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여정

역사 2023. 5. 24. 13:16

- 신석기혁명뿐 아니라 문화와 제도, 과학 그리고 기술 측면에서 이 뤄진 일련의 기념비적 진보도 생활수준엔 지속적으로 뚜렷한 효과를 주지 못했다. 그 잣대가 경제적(1인당 소득)이든 생물학적(기대수명)이 든 마찬가지였다.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인류도 거의 언제나 곤궁과 결핍의 함정에 빠져 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지역별 로 얼마간 차이는 있었지만 여러 문명에서 비숙련노동자의 1인당 소 득과 임금은 몇천 년간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만 오르내렸다.
특히 여러 추정에 따르면 3,000여 년 전 바빌론제국과 아시리아 제국의 일당은 각각 밀알 7킬로그램과 5킬로그램에 상당했고, 2,000여 년 전 아테네는 11~15킬로그램, 로마제국 치하의 이집트는 4킬로그램이었다. 산업혁명 전야에도 서유럽 국가의 임금은 좁은 범위 안에 머물렀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일당은 밀 10킬로그램, 파리는 5킬로그램, 마드리드와 나폴리 그리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다른 도시는 3~4킬로그램에 상당했다. 
더욱이 지난 2만 년간 다양한 부족과 문명에서 나온 유골은 지역 과 시간에 따른 차이가 있더라도 인류의 (출생 시) 기대수명이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오르내렸음을 보여 준다.  중석기시대 북아프리 카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발굴된 유골은 당시 기대수명이 30세 에 가까웠음을 시사한다. 그 후 농업 혁명 기간에 일부 지역에서는 기대수명이 줄어들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선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4,000~1만 년 전 신석기혁명 초기 단계의 매장 터에서 발굴된 유골은 당시 인류의 기대수명이 차탈회위크(튀르키예)와 네아니 코메데이아(그리스)에선 약 30~35세, 키로키티아(키프로스)에선 20세, 카라타스(튀르키예)와 레르나(그리스)의 도시 인근 지역에선 30세였음 을 시사한다. 2,500년 전 아테네와 코린토스는 기대수명이 약 40세에 이르렀지만, 로마제국 시대의 묘석은 사망할 때 나이가 대략 20~30세 였음을 보여 준다. 24) 더 최근의 증거로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까지 잉글랜드의 기대수명은 30~40세 안에서 변동했으며, 25) 산업화 이전 프랑스)와 스웨덴,27) 핀란드28)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발견된다.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 거의 30만 년간 1인당 소득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을 넘길까 말까 했고, 전염병과 기근은 흔한 일이었다. 또한 아기 넷 중 한 명은 첫돌에 이르지 못했고 산모는 출산 중에 죽 는 경우가 흔했으며, 기대수명은 40세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 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다양한 사회 계층의 생활수준이 역사적으로 전례 없이 급속한 향상을 보이기 시 작했고, 뒤이어 전 세계의 다른 지역도 이런 과정을 경험했다. 놀랍 게도 19세기가 밝아 온 후 전 세계 1인당 소득은 14배로 치솟았고 기대수명은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맬서스 연대와 비교하면 그야 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고 할 만한 기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다. 그렇다면 인류는 맬서스가 말한 힘의 지배에서 어떻게 벗어났을까?
- 인류사를 정체기에서 성장기로 전환할 수 있게 한 촉매를 찾을 때, 많은 이들은 산업혁명을 지목한다. 세계가 현대의 성장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하도록 산업혁명이 갑작스럽게 외부적 충격을 가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난 18~19세기를 살펴보면 그 기간 의 어느 시점에서도 '급격한 전환'은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전 환은 인류사 전체 흐름상에서는 빨랐지만, 산업혁명이 이뤄지는 동 안 경험한 생산성 향상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실제 산업혁명 초기 기술은 점진적으로 변화했으므로, 인구는 급증했지만 평균소득은 아주 완만하게 상승했을 뿐이다. 맬서스가 예견한 그대로였다. 그러나 거의 1세기가 지난 어떤 시점에 맬서스 균형은 정말 신기하게 사라져 버렸고 뒤이어 엄청난 성장기가 도래했다.
지난 몇십 년간 내가 인류 성장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 안한 개념적 틀은 수학의 한 분야인 분기 이론 bifurcation theory(매개변수 의 작은 변화가 갑자기 질적 변화 혹은 위상 변화를 일으키는 동역학계에 관한 이론- 옮긴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복잡동역학계complex dynamical system 행태에 관한 이 이론은 (임계치를 넘은 열이 물을 액체에서 기체로 바꿀 때와 같이)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단 하나의 요인이 조금만 달라져도 갑 작스럽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인류사의 표면 아래서 돌아가는 변화의 톱니바퀴 정체를 밝히 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맬서스 균형이 작동하던 시대 내내 끊임없이 돌아가던 이 변화의 톱니바퀴가 마침내 그 제약을 벗어나면서 현대 의 성장 체제가 나타났다. 이 과정은 앞에서 말한 난로 위 주전자 안 의 변화와 같다. 그렇다면 맬서스 연대에 끈질기게 작동했고, 지난 2 세기 동안 인류 생활수준의 극적인 변혁을 촉발한 이 수수께끼 같은 변화의 톱니바퀴는 무엇이었을까?
