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행복할 것인가

인문 2023. 9. 15. 07:14

-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려고 운명이 가혹하게 그들을 채찍질하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바람이 세차게 흔들 때 비로소 나무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 바람의 흔듦은 나무를 안으로 조이고 그 뿌리를 더욱 깊숙이 땅에 내리게 한다." 세네카
- "마음이 항상 바람직한 길을 걷고, 스스로 만족하며, 있는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 세네카
- "그대는 자신을 신뢰하고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사방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의 무수한 발자취를 따라가며 흔들리지 말고." - 세네카
- 고대 사회의 링구아 프랑카 lingua franca (서로 다른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려고 공통으로 사용하는 제3의 언어-옮 긴이)이자 문화 언어는 그리스어였다. 그리스 사회의 사상은 세 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다른 문화와 국가들과 이루어진 활발 한 교류와 접촉은 그리스의 문화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현상 속에서 그리스의 문화와 상업 권력은 그 시대의 가장 자유롭고 존경받는 문명 중 하나로 발 전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4대 철학 학파가 그 시대에 등장 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1. 소크라테스가 사망한 후, 플라톤은 기원전 387년 아테네에 자신의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2. 플라톤의 가장 유명한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4년 페리파토스에서 연구와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 
3. 기원전 306년경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교외에 유명 한정원(그리스어로 케포스)을 개장했다.
4. 기원전 300년경 스토아학파는 '울긋불긋한 강당'이라는 뜻의 '스토아 포이킬레'에 처음 등장한다. 이 학파의 이름은 강당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스토아'는 그리스어로 '기 둥이 있는 강당'을 의미한다.
- 스토아의 창시자인 키티온의 제논(기원전 333~기원전 261년)은 2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그중 한 권도 전해지지 않는다. 따 라서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 만 관련하여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는 당시의 그리스 사회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유명한 일화에 의하면 제논은 항해 중에 난파당하여 전 재산을 잃고 철학에 투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애초에 아테네로 여행을 간 이유는 다른 동시대인들과 마 찬가지로 그리스 교육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쓴 저서 중 하나인 《국가》에서 그는 당대의 사회적 관 습에 대해 급진적인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유토피아를 묘사한 이 책에서 그는 이상적 국가에 대한 생각을 제시하고 돈과 결혼식, 사원과 학교, 성별에 따라 구분되는 옷 차림을 폐지할 것을 호소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제논이 자신 의 세대에서도 자유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인 엘리트에 속했다 고 추측할 수 있다. 초기부터 스토아학파는 세계주의 사상을 업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옹호해왔다. 다른 대부분의 철학 학 파들과 마찬가지로 스토아학파는 여성과 노예에게도 우호적 인 입장을 취했다.
- "자신의 본성이 지닌 힘에 눈을 돌려 고고한 태도에 맞서고, 매우 강인한 영혼을 품은 사람이 실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획을 대담하게 구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 세네카
- 로마 역사에서 스토아 철학과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두 가지 종말점을 의미한다. 우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에 축복받은 전성기를 가져다준 소위 '5명의 선량한 황제' 중 마지막 황제다. 반면 그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코모두 스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것처럼 잔인함과 폭정, 독재의 상징이 되었다. 게다가 스토아의 위대하고 활동적인 마지막 대표자 중 한 명인 마크쿠스 아우렐 리우스도 세상을 떠나면서, 500년 이상 지속된 전통은 끝났고 서구의 운명은 기독교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스토아 사상의 영향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죽 음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스토아주의가 지난 1,800년 동안 철 학계 내부의 조언자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원래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은 크게 세 가지였다. 올바른 세계 관(자연철학), 참된 판단(논리학), 올바른 행동(윤리학)이 바 로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이 우주란 무엇인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위치와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를 깨닫는 '자각'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연결된다. 배경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결된다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생각이 있다. 이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이성은 모든 것에 스며드는 물리적 힘이다.
- "우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삶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우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당신이라는 존재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이 자연 전체, 오로지 찰나의 작은 부분만 당신에게 주어지는 시간 전체, 그리고 당신의 것이라고는 그저 극히 일부에 불과한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당신의 삶, 당신의 상황, 당신의 내면에 대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지 마라. 종종 큰 그림을 보는 시 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탐구하려고 노 력하고,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계속 상기해야 한다. 자신 또한 이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자연 속을 산책하고 낯선 사람들과 몇 마디라도 친근한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당신의 삶에 지식과 경험을 위한 공간을 만 들어보라. 수시로 명상을 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 나 휴식을 취해보라.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 고 모순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덧없는 자아에만 집중하지 마 라. 어차피 누구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으며, 자기 인식은 결코 완전하거나 최종적일 수 없다.
