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화폐의 액면가는 그대로이더라도 실제로 사용 가능한 범위와 활용도가 좋아지므로 결과적으로 가치가 상승한다.
플로린을 뒷받침해주는 상품은 섬유였다. 역사학자 조반니 빌라니는 흑사병이 돌기 10년 전인 1338년, 피렌체의 인구 10만 명 중 3만 명이 염색 및 의류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약 200개의 작업장에서 일했다고 추산했다.◦ 이들은 영국산, 스페인산, 프랑스산 양모를 수입해서 고급 섬유 제품으로 가공한 뒤 다시 수출했고 여기서 얻은 이익을 금융업에 재투자했다
- 유동성이 좋았기 때문에 누구나 플로린으로 대금 결제를 하려고 했다. 모두가 원하는 화폐를 발행하는 나라는 소프트파워를 갖게 된다. 소프트파워란 강제하지 않고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현재 미국 달러가 미국이라는 나라에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부여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석유, 구리. 철. 우라늄. 희토류. 목재, 면화, 실크, 다이아몬드 등등 모든 원자재는 달러로 가치가 매겨진다. 이를 구매하려면 달러부터 사야 한다는 말이다(알다시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달러를 발행할 수 있다). 중세 경제에서는 플로린이 현재의 달러와 똑같은 위상을 차지했고 발행국인 피렌체에 부를 가져 다주었다. 이렇듯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그 화폐의 발행국에 엄청난 특혜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해보자.
유럽 전역과 그 외 여러 지역의 화폐가 피렌체로 들어왔고, 이렇게 유입된 동전은 플로린으로 재주조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서 플로린의 가치는 올라가고 피렌체 사람들의 물품 대금은 내려간다. 자국의 화폐 가치가 오르자 피렌체인들은 어디서든 더 유리한 입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반면에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플로린을 얻기 위해 더 불리한 거래를 감수해야 했다. 피렌체의 은행가들에게 이는 횡재나 다름없었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해외에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외무역 계약은 쉽게 성사시키면서 유동성이 높은 자국 시장에서는 큰 이득을 봤다. 피렌체 사람들은 플로린 덕분에 어디서든 환영받는 구매자가 되었던 것이다. 단테에게 위조범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였다. 화폐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공화국의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플로린의 실질적 역할은 믿을 수 있는 화폐라는 인식을 통해 무역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담의 범죄는 피렌체 공화국의 신용도를 해치고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였다
- 피보나치의 수학적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상업 학교들은 교리 대신 논리를, 미신 대신 숫자를, 추측 대신 팩트를 내세워 교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상인의 권력이 점점 세지면서 하느님과 맘몬(신약성서에서 하느님과 대립하는 우상 가운데 하나인 재물의 신을 이르는 말) 의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아직 부유층 자녀들의 전유물이긴 했지만 상업 학교들은 교육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교육은 더 이상 수도사들이 주도하는 인문학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은행가들과 상인들은 위험, 확률 측정 같은 개념을 포함한 수치 교육을 선도했다. 이 같은 교육 형태는 단순히 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를 평가하는 훈련이 핵심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적 사고가 주를 이뤘던 시대에서 이제는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상으로부터 일반적인 법칙을 도출하는 귀납적 사고의 시대로 나아 가게 된 것이다. 돈을 중심으로 한 수치의 세계는 교회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았다. 단테가 태어날 무렵에는 소수였던 상인 계급은 단테가 사망한 시대인 1321년쯤에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계급으로 급부상했다. 돈이 유럽을 단테 이전인 암흑의 시대에서 르네상스 광명의 시대로 이끌고 있었다.
