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버그

심리 2023. 3. 22. 19:44

- 진화가 고안한 해법들을 보면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가 설계했다면 절대 택하지 않았겠다 싶은 것이 많다.
새 비행기 개발 임무를 맡은 항공공학자는 추진력, 양력, 항력 같 은 부분에 대한 이론적 분석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모 형을 제작해서 실험을 해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비행기를 제작할 때 안전하게 지상에서 그 부품들을 조립하고, 조정하고, 테 스트 해본다는 것이다. 진화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종이 진화할 때는 항상 '비행 중'에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수정은 완전한 기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린든David Linden은 사람의 뇌를 진화의 조잡한 땜질식 처방이 점진적으로 축적된 것이라 표현했다." 뇌가 진화하는 동안 새로운 구조물이 낡은 기능적 구조물 위에 얹히다 보니 불필요하게 중복되고, 복잡해지고, 자원이 낭비되고, 때로는 똑 같은 문제의 해결을 두고 여러 해법이 서로 경쟁하는 일도 생겼다. 더군다나 컴퓨터 측면에서 계산과 관련된 새로운 요구들이 등장했지만 그런 요구를 현재의 하드웨어에 그대로 적용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없었다.
- 뉴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얼룩말'에 해당하는 노드는 대체 무엇일까? 뉴런 하나는 얼룩말이라는 개념에 해당하고, 또 다른 뉴런 은 당신의 할머니에 해당하는 식일까? 그렇지 않다. 뇌가 사실상 무한히 많은 대상과 머릿속 개념들을 정확히 어떻게 부호화하는 것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얼룩말 등 모든 개념이 뉴런 집단의 활성을 통해 부호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얼룩말' 노드는 경계가 모호한 뉴런의 집단, 즉 서로 연결된 뉴런의 무리(꼭 가 까이 붙어 있을 필요는 없다)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동시에 사이클 선수, 텍사스 사람, 암 생존자 등 서로 다 른 별개의 사회집단에 소속될 수 있는 것처럼, 어느 한 뉴런도 여러가지 서로 다른 노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 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의 신경외과의사 이차크 프리트Itzhak Fried는 뉴런과 노드 사이의 관계를 얼핏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 다. 그와 동료들은 환자에게 유명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 사람의 피질cortex에서 단일 뉴런을 기록해 보았다. 일부 뉴런은 특정 유명인사의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활성화됐다. 예를 들면 한 뉴런은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톤Jennifer Aniston의 사진을 아무것이나 보여주면 그에 반응해서 흥분한 반면, 같은 영역에 있는 또 다른 뉴런은 빌 클린턴 Bill Clinton의 사진에 반응했다. 바꿔 말하면 그 환자가 어느 사진을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해도 뉴런의 활성만 관찰하면 환 자가 어떤 유명인을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 다면 첫 번째 뉴런은 '제니퍼 애니스톤' 노드의, 그리고 다른 뉴런 은 '빌 클린턴' 노드의 한 구성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 애니스톤 노드나 빌 클린턴 노드에 속한 뉴런이라도 그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진에 흥분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드가 뉴런의 집단에 대응한다면, 시냅스는 링크에 대응한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뇌' 노드와 '마음' 노드가 서로 강력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이 노드들을 표상하는 뉴런들 사이에도 강력한 시 냅스 연결이 존재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노드와 뉴런, 그리고 링크 와 시냅스 사이의 대응관계를 통해 심리적인 수준에서의 의미 네트 워크semantic network와 뇌의 생물학적 기본 구성요소 사이의 역학관 계mapping를 이해할 틀을 얻을 수 있지만, 이것은 엄청나게 단순화된 시나리오임을 명심해야 한다.
- 1970년대 초반에 신경과학자 티모시 블리스Tim Bliss와 테리에 뢰고Terje Lomo는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이 강하게 활성 화되고 난 후에 해마hippocampus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 려진 뇌 영역)에 있는 시냅스의 강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져 있는 것을 관찰했다.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라고 하는 이 현상은 '시냅스 기억 synaptic memory'의 한 사례다. 즉 이 시냅스들이 자기가 강하게 활 성화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 발견과 더불어 수십 년 동안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시냅스 강도의 변화가 DVD 반사 면을 태워 구멍을 내는 것의 뇌 버전에 해당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 과학이 흔히 그렇듯이 이 중요한 발견은 훨씬 더 당혹스러운 의문으로 이어졌다. 시냅스가 가소성이 있다면 어떻게 그 두 뉴런은 자기들 사이에 있는 시냅스가 더 강해져야 할지, 더 약해져야 할지 '결정'하는 것인가? 20세기의 가장 핵심적인 과학적 발견 중 하나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발견을 통해 우리가 이 모든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데 사용하는 뇌라는 기관의 작동방식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는 X 뉴런 과Y 뉴런이 대략 같은 시간에 활성화되면 그 둘 사이의 시냅스 강 도가 증가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 단순한 개념은 이것을 1949 년에 처음 제안했던 캐나다의 심리학자 이름을 따서 헵의 법칙 Hebb's rule이라고 부른다.13 이 규칙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다듬어지게 됐 다. "함께 흥분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 공통의 시냅스후 뉴런 Post로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는 두 시냅스전 뉴런 Prel과 Pre2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헵의 법칙에 따르면 Prel과 Post가 동시에 흥 분한 반면, Pre2와 Post는 그렇지 않을 경우 Prel → Post 시냅스는 강해지고, Pre2→ Post 시냅스는 약해지게 된다.
- 정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분류되고, 무리 지어지고, 저장된다. 18 당신이 인도에 살고 있다면 당신의 '소' 뉴런은 아마도 '신성함' 뉴런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반면 당신이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다면 '소' 뉴런은 '먹는 고기' 뉴런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자기조직적 속성 때문에 인간의 기억은 경험을 아무 생각 없이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에 만 치중하는 비디오카메라보다 전략적으로 여러 면에서 훨씬 우월 하다. 뇌의 연관구조는 기억과 의미가 한데 얽히게 해준다. 링크는 기억이자 동시에 의미인 것이다.