- "창조된 모든 것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생각해보고, 자연만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바꾼 다음 새로이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내일의 싹이 자라고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자기 인식의 요령
*자기 안의 이야기꾼을 믿지 마라. 완전한 자기 인식은 환상 이며, 축약된 자기 이미지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단순화와 눈가림에 능숙한 인간의 속성을 간파해야 하고, 당신 자신 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믿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 스토아적 의미의 자기 인식은 자 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나조차도 그 전체의 일부라는 진 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한 탐색은 큰 전 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자신을 뛰어넘어 성장하라. 자기 인식에 이르는 길은 자아상을 열어놓고 삶의 목적을 깨닫는 일을 통해 한층 선명해 진다. 이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다.
*어두운 면을 받아들여라. 자신에게 가는 길은 여러 오류와 성격적 단점이라는 길을 통과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솔직 하고 아낌없는 응시가 필요하다. 자신을 더 현실적으로 볼 수록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자신을 단련해온 사람은 한결같은 고요함과 심연에서 솟아나는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누리며, 결코 자신보다 위대한 무엇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세네카
- "모든 일을 원하는 대로 일어나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라고 소망한다면, 그대의 삶은 평온하게 흘러갈 것이다.” - 에픽테토스
-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의 머리를 두고 새 둥지와 같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수수하거나 화려한 깃털을 가진 크고 작은 온갖 종 류의 새들이 새 둥지 주위를 항상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부드럽게, 어떨 때는 큰 소리로 지저귀는 새소리에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머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플라톤 의 묘사에 따라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생 각과 내면적 불안이 빚어낸 동그라미의 모습이다.
이 새 둥지와 반대되는 이미지로 고대의 철학자 플라톤은 '영원의 고요한 바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것은 내면의 평 화와 정신적 평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에피쿠로스 는 '마음의 평화'를 모든 철학의 목표라고 선언했는데, 이 같은 이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 나쁜 소식을 먼저 전하자면 내면의 평화란 일단 성취하기만하면 영원히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 거나 클릭 한 번으로 찾아오는 내면의 평화 스위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 내면의 평화로 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모든 사람 에게 똑같이 작용하는 만병통치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내면의 불안은 우리가 받아들이건 말건 우리 삶 의 일부다. 세네카는 "언제나 행복하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한쪽 측면만을 아는 것을 의미 한다"라고 썼다. 마지막으로 이 '나쁜 소식'은 끊임없이 행복 해야 하고 내면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우 리를 놓아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스토아적 원칙으로 꼽고 싶은 것은 내 면의 평화와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휴식을 위한 휴식이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행복과 마 찬가지로 내면의 평화란 좋은 삶의 부산물일 뿐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좋은 삶이란 스토아 철학의 원칙에 따라 살며 삶의 모든 순간과 모든 영역에서 네 가지 중요한 덕목인 용기, 정의, 지혜, 평정을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그날까지 앉아서 무작정 명상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내면의 평화와 행복은 우리가 알맞은 조건을 만들어낼 때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내면의 평화는 역설적인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스토아 철학자들에 게 이는 우리와 항상 함께해야 하는 가장 높은 선이며 그것 없 이는 생각과 실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이를 얻 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삶의 환희와 즐거움은 우리가 내면의 평화와 평정을 습관으로 삼을 때 거둘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실 중 하나다.
- 아타락시아Ataraxia는 그리스어로 '마음의 평화'를 의미하며, '동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적절하게 스토아인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 이다. 이는 스토아 철학자들뿐 아니라 에피쿠로스도 전파 한 이상이다. 마음의 평화란 무엇보다도 괴로움 없이 자신 의 욕구나 감정을 지혜롭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테이아Apatheia는 '욕구에서 해방된 상태'를 의미하며, 욕구를 넘어서려는 스토아적 이상을 묘사한 표현이다. 아파테이아 상태에서 스토아 현자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신의 감정에 의심이 들 때는 돌아설 줄 안다. 파도를 맞이 하는 바위처럼 가장 험난한 조건에도 맞설 줄 안다. 이처럼 외부의 영향에 맞서 자신을 조절하는 모습이 때로는 무관심과 감정적 냉담함, 무심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 제로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로부터 내적 해방을 이루려는 태도이며, 그 안에서 온화함, 즐거움, 친근함이 수행과 일관 된 조절, 강한 에너지만큼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한다.
-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결정, 욕망과 혐오 등 우리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통제한다. 반면 우리의 몸이나 소유물, 명성, 지위 등 외부에서 생겨난 것들은 통제하지 못한다.” - 에픽테토스

