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심리학

인문 2023. 10. 27. 11:35

- 융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 교사로 활동했던 리하르트 빌헬름과 친교가 깊었다. 선교 당시 빌헬름은 《주역》이 중국 사람들의 사상과 문화에 얼마나 큰 영 향력을 미쳤는지 깨달았다. 그는 《주역》을 독일어로 번역했을 뿐 아니라, 《주역》이라는 학문을 서양에 널리 알리려고 애썼다. 당연히 융도 친구를 통해 《주역》을 알게 되었고, 곧 누구보다도 흠뻑 그 사상에 매혹되었다.
융이 정립한 정신의학 이론인 내향성과 외향성, 아니마와 아니무스, 공시時性, 페르소나와 그림자 등은 《주역》에 뿌리 를 두고 있고, 이 이론들은 오늘날 일반인도 널리 사용하는 정 신의학 용어가 되었다. 특히 요즘 많은 사람이 몰두하는 MBTI 도 융의 내향성과 외향성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마음의 기능을 사고, 감정, 감각, 직관으로 분류해놓은 이론을 참고한 것이다.
더욱이 융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괘를 뽑아 자신이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결정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쉰 살에 떠난 아프리카 여행 중에도 융은 괘를 뽑았다. 5개월에 걸친 여행 동안 그는 《주역》의 마지막 64번째 괘인 화수미제괘 火未濟卦를 늘 생각했다고 한다. 화수미제괘는 63번째 괘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의 수화기제괘旣濟卦 다 음에 나오는 마지막 괘이다. 즉, 인생은 늘 다 이루었다고 생각 할 때 다시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 여행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여행 도중 에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자 다시 괘를 벌였다고 한다. 그가 이 여행에서 괘를 뽑을 동전을 구하지 못하자 나뭇잎을 사용했다 는 일화는 유명하다.
융은 《주역》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와 인도의 요가, 선禪, 명상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집단 무의식을 찾는 과정에 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공시성이론대로 서로 통하는 사상이어서 동양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 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의 많은 이론이 《주역》과 중용의 이론을 취한 것은 분명하다. 그에게 프로이트만큼 많은 추종자 가 있는 이유도 동양과 서양의 학문을 접목하면서 사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한 데서 온 것이다. 융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공자와 노자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을 간단히 물리칠 수가 없다. 그들이 가르치는 높은 경지의 사상을 알게 되면 더욱 그러 하다. 더욱이 우리는 《주역》이 그들에게 영감을 준 원천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나이가 여든 고개에 들어섰다. 사람들의 변화무쌍한 의견은 나에게 아무런 감명도 주지 못한다. (・・・) 내게는 노대가의 사상이 서구인의 철학적 편견보다 더 가치가 있다.

- 《주역》에는 시초草라는 풀로 괘를 뽑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공자는 3천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 다니며 지냈는데, 매일 아침에는 단정하게 몸을 가다듬고 점을 쳐서 괘를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그날 하루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역을 좋아한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덕을 좋아한 것이지 점을 좋아 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덕을 닦지 않은 채로 모든 결정을 점 에 맡긴다면 차라리 점을 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는 아 마도 《주역》이 점서로만 쓰이게 될 것을 경계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는 하나 점서로서의 《주역》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며, 이는 적지 않은 학자들이 줄곧 이야기하는 바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주역》이 상과 수와 사로 이루어진 이유도 애초에 점서로 그 쓰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주역》이 진시황 때 분서갱유焚書坑儒에서 살아남기 위 해 점서로서의 측면이 부각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진시황 이 자신의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유학자들을 생매장하고 그들 의 책을 불태우자 《주역》의 소실을 걱정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실제 생활에 필요한 점서라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그 덕분에 분 서갱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대 에 이르러 유가 사상이 크게 숭상되면서 《주역》의 위상 또한 경전의 맨 앞에 놓일 정도로 높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인간은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할 때 누군가에게 물어보 거나 의지하고 싶어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것이 델포이 신 전이었을 것이고, 성경에서는 하느님에게 드리는 기도였을 것 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는 점괘를 보고 자기 이성으로 해 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관해 그 답을 찾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단순히 점을 떠나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철학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 야 할 지혜를 역시 자연에서 얻는 과정을 정리한 책이자, 그 지 혜를 양과 음의 부호로 이루어진 괘로 형상화한 학문인 것이다.
