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기간 동안 '식물성 양'의 존재를 믿었던 유럽의 사례는 무해 한 호기심의 역사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및 유럽에서 '식물성 양은 주요 정치권력이 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에 약 10억 명이 살고 있고, 이들 국가의 군사 · 무역 · 이민 정책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수십억 명에 달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미 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나 영국이 EU에서 탈퇴(브렉시트Brexit) 한 일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졌든 이런 중차대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뉴스가 거짓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면 매우 심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가 떠오른다. 민주주의는 가짜 뉴스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그렇다면 프레온가스와 오존층에 대한 과학적 합의를 비판하던 업계 측 주장이 어느 정도는 타당했다고 볼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누구나 확신할 만큼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과학은 그동안 영속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성적이 형편 없었으므로 과학자들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알아냈다”고 주장한들 그들의 말을 덜컥 믿기는 어렵다. 그래서 새로이 알아낸 과학적 사실들을 받아들일 때 주의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절대 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금도 자신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증거를 모아 그 증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프 레온가스가 오존층에 구멍을 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적절한 증거가 있다면 더 자신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신념과 절대적 확실성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참인 믿 음 덕분이므로 진실(적어도 과학적 진실)에 신경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지식, 혹은 적어도 진실이라고 믿는 대상이 우리의 선택에서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념과 선택 사이의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귀납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일단 한쪽으로 밀쳐두는 것이다.
프레온가스 및 오존층 문제에서 사실에 대한 완전한 확실성을 얻을 수 없다는 우려는 중요치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태양 복사열에 튀겨지는 불상사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는 자신감이다.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회의주의는 한 켠으로 치우고 지금 가지고 있는 증거를 기반으로 움직일 필요 가 있다. 업계가 제시하는 확실성에 대한 요구들은 무시하고 중심 을 잡는 것이다. 흙이 말했듯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증거에 조화시킨다.
- 쿤의 연구는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려면 과학을 인간적 활동 human enterprise 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발전시키고 지키려 했던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 잡한 역사와 풍부한 사회학적 특색이 포함된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학자들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그들의 행동은 소속된 사회의 각종 의례와 의식에 의해 결정됐다. 게다가 그들이 속한 사회는 좀 더 넓은 문화적 맥락 속에 삽입돼 있었다. 그러므로 과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회학이나 인류학 같은 분야들을 이용해 낯설고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일을 의미하게 된다.
- 과학을 과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폭넓은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속한 활동으로 이해하고 나니 몇 가지 불편한 깨달음이 이어졌다. 현대과학은 주로 서유럽 문화권에서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형성됐다. 그들은 다름 아닌 세계 곳곳에서 잔학 행위를 자행한 주체들이었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루스 슈워츠 코완과 사회학자 도널드 맥켄지의 개략적 설명에 따르면, 통계라는 분야는 칼 피어슨(영국의 수리통계학자이자 우생학자)과 프랜시스 골턴(영국의 유전학자)이 인종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지자들을 수량화하려는 과정에서 등장했다(골턴은 찰스 다윈의 친척으로, ‘우생학eugenics' 이라 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미셸 푸코 는 “근대의 정신의학은 지배subjugation 의 도구”라고 주장했다. 사회 의 '문제적' 구성원들을 나머지 구성원들에게서 분리해내는 한 가 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의 진료소는 중세 의 나환자 격리수용소에 뿌리를 둔 것으로 사회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과학은 식민주의 colonialism에도 연루돼 있었으며, 인종적 우월성 에 관한 과학적' 주장들과 비서구 문화권은 환경적, 경제적 번영을 위한 제대로 된 지식을 스스로 얻지 못한다'는 전제가 이를 정당화 했다.32 미국의 저명한 여성학자 샌드라 하딩은 1986년 출간된 저서 《페미니즘과 과학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에서 뉴턴(그리고 흄)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던 강간 은유 문제와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자연Mother Nature에 복종을 강요하는 과학자들을 지적했다. 강간 은 유 문제는 영국의 경험론자 프랜시스 베이컨 등 초창기 과학자들의 저술에 퍼져 있었다. 이 밖에도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많다.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과학, 정치, 문화를 이런 맥락에서 살피 는 연구의 황금기였으며, 이 연구들은 과학학science studies' 으로 알 려졌다. 그리고 이런 지성적 맥락에서 산업계의 입장을 옹호하던 세력이 '오존층의 구멍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정치적 행위자'라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환경주의, 정부 규제, 산업 가치 등에 관한 과학 자의 평소 관점이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 비판은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수많은 학자가 이런 문화적 맥락이 실제로 과학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했으니까. 만일 어떤 과학자 집단이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견해가 그들의 과학적 연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크다. 골턴의 인종주의가 자신이 연구한 통계 문제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과학자들도 자신이 속한 문화적 맥락에서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문화적 맥락은 각종 편향과 맹점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편향에 빠진 채 이끌어낸 결론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도덕적으로 파탄난 수준이거나 애초에 틀린 경 우가 종종 있었지만, 가끔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이 과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인 식하고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과학학에서 비롯되는 과학에 대한 여러 문화적 비평 역시 충분히 가치가 있다.
