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의 힘

인문 2023. 9. 20. 11:57

- 메타인지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하는 능력으로, 지 각의 저울이나 계기판, 나침반 기능을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잘 못 알고 있거나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은 일종의 인지 실패 를 의미한다. 무지와 직면하게 되는 인지적 실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메타인지 능력의 방향이 결정된다.
- 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대상이 물건일 때 사람들은 열정을 다해 업데이트한다. 그러나 대상이 지식이나 견해일 때는 기존의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토플러가 일깨운 것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21세기 에는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고unlearn 새로이 학 습하는releam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지만 이는 인지적·심리적 부담 이 큰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는 지식과 사회 환경을 외면하 고 과거의 지식에 머물러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지식정보 사회에 서 변화의 폭과 속도는 인간 본능과 인지적 구두쇠 성향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점점 커져갈 따름이다. 지식정보 사회에서는 새로운 상 황에 적응하는 태도와 능력을 지녔는지에 따라 개인 간, 집단 간격 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 독일의 과학 저술가 크리스티아네 취른트는 모든 실패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패의 결과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꿔버린다." 취른트는 '실패'가 모 든 사람에게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근대 이후 시민권이 확립되면서 부터라고 말한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오로지 영웅만이 '실패의 특 권'을 지녔다. 관객은 영웅인 주인공이 몰락하며 실패하는 것을 지 켜볼 따름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와 같은 메타인지, 자아성찰과 직결되는 질문은 그러한 결정권과 책임을 지닌 영웅에게만 허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에세》를 통 해 자신을 향한 성찰과 글쓰기를 개척하며 근대적 인간상을 만들어 낸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 또한 실패를 자기인식의 수단으로 파악했다.
- 실패는 인간에게만 허용된 세계이기도 하다. 본능대로 행동하는 동물은 실패할 일도 없고, 후회하거나 실패에서 배움을 얻을 수도 없다. 자유와 책임을 지닌 인간만이 선택을 하고 실패할 수 있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사람은 후회와 깨달음을 경험하고, 깊은 내면 을 돌아보게 된다. 난관과 실패가 불러온 내면으로의 침잠과 성찰 은 메타인지로 이어지는 경로가 된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2008년 하버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실패가 주는 이점'에 대해 말했다.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에 롤링은 이혼한 뒤 실업수당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가던 싱글맘 이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큰 실패자'였다고 고백했다. 출판사 열두 곳에 원고를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한 상태였다. 롤링 은 하버드대학 졸업생들에게 자신이 맛본 실패의 비밀을 들려줬다. “실패의 이점은 실패가 비본질적인 것을 모조리 벗겨내는 걸 의 미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다 른 존재인 척하지 않았고 나에게 중요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졌습니다. 내가 품었던 가장 큰 두려 움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뒤였으니까요. 실패는 내가 시험들을 성공적으로 통과했을 때는 한 번도 얻지 못했던 내적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고통스럽게 얻긴 했지만, 그런 깨달음은 진정한 선물입니다. "
- 제17대 미국 연방대법원장을 지낸 존 로버츠 대법관은 2017년 6월 뉴햄프셔의 한 중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실패와 불운이 가져오 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학교는 주로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 는 명문 사립학교로 로버츠 대법원장의 아들도 재학 중이었다. "나는 때때로 여러분이 부당하게 대우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의의 가치를 알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배신으로 고통받기를 바랍니다. 신의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안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가끔 외로워지길 바랍니다. 그래야 친구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에게 이따금 불행이 찾아오기 바랍니다. 그래야 인생에서 기회의 역할을 알게 되고 여러 분의 성공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의 실패 역시 당연한 것 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는 자유를 지닌 인간이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제다. 실패를 어떻게 다루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의 방향이 달라진다. 실패는 메타인지를 불붙이는 불씨다.
