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불타고 있다

사회 2021. 7. 31. 19:40

- 녹색 외피를 두른 뉴딜 정책이나 태양광 전지를 장착한 마셜 플랜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본질과 성격을 지닌 전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로 중앙 집권적인 뉴딜 정책과 독점적인 수력 발전과 화석연료 발전이 아니라, 가능한 한 지역 사회 소유가 보장되는 분 산형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후에 이루 어졌던 백인 거주지 중심의 무계획적인 대도시 확장과 인종 분리형 도시 거주지 사업이 아니라, 유색인 공동체의 민주적 참여 속에 미 관을 고려해 건설되는 인종 통합형 무탄소 도시 주택이다. 우리는 뉴딜 시대의 시민자연보호단의 사례처럼 군대와 연방 기구에 자연보호 활동을 통제할 권한을 넘겨주는 게 아니라, 원주민과 농장과 목장을 소규모로 운영하는 농목업인 공동체,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하 는 어민 공동체에게 힘과 자원을 이양해 이들이 수십억 그루의 수목 식재, 습지 복원과 토양 재생 사업을 주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기후 위기를 비상사태로 규정하자는 입장을 견지하되, 이런 비상사태를 예외 상태로 만들려는 강력한 이권 세력의 시도를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한다. 대중의 공포심과 공황을 이용해서 어렵게 획득한 대중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자신들에게 수익이 돌아오는 거짓 해법을 밀어붙이려는 시도를 차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내야만 한다. 또한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가장 의험한 아홉 개 영어 단어는 이것이다. 나는 정부 공무원이고, 나는 당신을 도우러 이곳에 왔다 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ip)라고 선언한 이후로 심하게 훼손된 희망과 자신감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집단적인 변화를 신속하게 이루어 낸 역사적 기억을 되새김으로써 그 속에서 솟구치는 영감과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경고를 뽑아내야 한다.
- 그레타 툰베리는 말한다. 기후 변화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면 누구나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에겐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 극히 제한되어 있고 빠르게 줄어드는 탄소 예산 을 근거로 모든 걸 입안하는 그런 경제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겐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 우리는 경쟁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이 행성에 남은 자원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집은 거짓 약속과 미래의 편익에 대한 경시, 그리고 희생자들 위에 세워져 어차피 처음부터 무너지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집 안에 있는 걸 모두 다 구해 내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서로를, 그리고 수많은 종들을 구해 낼 만한 시간 여유가 있다. 어서 불을 끄고 그 자리에 전혀 다른 집을 짓자.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더라도, 안식처와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짓자.
이번만큼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린 뉴딜을 구축하자.
- 거의 모든 원주민 문화가 바위, 산, 빙하, 숲 등 자연계에서 살아가 는 신과 정령에 관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과학 혁명 이전의 유럽 문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콩코디아 대학의 인류학자 카트자 네베스Katja Neves는 이런 관습이 실용적인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 구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힘과 마주쳤을 때 취하는 겸손한 자세다. 우리는 신성한 것을 대할 때 신중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심지어 외경심까지도 품어야한다.
많은 이들이 이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그 결과는 대단한 파급력을 지닐 것이다. 연안 시추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급격한 하락세로 접어들어 지금 당장 뚫어 광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 비해 무려 22퍼센트나 줄었다. 그러나 이 추세가 완전히 기세를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발한 신기술이 나오고 엄격한 규제 조치들이 신설된 덕분에 북극해 시추는 완벽한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얼음이 덮인 곳에서의 원유 제거 작업은 멕시코만에서의 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복잡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에는 그런 설득에 예전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몇 안 남은 보호구역들을 상대로 예전처럼 성급하게 도박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 기후 변화가 좌파의 음모라는 부정론자들의 판단은 실제로 이들이 사회주의자들의 은밀한 음모를 알게 되어 내린 판단이 아니다. 이들은 기후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대적 이고 신속한 감축 목표를 실현하려면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는 지 면밀하게 고찰했고,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경제 및 정치 시스템 이 자신들이 견지하는 자유시장 신조와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근 본적으로 재편되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영국의 블로거 이자 허틀랜드 단골 강연자인 제임스 델링폴은 이렇게 말한다. 〈현 대의 환경주의는 좌파들이 선호하는 여러 가지 대의(부의 재분배, 세금 인상, 정부 개입의 확대, 규제)를 진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허틀랜드 연구소장 바스트는 훨씬 노골적이다. 좌파에게 기후 변 화는 완벽한 도구다. (...) 기후 변화를 인정할 경우 우리는 좌파가 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시행해야 한다.