- 세네카는 어린 시절부터 천식과 만성 기관지염을 앓았다. 특히 이로 인해 유리한 기후 조건에서 병을 고치기 위해 그는 이집 트에서 10년을 보냈다. 이후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 로마로 돌아 와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약한 폐로 인한 각종 증상은 평 생 세네카를 따라다녔고, 이는 또한 그의 생각과 글쓰기에 영 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호흡이 자유롭지 않을 때 우리는 답답함과 구속감을 느낀 다. 한두 번이라도 독감에 걸려본 사람이라면 호흡곤란 증세를 겪어보았을 것이다. 만약 이 상태가 오래가거나 평생 지속된다 면 우리는 자신의 유한성을 더 예민하게 느낄 것이다. 가령 세 네카는 천식 발작을 겪은 후에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 다. 이 경험은 그가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끊임 없이 사유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사유는 그의 가르침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 모든 스토아 철학자들이 성찰한 명제를 세네카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즉 우리의 신체는 우리의 통 제 밖에 있으며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라는 사실이 다. 그러므로 에픽테토스는 우리의 몸을 한시적으로 빌려 쓰는 것으로 간주하라고 조언했다.
물론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의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호흡운동이나 신체 단련을 통해 호흡을 편안하게 하고 건강을 향상할 수 있다. 또한 의식적인 동작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신경계나 유전적 성향, 타고난 신체적 약점 등을 생각해보라. 우리의 신진대사 능력이나 어린 시절의 병력,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것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가?
임신 중에 겪는 신체적 변화나 자녀의 외모와 성격 같은 것 은 말할 것도 없다. 삶의 많은 것들이 사실 우리 손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고(스토아학파에서 선 택사항으로 보는 자살은 예외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없으며, 자연재해나 유행병을 통제할 수도 없다.

- "분노의 가장 좋은 치료법은 유예다. 무조건 용서하라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우선 차분히 생각을 해보라.” 세네카

개에게 배울 점
두 마리의 개가 만나면, 보통 처음에는 극도로 천천히 다가 가며 서로에게 온통 관심을 집중한다. 속도를 늦추는 이 전략 은 무엇보다 상대 개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고 두 번째로 자신 의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다음번에 당신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허둥거린다는 느낌이 들면 일단 속도를 줄여보기 바란다. 얼마간 훨씬 느리게 행동 해보라. 하던 일을 계속하되 급속도로 속도를 줄여보라.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말해보라.
"나는 서두르지 않고 느림의 힘으로 내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 “다가올 모든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세네카

