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사

역사 2023. 8. 7. 12:19

- 수렵채취인의 식단은 채소, 과일, 견과와 뿌리가 대부분이었다. 유제품, 가공유, 소금, 알코올, 카페인은 없었다고 봐도 된다. 당은 과일이나 꿀로만 섭취했을 것이다. 선조들은 놀랍도록 많은 식물을 식량과 생필품으로 활용했다. 1만 2,000년 전 수렵채취인들이 살 았던 시리아의 마을 아부 후레이라Abu Hureyra에서는 192종의 식물이 발견됐다. 다양한 식단과 활동적인 생활양식으로 보아 수렵채취 인은 신체가 건강했으며 현대인보다 키가 그다지 작지 않았을 것이 다. 비만은 드물었지만, 영아사망률은 높았다. 생활 터전을 옮기면 서 아기들을 데려갈 수 없을 때나 인구 통제가 필요할 때 영아 살해 가 발생했을 수 있다. 동물의 젖이 없는 상황이니 장기간의 모유 수 유가 자연 피임법 역할을 하여 출산간격을 벌렸을 것이다. 추락, 골 절, 익사, 사냥 중 동물에게 물리는 부상 등을 포함하여 사고사는 흔 했다. 또한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동물에게 물린 상처가 세균에 감 염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병에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 때 까지 살아남은 사람도 있었으니 암이나 신경퇴화 질환, 관절염도 있 었을 것이다.
- 낚시나 사냥, 채집과 비교하면 농사일은 뼈 빠지는 노동이었고, 시간도 훨씬 많이 들었다. 잡초, 쥐, 균류, 해충을 꾸준히 막아주지 않으면 곡식은 상해버렸다. 아부 후레이라에서 기원전 9,000년에 농경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알려준 사료는 무릎이 변형되 고 발가락이 휜 여성의 유골이었다. 곡식을 빻아 가루로 만드느라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식단 대신 곡식을 주식으로 먹게 되면서 필수 영양소가 부족해졌다. 단백질, 지방, 철분이 풍부한 고기를 전혀 먹지 않기도 했다. 몸집이 작아졌고, 뼈와 치아에서 영양 부족의 흔적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문제는 빈혈이 었다. 사람들이 주로 먹던 곡물에는 철분 흡수에 필요한 지방산이 없었다. 탄수화물로만 구성된 식단에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부족하다. 열량을 충분히 섭취했는데도 펠라그라(니코틴산결핍증후군), 각기 병, 콰시오커(단백열량부족증) 등 영양 부족과 관련된 새로운 질병이 발생했다. 남녀 모두 불임을 겪기도 했다.
- 고대 전염병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유골에서 흔적을 발견하 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기록할 만한 사람이 모두 죽었다면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1만 년에 400만이었던 세계 인구가 농경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5,000년까지 겨우 500 만으로밖에 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수많은 결점이 있지만 어쨌든 농경은 수렵과 채취보다 식량 생산량이 월등히 많다. 게다가 아이를 많이 데리고 다닐 수 없어 출산 간격을 조정해야 하 는 유목 생활과 달리, 정착 생활을 하면 여성은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다. 농부들이 식량을 훨씬 많이 생산하고 여성은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게 되었는데, 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은 것일까?
- 영양 문제 외에도 수많은 질병이 새로 나타났다. 현재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전염병 1,000종 이상은 한때 동물의 몸에 살았으나 지 난 1만 년 사이 어느 시점에 종의 장벽을 넘어온 미생물로 인해 발 생한다. 예를 들어 홍역은 소의 우역 바이러스에서 왔고, 인플루엔 자는 가금류에서 왔다. 동물과 가까이, 심지어 같은 건물 안에 살면 서 동물의 병과 기생충이 인간에게 옮을 위험이 커졌다. 도시에서 수천 명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한 명만 새로운 병에 걸려도 쉽사리 퍼졌다.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현 이라크)의 초기 국가들은 감 염의 중대성을 알고 있었고, 감염된 사람을 피하고 이들이 사용한 컵이나 수저, 침대보를 함께 쓰지 않으면서 질병의 전파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일단 병에 걸리면 치료법이 없었다.
