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지표의 배신

경영 2020. 8. 7. 08:32

-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계량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에런 해스펠)
- 머니볼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야구팀의 경영진이 측정지표를 이용해 팀의 순위를 끌어올린 실화를 다룬 책이다. 이때부터 메이저리그에는 안타 몇 번보다 홈런이 점수를 내기에 유리하다는 계량적 분석이 지배했다. 측정학을 전공한 분석가들에게 코칭을 받은 타자들은 이제 안타가 아닌, 홈런이 잘 나오는 “발사 각도” 를 찾아내는 데 골몰했고 삼진 아웃도 기꺼이 감수했다. 그 결과, 프 로 야구가 측정 분석에 따라 능률화되었고 경기는 더욱더 규칙성을 띠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안타가 줄어들면서 각 루를 도는 선수들도 줄고 도루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정작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각 루를 도는 선수나, 주자가 무사히 본 루에 들어올지 말지 알수 없을 때의 긴장감 같은 야구의 불규칙성인데 말이다. 결국 경기가 지루해지면서 관객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앨런 제이콥스도 한때는 야구 광팬이었지만, 지금은 환멸을 느끼고 돌아선 사람이다. 그는 서평에서 메이저리그 야구가 “우리의 논점과 생각과 관심을 측정과 평가의 기법에” 맞추려 하는 측정 강 박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오늘날의 광고 트렌드 또한 단순히 측정하기 쉬워서 특정 옵션을 선택하는 “측정 가능성 편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제 기업들은 브랜드 개발을 위해 다양한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기보다는 링크 클릭의 형식으로 직접적인 반응을 알려주는 매체에만 광고를 내보내려고 한다. 이런 광고들은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지만 옥외 광고나 텔레비전 광고, 신문 광고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논리에 따라, 기업들은 인터넷상에서 광고 트래킹을 제어하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광고비를 이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는 가짜 웹사이트를 만든 뒤 클릭을 유도해 광고 수익을 내는 수법으로 광고주들의 돈을 뜯어내는 “봇bot” 기반의 대규모 광고 사기로 이어졌다.
- 『머니볼』이란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듯이, 통계 분석은 분명하게 측정 가능하지만 간과되는 특성들이 때로는 축적된 경험에 근거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전에 측정되지 않은 것을 측정한 결과는 신중하게 사용하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성과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뜻하지 않은 위험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바람직하다. 만약 실제로 측정되는 항목과 측정으로 알고자 의도한 항목이 서로 일치하고 거기에 판단까지 결합된다면, 측정은 현역 전문가들이 개인과 조직의 자체 성과를 평가하도록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측정이 보상과 처벌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될 때, 다시 말해 측정지표가 성과급 또는 등급의 기준이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성과 측정 제도는 종종 터무니없는 실수나 태만의 사례를 적발함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뿌리치기 힘들 만큼 매력적이지만, 모든 사례에 적용되는 것이 문제다. 실제 위법 행위를 찾아내는 데 적절한 도구들이 모든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성과 측정에 관한 초기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성과가 저조한 사람은 실력을 키우거나 시장에서 낙오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표 준화된 측정이 확대되면 효용이 감소하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즉, 측정 의존증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길에서 멀어지는 결과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을 계량화하려고 할 때 측정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 권력과 돈, 지위에는 실질적인 이익이 걸려 있다. 측정 강박은 자 원이 일선 생산자에게서 관리자, 행정인, 데이터 수집 및 조작 담당자에게 흘러가도록 만든다. 측정지표는 관리자들이 전문가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려는 관리자와 직업 윤리를 중시하는 전문가(의사, 간호사, 경찰, 교사, 교수 등) 사이에 종종 긴장을 일으킨다. 직업 정신은 장기간의 교육과 훈련을 거쳐 습득한 방대한 지식, 일에 대한 자율과 통제력, 소속 직업군과의 동일시 및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 내적 보상에 대한 높은 인지, 그리고 비용보다는 고객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
- 최근 몇십 년간 점점 더 많은 조직을 잠식하며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된 문화 양상이 있다. 이러한 양상을 기호에 따라 문화적 “밈meme(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단위 - 옮긴이)”, “에피스테메episteme(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 옮긴이)”, “담론”, “패러다임”, “자기강화식 수사법 체계”, 또는 간단하게 유행이라고 부 른다. 이 양상에는 자체적인 어휘와 주요 용어들이 따라온다. 이 양상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말하는 방식, 더 나아가 세계에 대해 생 각하고 그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편의상 이를 측정강박이라고 부르자. 측정 강박의 주요 전제는 측정과 개선의 관계에 있다. 저명한 19세기 물리학자 켈빈 경(윌리엄 톰슨)이 말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격언이 있는데,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 라는 말이다. 1986년에 미국 경영학의 정신적 지도자인 톰 피터스는 “측정은 일의 종결이다”란 모토를 받아들였고, 이는 측정지표의 기본 신념이 되었다. 이윽고 일각에서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개선할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 성과급의 바탕이 되는 동기부여 이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기대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역기능 양상은 1975년 미국과 영국의 두 사회과학자가 각각 독립적으로 밝혀낸 사례를 통해 공식화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의 이름을 따서 “캠벨의 법칙”이라 일컫는 이 패턴은 “사회적 의사결정에 더 많이 활용되는 정량적 사회 지표일수록 부패 압력에 더 많이 시달리고, 이 지표로 감시하려는 사회적 절차 또한 더 쉽게 왜곡되고 부패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패턴의 변형으로, 영국 경제학자의 이름을 딴 굿하트의 법칙은 “통제에 사용되는 모든 측정수단은 신뢰할 수 없다" 고 설명한다. 달리 말해, 측정하고 보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꼼수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
- 테일러주의의 근간은 노동자들의 암묵적 지식을 관리자들이 개발, 계획, 감시 및 통제하는 대량 생산 방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과학적 관리법’ 하에서는 관리자들이 예전에는 노동자들이 처리하던 전통 지식을 모두 통합한 뒤 이 지식을 분 류하고 표로 만들어 규칙이나 법칙, 공식으로 환원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 따라서 기존 시스템에서 노동자들이 수행하던 모든 계획은 새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경영진이 과학의 법칙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 테일러에 따르면 “방법의 표준화 강화, 최선의 도구 및 근로 조건의 채택 강화, 협력 강화를 통해서만 이처럼 빠른 작업을 장담할 수 있다. 또한 표준 채택을 강화하고 이런 협력을 강화하는 일은 오롯이 경영진의 책임이다.”