- 고통에 대한 기억의 결함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최고점 규칙'이라는 이론 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높거나 낮은 강 렬한 경험 혹은 경험의 끝만 기억한다. 우리가 휴가나 과거의 한정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우리의 머릿속에 주로 떠 오르는 것은 가장 강렬한 순간과 끝이다. 비행기에서 보낸 몇 시간보다는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마음속에 더 많이 남는 까닭이다.
한 연구에서 지원자들은 4분에서 70분 사이의 다양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치료 도중과 치료 후에, 참가자들은 검사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느껴졌는지를 진술했다. 결과 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는 거의 통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매우 심한 통증으로 끝난 5분간의 검사는 비교적 통증이 지속한 45분간의 검사 과정보다 훨씬 더 나쁜 기억으 로 평가되었다. 카너먼에 따르면, 이것은 최고점 규칙을 입증해 줄 뿐 아니라 행복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억 자체를 전혀 신뢰 할 수 없다는 추가 증거이기도 하다.
- 기억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전략은 심리적 충동에 직면하고 아름다운 결말과 강렬한 절정을 만들어내는 우 리의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을 기억 할 뿐 아니라 더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힘이 센 방법은 현재의 순간을 경험하는 데 보다 근본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매 순간이 경험하는 나의 정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특별한 하이라이트와 영광의 순간을 찾아 헤매는 굴레로부터 자유 로워질 수 있다.

- "어째서 그대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고 있는가? 시간을 들여서 유익한 것들을 배우고,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일은 멈춰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모든 노력이 목표를 향하도록 하고 그 목표를 명심하라.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세네카
- "우리가 대담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감히 시도하지 않는 한 그것은 도달 불가능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세네카

- 바츨라비크는 행복이라는 가치를 향한 삶의 목표 가 "천살 먹은 아내들의 이야기”와 같다고 말한다 (오래된 목표 이지만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옮긴이). 이어서 바츨 라비크는 풍부한 유머와 세심한 시각으로 우리가 어떻게 자체 적으로 불행을 만들어내는지를 명석하게 보여준다. 스토아학 파의 정신을 이어받아 바츨라비크는 우리가 느끼는 개인적인 불행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1. 일방적이고 어긋난 행복 추구
2. 최선의 지식과 믿음으로 스스로 불행을 창조해내는 우리의 기막힌 능력
- 자신의 욕구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이든, 완고한 비관주의든, 스스로 완성하고야 마는 부정적인 예언을 떠올리고 과거를 미화하는 것이든 이 세상에는 자신을 불행에 빠뜨 리는 방법이 수없이 많다.
《불행으로의 안내》는 우리가 어떤 실수를 피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불행 예방 안내서다. 이 책은 행복을 찾는 방법이 아 니라 불행을 피하는 법을 알려준다. 거기에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삶을 위한 부정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깊은 지혜가 깃들어 있다.
- 심지어 스토아학파도 행복에 대한 부정적 접근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좋은 삶이란 나쁜 것들을 피하는 삶이다. 다시 말해 불행의 원인을 피함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짜증이나 만성 스트레스, 질투와 반복되는 자기 비난, 우울한 기분이나 수면 부족, 부정적인 뉴스나 과도한 음주, 심각한 편견과 타인 과의 비교, 너무 높은 기대와 지나친 완벽주의, 나약한 자아와 타인의 인정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이런 부정적인 측면 중 에서 당신에게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 불행의 목록은 이외에도 끝없이 늘어날 수 있는데 이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지 구체적으로 짚어내는 것보다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지를 훨씬 더 잘 설명한다. 미니멀리즘의 깊은 지혜는 바로 이 배제의 원칙에 있다. 한 행복에서 다른 행복으로 서둘러 옮겨 다니는 대신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제거하 는 것이다. 어쨌든 스토아학파는 지나치게 열렬한 행복감에 대 해 회의적이었다. 세네카는 말했다.
"측정할 수 없는 모든 것은 해롭지만, 지나친 행복은 무엇 보다도 해롭다.”

