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엔스는 센서 중심의 업무용 전자기기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대부분 제조 현장에서 이상을 감지하거나 생산성 향상에 이용되는 제품군이다. FA(공장자동화)의 진전에 발맞춰 사업 영역을 점차 확대해왔으며, 현재는 바코드를 읽는 핸디 터미널과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 시스템인 로봇 비전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생산 공장이나 창고, 연구소에 서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면 키엔스 제품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 제품 역시 고스펙으로 무장하기보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기존 제품을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화 생산설비의 제어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PLC다. 키엔스는 2019년 세계 최초 로 PLC에 '드라이브 리코더' 기능을 탑재했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블랙박스로 현장 상황을 재생할 수 있는 것처럼, PLC를 탑재한 설비의 가동 실적과 카메라 영상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키엔스의 롤플레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질까?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 대본이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시나리오로, 판매촉진 부에서 상황별 설명이나 대화 내용을 정리해 대본을 작성한 다. 모든 영업사원에게 제공되며 이를 바탕으로 영업의 기본 틀을 익힌다. 그런 다음 고객의 속성이나 상황에 따라 내용 을 바꿔가며 응용법을 익힌다.
둘째, 롤플레이는 실전을 위한 연습이라는 점이다. '지도 역할을 맡은 선배가 지나치게 어려운 질문만 골라서 한다' 라거나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해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당했다'라는 등 롤플레이로 직원의 능력을 판단하려는 회사 도 있지만, 키엔스는 다르다.
"롤플레이는 어디까지나 표현력과 설명법, 프레젠테이션
을 연습하는 과정입니다. 순발력이나 대처 능력을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키엔스 출신 한 OB의 말처럼, 키엔스에서 롤플레이는 직 원의 우열을 가리는 평가 수단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 을 파악하고 시연을 통해 제품을 설명해서 구매품의서를 쓰 게 하는 것, 그 결과를 얻기 위한 훈련 수단이다. 따라서 제품 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내용 설명이나 질의응답 과정에서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 이라는 스토리를 전달해야 합니다."
셋째,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점이다. 롤플레이는 오래 한다 고 좋은 게 아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반복하면 근육 트레이닝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 고 나면 어떤 고객과 상담해도 성공으로 이어갈 수 있는 튼 튼한 기초체력을 갖추게 된다.
“입사하고 처음 1년 반 동안은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매일 반복했어요. 철저히 단련됐죠."

- 외근 스케줄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필수 아이템이 '외보'즉 외근 보고서다. 영업사원은 상담 전후로 반드시 외보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미팅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비롯해 어 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등 상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태블릿에 입력하고 모든 직원과 공유한다. 외보에는 면담의 시작과 종료 시각을 1분 단위로 기입하 는 칸이 있다. 하루에 많을 때는 10건도 넘는 상담을 효율적 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고객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다고 좋은 건 아니다.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상담 횟수와 질이 서로 시너지를 이뤄야 한다. 따라서 시간 효율을 반드시 의식 해야 한다. 외보에는 상품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시연'의 수도 기재하는데, 모두 영업사원의 KPI로 집계된다.
외보를 기입하는 데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상담 종료 후 5분 이내에 작성을 마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주관 이 개입되거나 상세한 내용을 적기가 귀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 과정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나 인사이트를 즉시 기록해두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쉽고, 다음 영업 전략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영업사원의 하루는 외보를 바탕으로 현재 상황과 이후 방 침을 상사와 의논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날의 성과뿐 아니라
미리 작성해둔 다음 날 목표와 방문할 고객에 대해서도 함께 의논한다.
- 키엔스의 영업사원은 SFA에 그날의 행동을 매일 기록한다. 영업활동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통화 건수나 시간 등이 다. 태블릿의 외보 자료도 자동 연동되며, 그 밖에 담당자가 직접 SFA에 입력하는 데이터도 있다.
외보는 직원 자신과 상사를 위해 메모를 해둔다는 의미가 크다. 그에 비해 SFA는 외보를 비롯하여 다양한 채널에서 수 집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다른 사업부 서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통계적 분석을 위한 데이터로 쓰기도 한다.
