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카페

인문 2023. 8. 22. 15:33

-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스스로 진리를 찾으려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한 체계, 정신, 방법, 철학적 문답의 한 형태이자 지적 기술이 며, 이 모두가 통합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에 있어 한 번도 '방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무엇 보다 소크라테스가 '실천하는 철학', 즉 행동으로서의 철학, 삶의 방 식으로서의 철학,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로서의 철학을 완전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질문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철학적 문답의 '열린 체계'이다.
소크라테스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프린스턴의 철학 교수인 그레고리 블라스토스 Gregory Vlastos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 '인류의 가 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유가 뭘까? 그에 따 르면,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으로 철학 탐구가 “모든 사람에게 개방 된 보통 사람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대화법은 특별한 철학적 견해, 분석 기술, 전문용어 등에 전념할 필요 없이 보통 사람의 상식과 일상용어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블라스토스 교수가 말했듯이, 이런 조건은 당연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의 문제는 모든 인간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 학자들은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엘렝코스elenchus 라고 하는데, 그리스어로 '정밀 조사' 또는 '반대 심문'을 뜻한다. 그러나 엘렝코 스는 그냥 조사나 심문의 한 종류가 아니다. 엘렝코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고, 자신의 의견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알게 하는 대화법이다. 리드 대학 (Reed College)의 철학 교수인 C. D. C. 리브C. D. C. Reeve박사는 엘렝코스에 관해 이렇게 설 명한다. "엘렝코스의 목적은 단순히 덕목에 대해 적절한 정의를 내 리는 것만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덕적인 교화의 목적도 있 다. 소크라테스는 반대 논증을 이용한 철학적 사색을 규칙적으로하면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무엇보다 도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사색이 인간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만큼 그 자유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사형을 받겠다고 했다."
-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예를 들어 (실제로 질문으로 제기된 적이 있었 던)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때 명 심해야 할 태도가 있다. 처음부터 질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야 한 다. 이런 태도에 따라 위의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우리는 항상 고독을 극복하기를 원할까?" 가령 셰익스피어와 괴테는 고독 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받아들였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 한 걸작을 창조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고독에 대 해 많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고독에도 정도가 있고 종류가 다양 할까?", "상황에 따라서 극복하고 싶은 고독이 있고 또 자신의 일부 로 받아들이고 싶은 고독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효과적으로 답하려면 우선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 을 던지고 답해야 한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고독을 극복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도대체 왜 고독을 극복하기를 원하는가?", "고독의 다양한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고독의 종류들을 나누는 기준이나 특성은 무엇일까?", "세상과 단절한듯 완전한 고독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그 외에도 수없이 많 은 질문이 있다.
소크라테스식 철학 문답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들은 질문을 즐긴 다. 그들은 질문이 고갈되는 법이 없고, 질문하는 새로운 방식도 끊 임없이 찾아낸다. 나는 소크라테스 카페에서 열정적으로 철학적 문 답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질문의 화신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는 확실성을 탐구하기 위해 수학적 방법을 모든 지식으 로 확장하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에서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능력으로 자신이 실제로 여기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 EImmanuel Kant의 관점은 데카르트와 상당히 달랐다. 칸트의 '비판 철학'에 따르면, 생각은 반드시 외부 세계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인간 정신의 구조와 일치하는 정도로만 알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칸트에게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 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순수이성비판Critique of Pure Reason》에서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다. 그 러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긴 세 가지 질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에 답하고자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삶의 역경을 견뎌낼 가치가 있도록 만들기 위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독특한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 소피스트는 강의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순전히' 질문을 했다. 소피스트는 교육, 미덕, 인간의 탁월성에 대해 말로 설명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으로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내적 개선 즉 진정한 '영혼의 치료'를 이뤄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받고 지적 성장의 아픔을 경험하는 것은 고통스러웠 다...소크라테스는 지혜를 강조했고, 가치 없는 통찰력은 받아 들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를 살펴 보는 무심한 질문자가 아니라 삶을 탐구하는 데 완전히 몰입 하는 인물이었다.
라슬로 베르세니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고, 타당한 주장으로 변론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증명할 수 있음을 의미 한다. 그리고 순차적인 긴 추론으로 붙잡은 결론을 내리는 것을 뜻 한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우리가 예리하고 열정적인 정신을 갖추고, 위대한 사상을 고찰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질문과 문제를 숙고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특정 철학을 옹호하거나 반대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할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도록 한다. 그러면 매우 통찰력이 날카로운 사상가들의 철학이라도 종종 명백 한 결점이 있음을 알게 되고, 우리는 모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 인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깨닫는다.

