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종말

심리 2014. 11. 11. 22:05

 


악의 종말

저자
롤프 데겐 지음
출판사
현문미디어 | 2010-09-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악의 유래와 신의 정의로움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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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나 신뢰나 용서가 인생에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자질이라면 가끔은 자신에게 그런 자질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 더 유리할 때가 있을 것임. 로버트 트라이버스는 생명체의 의사소통에서 거짓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데 주목. 거짓을 행하는 쪽이 한동안 상당한 이익을 보기 때문. 자연에는 개체로 하여금 거짓을 꾸며내는 능력을 갖추도록 만든 고된 선택 과정이 작용했음. 이것 또한 그 개체를 상당한 정도 자기기만으로 이끔. 상대에게 자신의 거짓을 믿게 하려면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그 거짓말을 믿을 필요가 있음. 그러지 않으면 진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거나 앞뒤가 맞지 않게 되기 쉬움.

- 우리는 소문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흥미롭게 지켜봄. 그 이유를 진화심리학의 시각에서 설명하면, 우리 조상들에게는 누가 누구와 섹스를 했고, 누가 누구와 다투었으며, 누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에 대한 지식은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

- 도덕적이고 이타적 행동은 호감이 가는 상대를 차지하기 위한 성적 핸디캡으로 볼 수 있음. 또 핸디캡은 당사자에게는 비용이 들지만 타인의 눈에 매우 잘 띄는 자질 혹은 행동으로 정의됨. 그렇다면 이타주의가 핸디캡이라고 볼 수도 있음. 개인이 자기자신 외에 타인의 이익까지도 고려하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로서 이타주의를 이해할 수도 있음.
- 제프리 밀러는 이타적 행동이 상대를 고르기 위한 진화의 성선택 과정을 통해서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말함. 번식이라는 엄청난 모험에 뛰어들려면 먼저 자연선택의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해야 함. 그래야만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음. 그러나 성선택은 이타주의의 연약한 싹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힘을 제공. 혈연선택, 즉 호혜적이며 간접적인 이타주의도 인간이 직접적인 자기 이익의 그늘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줌.

- 사회규범을 위배한 사람들 처벌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뇌의 자연스러운 기능에 뿌리를 두고 있음. 부당한 행동을 처벌하려는 피실험자들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미상핵이라는 피질하부 영역이 활성화됨. 미상핵은 뇌의 보상시스템으로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섹스를 하거나 단 것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고 긴장이 완화됨. 경찰이나 판사가 없었던 시절에는 사회규범이 개인적 제재를 통해서 관철되어야 했음. 하지만 처벌이 행복감과 직결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도 제재조치에 신경쓰지 않았을 것임.

- 인간은 자신이 평판에 각별히 신경써야 할 순간을 감지하는 발달된 감각을 가지고 있음. 반면에 우리의 정신은 타인에게 평가받을 위험이 전혀 없는 완벽한 익명상황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음. 인간은 비사회적이고 이기적 행동으로 처벌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음. 따라서 비록 익명의 일회성 만남일지라도 우리 내부의 평판경보기는 계속 가동됨.

- 수치심과 창피함은 자의식의 감정으로서 다른 온갖 감정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 이런 감정은 타인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물만이 느낄 수 있음. 다시 말해 이것은 마음이론, 즉 타인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함. 수치심은 아마도 우리가 다른 사람의 존중과 인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일지도 모름

- 얼굴색은 켤코 명력에 따라 붉어지지 않으므로 얼굴색의 변화는 당사자가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경의 규정과 전통을 존중하며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위조 불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줌. 수치심으로 인한 얼굴 홍조라는 심리생물학적 핸디캡은 이 신호의 발신자가 이기주의보다 더 높은 힘에 구속되어 있으며,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상호작용 대사로서 매우 적합하다는 사실을 주변세계에 알려줌