- "처음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는 데 익숙해져라. 사용하지 않아서 힘이 약한 왼손도 오른손보다 고삐를 더 단단히 잡을 수 있다. 잡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변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라. 이를 위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반복해서 떠올려라.
"새로운 상태에 머무르는 것에 좋은 것이 없듯이, 상황이 변하는 것에 나쁜 것은 없다."
우리는 새롭게 닥치는 장애물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세네카는 말했다.
"지상에서 별로 이어지는 쉬운 길이란 없다."
-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므로 이를 삼가면 더 많은 여가와 내면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그 길이 옳은 길이라면 당신은 길의 한가운데서도 매일 자신이 얼마만큼 왔으며, 자연스러운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목표에 얼마나 더 가까워졌는지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세네카
- "당신이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불가능할 것이라 속단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적절한 일이라면 당신 또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2,000년 전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기 결정과 평등의 필요성을 요약했다.
"그대가 가진 명성과 돈 또는 지위를 믿지 말고, 그대 안의 내적인 힘을 믿어라.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믿어라. 그것만이 우리를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해주며 우리를 바닥에서 끌어올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과 같은 눈높이로 서 있게 한다."
- "나는 부가 좋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나쁜 것들 틈에 끼어 있는 그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편 그것이 유용하고 인생에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인정한다." 세네카
- "우주에서 가장 강한 힘을 존경하라. 그것은 모든 것을 사용하고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다. 하지만 그대 안에 있는 가장 강한 힘 또한 존경하라. 그대 안에 있는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며 그대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사람들은 시골의 들판과 바닷가, 산에서 고독을 찾는다. 하지만 이 갈망에서 솟아나는 풍경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그대는 원하는 만큼 자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의 영혼보다 더 고요하고 방해받지 않는 피난처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깊이 들어가라. 충분히 깊이 파고들면 결코 파괴되지 않는 선한 근원이 그대 안에 있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은 또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라서 불행한 사람 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자기 영혼의 충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내면의 욕구,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과 접촉하는 순간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깊은 고독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경험한다. 이 경험 속에는 깊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우 리가 본연의 모습과 자신의 성격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면 조화 로운 삶을 넘어서는 다른 무엇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스토 아 철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 자아의 가치를 강화하고 우리 안에 있는 '선'을 깨닫는 힘을 얻는 것이다. 비로소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단둘이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잘 부축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얼 마나 자신을 잘 지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가? 침묵 속에 들 어가보라. 가령 한 시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구체적 인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마라. 그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묵 묵히 견디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혹은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 이다. 그런 다음 매일 15분에서 20분 정도 이를 위한 시간을 비워둬라.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점차 내면의 고요함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 "외부의 도움 없이, 다른 사람 없이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영혼의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의 부축을 받지 않고도 똑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타인을 기쁘게 하려 하지 말고 내면의 신념을 따르자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그대가 바깥세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대의 원칙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판단이나 의견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짜증이 나 는 순간, 바로 그 느낌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타 인을 기쁘게 하려는 욕구에 굴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 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을수록, 역으로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할 때는 더 쉽게 실망하고 속상해하 고 상처받는다. 그러므로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요구하는 대신 어째서 자신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는지, 진정 자신이 제대로 된 기준을 세웠는지 자문해야 한다.
- 물론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첫 번째 이 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타인을 기쁘게 하 려는 욕망을 누르는 것을 내면의 확신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에 픽테토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기대하는 칭송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에서 철학자가 되기에 충분한 삶을 살 아야 한다. 그대가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스스로를 그렇 게 보고 만족하라.”
이 접근법은 상당히 강해 보이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일단 자신에게 존중을 보일 때 다른 사람의 존중이 필요한지를 판 단하기가 훨씬 쉬워지며 그다음에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존중 을 얻고 싶은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의견에 너무 사로잡히게 되면 타인 의 기준을 내면화하기 쉽다. 이는 혼자 있을 때조차 그 기준으 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상처 주는 말 을 들었을 때 그런 경향이 심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모욕하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의 평가 기준을 받아들이고 자신 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타인의 판단과 기대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이 필요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썼다.
"그대를 모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들이 그대에게 원하는 판단대로 그들을 평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라."

- 이는 단순히 어떤 모욕이나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분명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어떤 말이 우리에게 상처 가 되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불필 요하게 연장시키거나 고착시키는 일은 막아야 한다. 스토아 철 학자들은 타인의 의견이나 말, 판단으로부터 내면적 독립을 이 루는 것을 좋은 삶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보았다. 세네카는 말했다.
"그러므로 군중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 마지막으로 더 조용한 안식처로 물러나라.”