- 해리슨은 독학으로 40년간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1759년 '크로노미터 H4'라는 정교한 해상 시계를 이용한 경도 측정에 성공 했다. 경도가 시간의 경계인 만큼, 항해에서 경도를 측정하려면 두 지점의 정확한 시각을 알아내고 그 차이를 지리적 거리로 환산하면 된다. 현재 배가 위치한 곳의 시각과 출항한 항구(모항)의 시각을 파 악해 비교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배가 바다 어느 곳에 있더 라도, 그리고 선상의 조건이 어떠하더라도 정확한 시각을 표시해주 는 시계가 필요했다. 이는 곧 거센 파도와 침수, 급변하는 온도, 높 은 습도와 염분, 흔들림이 끝없이 이어지는 장기간 항해 속에서도 오차가 거의 없는 정밀시계를 개발하는 작업이었다. 당시 시계는 시계추가 왕복운동을 하며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는 방식이었는데, 이런 시계추 달린 시계는 바다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해리슨은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시계추를 없애고 정밀 한 태엽을 이용한 혁신적 구조의 시계를 제작했다. '크로노미터 H4' 는 경도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했고, 마침내 해리슨은 경도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더불어 영국은 해상 경도 측정법을 최초 로 손에 넣은 국가가 됐다.

- 길 찾기 능력은 길을 잃어버린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절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을 잃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라며 길을 잃는 경험이 자신을 발견하는 출발 지점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산업화로 급속하게 팽창하는 도시를 떠나 월 든 호숫가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2년여 동안 자립 생활을 했다. “삶 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 주하면서 삶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삶의 본질 적인 모습을 만나게 해준 소로의 오두막살이에는 '숲에서 길 잃기' 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고전이 된 에세이 《월든》에서 길 잃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삶 에서 길을 찾는 일과 자연에서 길을 찾는 일과 의미에서 길을 찾는 일이 다 같은 일이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보금자리와 무리로 부터 떨어져 있는 상황은 그때까지 깊이 생각하거나 걱정해본 적이 없던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실존적 경험이다. '나는 어떻 게 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내가 있는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끝내 길을 찾지 못하고 산속에서 밤을 맞게 될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몸은 낯선 숲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어쩌 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나는 어디에서부터 길을 벗어난 것 일까?' 모두 자신을 향한 물음이자 메타인지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길을 잃고 나서 스스로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소로와 솔닛이 길 잃기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한 까닭을 알게 된다.
- 우리는 풍요로운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지만, 우리의 사고와 감 정, 행동을 결정하는 뇌는 식량과 정보가 부족했던 수만 년 전 구석 기 환경에 알맞게 설계되어 있다. 하버드대학의 사회생물학자 에드 워드 윌슨은 "인류의 진짜 문제는 인간 정서는 구석기시대에, 제도 는 중세에 머물러 있는데 기술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다. 그 기술은 황홀할 정도로 위험하고 현재 전면적 위기의 문턱에 다가가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부분의 순간 우리는 본능과 직관의 지배를 받는데, 스스로를 이성적 존재라고 과신하는 데서 거대한 착각이 생겨난다. 한발 물러나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비로 소 자신이 무엇의 영향을 받는지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메타인지 능 력이다. 메타인지는 저절로 갖게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윌리스가 예로 든 이야기처럼 물속에 살면서도 물을 알지 못하는 물고기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다.
- 뇌의 '인지적 구두쇠' 성향 못지않게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요인이 또 있다. 우리의 뇌는 인지적으로 불편함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정보나사실이 기존의 신념이 나 가치와 충돌해서 긴장과 불편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면 뇌는 아 예 해당 정보를 외면하거나 스스로를 속이려고 한다. '인지부조화 회피' 심리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는 알면서도 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자 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되면 이성을 동원해 객관적이고 합리적 인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를 속여 기존 신념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왜곡해 받아들인다. 신념과 행동이 충돌할 때 우 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가서 이미 저지른 행동을 취소 할 수 없으므로, 행동과 일치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프랑스의 인지신경학자 알베르 무케베르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생명체의 항상성 유지 노력으로 설명한다. 모든 생명체는 최상의 운동 기능과 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성이라고 불리는 내부 균형 상태를 이루려고 하는데, 인간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달 리기나 더위로 체온이 높아지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몸을 떨어 체 온을 유지하는 것도 신체 항상성의 기능이다. 뇌에서도 비슷한 일 이 일어난다. 무케베르는 "만약 어떤 정보가 당신의 기호, 신념, 믿 음, 행동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항상성이 깨진 긴장 상태'를 느끼게 된다"라며, 이 상태를 인지부조화로 설명했다."