- 그렇다면 그 괘가 과연 맞는 답일까? 여기서 필요한 것은 자 기 확신이다. 자기가 뽑은 괘가 맞는 답이라는 데 분명한 신뢰 를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직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융은 이성, 사고, 합리성으로는 볼 수 없는 것도 우리 내면의 영혼의 눈으로 보면 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즉, 내가 이 런 행동을 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 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주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1980년대에 벤저 민 리벳이라는 심리학자가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가' 하는 주 제로 실험을 했다. 그는 실험 대상자가 어떤 버튼을 누를지 선택하도록 하면서 그 순간의 피실험자의 뇌를 관찰했다. 그런데 피실험자가 어떤 버튼을 누를지 결정하기도 전에 뇌의 특정 부 위가 먼저 활성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이 실험 결과를 보 고 우리의 결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자유의지는 별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2007년 독일의 뇌과학자인 존딜런 헤인즈 교수에 의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그 역시 인간의 의식이 결정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10초 전에 결정을 내린다는 결과를 얻 은 것이다. 헤인즈 교수는 그 연구 결과를 보고 '우리가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미 그 이전에 결정된 것'이라고 주 장했다. 즉, 뇌가 먼저 결정하고 나는 나중에 인식한다는 것이 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 렸다.
- 하지만 나는 반대로 그들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미치는 무의식의 힘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즉, 무의식에서 결정 을 내리는 것조차 우리의 자유의지에 속하는데, 그 부분은 말 그대로 무의식이니 내가 단지 알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괘를 뽑아 그 괘의 해석을 믿고 자기가 나아갈 길을 정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 무의식, 그리고 그 괘를 믿는 나 의 자유의지까지 모두 통합되는 과정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주역》에는 거의 시에 가 까운 온갖 은유가 넘쳐난다. 《주역》의 은유는 읽는 사람의 마음 에 따라 달라진다. 돈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단지 내가 언제 돈 을 구할 수 있는지만 보일 수 있고, 지위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겸 허히 자연 앞에서 제 갈 길을 묻는 사람들은 자연의 은유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있다. 그러한 면은 정신의학과도 통한다. 정신의학은 말 또는 글이라 는 언어를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학문이다. 굳이 라캉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언어 역시 은유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음성과 문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신체라는 언어도 포함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 기미를 살피는 것이 나의 몸이라는 은유에서 나를 찾는 것이라 면, 그보다 더 먼 길을 갈 때 내 주위에 있는 자연, 궁극적으로 는 자기의 원형, 자기의 근본에서 기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주역》이다. 그리고 나의 원형을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보다는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더 알고 싶어 한다. 물론 그것이 인지상정이기는 하다. 인생의 고달픈 문제에 대해 당장 해법을 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여야 한 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만 알면 나아갈 방향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 경영의 기본이다.
내가 이 책을 《주역》의 맨 마지막 두 괘인 수화기제괘와 화 수미제괘로 시작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두 괘를 통해 쓸데 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오는 완벽주의에 대한 환상을 일깨 우고 온전히 '나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나머지 괘들 역시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든 자기 경영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로 구성했다.

- 《주역》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미제 앞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뜻의 기제괘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기제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괘와 불을 상징하는 이괘 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을 상징하는 괘가 위에 있고 불을 상징 하는 괘가 아래에 있어서 수화기제괘水火旣濟卦이다. 속성상 물 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니 물이 불을 끄는 형상이다. 인간의 마음에서는 흔히 냉철한 사고로 비 유되는 물이 열정과 욕망으로 비유되는 불을 다스리는 형상이 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 측면에서 풀이하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이고 상생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괘의 이름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는 기제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이 층에 사 는 물이라는 형이 아랫집에 사는 동생의 집에 물이 있는지 살 피러 가고, 아래층에 사는 분이라는 동생은 윗집에 사는 형이 춥지 않은지 올라가서 살피는 형상인 것이다.
