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안의 세계사

역사 2023. 9. 20. 11:59

- 이제 여러분도 알겠지만 페니실린이 약국과 병원의 찬장에 들 어오기까지의 여정은 우연히 탄생한 약물이 갖은 고초를 겪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는 단지 플레밍이 휴가를 떠난 동안 페니 실리움 포자가 우연히 복도로 날아와 계단을 올라 플레밍의 실험실 안으로 들어와 박테리아가 배양된 접시에 내려앉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 만약 플레밍의 삼촌이 해운사무소에서 뼈 빠지게 일했던 어린 플레밍에게 자신의 유산을 물려주지 않았다면? 만약 사격팀 팀장이 플레밍에게 라이트 경을 소개해주지 않아 연구 커리어를 쌓지 않았다면? 만약 플레밍이 운명적인 휴가를 떠나는 대신 배양접시를 깨끗이 정리하고 다른 실험에 사용했다면? 체인이 나치당이 점령한 베를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헌트가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곰팡이가 잔뜩 핀 캔털루프 멜론을 우연히 발견하지 못했다면? 페니실린을 뒤쫓는 과정에는 중요한 부분이 너무도 많기에 페니실린이 성공적인 의약품이 됐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 과학 이야기 속에서 페니실린에 대한 공로는 행운에게도 주어진다. 하지만 페니실린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부지런히, 또 끈기를 갖고 연구했던 플레밍, 플로리, 체인, 에이브러햄, 히틀리, 그 밖의 셀 수 없이 많 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 해열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키나 나무껍질 뒤에 숨은 비밀은 1920년에 밝혀졌다. 당시 프랑스 독성학 교수였던 피에르 펠레 티에 Pierre Joseph Pelletier는 약학부 학생이었던 조제프 카방투Joseph Bienaime Caventou와 함께 나무껍질에서 퀴닌(노란색 끈적이는 물질로, 산이나 알코올을 용매로 사용하면 녹여낼 수 있다)을 분리해냈다. 퀴닌은 알칼로이드다. 알칼로이드는 질소 원자를 적어도 하나 갖고 있 는 천연 화합물에 붙는 이름으로 유기화학 수업 첫째 주에 배우 는 내용이다. 알칼로이드는 에탄올에 녹는다. 이는 초기에 말라 리아 치료제를 만들 때 나무껍질 가루와 와인을 섞은 이유를 이 해할 수 있다. 카페인도 알칼로이드 화합물인데, 1821년 펠레티 에와 카방투가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아침 식사의 생산성을 책임지는 이 분자를 분리해냈다. 퀴닌을 성공적으로 분리하면서 환자에게 투여할 용량의 기준을 정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뜨거운 와인에 엄청난 양의 마른 나무껍질을 타 먹던 시대는 지났다.
324달톤의 퀴닌은 저분자 의약품에 해당될 정도의 크기다. 흥 미롭게도 퀴닌은 역사적으로 전염병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 첫 화합물이라 꼽힘에도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으로 퀴닌이 말라리 아를 물리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열대말라리아 원충이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을 갉아먹고 난 후 체내에 남은 철과 결합된 헴(heme. 헤모글로빈의 색소 부분)을 배출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퀴닌이 열대말라리아원충을 죽인다고 추측할 뿐이다. 철 분의 농도가 늘어날수록 열대말라리아원충에게 해롭기에 퀴닌 이 있으면, 기생충의 식포(원생동물에서 먹이를 섭취하는 일시적인 세포 소기관) 안에서 철분의 농도가 치명적인 수준까지 높아진다. 비 록 퀴닌은 미국의 광범위한 제약 규제가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사용됐지만 여기서 이 부분을 다시 짚을 필요가 있다. 미국식품 의약국 FDA은 약물의 안전성(합당한 범위 안에서)과 효과를 입증하길 원한다. FDA는 의약품이 효과를 보이기만 한다면 승인하기 전 에 제약회사에게 의약품이 체내에서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이나 반응을 거쳐 효과를 보이는지는 묻지 않는다.
- 1994년까지 퀴닌은 밤에 쥐가 나는 하지불안증후군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약물이었고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퀴닌을 자가 투여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부작용 때문에 FDA는 처방전이 필요하도록 규정을 수정했다. FDA는 퀴닌을 과하게 복용해서 생길 위험이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허 용했을 때 생길 잠재적 이득보다 크다고 판단했다. FDA의 규제 가 있었지만 퀴닌은 여전히 우회적인 처방전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최근 FDA는 같은 이유로 다리에 쥐가 났을 때, 남용을 막 기 위해 퀴닌의 오프라벨 처방(적합한 약이 없거나 촌각을 다투는 환자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할 때 의료기관이 FDA(우리나라는 식약처)가 허가한 의약 품 용도(적응증) 외 목적으로 약을 처방하는 행위)을 제한할 방법을 찾고 있다.
- 밤에 다리에 쥐가 날 때 퀴닌을 사용하는 것에 FDA는 우려를 표했지만, 전 세계 각국에서 인기 있는 음료에 소량의 퀴닌을 사 용하고 있다. 오늘날 토닉워터에는 쓴맛이 나게 만드는 저분자 인 퀴닌이 소량(미국 FDA 승인을 받은 양은 83ppm 혹은 1리터당 83밀리그 램이다(국내에서는 퀴닌이 함유될 경우 의약외품으로 분류되기에 국내에서 판 매되는 토닉워터에는 퀴닌 대신 퀴닌향이 첨가돼 있다)) 들어 있다. 역사적으로 과거에는 토닉워터에 오늘날보다 훨씬 더 많은 퀴닌이 함유돼 있었다. 