- 우리 조상들이 3색각을 발전시킨 시각적 사치가 진화과정에서 잘 익은 과일이나 잎사귀를 찾는 데 도움을 준 생존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 가설임. 그러나 마크 챈기지는 색의 지각과 음식물 섭취는 그다지 깊은 연관성이 없다고 말함. 예를 들어 몇몇 영장류는 색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데도 생존을 위해 잘 익은 과일을 찾아야 함. 챈기지는 영장류의 눈에서 색각세포의 분포를 새롭게 분석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 이에 따르면 우리의 추상체 분포는 익어가는 과일을 색깔을 알아보는데 최적화되어 있지 않음. 오히려 우리의 색각은 피부 아래에서 흐르는 피에 의해 생기는 얼굴의 붉은 기운들을 가장 민감하게 지각함. 우리의 얼굴 피부는 창피함을 느낄 때만이 아니라 성을 내거나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도 특유의 홍조를 띰. 반면에 두려움을 느낄 때는 창백해짐. 챈기지 연구팀은 우리의 원숭이 조상들이 뛰어난 색각을 발달시킨 이유가 동료 원숭이들의 표정으로부터 중요한 사회적 신호들을 읽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확신함. 왜냐하면 영장류의 얼굴도 감정상태에 따라 뚜렷한 홍조를 띄고 동료들은 이 원치 않는 메시지를 감지함.

- 분노는 우리에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함. 혈압이 상승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호흡이 가빠짐. 얼굴에 나타나는 분노의 표정은 매우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특히 남자에게서 모든 종류의 감정적 충동 중에서 분노를 가장 빨리 읽어낼 수 있음. 분노는 매우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막상 당사자는 분노를 느끼는 순간 오히려 편안한 기분과 자기 운명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낙관적 느낌을 받음.

- 시기하는 개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좀더 정확하게 알며, 사회적 비교를 통해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의식함. 이런 사람은 경쟁상황과 서열싸움에서 자신을 더 잘 관철하고,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자신을 강화하고 자기 영역을 방어함. 시기자는 타인의 부를 축소시키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이지만, 이를 통해서 차후에 벌어질 분배전쟁에서 자신이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에 알림

- 부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물건을 감추어 두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방법밖에 없었던 세계에서 오랜기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유전자 안에는 부는 부도덕하다는 감정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을 것임.

- 다른 사람이 우리의 관계를 두고 우리와 경쟁을 벌인다는 추측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경계태세에 돌입. 즉, 질투는 두려움이나 고통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에너지를 방출하여 우리로 하여금 싸움에 나서서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도록 만드는 경고신호임. 질투는 부정한 행위가 발견된 뒤에 눌리는 종소리가 아니라 극히 미세한 낌새라도 보이면 곧바로 울려대는 고감도 조기경보체계임. 이러한 편집증적 반응 패턴은 우리 조상들이 유전자를 퍼뜨릴 때 도움이 되었음. 다시 말해서 조상들의 적응도를 높이는데 기여. 따라서 인간의 뇌 회로에는 곧 질투심을 유발하는 신경모듈이 형성되었고, 남녀관계가 위태로워 보이는 순간 곧바로 작동에 들어감. 그러므로 질투는 정심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증상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여 위험에 처한 파트너십을 구하도록 촉구하는 고도의 생산적 적응력임.

- 종교는 집단 구성원간의 상호작용에서 진정성의 증명서로 기능하는 강력한 자기장애 요소를 갖고 있음. 모든 공동체의 기본 토대는 사냥, 식량분배,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이 성공적으로 협력하는 것. 그러나 각 개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힘들게 이랗고 자신은 빠지는 것이 더 이익이 됨. 따라서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임승차자와 정직한 상호작용 상대를 구분할 수 있는 사회적 신호들이 필요함. 이때 신을 경외하는 자는 자원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위조하기 어려운 종교적 결속의 신호들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집단의 의무를 존중하는, 즉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상대임을 알릴 수 있음. 이런 이유로 종교공동체는 그 교의와 요구에 많은 제약과 구속이 따를 수록 더 성공적이 됨.

- 위대한 철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전능한 자의 존재에 관한 물음이 이성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과 타협하였음. 신을 거부하는 자들도 종국에는 신의 존재만을 믿지 않으려 할 뿐임.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종교적 본능이 존재한다면 무신론자와 의심하는 자들은 불리해질 수 밖에 없음. 자기 내부에 자리잡은 자연적 성향에 반하여 살도록 저주를 받은 셈이기 때문. 진화는 우리에게 멋진 정신적 선물을 주었음. 동기를 간파하고 사물의 숨겨진 원인들을 인식하는 능력이 그것임. 어쩌면 신앙을 통해 초자연적인 창조자와 접촉하는 능력도 진화의 선물일지도 모름.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 같은 선물 없이도 올바르고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생각하고 희망하고 의심하는 인간으로 인생을 살아가기에 충분해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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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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