실제 영업사원이 SFA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경쟁 업체의 제품이 교체될 수요를 겨냥해 영업할 경우다. 대상의 크기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이미지 측정기 를 예로 들면, 정밀측정기기 업체인 미쓰토요Mitutoyo가 키엔 스의 강력한 경쟁자다. SFA 시스템에 회사명 미쓰토요와 이 회사의 한 세대 이전 제품명을 키워드로 입력하면 현재 이 제품을 보유 중인 회사들이 죽 나열된다. 영업사원들이 현 재 보유 기종이나 과거에 구입을 검토했던 기종 등을 고객 과 상담하면서 알아낸 뒤 외보에 입력해둔 것이다. 그 자료는 다시 SFA에 저장됐다가 훗날 영업 상담의 유용한 자료로 활용된다.
- SFA를 활용하면 키엔스의 신제품을 구입한 고객이 이전에는 어떤 기종을 보유했는지도 조사할 수 있다. 교체할 만한 기종이 발견되면 즉시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
"최근 이 기종을 교체하는 업체가 늘고 있습니다. 지금 앞에 보시는 이 신기능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 있게 설명한다면 아무리 신중한 고객이라도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최근 키엔스에서는 SFA 분석을 담당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AI라는 새로운 무기를 활용하고 있다. 어떤 공통분 모를 지닌 고객에게 영업해야 수주 확률을 높일 수 있을지 AI로 찾아내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어떤 행동이 성과로 이어지는지도 분석 중이다. AI를 이용하면 사람마다 정보가 균일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구축한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인 KI도 판매가 개시됐다.
- 키엔스 직원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영업활동의 힌트가 될 수 있는 정 보를 온갖 방법을 써서 고객에게 알아낸 뒤, 그 성과와 자신 의 행동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수고스러운 작업이지만 철저 히 할수록 수준 높은 영업을 할 수 있고 효율 또한 극대화된 다. 게다가 SFA에 축적해두면 사람이 바뀌어도 데이터는 남 는다.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회사가 효율적인 영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 한 OB가 영업활동을 복기하거나 인사평가를 위해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던 시트를 보여줬다. 2,000개 정도의 칸이 그 려진 표에는 숫자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누적 거래 업체, 거 래 참가자, 상담 횟수와 상담 참여자, 방문한 회사, 신규 회 사, 전화 발신 횟수와 수신 횟수, 업무 외 방문자 등 수십 개 의 항목을 지표로 해서 각각의 월별 수치가 적혀 있었다. 전 년 동월과 비교해서 몇 퍼센트 늘었는지 줄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특히 힘을 쏟은 활동은 의사결정권자를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키맨key man 전략'이었다. 키맨을 방문한 횟수가 늘자 그에 발맞추듯이 수주 단가와 금액이 증가하는 모습이 시트에서 한눈에 보였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유효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결정권자가 아닌 사람과 상담한 횟수와 수 주 상황도 함께 분석했다고 한다. 어떤 수단을 썼을 때 플러 스가 되어도 그 반작용으로 다른 부분에서 마이너스가 나와 전체적으로 마이너스가 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키엔스에서는 어느 한 부분을 개선했을 때 다른 부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해야 한다고 가 르칩니다."

- 키엔스의 9개 사업부는 전국을 바둑판처럼 구역별로 나누고 있으며, 각 영업사원은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을 세일즈한다.
"옛날부터 오므론 영업사원의 차는 구매부 주차장에 있고 키엔스 차는 공장 주차장에 있다고들 했어요."
- 글로비스 경영대학원의 시마다 쓰요시 교수의 말이다. 키엔스의 현장주의는 유명하다. 전국의 영업 거점에서 직원들은 고객의 현장에 밀착해서 해결할 과제나 참신한 제안을 탐색한다.
생산 현장에 직접 들어갔는지 아닌지를 외보에 기입하는 습관도 있다. 공장 실사를 중시하는 태도는 신입 직원들에게 도 그대로 계승된다. 키엔스에서는 신입이 들어오면 선배의 외근에 동행하는 연수가 있다.