- "어쨌든 인간은 모든 외부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즐기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고, 타인에게서 가능한 한 멀어져서 자신에게 충실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분노하지 아니하며,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야 한다." - 세네카
- 스토아적 자기 연민은 세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1. 자신의 고통을 인정한다.
2. 모든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3. 자신을 자애롭게 대하고 사랑으로 돌본다.
- 고통을 받아들이자
"유능한 사람에게 적합한 것은 무엇인가? 운명에 직면하는 것이다."
세네카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외로움이나 슬픔, 수치심, 절 망, 혼자라는 두려움 같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감정들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따라붙기 마련이다. 우리의 운명과 불행을 받아들이라는 스토아 철학자의 말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슬픔을 배반하는 것보다 극복하는 것 이 낫다'고 세네카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에 썼다. 자기 연민은 고통스러운 감정과 경험을 인정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자기 최적화와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에 부정적 인 감정은 금기 사항이 되고 있다. 특히 외로움에 대한 감정이 그러한데 이는 우리가 현대 삶의 요구에 따르지 못한다는 확실 한 실패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 는 외로움이 아니라 철학자 오도 마쿼드가 말한 것처럼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이다. 외로움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 법은 다른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감정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인정하고 자신을 연민으로 대하며 관찰하는 것이다. 그럴 때 외로움은 긍정적인 고독으로 바뀔 수 있다.

- 유배 중에 세네카는 수많은 슬픔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는 슬픔을 억압하거나 슬픔에 짓눌리기보다는 자신의 비통한 삶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을 위로했다. 세네카는 이렇게 썼다. "징징거리지 말고 울어라.”
눈물은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통곡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건강에 유익하다. 슬픔을 치유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위로하고 이해하며 연민할 뿐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행동의 범위를 만들기도 한다. 세네카는 불의에 화를 내고 불 행을 한탄하는 대신 코르시카에서 자신의 열정을 추구했다. 즉 철학적인 글을 쓰고 스토아 철학의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 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연민으로 대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으로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세네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스스로를 대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세네카의 말대로라면 '자신에 게 만족하고 자신의 처지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만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경 험을 위한 최고의 예방법은 스스로를 위하고 자기 안에서 긍정 적인 요소들을 보는 것이다.

-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부끄러워하지 마라. 전장에서 병사가 성벽을 공격해야 하듯이 그대에게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 가 있다. 만약 그대가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요새를 습격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도움을 받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친절하고 자애롭게 바라 본다는 믿음직한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때로 자신을 스스 로 도우며 외부의 도움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통찰력은 고독을 잘 견디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영혼은 생각의 빛깔로 물들어간다”라고 말했다. 우리 의 지식은 또한 우리가 주변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에 영 향을 미친다. 이런 깨달음은 내가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 면서 얻은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기분까지도 바꿀 수 있다. 새로 운 관점으로 인해 나는 외로움을 덜 느꼈고, 더 개방적으로 변했으며, 내 주변 환경에 더 큰 호기심을 느꼈다. 내 고독의 질이 근본적으로 향상되었다.

- "당신을 위하는 친구의 마음은 얼마나 보배인가. 위험을 느끼지 않고 그에게 모든 비밀을 맡길 수 있고, 그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그의 말은 당신의 슬픔을 덜어주고, 그의 충고는 당신의 계획을 촉진하며, 그의 쾌활함은 당신의 우울을 쫓아내고,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힘을 낼 수 있다." - 세네카
- 에피쿠로스는 심지어 우정의 가치를 철학의 가치보다 위에 놓았다.
"고귀한 사람은 주로 철학과 우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전자 는 사라질 수 있는 미덕이며 후자는 불멸의 미덕이다."
실제로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 공 생의 가장 첫 번째이자 중요한 규칙이다. 우정에 대한 이 후한 평가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스토아인들이 외친 우정의 불 멸성에 대한 송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으니 말 이다.
"사랑은 왔다 가지만 우정은 지속된다."
- "헤카톤은 말했다. '마약이나 허브, 특별한 마법 없이 만들어진 사랑의 묘약을 알려주겠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을 줘라."  -세네카

- "운명이 묶어놓은 것에 적응하라. 그리고 운명이 그대에게 데려온 사람들도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운명은 누구에게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들이닥친다. 늘 무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운명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세네카

-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또 상황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세네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정신이 깃든 다음의 좌우명을 기억하라.
"앞으로는 그대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일에 대해 다음 원칙을 고수하라. 이 일은 불운이 아니라 오히려 품위 있게 대처할 기회를 주는 행운이다.”