- 공장 생산을 체계화하는 테일러주의 방식은 1차 세계 대전과 2차세계 대전 사이에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이 채택되었고, 1950년대에는 제너럴 모터스 같은 회사의 규범이 되었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paniel Bell의 지적처럼 이런 회사에서는 “생산을 체계화하고 감독하는 상부의 경영진이 (...) 대리점에서 모든 두뇌 노동의 요소를 떼어놓는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기획, 일정, 설계 부서가 있다.” 그 결과, 계층 밑바닥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일과가 더 욱 지루해졌다.16 20세기 말에 측정지표의 등장으로 이러한 체계화 방식은 제조업을 벗어나 서비스 부문에까지 도입되게 되었다.
- 경영을 학문으로 바꿔 장래의 미국 재계 간부들을 키워 내려던 이러한 시도는 어느새 관리주의 신조로 탈바꿈했고, 경험과 깊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판단의 역할은 경시되었다. 관리주의는 사기업이든, 정부 기관이든, 대학이든 조직 간의 차이점은 유사점보다 덜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모든 조직은 동일한 경영 기법과 기술도구를 사용해 성과를 최적화할 수 있다. 경험에 기초한 판단과 전문기술은 업무 노하우를 축적해 조직에 번영을 가져다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측정지표의 마법 앞에서 관리주의는 이 모든 이점을 업신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 베트남전을 관장하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맥나마라는 미국의 전승 상황을 판단하는 신뢰할 만한 척도로서 “적의 전사자 수” 라는 측정지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전장에 나가 있는 장군 중에는 사망자 수를 성공의 유효한 측정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 숫자가 과장되거나 완전한 조작임을 알았다. 그 결과는 《이코노미스트》의 데이터 편집자 케네스 쿠키어와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인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계량화의 수렁”이었다. 맥나마라의 국방부를 나타내는 특징은 군사전략가 에드워드 루트왁의 말처럼 전문적인 군사 지식을 민간의 수학적 분석으로 대대적인 대체를 한 것이었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시스템 분석가들은 지적 훈련의 새로운 표준과 크게 개선된 부기 방식만 도입한 것이 아니라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 다시 말해 측정이 불가능한 단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훈련된 무능도 초래했다. 각 군대는 측정이 가능한 “생산량”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했다. 공군은 폭격 출격 횟수를, 포병대는 포탄 발사 횟수를, 보병대는 사망자 수를 활용했고, 이는 맥나마라와 국방부 동료들이 개발한 통계 적 지수를 반영했다. 하지만 루트왁이 지적한 것처럼, 지도에 승패 를 보여주는 명확한 선이 없는, 전선 없는 전쟁에서 진전을 나타내는 유일한 측정수단은 정치적이고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적군의 결사 의지에 미치는 효과가 그렇다.
- 신뢰가 줄어들수록 측정된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커진다. 사회적 유동성이 높고 인종적 이질성이 큰 민주주의 사회와 측정된 책임성의 문화 사이에는 선택적 유사성이 있다. 상류층이 세대를 망라해 확고하게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그 계층의 구성원들이 자 신의 위치에 안정감을 느끼고 서로를 신뢰하며 가정 환경에서 통치방법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정당한 자신감이든 그렇지 않는) 큰 자신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와 대조적으로, 엘리트층이 외부에 열려 있고 변동성이 큰 능력중시 사회에서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 기준을 찾 으려고 한다. 그리고 숫자는 객관성의 요소가 짙은 데다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다는 느낌을 준다. 숫자는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에게는 안전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수치적 측정지표는 (그 기원과 타당성을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더라도) 투명성과 객관성의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누구나 보면 즉시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계량화할 수 있는 측정에 대한 요구에는 다른 경제적 요인 또한 작용한다. 조직(회사, 대학, 정보기관)이 몸집을 키우고 다각화됨에 따라 최고 경영층과, 조직의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위계 사슬의 하부 직원들 간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특히, 조직이 크고복잡하고 구성 단위 간 차이가 크면 그야말로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조직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당면하는 인지적 제약을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게 대면한다. 다시 말해, 과다한 정 보를 처리할 시간과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측정지표는 이러한 제한된 합리성을 처리하고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 1980년대 초에 전자 스프 레드시트의 발명과 급속한 채택, 그리고 그에 따라 용이해진 수치의 도표화와 조작은 다방면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현상을 미리 내다본 분석가 스티븐 레비Steven Levy는 198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스프레드시트는 도구이지만 세계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숫 자로 본 현실이다. (...) 스프레드시트로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너무 도 많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컴퓨터에 만들어내는 가상의 비즈니스가 말 그대로 가상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망각하는 경 향이 있다. 컴퓨터 안에서는 비즈니스를 복제할 수 없으며 그저 비즈니스의 여러 측면을 구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숫자는 스프레드시트가 지닌 강점이기 때문에 여기서 강조되는 측면은 숫자로 쉽게 구현되는 것들이다. 실체가 없는 요소들은 계량화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현 세대의 가장 성공한 가치 투자가 중 한 명인 세스 클라먼은 1991년에 스프레드시트가 심층 분석이라는 환상을 만들 어냈다고 경고했다. 그 이후 데이터 수집 기회가 늘어나고 그 수집 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데이터가 곧 해답이라는 밈 현상이 유행하는데,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조직들은 그에 맞는 문제점들도 제기해야 한다. 데이터를 축적해 조직 안에서 널리 공유하면 일종의 개선이 따라올 것이라 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신념이 존재하지만, 정보를 쉽게 전환되는 “데이터"로 바꾸려면 그 정보에서 미묘한 차이와 맥락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 성과급 제도의 문제점 중 다수는 인간의 동기를 바라보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크게 왜곡된 개념,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물질적 보상에 의해서만 일할 동기를 얻는다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 중에는 외적인 금전적 보상보다 여러 가지 내적인 정신적 보상에 의해 동기 부여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상으로는 소속 조직의 목표에 대한 헌신, 담당 업무의 복잡성에 대한 강한 흥미 등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에 일이 도전적이고 흥미롭고 즐겁게 느껴진다. 외적 동기 외에 내적 동기의 존재는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 생각은 1970년대 중반에 심리학자들이 설명했고, 이후 2014년 노벨경제학 상 수상자 장 티롤 같은 경제학자들이 재발견해 공식화했다. 사람들이 돈에 대한 욕망으로만 동기가 유발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단세포적인 생각이며, 내적인 보상에 의해서만 동기를 얻는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기들이 각각 언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는 최근 몇 년 간 사회과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문제였다.