- 마술사와 심리학자들은 간섭이나 잘못된 정보를 통해 기억을 덮어쓸 수 있음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법체계는 이런 부분을 인정하는 데 느렸다. 하지만 목격자 심문 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에는 경찰이 심문할 때 "사고 현장에 SUV가 있었습니까?"라는 질문 대신 "사고 현장에 대해 설명해 주 십시오."라는 식으로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을 할 것을 권장하 고 있다. SUV 같은 것을 언급하면 범죄현장에 대한 기억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목격자에게 용의자를 보여줄 때도 라인업으로 일렬로 세워서 보여주기보다는 한 명씩 차례대로 보여주는 것이 낫다. 라인업으로 보여주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중에 서 누군가 한 명을 고르도록 목격자를 부추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이 과속차량이 해치백이었는지 쿠페였 는지, 도둑의 눈 색깔이 갈색인지 초록색인지, 경찰이 현장에 1~2 분 안으로 도착했는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속, 정확하게 저장하 도록 진화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 초기 기억은 잉크가 덜 마른 손글씨처럼 취약하기 때문에 몇 가지 요인에 의해 교란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정보를 학습 하면 최근에 습득한 정보의 장기저장에 간섭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의 새로운 전화번호를 암기하고 10분 후에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일부 약물과 전기충격요법도 새로운 기억의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동물연구에 따르면 쥐가 미로에서 길 찾는 법을 학습한 직후에 단백질 합성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쥐가 길 찾는 법을 까먹고 말았다. 이런 약물이 새로운 기억의 형성에 간섭을 일으키는 이유는 시냅스 강도의 장기강화가 일어나려면 뉴런 내부에서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어야 하기 때문 이다. 헵의 가소성이 작용한 결과로 시냅스가 강화potentiated된 직후 에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하면 시냅스 강도의 증가, 즉 시냅스 기억 synaptic memory을 역전시킬 수도 있다. 실제 기억과 '시냅스 기억 (시냅스 강도의 변화)' 모두 유사하게 단백질 합성 억제제에 의해 지워 질 수 있음을 관찰한 것은 시냅스 기억이 실제 기억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 중 하나였다.
동물이 학습을 경험하고 몇 시간, 혹은 며칠 후에 단백질 합성 억 제제를 투여하면 기억의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하게 우울증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전기충격요법을 가하면 치료 직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만 소실된다. 기억이 취약해서 쉽게 지워 질 수 있는 초기 단계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후기 단계로 이행되 는 것을 응고화consolidation라고 한다. 잉크가 마르면서 시냅스 강도 에 생긴 변화가 일시적 매체에서 영구적인 매체로 변화하는 것으 로 보인다. 하지만 시냅스 수준에서 이런 과정에 대응하는 것은 무 엇일까? 시냅스의 생화학적 반응에 의존하는 시냅스 기억으로부터 초기 단계에 단백질 합성이 필요한 더 영구적인 '구조적 변화로의 이행도 부분적으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동물 연구에 따르면 스피드데이트speed dating (솔로인 남녀들이 짝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명이 돌아가 며 잠깐씩 맞선을 보게 하는 행사 - 옮긴이)처럼 우리 뇌 속의 많은 시냅스 들은 애초에 탐험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들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 듯 방랑벽이 있었던 시냅스들이 영구 안정화되는 형태로 뇌의 배 선에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장기적인 학습이 일어나는 것으 로 보인다."
기억 응고화라는 개념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아주 큰 영향력 을 미쳤다. 하지만 일부 경우에서 '응고화된 기억이 한때 생각했던 것처럼 불변은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부 사례에서는 응고화된 기억이 약물, 정신적 외상, 혹은 다른 기억으로부터의 간섭에 의해 다시 취약해져 지워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이것을 재응고화reconsolidation라고 한다. 5장에서 살펴보겠지 만 쥐를 소리와 함께 충격이 가해지는 상황에 노출시키면 특정 소 리에 반응해서 공포를 표현하는 법을 쉽게 학습시킬 수 있다. 이런 학습이 이루어지고 24시간 후에 단백질 합성 억제제를 투여하면 쥐 의 기억에서 거의, 혹은 아무런 영향도 관찰되지 않는다. 쥐는 계속 두려움의 행동을 나타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나중에 쥐에게 충격 은 가하지 않고 소리의 형태로만 그 공포를 떠올리게 하면서 약을 투여하면 일종의 기억상실을 유도할 수 있다. 즉 쥐가 그 소리에 대 한 두려움이 줄어든 것처럼 행동한다. 바꿔 말하면 오래된 기억을 재활성화했더니 다시 지우기 쉬운 상태로 변했다는 얘기다. 이 재 응고화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 연구결 과를 보면 저장과 인출이 서로 별개의 과정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 인할 수 있다.
- 피질이 백지처럼 거의 비어 있던 어린 시절에는 용량이 넉넉하니 정보가 수백, 수천만 개의 시냅스에 크고 굵은 글씨로 여유 있게 기록된다. 그러다 말년이 되면 백지 상태의 시냅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종이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은 것처럼 정보를 성기게 기록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냅스와 뉴런의 개조, 덮어쓰기, 상실 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시나리 오를 이용하면 리보의 법칙 Ribot's law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법칙에 따 르면 우리는 가장 최근의 기억을 먼저 잃고, 제일 오래된 기억을 제 일 나중에 잃는다. 이런 현상은 알츠하이머병에서도 관찰된다. 이 경우 그 사람의 인생은 역방향으로 천천히 지워진다. 처음에는 최 근에 사귄 친구와 손자를 못 알아보거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다 음에는 자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자기 배우자와 형제에 대한 지식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 우리의 경험 대부분을 장기기억에 저장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공간 절약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이 정신적인 스팸 메일에 해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억의 목적은 결국 정보 저장이 아니라 주변 세상의 사건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 으로 이 정보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다니엘 샥터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대한 정보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선에서만 유용하다.” 대량의 정보를 저장하는 것과 이 정보를 정 리하고 사용하는 것 사이에 절충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 환각지증후군도 직관에 어긋나지만, 신체지각과 관련된 더 기이 한 증후군도 존재한다. 특정 유형의 피질 외상(뇌졸중일 때가 많다) 을 겪고 난 후에 자기 몸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할 수 가 있다. 팔다리 자체는 제대로 기능한다. 근육, 그리고 팔다리를 척 수와 이어주는 신경은 온전하다. 이것은 보통 일시적인 형태로 나 타나는 희귀한 신체 무시 증상으로 신체망상분열증somatoparaphrenia 이라고 부른다. 의사가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의 해당 팔을 건드리 면 그 환자는 건드리는 것을 의식적으로 감지하지 못하겠다고 한 다. 하지만 아픈 자극을 가하면 그에 반응해서 반사적으로 팔을 움 직인다.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팔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팔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게 누구의 팔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모르겠다거나, 다른 사람의 팔이라 얘기한다. 한사 례에서는 자기 왼손이 의사의 손이라고 믿은 환자가 이렇게 얘기 했다. "그건 제 반지예요. 제 반지를 의사 선생님이 끼고 계시네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에서 올 리버 색스Oliver Sacks는 뇌졸중을 앓고 난 후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침대에서 떨어진 한 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환자가 나 중에 설명하기를 눈을 떠보니 사람의 다리 하나가 자기와 함께 침 대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 다. 그래서 그 다리를 침대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도 침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리는 바로 그 환자의 다리였다." 환각지증후군과 신체망상분열증은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다. 한 증후군에서는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 팔 다리를 지각하고, 다른 증후군에서는 육체적으로 멀쩡한 팔다리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두 증후군은 정신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자신 의 몸을 느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뇌의 뉴런만 활성화시켜도 건드리는 느낌, 혹은 팔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고 나면 환각지감각이 생겨나는 이 유를 이해할 수 있다. 환각지감각의 원인에 대해 처음으로 제기된 과학적 가설 중 하나는 이것이 잘려나간 신경이 사지 절단 부위에 서 다시 자라서 생긴 결과라는 것이었다. 대단히 논리적인 가설이 었다. 절단된 신경섬유의 말단부distal end가 실제로 남아 있는 절단 부stump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손을 지배하 던 신경이 절단 부위를 지배해서 중추신경계로 신호를 보낼 수 있 다. 그럼 중추신경계는 마치 잃어버린 사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이 신호를 해석한다. 초기의 환각통 치료법 중에는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절단부에 있는 신경, 혹은 척수로 들어가는 신경을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도 있었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런 수술이 효과를 보았지만 일반적으로는 환각통에 대한 영구적 치료가 이루 어지지 않았다.