고고학 사료나 당시 문헌을 보면 초기 국가들은 쉽게 무너졌다. 인구가 대규모로 줄거나 도시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정착지를 버 리고 떠나곤 했다. 8. 물론 악천후로 인한 추수 실패, 외부의 침략, 홍수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염병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새로운 병에 처음으로 노출되면 자연 면역이 없어 도시 전체가 황 폐해질 수 있다. 결핵, 티푸스, 천연두는 농경의 결과로 나타난 최초 의 질병으로 여겨진다. 10 이들 질병을 이겨내는 유전자를 가진 몇몇 행운아와 그 자손이 살아남았다. 이렇게 자연 선택이 이뤄져 질병에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졌다. 인구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이 질병은 전염성이 강한 유아기 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질병 에 적응한 인구 집단은 같은 병을 겪은 적이 없는 다른 인구 집단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수천 년 이상 지속되면서 농경 공동체마다 여러 인 간과 가축의 전염병을 보유한 채 살게 됐다. 이런 각각의 공동체가 무역, 확장이나 이민을 통해 연결되면 언제든 재앙이 닥칠 수 있었 다. 약 2,000년 전, 중국, 인도, 중동, 로마 제국이 최초로 정기적인 무역을 시작했을 때가 그랬다. 이들은 비단과 은뿐 아니라 다양한 질병을 서로 교환했고, 그 결과 전염병이 창궐했다. 서기 165년, 로 마군은 동쪽으로 진군해서 라이벌이었던 파르티아 제국을 공격하고 현재의 이라크인 티그리스강 근처의 셀레우키아를 포위했다. 이 때 군대에 퍼진 치명적인 안토니우스 역병 Antonine Plague은 로마군과 함께 유럽으로 유입됐다. 로마 인구의 4분의 1을 죽이고 로마군을 초토화한 전염병이다. 중국의 한 왕조 또한 동시에 전염병의 파도 에 휩쓸려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왕조가 무너졌다. 안토니우스 역병의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연두라는 설이 유력하다.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무역로가 질병을 옮기고 대유행을 촉발한 사례다.
-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처음 나타난 이후 200년간 종종 다시 유 행했고, 750년에 마지막으로 발발한 뒤 사라졌다. 점점 발생 지역이 좁아지고 치명률도 떨어졌는데, 생존자들이 면역을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600년간 유럽에 이 병이 발생하지 않다가, 흑사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작가가 남긴 역병 에 대한 섬뜩한 묘사를 보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과 흑사병 둘 다 전형적인 림프절 페스트 증상이 진행된다. 먼저 극심한 두통이 오 고, 몇 시간 후 열이 오르고 피로감이 든다. 다음날이면 환자는 탈진 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허리와 팔다리가 아프고, 메스꺼 움이 일면서 구토가 잦아진다. 하루 더 지나면 타는 듯한 통증과 함 께 목과 허벅지 안쪽, 겨드랑이가 심하게 부어오른다. 일반적인 질 병이 아님을 알려주는 새로운 증상이었다. 부종은 오렌지만큼 커져 검게 변하고, 피부가 터져 악취가 나는 피와 고름이 나오기도 한다.
가족들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고, 괴로워하는 환자를 옆에서 위로할지 병이 옮지 않도록 피할지 고민한다. 몸 전체에서 내출혈이 일어나 토사물과 소변, 대변,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 피하 출혈로 검은 종기와 반점이 나타나고, 전신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번진다. 손가락, 발가락, 입술과 코가 검게 변하고 피부 조직이 괴사한다. 환 자가 살아남더라도 이런 부위는 떨어져 나가거나 영구적으로 변형 된다. 모든 체액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 이윽고 섬망이나 혼수상 태에 빠진 환자는 감염으로부터 1주, 최초의 증상 발현으로부터 며 칠 안에 사망한다. 이때쯤이면 같은 집에 사는 사람도 모두 병에 걸 린 뒤다.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오늘날 현대 의학 과 항생제의 도움을 받아도 치명률이 10%이고, 치료하지 않으면 80%에 달한다. 가래톳이라고 불리는 검은 부종은 체액을 온몸에 전가족들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고, 괴로워하는 환자를 옆에서 위로할지 병이 옮지 않도록 피할지 고민한다. 몸 전체에서 내출혈이 일어나 토사물과 소변, 대변,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온다. 피하 출혈로 검은 종기와 반점이 나타나고, 전신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번진다. 손가락, 발가락, 입술과 코가 검게 변하고 피부 조직이 괴사한다. 환 자가 살아남더라도 이런 부위는 떨어져 나가거나 영구적으로 변형 된다. 모든 체액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 이윽고 섬망이나 혼수상 태에 빠진 환자는 감염으로부터 1주, 최초의 증상 발현으로부터 며 칠 안에 사망한다. 이때쯤이면 같은 집에 사는 사람도 모두 병에 걸 린 뒤다.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오늘날 현대 의학 과 항생제의 도움을 받아도 치명률이 10%이고, 치료하지 않으면 80%에 달한다. 가래톳이라고 불리는 검은 부종은 체액을 온몸에 전달하는 림프계에 박테리아가 모여서 생긴다. 그래서 이 병에는 가래톳 페스트 또는 림프절 페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림프절 페스트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지만, 더 심각한 병 도 있다. 림프절 페스트보다 드물게 발생하는 폐 페스트의 치명률 은 더 높다. 폐 페스트는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이 공기 중에 뱉은 비 말을 흡입하여 박테리아가 폐에 들어갔을 때 발생한다. 순식간에 고 열, 두통, 탈진, 메스꺼움이 발생하고, 숨가쁨, 흉부 통증, 각혈이 나 타난다. 항생제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폐렴과 비슷한 단계가 2~4일 지 속되다가 호흡부전이 발생하고 결국 사망한다. 박테리아가 혈액에 들어가면 패혈증 페스트를 일으킨다. 혈전과 피하 출혈, 조직 괴사 가 나타난다. 패혈증 페스트에 걸리면 거의 사망한다고 봐야 하는데, 심지어 증상이 나타난 날 바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페스트를 일으키는 페스트균은 현재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 시 골 지역에서 발견되는 소형 설치류(쥐, 다람쥐, 토끼, 마멋, 프레리도그, 얼 룩다람쥐 등)에 산다. 감염된 벼룩에 물리거나, 피부에 상처가 난 상태 로 감염된 동물을 만지거나, 감염된 인간·동물의 비밀을 흡입했을 때 전염될 수 있다.