- 정치가 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식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하나는 배경이 되는 문화적 견해가 과학자들이 가정하거나 문제로 삼는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묘한 영향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종류의 영향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신중한 분석, 비판, 논쟁을 거치면 문제를 파악해 대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치와 과학이 뒤섞이는 것으로, 앞의 방식과 성격이 전혀 다르며 훨씬 더 사악하다.
- 우리는 흔히 과학적 발견이라고 하면 고독한 천재를 떠올리곤 한다. 한순간에 계시를 받듯 엄청난 이론을 생각해내는 인물 말이다. 수은 때문에 미친 뉴턴도 다윈,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도 그랬 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나 실제 과학적 발견은 훨씬 더 복합적이며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과학적 진보는 공동체 내에서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추측과 관찰이 여러 방향에서 시작돼 점차 확산되고 쌓이면서 더 많은 가설과 증거 수집을 위한 새로운 생각들로 이어진다. 과학자들은 기나긴 협력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새로운 발견을 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 이라는 연결망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 대개 과학자들이 합리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확실하지 않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경우에 증거를 공유하면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이들까지 설득해 집단 전체가 옳은 신념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효과를 내기도 하고, 과학자들의 신념을 거짓 신념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식물성 양'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학식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없었더라면 이 기이한 믿음은 절대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의 공유(“내가 그 엄청 난 것을 맛봤다니까!")는 올바른 신념을 지니고 있던 다수마저 틀린 것 을 참이라고 믿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증거의 맞교환은 연결고리를 통해 참인 신념을 퍼뜨리지만 그릇된 방향으로 이끄는 증거도 퍼뜨릴 수 있기 때문에 과학자 집 단이 오히려 의사소통을 줄이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특히 난제에 관한 연구라면 더욱 그렇다. 과학자들 사이에 소통이 안 되어 오히려 신념의 질이 개선되는 현상은 이를 발견한 케빈 졸먼의 이름을 따 '졸먼 효과Zollman effect'로 알려져 있다. 모든 사람이 증거를 공유했을 때 나쁜 데이터가 집단 전체를 설득해 오히려 올바른 이 론을 버리게 할 가능성이 있지만, 모두가 서로의 의견을 듣지 않는 집단, 즉 폐쇄적인 과학자 집단에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데이터가 퍼지는 것을 막고 참인 신념의 증거를 계속 모음으로써 나머지 구성원들을 결국 설득해낼 수 있다.
-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신념의 일시적 다양성은 과학적 공동체 에 꼭 필요하다. 모두가 동일한 신념을 가진다면 더 나은 선택을 시도조차 못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몇몇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것은 집단이 최상의 선택지를 찾아내는 데 무척이나 중요하다. 충분한 시간 동안 신념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의사소통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양한 이론을 시험하는 동안 연구자들의 신념이 서로에게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졸먼 자신도 지적하듯이, 졸먼 효과는 그 어떤 박테리아도 발견 하지 못한 팔머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기존 의학계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거짓인 이론에 매달렸 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과의사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었던 탓에 단 하나의 결과(위산 이론, 이는 훗날 과학자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음이 밝혀졌다)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위장병 학자를 설득해 박테리아 이론(훗날 참인 것으로 밝혀졌다)을 버리게 만들었다. 팔머의 증 거를 보고 그들이 택한 행동은 그 당시엔 굉장히 합리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동체 구조에서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실제로는 거짓인 믿음을 존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팔머의 결과를 접한 과학 자들의 수가 더 적었다면 박테리아 이론은 좀 더 일찍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 물론 산업적 이해관계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퍼지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기후 변화의 원인에 관한 과학적 합의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해온 모형들에 의하면, 산업계의 방해가 없더 라도 합의의 향방이나 정책 결정을 이끌어야 할 과학적 신념을 선 택하려는 집단에서는 결국 의견 불일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택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신념이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는 것이 해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 측에서 들려오는 신빙도 높은 증거를 듣 지 못하는 양극화된 진영들만 생겨날 것이다. 공동체에서 종국에 참인 신념에 도달하는 구성원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란 의미다.