요즘 과학자들은 환각지감각이 잃어버린 팔다리를 지배하던 신경으로부터 오는 비정상적인 신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때문에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적인 뇌 자극이 실제 자극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았던 원숭이 실험에서처럼, 정상적으로는 팔에 의해 활성화되어야 할 뇌 속 뉴런들이 지속적으로 흥분을 이어가는 바 람에 환각지를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아있다. 정 상적으로는 팔다리에 반응을 보여야 할 뇌 속 뉴런들이 어째서 그 팔다리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계속 활성을 이어가는 것일 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뇌의 가장 강력한 특성 중 하나인 적응 능력이 브레인 버그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 해준다.
- 초창기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주어진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메모리의 양을 미리 할당해야 했다. 즉 얼마나 많은 메모리가 사용 될지 미리 추측해야 했다. 그래서 초창기 일부 소프트웨어는 다룰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미리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 고 더욱 정교한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발되면서 동적 메모리 할당 dynamic memory allocation이 가능해졌다. 워드프로세서에 더 많은 글을 타이핑하면 그에 따라 파일에 할당되는 메모리양이 극적으로 늘어 난다. 계산 능력의 할당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뇌는 이런 전략을 수 천만 년 동안 사용해 왔다. 다만 피질 영역의 동적 할당은 몇 주나 몇 달에 걸쳐 일어나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 귀는 환경의 위험 요소와 노화 과정 에 특히나 예민하다. 우리가 갖고 태어난 소중한 유모세포가 애초에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달팽이관에는 가장 중요한 유형의 유 모세포인 내유모세포inner hair cell가 3,500개 정도밖에 없다(반면 각각 의 망막에는 광수용기photoreceptor가 1억 개나 들어 있다). 높은 진동수의 음 에 반응하는 유모세포가 손상을 입으면 당연히 고음을 듣는 데 장 애가 생긴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윙윙 소리는 난청으로 들리지 않 는 소리와 같은 음높이에 해당한다. 즉 달팽이관에서 높은 진동수 의 소리에 반응하는 유모세포가 손실되면 높은 진동수의 윙윙 소리 가 지속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환각 증상과의 유 사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명과 환각지 모두 정상적인 감각 입 력의 손상 혹은 결여와 관련이 있다. 이명은 환각지의 청각적 등가 물, 즉 환각음phantom sound인 것이다.
- 뇌졸중 후에 찾아올 수 있는 실어증, 운동통제력 상실, 신체 무시 등 여러 가지 신경학적 증후군 증상의 밑바탕에는 뇌의 모듈성이 자리잡고 있다. 외계인 손 증후군과 카그라스 증후군의 원인은 더 불가사의하지만 아마도 뇌의 특화된 하위시스템이 상실로 인 한 것일 듯하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전두피질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판단을 담당하는 '집행executive' 영역과 실질적인 실천을 담당
하는(즉 목표를 실제 손의 행동으로 옮기는) 운동 영역 사이의 소통 단절이 낳은 결과일 수도 있다. 카그라스 증후군은 안면 인식과 감정적 중요성 emotional significance을 이어주는 영역에 손상을 입은 결과라는 주장이 나와 있다. 우연히 세상을 떠난 가족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마주쳤다고 상상해 보자. 어리둥절한 반응이 나올 수는 있 지만 그 사람을 끌어안으며 긍정적인 감정적 반응이 나올 가능성 은 낮다. 그 사람의 얼굴은 알아보지만 그 얼굴에 따라오는 감정 적인 영향이 업로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카그라스 증후군 환자 의 경우 부모의 얼굴을 알아보지만 사랑이나 익숙함의 감정이 따 라오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뇌의 모듈은 지능, 영성, 용기, 창의성같이 명확하고 깔끔하게 정의된 속성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성격적 특성과 판단은 서로 다른 많은 영역의 통합적 노력이 필요한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각각의 영역들은 중요하지만 뭐라꼬 집어 규정하기는 힘든 역할을 담당한다. 뇌의 모듈들이 자동차 부 품처럼 변경 불가능한 고유의 전문적 역할로 특화되었다고 생각하 면 안 된다. 그보다는 축구팀과 비슷하다. 각기 선수의 수행능력은 다른 선수들의 수행능력에 크게 좌우되며, 한 구성원이 빠지더라도 다른 구성원이 대신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효 과적인지는 다양하게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 학습하고, 적응하고, 재조직하는 뇌의 놀라운 능력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신경 가소성은 외상에 반응해서 환각지와 이명 등의 장 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외상에 반응해서 브레인 버그가 표면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이런 조건 아래서 한 번도 검증이나 디버깅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테 니까 말이다. 피질 가소성은 뇌가 주변 세상에 적응하고, 그 세상 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것이지 외상이 나 부상에 적응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치열한 경쟁의 세상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개체는 십중팔구 더 이상 유전자풀gene pool에 끼지 못한다. 따라서 뇌 가소 성과 신체나 뇌에 가해지는 심각한 외상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 생할 수 있는 작은 문제들을 제거하는 선택압은 상대적으로 약했 을 것이다.