- 우리가 날마다 뿜어내는 대량의 탄소를 지구 대기가 안전하게 흡수할 수 없다는 사실은 훨씬 더 큰 위기에 딸린 하나의 증상일 뿐 다. 훨씬 더 큰 위기는 우리 경제 모델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허구, 즉 자연은 무한하고 우리는 앞으로도 필요한 것을 더 풍족하 게 찾아낼 수 있으며 어떤 자원이 고갈된다면 그 자원 대신 자연에 서 무한대로 뽑아낼 수 있는 다른 자원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허구 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리가 자연적인 재생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이용해 온 것은 비단 대기만이 아니다. 우리 는 해양과 담수, 상층토, 다양한 종의 생물 역시 똑같이 취급해 왔다. 기후 위기가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와 자연과의 관계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 온 팽창주의와 채취주의 사고방식이다. 우리가 한계를 넘어서까지 자연을 쥐어짜고 있음을 보여 주는 수많은 과학 연구들은 녹색 제품과 시장 기반의 해법들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우리는 자연 위에 군림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연 재생 주기를 존중하고 인간 지능의 한계와 자연의 한계를 세심하게 헤아리는 태도를 근간으로 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 크리스 호너는 허틀랜드 참가자들 앞에서 기후 변화는 《쟁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정확한 지적이었다. 사실 기후 변화는 결코 쟁점이 아니다. 기후 변화는 메시지다. 서구 문화 가 가장 소중히 여겨 온 많은 아이디어들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리는 메시지다. 계몽주의의 진보 이념 아래서 성장한 까닭에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자신의 야망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모든 이에게, 기후 변화란 대단히 도전적이고 놀라운 사실이다. 우파 신자유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좌파 국가주의자에게 도 마찬가지다.
- 요컨대 지구 환경의 위기가 자연 자원의 과잉 소비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경제의 효율성 향상만으로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며, 지구상의 소득 상위 20퍼센트 인구가 소비하는 물질의 양을 줄이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대기업들이 지극히 혐오하는 것이다. 어떤 규제에도 얽매이지 않는 투자자들이 연간 수익률을 해마다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며, 이 대기업들을 주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도 반갑지 않은 결론을 맞게 되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잭슨의 말대로 시스템을 폐기하느냐, 아니면 지구를 결딴내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탈출로는 방금 살펴본 모든 계획 수단을 동원한 세심한 관리를 통해 다른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수용하는 데 있다. 소비 증가 분은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 둬야 한다. 반면에 산업화를 이룬 곳에서는 연간 수익률 상승이 라는 동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문들(공공 부문, 협동조합, 지역 기업, 비영리 단체)이 전체 경제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점점 늘려 야 한다. 또한 환경에 주는 충격은 미미한 반면에 복지후생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큰 편익을 제공하는 부문(교육 및 돌봄 직업, 여가 활동 등)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점점 늘려야 한다. 이런 경로를 채택하면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부문은 구 조적으로 매출과 수익의 증대를 요구하므로 이 부문의 역할은 줄어들어야 한다. 특히 기업의 자산이 자원 채취 활동과 불가분의 관계 에 있는 부문의 역할은 더더욱 줄어들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허틀랜드 연구자들이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를 유발한다는 증거를 대할 때마다 자본주의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몰린 것처럼 대응하는 까닭은 피해망상에 빠져 있어서가 아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서다.