인지부조화는 미네소타대학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알려진 심리학의 주요 개념이다. 페스팅거는 1950년대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는 집단을 참여관찰하는 흥미로 운 실험을 진행했다. 종말론 신자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지구 종말 의 순간이 왔을 때 예언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 시카고에 살던 가정주부 도러시 마틴은 "1954년 12월 21일에 대 홍수가 나서 지구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전 파하며 '구도자들 The Seekers' 이라는 종교집단을 이끌었다. "그녀는 대홍수가 일어나 북극에서 칠레에 이르는 서부 해안을 집어삼킬 것 이며, 종말의 순간 직전에 외계인이 UFO를 보내 예언을 믿는 소수 의 사람들만을 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접한 페스팅거와 조교들은 신자로 위장해 그 집단에 잠입했다. 오늘날과 같은 연구 윤리가 확립되기 이전이라 가능한 방법 이었다. 종말론을 신봉하는 수십 명의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 을 파는 등 신변을 정리한 뒤 종말론을 전파하는 활동에 적극 나섰 다. 신자들은 '최후의 날'에 한자리에 모여서 외계인이 보낸 UFO를 기다렸지만, 홍수도 UFO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한 믿 음과 실제 세계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행 동했을까?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신도들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 다. 신도들은 예정된 시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잠시 심한 인 지부조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은 "너희 작은 집단이 기도를 통해 많은 빛을 퍼뜨렸기 때문에 신은 홍수를 연기했다. 너희들의 믿음이 세상을 파괴에서 구했다"라는 도러시 마틴의 새로운 메시지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예언이 틀렸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 지만 사람들은 기존의 믿음과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거꾸로 달라 진 현실에 맞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조정했다. 종말론 신자들은 오히려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이 어갔다.
페스팅거는 이후에도 인지부조화 실험을 계속했다. 1959년 대학 생들을 대상으로 다이얼 손잡이를 계속 바꾸게 하는 지루한 작업을 지시한 뒤 과제를 마치면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여학생에게 "그 과제가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하게 했다. 그런 다음 과제에 관한 느낌을 묻는 설문에 솔직하게 응답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학생들을 둘로 나눠 한 집단에게는 1달러씩을, 다른 집단에게는 20달러씩 을 수고비로 지급했다.
설문 결과 20달러를 받은 집단은 "지루했다"고 응답한 반면, 1달 러를 받은 집단은 "과제가 정말로 재미있었다"라고 응답했다. 똑같 이 지루한 일을 수행했지만 두 집단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20달 러라는 큰 보상을 받은 이들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1달러를 받은 사 람들은 대기실 여학생에게 설명한 대로 "정말로 과제가 재미있었 다"라고 응답했다. '고작 1달러를 받기 위해 그런 지루한 일을 했다' 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예 그 일이 재미있었다고 생각을 바꿔 버렸다는 게 페스팅거의 해석이다. 즉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행동과 조화시키는 쪽으로 인지를 왜곡한 것이다.

