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데이터를 추적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로 삼을 땅을 직접 일구는 사람, 직접 물을 끌어다 대고 스스로 동력을 마련하고 제 먹거리를 기르는 사람과 다르지 않음. 사용자 데이터와 개인정보가 무지막지하게 수집되고 공유되는 세상에서, 자신의 데이터를 추적하는 일은 통제수단을 되찾으려는 시도다. 구글지도에서 보듯 개인이 다시금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 구글이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온화한 이미지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인간분석팀 같은 정책의 본색은 테일러주의라는 개념이다. 20세기 초에 공학자인 테일러가 주창한 테일러주의에 깔린 논리는 1911년 출간된 과학적 관리법에 요약되어 있다. 핵심 주장은 인간의 노동과 사고가 효율성 증가를 목표로 삼아야 하고, 기술적 계산은 언제나 사람의 판단보다 뛰어나며, 주관성은 명석하게 사고하는 객관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고, 수량화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테일러는 이렇게 주장했다. "오로지 강제적인 방식의 표준화, 최적의 도구와 작업조건 선택, 강제적 협력에 의해서만 작업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 필터버블이라는 책에서 일라이 패리저는 구글을 이용하여 같은 것을 검색한 이용자 두명이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 과정을 보여줌. 이를테면 진보적 사람이 웨브라우저에 BP를 입력하면 2010년 4월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에 대한 정보가 검색되지만, 보수적인 사람이 입력하면 석유회사 BP에 대한 투자정보가 검색됨. 마찬가지로 여성이 검색창에 바그너를 입력하면 작곡가 바그너가 검색되지만, 남성이 입력하면 페인트 회사 바그너가 검색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검색 알고리즘은 불편부당안 대답을 내놓도록 설계된 공식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다. 검색결과는 우리가 특정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강화함으로써 우리의 개인적 신화에 알랑거릴 뿐 아니라, 기존의 세계관에 들어맞지 않는 관심사들의 중요성을 깎아내린다. 이런 혁신은 겉보기에는 자유를 선사하는 것 같지만, 너무나 명백한 단점도 있다. 자유지상주의적 기술론자들의 몽사인 자유롭고 공정하고 모든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세상과 달리, 코드와 알고리즘적 문화의 핵심구성요소는 정렬하고 분류하고 위계질서를 만드는 소프트웨어다. 구글 같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상당부분은 이용자가 만들어내는 인지자본 덕분이기 때문에, 이런 소프트웨어 정렬형태는 "디지털 카스트제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직접적 증거다. 필터 거품과 마찬가지로, 지리인구통계적 프로필에 끝없이 가해지는 구분이 대량 맞춤의 우호적 사례인지, 코드화된 차별의 배제된 사례인지는 판단하기 힘들 수도 있다.
- 가격차등의 진짜 문제는 차등화 과정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알고리즘이 우리가 방문하는 웹사이트의 맞춤형 배너를 선택하거나 넷플릭스의 추천영화를 결정하고 그 최종결과만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격차등화는 고객에게 이웃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느냐고 묻지 않는다. 하긴, 그렇게 물으면 누가 사겠는가? 펜실베니아대 조지프 터로는 뉴욕타임즈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에 대한 데이터가 어찌나 은밀하고 복잡하게 흐르는지, 가격차별이 언제 시작되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그저 다른 가격, 다른 뉴스, 다른 오락만 볼 뿐이다."
- 와이어드 전직 편집자 크리스 앤더슨은 롱테일 경제학에서 현대의 상거래가 시장세분화에 의존한다고 주장. 비누를 팔 게 아니라면 동질적인 대중을 제품판매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시간낭비임. 오히려 판매 업체와 마케팅 담당자는 틈새 고객에게 초점을 맞춘다. 틈새의 효과를 보려면 기업들은 소비자의 유별난 특징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어떤 소규모 이익집단에 속하는지 알아낼 수 있기 때문. 이런 의미로 보면 파놉티콘처럼 모든 사람을 똑같이 행동하게 하는 전체주의적 장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알고리즘 정렬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안다. 신경쓰지 않을 뿐이다. 포획의 장치와 자유의 장치는 어찌나 단단히 뒤엉켜 있는지 떼어놓기가 불가능할 정도임. 프랑스 철학자 자크 엘륄은 '기술의 역사'에서 미래의 시민(그가 책을 쓴 시기는 60년대 초)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되, 자유만은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 그 후, 매체 역사가 프레드 터너는 이 오싹한 예언을 한층 발전시킴.
산업시대 공장 노동자들이 철제 감옥에 갇혀 있었다면, 오늘날 탈산업정보 기업의 많은 노동자들은 벨벳 골드마인에 거주한다. ... 이 작업장에서는 자아실현, 명성, 집단정체성, 인간관계, 지적 쾌락 등의 추구가 새로운 매체상품의 생산을 추동한다.