- 그렇다면 스페인독감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현대 염기서열 분석 기법은 바이러스의 진화에 대한 이해도를 혁신적으로 높였다. 빠르 게 변이하는 바이러스의 다른 종을 비교할 수 있게 되면서 매년 바 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 알 수 있게 됐다. 현재는 수천 종의 플루 RNA 염기서열이 밝혀져 있다. 플루 바이러스는 인간 외에 닭과 돼 지에도 영향을 준다. 현재 짐작하는 바로는 1905년경 H1이라는 종 류의 플루가 새에서 인간으로 옮았을 것이다. H1은 큰 문제가 아니 었지만, 1917년 인간 H1은 새들의 N1종으로부터 유전자 변형을 획 득했다. 이 새로운 H1N1 이 치명적인 스페인 독감이었다. 인간은 돼 지에게도 H1N1을 옮겼다. H1N1은 다시 몇 년 만에 덜 치명적인 형 태로 변이했으므로 스페인독감 유행 기간은 길지 않았다. 
- 1957년에는 홍콩에서 유행병이 발생해 25만 명이 감염됐지만, 1919년 스페인독감과 같은 위기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다른 종류 의 플루가 나타났다고 생각한 모리스 힐먼이 나섰다. 나중에 아시아 독감Asian flu으로 불리게 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혈액 샘플을 구한 힐먼의 연구팀은 홍콩 바이러스를 정제해서 세계 다른 곳의 혈액 샘 플에서 얻은 항체로 실험을 했다. 전 세계 혈액 샘플의 항체 중 어느 것도 새로운 바이러스를 인식하지 못했다. 신종플루에 면역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또 세계적인 대유행이 일어날 가능성 이 높았다. 세계 여행이 가능한 상태에서 홍콩에서 시작된 전염성 높은 플루의 대유행은 시간문제였다.
힐먼이 비상사태를 알렸다. 급히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야 했다. 그는 바이러스를 몇몇 백신 제조사에 보내 달걀에 바이러스를 배양하게 했다. 이윽고 바이러스는 이에 적응했고,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고 닭의 몸에 살아갈 수 있는 형태로 변이했다. 결국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접종했을 때 덜 위험한 종이 됐다. 그리고 이 닭에서 키운 종을 인간에게 접종했을 때 생성되는 항체는 홍콩의 신종 바이러스 를 인식했다. 바로 연구팀이 원하던 백신이었다. 아시아독감이 1957 년 미국에 도달했을 때, 제조사들은 이미 플루 백신 4,000만 회분을 만들어 두었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때맞춰 보호할 수 있었다. 1958년 말, 미국에서 아시아독감으로 6만 9,000명이 사망했다. 힐먼과 연구팀이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사망자 수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신종 플루는 언제든 다시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백신을 빨리 개발하고 대량 생산하여 유통하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다.
- 백신 접종은 사전에 병원체 노출을 통해 항체를 생성하여 미래 의 감염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병원균에 따라 이 과정이 통하지 않 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임질은 임균Neisseria gonorrhoeae 때문에 생기며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지만, 저항력이 문제다.  이미 임질에 걸렸 던 사람도 몇 번이고 다시 감염될 수 있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임균 에 대한 면역을 형성하지 못한다. 임균은 항체가 인식하는 표면을 매우 쉽게 변형하고 일반적인 면역 반응을 교묘하게 교란한다. 병원 균은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의 면역 체계를 피해 숨는다. 면역 반응 을 억제해서 살아남아 번식한다. 물론 백신이 여러 치명적인 감염을 예방하는 기적의 전략이긴 하지만, 모든 병을 해결할 수는 없다. 사 람과 전염병의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파악하고 배양할 수 있다면, 이 세균을 죽이는 법도 실험할 수 있다. 1907년 로버트 코흐의 전 동료인 독일 계 유대인 파울에를리히 Paul Ehrlich는 인간 세포에 영향을 끼치지 않 고 세균을 죽이는 화학 물질을 찾아 나섰다. 에를리히의 꿈은 '마법 의 탄환', 즉 표적 유기체를 죽이지만 다른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약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쟁터의 아수라장 속에서 오직 적군 만을 맞히는 기관총을 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 었다. 99% 이상의 화학 물질은 세포에 따른 효과의 차이가 거의 없 다. 예를 들면 청산가리는 모든 세포를 죽이기 때문에 약으로 쓸 수 없다. 에를리히는 한 종류의 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 에를리히는 세포를 염료로 물들이는 자신의 이전 연구에서 마 법의 탄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빠르게 성장하던 화학 산업 에 힘입어 새로운 염료가 수백 가지 쏟아졌다. 그는 세포 준비 과정 에서 다양한 염료를 더하면 다른 종류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색깔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방법으로 새로 운 종류의 세포를 발견했다. 그래서 세포가 염료에 다르게 반응한다 면, 세포를 죽이는 분자에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추론한 것이 다.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만 선별적으로 죽이는 분자가 있다면 그것 이 바로 마법의 탄환이었다.