- 인간은 합리적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인지부조화를 회피하기 위한 합리화에 논리와 이성이 동원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지 왜곡에 의한 합리화는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 로 일어난다. 인지적 조화 혹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사람들은 상황 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솝우화 중 하나인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도 불편한 현실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합 리화하기 위해 생각을 바꾸는 얘기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대니 얼 길버트는 "우리는 사실을 조작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하고 그 결 과를 즐길 때는 의식적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무의식적으 로 사실을 조작하는 행위는 우리 뇌에 잘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욱 모르게 된 다. 이처럼 머릿속에서 인지적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일어나는 인 식의 조작을 알아차리려면 메타인지 능력이 필요하다.
- 합리적 사고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성이 일종의 임시 가설 물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성은 사고와 행동체계를 통제하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행운의 부산물에 가깝다. 생명체의 진화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설 계도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되지 않는다.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생명체의 진 화는 기계 설계나 작동 방식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인체는 직립보행을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진화 과정에서 양손 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직립보행을 하면서 척추가 전체 몸무게를 지탱하게 됐는데 이후 인류는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생명체 는 쓸모없어진 옛 구조를 폐기하고 새 기능과 구조를 만들어 넣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몸에는 꼬리뼈, 피부의 솜털, 사랑니, 맹장 충수처럼 진화 과정에서 용도를 잃어버린 흔적기 관들도 여럿 남아 있다. 인간은 기존 구조에 새로운 구조와 기능을 덕지덕지 붙이고 새 구조에 옛 구조를 제압할 수 있는 역량을 어느 정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진화의 산물이 완벽하거나 세 련되지 않더라도 작동하기만 하면 자연에서 살아남아 전승된다. 이 러한 진화의 불완전한 과정은 인간의 뇌와 사고체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 뉴욕대학의 심리학자 개리 마커스는 인간의 이성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그때그때 문제 를 해결해온 임시변통의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진화 과정에서 최 적화를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은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그 위에 덧붙이는 식으로 추가되었다. 특정한 상황에서 효과가 있지만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마커스는 이를 클루지kluge라고 불렀다.
클루지는 프로그래머와 기계공학자들이 주로 써오던 '임시 해결 책'을 일컫는 용어다. 본질적인 문제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재 설계해서 바로잡는 게 아니라 문제가 노출되지 않고 그럭저럭 피해 가도록 하는 대책을 의미한다. 임시변통, 땜질, 응급조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와 같은 대응 방법이다.
1970년 4월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13호가 달 착륙을 목표로 발사 되었다. 그런데 비행 사흘째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 다. 이 때문에 세 명의 우주 비행사는 이산화탄소에 중독될 절체절 명의 위기에 처했다. 이산화탄소 제거 필터를 가동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사령선에 있는 사각형 필터가 달 착륙선의 원통형 기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선 안에서 사용 가능한 모든 물품을 갖고 밤새 실험해 양말, 테이프, 비닐봉지, 마분지 상자 등을 이용해 임시 여과장치를 만들었다. 투박하지만 임시방편을 찾아낸 덕에 세 명의 우주비행사는 지구로 무사히 귀환 할 수 있었다. 위대한 클루지의 사례다.
- 인간의 뇌는 위의 프로그램 수정 사례처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을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 클루지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이런 까닭에 나중에 생긴 능력인 이성(시스템 2)이 뇌의 기본적 구조인 본능과 직관(시스템1)을 강력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성의 힘을 믿고 편견 과 미신을 추방하면 자연스럽게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 이성의 특징을 잘못 이해하는 정도 가 아니라 과신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성은 본능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그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게 진정한 과제이자, 메타인지의 출발점이다.

- 가장 효과적인 배움은 무지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벤저민 프랭클 린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배우려 하지 않는 게 부끄러운 일 이다"라고 말했다. 무지가 아니라 무지한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 인지적 게으름과 오만이 문제다. 오만은 무지와 확신의 결합이 다. 그래서 메타인지 능력을 높이려면 지적 오만에서 벗어나 겸허 하고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다.