- "그대가 모든 근심을 떨쳐버리겠다면, 반드시 일어날거라 두려워하는 일에 대해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악이 무엇이든 모든 측면에서 바라보고 그대의 두려움을 가늠해보라." - 세네카
- 스토아학파의 가장 잘 알려진 사색 훈련 중 하나는 '최악의 상황 예상하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때로 '사전 부검' 혹은 '부정적 시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네카는 이 명상을 장애 와 역경에 대한 정신적 예측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스토아인들은 이런 훈련을 통해 자신의 죽음이나 유배, 심각한 질병에 걸 릴 가능성, 가난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과 같은 부정적 가 능성을 다루었다. 에픽테토스는 조언했다.
"매일 죽음이나 유배 등 그대에게 끔찍한 괴로움을 주는 가능성들을 상상하라. 그렇게 하면 그대는 결코 불경스러운 생각을 하지도, 과도한 욕망을 품지도 못할 것이다."
- 사전 부검 훈련은 주어진 삶을 보다 감사하게 하고 두려움 을 최소화한다. 자신의 삶과 소중한 고향, 자유, 사랑하는 이들 혹은 건강을 상실하는 상상을 함으로써 그것들의 소중한 가치 와 중요성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공 포의 감정을 깊이 파고들어 두려움이 진정되고 그것에 익숙해 질 때까지 그 이미지를 반복한다. 세네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효과였다.
"따라서 현자는 미래의 불행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오래 참으면서 받아들이는 것을 오래 생각하면서 쉽 게 받아들인다."
이는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리 익숙해짐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불운이나 위기에 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 미에서 스토아식 사전 부검은 평정심을 위한 훈련이다. 최악의 시나리오 혹은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경우를 미리 상상하 는 것이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다가올 모든 것을 실제로 일어날 일처럼 예견함으로써 현자는 운명의 거센 힘을 약화할 수 있다."

- 부정적인 결과와 장애물, 자신의 한계를 탐색함으로써 비로소 긍정적인 전략을 설계할 수 있고, 실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을 하려는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 에픽테토스 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전제와 그 결과를 고려한 다음 일을 시작하라.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시작하더 라도 나중에 작은 어려움이라도 닥치면 불명예스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 "예상치 못한 장난에도 꿋꿋이 제 갈 길을 가려면 우리 삶에 필요한 기술은 춤보다는 검술에 가깝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스토아학파는 상상이나 시각화의 과정 외에 좌절을 예방 하는 매우 실용적인 수행법을 설계하기도 했다. 가령 빈곤에 대한 두려움을 예방하기 위한 접근법을 예로 들어보자. "그나 저나 영혼의 힘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라고 세네 카는 썼다.
“며칠 동안 가장 적은 양의 간단한 음식과 가장 거칠고 낡 은 옷으로만 만족하는 생활을 해보라. 그런 다음 자신에게 물 어보라. 이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인가?"
세네카는 호화스러운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딱딱한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잤다. 고기와 기름진 음식도 삼갔다. 당시 세네카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스페인과 이집트, 이탈리아에 여러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네로 황제의 후한 기부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런데도 그는 종종 마른 빵과 개밥 그릇에 담은 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의식적인 쾌락의 포기와 안락한 삶의 영역을 벗어나는 식이 요법은 스토아인들에게는 실용적인 수행법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스토아인이자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 었던 소카토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는 거리가 먼 자발적 불편 을 자청했다. 그는 덥고 비 오는 날씨에 종종 모자도 쓰지 않고 맨발로 거리를 거닐었다. 때로는 계급에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일부러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에 자신을 노출시키곤 했다. 스토아인들의 수행법에는 운명의 화살에 맞는 상황이나 질병이나 지위 상실, 유배나 수형과 같은 예외 상황에 대비하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수행법을 한 달에 며칠씩이라도 실천한다면 앞으로 닥쳐올 곤란을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 "곧 삶을 끝내야 할 때 인생을 시작하기란 너무 늦다. 쉰이나 예순 살이 될 때까지도 마치 결심을 미루듯 자신의 유한함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세네카