- 영업활동의 다양한 정보를 축적하는 SFA 시스템에는 고객 중 누가 키맨인지, 해당 인물의 성격과 구매 결정 시의 습관 등도 기록돼 있다. 키맨 정보는 분기나 반기에 한 번씩 주기 적으로 갱신한다. 키엔스의 영업사원은 고객과 상담하면서 구매 결정의 진행 방식과 키맨, 그리고 키맨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의 요구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기록한다.
잠재 니즈를 찾아내는 키엔스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키엔스 출신 직원들은 "전체를 시야에 넣고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배터리 제조 업체가 절단 공정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다고 하자. 보통은 절단물 과 절단법을 알아보고 공정에 적합한 제품을 제안한다. 하지 만 키엔스 직원은 다르다. 배터리 제조 공정 전체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상담에 나선다. 전체 공정의 최적화까지 염두에 두고 먼저 고객이 원하는 부분인 절단 공정을 상담 하면서 진정한 니즈를 함께 찾아낸다.

- 키엔스의 개발 부서는 따로 예산을 산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리 금액을 정해놓고 기간 안에 소진하는 방식으로는 정말 필요한 곳에 투자하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원의 외근 하나에도 목적을 묻는 것이 키엔스 스타일 이다.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비용은 인정하지 않는 다. 그런 만큼 필요한 투자라고 판단되면 망설이지 않는다. 상품을 기획할 때 개발에 어느 정도 공수와 비용이 드는지 미리 계산한다. 상품 생산으로 투자에 걸맞은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프로젝트 진행이 허가된다. 상품화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은 '회사의 책임자'라는 뜻인 '사책', 즉 사장이 담당하지만 각 사업부에도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진다.
- 키엔스가 고객의 잠재 니즈를 충족시키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기획 부서가 개발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키엔스에서 영업과 기획 모두를 경험한 다카스기가 개발의 흐름과 특징을 설명해주었다.
키엔스에서는 상품 기획자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비교·검토해서 기획을 입안한다. 그런 다음 프로젝트 리더로서 개발부서, 영업 부서와 함께 상품을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포인 트는 세 가지다.
첫째, 상품 기획자는 영업과 개발의 중재역을 맡는다. 고 객과 밀접한 영업사원과 새로운 기술에 정통한 개발자의 주 장을 모두 참고하며 상품 기획을 구상한다. 아무리 큰손 고 객의 요구라도 또는 세계 최고의 기술이라도, 고객의 잠재적 니즈와 관련성이 낮다면 개발하지 않는다. 기획자가 그 조정 을 책임진다.
둘째, 상품 기획자는 장기간에 걸쳐 기획을 다듬고 완성해 나간다.
셋째, 상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품 기획자가 관여한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상품 기획 부서는 수십 명 규모의 소수 정예 부대로 주로 영업과 개발 부서의 베테랑들이 발 탁되는 듯하다. 단순히 영업 실적이 좋다고 뽑히는 건 아니다. 고객의 니즈와 미래의 상품을 연결하는 센스가 필요하므 로 전문 분야의 애널리스트처럼 시장 조사에도 능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획 업무를 즐길 수 있는 적성이 우선이다.

- 상품 기획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상품화를 위해서는 두 가지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첫째가 '착수 승인'이다. 수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시제품으로 제작할 만한 것을 골라 기획서를 제출한다. 기획자는 상품화를 검토 중인 아이디어 를 늘 30개 정도 품고 있다고 한다. 그중 실제 착수되는 것은 3개 정도로 경쟁률 10대 1의 좁은 문이다.
다음은 '상품화 승인'이다. 일반 기업에서 말하는 '신상품 개발품의'에 해당한다. 시험적으로 제작해보고 기술적으로 가능성이 큰 안건을 한층 더 깊게 조사한다. 시장 조사와 기 술 검토, 비즈니스 가능성 조사, 즉 타당성 조사와 예비 조사 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사장의 승인을 받고 나면 수억 엔이 투자되는 상품 개발이 시작된다. 상품 화승인의 가능성은 3분의 1이다. 시험 제작에 들어간 기획 3건 중 단 1건만이 승인되는 셈이다.
상품 기획에서 최대 난관은 기획서 작성이다. '매출총이익률 80%'라는 대전제는 이때부터 적용된다. 기획자는 고객에게 제공할 가치에서 상품 가격을 어림해두고, 사내 개발자 의 의견을 참조해 기술적인 실현 수단과 원가를 정확히 산 정한다.