- 일단 믿을 만하고 정직하다는 평판이 쌓인 은행가에게는 더 많은 예금이 들어왔다. 그러면 그는 피렌체 경제 곳곳에 더 많은 신용대출을 공급했다. 그가 빌려준 돈은 여러 사람을 돌고 돌아 다시 은행에 예치금으로 돌아왔고 그 돈은 다시 대출로 나갔다. 이렇게 돈의 순환이 계속 이어지면서 은행은 점점 돈을 만들어내는 현금지급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런 승수효과가 바로 모든 금융의 원천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금융시스템이 왕실의 주조국과 화퍼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오직 왕실의 주조국에서만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인 은행이 등장하면서 은행가가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권력이 왕에게서 상인에게로, 수직적 네트워크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궁전에서 사무실로 움직이고 있었다
- 1348년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지만 피렌체의 놀라운 경제, 사회, 지식, 정치 발전을 막지는 못했다. 이때 도시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지만 플로린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플로린의 위상을 믿었다
흑사병이 지나간 뒤 100년 동안, 피렌체는 상인들과 무역 네트워크 덕분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코시모 데 메디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인물들이 보여준 뛰어난 지적, 예술적, 상업적 재능이 그 중심에 있었다. 지적 능력과 예술적 재능에 상인 계층의 강력한 경제력이 결합하면서 전혀 새로운 정치권력이 탄생했다. 이 힘의 결합은 과거의 모든 가치를 전복했고, 그 결과 르네상스가 시작 되었으며, 이어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로 이어지게 되었다. 돈과 신용, 상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봉건제를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이러한 위대한 변화는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새로운 유럽 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탈리아가 있었고 피렌체는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도시였다.
- 지금까지 우리는 인류 역사상 여러 화폐를 살펴봤다. 리디아의 금화, 그리스의 은화, 로마의 금화, 은화, 구리화, 독일의 은화, 피렌체의 금화인 플로린까지 형태는 다양했다. 그 후 화폐는 신용장과 독일 연금으로 진화했지만 이것들은 모두 특정 상인, 상인 은행, 지방자치단체나 실물 토지와 연결돼 있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신용장과 연금은 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추적하면 그 돈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 알수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이력'이 없는 종이 화폐가 등장했다고 상상해보자. 발행 기관에 대한 신용 말고는 전혀 추적이 불가능한 형태의 화폐가 등장한 건 대사건이었다. 이 정도의 진화는 사회가 미리 바뀌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생판 모르는 타인에 대해서도 신 뢰가 형성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네덜란드는 바로 그 방향으로 나아간 나라였다.
지폐의 탄생은 돈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의 인장과 정교한 디자인만 더해지면 그저 종이 한 장 불과했던 것이 마치 마법처럼 실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법정화폐로 변신한다. 인쇄술과 마찬가지로 종이 화폐도 사실 수 세기 전에 중국에서 발명된 것이었다. 지폐의 원류는 전당포의 영수증이었다
- 돈의 연금술, 즉 돈이 갖고 있는 마법 같은 힘도 잘 알고 있었다. 돈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노력하게 만든다. 또 뭐든 혁신하게 만들며 결국 자신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로는 처음에 토지를 화폐의 기반 자산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 했는데 이는 합리적인 발상이었다. 토지가 뒷받침된다면 지폐는 안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가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무리수를 두었다. 국채를 주식으로 바꿔주는 방식은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막연한 약속만 믿고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의 자산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국채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으며 만족하던 프랑스의 부유한 시민들을 한탕만 노리는 투기꾼으로 바꿔놓았다. 만약 로가 투기 기반 지폐가 아닌 토지 기반 지폐에만 의존했다면, 그의 시스템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수 세기 후 좀 더 신중한 관리하에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정부의 보증이 뒷받침해주는 화폐는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통화 체제인 명목화폐 체제의 기반이 되었다 미시시피 회사가 파산한 직후 몇 년 동안, 프랑스의 금융은 오히려 후퇴했다. 상류층과 중산층이 저축을 대폭 줄였고, 이 때문에 18세기 동안 화폐에 대한 혁신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통화위기에 시달렸고 지속 불가능한 조세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 결과 1789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존 로는 일정 부분 프랑스혁명의 토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게다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50년 뒤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은 런던에서 찰스 스펜서와 그의 측근들이 저지른 부패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왕과 내각의 각료들이 남해 회사의 부정부패와 깊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영국 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영국 정부의 부패를 로마제국의 부패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 이후 여러 해 동안 영국 정부의 부패를 증명하는 남해회사 사건을 폭로하는 팸플릿들이 출간되었다. 결국 존 로와 그의 공범 찰스 스펜서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의 도화선을 제공했던 셈이다.