에를리히는 마법의 탄환을 찾기 위해 일단 적합성을 따지지 않 고 표적을 죽이는 데 효과가 있는 화학 물질부터 찾았다. 인간 세포 에 바람직하지 않은 독성을 보이더라도 일단 포함했다. 이 처음 분자를 단서 화합물 lead compound이라 했다. 이 단서 화합물을 화학적으 로 조작하여 표적 세포에 대한 효력을 높이는 한편, 독성을 줄여나 가서 의약품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화학 물질의 구조 변 화에 따라 유기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하면서 화학의 세계를 생물의 세계와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에를리히는 아프리카수면병에 이 접근법을 시험했다. 이 병은 체체파리를 매개로 파동편모충trypanosome에 감염되어 생긴다. 아톡 실Atoxy!이라는 화합물이 시작점이었다. 아톡실은 1905년 수면병 치 료제로 사용되어 일부 성공을 거뒀으나, 장기 사용하면 시신경이 손 상되어 실명에 이르렀다. 에를리히 팀은 먼저 아톡실의 정확한 구조 를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백 가지 다른 형태를 합성하며 개선 을 꾀했다. 418번 화합물이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다. 생쥐 실험에서 파동편모충을 죽이면서도 독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907년, 연구팀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했고, 종종 부작용이 나타났으나 가장 심각한 종류의 수면병에 효과가 있었다."
에를리히는 희망을 얻어 이번에는 매독을 겨냥했다. 1905년 프 리츠 샤우딘Fritz Schaudinn과 에릭 호프만Erich Hoffmann은 매독이 매독 균Treponema pallidum이라는 세균에 감염되어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냈 다. 5 호프만은 에를리히에게 수면병을 위해 개발한 화합물 중 매독 에 효과가 있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에를리히는 일 본인 동료 사하치로 하타sahachiro Hata에게 프로젝트를 넘겼고, 하타 는 토끼를 매독균에 감염시켜 실험을 진행했다. 인고의 노력 끝에 606번 화합물이 토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매독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이 아르스페나민arsphenamine, 에를리히가 찾던 마법의 탄환이었다.
추가로 동물 실험을 진행하여 아르스페나민의 효력과 안전성을 확인한 에를리히는 매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실 험이 성공하자 수요가 폭발했다. 에를리히는 제약사 훼이스트Hoechst 와 손잡고 살바르산Salvarsan 이라는 명칭으로 약을 제조하여 판매했 다. 이어 1914년 부작용을 개선한 네오살바르산Neosalvarsan을 출시했 다. 살바르산과 네오살바르산은 페니실린이 도입되기 전까지 30년 간 매독 치료제로 쓰였다. 아톡실을 기반으로 한 에를리히의 약은 1930년대 설포나마이드sulphonamide라는 새로운 종류의 약이 개발되 기 전까지 유일한 합성 항생제였다. 뛰어난 실력에도 겸손했던 에를 리히는 살바르산의 발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7년 동안 운이 좋지 않다가 한 번 행운이 찾아왔다."
- 극도의 굶주림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지방 저장량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 신체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약 8주간 버틸 수 있다. 매우 춥거나 신체 활동을 해야 한다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다. 신체는 오랜 굶주림에 어 떻게 적응할까?
탄수화물을 먹으면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고 간으로 전 달된다. 간에 포도당 분자가 모여 글리코겐이라는 녹말 비슷한 고분 자가 된다. 기아의 첫 단계에서는 글리코겐을 다시 포도당으로 분 해하여 에너지로 쓴다. 글리코겐이 모두 소모되면 혈당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과 단백질을 분해한다. 지방은 글리세롤과 지방산으로 분 해된다. 이때부터 근육 등 지방산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조직에서는 지방산을 쓰고, 혈중 포도당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기관(예 를 들어, 뇌)을 위해 남겨둔다. 마라톤 선수들이 '벽'이라고 부르는 순 간이 바로 글리코겐에서 지방으로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시점이다. 잘 훈련된 마라톤 선수라면 처음 30km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달 릴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되면서 한 걸음 내 디딜 때마다 발가락부터 고관절까지 고통이 느껴질 것이다. 아무리 마라톤 전 며칠 동안 탄수화물을 먹어서 글리코겐 저장량을 최대한 늘려놨다고 해도 보통은 정식 마라톤의 4분의 3 정도를 버틸 힘밖에 낼 수 없다.