- "죽는 것은 우주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존재하면서 변화하고 우주의 구성요소가 되어 용해된다. 그러나 그 또한 변화하므로 불평할 일이 아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아무튼 우리 삶을 작동시키는 많은 것들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 바깥에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생 각하지 말고, 존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 아야 한다. 에픽테토스가 저서에 스토아 성자에 대해 쓴 말을 기억하라.
"한마디로 그는 교활한 적을 대하듯 자신을 경계하고 있 다.”
스토아학파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 든 일이 맹목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점을 깨우치는 일은 매우 유익하고 해방감을 줄 뿐 아니라 삶의 무상함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준다.

- 만약 당신이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를 겪거나, 어떤 일 혹은 누군가에게 화가 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 문제가 1 년 후에도 여전히 나에게 중요한가? 그런 다음 한 세기가 지 난 후의 당신의 삶과 당신 자신을 상상해보라. 솔직히 말해 보자. 당신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생각해보자.
"곧 당신은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고, 곧 모든 사람도 당신을 잊을 것이다."

- "그대에게 일어나는 일과 운명이 정하는 것만 사랑하라. 그보다 더 적절한 게 있겠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멋진 삶을 살기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시기란 결코 없다. "젊었을 때 철학하는 것을 주저하지도 말고, 나이 들어 철 학하는 것을 피곤해하지도 마라.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너 무 이른 때도 너무 늦은 때도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적 생각과 질문을 하기에 걸맞거나 어울리지 않는 나이란 없다. 철학, 특 히 스토아 철학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더 많은 평온함과 행복 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 삶을 사는 일에는 나이만이 무관한 것이 아니다. 하 루 중 어떤 시간인지도, 어떤 상황에서 철학을 하는지도 중요 하지 않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생에 지금처럼 철학을 하기에 적합한 상황이란 없다는 것을 나는 얼마나 분명하게 깨달았던가!"

-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므로 직업 생활에서나 사생활에서나 끊임없는 교정이나 조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교정의 기술에 대해 세네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이루어진 결정에 자신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속하지 않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눈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계획이나 상황을 바꾸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삶의 모든 순간이란 자신의 내적 태도를 외부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시간이므로, 그동안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한 의식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 삶을 평가절하하지 않기
좋은 삶과 완벽한 삶을 혼동한다면,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궁리할 위험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이미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잃기 쉽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을 평가절하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의 무가치함을 경험하게 된다. 완벽을 향한 내면의 충동이 자리를 차지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의 말을 떠올려보라.
"거기에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 있는 최고의 것을 떠올려보고 그것이 없다면 얼마나 아쉬울지를 생각해보라.”
- 아무리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며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자급자족하는 것을 배우더라도, 우리 모두의 삶에는 균열과 취약 점,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생은 항상 일직선으로만 이어지 지 않고, 상처 하나 없는 멋진 인생이란 것도 없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틈 속의 아름다움을 보라고 재촉한다.
"가령 빵을 굽다 보면 여기저기 균열이 생기는데 빵을 만드 는 목적과는 거리가 먼 그 틈새가 이상하게도 우리의 눈길을 끌며 빵의 맛을 증가시킨다. 무화과도 완전히 익으면 껍질이 터 진다. 또 완숙된 올리브의 썩기 직전의 상태는 고유한 향과 아 름다움을 풍긴다."

- 우리는 삶의 모든 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연과 외부 요인에 훨씬 더 많 이 의존한다. 이 통찰력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사실 모든 것 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삶이 불필요하게 어려워진다.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 자신과 자신의 삶에 이상적인 계획이란 없다. 완벽한 나와 완벽한 인생 계획에 대한 생각은 불만을 낳고 자신의 발전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역동적인 자아상이 운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의 평온을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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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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