- <오즈의 마법사>에 숨은 뜻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하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특선의 단골 메뉴였던 이 영화는 사실 전부 돈에 관한 이 야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9세기 말 디플레이션에 빠진 미국을 금본위제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대중 운동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오즈의 마법사>를 순수한 어린이 동화로 생각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인 우화로 계급투쟁과 문화 전쟁을 상징한다. 즉 금융 엘리트와 노동자, 돈 많은 동부 해안 지역과 농촌 지역인 남부와 서부의 갈등, 또 기존 정당과 1890년대에 발생한 반대 정치세력인 인민당 사이의 갈등이 묘사돼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악한 마법사 오즈는 엘리트 은행가의 화신이자 온스의 기호인 0z'에서 알 수 있듯 금을 상징한다. 노란 벽돌길은 금괴로 만들어진 길. 즉 금본위제 자체를 상징한다. 도로시는 캔자스 출신 농부의 딸로 지리적으로 미국의 정중앙이자 미국의 평범한 서민층을 가리킨다. 또 허수아비는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혹사당하는 중서부 농부를, 양철 나무꾼은 임금이 하락한 산업 노동자를 나타낸다. 이들의 고통은 금본위제에 따른 디플레이션에서 비롯되었다. 겁쟁이 사자는 1895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인민당의 연합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상징한다
도로시와 그녀의 친구들, 즉 일하는 미국인들은 에메랄드 시티에 들어가기 전 초록색 안경을 쓰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는 에메랄드 시티를 운영하는 금융인들이 이들에게 돈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강요한다는 뜻이다. 마법사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서쪽으로 가서 그의 적인 사악한 서쪽 마녀를 물리쳐야 한다. 여기서 '서쪽은 미국 중서부. 즉 농업의 중심지이자 인민주의 운동의 발원지를 뜻 한다.
각 단계마다 도로시는 에메랄드 시티의 규칙과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부유한 미국인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마법사에게 이용당한다. 결국 도로시는 마법사의 요청으로 서쪽 마녀를 죽이고 친구들과 함께 마법사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던 에메랄드 시티에 당당하게 입성한다. 하지만 그들이 마법사의 가면을 벗기는 순간, 그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금본위제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는 도로시의 구두가 빨간색이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은색이다. 캔자스로 돌아가기 위해 도로시는 은색 구두의 뒤꿈치를 맞부딪히기만 하면 된다(이는 은본위제를 상징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이미 그녀가 갖고 있다는 뜻이다
- 물가와 임금은 정체 상태인데 자산 가격만 급격히 오르면 어떻게 될까? 일부 투기 계층은 막대한 부를 얻게 되고 임금 노동자들과의 생활수준은 더욱더 벌어지게 된다. 2008년 이후 대부분의 서구 경제 에서도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발생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매우 저렴한 신용대출을 공급했고. 이들이 다시 '신용도가 높은' 고객들, 즉 이미 부동산 같은 자산에 투자하고 있던 부유층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그 결과 자산 가격은 임금보다 월씬 빠르게 상승했다
남북전쟁 이후 성장하던 미국 경제는 유럽의 자본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았다. 하지만 은본위제와 금본위제에 대한 논란이 과열 되자 유럽인들은 의구심을 품었다. 만약 미국이 달러를 많이 찍어내서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한다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게 뻔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 때문에 미국은 아무리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도 '위험한 나라'로 보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미 국은 유럽인들에게 미국 국채를 팔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비싼 차입 비용은 결국 세계와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졌는데, 19세기 후반 당시 무역 상대는 사실상 유 럽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자연현상 덕분에 미국은 이 위기를 모면한다
1870년대 후반, 유럽에서는 이상 기후가 발생하면서 흉작이 이어진다. 1879년 5월 프랑스에 눈이 내렸고 이와 비슷한 악천후가 중부 유럽을 비롯해서 러시아까지 휩쓴다.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던 무역의 중심지인 오데사 항구가 유럽에 보낼 러시아산 밀로 가득 차지 않은 것은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밀이 부족해지자 유럽에서는 밀 값이 급등한 반면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는 전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대풍작이 들었다. 밀이 비싸게 유럽으로 팔릴 때 금은 반대로 미국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듬해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미국의 금 보유량은 더욱 늘어났다
미국의 석유와 밀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미국은 부담 없이 금본 위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미국은 매주 수천 명의 유럽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아일랜드인, 그다음은 이탈리아인과 유대인 순이었다. 미국에겐 풍년과 운이 따랐고 그 결과 금이 계속 유입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흉작에 떠밀린 유럽 이민자들도 함께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고 이 때문에 1인당 금 보유량은 점점 악화 되었다. 게다가 경제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혜택이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 금본위제냐 은본위제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미국 경제와 통화정책의 주요 이슈였다. 금본위제는 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금융 및 엘리트들의 입장이었고 은본위제로 통화량을 늘리자는 주장은 기업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계층의 입장이었다
