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차 문제'는 우리가 '이식수술'에 관해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생 각해보게 만든다. 우리는 팔을 다친 남자에게도 삶에 대한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를 죽이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선로에서 혼자 일하던 그 노동자에게도 삶에 대한 권리가 있는데, '스위치 앞의 방관자'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별다른 가책 없 이 그를 살해했다. 때때로 다수의 생명이 위태롭다면 한 사람의 삶 에 대한 권리는 뒷전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식 수술'과 '뚱뚱한 남자'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이 유를 다시 찾아봐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식수술'과 '뚱뚱한 남자'에서는 침해되었지만 '스위치 앞의 방관자'에서는 침해당하지 않은 권리를 찾는 것이다. 그런 권리가 있을까? 그런 것 같다. 
- '전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칸트가 도움이 될까? 어떤 사람들은 도 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에게 유의미한 권리는 단순히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받지 않고 사람으로 대우 받을 권리다.
우리가 다뤘던 일화들을 다시 들여다보자. '이식수술' 일화에서 팔이 부러진 남자를 죽인다면 당신은 그의 유의미한 권리를 침해하 게 된다. 당신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의사가 있느냐 고 물었고,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그를 죽인다면, 당신 은 그를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신체 기관들의 집합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뚱뚱한 남자' 일화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만약 당신이 뚱뚱 한 남자를 난간 너머로 밀어버린다면, 그를 사람이 아닌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당신은 그 남자가 목표 달성에 필요한 몸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럼 '스위치 앞의 방관자는 어떨까? 얼핏 봐서는 당신의 행동은 잘못된 것 같다. 당신은 현장에 있었던 한 명의 노동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잠깐. 당신은 그 노동자를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도 아니다. 그는 당 신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당 신은 전차의 방향을 바꿨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단지 전차를 다른 선로로 돌려서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한다는 계획에서 파생된, 불행한 결과일 따름이다. 만약 그가 운 좋게 탈출했다면, 당신은 펄쩍 뛰며 기뻐할 것이다.
- 철학에서 전차 문제가 처음 다뤄진 것은 필리파 풋Philippa Foot이 라는 영국 철학자의 낙태에 관한 논문이었다. 그리고 전차 문제를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톰슨이다. 그는 풋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다듬 어 대중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전차가 고장 났을 때 데릭 윌슨, 또는 실제로 전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철학자들에게 전차는 도덕의 구조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한 도구였다. 우리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그 권리를 양보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한 도구였 다. 전차 문제는 낙태라든가............... 전시의 법률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 을 고민하는 데 활용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잠시 당신이 해리 트루먼이라고 상상하라. 당신은 일본의 나가사 키에 원자폭탄 '뚱뚱한 남자'라는 이름의)을 떨어뜨릴 것인지 말 것인지 를 결정해야 한다. 원자폭탄은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하 지만 원자폭탄을 투하하면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으므로 그보다 훨 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도 되는 때는 언제인 가?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전차 문제'는 우리가 이 문제 를 고민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 질문이 어리석게 보인다면, 그건 전차 문제가 진지한 질문들이 빠진 채 대 중문화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전차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권리는 정말 중요하다.
- 복수가 그렇게 무의미한 행위라면 우리는 왜 복수를 원할까? 하나의 가설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을 할 때마다 복수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이 복 수를 하려는 성향이 특별히 강하다는 증거가 있다. 한 연구에서는 만 4세에서 8세 사이의 아이들에게 컴퓨터게임을 시키고, 상대방(연구자들이 조작했다)이 아이들의 스티커를 훔치거나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선물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아이들은 복수의 기회가 생기자 마자 스티커를 슬쩍한 상대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다른 참가자들의 스티커보다 상대방의 스티커를 훨씬 많이 훔친 것이다. 하지만 아이 들은 친절을 베푼 상대에게는 똑같은 친절을 보이지 않았다. 선물을 받은 아이가 상대에게 선물을 줄 확률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확률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실험 결과를 보면 나쁜 행동에 복수하 는 행동이 호의를 되갚는 행동보다 본능에 더 가까운 듯하다.