- 미제괘(흔히 영구미제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이 괘의 이름에서 유래했 다)는 기제괘와는 반대로 불을 상징하는 괘가 위에 있고 물을 상징하는 괘는 아래에 있다. 그래서 화수미제水未濟卦이다.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흐르니 둘은 전혀 만날 수 없 다. 그러니 인간관계에서는 불통이 되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 제는 풀리지 않는 것이다. 역시 비유하자면, 이 층에 사는 불(동 생)은 잘났다고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고 아래층에 사는 물(형)은 늘지하도로 다니니 못 만나는 형상이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기제괘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다는 미제괘가 한 쌍일까? 사실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기제와 미제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를 마치고(기제) 나면 중학교에 진학해서 새로운 삶이 시작(미제)된다. 임산부에 게 출산은 지난 10개월간의 완성이니 기제이다. 하지만 이제부 터는 새 생명을 키워내야 하니 미제이다. 더욱이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니 더더욱 미제일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 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결국은 기제와 미제의 반 복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완성된 것 같을 때 새로운 변화가 시 작되고 그동안 숨어 있던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이 인생이기 때 문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 미제괘는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임을 역설한다. 즉,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완벽한 마무리는 불가능하다는 깨달음. 우리가 영원한 미완성의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인생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미완성 속에 서 변화가 싹터 나와 형통함에 이른다고 알리는 일도 잊지 않 는다. 그 가르침이야말로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희망 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 《주역》의 첫 번째 괘는 여섯 개의 효가 모두 양효인 건과 로서 하늘과 아버지를 상징하고, 두 번째 괘는 여섯 개의 효가 모두 음효인 곤괘로서 땅과 어머니를 상징한다(건괘와 곤괘는 리 더십을 상징하는 괘이므로 5부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그 뒤에 나오는 세 번째 괘가 바로 생성의 혼돈, 시작의 험난함을 상징하는 둔 괘이다. 여기에는 자녀의 탄생도 포함된다.
둔은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오는 형상을 나타낸다. 이른 봄, 막 풀린 땅 위로 고개를 내민 새싹을 보고 살짝 눈시울이 뜨거 워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둔괘가 왜 시작의 험난함을 상징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역》에서는 왜 시작의 고난을 논하는 둔괘를 자녀의 탄생에 비유했을까.
둔괘는 물을 상징하는 감괘와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 로 이루어져 있어서 수뢰둔屯卦이다. 우리는 수태되는 순 간 엄마의 배 속에 자리 잡고, 양수라는 물에 의해 보호받으며 태아로 자라난다. 즉, 물속에서 진동하고 움직여서 세상 밖으로 나오면 그것이 생명의 탄생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 달을 기다려서 세상에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혼돈이다.
태아는 지금까지는 모든 영양이 공급되는 엄마 배 속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온 다음에는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첫울음은 아기가 처음으로 스스로 호 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첫 호흡이 성공해야 비로소 우리는 삶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걷는 것, 먹는 것부터 시작해 말하는 법, 공부하 는 법, 돈 버는 법, 인간관계를 맺는 법 등을 배워나가야 한다. 태어남을 상징하는 수뢰둔괘 다음에 배움의 도리를 논하는 산수몽괘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늘 아래 산이 있다는 것은 물러나서 피함을 나타낸다. 군자는 소인을 멀리하되, 미움을 드러내지 않고 존엄을 지킨다天下有 君子以遠小人不惡而嚴.