금본위제는 그 후로도 10년 정도 지속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대공황 때 유명을 달리했다. 전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금본위제를 고수했다가는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20년대에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본위제로 돌아가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하지만 세계의 정치적, 인구학적, 경제적 현실은 이미 달라져 있었고, 통화 정책 역시 그에 맞게 혁신해야 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금본위제를 '야만의 유물'이라며 깎아내린 바 있다. 금본위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신용경색을 초래하며 대혼란을 일으켰고 결국 1936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폐지하면서 역사에서 퇴장했다
- 대개의 경우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일보다 나쁜 아이디어를 버리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많다. 금본위제와 준금본위제는 너무 오랫동안 미련 때문에 버리지 못한 나뿐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명목화폐 체제에서는 보통 완만한 수준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한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보다 훨씬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금처럼 고정된 실물 자산에 기반한 화폐 체제에서 구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디플레이션이라면 명목화폐 체제에서 구조적으로 생기는 현상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이 체제에서는 경제가 성장하고 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때마다 화폐 공급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세계 각 정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침체된 디플레이션 경제를 다시 살리는 것이 과열된 인플레이션 경제를 진정시키는 것보다 휠씬 어렵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적당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빚을 덜어주는 작용을 한다. 마치 고해성사가 죄를 조금씩 씻어 주는 것처럼 인플레이션은 빚을 조금씩 가볍게 만들어준다. 돈을 빌린 사람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 덕분에 빚 갚기가 수월해지니 어떻게 보면 좀 더 너그럽고 유연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금에 묶인 통화 체제에서 생기는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에게 무자비한 처벌을 내린다. 일말의 관용도 없는, 마치 '최후 심판의 날' 같은 방식이라 볼 수 있다.
- 화폐 가치 하락은 명목화폐(법정화폐) 시스템이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를 금본위제와 비교해보자. 금본위제에서는 화폐 가치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주택시장 붕괴 같은 충격이 있을 때 오로지 실업, 채무불이행, 파산 말고는 해결책이 별로 없다. 하지만 명목화폐 시스템은 훨씬 더 유연하다. 이 점 때문에 경기침체의 충격도 휠씬 덜하고 짧게 끝난다. 1990년대 초 영국에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유연성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조치는 작은 나라 아일랜드를 매우 곤란한 처지에 몰아넣었다. 돈 문제에 있어서 소국은 규칙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따르는 쪽이기 때문에 정책을 세울 때 이웃 대국이 행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보통 대국들은 자신들이 내린 일방적인 결정이 주변 국가의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안겨주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 소국의 통화 정책은 매우 까다롭다. 자금의 유입과 유출을 조절하고 국내 금리와 환율을 관리하면서도 동시에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영국과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유럽 대륙과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애섰다. 비유하자면 마치 두 마리 말을 동시에 타고 있는 기수와 같았다. 한쪽은 영국이라는 말. 다른 한쪽은 독일이라는 말이었다 두 말이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는 그럭저럭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방향이 엇갈리기 시작하면 기수의 하반신은 극심한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 펀트화도 영국 파운드화처럼 평가절하될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아일랜드 당국이 아무리 호소해도 자금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은 불가피한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펀트화를 매입하는 데 외환 보유고 전액을 쏟아부으며 맞 서기로 했다. 중앙은행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무려 101% 까지 인상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금리는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부 에 없었고 그로 인해 평가절하 가능성은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 그러자 일반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채고, 너도나도 당국보다 한발 앞서 자동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 크리스마스 때 마실 값싼 기네스를 사들였던 것이다! 결국 한 달 뒤인 1993년 1월. 아일랜드는 펀트의 가치를 스스로 낮췄다.