그리고 ‘복수는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 과학자들은 모욕이 문자 그대로 복수하려는 마음을 불러일 으킨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욕을 당할 때 뇌에서 활성화하는 부위 는 사람들이 배고픔이나 다른 갈망을 충족하려 할 때 활성화하는 부위와 동일하다. 그 부위는 바로 좌측 전전두피질left prefrontal cortex 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 호머Homer가 "복수는 달콤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뭔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호머도 복수 의 힘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복수가 섹스보다 낫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봤다.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그런 주장을 극단까지 밀고 가서 "복수는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섹스는 정말 즐거운 일이고, 스탈린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아닌가. 물론 실제로 복수는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고, 우리가 복수에서 얻는 즐거움은 인류의 뇌 안 깊숙이 파묻 혀 있는 어떤 회로의 기능인지도 모른다. 설령 우리가 동물적 본성 에 따라 원래 복수를 추구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복수로 얻 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고 복수의 충동에 따라 행동해야 할지 아니면 충동을 억제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우 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복수는 정말 겉으로 보이 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인가?
- 케이든의 눈이 그 자체로 행크에게 도움이 될 건 없다. 하지만 케이든의 눈을 뽑는 행위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만약 사람들이 행크가 반드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면, 그 들은 행크를 공격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복수로 명성을 얻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다. 복수는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해준다. 그리고 복수는 일반적인 보험보다 훨씬 낫다. 복수는 당신이 부상을 당하고 나서 그 상처를 치료하는 비용을 지급하는 대신, 부상 자체 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수는 합리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냉정한 계산만 으로는 사람들이 복수에서 얻는 즐거움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성적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복수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도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복수의 기쁨은 다른 사람의 불 행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감정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일종 이다. 이 경우에는 당신에게 고통을 안긴 사람의 고통을 보며 기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거기서 기쁨을 얻을까? 흔히 나오는 대답은 '그 사람은 그런 고통을 당해 마땅하니까'라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응보적 정의 retributive justice'라는 특별한 정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 을 (부당하게)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도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고통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고통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세상의 어떤 섭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 런 논리에 따르면 복수의 기쁨은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목격하는 즐거움이다.
이런 논리는 조금 비인간적인 것 같다.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은 단지 정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상대에 게 고통을 가하고 싶어 한다. 작동하지 않는 건 세상의 섭리가 아니 다. 작동하지 않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우 리는 '이제 갚아줄 때가 왔다'라든가 '그 사람은 자기 행동의 대가를 치 러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런 말들은 복수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인데, 채무자와 채권자의 역할이 정반대라는 점에서는 모순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다음과 같다. '너와 나 사이에 계산이 맞지 않으니까 이제 공평하게 맞춰야 한다.'
- 우습게도 동해 복수법의 본질은 공감이다. 동해 복수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도록 강제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다치게 한다 면 당신은 그것과 정확히 똑같은 부상을 입을 처지에 놓인다. 그래 서 당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 전에, 그 상처로 자신이 고생할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희망적인 결과는 당신이 타인을 다 치게 하는 행동을 멈추고, 그래서 아무도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 다. 만약 당신이 끝내 누군가를 다치게 만든다면, 동해 복수법은 당 신에게 당신이 입힌 손해를 배상할 이유를 준다. 돈으로 배상하지 않는다면 곧 당신도 똑같은 고통을 겪을 테니까
- 우리는 복수가 일상이었던 시대의 사람들보다 우리 자신이 점잖 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 시대의 삶은 "아주 폭력적인 사 람들 속에서 저속하고, 불결하고, 잔인하게" 사는 거였다고 상상한 다.58 밀러의 주장에 따르면 그건 착각이다. 동해 복수법을 따르는 마을에서는 생명의 가치가 높았다.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생명과 사람의 팔다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다."