- 기후 변화가 부의 재분배와 계급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허틀랜드 연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런 유형의 정책이다. 또한 그들은 일단 기후 변화의 현실을 인정하면 부유한 국가 내부에서의 부의 이전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 위기를 불러온 부유한 국가들에서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의 최전선 에 있는 가난한 나라들로 부의 이전이 이루어지는 것도 인정해야 한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보수주의자들이 (그리고 많은 자유주 의자들이) 유엔 기후 협상을 땅에 묻어 버리고 싶어 안달하는 까닭 은,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반식민 운동이 기후 협상 덕분에 일부 개발도상국들에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 볼리비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들은 온난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누가 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입고 있는가와 관련한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들을 무기로 내세워서, 수십 년 동안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서 받은 대출 때문에 자국에 떠안 겨진 채무국>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려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 국이 채권국이며,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돈과 기 술뿐 아니라 자국의 개발에 필요한 대기 공간 atmospheric space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편다.
- 기후 변화는 우리에게 소비를 줄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줄 아는 건 소비뿐이다. 우리가 사는 물건의 종류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예컨대 SUV 자동차 대신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고, 비행기를 탈 때 탄소 상쇄권을 사는 것만으로는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기후 변화는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에 의한 과도한 소비 때문에 빚어지는 위기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광적으로 소비에 열중하는 소비자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충분히 살아갈 수  도록 소비를 대폭 줄여야만 한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문제라는 말을 흔히 듣지만,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있지 않다. 계속해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인간의 타고 난 본성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훨씬 적은 소비를 하 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데 있다.
- 후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소비자로서 하는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하라고 가르친다. 쇼핑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공동체를 찾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었다. 따라서 지구의 부양 시스템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과도한 소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이 말을 일종의 공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환경 보호주 의의 독창적인 제안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자 중에서 세 번 째 항목인 재활용에만 유독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마도 이런 요인 때문일 것이다.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수거함에 제대로 넣기만 한다면, 우리의 쇼핑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머지 두 가지 제안은 소비를 줄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결국 〈도착 즉시 사망 선고〉를 받았다.
- 캐나다 경제의 역사에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이야 기가 있다. 수백 년 사이에 우리는 대박 경제에서 쪽박 경제로 위태 롭게 치닫고 있다. 1800년대 말에 유럽 상류층의 취향이 생가죽으 로 만든 정장용 모자에서 부드러운 실크로 만든 모자로 넘어가면서 캐나다의 비버 무역 산업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에는 유가가 폭락하면서 타르샌드 산업에 의존해 온 앨버타 경제가 곤두박질했다. 우리 경제는 과거에는 영국 상류층의 변덕에 요동쳤 고, 지금은 사우디 왕실의 변덕에 요동친다. 한 마디로 우리 경제는 답보 상태에 있다.
상품 경제가 요동치는 것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다. 상품 경제의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때마다 위험이 점점 더 커져 간다는 점이다. 대구 산업의 호황은 대구 어종의 씨를 말렸고, 타르샌드 오일 및 프래킹 가스 채취 산업의 호황은 지구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 더 따뜻하고 더 건조해진 날씨가 잦은 산불 발생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우리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연의 힘을 우리 필요에 맞게 고쳐 쓰려는 오만한 시도를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불은 삼림 순환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인간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숲은 주기적으로 불에 탄다. 새로운 생명이 자라날 공간이 마련되고 인화성이 높은 덤불과 늙은 나무(소방관들 의 표현으로는 〈연료)가 감소한다. 많은 원주민 공동체들이 아주 오 랜 옛날부터 불을 이용해 땅을 돌보아 왔다. 그러나 북미 대륙에서 널리 채택되는 현대적인 산림 관리 방법은 순환적인 산불의 발생을 계획적으로 억제한다. 목재로 쓸 수 있는 수익성 좋은 나무를 보호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산불이 거주 지역(거주 지역은 점점 더 넓어 진다)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덜려는 목적도 있다.