이 환율 위기에서 내가 얻은 첫 번째 교훈은 시민들은 중앙은행장이 생각하는 것보다 월씬 똑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교훈은 돈은 국경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화폐가 주권을 갖길 원하지만 돈의 속성은 그렇지가 못하다. 돈은 절대 고정적이지 않으며 어디든 흘러간다
아일랜드의 경우를 보자. 헌법상으로는 섬이라는 국경이 존재하지만 돈은 그런 경계를 무시한다. 돈은 어디든 흘러가고 스며든다. 이것은 돈의 근본적인 특징 중 하나지만 정작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조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시중에 유통되는 돈, 즉 통화는 중앙은행이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 때 쓰는 실물 형태의 지폐나 동전 혹은 상업은행이 서로 결제를 위해 사용하는 전자 형태로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전자화폐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미 연준을 중앙은행의 예로 들지만 명목화폐 체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미국 정부가 돈을 빌릴 때는 국채라고 불리는 차용증을 발행하는 데 이는 주로 상업은행과 금융시장에 팔린다. 중앙은행도 공개시장에서 이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면, 그 대가로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개설한 계좌에 준비금을 새로 넣어둔다.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 준비금'이며, 이는 실제 화폐가 아닌 전자 화폐 형태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전자화폐 형태의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만 생성할 수 있고, 상업은행만 보유할 수 있으며 이는 상업은행들 간 거래를 정산할 때 사용된다. 은행들끼리 하는 거래 정산은 실제 현금이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에 있는 이 전자화폐들 이용한다. 또한 이 지급준비금은 상업은행의 대출 및 차입에 제약을 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연준에 보유하고 있는 지급준비금 액수가 많은 상업은행은 대출과 차입을 더 많이 실행할 수 있다
상업은행은 이 지급준비금을 중앙은행을 통해 현금자동지급기에 채울 수 있는 실제 지폐로 바꿀 수도 있다. 또 그와 동시에 상업은행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일정량의 지금준비금을 항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지급준비금이 충분한 경우는 거의 없다(앞으로 더 살펴볼 문제다). 명목화폐 체제에서 정부는 국채를 처음 발행하는 주체이고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는 기관이다. 이 둘은 모두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한다는 건 정부의 왼손이 오른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구조이며 상업은행은 이 거래의 중개자이다. 하지만 상업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중앙은행은 이러한 상업은행들을 감독하려고 노력하며 그 수단으로 국채 형태의 담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한다
연준 또한 상업은행들에 자본금의 일부를 국채로 보유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규정들은 국채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낸다. 국채 없이는 상업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들이 돈의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 일단 미국 국채가 연준이 인정하는 최고의 담보 자산이 되고 나면 그 가치는 단순히 미국 정부에 돈을 빌려준다는 의미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미국 국채는 금융시스템에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종의 '입장권'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중앙은행이 돈을 경제 안으로 `밀어 넣는' 주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금융시장과 은행이 만들어내는 신용 상품에 끌려다니는 존재다. 공식적으로는 '밀어 넣는다'고 말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끌려다니는' 현실. 바꿔 말하면 실제로는 능력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태도. 이 모순적 상황은 오히려 중앙은행가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변명만 늘어놓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금융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자들 에게 실제로는 통제권이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처럼 혹은 종교적인 교리처럼 포장된 중앙은행의 권위 뒤에는 가장 위험한 물질인 '돈'을 다루는 평범한 인간들의 심리가 있을 뿐이다. 주택 담보대출을 알아볼 때는 신용 사이클에 의해 금리가 결정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이 신용 사이클은 합리적인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군중의 광기'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신용 주도형 경기 상승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차입자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헤지 차입자이다.' 이 유형은 월별 이자뿐 아니라 원금에 대한 연간 상환액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충분하다.