- 메타인지는 본능적인 생존 능력이 아니라 나중에 발달한 고등 인지 능력이다. 앞서의 실험들이 보여주듯, 메타인지 능력 이 부족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각과 사고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사고의 작동 과 그로 인한 영향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인지적 부담을 느낀다. 또한 특정한 사안에 대해 모른다는 자각은 잠재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심리적 불안과 무기력을 야기할 수 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이유다. 무지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류는 다양한 설명 체계와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의존해왔다. 오랫동안 공동체에서 전승되어온 신화와 설화, 그 리고 관습과 종교가 그 기능을 했고, 오늘날에는 사회제도와 과학 그리고 인터넷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 속 성으로, 인체도 신체적·정신적 항상성을 추구한다. 뇌가 불안을 회 피하고 안정과 낙관을 유지하려는 것도 항상성 유지 활동이다. 무 지 상태가 주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뇌는 속임수도 동원한다. 무지 를 인정하지 않고, 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생명체의 항상 성 유지 차원에서 보면 자신을 속이는 행위는 심리적 불안을 없애 주는 이점이 있다. 자기합리화, 즉 '정신승리'에 능한 사람은 사실 인식으로 인한 긴장과 불안 상태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무엇보다 심리적 평온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확실성 추구가 의미 추구를 가로막는다고 보았다. 그는 불확실성이야말 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추진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보았 다." 복잡한 문제를 만났을 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인지 적 종결 욕구를 억누르고 대신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존하려는 인지적 태도는 과학적 인식과 풍부한 상상력의 원동력 이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불멸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설명이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 황과 갈등을 생생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해낸 문학적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각 등장인물이 내면 깊은 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인 간과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과, 결론 없이 열려 있는 이야기 의 전개 구조야말로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적 특징이 자 탁월함이다.
19세기 초반에 짧은 생을 살다 간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 (1795~1821)는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셰익스피어가 이룬 위대 한 성취의 비결은 '부정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이라고 썼다. 키츠는 부정적 수용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학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능력, 특히 셰익스피 어가 풍부하게 지녔던 이 특징을 나는 '부정적 수용력'이라고 부르 겠어. 사실과 이성을 추구하려고 안달복달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 터리, 의심을 품은 채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거지."
키츠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불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으며 의심 스러운 상황에서 성급하게 사실과 설명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대신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결론을 향해서 바로 달려가지 않고 불확실성을 수용한다. 그 결과 주인공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펼쳐나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등장 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이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파멸로 몰 고 가는 오셀로, 충직한 왕의 신하였으나 마녀들의 말을 믿고 야심에 사로잡혀 살인 반역자와 폭군으로 변해가는 맥베스, 왕위의 화려함과 번드르르한 아첨에 취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거듭되는 배신으로 파멸하면서 회오에 빠지는 리어왕, 왕실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복수 속에서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한 근원적 고민과 갈등에 빠지는 햄릿. 이들은 모두 피할 길 없는 인생의 모순과 비극의 심연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셰익스피어의 상상력은 전형적인 인물과 극적인 줄거리를 만들 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상황과 성격의 영향을 받지만 결코 그 환경에 사로잡히거나 머무 르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모호하고 미스터리한 현실 속에 등장인 물들을 풀어놓았고, 그들의 선택과 운명이 어느 방향으로 치닫다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독자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셰익스피어는 작 중 인물이 된 것처럼 각자가 처한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마음속을 자유롭게 오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400년 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그의 작품과 작 중 인물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사랑받으며 다양한 형식으로 리메이크되는 불멸의 생명력을 지니게 됐다.