- 마이클 오크, 마이클 폴라니,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책임성의 측정에 대해 설득력 있는 정밀 분석을 내놓았는데, 자칭 아나키스트 지지자이자 예일대 인류학 교수인 제임스 스콧의 연구로 최근 그 내용이 재발견되었다. 이 사상가들은 지식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했는데, 추상적이고 정형화된 지식과 실질적이고 암묵적인 지식이다. 실질적이거나 암묵적인 지식은 경험의 산물로서 학습이 가능하지만 일반 공식화가 어렵다. 반면 추상적인 지식은 기법의 문제이므로 쉽게 체계화하여 전달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오크숏의 잘 알려진 사례를 보면, 추상적인 레시피 지식은 요리책으로 전수가 되지만 이러한 지식(달걀 풀기”, “혼합 재료 휘젓기”)활용하는 방법을 알려면 책으로 습득할 수 없는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오크숏 은 세상일을 올바른 공식이나 레시피를 적용하는 문제로 보는 “합 리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전문적 지식은 정확한 공식화의 덫에 빠지 기 쉬운데, 공식화를 해야 확실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크숏의 주장은 달랐다.
“이런 식의 공식화가 어렵다는 점이 실질적인 지식의 특징이다. 실질 적인 지식은 대개 관례 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마디로 실전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부정확성, 따라서 불확실성, 견해상의 문제라는 느낌을 주며 진실보다는 개연성에 가까워 보인다.”
합리주의자들은 기법의 탁월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진정한 지식의 유일한 형태는 전문적 지식이다. 이런 지식만이실재하는 지식을 나타내는 확실성의 기준을 충족하기 때문이다. 오크숏에 따르면 합리주의의 오류는 실질적인 지식, 그리고 환경의 기이성을 말해주는 지식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이와 관련해 “지식의 겉치레”라는 비평을 내놓았다. 20세기 중반에 저작 활동을 한 그는 사회주의자들의 대규모 경제계획 시도를 두고 “과학만능주의"를 꿈꾼다고 꾸짖으며, 마치 그 설계자들이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투입과 산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경제 생활을 설계하려 든다고 비판했다. 하이에크의 주장에 따르면 경쟁시장의 강점은 개인이 지역 상황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고, 기존 자원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거나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뜻밖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계획은 서로 관련된 분산된 정보들을 고려하지 못할 뿐 아니라, 특정한 필요를 충족하는 방법과 새로운 목표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기업가적 정신을 방해했다.
- 학사 수료자들이 학사 학위가 없는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학사 학위를 따려고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 대학 졸업자가 많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맞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취업시장의 관점에서 교육은 위치재의 특성 이 짙기 때문이다. 잠재적 고용주에게 학위는 신호의 역할을 한다. 고용주는 일자리에 지원한 초기 지원자들의 학위를 보고 그 등급을 빠르게 판단한다. 고등학교 졸업은 보통 수준의 지적능숙도와 끈기 같은 성격적 특성을 갖췄다는 표시이고, 대학 졸업은 이런 능력이 대체로 출중하다는 신호다. 소수만 대학을 졸업하는 사회에서는 학사 학위가 어느 정도의 우월성을 표시한다. 하지만 학사 지원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학위가 분별 장치로서 갖는 가치는 낮아진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장이면 충분할 일자리에 학사 학위가 요구되는 일 이 벌어진다. 이런 직업에 높은 인지력이나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어서가 아니다. 고용주들이 나머지 지원자들을 배제한 채 수많은 학사 취득자 중에서만 지원자를 선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의 임금이 낮아지고 많은 대학 졸업생이 대학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배치된다. 이는 결국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직업에도 대학 졸업장이 필수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학위를 따려는 사람이 점점 늘게 된다.