- 상대를 향해 쉽게 분노하거나 지적하는 행동은 삼가는 편이 좋다. 상대 역시 분노하고 나에 대한 험담을 마구잡이로 퍼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동시다발적인 반발만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 터무니없 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맞서 대응하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스스 로 존엄을 지켜나가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이것이 상전이 역설 하고 있는 지혜이고, 이를 실천한 사람이 주희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동안 지켜온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미련과 집착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 이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정치권에서, 기업 현 장에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사사로운 모임에서도 마찬가 지다. 쥐꼬리만 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놓지 않으려 고 애면글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 《주역》에서 치욕을 견디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괘가 명이괘이다. 명이괘는 상괘가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이고 하괘는 불을 상징하는 이괘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화명이 괘地夷이다. 이 괘는 땅속에 불이 들어 있는 형상으로서, 해가 져 땅으로 들어간 형국이며 밝음이 어둠에 묻힌 상태를 나타낸다.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런 상황에 놓이면 크나 큰 험난함이 예고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당당하 고 바른 사람일지라도 일단은 몸을 낮추고 자신의 정체를 경솔 하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 게 정도를 지켜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 지나치게 신중하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언젠가 보고서 의 양식과 글자 수에 집착하는 총리의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 이 있는데, 그런 정도라면 다소 곤란하다. 이런 집착은 신중함 에서 나왔다기보다 대체로 불안과 두려움에서 비롯한 경우로 보인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사소한 일 에 매달리고 지나칠 정도도 꼼꼼히 살피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의 '꼼꼼한meticulous'이라는 단어는 '두렵다'는 의 미의 라틴어 '메티쿨로수스meticulosus'에 어원을 두고 있다. 공 자도 지나친 신중함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논어> <야 장편>에 보면 계문자라는 인물이 세 번 생각한 후에 행하였다는 말을 들은 뒤 공자가 말한다.
두 번이면 되느니라再斯可矣.

- 어찌 됐든 신속한 판단력과 결단력은 누구에게나 대단히 중 요한 자질이다. 구오의 효사 "결단코 이행하되 정도를 지켜 위 험을 막아야 한다履貞”라는 구절이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다. 결단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을 때는 과감하게 행동하되, 정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형통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되 늘 존재하는 위험에 도 대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신중함이 필요한 순간에는 마치 호랑이 꼬리를 밟듯이 삼가고, 과감함이 필요할 때는 또 단번에 치고 나가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 대부분의 《주역》 해석서에서는 이 겸괘가 풍성한 부를 가졌 다는 의미를 지닌 화천대유괘天大有 다음에 나오는 것에 주 목하라고 말한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오만해 지기 쉽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쉬웠으면 그런 말도 진즉 사라졌을 것이다. 오죽하면 성바오로 수도회 창 립자 알베리오네 신부님도 '교만은 인간이 죽은 뒤에도 세 시간 은 지나야 죽는다'고 말했을까.
그에 대해서는 괴테도 한마디 했다. 그의 소설 《친화력》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의 우월한 점을 가끔 잔혹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

- 육사의 효사에 "겸허한 사람이라는 허명을 물리치라无不利謙"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겸허함이 지나쳐서도 안 되 므로 정도를 지키라는 주문으로 해석한다.
허명에 대해서는 맹자도 말했다.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 보면 서자가 공자께서 물을 칭찬했는데, 무엇 때문 이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맹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근원이 있는 샘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졸졸 흘러 구덩이를 채운 뒤에 앞으로 나아가 바다에 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 니 이를 취하신 것이다. 진실로 근본이 없다면 칠팔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 크고 작은 도랑을 모두 채우나 그 물이 말라버리는 것 을 서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제보다 지 나친 것을 군자는 수치로 여긴다原泉 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 進放

- 손괘는 일차적으로 뇌수해괘雷解 다음에 이어지는 괘라 는 데 의미가 있다. 해괘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살면서 일어나 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 과 협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해괘에는 해 결되는 것도 있지만 완전하지는 않고 누그러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이 경우에는 잃는 것도 생기므로 손괘로 이어진다고 보 기도 한다.