- 보통 몇 주간 지속되는 기아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지방이 주요 에너지원이다. 간은 대사 작용을 통해 지방산을 뇌의 대용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케톤체로 바꾼다. 케톤체는 아세톤으로 바뀌기 때문에 고약한 입 냄새가 난다.
지방 저장량이 떨어지면 단백질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근육은 가장 큰 단백질 저장고인 데다 어느 정도 없어도 인간이 살 수 있으므로 근육이 먼저 사라진다. 자연히 힘이 없어진다. 근육이 없어진 후에는 세포 기능에 필수적인 단백질이 분해되기 시작하고, 상태는 더 심각해진다. 이제 면역 체계의 기능이 떨어져서 감염에 취약해진다. 추가로 피부 건조, 머리카락 색 변화, 탈수, 수면욕 상 실, 두통, 소음과 빛에 대한 민감성, 청각 및 시각 장애, 복부 팽창 등 의 증상이 나타난다. 신체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체온이 낮아지고 심박과 호흡이 약해진다. 면역 체계가 이제 형편없어져서 전염병을 견딜 수 없다. 치명적인 감염을 피한다 해도 결국 심정지로 사망할 것이다.
- 체구가 작으면 음식이 덜 필요하다. 오늘날 일반적인 남성은 키가 177cm, 몸무게가 78kg이다.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아도 이 신장과 체중을 유지하는 데만 하루 2,280kcal가 필요하다. 250년 전에 이 정 도로 체격이 컸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구할 수 있는 식 량이 빈약했고, 음식을 먹으면 기생충이나 설사성 감염이 동반되어 사람들은 작고 말랐었다. 임신한 산모가 잘 먹지 못하고, 태어난 아 이가 어린 시절에도 계속 음식이 부족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체구가 작다. 그러면 음식이 덜 필요해서 아사를 방지할 수 있었다. 1750년 대 유럽인들은 지금 시각에서 보면 심각하게 저체중이었다. 1705년 프랑스인의 평균 신장은 161cm, 체중은 46kg, BMI는 18이었다. 현대 기준으로는 우려될 정도로 낮은 수치다. 1967년 프랑스인의 평균 신장은 12cm 커졌고, 체중은 놀랍게도 27kg이나 늘었다. 2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체구가 50% 커진 것이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은 식량이 부족할 때 생존에 유리했지만, 그 대가는 컸다. 키에 비해 너무 마르면 다양한 만성 질병의 발병률이 높아진다. 근육, 뼈, 심장, 폐, 기타 모든 신체 체계에 장기적인 건강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18세기 후반, 미국과 영국, 이어서 기타 유럽 지역을 시작으로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식량이 조금 더 늘어났다는 것은 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는다는 것을 뜻했다. 일을 더 하면서 생활수준이 개선되었고, 굶어 죽을 위기에 허덕이 며 필사적으로 목숨만 부지하던 삶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 더 생산적으로 일하고 의복과 주거를 개선할 시간과 에너지가 생긴 것이다. 키가 더 크고 건강해진 사람들은 만성 질병, 기생충 감 염, 기타 건강 문제와 싸워 이길 수 있게 됐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이전 세대보다 나아지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 비타민C 결핍은 왜 괴혈병을 일으키는가? 체내에 압도적으로 풍부한 단백질은 콜라겐이다. 콜라겐은 피부, 뼈, 인대, 힘줄은 물론 근육, 혈관, 내장의 주요 구성 성분이다. 콜라겐의 구조는 세 가닥의 끈을 얽어 만든 밧줄을 닮았다. 그리고 콜라겐 사슬에 산소 원자를 더해주는 비타민C는 콜라겐 합성에 필수적이다. 산소 원자는 가닥 을 따라 결합력을 형성하여 밧줄 구조를 안정시킨다. 그러므로 비타 민C가 없으면 산소 원자가 없어 콜라겐 구조가 취약해진다. 그래서 괴혈병의 증상은 콜라겐이 필요한 부위를 따라 나타난다. 예를 들면 치아 뿌리와 치아가 박혀 있는 턱뼈를 연결하는 치주인대가 있는데, 콜라겐 구조가 약하면 치주인대가 약해져서 이가 빠진다.