비행기 조종석에는 플랩 flap (비행기 날에게 경첩으로 연결되어 달린 판으 로 위아래로 움직여 비행기의 양력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 옮긴이)과 이착륙 장치의 위치, 엔진의 온도, 남은 연료, 구조의 온전함 등의 상태에 대해 측정해서 알려주는 계기판이 달려 있다. 이런 센서들 덕분에 조종석의 메인 컴퓨터는 이착륙 장치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컴퓨터가 이착륙 장치를 느끼지는 않는다. 인체도 전신에 감각 센서들이 분포되어 팔다리의 위치, 외부 온도, 남은 에너지, 구조적 온전함 같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계산 장치로서 뇌의 탁월한 점은 진화 덕분에 뇌가 말초 장치로부터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장치들을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당신이 어둠 속에서 깨어 있을 때 뇌는 그냥 당신 왼팔의 위치를 말로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팔에 대한 느낌을 머리뼈 바깥 세상에 투사함으로써 그에 대한 소유의식을 애써 만들어낸다. 이 세련된 제스처 놀이charade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뇌 자체의 가소성 메커니즘이 망가진 상황에서는 뇌가 더 이상 팔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 지점으로 팔에 대한 감각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뇌가 부여해 준 가장 쓸모 있고 탁월한 착각 중 하나인 신체 자각body awareness의 대가인지도 모르겠다
- 우리 선조들에게 인생은 지금보다 더 짧고, 예측하기도 힘든 여정이었다.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먹을 것을 구해서 살아남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만약 당신이 한 달 후에도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거나, 위에 나온 제안을 한 사람을 신용할 수 없는 경우라면 당장 현금을 손에 넣는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파산해서 아이들이 당장 쫄쫄 굶고 있는 경우에도 20달러를 더 받겠다고 한 달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기다렸다가 더 큰 보상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려면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제안을 한 사람이 미래에 내게 더 큰 보상을 해주리라 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이는 인류의 진화 역사 대부분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 1초라는 짧은 시간 척도 안에서도 뇌는 시간을 제멋대로 뜯어고 친다. 그저 시간을 왜곡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각표에서 사건들 을 삭제하거나 삽입하는 것은 물론, 사건의 실제 발생 순서를 뒤바 꾸기도 한다.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만들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 고 있지만, 천둥소리보다 번개를 먼저 보게 된다. 빛의 속도는 소리 의 속도보다 백만 배나 빠르기 때문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 속 사건에서도 현저한 시간 지연이 일어난다. 교향악 연주회에서 연주자가 심벌즈를 치면, 관객은 치는 것과 동시에 소리를 경험하게 될까? 그렇다. 무대와 100 미터나 떨어진 저렴한 좌석에 앉은 관객이라도 보는 것과 동시에 들리는 경험을 한다. 이 정도의 거리면 심벌즈로부터 오는 광자의 도착 시간과 공기 진동의 도착 시간 사이에 300밀리초 (0.3초) 정도의 시간 지연이 일어난다. 이 정도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출발신호를 듣고 뛰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시간이다. 하지만 뇌는 동시성에 대한 지각을 마음대로 조정해 버린다. 사실상 뇌가 자신이 지각하는 시각 자극의 도착을 지연시켜 소리 신호가 그 사이에 따라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 이 문장을 읽는 동안 당신은 각각의 개별 단어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각각의 단어를 고생스럽게 하나씩 이어 붙여가며 문장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단어와 구절들을 덩어리로 나누다가 어느 결정적인 시점에서 문장의 전체적인 의미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음의 두 문장에 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The mouse that I found was broken. (내가 찾아낸 마우스가 고장이 나 있었다)
The mouse that I found was dead. (내가 찾아낸 생쥐가 죽어 있었다)
양쪽 경우 모두 'mouse(컴퓨터 장치 마우스 혹은 생쥐)'의 적절한 의미 는 문장 맨 마지막 단어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 리는 마지막 단어에 도달하고 난 후에 처음에 해석했던 'mouse'의 의미를 바꾸는 식으로 문장을 이해하지 않는다. 위의 문장을 읽거 나 듣는 동안에 뇌가 문장 마지막 단어에 의해 확립된 의미에 맞게 'mouse'의 의미를 거꾸로 편집하는 것이다. 뇌는 마지막까지 기다 렸다가 문장의 의미를 의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각각의 단어에 대 한 인식이 실시간으로 순서에 따라 생성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 보다는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문장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이 나올 때까지 인식이 '잠시 멈춤'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찰을 확 장하면 의식 그 자체도 착각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의식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연속해서 설 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라내기, 붙여넣기, 시간의 덩어리 지연 하기 등을 통해 사후구성해서 바깥세상의 사건들에 대해 안이한 설명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 뇌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시간 측정 장치 중 그 내부 작동 방 식이 가장 잘 이해된 것은 아마도 일주기리듬 시계일 것이다. 사람, 초파리, 심지어 단세포 생명체까지도 낮과 밤의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30 어째서 단세포 생명체가 하루 중 시간을 신경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세포 생명체에서 일주기리듬 시계의 진화를 촉발한 원동력 중 하나는 아마도 태양으로부터 오 는 자외선의 해로운 효과였을 것이다. 자외선은 세포분열에 필요한 DNA 복제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피부 같 은 보호기관이 없는 단세포 생명체인 경우 빛으로 인해 생기는 복 제 오류에 특히나 취약하다. 따라서 세포분열을 밤에 하면 번식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고, 밤의 시작 시간을 예측할 수 있으면 밤이 찾아오기 전에 필요한 세포 장치들을 준비시킬 수 있어서 복제를 최적화할 수 있었다. 
- 애초에 뉴런은 단순한 생명체들이 가능한 먹이공급원을 감지하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잠재적 위협을 감지하면 그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진화했다. 이런 행위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만, 유기체가 시간을 알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원초적 형태의 뉴런은 시간을 알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의 군비경쟁이 진행됨에 따라 적절한 시간에 반응하는 능력, 즉 다른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하고, 다가올 사건을 예상하고, 결국에 가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신호를 이용해 소통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자연선택에서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뉴런 네트워크가 몇 밀리초에서 몇 시간에 이르는 다양한 시간 척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해줄 적응과 전략 이 조금씩 등장했다. 하지만 진화의 설계가 모두 그렇듯이 시간을 알아내는 능력은 무계획적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많은 특성이 그냥 빠져 있다가 나중에 땜질식으로 추가됐다. 일주기리듬을 생각해 보 자. 생명이 지구에 살기 시작하고 30억 년 동안 생명체가 몇 시간 만에 지구를 반 바퀴 가로질러 이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0세 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신속하게 리셋할 수 있는 일주기리듬 시 계를 만들어야 할 진화적 압력은 한 번도 작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로 나타나는 것이 시차증jet lag이다.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해 본 사 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미국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나면 며칠 동안은 수면 패턴과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에 문제가 생긴다. 손 목시계와 달리 우리 내면의 일주기리듬 시계는 리셋 명령이 없다.