- 신념이 현실적으로 중요한 경우와 비교적 추상적인 경우를 구분하는 것은 거짓 신념의 현대적 사례들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신념이 행동을 선택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 신념은 사회적 신호의 역할을 맡게 된다. 그 신념은 당신이 어떤 집단에 속 해 있는지를 말해주고, 그 집단의 일원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얻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지구에 사는 생물 종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 진화 개념은 현대 생물학의 초석이지만, 동원 가능한 증거와는 별개로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지 여부는 우리 대다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어느 한쪽의 관점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가 동조하고자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중요한 사회적 이득이 될 수 도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음식이나 건강에 대한 유사과학적pseudoscientific 신념은 대부분 부정적 영향이 없다.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은 위험하다는 신념이나, GMO에 대한 공포, 유기농 식품은 살충제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건강에 특별히 좋다는 신념 등 을 생각해보자.81 방사능에 오염됐거나 유전자 조작이 됐거나 혹은 유기농이 아닌 음식을 피하는 소비자에게는 어느 정도 불편함이나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이런 신념은 이 같은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뉴에이지new-age(현대 서구적 가치에 반기를 들고 신비주의 등에 관심을 가진 일종의 반문화운동 혹은 그런 경향 옮긴이), 엘리트, 혹은 좌파적 사회 집단에 속해 있음을 나타낼 수 있고, 이로써 사회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다. 이들 공동체는 엉뚱한 생각들을 퍼뜨리기도 한다. 최근 유행한 '그라운딩grounding'이 대표적인 예다. 그라운딩은 땅을 접촉하면 신체와 땅 사이에 전자의 흐름이 일어나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다. 사람들은 발을 땅 위에 디디고 선다고 해서 손해볼 일이 전혀 없는 데다 맨발로 걸으면 이완효과와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신념은 쉽게 정착될 수밖에 없다.
- 지금까지 우리는 모형 속의 모든 과학자가 진실된 결과들을 공유하고, 그들 모두 진실 구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과학, 그리고 정치의 역사를 보면 이 가정은 엉터리다. 세상에는 막강한 권력자들이 있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여론에 달려 있으며, 권력자들은 자기만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껏 설명해온 사회적 메커니즘들을 조작하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 《의혹을 팝니다》에서 오레스케스와 콘웨이가 적었듯, 담배 업계가 짠 혁신적인 새 전략('담배 전략'Tobacco Strategy') 이면의 핵심 아이 디어는 '과학과 싸우는 최선의 방법은 더 많은 과학'이었다.
물론 흡연은 실제로 폐암을 유발한다. 그리고 설암, 식도암, 심장 병, 기종氣腫을 비롯한 수십 가지 중증 질병까지 일으킨다. 어떤 과 학적 방법으로도 흡연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 는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담배 업계는 불확실성을 부각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상황을 혼탁하게 만드는 연구를 찾아내 자금을 지원하고, 기존의 증거가 덜 확실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정책 입안자들과 담배 소비자들이 과학적 합의를 무시하기에 충분한 은폐거리를 제공했다. 어느 담배 회사 경영자가 15년 뒤 남긴 비공식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의심은 우리가 만든 제품이다. 의심이야말로 대중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실의 실체와 겨룰 만한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 전쟁 이후에 심리전의 무기는 미국 및 서유럽 소비자들을 향 했다. CPI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여론 구체화하기 Crystallizing Public Opinion》 (1923)와 《프로파간다 Propaganda》(1928) 등 1920년대에 출간된 책들에서 사회과학 및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대대적인 여론 조작에 필요한 일반론을 조직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지만 상업적 목적도 있었다. 버네이스의 작업은 정치적인 것과 상업적인 것의 구분 없이 이루 어졌다. 담배를 여성 해방의 상징인 '자유의 횃불'로 브랜드화한 것 이 그가 실시한 캠페인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여성의 흡연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꺾으로써 담배 시장의 규모를 배로 늘리려는 심산이 었다. 1929년에는 당시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 제조 업체인 아 메리칸 토바코 컴퍼니American Tobacco Company 와 계약을 맺고 뉴욕에서 열린 부활절 축제 행진 중에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에게 수고비를 지불했다.