- 버드나무에 치유 능력이 있는 이유는 나무껍질에 고농도의 살 리실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환경에서는 버드나무 에만 살리실산이 들어 있지 않다. 살리실산은 메도우스위트Mead- owsweet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북미조팝나무 같은 다양한 관목 에도 낮은 농도로 들어 있는데 식물의 방어 메커니즘의 일부로 작동한다.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봐도 독특한 곳에서 살리실산을 얻은 경우가 왕왕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비버 의 해리향이다. 해리향은 설치류 꼬리 밑에 영역을 표시하기 위 해 사용하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담고 있는 낭이다. 이 항문낭의 가치는 비버 가죽과 맞먹었다. 비버가 버드나무를 주식으로 삼 기에 해리향은 살리실산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중세 의사들은 해리향을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다. 하지만 몇몇 질병에 는 별로 유용하지 못했다.
- 살리실산은 왜 버드나무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식물에도 많 을까? 살리실산은 식물의 호르몬이다. 식물은 병원균과 싸울 때 살리실산 유도체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보호한다. 예를 들어 담배나무에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주입하면 담배나무는 그 즉시 살리실산을 살리실산메틸로 전환한다. 살리실산메틸은 공 기 중으로 퍼져 주변의 다른 담배나무에 전달된다. 살리실산메 틸은 다른 담배나무 이파리에 내려앉아 다시 살리실산으로 변해 방어 모드를 시작하라는 신호를 전달한다. 이 신호가 전달되면 보호 메커니즘과 질병 저항성을 기록한 유전자를 가동시킨다.
- 아스피린은 'NSAIDs'라는 약어로 더 잘 알려진 비스테로이드 성 항염증제다. 아스피린은 전구체인 살리실산보다 소화기관에 부담을 덜 줬지만 여전히 위를 자극하고 출혈을 일으키는 문제 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약물이 그렇듯, 새롭고 더 나은 형태 를 찾기 위해 혁신을 감행한다. 그리고 아스피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 아세트아미노펜이 등장하기 전인 1950년대까지 아스피린의 왕좌를 넘본 도전자는 없었다. 하지만 곧 1960년대 의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이부프로펜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야 했다.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은 둘 다 열을 내리고 통 증을 줄이는 과정에서 소화계에 문제를 덜 일으켰다. 아스피린 은 곧 시들해졌다.
- 아스피린이 항혈소판제(혈소판의 응집을 억제하여 혈전 생성을 막는 약물) 역할을 한다는 연구는 1967년 크레이븐이 빠뜨린 대조군 을 설계한 후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이 연구는 대조군에 비해 아스피린을 복용한 집단의 혈액이 응고되는 데 얼마나 많은 시 간이 걸리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출혈량과 총 응고 시간을 측정 했다. 비록 결과는 크레이븐이 사망한 후 10년이 지나 도출됐지 만 결국 크레이븐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988년, 심장질 환을 겪는 1만 7000명 이상의 환자로 이루어진 대규모 임상시험 은 아스피린이 5주 동안 심장마비가 재발할 확률을 20퍼센트 줄 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스 피린이 뇌졸중을 예방하는 데 유용하다는 연구도 등장했다.
- 수십 년에 걸쳐 베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는 일련 의 연구와 임상시험을 거쳤다. 1994년, 《영국의학저널》은 이 연 구들을 '아스피린 논문'으로 정리하고 심장마비뿐만 아니라 허 혈성 뇌졸중(혈액이 흐르는 동맥이 막혀 생명을 유지해주는 산소가 뇌로 공 급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광범위 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게다가, 이에 더해 심장 마비 초기에 아스피린을 사용하는 데에도 찬성 의견을 내놓았 다. 약물로써 아스피린의 두 번째 생애는 첫 번째보다 훨씬 더 생기 넘칠 뿐만 아니라 제조업자의 주머니를 불려주기도 했다. 