동물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비타민C를 합성할 수 있다. 기니피 그, 어류 일부, 박쥐, 새와 영장류(인간 포함)는 예외다. 유인원에서 진 화하는 어느 시점에서, 비타민C 합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효소를 만 드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능하지 않게 됐다. 인간 DNA에는 여전히 그 유전자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돌연변이가 심하게 진행되어 효소로 쓰일 수 없다. 이러한 돌연변이는 고대 영장류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과일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비타민C를 만드는 능력 없이도 잘 살 수 있었다. 현대의 야생 고릴라 역시 늘 필요량보 다 훨씬 많은 비타민C를 먹어서 절대 괴혈병에 걸리지 않는다. 기능 하지 않는 비타민C 유전자는 인류의 먼 조상에겐 나쁜 점이 없었으 므로 세대를 내려와 전해졌다. 그러나 인류가 과일과 채소가 부족한 식단을 먹기 시작하면서 효소의 결핍이 문제가 됐다. 19
비타민C는 물론 여러 비타민 중 하나일 뿐이다. 수천 년 동안 사 람들은 너무 제한된 식단을 먹었을 때 비타민 결핍으로 발생하는 질 병으로 고생했다. 20 비타민D(와 햇빛)의 부족은 골연화와 구루 병을 일으킨다. 비타민B3의 부족은 뱀파이어와 증상이 비슷한 펠라 그라pellagra를 유발한다. 즉, 햇볕을 받으면 피부에 물집이 잡히고, 창백해지고, 생고기를 원하며, 입에서 피가 나고 공격성과 정신 이 상이 나타난다. 비타민B12의 부족은 혈액질환을 유발하고 뇌 기능을 저해한다.
- 아우트리거 카누를 타고 미지의 대양으로 나섰던 용감무쌍한 뱃사람들은 언제 육지에 닿을지, 육지를 찾을 수는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선원들은 항해에서 식량이 떨어져 굶주렸다. 체지 방이 적은 사람이 가장 먼저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태 평양 섬 주민들은 항해에 나섰던 비만인의 후손일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여러 차례의 유전적 병목현상(후손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현 상-역주)으로 마른 선원들이 죽었고, 그래서 비만의 성향이 강력하 게 남았다. 1"궂은 날씨에 개방된 카누를 타고 몇 주 동안 여행하면 물에 젖은 채로 지내야 한다. 태평양 항해는 보통 열대지방에서 이뤄지지만 때때로 끔찍하게 추운 날도 있었다. 이런 조건에 잘 대처 하고 저체온증을 이길 수 있는 신체 유형이 자연의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 오키나와 사람들이 건강한 식단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고구마, 콩, 녹색 채소, 뿌리, 여주, 과일, 해산물 약간, 살코기가 전통적 식단이고, 재스민차를 즐겨 마신다. 전반적으로, 이들의 식단에는 복합탄수화물이 많고, 열량은 낮으며, 단백질 함량이 적 절하고 육류와 정제 곡류, 당, 유제품은 거의 없다. 단백질과 탄수 화물 비율도 중요하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보통의 일본인과 마찬 가지로 하라하치분메分, 즉 배가 80% 찰 때까지만 먹는다. 서 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식습관이다. 그래서 비만은 드물다. 1960 년 이전에 쌀이 주식일 때, 오키나와인들은 일반적인 추천 열량보다 10~15% 적게 먹었다.  장기적으로 열량을 제한하면 수명이 길어진다는 가설은 많은 동물 실험에서 유효하다고 증명됐다.  그러므로 단순하지만 어려운 장수의 비결은 매일 조금씩 덜 먹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식욕을 떨어뜨리거나 지방 흡수를 줄여 주는 비만 치료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불쾌한 부작용이 따른다. 비만을 극복하는 약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열량을 덜 섭취하고 운동을 통해 더 소비하는 단순한 전략이 최선이다.
- 생물학적으로 Y염색체가 있으면 남성이 된다. 남성을 만드는 Y염색체가 없으면 기본값인 여성이 되는 셈이다. 열성 유전병에서 보 았듯 염색체는 한 쌍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유전자에는 여분의 사본이 하나 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X와 Y염색체가 하나씩밖에 없다.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인간 유전자는 2 만 개 정도인데, Y염색체에는 70개 정도로 가장 적게 존재한다. 남 성을 만드는 핵심 유전자는 Y염색체 성결정영역 sex-determining region Y, SRY이라고 한다. Y염색체의 SRY는 여러 유전자를 활성화하여 생식 선이 난소가 아니라 고환으로 발달하게 한다. 그러면 고환은 남성의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만들기 시작한다. 똑같은 발달 과정으 로 시작한 남성과 여성 태아는 여기서부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흔한 유전병은 X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의 결함으로 발생한다. 남자에게는 X염색체가 하나뿐이라 여분의 사본이 없다. X염색체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질병은 여성의 기대수 명이 남성보다 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뒤센 근위축 Duchenne muscular dystrophy은 X염색체에 있는 디스트로핀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근육 위축 질병이다. 디스트로핀 은 근섬유를 묶어주는 거대 단백질로, 디스트로핀에 문제가 있거나 부재하면 근육이 약해지고 괴사한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면서 근육 쇠약이 뚜렷이 나타난다. 10세 전후로 휠체어가 필요하고, 보통 21 세쯤 목 아래가 마비되며, 기대수명은 26세에 불과하다. 여자아이는 돌연변이 디스트로핀 유전자가 있어도 여분의 X염색체 사본에 정 상 유전자가 있으면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아이에겐 그런 행운이 없다. 이런 식으로 성별과 관련된 질병은 다양하다. 적록색 맹이 그러하며, 유럽 왕실의 혈우병도 전형적인 사례다.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 보인자로 유명하다. 그녀는 혈액 응고 에 필수적인 단백질인 혈액응고인자 9번에서 하나의 염기가 달랐다 (A가 G로 바뀜). 이 작은 차이가 역사를 바꿨다. 