자연적인 산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숲은 연료가 빼곡 들어찬 화약고가 되고, 일단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간다.
- 나무좀이 왕성하게 번식하면서 연료의 양은 더욱더 늘어난다. 숲이 나무좀에 잠식되면 건조하고 잘 부서지는 죽은 나무만 남기 때문이 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고온과 가뭄 탓에 나무좀이 더욱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도 나온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더 뜨겁고 더 건조해진 날씨(이는 기 후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가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최적의 조 건을 만든다는 간단명료한 사실이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얽히면서 숲은 완벽하게 준비된 야영장의 모닥불로 둔갑한다. 마른땅은 둥글게 뭉친 신문지 역할을, 죽은 나무는 불쏘시개 역할을, 더 더워진 날씨는 성냥 역할을 한다. 앨버타 대학에서 산불을 연구하는 마이크 플래니건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캐나다에서 산불 발생 면적이 넓어진 것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여러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기는 조금씩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산불 발생 면적이 1970년대 이후로 두 배로 늘어난 것은 기온이 상승한탓이다. 2010년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에는 캐나다의 화재 발생 건수가 무려 75퍼센트나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놀라운 일은 또 있다. 2016년에 캘리포니아 남부와 앨버타 북부 에서 맹위를 떨친 대형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흔히 엘니뇨 현상을 꼽는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연적인 온난화 현상인데, 2017년에 는 엘니뇨 현상이 없었는데도 산불이 훨씬 격렬해졌다.
산불 빈발을 엘니뇨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되자, 일부 언론사들은 어정쩡한 입장에서 물러서고 있다. 독일 방송사 도이체 벨레는 이렇게 보도했다. 기후 변화가 세계 곳곳에 불을 놓고 있다.
- 우리는 기그 경제와 디그 경제dig economy 사이의 연관성을 명확히 짚어 내야 한다. 기그 경제의 근원은 인간을 부를 추출하고 나서 내다버리면 그만인 천연자원처럼 취급하는 교만한 태도다. 디그 경제의 근원 역시 지구를 제멋대로 부를 추출하고 나서 내다버리면 그만인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자원 채취 회사들의 교만한 태도다. 또한 우리는 기그 경제와 디그 경제로부터 보살핌과 복원의 원칙을 기초로 움직이는 사회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명확하 게 제시해야 한다. 보살핌과 복원의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는 우리를 보살피는 사람들의 노동과 우리의 땅과 물을 지키는 사람들의 노동 이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그리고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장 소도 쓰레기처럼 버려지지 않는 세상, 어떤 사람도 비상탈출로가 없 는 아파트나 허리케인으로 만신창이가 된 섬에 버려지지 않는 세상이다.
- 우리 인류가 1980년대에 파멸적인 온난화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발걸음을 막 내딛으려는 순간에,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격렬한 자유 시장주의는 세계 전역 수백만 민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인류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에 맞서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 있다. 바로 자유 시장주의 경제 질서와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성장과 이윤의 추구 대신에 인간의 안전과 지구의 안전을 중심에 놓고 발전하는 경제 질서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 다행스럽게도 지금 미국에서는 1989년 당시와는 다른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비전을 품은 민주적 사회주의자The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DSA)들을 주축으로 한 운동이 새로이 탄생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 운동은 단순히 선거 정치에 등장한 대안이 아니라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운동이 반드시 새로 운 것일 필요도 없고, 전례 없는 규모로 실행될 필요도 없다는 점이 다. 『뉴욕 타임스」가 트위터를 통해 인류는 기후 변화 재앙에 대처 할 능력이 없다〉라는 내용으로 리치의 기사에 대한 예고 광고를 올 리자마자, 민주적 사회주의자) 생태 정의 진영은 곧바로 이 글의 오류를 바로잡는 글을 올렸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문제의 근원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면,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 재앙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가 정답이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인류는 생태계 의 한계 안에서 번창하는 사회를 충분히 꾸려 갈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주 좋은 지적이다. 인간이 자본주의 체제에 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필연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자율적인 활동 을 통해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사회 질서, 이를테면 시간의 지평을 더 길게 설정하고 자연의 생명 부양 시스템을 훨씬 더 존중하는 사 회를 구축할 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인간은 인류 탄생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해 왔고, 많은 원주민 문화들은 오늘날까지도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견지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우리 인간 종이 걸어온 집단적 역사 속에 등장한 아주 작은 깜박임일 뿐이다.