- 진화는 원래 두서없이 설계가 이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생물학적 시간 측정 장치를 뒤섞어서 갖게 됐다. 이 각각의 장치들은 해당 시간 척도에 맞추어 특화되어 있다. 뇌가 시간을 알아내는 데 사용하는 다양한 개별 전략들 덕분에 사람은 말과 모스부호를 이해하는 능력, 빨간 신호등이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을 판단하는 능력, 지겨운 강의가 끝날 때가 됐다고 예상할 수 있는 능력 등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게 됐다. 뇌가 시간을 알아내는 데 사용하는 전략은 몇 가지 브레인 버그로도 이어졌다. 예를 들면 시간이 주관적으로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고, 착각해서 감각 자극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원인과 결과 사이의 적절한 지연시간이 이 정도라고 선천적으로 가정하는 바람에 정신적 맹점이 생기고, 자신의 행위가 낳을 단기적 결과와 장기적 결과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등의 버그다. 이 마지막 버그는 우리의 삶에 가장 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인생이 짧고, 예측 불가능한 질병, 먹거리, 날씨 등에 휘둘리던 세 상에서는 복잡하게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수고를 무릅쓰는 것이 별 장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정반대다. 지금 은 장기적인 생각의 부족이 가장 큰 위협일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 는 진화적으로 현재 중시 편향present bias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건강과 경제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보다는 근시안적 성향에 기댄 단기적 해결책을 약속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게 만든다. 아동에서 성인으로 발달하는 데 필요한 요소는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을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즉 기다려서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진화가 동물에게 특정 자극(포식자의 냄새나 등장 등)을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램 해놓았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일부 생명체가 다른 동물의 공포 회로를 조작하는 능력을 진화시켰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부 기생생물은 자신의 의도 에 맞추어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름끼치는 능력을 갖 고 있다. 광견병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광견병에 걸린 개는 침을 줄줄 흘린다. 그 침 안에는 다음 숙주를 감염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바이러스가 가득 들어 있다. 만약 감염된 개가 하루 종일 어느 구석 에 처박혀 누워있기만 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무척 낮을 것이다. 하지만 개가 공격성이 강해져 다른 동물을 물면서 돌아다닌다면 바이러스가 잠재적 숙주의 혈류로 침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보잘 것 없는 광견병 바이러스는 신체강탈자처럼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개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기 생neuroparasitism의 또 다른 사례로 톡소플라스마원충Toxoplasma gondii] 라는 단세포 생명체가 있다. 이 원생동물의 생활사를 보면 고유숙 주인 고양이의 몸속에서만 번식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중간숙주의 몸에서 보내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중간숙주 중 하나가 쥐다. 톡소플라스마는 일단 쥐의 몸속에 들어가면 포낭cyst을 형성한다. 이 포낭이 쥐의 몸속에서 고양이의 몸속으로 옮겨가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자연적으로도 일어난다. 하지만 이 기생충은 사악한 중매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쥐의 공포 회로를 망가뜨려서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지움으로써 낭포가 쥐에서 고양이 뱃속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동물이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유전적으로 부호화하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진화적 적응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 히 경직된 전략이기도 하다. 느린 진화적 시간척도에서만 재프로그 래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섬에 새로운 동물이 도착한 경우처럼 새로운 포식자가 등장했을 경우에도 공포회로를 업데이트하려면 수천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동물에게 수명 기간 동안 자기가 두려 워해야 할 대상을 학습하는 능력을 부여하면 포식자를 피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전략이 열린다. 포식자가 등장하기 전에 어떤 소리나 냄새가 나는지, 그리고 포식자가 돌아다닐 가능성이 높은 장소가 어디인지 학습할 수 있다.
- 영장류의 진화 기간 대부분에서 화가 난 개체와 낯선 개체에 대 한 선천적인 공포, 혹은 그런 개체들에 대한 공포를 쉽게 학습하 는 성향은 수명을 늘려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침팬지는 낯선 개체 에게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수컷들은 자기 영역에 들어 온 외부 개체를 때려죽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공격은 대단히 참혹해서 희생자의 고환을 물어뜯는 경우도 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이렇게 말했다. "침팬지가 외부인 혐오증 xenophobia이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동물원 같은 인공적 인 환경에서도 이미 자리 잡은 사회집단에 새로운 수컷 성체를 도입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영장류와 기타 사회적 동물이 외부자에 대해 공격성을 보이는 데는 먹이와 암컷을 향한 경쟁 등 많은 이유 가 있다. 침팬지에서는 외부자에 대한 공포가 학습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도 외부자 에 대한 공포를 학습할 준비가 선천적으로 되어있을 공산이 크다. 인간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30 외부자를 불편하게 여기고 신뢰 하지 않는 선천적인 성향은 진화적으로도 말이 된다. 이것은 기본 적인 생존 전략의 일부다. 인간의 진화 역사 내내 이웃한 집단들 사 이에서 지속적으로 경쟁과 공격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이런 의문이 든다. 어째서 공포가 그렇게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포 회로 중 상당 부분은 전액골피질prefrontal cortex 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동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전액골피질을 구 성하고 있는 수많은 영역들은 의사결정, 주의력 유지하기, 행위 및 의도 다스리기, 특정 감정이나 생각 억제하기 등 우리가 집행기능 executive function 이라 부르는 것에 관여한다.3 궁극적으로 보면 우리 의 행위는 집단 프로젝트로 보인다. 편도체처럼 오래된 뇌 영역과 전두엽에 새로 등장한 모듈들 간의 협상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 다. 이런 뇌 영역들이 협상을 통해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절충해서 합의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런 균형은 맥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에 때로는 감정으로 크게 편향될 수 있다. 편도체에서 피질 영역으 로 향하는 연결(축삭)의 수가 피질에서 편도체로 향하는 연결의 수 보다 훨씬 크다. 신경과학자 조르두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상 황으로 보면 피질이 편도체에 미치는 영향력보다는 편도체가 피질 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감정적 각성이 생각을 지배하 고 통제할 수 있다."
- 공포 관련 브레인 버그가 생겨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할지 결정하는 유전적 서브루틴이 지금과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그 코드 중 상당 부분이 아예 다른 종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고물이 된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포식자와 이방인들이 예전처럼 위험하지 않고, 두려워해야 할 더 중요한 대상 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아예 받아보지 못했다. 지금은 포식자, 독이 있는 생명체,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덜어내고 빈곤 근절, 질병 치료, 이성적인 방위 정책 개발, 환경 보호 등의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도 말이다.