고객의 니즈는 어떻게 파악할까?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 는 것이 앞서 언급한 '니즈 카드'다. 영업사원이 고객과 상담 하면서 파악한 잠재 니즈를 기록한 카드로, 모든 영업사원이 한 달에 1건 이상 제출하게 돼 있다. 전국의 영업사원 수만 큼 전달되는 대량의 니즈 카드를 기획자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샅샅이 살펴본다. 지금은 자동화됐지만 다카스기가 재직하던 당시는 카드 내용을 정리한 책자를 몇 번이나 뒤 지면서 새로운 힌트를 필사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 '직원이 행동하면 피드백을 주고 다음 행동을 촉진한다.
행동만 남기는 일은 없다.' 이것이 키엔스의 행동 원리다. 물론 니즈 카드의 내용이 그대로 활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 다. 영업사원들이 매일 고객의 숨은 니즈를 알아내려 애쓰지 만 이미 상품화된 것도 많다. 기획자는 관련 전시회를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는 사람이라 니즈 카드에서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건 드문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전력을 다해 고안한다.
- 키엔스가 상품 기획을 진행할 때 중요시하는 것이 '뺄셈' 이다. 일반 업체에서는 경쟁 상품과 사양을 비교하면서 다른 회사에는 없는 기능을 강조하거나 소형화처럼 크기에서 차 별화를 꾀한다. 모든 항목에서 경쟁사 제품을 웃도는 스펙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설계와 제조 난이도가 높아져 개발 기간이 장기화된다. 물론 원가도 높아진다.
키엔스는 취사선택에 능한 집단이다. 사전에 꾸준히, 철저 히 조사한 고객 니즈를 바탕으로 꼭 필요한 기능과 성능을 취사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약 30개사의 고객을 대 상으로 조사해서 중복되는 니즈를 3~5개로 압축하면 고객 80% 이상이 인정하는 제품이 완성된다고 한다. 이렇게 완성 된 상품은 강점이 명확해서 팔기 쉽고, 전체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 키엔스에서는 보통 12개월 안에 개발비가 회수되도록 해 야 한다. 드물게 24개월까지 허용하기도 하지만, 타당한 이 유가 필요하다. 신상품에 투입하는 비용 대비 효과는 매출로 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매출총이익으로 확인한다. 게다가 기존 제품과의 상관관계도 고려한다. 이 정도까지 철저히 논의하 고 확인한 뒤 개발한 상품이기에 '모든 상품이 히트상품'이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키엔스 출신 한 직원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대기업에 서 "주문 안 받아주면 출입 금지야"라는 농담 섞인 협박까지 들었다며 웃었다. 그 업체는 특별 주문한 장치를 발주하려고 했는데 키엔스 영업사원이 좀처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영업사원의 상사에게도 여러 번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 다. 특별 주문한 제품은 예측한 수량만큼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거래처 외에는 고객을 확장할 수 없다는 게 약점이다. 드러난 니즈만 만족시켜서 제공하는 부가가치 에는 한계가 있기에 아무리 큰손 고객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기업 이념을 꿋꿋이 관철한다.
- 전 상품의 재고를 보유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무작정 생산해서 재고를 대량으로 떠안으면 수익률 악화가 뒤따르 기 때문이다. 생산부서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수요 예측 과 원재료 조달 리드타임, 생산 리드타임 등 모든 사항을 치 밀하게 고려하면서 재고가 부족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을 갖 추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본사 건물 7층에 있는 생산부서다. 상품 특성에 맞춰 복수의 협력 공장에 생산 라 인을 구축하는 일부터 부품 조달과 생산, 출하 계획의 입안, 생산 공정 및 출하 관리, 상품 센터에 입고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담당한다. 과거 경험에서 문제가 되기 쉬운 부품을 숙지한 직원이 1만 개도 넘는 아이템의 동향을 살피며 내일의 생산과 부품 발주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1만 엔짜리 상품을 즉납하는 데 10만 엔이 들어도 즉납 원칙을 지킨다'라는 것이 키엔스 스타일이다. 기한에 맞추기 어려울 때는 직원이 직접 신칸센을 타고 지방에 있는 부품을 가져다가 협력 공장에 전달해서 특급 생산을 부탁하기도 한다. 즉납은 키엔스가 양보할 수 없는 간판이다.