- 오늘날 버네이스의 책들은 PR 산업을 위한 PR 대변인의 작업물 이라는 렌즈를 통하지 않고는 읽기가 어렵다. 그는 독자들을 안심시키려 들지만 어두운 면이 그의 글에 숨어 있다. 가령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정부를 구성한다. 이것이 우리 국가의 실질적 지배권력이다. 우리는 우리가 들어본 적 없는 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정신이 빚어지고, 취향을 형성당하 며, 사고를 주입당한다”라고 적고 있다. 음모론자가 지껄이는 헛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사실 훨씬 더 사악한 메시지다. 음모론의 창시자들 중 한 명이 업계 거물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으로, 선구적 사상가들로 구성된 버네이스의 그림자의 의회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그 수신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버네이스는 자신의 사례를 과장해서 말했겠지만, 그의 생 각은 굉장히 골치 아픈 결과들을 낳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민주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키메라chimera (사자의 머리, 양의 몸통,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입에서 불을 뿜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옮긴이)다. 국민의 뜻은 숨은 권력에 의해 빚어져서 대의 정체政體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은 우리의 신념, 견해, 기호를 빚어내는 도구들을 식별하고 지배력을 되찾을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담배 전략의 성공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 선택적 공유의 성공이 충격적인 이유는 선택적 공유가 개입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과학적 과정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적 공유가 편향된 산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선택적 공유에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업계는 과학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저 내용을 퍼뜨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택적 공유는 위험 부담도 덜하다. 선택적 공유를 실행하는 선전가들은 그 어떤 연구 결과도 숨기거나, 없애지 않는다. 특정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많을수록 그들이 생성해내는 가짜 결과도 더 많아지는 현상에 기댈 뿐이다. 전체적으로는 참인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더 많다 해도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참여하는 과학자가 많아질수록 편향된 산출에 드는 비용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치솟는다.
선택적 공유의 이점이 있음에도 산업계는 어째서 연구자들에게 기금을 지원하는 걸까? 과학적 연구에 기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과학계 내부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으며, 궁극적으로 선택적 공유의 효과도 더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 책과 광고, 홍보 캠페인을 통해 버네이스는 소비자들이 행동을 결정하고 신념을 형성할 때 신뢰와 권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과학자, 의사, 성직자처럼 지위를 통해 특별 한 권위를 부여받은 사회 구성원들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는 의미다. 버네이스는 이런 영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그 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에 버네이스는 비치-너트 패킹 컴퍼니Beech-Nut Packing Company 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베이컨의 매출이 늘어나기를 바랐다. 버네이스에 따르면, 당시까지 미국인들은 아침식사를 가볍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보통은 커피와 페이스트리 혹은 롤빵을 먹거나 간혹 주스를 곁들여 먹는 정도였 다. 그런데 버네이스는 베이컨의 매출을 늘릴 생각으로 이러한 식 습관에 변화를 일으켜 베이컨과 달걀이 포함되는 미국식 아침식사American breakfast개념을 새로이 만들어냈다. 그는 《프로파간다》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회의 집단 구조와 대중심리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최신 판매 전략에서는 먼저 이 질문부터 던져볼 것 이다. “세상 사람들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은 당연히 의사들'이다. 그런 뒤에 의사들에게 “베이컨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분명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사의 조언에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 거짓 신념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최소화하려면 저널리스트들이 과학 및 전문가 의견에 관한 글을 쓸 때 다양한 기준에 맞 출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주장했지만, 공정하려는 노력은 종종 대 중이 보는 과학적 증거를 편향시킨다. 과학에서 소수 의견에 공정 한 조치 fair shake'를 부여하면 주변 요소들이나 전적으로 나쁜 행위 자들에게 권한과 권력을 부여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저널 리스트는 이용 가능한 증거의 표본을 편향되지 않게 대중에게 전달 하고자 애써야 한다. 만일 흡연이 위험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 1건과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 99건이 있다면 저널리스트는 흡연이 위험하 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1명당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99명의 과학 자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한다. 존 올리버가 최근 본인이 진행하는 시사 풍자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후학자 197명과 회의론자 3명(혹은 적어도 그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뛰어난 배우들)을 무대에 한꺼번에 불러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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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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