공포 관련 브레인 버그가 생기는 두 번째 이유는 관찰을 통해 두 려움을 학습할 준비가 너무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찰 학습은 언 어, 문자, 텔레비전, 할리우드가 등장하기 이전에 진화했다. 또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고, 실제 세계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볼 수 있기 전에 말이다. 간접 학습은 부분적 으로는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성에 부분적으로 저항성이 있고, 허구와 사실을 분간할 준비도 덜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더군다 나 현대 기술은 한 가지 무서운 사건을 거듭 반복해서 보여줄 수 있 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회로 안에서 그 사건에 대해 설명이 과장될 수 있다.
- 우리의 유전적 인습이 낳은 한 가지 결과가 있다. 원숭이가 뱀의 위험성에 대해 당장이라도 결론을 내릴 준비가 선천적으로 되어 있 는 것처럼, 우리 역시 최소의 증거만으로도 다른 부족이나 국가의 사람들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해 섣부른 결론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극적이게도 이런 성향은 자기충족적self-fulfilling이 다. 서로에 대한 공포가 서로에 대한 공격성을 자극하고, 이것이 다 시 서로에 대한 공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의 신경 메커니즘과 그 버그에 대해 더 긴밀히 이해하게 됨에 따라 우리는 낡은 선사시대 유전자의 속삭임과 실제로 우리의 안녕을 위험에 빠 뜨릴 수 있는 위협을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때로는 직관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면서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직관을 이용한다. (마크 해던Mark Haddon.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철로처럼 평행한 선이 망막에 투사되면 이 평행 한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서로에게 수렴한다(두 철로 사이의 각도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다). 종이 위에 그냥 두 선이 점점 더 서로 가까워 지게 그리기만 해도 이런 원근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뇌가 이 런 수렴을 이용해 거리를 추론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착시 에 나온 사진은 건물의 아래쪽에서 바라본 모습을 찍은 것이다. 두 탑이 먼 쪽(이 경우는 높은 쪽)에서 수렴하지 않는 것을 보고 뇌는 이것 을 두 탑이 평행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탑이 벌어 지고 있다는 착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돈은 근래에 등장한 문화적 발명품이다. 돈은 가치를 쉽게 수량 화하고 선형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신경운영체계는 수치로 표현되는 결정을 내리거나, 모든 사람이 가치가 있는 것이 라 믿을 때만 가치가 발생하는 종이 쪼가리의 교환과 관련된 결정 을 내리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생태학적으로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음식 등 실물과 관련된 제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음식이 달려 있는 경우라면 손실회피 편향이 조금 더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았던 우리의 선조 우그족이 이틀치 정도의 식량을 숨겨두었는데 화성의 인류학 자가 짠하고 나타나서 식량을 걸고 2:1의 배당률로 도박을 제안했 다. 이 상황에서 우그족이 지금 당장 손에 든 음식에 유별나게 집착 하는 것은 대단히 이성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우선 우그족이 지금 당장 굶주려 있고 음식도 귀한 상황이라면 손실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돈과 달리 음식은 '선형적인' 자원이 아니 다. 음식을 2배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그 가치도 2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음식은 상할 수 있고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박 같은 제안은 거기에 참여 하는 당사자들 간에 대단히 높은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로또 복권을 구입하거나 카지노에 갈 때는 그런 신뢰가 당연히 형성되어 있지만 인류의 진화 초기에도 그랬을 가능성은 낮다. 우리 뇌에 내장되어 있는 손실회피 편향은 아마도 우리 원시 선조들이 살던 시절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당시에 우리 선조들은 돈처럼 다다익선의 깔끔한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 자원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 우리의 삶을 빚어내는 결정들은 부분적으로 보면 대단히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신경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자동 시스템은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대체로 뇌의 연관구조에 의존한다. 이 시스템은 더 감정적이다. 이것은 좋게 들리는 얘기 인지 나쁘게 들리는 얘기인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 합리적인지 위험한지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38 두 번째 시스템인 추론 시스템은 의식적으로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 것으로 오랜 기간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가꾸어진다.
자동 시스템은 기존에 확립되어 있던 가정을 재평가하는 법을 배 울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추론 시스템의 지도가 필요하다. 어 린 시절에는 키가 크고 가는 유리잔이 키가 작고 넓은 유리잔보다 우유가 더 많이 들어 있다고 자동적으로 가정한다. 정상적인 인지 발달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동 시스템의 수많은 오해가 수정되지만, 일부 버그는 그대로 남게 된다.