-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은 지식과 정보의 홍수를 불러왔다. '정보홍수'는 인간의 인지적 본능과 정보의 본질적 가치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첫째, '인지 과부하'로 인한 부작용이다.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세 상은 편리하고 유익한 환경이자 현대의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사실 개인과 사회는 정보홍수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정보홍수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고,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 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최근 몇십 년을 빼고 정보는 항상 희소한 자원이었다. 정보가 희소한 환경에서 남보다 먼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능력이었다. 호수 어느 곳에 물고기 가 많은지, 맹수가 어디에 자주 출몰하는지를 남보다 먼저 아는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했고, 인간은 더 많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뇌에서 쾌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 어졌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연구진의 2019년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코카인을 흡입할 때와 동일한 신경회로가 활 성화된다고 한다. 둘 다 도파민의 분비를 유발한다. 우리가 천둥소리에 놀라고 스마트폰 알람에 저절로 눈과 손이 가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우리 뇌의 신경이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정보가 희소한 상황을 살아오면서 더 많은 정 보를 추구하는 쪽으로 적응해, 반사적으로 뇌가 새로운 정보에 반 응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정보가 넘쳐나게 된 상황은 인간 본 능 측면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여전히 새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문제는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중요하 지 않지만 자극적인 정보에 주의력과 시간을 할당하게 되어 지적 능력이 고갈되거나 접촉하는 정보에 의해 생각이 좌우되는 병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둘째, 정보홍수는 개별 정보 및 지식의 가치와 쓸모를 지극히 짧 고 일시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복잡계 물리학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사회에 서 지식과 정보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단축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대륙의 숫자', '태양계 행성의 수', '컴퓨터의 평균 작동 속도' 등 우 리가 접하는 지식은 대부분 불변의 절대 지식이 아니다. 시간에 따 라 변화하는 가변적 지식이다. 가변적 지식은 신선식품처럼 유효기 간이 있는데, 디지털 인터넷 환경에서 정보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브스만은 지식의 유효기간 또한 방사능 물질처럼 '반감기가 계속 짧아지는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지식 생산과 유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지식의 유효기 간이 단축되면 인간의 한정된 주의력과 인지 능력이 그 변화를 따 라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점점 단축되는 환 경에서 '가변적 지식'을 '지식의 반감기 개념만으로는 충분히 설명 할 수 없다. 마치 '현재 한국의 총인구'처럼 지식으로 확립되자마자 부정확해져 이내 업데이트 대상이 되어버리는, '유동지식動知 현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 디지털 정보 폭발은 빅데이터 환경으로 이어졌다. 빅데이터는 규 모가 방대해 사람이 인지하거나 다룰 수 없고, 기계와 알고리즘에 의한 처리가 불가피하다. 지식의 폭발적 증가와 유효기간 단축은 미래의 변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은 방대한 규모의 정보가 생산돼 변 화가 빨라지고 광범위해지면서 복잡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갈수록 복잡도와 예측 불가능성은 커진다.
-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의 충격》에 서 오늘날을 "현재라는 순간을 향해 모든 게 재배열된 상태"라고 규 정했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방금 발생한 '찰나적 사 건'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가 외부에서 쉴 새 없이 주어 진다. TV를 시청할 때도 현재 날씨, 도로교통 정보, 금융시장 등락 과 같은 '긴급 속보 자막이 수시로 지나간다. 스마트폰으로는 미세 먼지 경보, 감염병 환자 발생 정보를 비롯해 마감 할인 상품, 이메일 도착과 소셜미디어 댓글 등 방금 발생한 일들이 '알림'의 형태로 깜 빡거리며 "즉각 대응하라"고 압박한다. 러시코프는 "이런 방해물들은 단순히 우리 인지 능력을 소진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 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따라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현재로부터 이 탈된다는 느낌을 우리 안에 심어 넣는다. 데이터 흐름의 변화에 뒤 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비상한 노력은 결국 그 변화가 보내는 신호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훨씬 과대평가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에 대한 정보가 눈앞에 제공되면 우리 뇌는 굶주린 동물이 먹잇감을 만난 것처럼 무조건 덤벼든다. 기술의 강력함은 점점 더 기다림을 없애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즉시 그 결과를 제공한다.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보다 눈앞의 욕구 충족 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본성이다. 당장의 쾌 락과 고통은 상상할 필요 없이 너무 생생하지만, 멀리 있는 미래의 이익과 손실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에서는 대 부분의 사람이 미래의 고통을 현재의 쾌락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다. 높은 이자의 장기 할부, 월부 판매, 신용카드 결제 등이 '현재가 치선호 편향'을 활용한 상품들이다.