- 기원후 1~2세기에 노예에서 해방되어 철학 학교를 세운 스토아 학파의 도덕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우리가 모든 요소를 통제 할 수는 없으나 파란만장한 삶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라고 믿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자연이 주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니 체는 우리가 운명의 완전한 주인은 아니지만, 수동적인 희생자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니체는 우리가 운명과 더불어 삶을 창 조해 나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외 부의 힘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필요한 영향력 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좋건 나쁘건 우리가 의도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를 독특한 존재로 만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 도로시 할머니의 말에 나는 몽테뉴가 소크라테스를 찬양한 글이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의 삶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그가 노년 에 시간을 내 춤과 악기 연주를 배우고 그 시간을 보람 있다고 생각 한 사실이다." 몽테뉴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도로시 할머니가 간직하는 노년의 삶에 대한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는 명언을 남겼 다. "내가 살아갈 날이 짧을수록 삶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 괴테는 19세기 말의 진정한 소크라테스식 질문자였다. 종이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일에 전념하기 전까 지는 망설임이 생긴다. 망설임에는 뒤로 물러날 가망성이 있으며 늘 비효율적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창조하는 모든 일에는 하 나의 기본적인 진실이 있다. 이 진실을 알지 못하면 수많은 아이디 어와 멋진 계획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 진실은 바로 이러하다. 분명 히 어떤 일에 착수하는 순간, 그 결정에서 모든 사건의 흐름이 나온 다. 그 흐름은 온갖 종류의 보이지 않는 사건과 만남 그리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물질적 지원으로 지어진다.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 고 꿈꾸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천재성과 능력,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바로 지금 시작하라."
나는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뉴저지에 도착하자마자 메모지를 조수석에 놓고 붉은색 매직펜으로 해야 할 일을 크게 적었다.
-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여러 해를 보내면서 나는 혼자 철 학서적을 매우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월터 카우프만이었다. 대부분의 학계 철학자들과 달리 카우프만은 우연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한 철학자였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평생 그 런 마음을 품고 길렀다. 카우프만은 니체의 많은 서적을 독일어에 서 영어로 정교하게 번역한 일로 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또 그 는 매우 독창적인 철학 서적들을 펴냈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에 중심이 되는 문제를 다루며 자신만의 폭넓은 철학 체계를 이 뤄냈다. 카우프만은 비판적이고 열정적이며 소크라테스식으로 작문했다.
카우프만은 이단자의 믿음》에서 다음과 같이 깨달음을 주는 글을 썼다.
살면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시간을 낭비하는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도록 하자... 치열하게 삶을 살 아간다면 잠자는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열정적으로 삶 을 즐긴다면 죽음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온다. 나는 영원 히 견딜 수 있는 삶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랑과 열정과 고통과 창조의 삶을 바란다. 하룻밤 잠을 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면 죽을 자격도 있다. 왜 나는 다시 깨어나기를 원해야 할까? 내가 깨어 있는 시간에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일까? 우리는 모두 많은 시간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삶을 망치고 형 편없이 만들어놓는 이유는 죽음이 내게서 멀리 있고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고 말하 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니다. 정직함을 업신여기는자들은 그 기쁨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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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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