손괘는 상괘가 산을 뜻하는 간괘, 하괘가 연못을 뜻하는 태괘로 이루어져 있어서 산택손괘山澤損卦이다. 산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다는 것은 산의 몸체는 높고 못의 몸체는 깊다는 뜻이다. 그처럼 아래가 깊으면 위가 더욱 높아지므로 아래를 덜어서 위를 보태준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김석진 선생은 "윤택한 못의 기운이 산속의 초목과 금수를 생장 활동하게 함과 같이 안을 덜어 밖에 더해주는 것이다. (...) 손괘는 안으로는 기뻐하고 밖으로는 후중히 그치는 덕이 있어 나의 것을 덜어 남에게 보태는 괘"라고 설명하고 있다.

- 곤괘는 하괘가 물을 상징하는 감괘이고 상괘는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로 이루어져 있어서 택수澤水困卦이다. 곤을 파자하면, 사방이 막힌 울타리 안[]에 나무[]가 갇힌 형상이다. 나무는 울타리 밖으로 뻗어나가려고 하지만 사방이 막혀 있으므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는 괘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할 연 못이 위에 있고 그 아래로 물이 있다는 것은 곧 연못에 물이 없 어 메마르고 황폐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괘사는 오 히려 희망을 말하고 있다.
곤은 형통하게 됨을 이른다.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러한 대인이라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다만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貞大人无咎 有言不信.
마지막에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매우 현실 적인 조언이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딱하고 어려운 처지에 빠 진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믿어주겠는가. 그럴 때는 차 라리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전열을 가다듬는 편이 낫다. 그런 자세로 정도를 지켜나간다면 마침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형통의 문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는 굳건한 의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강건함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에 불어오는 작은 비바람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곤괘는 마지막 상육의 효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거의 고르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육삼의 효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돌에 막혀 곤란하여 가시 돋친 찔레 풀에 의지한다.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據于蒺藜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이 구절에 대해 공자는 《계사전》 하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갇히면 안 될 곳에 갇혀 있으니 이름이 욕되고, 머물러서는 안 될 곳에 머물러 있으니 몸이 위험하다. 이미 욕되고 위험한 상태에서 죽기에 이르렀는데 아내인들 어찌 볼 수 있겠는가非所困而焉 名 必辱 非所據而據焉身必危 既辱且危 死期至妻其可得見邪.
그런 욕됨은 계속되어 구사에서는 "천천히 내려오다가 쇠수 레에 곤란을 당하며", 구오에서는 "코를 베이고 발을 잘려서 붉은 인끈'을 멘 신하에게서 곤란을 당하는가"라고 하는가 하면상육에서는 "위태로운 곳에서 칡덩굴에 의해 곤란을 당한다"라 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일종의 고난의 전시장 같 은 느낌이 아닌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처럼 힘겨운 상황 뒤에는 반드시 상서 롭고 형통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점이다. 그것은 모든 효사가 마찬가지다. 단, 서둘러 뉘우치고 인내심과 성실함 으로 정도를 지키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 물론 고난을 품위 있게 감당하고 극복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련의 불길을 통과 한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폴 오스터의 책에서 미국은 '돌아온 영웅'에 더 열광 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단번에 영웅이 된 사람도 대 단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으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졌 던 영웅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을 때 더 큰 환영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그런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자기 인생을 제 대로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고난을 극복하고 적어도 지금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도전 끝에 이윽고 형통의 문이 열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 공자도 소송은 피하라고 당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소송을 듣고, 판결하는 일은 나도 남처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송 사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논어》 <안연편顔淵>에 나오는 문장이다. 송사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삶을 힘들게 하는지 공자 역시 잘 알고 있었던 것 이다.
송괘는 상괘가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이고, 하괘는 물을 뜻하는 감괘로 이루어져 있어서 천수송訟이다. 괘의 모습을 보면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만 내려 가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형상이다. 송訟을 파자하 면 공공公公한 말씀[]이 된다. 서로 다툼이 있을 때는 사사로 움을 배제하고 엄중한 말로 그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 겠다.