- 인간의 생명이 수정 시에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면, 사망 원인 1위는 암, 심장질환, 전염병이 아니라 착상 실패다. 언제나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수정된 배아가 불멸의 영혼을 얻는다고 믿는 다면, 사후세계에 있는 영혼의 절반은 낭포일 것이다.
낭포는 종종 알 수 없는 이유로 반으로 쪼개진다. 각 반쪽은 유전 물질이 같지만 분리된 태아가 되는데, 이것이 일란성 쌍둥이다. 또 한 수정란 두 개가 동시에 자궁에 착상되면 이란성 쌍둥이가 된다. 쌍둥이는 45명 중 1명꼴로 태어나는데, 일란성보다 이란성이 흔하 다. 그러나 임신 8건 중 1건은 쌍둥이로 시작해서 한 태아가 조기에 사망하거나 흡수되는데, 이를 '쌍둥이소실vanishing twin'이라고 한다. 우리도 쌍둥이로 발달을 시작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 인간의 알코올음료 사랑은 지난 1만 년 사이에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중동과 중국 사람들이 와인과 맥주를 만들기 시작 한 시점이다. 그러나 최근 DNA 연구에서 더 오랜 옛날부터 알코올 소비가 시작됐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발견됐다.
알코올은 독이다. 그래서 알코올을 섭취하면 독성이 덜한 물질 로 분해해야 한다. 이 과정의 첫 단계는 알코올탈수소효소를 촉매로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산화하는 것이다. 알코올탈수소효소는 간에 고농도로 존재하지만 위에도 있어서 에탄올을 섭취하는 즉시 분해가 시작된다. 알코올탈수소효소 중 ADHA는 다양한 분자의 분 해를 촉진하는데, 대부분 중에서 에탄올과는 관련이 없다. 다른 영 장류에 비해 ADHA가 에탄올을 40배 빨리 분해하는 인간과 유인원 이 예외다. 인간의 조상은 1,000만 년 전쯤 알코올을 빠르게 분해하 는 ADHA를 갖도록 진화했다. 이 시기에 에탄올을 먹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고릴라와 침팬지, 인간의 공통조상인 이 초기 유인원이 맥주나 와인을 양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자연 효모로 발효되어 에탄올이 생성된 과숙 과일을 먹었다. 가지에서 과일을 따먹지 않고 숲 바닥에 떨어진 과일을 주워 먹는 대형 유인원의 행동과 유사하 다.  그러니 에탄올은 1,000만년 전, 현대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전 부터 식단의 일부였을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나무 위에서 살지 않 고 땅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에탄올을 대사 작용하는 알코올탈수소효소를 만드는 인간 유전 자는 20개 정도다. DNA 염기서열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효소 가 생산되기 때문에 에탄올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른 효과를 유발한 다. 예를 들어, 아시아에서 흔한 염기서열 변이는 알코올에 부작용 을 일으켜 얼굴이 붉어지게 하고 두통과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23 이 런 유전적 차이 때문에 동아시아와 폴리네시아에는 유럽보다 알코 올 중독자가 드물다. 
- 흡연에 대한 반응은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니코틴은 피에 녹아 신체를 순환하며, 간에서 CYP2A6라는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영향력이 약한 화학물인 코티닌으로 전환되면서 사라진다. 15 인간 의 CYP2A6 효소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니코틴을 코티닌으로 전환 하는 효율에는 차이가 난다. 니코틴을 빨리 분해하는 사람은 니코틴 농도를 유지하려면 더 자주 담배를 피워야 해서 흡연에 중독될 확률 이 높다. 또한 담배를 끊기도 더 어렵다. 반대로 CYP2A6가 니코틴 을 천천히 분해하는 사람들은 담배를 더 적게 피우고, 덜 깊게 들이 마신다. 니코틴을 덜 원하고, 금연 시도 시 심각한 금단 증상을 겪을 확률도 낮다.