- 리튬은 우리가 이제까지 봐왔던 저분자 의약품과는 살짝 다르 다. 리튬이라는 원자 자체가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의 의학적 상 태를 나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처방전에 리튬이 기록 돼 있으면 보통 못마땅해하기에 리튬은 보통 두 가지의 염salt 상 태로 처방된다. 하나는 체내에서 속방형 제제(복용 즉시 효과가 방 출되는 약물) 혹은 서방형 제제(체내에서 효과가 천천히 방출되는 약물)로 존재하는 탄산리튬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시트르산리튬이다.

- 이 책에 등장하는 페니실린을 비롯한 다른 약물과 달리 이프로 니아지드에 대해서는 아마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이프로니 아지드는 결핵과 맞서 싸우는 약물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나 중에 흥미로운 부작용이 발견됐다. 환자들은 이프로니아지드를 복용한 직후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이 부작용은 이프로니아지 드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고 모노아민산화효소 억제제 (MAOIs. 모노아민 계통의 생화학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아드레날린 등의 분 해를 담당하는 효소의 효과를 막아 화학 물질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생 화학적 요인을 막아준다)라 부르는 항우울제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게 됐다.

- 약물을 복용할 환자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경구제제의 형태 로 복용해도 효과가 있는지를 알고 싶은 의약화학자를 위한 간단한 방 법이다. 이는 보통 타깃과 결합하는 물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는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사용한다. 흥미롭게도 '법칙' 자체는 네 개밖에 없 다. 그럼에도 제5법칙이라 한 이유는 모든 법칙 안에 5의 배수가 들어가 기 때문이다.
리핀스키의 제5법칙은 약물이 아래의 네 가지 법칙 중 한 번 이상 위반 하지 않는다면 경구제제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1 수소결합 주개 (다른 분자에게 수소 원자를 제공하는 특성)가 5개 이하.
2 수소결합 받개 (다른 분자의 수소 원자를 받을 수 있는 특성)가 10개 이하. 3 분자량은 500달톤 이하.
그리고 인정하건데 마지막 법칙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4 옥탄올과 물 사이에서 분배계수(섞이지 않는 두 용매에 용해된 용질의 농도) 가 5보다 커야 한다. 마지막 법칙은 지질(예를 들어, 지방이 있다)에 저분자 가 얼마나 잘 용해되는지 그리고 체내를 돌아다니다 다양한 기관과 얼 마나 잘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의약 합성에서 매우 중요한 규칙 중 하나이지만 '규칙'이기 때문에 예외도 많이 있다.

- 클로르디아제폭시드는 오늘날 꾸준히 효과를 발휘하는 벤조 디아제핀계 약물이다. 클로르디아제폭시드의 반감기는 대략 하 루 정도지만 효과는 더 오래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는 클로 르디아제폭시드 분자가 간에서 대사되고 계속해서 신체를 진정 시키는 효과가 있는 분자인 데스메틸디아제팜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데스메틸디아제팜은 대략 100시간 정도까지 효과가 지속 되는 물질이다. 클로르디아제폭시드와 다른 벤조디아제핀계 물 질은 신경전달물질인 감마아미노뷰티르산(혹은 GABA라는 약칭으로 도 부른다)과 뉴런이 결합하는 위치 근처에 결합해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을 통해 GABA 분자가 결합할 가능성은 더 높아 진다. GABA 분자가 이 위치에 결합하면 염화이온이 뉴런 안으 로 밀려들어가 뉴런 안이 음전하를 띠게 된다. 결국 뉴런은 전체 적으로 음전하를 띠기에 뉴런이 활성화되기 위해 한 순간에 전 위가 양전하로 전환되는 반응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는 뉴런의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며 결국 중추신경계를 억제하여 진정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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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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