- 대학 진학률과 졸업률을 높이려는 노력 뒤에는 평균적인 학력 상승이 곧 높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숨어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영국의 앨리슨 울프, 미국의 대런 애쓰모글루와 데이비드 오터)은 지금까지는 그 랬다 하더라도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중저 수준의 인적 자본을 지닌 사람들이 수행하던 많은 일이 기술로 대체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혁신과 기술적 진보가 국가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되므로 평균 수준의 교육적 성취보다는 탁월한 지식과 능력, 기술을 갖춘 상위권 사람들의 성취가 더 중요하다. 최근 몇십 년간 대학 학위 취득 인구의 비율은 상승한 반면 경제 성장률은 감소했다. 또한 대학 졸업장 소지자와 비소지자의 소득 격차는 여전히 상당하지만, 대학 졸업생들의 소득 하락 속도로 볼 때 경제는 이미 대학 졸업자의 공급 과잉 현상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대학 교육보다는 도제 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배관공, 목수, 전기기사 같은 숙련된 업종의 근로자들은 부족한 실정이다
- 칼리지 스코어카드는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서만 대학 교육을 다루기 때문에 그 유일한 관심은 투자 수익률이고 이것은 대학에 드는 금전적 비용과 학위 취득으로 궁극적으로 얻게 될 소득 증가의 관계로 결정된다. 물론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다. 대 학에 드는 비용은 가족의 수입에서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잡아먹거나 학생이 빚을 지게 만든다. 또한 생계를 꾸리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다. 하지만 생계는 인생의 유일한 과업이 아닐 뿐 아니라 대학 교육을 순수하게 소득 향상 기능의 관점에서만 평가하는 빈곤한 구상이다. 그럼에도 다른 측정지표들처럼, 비용은 칼리지 스코어카드가 구현하고 장려하는 교육의 이상이다. 생산과 생존을 중시하는 훈련 과 생존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데 의미를 두는 교육을 구별한다면, 스코어카드는 전적으로 전자에 해당한다. 실제로 스코어카드와 브루킹스 시스템은 생산의 재료인 공학과 기술 교육에 중점을 둔 기관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술 작품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도 록 도와주는 미술사 강의, 교향곡의 테마와 변주 또는 표준 음조의 재즈 연주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음악 강의, 시에 대한 깊은 감상을 돕는 문학 강의, 주요 경제제도를 배울 수 있는 경제학 강의, 놀라운 인체의 구조에 눈을 뜨게 해주는 생물학 강의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평생의 만족감 같은 것은 투자 수익률의 측정지표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우정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결혼을 포함해, 평생의 우정이 형성되는 곳이 대학이라는 사실도 측정지표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투자 수익률을 고려할 때 이런 요소들도 생각해야 하지만, 계량화의 관점에서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 미국 전역의 학생들은 4학년, 8학년, 12학년 때 읽기와 수학 시험을 치른다. 바로 전국교육성취도평가NAEP 시험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험을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성과의 지표로 여기는데, 다른 시험들과 달리 “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학생이나 교사, 학교의 운명이 시험 결과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이 시험군에서 최상위 부분만 취하거나 시험 위주의 수업을 하거나 결과를 조작할 동기가 낮다. 전미교육통계센터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al Statistics에서는 매년 아시아인, 백인, 히스패닉계, 흑인 (각 집단의 하위집단까지 포함한다)의 상대적 성취도 비율을 시기별로 평가하는 “인종 및 민족 집단별 교육 성취도의 현황 및 동향 Status and Trends in the Educational Achievement of Racial and Ethnic Groups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 발표 결과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12학년에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경우, 백인과 히스패닉계간 읽기 성취도 격차는 2013년이나 1992년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2013년 평균 점수는 500점 만점 중 288점이었고, 두 집단의 점수 차는 22점이었다), 백인과 흑인 간 점수 격차는 1992년 (24점)보다 2013년(30점)에 더 컸다. 수학의 경우 2005년, 2009년, 2013년 당시 각 집단의 상대적 성적을 비교했는데, 백인과 흑인/히스패닉계 학생 간 점수 격차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상대적인 학력 수준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존슨 행정부 때 콜먼 보고서 “교육 기회의 균등Equal Educational Opportunity" (1966) 연구가 진행된 이후로, 학교의 산출 결과는 투입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즉 학생의 성적이 부모의 사회적 · 경제적 · 교육적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 학교의 학생들은 대체로 똑똑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제심이 강하고, 이 학생들의 부모 역시 상대적으로 똑똑하고 호기심과 자제력이 강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자질은 성공에 도움이 되는 데다 가족에게 물려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공한 부모일수록 자녀의 학업 잠재력이 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일반적인 개선책은 결과의 평등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치학자 에드워드 밴필드 Edward Banfield가 한 세대 전에 언급한 것처럼, “모든 교육은 중상류층 아이에게 유리하다. 중상류층이 된다는 것은 특별히 교육이 가능한 자질을 갖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질을 개선하면 전반적인 교육의 결과는 나아질지 몰라도, 인적 자본 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 간 성취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결과들을 종합하면 성취도 격차는 교육으로 좁힐 수 없으며 그 이유는 학교 밖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측정 행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밴필드가 지적한 것처럼, 이는 아마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 자체를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미국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학업 성취도 격차의 경우, 결과의 진전 정도를 식별할 수 없을 때는 지속적인 측정에 투입된 자 원 자체가 도덕적 진정성의 표시로 여겨지는 듯하다.
- 책임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논쟁은 성공과 실패의 측정지표를 공개하면 환자와 전문가, 의료기관의 행동이 바뀔 것이라는 전제를 바 탕으로 한다. 환자는 소비자의 역할을 하며 치료비를 상대적 성공률과 비교할 것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성과 점수가 높은 전문가를 추천할 것이고, 보험사는 최저 가격으로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 과 의료 서비스 제공자에게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의사와 병원은 자신의 평판과 수입이 악화되지 않도록 성과 점수를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것이다.
- 외과의의 성공률과 병원의 사망률에 관한 공개적인 측정지표에 실질적인 이점들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측정지표를 공개하면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을 솎아낼 수 있다. 외과의의 경우 의사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데, 무능한 동료를 업계에서 내쫓기가 불 편했던 직업군에서는 그야말로 유용한 도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병원의 경우 성과가 낮은 의료기관이 측정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측정지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도 손쉬운 목표들을 얻고 나서 지속적인 수확을 바라는 경향이 강하다. 다시 말하자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쭉정이를 거둬 들이면 즉각적인 이득이 발생한다. 하지만 문제는 측정지표가 모 두에게서 수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는 한계비용이 한계편익을 넘어선다.