- 키엔스는 상품 판매로 고객에게 부가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생산에 대한 집념도 강하다. 키엔스를 '뛰어난 원가 절감 능력을 지닌 이상적인 제조 업체'로 보는 시선도 있다. 팹리스fabless, 즉 공장이 없는 회사인 키엔스가 어떻게 생산에 힘을 쏟는 것일까?
사실 키엔스에는 공장이 있다. 100% 자회사인 키엔스엔지니어링 Keyence Engineering 이다. 주로 키엔스 제품의 부품 수리와 분석, 제조 장치의 설계를 담당한다. 또 새로 개발하는 제품의 시제품이나 초기 양산도 진행한다. 키엔스 전 제품의 10% 정도를 제조하며, 양산 방법이 확립된 나머지 90%는 협력사에 의뢰한다.
키엔스엔지니어링이 발표한 2022년 3월 결산기 유가증권 보고서를 보면, 당기 총제조비용이 1.335억 엔이고 그중 재 료비가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992억 엔이다. 외주 가공비는 제조비용의 15%에 조금 못 미치는 194억 엔이다.
- 키엔스엔지니어링에서는 '조립법은 문제없는가?', '이 작 업에는 어느 정도의 공수가 필요한가?'처럼 상세 내역을 검증하면서 양산법을 확립해간다. 제조 과정과 비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제조를 위탁하는 것이 아 니라 협력사를 감독하는 역할도 한다. 한 OB는 "키엔스엔지니어링 같은 회사는 만들지 말아 달라고 협력사들이 불평하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 협력사 직원 및 현장 근로자와 촘촘히 연계하면서 개선 작 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키엔스의 생산 철칙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협력사와는 윈윈하는 관계여야만 합니 다. 1년치 물량 매입 보증이나 단기 납기에 따른 할증료, 잔 업수당의 정확한 지불 같은 조건을 확실히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애초 계획대로 발주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고 나서 품질을 확실히 부탁하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이혼'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거래처는 부부와 같다 고들 하거든요."
협력사에 대한 키엔스의 남다른 대우는 숫자로도 알 수 있 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의 오미야 시니어 애널 리스트에 따르면 키엔스는 매입에서 결제까지 걸리는 기간인 매입채무회전일수가 43.3일(2022년 3월 결산기 기준)이다. 한편 판매한 뒤 대금을 회수하는 기간인 매출채권 회수일수는 169.1일이다. 통상적으로 기업은 현금흐름을 고려해서 양쪽의 균형을 맞춘다. 예를 들어 오므론은 전자가 76.2일, 후자가 72.6일이다. 결국 키엔스는 공급 업체에는 대금을 빨리 결제해주고 고객사로부터는 천천히 수금하는 셈이다. 게다 가 어음보다 조건이 좋은 현금으로 지불한다.
키엔스가 이렇게 대응하는 이유는 유사시 최우선으로 부 자재를 공급받기 위해서다. 평소에 공급 업체와 좋은 조건으 로 거래하는 것이 키엔스의 즉 체제를 유지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는 얘기다. '최종적으로 이익을 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할 곳은 확실히 지불한다. 상당히 합리적인 태도다.

- 타임차지라는 사고방식이 직원들에게 이 정도로 정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직원들이 스스로 엄격히 규율한 것도 있 지만 급여 결정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키엔스는 기본급에 더해 회사 이익의 일정 비율을 실적 상여 형태로 직원에게 지급한다. 자신과 주변 동료가 부가가치 를 창출해서 회사 실적이 오르면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보상 이 돌아온다. 만일 타임차지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도 소용없다고 느낀다면 직원들의 의식은 점점 약화될 것이 다. 이익 환원 비율과 투명한 산정 방식에 이르기까지 노력 하면 충분히 보상받는다'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이해시켰기 때문에 직원들의 공감과 노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 키엔스 직원들은 날마다 외보를 작성하고 영업 지원 시스템인 SFA에 정보를 입력한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니 가끔은 게을러지거나 하지 않을까?