그런 전제 아래 이야기하자면 나는 동해 복수법에 따라 살고 싶 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현대적 생활이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 배심원들이 신체 기관을 값싸게 취급하도록 놔두기 때문이다. 밀 러가 지적하는 대로 "교통사고가 날 때마다 피해자의 친척에게 가 해자를 살해할 권리를 준다면" 우리는 아예 운전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포기하게 될 것은 자동차만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기계장치들을 전부 포기해야 한다. 비행기, 기차, 트럭, 중장비 .......... 모터가 달린 장비는 거의 다 여기에 포함된다. 이 기계 장치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눈에는 눈' 원칙을 기꺼이 포기하고 보잘것없는 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처벌은 그 사람에게 '당신은 사회적 지위를 상실했다'는 신호를 보낸다. 여기서 사회적 지위의 상실이란, 그 사람이 평소에는 감내할 이유가 없는 가혹한 처우를 이제는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 철학자들은 권력과 권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권총 강도의 예를 든다. 당신이 길을 가는데 권총을 든 괴한이 나타나서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는 당신에게 권력을 행사하는가? 그 렇다. 당신은 틀림없이 가진 돈을 전부 내놓을 것이다. 그는 당신에 게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그가 돈을 요구하기 전에 당신은 그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었고, 지금도 당신은 그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다. 사실 당신은 그에게 '꺼져'라고 말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그걸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권총강도와 매년 날아오는 세금 고지서를 비교해보라. 정부도 당 신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한다. 만약 정부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 으면 정부는 당신을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게는 권 력이 있다. 정부에게는 권위가 있는가? 음, 정부는 그렇다고 말할 것 이다. 정부의 관점에서 당신에게는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다. 당 신에게는 정말로 그런 의무가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는 '그렇다' 라고 대답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부가 요구하는 세금을 낼 의무가 있다.
- 라즈의 견해에 의하면, 권위의 핵심은 대상자들에게 서비스를 제 공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라즈는 자신의 이론에 '봉사로서의 권위service conception of authority'라는 이름을 붙였다.'0' 라즈는 권위자가 대상자들 이 가진 모든 이유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나서는 그 들이 그 이유들이 요구하는 일을 더 잘하도록 만드는 지시를 해야 한다. 만약 대상자들이 스스로 결정할 때보다 명령을 따를 때 일을 더 잘하게 된다면, 그 지시는 구속력을 가지고 대상자들에게는 그것 을 좇을 의무가 생긴다.
권위자가 그런 종류의 봉사를 제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 며, 지금까지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살펴봤다.
첫째는 권위자가 대상자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경우다. 103 다 시 말하면 권위자가 전문 지식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일 수 있다. 당신 이 만난 일류 제빵사는 바로 그 이유에서 권위를 가진다. 선임 의사가 신입 의사에게 지시를 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선임 의사는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어떤 치료가 필요할지에 관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둘째, 권위자는 어떤 집단을 움직여 개인들이 각자 성취하기는 어 려운 목표를 다 같이 달성하도록 해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위자 는 구성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성과를 낸다. 철학자들 은 이런 상황을 '조정 문제coordination problem'라고 부른다. 104 전형적인 사례는 당신의 차 안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도로에서 다른 모든 운 전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차를 몰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차 들과 충돌할 테니까. 이때 우리가 왼쪽에서 운전하느냐 오른쪽에서 운전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한쪽을 고르면 된다. 교통 당국은 도로의 규칙을 정해 모든 사람의 행동을 조율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행동을 결정할 경우에 발생할 혼란을 피하도록 해준다.
- 금기로 여겨지는 단어들은 어느 언어에나 있다. 그런 단어들은 나 라마다 다르지만 공통적 요소를 지닌다. 어떤 단어들은 섹스, 배변, 질병처럼 금기시되는 주제와 관련이 있고, 또 어떤 단어들은 신성모 독의 위험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욕을 하지 않고도 이런 주제에 관 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왜 특정한 단어들만 입에 담으면 안 되 는지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리베카 로치 Rebecca Roache는 욕이 되는 단어의 소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언어철학자(다른 분야의 연구도 한다)로서 욕을 연구하는 로치 의 관찰에 따르면, 욕이 되는 단어들은 그 단어들이 표현하는 감정 과 똑같이 거친 느낌을 준다. 그녀는 그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다. whiffy(역하다)나 slush(질퍽거리다) 같은 부드러운 단어로는 분노 를 전달할 수가 없다. 그런 단어들을 사용해서 욕을 하는 일은 "공기 압축식 경첩이 달린 문을 쾅 닫으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로치는 말한다. 