- 버윅은 논문 “성과급의 유해성The Toxicity of Pay for Performance”에 이 같은 생각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성과급”은 내적 동기를 감소시킨다. 특히 의료서비스 분야에서, 많은 과업은 잠재적으로 내적 만족감을 준다. 통증을 완화하고 문의 에 답하며 정교한 손기술을 발휘하고 속마음을 듣고 전문가 팀에서 활약하며 수수께끼를 풀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임무를 경험하는 일 등은 직장에서 하루 일과를 보람차게 보내는 방법이다. 의료 직무에서 오는 자부심과 기쁨은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성과”를 낳는 많은 동기 중 하나다. 오늘날 의료 서비스 리더와 임상의들의 시간을 다 잡아먹는, 악의에 찬 보상/수수료/환급 관련 논쟁에서는 의료 서비스 직무에 금전 외의 내적 보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너무 쉽게 무시되거나 심지어 의심된다. 불행하게도, 직장에서 내적 만족요인을 무시하 면 그런 요인들이 무의식 중에 약화될 수 있다.
버윅의 논문이 나온 지는 20년이 더 넘었다. 하지만 논문은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성과급이라는 해일이 여전히 밀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 유일무이한 복잡한 환경, 또는 다른 조직과 현저하게 다른 복잡한 조직 어디에나 일괄 적용할 수 있는 성과 측정지표를 개발하려고 한다면 표준화된 성과 측정수단은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만적일 것이다. 하지만 “책임성” 도모를 위해 투명한 성과 측정지표를 산출하려는 욕심은 대체로 표준화되고 중앙화된 측정지표의 사용으로 직결되 는데, 상관들을 비롯해 작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대중에게는 그러 한 측정지표가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랜드 연구소의 또 다른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양적 측정수단으로 전달되는 관측 결과는 “실증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질적 형태로 전달되는 관측 결과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평가에 사용되는 양적 측정지표 중 다수는 이러한 보고 행위의 관측상 편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개인적인 진술이라 할수 있다. 코너블은 대반란 계획이 “예술이자 과학이지만 예술에 가깝다”고 묘사한다. 이는 다른 많은 복잡한 상황의 관리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예술에 가깝고 경험에 기초한 판단이 필요한 문제를 측정 가능한 순수 과학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 하지만 측정된 성과에 따른 지급이 적절한 곳도 분명 있잖아요. 비즈니스 영역 말이에요” 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는 결국 수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적 역시 생계를 위한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 수익에 기여한 정도를 측정하고 이 측정치를 보수와 최대한 밀접하게 연계 해 직원들의 최대 노력을 끌어내려고 하는 비즈니스 관리자들에게는 말이 되는 소리로 들린다. 측정된 성과에 따른 지급이 이 같은 약속을 실현하는 경우는 실제 로 존재한다. 하는 일이 반복적이고 비창조적이며 표준화된 상품 또 는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것일 때, 일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내적 만족감이 거의 없는 일을 할 때, 팀의 노력보다 거의 개인적 노력만을 바탕으로 성과가 책정될 때, 핵심 업무에 다른 사람을 돕고 격려하고 지도하는 일이 들어가지 않을 때 같은 경우다. 판매직의 경우, 또는 표준화된 산출이 있고 업무 전반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 없는 관례화 · 개별화되고 고도로 집중된 일의 경우, 측정된 성과에 따른 보상이 효과적인 것은 당연하다. 간단히 말하면, 어느 사회학자가 말한 것처럼 “외적 보상이 직업 만 족도의 주요 결정요인이 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내적 보상을 느낄 수 없는 일을 할 때뿐이다. 테일러주의는 바로 이런 일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를 비롯해 어느 사회에나 그러한 직업은 많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이런 직업들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의 민간 부문 직업이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한, 측정된 성과에 따른 직접적인 지급은 부적절할 뿐 아니라 어쩌면 역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 금융 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측정 데이터의 분석과 조작에는 능숙하지만 생산품 또는 거래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나 경험은 부족한 재무 관리자의 역할 확대였다.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말처럼, “신들은 파멸로 이끌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수학을 가르친다.”
- 조직학 전문 학자인 넬슨 리페닝 Nelson Repenning과 레베카 헨더슨이 최근에 주장한 것처럼, 측정 가능한 성과지표에 대한 집중은 경영자가 명확한 성과 측정이 불가능한 업무를 소홀히 하도록 만들 수 있다. 평판, 직원 만족도, 동기, 충성도, 신뢰, 협업 같은 무형의 자산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과 측정지표에 현혹된 이들은 장기적인 결과를 희생하더라도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자산을 쥐어짜낸다. 이 같은 이유로, 측정 가능한 측정지표에 대한 의존은 동시대 미국 기업들을 늘 따라다니는 병폐인 단기 성과주의를 조장한다.