-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정보기술 기업들이 알고 리즘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용시간 연장을 통한 기업 이윤의 극대화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현재 거대 IT 기업 입장에서는 클릭과 중독을 유발하는 알고 리즘을 만드는 것 이외의 일을 할 동기가 없다"라고 말했다." 무한 정보 세상에서 알고리즘이라는 도구 없이는 항해가 불가능하지만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위한 나침반이 아니다. 알고리즘의 지향점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이윤 극대화이고, 이는 정보화 세상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을 연구하고 구글에서 디자인 윤리학자로 일해온 트리스탄 해리스는 이용자들의 주의력을 붙잡기 위한 인터넷 서비스의 비윤리적 디자인을 지적해왔다. 그는 구글을 떠나 2018년에 비영리단체 '인도적 기술 센터Center for Humane Technology를 설립했다. 해리스는 뉴스피드 · 이메일 등의 서비스가 카지노 슬롯 머신과 비슷하게 디자인됐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메일이나 콘텐 츠를 확인하기 위해 조작 버튼 없이 화면을 아래로 밀어서 갱신하 는 기능과 무한 스크롤 기능은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겼다 놓으면서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동작을 모방한 것이라고 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면 겨울이 오듯 우리는 자연에서 직관적인 정지신호가 명확하게 주어지는 활동을 통해 세계에 대한 감각과 인 지를 발달시켜왔다. 오늘날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에게 들이미는 설득형 기술들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감각과 인지에 혼란을 가져오도록 만든다. 스콧 갤러웨이도 무한 스크롤의 인터넷 서비스가 중 단 없는 이용을 요구하는 카지노 설계를 닮았다고 말한다. 갤러웨 이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은 정지신호를 없애버렸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다음 도박 테이블로 이동할 수 있 도록 실내에 모서리진 부분을 만들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연속적 인 공간으로 꾸며놓은 카지노와 비슷하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존 재하는 가장 정교한 소프트웨어는 이용자가 사이트를 떠나지 못하 게 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25, 세상에서 가장 똑똑 한 사람들은 우리의 주의력을 최대한 빼앗으려는 의도로 스마트폰과 앱들을 설계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증언과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교묘한 속임수 장치와 기만적 설계로 이용자들의 주의력과 시간을 노리는 마케팅인 '다크 패턴dark pattern'과 같은 설득형 기술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사회적 차 원의 노력과 함께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시도도 필수적이다." 기술 기업이 이용자의 주의력을 빼앗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나의 주의 력을 되찾기 위한 실질적 동기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손해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용자로서 나의 목표와 이익은 대개 주의력 사업가의 목표와 상충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뉴욕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실이 우리의 가치와 충돌할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무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생각과 지식을 가진 사 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다양한 견해를 접하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토론과 소통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경제적 체제로 기능하는 배경이다. 그런데 인터넷 환경에서 사람은 자기 생각과 반대되거나 충돌하는 견해 및 지식으로부터 자신을 방 어하기가 더 쉬워졌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사람들에겐 상호작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갖고도 뉴스 사일로 속을 살아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보기술은 필터링과 추천을 통해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소셜미디어에 서 개인은 친구 맺기와 삭제, '좋아요'를 통해 정보를 거르고 편집한 다. 이러한 정보기술의 알고리즘과 플랫폼, 그리고 이용자들의 선 택 편향은 모두에게 자신만의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가상세계 안에 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문가는 아주 좁은 범위에서 일어날 법한 실수란 실수는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하이젠베르크 또한 "전문가 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들과 그 실 수를 피하는 법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한계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직면하고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 닫는 것이지만, 동시에 이는 부단한 시도를 통해 해당 분야의 최전 선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능한 모든 실수를 경험한 사 람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전 문가다.