- 우리가 일부 비이성적인 편향을 갖게 된 데는 뇌가 지금 살고 있 는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탓도 분명 있다. 하지만 프레이밍 편향이나 기준점 편향 같은 일부 인지편향에 대한 일차적인 설명은 자동 시스템의 주요 업무 중 하 나, 즉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필요한 맥락을 굳이 애쓰지 않고도 신 속하게 제공하는 임무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맥락은 소중한 정보의 원천이다. 인간의 뇌가 정교 하게 유연하고 적응 능력도 뛰어난 계산장치가 될 수 있는 데는 맥 락 민감성도 큰 역할을 한다. (현재의 컴퓨터 기술이 갖고 있는 가장 악명 높은 단점은 맥락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뇌의 탁월한 맥락 민감성은 하드 웨어에서 직접 비롯된 산물이다. 풍부한 상호연결성을 통해 정의 된 장치에서는 한 뉴런 집단의 활성이 반드시 다른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맥락 민감성은 신경 하드웨어의 핵심부 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끄기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해도 대단히 어렵다. 심지어 맥락적 단서를 무시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끄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추론 시스템을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인 지편향을 착취당해 피해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대다수 민중은 이해력이 대단히 제한되어 있고, 지능은 보잘것없지만, 잊는 능력만큼은 엄청나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선전을 위해서는 주제를 몇 가지로 한정해서 슬로건을 통해 이해시키고 싶은 내용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두 이해할 때까지 슬로건으로 되풀이해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
- 미국 내 회사들은 매년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광고에 투자해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네 제품에 수조 달러의 돈을 쓰도록 설득하고 있다. 이런 광고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측정하기는 힘들지 만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캠페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사례에서는 이런 접근방식이 너무 성공적이어서 문화의 기본 구조 자체를 바꿔 놓기도 한다. 20세기 초의 담배 광고와 20세기 말의 병 에 담은 생수 마케팅은 마케팅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전자의 경우 우리는 실질적인 기능이나 이득 은 거의 없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건강과 목숨에 치명적인 것으 로 입증된 제품을 구입하도록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우리는 사실상 공짜로 구할 수 있는 제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도록 설득당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병에 담긴 생수와 수돗물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물며 브랜드 별 차이는 더더욱 구분하지 못한다. 병에 담은 생수 회사에서 블라인드 시음 테스트를 해보았다는 얘기를 듣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 연구자들은 원숭이가 상대방 개체를 바라보기를 좋아하는지 밝 혀내기 위해 이 강제적인 양자택일 과정을 변형시켜 보았다. 우선 이들은 원숭이에게 선택권을 주어 왼쪽을 보면 주스를 주고, 오른 쪽을 보면 그보다 적은 양의 주스를 주었다. 그 결과 당연히 원숭이 들은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쪽으로 강한 편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적은 양의 주스를 다른 원숭이의 사진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원숭이가 왼쪽을 보면 더 많은 주스를 보상으로 받게 되고, 오른쪽을 보면 주스는 조금 덜 받는 대신 다른 원숭이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진은 그냥 다른 원숭이의 얼굴일 수도 있고, 원숭이 포르노(암컷 원숭이의 엉덩이 사진)일 수도 있었다. 더 많은 주스를 받을 것이냐, 주스는 조금 덜 받더라도 다른 원숭이의 사진을 엿볼 것이 냐 선택권을 주었더니 원숭이들은 후자를 선호했다. 흥미로운 점은 얼굴 사진의 경우 그 사진이 우두머리 수컷의 사진일 때만 이런 선 호도가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 원숭이들은 사회적 위계에서 자기보 다 높은 개체를 엿볼 수 있다면 일부 주스를 기꺼이 희생했지만, 자 기보다 낮은 개체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을 사람에 비유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사람도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 의 사진이나 뉴스가 나오는 잡지나 타블로이드 신문을 보려고 기꺼 이 자신의 주스를 희생하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개체를 보고 학습을 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그들을 관찰해 야 한다는 것이다. 원숭이가 주스를 일부 포기해서라도 집단의 지 배적인 개체들을 쳐다보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은 사회적 학습과 우 선적 모방의 무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뇌가 서로 다른 옵션을 표상하고 부호화하는 방식이 내재적으로 우리의 선택을 편향하는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면 미끼 효과 같은 이상하고 사소한 버그는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정교한 피질 회로 의 결함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비슷한 대상들(색, 강도, 숫자, 자동 차 등)끼리는 뉴런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부호화가 이루어진다는 사 실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정은 서로 다른 뉴런 집단의 상대적인 활성 규모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옵 션이 몇 개나 있느냐가 국소적 수준에서 최고의 옵션에 대해 인식 되는 가치를 끌어올리게 된다.

- 인간의 고차원적인 정신적 능력은 제일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믿게 했고, 이어서 주물 숭배, 다신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신교를 믿게 했다. 이성의 힘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한, 이 정신적 능력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다양하고 이상한 미신과 관습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찰스 다윈)
- 부산물 가설에서는 코가 선글라스를 올려놓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듯 종교적 믿음 역시 진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과 반대로 말하는 가설도 있다. 초자연적 믿음 과 종교적 믿음에 대해 우리가 호감을 갖는 것은 진화적 압력의 직 접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자 E. O. 윌슨Wilson은 이렇게 말 했다. "인간의 정신은 신을 믿도록 진화했다. ... 선사시대를 거치며 뇌가 진화하는 동안 초자연적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큰 장점으 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종이 종교적 믿음 과 미신적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했기 때문이다.
-0 일반적으로 진화는 개인의 수준에서 작동한다. 새로운 유전자, 혹은 낡은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가 그 소유자의 번식 성공률을 개선해 주는 경우는 전체 유전자 풀에서 그 유전자의 비율이 높아 진다. 표준의 진화 과정에서는 적응력이 뛰어난 개체에게 유리하게 진화가 일어나지만, 종교적 믿음이 진화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믿는 사람 중에는 그 진화가 이런 표준의 과정을 따르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협동의 진화를 다루면서 5장에서 잠깐 다루었던 이 집 단선택 과정은 유전자(혹은 유전자군)가 사회적 단위 social unit를 이루어 활동하는 개체로 구성된 집단에게 이롭게 작용할 경우에는 설 사 그 유전자가 단일 개체의 성공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해도 진화에 의해 선택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 서는 처음에 이 새로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구성원의 숫자가 어떤 임계치에 도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일단 이 임계치에 도달하고 나 면 이 유전자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전자가 발현되 는 사회집단이 이 유전자가 결여된 사회집단과의 경쟁에서 유리하 기 때문이다.
특히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은 한 집단 내의 개인들에게 종교적 성향을 부여해 주는 일군의 유전자는 집단 적 협력의 비약적 발전을 촉진해서 집단의 적응도fitness를 증진시켰 으리라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종교적 믿음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일인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일인을 위하는 하나의 초유 기체 superorganism로 기능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호미닌 hominin (유인원 이 후에 등장한 우리의 선조)의 진화 기간 중 상당 부분에서 남성은 수렵에 나서고, 여성은 채집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이렇게 구한 음식은 함 께 공유했다. 수렵채집사회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 원들 간에 상당한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비밀리에 음식을 뒤로 빼돌리는 일이 많이 일어나면 이런 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종교가 신뢰를 촉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집단에서는 타인이 자기에게 해주기 바라는 대로 타인에게 행하라는 맥락에 따라 일종의 도덕률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도덕률은 자율 시행 제도honor system만으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도덕률을 강화하는 궁극의 경 찰제도를 제공해 준다. 첫째, 신은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다. 들키 지 않고 이 눈과 귀를 속이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속인 자는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의 분노도 사게 된다. 그에게 영원히 고통을 받으리라는 위협은 규칙 을 준수하면서 살아야 할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을 것이다. 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믿음은 다른 집단과 폭력적인 갈등이 일어났을 때 이점을 제공하여 집단의 적응도를 강화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전사들 간에 흔들리지 않는 일체감이 자리잡고, 그와 함께 신이 자신의 편이라 는 확신과 영생에 대한 믿음이 함께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전투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초자연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생물학적 기원을 다루는 이론이라면 이런 믿음이 현재 낳고 있는 적응에 불리한 결과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간적 행동의 다른 많은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종교의 진화를 종교가 현재 아우르고 있는 것만을 설명해서 이해하려 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성욕처럼 당연히 적응에 유리한 것들도 오늘날에는 어느 정도 적응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피임법의 등장으로 인류는 섹스를 번식이라는 섹스의 궁극적인 생물 학적 목표와 분리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케팅 산업과 패션 산업은 물론이고 우리의 개인적 노력 중에서도 성욕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많다.