- 예산 목표를 맞추면 보수, 상여금, 승진 같은 보상을 해주는 제도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바로 조직의 정보 체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경영자와 직원들은 보수 산정에 사용되는 수치를 조작하거나 윤색하거나 가장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간부들이 조직의 활동을 조율하고 미래 자원의 할당을 결정하는 데에도 사용되기 때문에 자원이 잘못 할당될 때 조직의 생산성과 효율성도 피해를 입게 된다. 정보에 근거한 판단을 정확한 측정으로 대신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추측과 위험이 수반되는 혁신 또한 제한한다. 경영대학원 교수인 게리 피사노Gary Pisano 와 윌리 쉬Willy Shih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부분의 회사는 투자 기회를 평가하기 위한 고도의 분석법을 고집한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계량적인 기법으로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 일반적으로 데이터나 심지어 합리적인 추정치도 활용도가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도구들이 자금의 투입 처를 정하는 궁극적인 결정권자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국 결과를 예측하기 쉬운 단기 프로젝트들 때문에 기술상, 운영상의 역량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장기적인 투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책임성의 측정수단으로서 성과 측정지표는 일이 잘못될 때 책임소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성공을 유도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공에 상상력과 혁신, 위험이 수반될 때 특히 그렇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가 거의 한 세기 전에 말한 것처럼, 실제로 기업가 정신은 “측정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수반하는데, 이는 계량화된 분석 기법으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
- 측정지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데에는, 조직이 불투명하면 대응이 늦지만 외부의 감시를 받으면 효율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개념 이 상당 부분 기여한다. 1980년대 중반에 구글의 엔그램 뷰어상에서는 “성과 측정지표”와 “투명성”이 가파른 상승을 보이는데, 이 두 용어의 상승 패턴이 거의 나란하다. 성과와 투명성이 결을 같이한다고 추정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 적어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반화다. 왜냐하면 성과 측정의 효과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투명성의 효과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 사례에서, 조직의 성과 수준은 조직의 비투명성에 달려 있다. 여 기서 논쟁이 되는 것은 측정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성 과의 문제, 다시 말해 우리가 의도한 일이 성공하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투명성의 어두운 단면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아닌 대인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 자아감은 우리의 생각과 욕망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친밀성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정 사 람에게 자기 자신을 얼마나 투명하게 내보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 다. 다음은 당대의 철학자 모셰 버털의 의견이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 이마에 적혀 있어 모두가 보게 된다면 내부와 외부의 차이는 사라질 것이고, 그와 함께 개별화도 없어질 것이다. 은폐 가능성을 통해 표현되는 사적 자유는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한 개인으로서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지켜준다. 뿐만 아니라 자아는 서로 다른 정도의 노출과 친밀감을 표시함으로써 특별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있다. 자아는 누설과 은폐를 적절히 배분하고 서로 다른 정도의 거리감을 형성함으로써 사회적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대인 관계에서, 심지어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도 성공적인 교류는 애매성과 불투명성의 정도에 달려 있다. 상대방의 생각은 차치하더 라도, 상대방이 하는 일을 다 알고 있다고 해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 마법의 공식으로서 "투명성의 힘은 그 역효과가 종종 무시될 정도로 대단하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란 말은 위키리키즘이라는 새로운 신념의 신조다. 위키리키즘은 모든 조직과 정부의 내부 심의를 공개하면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대개 이런 공개는 기능 마비로 이어진다. 모든 행동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입법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절충안 에 도달할 수 없고, 자신들이 내린 내부 심의가 대중에 알려질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관리들은 효과적인 공공 정책을 만드는 데 난관이 따른다. 그리고 국가의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기밀 유 지가 필수적인 정보기관들은 와해되고 만다. 각각의 사례에서 투명성은 성과의 적이 된다.
- 측정지표의 위험
(1) 측정되는 항목에만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목표 전치 현상 : 목표 전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 몇 개의 측정항목으로 성과가 측정되고 거기에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때(일자리 유지, 임금 인상, 스톡옵션이 주어진 경우 주가 상승), 사람들은 측정되지 않는 더 중요한 조직적 목표를 포기하더라도 그 측정항목을 충족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다. 경제학자 벵트 홀름스트림과 폴 밀그롬은 이를 비뚤어진 동인의 문제로서 더 공식적으로 묘사했다. 즉, 측정이 가능한 업 무를 완수할 때 보상을 받는 근로자는 다른 업무에 투입되는 노력을 줄인다. 그 결과, 조직적 목적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측정 수단으 로 대체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2) 단기 성과주의 촉진 : 성과 측정은 로버트 머튼이 말한 “이해관계의 긴급한 즉각성”을 재촉한다. “행위자는 눈에 바로 그려지는 결과에 만 절대적인 관심을 쏟으므로 그 뒤따른 결과나 다른 결과들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된다.” 간단히 말하면, 장기적인 고찰을 포기하고 단기적인 목표들을 추구한다.
(3) 직원의 시간 비용 : 측정지표의 거래비용, 즉 직원들이 측정지표를 편집하고 처리하는 데 쓴 시간 비용과 그 측정지표를 읽는 데 투입된 시간 비용 역시 거래 원장의 차변에 기입해야 한다. 이 문제는 중요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때조차 쉬지 않고 정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인지된 필요성, 즉 “보고 의무"로 인해 더 심화된다. 때때 로 성공의 측정지표는 생성된 보고서의 개수와 크기인 경우가 있는 데, 마치 문서로 두루 남겨놓지 않으면 아무 일도 완수되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결국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데이터를 편집하 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회의에 참석해 그 데이터와 보고서를 조율하 느라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비주류 관리 컨설턴트인 이브 모리외와 피터 톨먼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 직원들은 조직의 실제 생산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들을 하느라 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소진해간다.
(4) 효용 체감 : 새롭게 도입한 성과 측정지표가 저성과자를 가려주는 데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낮 은 가지에 열린 열매를 따고 나면 계속해서 많은 열매를 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문제는 측정지표가 모두에게서 계속적으로 수집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측정지표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드는 한 계비용이 머지않아 한계편익을 넘어서게 된다.
(5) 규칙의 홍수 : 조직은 꼼수와 편법, 목표 전치 등을 통해 잘못된 측 정지표가 넘쳐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규칙을 만들어낸다. 이 규칙들을 일일이 준수하다 보면 조직의 기능이 둔화되고 능률이 저하된다.