- 일부러 중독을 유발하는 제품을 만들려고 해도 담배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손대는 약물이 얼마나 될까? 하지 만 골초들은 하루에 수십 번도 담배를 피운다. 궐련형 담배는 중독 성을 강화하는 특징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시가보다 훨씬 심하 다. 저렴하고, 열량이 없고, 사용이 쉽고, 약물 반응이 몇 초 안에 나 타났다 몇 시간 만에 사라진다. 흡연은 식욕을 억제하므로, 담배를 끊으면 살이 쪄서 금연 결심이 약해지곤 한다. 또한 불법도 아니다. 담배가 건강에 너무나 치명적이지만 않다면, 중독성이 높아도 지금 처럼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 흡연은 왜 암을 유발하는가? 세포가 자라지 않아야 할 때 자라 면서 암이 시작된다. 신체의 모든 세포는 단 하나의 세포, 수정란에 서 유래한다. 수정란은 분열하고 분화되어 인간의 모든 조직과 기관 이 된다. 어떤 세포는 계속 분열해서 죽은 세포를 대체해야 한다. 골 수, 피부, 내장 세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세포는 부상 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분열한다. 보통 세포의 성장은 강력하게 통제된다. 세포가 성장을 막는 신호에 정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면 암 조 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세포의 DNA가 돌연변이를 획득하여 세포 성장 통제와 관련된 단백질이 작용하는 방식을 바꿨을 때 성장 억제 에 실패하게 된다. 종양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때 세포 성 장을 자극하는 유전자다. 종양 억제 유전자는 손상된 세포의 성장을 막는 단백질을 암호화한다. 종양 억제 단백질이 변이하면 세포는 자 라지 않아야 할 때 자란다. 세포의 DNA가 심하게 손상됐을 때 활성 화되는 종양 억제 유전자의 한 예는 p53이라는 단백질을 암호화하 는 TP53이다. 보통 p53은 손상된 세포의 분열을 막고 심한 경우 사 멸하도록 유도한다.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세포를 신체에서 없애 는 것이다.
-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은 모두 암을 유발하기 쉽다. 담배는 매우 뛰어난 돌연변이 유발 물질이다. 종양 형성 유전자와 종양 억제 유전자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돌연변이 유발 화학 물질을 폐로 바로 전달한다. 벤조피렌이 그중 하나다. DNA의 구아닌 염기와 반응하여 DNA 구조를 파괴하고 돌연변이를 일으킨 다. 벤조피렌은 특히 p53 유전자의 중요한 구아닌 세 개에 돌연변 이를 잘 일으켜서, p53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폐 세포가 암세포로 변한다. 
벤조피렌은 담배 연기에 있는 수십 가지 발암물질 중 하나일 뿐 이다. 담배에는 유기화학물질뿐 아니라 납, 비소, 카드뮴 등 유독성 금속도 들어 있다. 
- 포드 모델 T는 최초로 대중화된 자동차였지만 매우 위험했다. 비 효율적인 후륜 브레이크를 사용했고, 전륜 브레이크는 없었다. 수 동 크랭크로 시동을 걸다 엔진이 걸리면 팔이 부러질 수 있었고(당시 에는 라디에이터 그릴 아래 쇠로 된 크랭크핸들을 끼우고 돌려 시동을 걸었는데, 힘 센 남자가 사력을 다해 돌려야 했다-역주), 무쇠로 된 운전대는 심장을 향 하고 있어 충돌이 일어나면 언제든 찔릴 수 있었다. 연료 탱크는 운 전자를 산 채로 태워 버리기 좋게 좌석 아래에 있었다. 라이트는 약 했다. 사고가 나서 평판으로 된 앞 유리를 뚫고 날아가면 온몸이 썰 렸다. 안전벨트는 없었고, 방향 지시등도, 앞 유리 와이퍼도, 속도계 도, 백미러도, 물론 에어백, 컵홀더, 스테레오 시스템, 에어컨, 내비게이션도 없었다. 차가 뒤집히는 일도 적지 않았는데, 그러면 사람은 머리부터 떨어져 차에 깔렸다. 시속 72km 이상 속도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해해야 할 뿐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덜 두려워할 수 있도록, 더 이해해야 할 때다. (마리 퀴리 Marie Curie, <위태로운 터전Our Precarious Habitat>)
- 전염병에 승리를 거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시고 중요한 아이디어들 덕분이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이들 아이디어가 널리 적용되지 않던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다. 중요한 아이디어의 첫 번째는 바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다. 1600년쯤 런던의 사망자 통계표를 시작으로 체계적으로 사망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기 전에는 사망 원인을 어림짐작하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존 그랜트가 사망자 통계표 데이터를 연구하면서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도시 생활이 시골 생활보다 건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존 스노우는 소호의 환자 발생 가구를 하나하나 찾아가 모두 브로드 거리의 펌프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오염된 물이 콜레라를 유발한다고 당국을 설득 할 수 있었다.
의료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고의 혁명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작 은 유기체가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세균유래설이다. 세균유래설 은 왜 깨끗한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옷을 빨고, 생활공간을 청소 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고, 멸균 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했다. 위생 관리를 도입하면서 병원이 감염의 온상이 아닌 안전 하게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질적, 양적으로 더 나은 음식으 로 기근과 영양실조를 해결하면 신체는 질병에 저항할 수 있다. 어 떤 세균이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파악하게 되자, 선구자들은 이 세균을 죽이거나 백신을 만들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특정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려면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이는 제임스 린드 가 선원들을 둘씩 나눠 괴혈병을 예방하는 다양한 음식을 시험할 때 처럼, 다른 부분은 모두 같고 연구 대상 치료법만 다른 집단을 대조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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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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