키엔스의 기본 방침은 철저한 '가시화'와 행동에 대한 '평가'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직원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동을 거는 시스템도 분명히 존재한다. 키엔스의 내부감사 상황을 한 OB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난데없이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마치 국세청 기동대 같 았죠. 완전히 허를 찔렸습니다."
키엔스의 지속가능성 관련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사내감사팀: 내부감사로서 전임 감사팀을 둔다. 국내외 각 거 점에서 업무와 운용의 적정성·효율성을 중심으로 내부감사 를 실시하며, 감사 결과와 기타 정보는 정기적으로 또는 필요 시 대표이사에게 보고된다.
- 내부감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업은 '영업 감사', 해외는 '해외 감사'라고 불린다. 감사팀은 정기적으로 불시 검문을 통해 현장을 둘러본다. 감사팀 인원은 허위 보고가 발생하기 쉬운 경우를 숙지한 관리직 경험자들로 구성된다. “이 고객사를 3시에 방문하려면 이 톨게이트를 2시에는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속도로 요금 시스템의 자료가 다른 것 같습니다."
- 키엔스는 늘 다양한 시스템을 고안하고 개선책을 고민해왔다.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면 깨끗이 그만두는 문화도 있다. 나카타 사장은 '그만둘 때를 정확히 판단하자'라는 슬로건 을 내세우기도 했다.
키엔스는 무엇이든 시스템으로 철저히 실행한다. 직원들 이 'OO는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의사를 자유롭게 밝힐 기 회도 있다. 1년에 한 번 직원들이 자신의 인사이트를 회사에 제출하는데 항목 중에 '새로운 발견'과 같은 비중으로 '그만 두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인사이트를 제출한 후에는 자신의 의견이 채용됐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정세와 기술 트렌드가 바뀌면 시대에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시스템을 활용해 경영하는 스타일의 기업에는 큰 과제가 된다. 키엔스는 과거부터 써온 제도를 그저 유지하는 게 아니라 본 질을 생각하며 개선점을 생각한다. 현재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해본다. 잘 되지 않거나 시대에 맞지 않으면 강단 있게 그만둔다.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수치와 같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키엔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 “일류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항상 최신 의료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서 최고의 치료를 합니다. 리드전기가 목표로 삼는 영업이 바로 그겁니다. 땀 흘리고 체력을 사용 하는 개척 영업이나 접대로 고객의 정에 호소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영업을 하고 싶다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머리를 쓰 는 영업,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 두렵지 않은 분은 그대로 남아 입사 테스트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 경영자의 카리스마가 강할수록 후계자 선정에 고민이 깊기 마련이다. 키엔스와 동시대에 일본전산을 창업한 나가모리 시게노부, 소프트뱅크softBank 그룹의 손정의 회장,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을 일본 내 최대 어패 럴 기업으로 키워낸 야나이 다다시는 모두 카리스마 경 영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자신을 대체할 존재가 없어 경영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업자이면서도 자신은 카리스마 경영자가 아니라고 단언 하는 다키자키는 1991년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창업자들은 '회사는 내 자식 같은 존재'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은퇴 시기도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요. (...) 제 손으로 후계 자를 확실히 키운 뒤에 물려줄 생각입니다."
예고대로 다키자키는 2000년 사사키 미치오에게 사장 지 위를 위임했다. 이후 2010년에는 3대 사장인 야마모토 아키 노리, 2019년에는 4대 사장인 나카타 유가 취임했다. 대개 10년 주기로 사장이 바뀌었지만 키엔스의 문화는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다.
-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키자키는 일본 내 굴지의 자산 가다. <포브스>가 발표한 2022년 세계 억만장자 순위를 보면 그의 재산은 239억 달러로 세계 61위다. 패스트리테일링 창 업자 야나이 다다시 회장과 그 가족이 261억 달러로 세계 54 위이면서 일본 최고 부자에 올랐다. 다키자키는 그 뒤를 이 어 2위다. 참고로 일본 3위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손정의 회장으로 자산은 213억 달러, 세계 74위다.