두 번째 유형은 투기적 차입자이다. 이 유형은 이자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원금 상환을 계속 미룬다. 이들은 나중에 자산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그때서야 원금을 상환하려 한다.
세 번째 유형은 폰지 차입자이다. 이 유형은 자신의 수입으로는 이자도 원 금도 깊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가격이 오르기만을 바란다. 이들은 자신이 구매한 콘도를 다음 사람에게 되파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아진 가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때 이 건축물은 집단적 망상으로만 유지된다. 이런 시점이 되면 시장엔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이제는 평가 방식이 달라졌다'느니, '돈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식의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떠돈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때, 대부분의 초보 투자자들이 무리하게 시장에 뛰어든다
- 엄밀히 말하면 양적완화를 실행할 때 중앙은행의 브라만들이 실제로 돈을 찍어내는 것은 아니다. 연준은 은행에 연락해, 예를 들어 대차대조표에 있는 국채100억 달러어치를 매입하겠다고 제안한다. 이는 잘 팔리지 않던 국채 같은 자산이 중앙은행 덕분에 곧바로 현금 달러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받은 돈은 은행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순식간에 연준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100억 달러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 경우가 바로 앞서 설명한 투입설. 즉 중앙은행이 먼저 돈을 밀어 넣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연준은 한 가지 조치를 더 취했다. 은행들이 새로 받은 이 돈을 그냥 쥐고 있거나 저축에 적합한 다른 자산에 투자하지 않고 실제로 대출에 쓰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저축용 자산으로 인기가 높았던 것은 미국 국채 10년물로, 항상 적정한 수익률을 제공했다. 연준은 시중 은행들이 손대기 전에 이 국채들을 시장에서 직접 사들여 매물을 아예 없애버렸다.
결국 은행들은 새로 생긴 이 돈을 대출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 돈은 은행이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흘러갔다. 그렇다면 그 '고객들'은 누구일까? 바로 이미 부유한 사람들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자산 가격이 오른다. 그리고 자산 가격이 오를 때 가장 큰 수혜자는 당연히 부자들이다. 그들은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임대수익, 배당금에 의존해 소득을 얻는 소수의 사람들은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휠씬 더 큰 혜택을 본다. 급격히 심화된 부의 불평등은 양적완화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목적이었다.
- 우리는 돈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비트코인. 나아가 암호화폐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비트코인이 미국의 주류 투자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한 건 사실이지만 암호 화폐는 여전히 주류 바깥에 머물며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집착 대상이 됐을 뿐. 현실 세계에서 유용하거나 실용적인 수단은 아니다. 비트코인은 언어로 따지면 에스페란토어 (전 세계 사람들이 쉽고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국제어인데 실제 사용자는 100만 명 안팎이다)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슷하다.
암호화폐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그것이 사적이라는 것이다. 잘 관리되고 제대로 기능하는 화페란 언제나 공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 결함이 있지만 명목화폐 체제는 여전히 국가가 운영하는 시스템 이다. 아무리 강력한 상업은행도 국가의 감독을 받으며 유사시에는 감독이 더 강화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로달러 시장을 미국 정부의 관할하에 넣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국가가 화폐 발행 권한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소유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민간 부문에 넘겨주는 일 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완전히 소멸하고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지 않는 한 화폐가 국가 혹은 국가의 부속기관의 관할에서 벗어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화폐는 그만큼 강력한 도구이며 나쁜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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