더불어 로치는 단어의 소리가 전부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말이 옳다. 짧고 거친 느낌을 주지만, 아무도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단어 도 정말 많다. cat(고양이), cut(자르다), kit(조립 용품 세트)와 같은 단 어들이 그렇다. 그리고 욕으로 사용되는 어떤 단어들에는 동음이의 어가 있는데, 그 동음이의어는 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prick('찌르 다'라는 뜻과 '멍청한 놈'이라는 뜻이 둘 다 있음-옮긴이), cock('수탉'이라는 뜻과 '음경'이라는 뜻이 있음-옮긴이), Dick(사람 이름으로도 쓰이고 '음경'이 라는 뜻도 있고 '재수 없는 놈'이라는 뜻으로도 쓰임 - 옮긴이)을 보라. (이 단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공격적 의미를 지닌 단어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즉 우리에게는 사회적 설명이 필요하다.
로치의 주장에 따르면 욕으로 사용되는 단어들은 공격성의 점 증offense escalation 이라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128 이유야 어떻든 간에 사람들이 shit 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누군가 가 그 단어를 말할 때 불쾌해질 것이다. 그런 불쾌감이 널리 퍼지고 잘 알려진다면 shit 이라고 말하는 행동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것 이다. 이런 순환이 거듭되는 동안 shit은 점점 공격적인 단어로 변한 다. 어떤 단어가 공격적이라고 정해지고 나면,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행동은 더욱 폭력적으로 보인다.
- 리처드 스티븐스Richard Stevens의 유명한 연구를 보자. 스티븐스는 대학생들에게 얼음물이 든 양동이에 한쪽 손을 담그라고 했다. 두 번이나. 한 번은 욕을 해도 된다고 했고, 한 번은 욕을 허용하지 않았 다. 대학생들이 욕을 했을 때는 손을 담그는 시간이 50퍼센트 가까 이 길어졌고, 고통도 덜 느꼈다. 131 게다가 후속 연구들에 따르면 센 욕설(shit이 아니라 fuck을 생각하면 된다)을 하면 욕에 수반되는 위안이 커졌다. 132 나는 욕을 큰 소리로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장담한다.
더 중요한 사실. 욕은 육체적 통증만 완화하는 게 아니다. 마이클 필립Michael Phillip과 로라 롬바르도Laura Lombardo는 욕을 하는 행위가 사회적 배제의 고통도 완화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필립과 롬바 르도는 사람들에게 소외당했다고 느꼈던 일을 떠올려보라고 주문 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회상을 하고 나서 욕을 하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욕이 아닌 일반적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했다. 욕을 했 던 사람들은 욕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사회적 고통을 적게 느꼈 다고 답했다. 
- 나는 이 연구를 에마 번Emma Byrne의 《Swearing is Good for You: The Amazing Science of Bad Language (욕설의 과학)》라는 책에서 처 음 발견했다. 욕에 관한 훌륭한 과학적 설명이었다. (몸짓언어를 배우 는 침팬지들은 자기만의 욕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빌어먹 을.) 134 번은 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한다. 그 이유는 감정이 실린 언어를 처리하는 뇌 부위들과 관련이 있을 것 으로 짐작된다.  다만 욕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사실 세부적인 사항들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욕을 하는 행동이 스트레스 완화에 아주 좋다는 것이다.
- 우리는 단지 누가 제일 빨리 달리는지 또는 누가 제일 높이 뛰는 지를 알아보려고 스포츠를 관람하지 않는다. 슈나이더의 말처럼 스 포츠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 어디까지인 지에 관한 우리 자신의 생각을 정의하고 결정한다".  우리가 운동 선수들을 추켜세우면 그 대가로 그들도 우리를 추켜올린다. 운동선 수들은 끈기와 단호함과 인내를 몸소 보여준다. 그들은 역경 속에서 싸운다. 그들은 성공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우아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고, 별로 우아하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리는 스포츠를 보면서 그걸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 선수들만이 아니라 여자 선수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 교도소 수감자 비율의 차이는 경찰이 '백인'보다 '흑인'을 더 함부로 다루고 쉽게 처벌한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반영한다. 예를 하나만 들면, '백인'과 '흑인'이 약물을 복용하는 비율은 거의 동일하다. 그 런데 마약사범으로 체포될 확률은 흑인이 네 배 가까이 높다. 247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이런 통계를 알려주지 않았다. 다 만 우리 사회가 오래전부터 피부가 검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우했 다는 이야기는 해줬다. 또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당한 대우는 과거 가 아니라고 말해줬다. 우리의 현재에도 부당한 대우는 있다고.
우리는 인종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건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인종이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 살기를 원 한다면 인종 간의 격차부터 없애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나는 피부색을 따지지 않아"라고 선언해서는 안 된다.