- 참고로 창업 아이템이었던 자동 선재 절단기는 영업이익률이 20%나 됐지만 당시 이미 40%의 이익을 올리던 센서 보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1982년 시장에서 철수했다. 다른 기업이라면 창업 아이템으로 소중히 보존할 법한데 키 엔스에는 현재 한 대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A/S가 필요 하지 않게 된 시점부터 현재와 미래 사업은 연결고리가 끊 어진다. 그런 상품은 전량 폐기한다. 예외는 없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기술과 과학입니다. 과거가 아닙니다. (...) 키엔스에 추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 자동 선재 절단기의 철수를 결정하던 무렵, 다키자키는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데 도전했다. 1982년부터 1년 동안 키엔스 매출의 20%를 차지하던 제조 업체와 거래 규모를 줄이기로 결단한 것이다. 키엔스는 현재 9개 사업 부문의 개별 매출을 공표하지 않지만, 부문마 다 큰 차이는 없다고 강조했다. 특정 제품이나 기업에 의존 해서 발생하는 구조적 리스크를 줄이려는 노력의 결과다.

- 키엔스의 해외사업이 크게 성장한 계기는 2008년 SFA 시스 템을 현지 법인에 정비한 일이다. 2001년에 중국 법인을 설 립하면서 키엔스는 아시아 시장 개척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해외 매출 비율이 좀처럼 30%의 벽을 넘지 못하는 시기가 이어졌다. 지루한 답보 상태를 돌파하려면 본사와 해외 법인의 운영을 일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해외에서도 SFA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나라마다 시스템이 제각각이었다. 일본에서는 해외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고, 해외에서도 일본 내 사정에 깜깜했다.
2000년 이후 유럽과 미국도 중국과 아세안ASEAN으로 공 장 진출을 가속화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왕성한 설비 투자 를 이어갔다. 키엔스 내부에서도 해외사업을 더 강화해야 한 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키엔스는 해외사업의 가시화를 추 진하기로 했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시스템을 통합하고 국 내 사업부와 해외 법인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일본과 해외의 정보가 연동되어 세계 시장에서 더욱 치밀한 영업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후지타는 당시를 이렇게 회 상했다.
"비즈니스 상담을 성공시킬 수 있는 요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수주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분석할 수 있는 체제가 해외에도 마련됐습니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보를 이용해 매일 고객과 나눈 상담 내용을 기록하고 상사와 공유한다. 나아가 거래의 동기나 방문 목적, 고객사의 키맨, 현장에 들어갔는지 아닌지, 수주 성공 여부 등 다양한 항목을 입력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확립한 방법을 세계 곳곳에 이식한 것이다. 이를 통해 해외 거점을 관리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영업사원이 수주 성과와 행동의 인과관 계를 자세히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국내 영업과 상품 담당자에게도 해외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 해외 시장을 겨냥 한 상품 기획과 개발, 판매 전략 수립이 수월해졌다.
예를 들어 해외로 진출한 일본계 기업의 국내 핵심 인물이 외국으로 발령이 나면, 그 정보가 해외 법인으로 전달돼 일 관성 있는 관리가 지속될 수 있다. 이처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건 시스템이 정비된 덕분이다.
- "너무 평범해서 쓸 게 별로 없죠?"
취재에 응해준 키엔스 OB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키엔스의 업무 수행 방식과 시스템을 조사하다 보면 특출난 것은 없다. 외보, 롤플레이, 니즈 카드, 내부 감사 등 대부분 기업에서 볼 수 있는 제도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겁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철저히 운영한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완벽하게 실행한다. '적당히' 는 통하지 않는다. 예외도 없다."
- 우수한 인재들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키엔스의 시스템은 성약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은 때로 방심도 하고 힘들면 게으름도 피운다. 그렇기에 모두가 무엇을 하는지 유리창 너머로 다 보여주는 것이다. 좋은 숫자도 나쁜 숫자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수 행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키엔스 사람들은 모두 밝고 즐겁게 일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믿으면, 누구나 필요한 행동을 하게 된다.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테크 미래보고서 2025  (2) 2023.08.25
한국반도체 슈퍼 을 전략  (1) 2023.08.24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  (0) 2023.08.18
진화사고  (0) 2023.08.14
자율주행차와 반도체의 미래  (4) 2023.08.14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