- 초자연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신경적 기반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런 믿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그저 다른 능력에 편승해서 생긴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그 지배력이 너무 크다. 나는 종교적 믿음이 선천적으로 새겨진 특 권적인 상태에서 혜택을 입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좀 더 이성적인 뇌 영역들과의 협상력이 강해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복잡한 특성처럼 이 특별한 신경 상태도 한 번의 단계를 거쳐서 등 장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걸쳐 진화했을 것이다.
- 원래 수백만 년 전 호미닌의 피질이 확장되던 초기에는 질문을 현실적 인 질문과 비현실적인 질문으로 구분하는 성향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계산 자원을 사용할 때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 초기 단계에서 생각을 자연적 범주와 초자연적 범주로 분간하는 능 력이 개인에게 적응상의 이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입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답 가능한 질문과 대답 불가능한 질문을 구분할 수 있는 사 람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생식 성공률을 높이는 활동에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집단선택 이론에서 제안한 것처럼 일단 초자연적인 믿음에 우호 적으로 작용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안에 생겨나면 거기서 더욱 다듬 어지며 자연선택되었을지도 모른다. 선조들의 종교가 협동과 이타주의 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셋째, 지난 10,000년 동안은 초기 단계에서 유전적으로 부호화된 특성 들을 활용해서 마침내 원시적인 믿음 체계가 현대적인 종교로 바뀔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대 종교는 농업의 등장 이후로 점점 더 커지는 인 구집단을 조직하고 통제하기에 더욱 적당한 형태를 취하게 됐다. 현대 종교가 갖고 있는 다면적인 특성은 이 과정에서 활용된 인지능력의 복 잡성이 낳은 결과다. 이런 인지능력으로는 부산물 이론에서 제안하듯, 종교와 전혀 무관한 이유로 작동중인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자연적 현 상과 초자연적 현상 사이의 원시적인 구분도 포함된다.
-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과학과 종교가 한 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두 개의 "서로 중첩되 지 않는 교도권導權, magisterium(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위임받은 권한 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권한- 옮긴이)"에 해당한다고 믿었다. 어쩌면 믿음의 초자연적 범주와 자연적 믿음은 처음에 굴드(그리고 나머지 우리) 에게 이것이 사실임을 설득하기 위해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두 개 의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을 선천적으로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선조 들은 우리 인지 능력 너머의 다양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 를 멀리하고, 신피질이 부여해 준 힘을 생존에 필요한 더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믿음과 신념이 이성과 기본적 본능 모두 에 대해 강력한 거부권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거와 현대의 수 많은 데이터를 놓고 보면 초자연적인 믿음은 그저 다른 정신적 능 력이 낳은 부산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보다는 우리의 신 경운영체계에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초자연적인 믿 음이 그곳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브레인 버그임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 브레인 버그의 두 번째 원인은 뇌의 계산 단위, 그리고 뇌 구축의 밑바탕이 되는 구조다. 뉴런은 오로지 네트워크를 위해 설계됐다. 컴퓨터는 0과 1을 뒤집으며 메모리를 저장하고, 유전자는 A, G, T, C의 염기순서로 정보를 저장한다. 하지만 뇌는 뉴런들 사이의 연결 패턴에 정보를 저장한다. 이런 접근방식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뉴런 들 사이의 연결 패턴이 경험에 의해 빚어져야 한다. 함께 사용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은 시냅스 가소성, 그리고 시냅 스가 시냅스전 뉴런과 시냅스후 뉴런이 잘 동기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똑똑한 NMDA 수용체 덕분에 가능하다. 신경 네트 워크 안에 저장된 정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점화 현상이다. 한 개념을 표상하는 뉴런들이 활성화될 때마다 이들은 파트너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마치 당신이 어떤 웹사 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브라우저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 하기 위해 은밀하게 그 페이지와 연결된 모든 웹페이지를 메모리 에 미리 로딩만 해두고 보여주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알고 보니 일 부 웹브라우저에는 선반입 prefetching이라고 하는 이런 특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강력하고 우아하지만 뇌의 연관구조와 점화 효과가 함께 어울려 이름을 헷갈리거나 연관된 개념들을 뒤죽박죽 뒤섞는 경향에서부터 프레이밍 효과와 기준점 효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케팅에 민감하고, 관련 없는 사건에 행동이 영향을 받는 성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레인 버그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의 신경회 로는 관련된 개념들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념과 관련 된 감정이나 몸 상태도 연결한다. 그 결과 단어에만 노출되어도 행동과 감정이 오염될 수 있다. 의미 점화 현상은 컴퓨터 스크린 위에 쌍으로 짝 지은 단어들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보여줄 경우 서로의 미적으로 관련이 있는 짝에서 더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비단뱀python'이라는 단어보다 '인내심 patience'라는 단 어를 먼저 보여주었을 때 '차분하다calm'라는 단어를 더 빨리 알아 볼 수 있다. 하지만 뇌는 계산을 담당하는 장치들이 칸칸이 구획으 로 나뉘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인내심'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 는 신경활성이 뇌의 다른 영역으로 새어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인내심'이란 단어와 접촉하고 나면 이어지는 대화를 중간 에 끼어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느 수준에서는 뇌 속 모든 것이 나머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모든 생각, 감정, 행위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미묘하지만 서로 다른 많은 혼선의 사 례들이 연구를 통해 보고되었다. 그 중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외국 통화의 가치를 추정해 보라고 했을 때 가벼운 클립보드를 들 고 있을 때보다 무거운 클립보드를 들고 있을 때 통화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마치 클립보드의 무게가 통화의 무게로 옮겨간 것 처럼 말이다. 10 또 다른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요청했더니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 다." 그리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일주일치 먹을 것을 사려고 주말 에 슈퍼마켓으로 쇼핑을 가면 음식을 덜 사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경험해 봐서 알 것이다. '배(더 정확히는 시상하부)'가 포만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한 주 동안 필요한 음식의 양에 대한 추 정치가 줄어든다. 몸과 인지 사이의 상호작용을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이 몸과 마음 사이의 특별한 유대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냥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연결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필연적 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시간은 앞 을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머릿속에 표상된다. 그래서 미래가 앞에 펼쳐져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앞으로forward'라는 개념은 앞쪽으로의 움직임을 촉발할 수 있는 운동회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자동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미래를 표상 하는 뉴런의 활성이 '앞으로'라는 개념을 표상하는 뉴런으로 퍼져나가고, 이것이 다시 앞쪽으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운동회로를 자극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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