(6) 운에 따라 결정되는 보상: 관련된 사람들이 결과를 통제하기 어려 운 상황에서 결과를 측정하는 것은 보상 기준을 운에 맡기는 것과 같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는 결과로 보상 또는 처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처벌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이를 부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7) 위험 감수 저해 : 성과 측정지표를 통한 생산성의 측정은 더 미묘한 영향도 끼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과 측정지표는 단기 성과주의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진취성과 위험 감수 의지를 저해한다. 종국에 빈 라덴을 찾아낸 기밀정보 분석가들은 이 임무에 수년간 매달렸다. 만약 중도에 측정이 이루어졌다면 이들의 생산성은 제로처럼 보였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성공할 때까지 매월 실패율은 100퍼센트였다. 상관들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에 분석가들을 수년째 투입시키는 것은 큰 위험이 따랐고, 따라서 시간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과업은 종종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는 장기적인 인적 투자가 수반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8) 혁신 저해, 성과 측정지표가 판단의 기준이 되면 사람들은 측정지표로 측정되는 것만 하려는 유인 동기가 생기고, 따라서 측정지표로 측정되는 항목은 확고한 목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혁신을 지연시킨다. 다시 말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혁신은 실험을 수반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에는 실패의 가능성 내지는 확률 같은 위험이 따른다. 성과 측정지표로 인해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꺾이면 의도치 않게 침체가 촉진된다.
(9) 협업 및 공동 목적 저해 : 개인의 성과를 측정해 보상하는 것은 공동의 목적의식을 해칠 뿐만 아니라 협업과 조직의 효율성을 추구할 한없는 동기를 제공하는 사회적 관계 또한 약화시킨다. 측정된 성과에 근거한 보상은 협업이 아닌 경쟁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서로 돕고 지원하며 조언하기보다는 창출되는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 또는 부서는 동료를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방해하면서 자신의 측정 지표를 극대화하는 데 힘쓰게 된다. 대표적인 의료개혁가인 도널드 버윅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어떤 병원 CEO가 이익 중심점 관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중간 관리층의 상여금은 지역별 예산 성과에 따라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관리자들이 자기 부서의 자원 을 다른 부서로 이전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지 물었다. “그렇겠죠." 그 CEO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정신이 아니라면요."
(10) 업무적 퇴보 : 조직 내 사람들에게 한정된 측정 범위에 노력을 집중 하도록 강요할 경우 업무 경험이 퇴보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먼드 펠프스는 저서 『대번영의 조건: 모두에게 좋은 자 본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자본주의의 미덕은 “정신적 자극의 경험, 새롭게 해결할 도전적인 문제, 새로운 것을 시도할 기회,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짜릿함”을 선사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실제로 자본주의가 주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성과 측정지표로 평가되는 사람들은 실제 업무를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이 부여한 제한된 목표에 노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감시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신적 자극이 둔탁해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결정하지 못하며,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흥분도 느낄 수 없다. 미지의 세계는 측정 범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업의 소유주를 훨씬 넘어서는 인간의 기업가적 본성이 측정 강박으로 인해 억압될 수 있다. 그 결과, 진취성과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책임성 있는 성과의 문화가 팽배한 주류의 대규모 조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극을 느낀다. 교사들은 공립 학교에서 나와 사립 학교나 차터 스쿨(대안학교 의 성격을 가진 미국의 공립 학교 옮긴이)로 가고, 엔지니어들은 대기 업을 나와 소수의 전문가가 모인 전문 회사로 간다. 그리고 기획력 을 갖춘 정부 직원들은 컨설턴트가 된다. 여기에는 건전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의 대규모 조직들이 혁신성과 진취성이 높은 사람들을 몰아내면서 더 곤궁해진다는 것이다. 성과의 측정과 보상의 기준이 되는 상자를 채우는 일이 업무가 될수록,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업무를 떠나게 된다.
(11) 생산성 대비 비용 : 경제적 생산성을 측정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경제학자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경제에서 총요소생산성이 유일하게 증가한 분야는 정보통신기술 제조업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측정지표의 문화는 인건비, 직원들의 사기와 진취성에 쏟아부은 비용, 그리고 단기 성과주의의 촉진으로 경기 침체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 측정지표 체크리스트
1. 어떤 유형의 정보를 측정할 생각인가? 측정할 대상은 무생물에 가까울수록 측정 가능성이 커진다. 측정이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의 필수 요소인 것도 그런 이유다. 측정할 대상이 측 정 과정의 영향을 받을 때 측정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 대상이 인간 활동일 때는 더욱 신뢰성이 떨어지는데, 그 대상인 사람은 자의식이 강하고 따라서 측정 과정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보상과 처벌까지 포함된다면 당사자들이 측정의 유효성을 왜곡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러한 보상의 목표에 당사자들이 동조할수록 측정의 유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2. 그 정보는 얼마나 유용한가? 언제나 첫 시작은 측정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해서 꼭 측정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님을 상기 하는 것이다. 실제로, 측정의 난이도는 측정되는 항목의 중요 도와 반비례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자. 내가 측정하려는 것은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을 대신할 수 있는가? 만약 그 정보가 별로 유용하지 않거나 내 목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측정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3. 측정지표가 많을수록 유용한가? 측정된 성과는 유용한 경우 열외자, 특히 저성과자 또는 부정행위를 식별하는 데 무척 효 과적이다. 하지만 성과 사다리의 중상위권을 판별하는 데에는 유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측정 항목이 많을수록 측정의 한계비용이 편익비용을 넘어설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따라서 측정지표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측정지표가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4. 표준화된 측정에 의존하지 않을 경우의 대가는 무엇인가? 고객, 환자, 학부모에 대한 판단과 경험을 근거로 하는, 성과 정보의 다른 원천이 존재하는가? 예를 들어, 학교 환경에서는 학부모가 특정 교사에게 요구하는 자녀의 학습 정도가 교사의 자질을 평가하는 유용한 지표일 것이다. 그 결과가 표준화된 시험에 나타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자선단체의 경우에는 수혜자에게 그 결과를 판단하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유용할 수 있다.