실제로 송괘는 소송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괘는 그 앞에 나오는 수천수괘天需와 도전괘의 관계이다. 앞서 살펴봤듯 이 수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즉, 인생에서 위험이 앞에 놓여 있을 때 강건한 사람은 "잠시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므로 쓸데없 이 내달리지도 않고 곤란한 일을 당하지도 않는다"라는 것이다.
수괘는 인간의 일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수괘 다음 에 도전괘로 송괘가 놓였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인생살이에 는 다툼과 싸움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결국 인생이라는 의미 이다. 즉, 그런 다툼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 는지 보여주는 괘가 송괘이다.
송괘의 괘사 또한 공자의 당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수괘의 괘사를 보면 "성실함이 있으니 빛나고 형통하며 바르고 길하 다
구절로 시작한다. 반면에 송괘의 괘사는 "라는 첫 문장이 "성실함이 있으나 크게 막힌다"라고 되어있다.
똑같이 성실함이 있지만 한쪽은 길하고 한쪽은 막힌다는 상 반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두 괘는 앞뒤로 나란히 놓일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싶다. 양쪽 괘를 자세히 살펴서 어떻게 처신 하는 것이 내게 더 도움이 되는지 판단하라는 뜻에서 그렇다. 첫 문장에서 이어지는 송괘의 괘사를 보면 이 점이 더욱 분 명해진다.
중도에 멈추면 길할 것이나 끝까지 가면 흉하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큰 내를 건너는 것은 이롭지 않다中吉利見大人不利 大川.
한마디로 흉사로 이어지므로 송사는 끝까지 가지 말라는 뜻이다.
- 송괘는 이어지는 모든 효사에서도 송사를 벌일지 말지를 조언하고 있다. 설령 송사가 일어났어도 반드시 중간에서 멈추는 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나은 해결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 어 초육의 효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소송을 오래 끌지 않으면 말은 조금 듣겠지만 마침내 길할 것이다所有言 終吉.
구사의 효사 역시 비슷하다.
송사를 해결할 수 없다. 돌아와 명에 따르고 태도를 바꾸어 편안한 마음으로 참고 있으면 길하다不克訟 復卽命 逾安貞 吉.
- 해결할 수 없는 싸움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구설을 듣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에 멈추는 것도 일종의 용기다. 그럴 때는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와 마음을 비우고 순리를 따르는 편이 현명하다. 그런데도 아집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가 는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상구의 효사다.
혹 반대를 하사하더라도 아침이 끝날 때까지 세 번 빼앗길 것 이다或以帶 終朝三禰之.
- 반대란 관복을 입을 때 두르는 띠로서 여기서는 관직을 상징 한다. 혹여 관직에 나가는 명예를 얻더라도 아침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무려 세 번씩이나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분쟁을 개의치 않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한들 오래가는 일은 결코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살다보면 누구나 길을 잘못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푸념하고 원망하면서 계속 잘못된 길로 가고, 다른 부류는 곧바로 되돌아와 표지판을 다시 읽고 새롭게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
송괘는 두 번째 길로 인생의 방향을 잡으라고 당부한다. 당장 은 그편이 훨씬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다 지나가는 때가 온다. 힘든 과정이 끝난 뒤에는 내가 내린 결정이 잘한 것 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지고도 이기는 길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그 비결을 깨우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송괘가 주는 최종적인 조언이라고 하겠다.