- 1980년대 엑 손Exxon은 "과학적 결론의 불확실성을 강조하기로 결정했다. 엑손 에 소속된 과학자들 역시 인류가 자초한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협이 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도. 315 하지만 그 각본을 최초로 작성한 것 은 엑손이 아니었다. 담배 회사들은 자사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흡연 과 암 발병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는데도 그 상관관계에 의문을 제기 했다. 언젠가 브라운&윌리엄슨Brown & Williamson의 내부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담겼다. "우리의 상품은 의심이다."
우리는 의심을 조장하는 사람들doubtmongers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까다로운 질문이다. 철학자로서 나는 마치 데카르트가 모든 것 을 의심했던 것처럼 직업적으로 의심을 한다." 나는 당신이 아는 것 을 꼬치꼬치 따져보고, 당신이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지점들을 찾아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그 런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경향이 워낙 강해서 과학자들은 자신 들의 불확실성을 수량화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의심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 사실 우리가 서로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은 우리가 서로에게 공감하는 방식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서로의 마 음에 접근하지 못하는 덕분에 나는 약간의 사생활을 보장받는다. 그 덕분에 내 생각을 혼자만 간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마 음에 접근하지 못하는 덕분에 나는 사람들에게 놀라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항상 알아차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대개 의 경우 그건 좋은 일이지만, 당연히 좋지 않은 면도 있다. 우리는 서 로의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고통을 간과하기가 쉽다.
- 철학자들이 과학의 첨단을 걷는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아리스토 텔레스가 그랬다. 사실은 과학이 철학과 별개의 학문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과학은 도덕철학이나 미학과 같은 철학의 다른 갈래와 구별하기 위 해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가 철학과 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인식하는 주된 이유는 사용하는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이 다. 물론 과학자들도 철저한 사색을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세상 을 탐색하기 위해 관찰과 실험이라는 방법도 사용한다.
철학자들의 도구 상자에도 관찰과 실험이 들어 있긴 하지만, 철학 자들은 관찰과 실험이라는 도구를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한다. 철학 자들의 관심을 끄는 질문들은 대개 실험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들이 다. 어떤 실험도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고, 아름다움도 그렇다. 어떤 실험도 우리에게 처벌이 정 당화되는 경우가 언제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복수가 정당화되는 경우가 언제인지,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는 다. 어떤 실험도 지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지식 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실험으로 알아낼 수가 없다. 우리 철학자들이 이런 종류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 는 도구는 철저한 사색과 대화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철학이 지식의 원천이라는 것을 의심하기도 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철학 은 말뿐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만 약 철학이 지식의 원천이 아니라면 과학도 지식의 원천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실험은 하나의 논증에 의존한다. '이것이 세상에 관 해 알아내는 방법이다'라는 논증이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해석을 요구한다.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과학자들도 철학자들과 똑같이 철 저한 사색을 해야 한다. 만약 과학자들의 논증이 탄탄하지 않다면, 그들이 실험을 진행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연구가 유의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사색과 대화 를 토대로 삼는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과학과 철학은 동일한 학문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그 목표에 걸맞은 도 구라면 뭐든지 사용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는 수 학, 과학, 철학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어 떤 문제를 해결하기에 다른 학문들이 더 적합한 경우 철학자들은 문 제를 그 학문으로 넘긴다. 우주의 크기에 관한 아르키타스의 의문도 그런 경우였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우주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과거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세계의 한계에 관해 배운다. 제논의 운동 역설을 둘러싸고도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수학의 힘을 빌려 무한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과학이 공간의 구조를 밝혀내는 중이다.
- 어떻게 하면 아이를 철학자로 키울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고, 아이들의 대답에 대해 또 질문을 하라. 질문은 복잡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당신이 철학을 몰라도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일련의 
*넌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네가 틀렸다면 그 이유는 뭘까?
*......라고 네가 말한 건 무슨 뜻이야?
*.....이란 뭘까?
- 목표는 아이가 논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반 대쪽 주장도 접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가 이야기를 많 이 하도록 놓아두되, 아이들이 생각하다가 막힐 때는 주저 없이 도 와주라. 가장 중요한 점은 두 사람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거나 그 게 어리석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진지하게 들어라. 아이와이 성적인 태도로 대화를 나누라."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알려주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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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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