- MIT 정신분석학자 셰리 터클은 95년에 쓴 대표작 '스크린 위의 삶'으로 와이어드 표지에 실리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서로 다른 자신들을 윈도창이라고 이야기했음.
"윈도는 자아가 다양하고 분산된 체계라고 생각하는 강력한 은유가 되었다. 자아는 더 이상 다른 시간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윈도라는 삶의 실현은 다양한 세계에서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분산된 자아다." 자아를 다양하고 분산된 체계로 보는 시각은 권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였음. 탈중심화되고 윈도로 구성된 자아란, 남편 옆에서 잠을 깬 여인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 윈도를 닫고 딸의 아침을 차리기 위해 엄마 윈도를 열고는, 자가용을 타고 출근해서는 나머지 윈도를 모두 닫고 변호사나 의사 등의 제목이 붙은 윈도를 연다는 것을 의미. 물론 이것은 윈도 이야기다. 윈도는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으니까. 이에 반해 프레드 터너가 묘사하는 세계에서는 다중적 주관성이 존재하되 이 주관성들이 끊임없이 서로 충돌한다. 학교와 직장, 집에서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윈도 달린 자아난 분절된 동물과 달리, 만물의 공식이 적용되는 곳에서는 이러한 규칙들이 한 장소에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미묘하고 입자적이며 종종 눈에 보이지 않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
- 사랑 속에는 다소 광기가 있게 마련이다. 광기 속에는 다소 이성이 있게 마련이고. (니체)
- 응급조치, 실패하지 않는 처방, 모든 위험에 대한 보험, 환불보장 등을 아우르는 사랑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을 분류하면서, 바우만은 가상적 관계가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 제공해주겠다고, 노력은 하되 땀을 흘릴 필요는 없다고, 결과는 있되 노력은 필요없게 하겠다는 궁극적 약속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리퀴드 러브에서 말한 가상적 관계 요약)
현실의 관계와 달리 가상적 관계는 드나들기도 쉽다. 무겁고 더디고 너저분하고 느려터진 현실의 관계와 비교해볼 때 가상적 관계는 더 말쑥하고 깔끔해 보이고, 사용하기도 쉽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느껴진다. 독신자 전용 바에 가거나 연인 또는 애인구함 란을 읽는 게 아니라 컴퓨터 데이트에 몰리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현상과 관련해 인터뷰에 응한 바스 출신 28세 남성은 온라인 상의 관계가 가진 한 가지 결정적 이점을 이렇게 콕 집어냈다. "언제든 삭제키를 누를 수 있쟎아요."
- 프리데이팅 웹사이트 창립자 댄 윈체스터의 말을 빌리자면, 리퀴드 러브같은 개념에는 앞으로 "관계는 더 나아지겠지만 이혼이 더 많아지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윈체스터는 이것이야 말로 알고리즘이 점점 개선되었을 때 최종결과이리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을 꼭 맞는 짝과 맺어주는 일이 어찌나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그 과정이 즐거운지, 결혼이 언젠가는 폐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 외로움이 무섭지만 친밀함이 두려운 우리는 자아가 텅 비고, 단절되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어디서나 경험한다. 이 지점에서, 정서적 요구를 하지 않는 동반자인 컴퓨터가 타협안을 내놓는다. 이제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 상호작용하면서도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셰리 터클, 제2의 자아)
-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법률 소송 비용이 최대한 비효율적으로 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 그 덕에 변호사들은 "잘 짜여진 협력을 통해... 의뢰인의 계좌에서 돈을 쏙쏙 빼낼"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알고리즘이다. 최대한 적은 단계로 효율적 결과를 산출하도록 설계된 컴퓨터 기반 알고리즘과 정반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법체계가 법조인에게 유리하게 짜인 상황에서는 많은 변호사가 파괴적 기술의 도입을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네 수익성에 파괴적 영향을 미칠까 걱정될 테니 말이다. 이러한 비판의 상당수는 법률의 이른바 일용품화를 공격하며 인간변호사의 맞춤형 법률 서비스가 규격화된 서비스가 낫다고 주장함.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에게는 타당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기계가 사람 못지 않게 또는 더 잘 할수 있는 법조업무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임. 만물의 공식이 혁명을 가져오고 있는 이러한 분야로 계약서 작성절차가 있다. 멋진 이름의 리걸줌 같은 자동문서 조합시스템이 이 분야를 이끌고 있다. 전직 회사법 변호사 2명이 01년 창립한 리걸줌은 200만 이상의 고객을 확보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어떤 법무법인보다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 리걸줌은 유언장 69불, 회사정관 99불이라는 헐값에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초적 소비자, 기업문서를 작성하는 대규모 저비용 업무에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크레이그스리스트가 신문사의 짭짤한 수익원이던 개인광고를 잠식했듯 법조업무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음. 또 다른 분야로는 상표분석이 있다. 핀란드 신규기업 오노매틱스는 두 상표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보고서를 즉석에서 작성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는데, 상표분석은 매우 주관적이고 까다로운 분야로 악명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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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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