-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공주 세멜레 사이에 태어났 다. 이를 질투한 헤라의 눈을 피해 그는 동방의 한 산에 사는 요 정들의 손에 양육된다. 그는 동방의 여러 곳을 떠돌며 포도를 재배하는 법과 포도주 만드는 법을 배운 다음 그리스로 귀향한 다. 실제로 그가 동방에서 시작해 펠레폰네소스반도로 이동하 는 여정은 포도와 포도주가 들어온 경로와 일치한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포도 재배와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치면서 방 랑자로서 떠도는 동안 그는 점차 술의 신이자 광기의 순례자로 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당시 억압이 심했던 여자 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집을 떠나 무리를 지어다니며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광란의 야간 집회를 열었다. 당시 그들은 미친 여자들이란 뜻의 '마이나데스Mainades'라고 불렸는데, 이는 영어에서 광기 Madness의 어원이 되었다는 이야 기도 있다. 그런 광기 덕분에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차갑고 합리적인 이성을 대표하는 아폴론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디오니소스는 당혹감을 안기는 존재였다. 이 디오니소스의 원형을 지닌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이성적 이고 논리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썩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은 일단 규칙적이거나 지속적인 일은 잘해내지 못한다. 변덕스럽 고 충동적이며 다소 미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 더욱이 그들은 때때로 혼자 있기를 고집한다. 안으로 침잠해 서 자신과 싸우다 보면 그들의 내면에서는 대개 놀라운 상상력 이 피어나곤 한다. 그들의 본성 안에는 디오니소스적인 창조성 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확실히 예술가 유형이다.
따라서 그들이 만약 조금만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 하고 처신한다면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 앞서 여괘의 괘사에서 언급한 대로 조금만 더 정도를 지 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아폴론적인 면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으 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물론 디오니소스적인 유형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홀로 있으 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렇게 하는 편이 오히려 인간관계에도 더 큰 도움을 준다. 나를 이해함으로써 타 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 서 고독은 때때로 인간관계에 오히려 좋은 영향을 주는 훌륭한 파트너이다. 요즘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홀로 즐기는 '조용한 즐거움 Quiet Enjoyment'을 강조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벤저민 프랭클린은 "못 하나가 없어서 편자를 잃었고, 편자가 없어서 말을 잃었고, 말이 없어서 기수를 못 보냈고, 기수가 없 어서 전쟁에서 졌다"라는 의미의 말을 했다. 그의 경우 함부로 말하는 습관이 부족한 '못'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자칫하면 그 것이 복병이 되어 자신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 게 보기 시작했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 지금은 유튜브와 SNS와 부캐의 시대이다. 일찍이 그것을 예견 한 제러미 리프킨은 "미래는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다. 모호하 고 다양하고, 재미와 유머를 추구하고, 어수선하고 너그러우며, 절충을 중요하게 여기고 권위를 우습게 여기며, 이데올로기나 만고불변의 진리나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되는 철칙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고, 그 대신 그 자리에서 온갖 유형의 공연이 펼쳐 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어느새 그 '새로운 시 대'를 살아가고 있다.

- 요즘 우린 어디서든지 일등만 주장하는 것을 자주 본다. 많은 사람이 일등을 하기 위해 때로는 무모함도 불사한다. 그러나 만약 세상에 하늘만 있고 땅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일 등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덕도 필요하다. 그것이 곤괘가 상징하는 리더십이다. 그런 점에서 곤괘는 리더가 갖춰야 할 처 신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그중에서도 곤괘 초육의 효사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履霜堅"라는 구절은 리더가 어떻게 행동을 삼가야 하는지에 대한 최고의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 곤괘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이기도 한 이 효사에는 일단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자연현상으로 보면 앞으로 다가올 혹독한 추위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괘는 계절로는 음력 10월을 상징한다. 이달을 기점으로 겨울이 깊어진다. 입동, 소설, 대설을 거쳐 동 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땅의 성격으로 볼 수도 있다. 얼핏 얇아 보이는 땅도 그 속을 파보면 깊다. 우리는 아직도 지구 안에 무엇이 있 는지 다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리더는 작은 것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 사사로운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아야 하며 가능한 한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고 애써야 한다.

- 공자는 문언전에서 이 효사에 대해서 다음처럼 언급하고 있다.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악행을 쌓은 집은 반 드시 남은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며 자식이 그 아비 를 죽임이 하루아침 하룻저녁의 연고가 아니다. 그로 말미암은 것 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분별할 것을 일찍 분별치 못했기 때문이 다. 역에서 말하길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라고 하는 것은 대개 삼감을 이른다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 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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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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