5. 측정의 용도는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그 정보를 공개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이때 중요한 점은 전문 종사자들이 내부적으로 성과를 감시하기 위해 사용할 데이터인지, 아니면 외부 당사자가 보상과 처벌의 기준으로 사용할 데이터인지 잘 구 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범죄 데이터는 경찰이 더 많은 경 찰차를 파견할 곳을 알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경찰서장의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또는 의료 데이터는 수술 팀이 가장 효과가 좋은 수술 절차를 알아 내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행정관리자들이 점수에 따라 병원에 재정적 보상을 할지, 처벌을 할지 결정하는 데 사 용되고 있는가? 시험 같은 측정 도구는 매우 유용하지만, 그 한계점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의 외부 평가보다는 전문 종사자들의 내부 분석에 사용할 때 특히 유용하다. 그러한 측정결과는 전문 종사자들에게 동료와 비교한 성과를 알려줌으로써 능력이 탁월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주고 뒤처진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측정지표는 고용 연장과 임금을 결정하는 데 사용될 경우, 통계 조작이나 명백한 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명심해야 할 점은 보상과 처벌의 기준이 되는 성과 측정지표는 보상의 목표가 전문 종사자의 직업적 목표와 일치할 때 실제로 내적 동기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전문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해를 끼치는 행동을 이끌어낼 목적으로 보상과 처벌 계획을 마련한 경우, 측정지표는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전문 종사자들이 외적 보 상에 너무 주력할 경우, 자연스럽게 다른 중요한 업무를 포 기하고 측정되고 보상되는 업무에만 활동량을 집중하게 될 수 있다. 이 모든 이유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측정 지표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측정지표보다 더 효과적이다. 직접적인 성과급은 사람들이 내적 동기보다 외적 보상에서 동기를 느낄 때, 즉 업무의 사회적 · 지적 혜택보다 금전적 혜택에 더 관심이 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 을 잊지 말자. 이는 연봉 수준이 직업적 성공의 측정 기준이 되는 금융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이타적인 목적을 비롯한 광범위한 목적에 자신의 소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직업상 별다른 매력 요소가 없을 때, 다시 말해 자동차 앞유리 교체나 햄버거 준비처럼 업무가 반복적이고 선택권이 별로 없을 때 성과급은 큰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6. 측정지표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정보는 절대 공짜가 아니며, 대개는 그런 정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각 지도 못할 만큼 비싸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고 분석하 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그 비용은 거기에 투입되는 시간의 기회비용으로 계산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측정지표를 생산하는 데 투자하는 모든 순간은 측정되고 있는 활동에 투자하지 않은 시간이다. 물론, 데이터 분석가에게는 측정지 표를 생산하는 일이 주요 활동이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과측정이 가치 있는 일이라도, 그 가치는 그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낮을 수 있다. 인적 시간과 노력에 들어간 이러한 비용은 그 자체로는 계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잊지 말자. 우리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 조직의 상부 경영진에게 성과 측정지표가 필요한 이유를 물어라. 때때로 성과 측정수단의 요구는 간부들이 조직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며, 그러한 무지는 엉뚱한 사람들을 낙하산 인사로 보내는 데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과 지역적 지식은 무시할 수 없으므로 조직 내부에서 인재를 등용하는 쪽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다른 곳에 똑똑하고 유능한 인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회사나 대학, 정부 기관 또는 기타 조직에 대한 특정 지식이 없다면 내부 채용의 이점을 넘어서지 못할 수 있다.
8. 성과의 측정수단은 누가, 어떻게 개발하는가? 책임성 측정지표는 상부에서 강요할 때, 그리고 측정되고 있는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개발한 표준 공식을 사용할 때 효과성이 떨어질 수 있다. 교사, 간호사, 순경 등이 투입하는 노력과 더불어 아래에서 위로 측정수단이 개발될 때 측정결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는 적절한 성과 표준을 개발하는 방법을 알려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암묵적 지식을 갖춘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되도록 거기에는 결과와 큰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대표 집단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최선의 경우에는 이들을 측정 데이터를 평가하는 과정의 일부로 계속 활용해야 한다. 성과 측정 시스템은 측정 대상자들이 그 가치를 신뢰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지금까지는 측정지표의 도입 여부와 그 방법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얘기했다. 그렇다면 이런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 즉 조직 서열에서 더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예를 들어, 중간 관리자나 학과장처럼 측정지표를 실행해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경우 선택에 직면한다. 정보의 수집 목표 를 신뢰한다면 최대한 효과적인 방향, 다시 말해 인적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숙제 다. 반대로 그 목표들이 의심스럽고 그 과정이 낭비라고 생각된다면 (이 책을 선물하는 등의 방법으로) 상사를 설득해야 한다. 설득에 실패할 경우,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소한의 허용 기준을 충족함으로써 부서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만약 측정지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경영진에 속한 사람이라면 측정지표에 대한 하부 조직원들의 반응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앞 단락을 다시 읽기 바란다. 측정지표는 측정 대상자들이 그 목적과 유효성을 믿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9. 아무리 좋은 측정수단이라도 부패나 목표 전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개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 하는 대리인이므로 모든 보상 측정 계획에는 필연적인 결 점이 있다. 지금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의사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기준이 수술이 된다면, 의사들이 혜택은 적고 비용만 비싼 수술에 목을 매게 된다. 반면 진찰 환자의 수로 보수를 결정한다면, 의사들이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잠재적으로 유용하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수술은 꺼리게 된다. 또 한 환자의 치료 결과가 보수의 기준이 된다면, 의사들이 알짜 환자만 받고 문제가 심각한 환자는 돌려보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부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성과 측정을 포기해 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측정지표는 여러 문제가 수 반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용할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이고, 또 판단의 문제이다.
10. 때로는 가능성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지혜의 첫걸음임을 잊지 말자.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한 것은 아니며, 측정지표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훨씬 더 적다. 모든 것을 측정으로 개선할 수 있다거나, 측정이 가능한 것은 무엇이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꼭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도 않는다. 투명성은 해결의 여지를 높이기보다는 곤란한 상황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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