-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라는 것은 선택하는 능력이 우리가 환경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강력한 도구임을 알려준다. 현명한 선택은 어떻게 가능한 가? 스워스모어대학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 과부하로 인한 문제를 연구하며 현명한 선택의 조건을 모색했다.'
슈워츠에 따르면, 선택 과잉 상황은 세 가지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온다. 
첫째, 의사결정에 더 많은 인지적 자원과 노력이 요구된다. 
둘째, 고를 게 많으므로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선택할 게 몇 개 없으면 그중 하나가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만 족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으면 어딘가에 더 나은 답안이 있 을 것 같고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 해 슈워츠는 현명한 선택을 위한 첫걸음은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적당히 만족스 러운 선택'을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최고의 선택을 추구하다 보면 끝없이 모색하고 비교하느라 인지적 노력을 과도하게 투입하게 되 고, 결국 웬만해서는 선택 결과에 만족할 수 없다. 선택의 횡포에 시 달리게 되는 상황이다. 슈워츠는 선택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고의 만족' 대신 '적당한 만족'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 《월든》에는 자유의 본질에 대한 역설적 통찰이 담겨 있다. 소로는 "우리 읍내에 사는 젊은이들이 농장과 집, 헛간과 가축, 농기구를 물려받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것들은 얻기는 수월해도 버리 기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1~2세기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그것이 무엇 이든 간에 그것을 얻거나 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바로 그것 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다." 에픽테토스의 관점으로 보면 현대인은 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버릴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 소유물의 주인이 아니다.
- 청빈한 구도자로 살며 진정한 자유로움을 설파하고 실천한 법정 스님은 에세이집 《무소유》에서 진정한 자유와 소유 여부를 판별하 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 는 말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다"라 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소유와 무소유의 기준은 물리적인 점유여 부가 아니다. 그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냐"가 기준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는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좀 더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라는 역설을 다시금 일깨웠다.
- 개인의 의지력은 성격적 특성이라기보다 일종의 근육처럼 작동한다는 게 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다. 근육을 장시간 사용하면 피로 가 쌓여 어느 순간 한계에 부닥치는 것처럼 의지력은 금세 고갈되 는 유한한 자원이다. 의지력은 굳센 각오와 결심에 의해 생기고 유 지되는 게 아니라 유한한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의지력을 대 하는 관점도 달라진다. '하면 된다'라는 태도로 무작정 '정신승리' 에 호소하기보다 좀 더 신중하고 절제하며 의지력을 발휘하게 된다. 불필요하게 의지력을 고갈시키는 수고를 하기보다 처음부터 굳이 의지력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은 의지력이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굳이 엄청난 의지력을 발동시킬 필요가 없도록 주변 환경을 잘 설정해놓은 경우가 많다.' 5장에서 소개한 마시멜로 실험에서도 마시멜로를 먹고 싶은 욕망에 의지력으로 맞서는 것보다 마시멜로에 뚜껑을 덮어놓거나 눈에 띄지 않게 치우는 게 효과적이라는 게 확인됐다. 자신이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를 자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메타인지를 갖추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인 접근과 통제가 가능해진다.
- 최신 과학 연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얼마나 다양하고 심각한 편향과 인지적 오류에 빠지곤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뛰어들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다양한 선천적 편향과 인지적 오류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사고와 판단에서 그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력을 구현할 수 있는 존엄하고 강력한 존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나의 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힘의 존재와 위력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대응책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메타인지의 첫걸음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힘을 인정하는 것이다.
-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 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바로 죽음이다. 스티브 잡스 는 2005년에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인생의 가장 위대한 발명은 죽음"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결코 피 해갈 수 없는 사건이다. 죽음에 직면해서는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 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별것 아닌 게 되고 진실로 중요 한 것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잡스는 말했다. 삶을 관조하며 정념과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상태인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한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 도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행운이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종교와 인생관의 출발점도 죽음에 대한 사색이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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