그러나 책임을 자본주의에 돌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끝 없는 성장과 이윤의 추구라는 자본주의의 특징은 화석연료 경제로 부터의 급속한 이행이라는 지상 과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단언컨 대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폭증을 부추긴 주역 이자 국제적인 기후 협상이 시작된 이후로 과학에 토대를 둔 기후 행동의 급진전을 가로막은 가장 큰 훼방꾼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체의 제약을 뿌리치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맹렬한 활동을 개시 한 자본주의, 일명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지금도 여전히 가장 큰 훼방꾼이다. 기후 대응에 앞장서고 있다고 자처하는 나라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 『가디언』의 조지 몬비오트George Monbiot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의 자원은 우리에게 개인에게는 넉넉함을, 공공에게는 호화로움을 제공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름다운 공원과 놀이터, 공공 스포츠 센터와 수영장, 전시관, 텃밭, 공공 교통망 등이다. 만인이 개인적 사치를 누리는 세상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고, 지구는 결코 이 꿈을 지탱할 능력이 없다.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역시 저서 『도넛 경제학』에서 〈지구의 한계 내에서 만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경제, 성장은 없어도 만인이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는 경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원주민의 주도로 전개되는 운동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이 운동은 생태적인 전환을 요구하는데, 그 핵심 개념이 부에 비비르 Buen vivir〉(좋은 삶이라는 뜻) 다. 이들은 소비의 확대와 계획적 진부화와 같은 더 많은 소유를 목표로 하는 삶 대신에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에 초점을 맞춘다.
그린 뉴딜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린 뉴딜이 그리는 미래는 끊임 없는 물자 부족과 정부의 통제에 시달리는 궁핍한 미래라는 공포감 을 지속적으로 유포하는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 계 인구 중 상위 소득 10~20퍼센트 계층의 생활에 변화가 생길 거 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들의 삶에는 당연히 변화가 있을 것 이다. 또한 이 범주에 속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항공 여행, 육류 소비,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즐거움과 정신적 충만함을 기를 수 있는 새로운 공간도 생겨날 것이다.
- 미국 전역에는 프래킹 유전이나 광산, 유정으로 쓰이다가 채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지역들이 많이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사 람도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우리는 자신이 소유한 물건도 이런 식으로 취급하도록, 다시 말해 한 번만 쓰고 버리거나 함부로 다루다가 깨지면 얼른 내다버리고 더 많은 물건을 사서 쓰도록 훈련받아 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고된 노동에 혹사당하다가 쓸모가 없어졌다고 내쫓기고 방치된 탓에 중독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는 감옥 도시carceral state) 개념과도 관련이 있다. 요즘에는 상당히 많은 인구를 교도소에 가두어 놓는 도시들이 많다. 여기에는 이들이 교도소 안에서 노동을 하거나 민영 교도소의 수감자로 인원을 채우는 편이 사회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로 일하는 것보다 경제적 편익이 더 크다는 계산도 작용한다.
- 우리는 화석연료 시대가 폭력적인 도둑 정치(kleptocracy)에서 시작되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을 강제로 빼앗아 오고 땅을 강탈하는 두 가지 중요한 도적 행위가 무한한 팽창의 새 시대를 열어 놓은 토대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땅에게 생명을 되돌려 주는 길은 청산과 복원을 통해야만 열린다. 우리는 과거를 청산하고 1차 산업혁명 때 가장 큰 희생을 치렀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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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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