- 변화의 톱니바퀴 중 하나는 인구 규모다. 신석기혁명의 전야인 기원전 1만 년 지구상에는 240만 명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로마제 국과 마야문명이 정점에 가까워지던 기원후 1년까지 세계 인구는 78배로 불어나 1억 8,800만 명에 이르렀다. 1,000년 후 바이킹이 유 럽 북부의 여러 해안을 습격하고, 중국이 처음으로 전투에서 화약을 쓸 즈음엔 2억 9,500만 명에 달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던 1500년에는 거의 5억 명 가깝게 늘어났고, 산업화 초기인 19세기 초입에는 10억 명 선을 거의 넘어섰다(도표 6).
인구 규모와 기술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맬서스 연대 때 인구는 기술 진보 덕분에 1만 2,000년간 400배로 늘면서 인 구밀도도 높아졌으며, 이렇게 늘어난 인구는 기술혁신의 속도 향상 에 기여했다. 인구가 늘면서 새로운 물건과 도구, 숙련된 업무뿐만 아니라 그것을 발명할 뛰어난 개인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이 창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규모 사회의 경우, 개인의 전문화 범위를 더 넓히고 전문성을 더 키우면서 교역을 통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교환함으로써 인구 증가의 혜택을 누렸다. 이는 다시 신기술의 확산과 침투를 가 속화했다." 인류의 출현 무렵부터 스스로 강화되는 되먹임 고리가 나타나 줄곧 작동한 것이다.
인구 규모가 기술 수준에 미친 영향은 기록이 남은 역사 전 과정 에 걸쳐 모든 문화와 지역에서 명백히 나타났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처럼 좀 더 일찍 신석기혁명을 경험한 지역에는 가장 큰 규모의 선사 시대 정착지가 생겼고, 그 후로도 계속 기술적으로 앞서 나가는 이 점을 누렸다. 마찬가지로, 농업에 적합해 인구밀도가 높은 특성을 보인 지역은 더 앞선 기술을 가졌다. 흥미롭게도 태평양 폴리네시아 의 소규모 사회가 유럽과 접촉하던 초기, 그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던 하와이나 통가 같은 공동체는 바누아투 Vanuatu (남태평양의 섬나 라-옮긴이)의 말레쿨라섬과 티코피아섬, 산타크루스섬처럼 더 작은 사회보다 복잡하고 정교한 채집 기술을 더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 기술적 혁신은 더 많은 인구를 떠받치면서 인류가 생태적 · 기술적 환경에 적응하도록 자극했으며, 규모와 적응력을 키운 인구는 다시 신기술을 고안하고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역량을 키웠다. 이것이 인류사 표면 아래에서 돌아간 변화의 톱니바퀴다. 마침내 인류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규모로 혁신의 폭발을 불러온 것 역시 변화의 수레바퀴였다. 산업혁명은 그러한 혁신의 폭발이었다.
- 이처럼 광범위한 연구의 결과로 산업혁명기의 기술과 상업 발전 이 인적자본에 대한 다양한 투자를 자극했음이 드러난다. 다만 어떤 사회에서는 인적자본이 문해력 향상과 교육의 형태를 취하는 데 비 해 다른 사회에서는 전문적 기능의 계발로 나타난다. 앞 장에서 논 의한 것처럼 기술 발전과 인적자본이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향상된 인적자본이 추가적 기술 발전을 촉 진했다는 증거도 있다는 것이 놀랍진 않다. 
실제로 산업혁명이 유럽의 다른 국가도 아닌 영국에서 일어난 이 유 중 하나가 인적자본 측면의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 (같은 상품을 더 적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하는 능력. 반대편은 비교열위comparative disadvantage를 가진다-옮긴이)다. 그 우위는 산업혁명 초기에 특히 유익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증기기관의 연료였던 석탄의 경우 영국이 확실히 풍부했지만,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영국에는 더욱 희소한 원재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인적 자본이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 영국엔 여러 부류의 전문 목수와 금 속가공인, 유리 제조공, 발명가 뒤에서 그들의 혁신적 설계에 따라 물건을 제작하고 심지어 개선까지 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있었다고 설 명한다. 20) 이들은 그 기술을 도제에게 전수했다. 영국의 산업혁명 초 기단계엔 그 도제의 숫자가 급증했으며 산업 기술이 채택되고 발전 되며 확산되는 과정에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27)
실제로 영국에서 이주해 온 기술자의 경우 벨기에와 프랑스, 스 위스, 미국을 포함해 다른 국가에서 산업의 개척자로 활약했다. 실 제로 북아메리카의 첫 섬유 공장은 1793년 로드아일랜드주의 도시 포터킷에 세워졌다. 내가 이 책을 쓴 브라운대학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진 곳이다. 미국 산업가 모지스 브라운 Moses Brown 이 자본을 댄
그 공장의 기획자는 다름 아닌 스물한 살에 미국으로 온 영국계 산 업가 새뮤얼 슬레이터Samuel Slater 였다.
슬레이터는 열 살 때부터 섬유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아 크라이트의 방적기를 직접 다루며 기술적 이해도를 높였다. 자국의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영국 정부는 방적기 수출을 금지하고 제작 에 필요한 청사진 반출까지 막았다. 하지만 슬레이터는 간단한 방법 을 찾았다. 간단하지만 극히 어려운 그 방법은 설계도를 통째로 외 우는 것이었다.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슬레이터의 영향 은 너무나 커서 그가 태어난 영국 도시에서는 '반역자 슬레이터'라며 비난했다.
교육받은 노동자가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사실은 산업화를 일찍 경험한 다른 국가의 역사적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28) 19세기 프로이 센에서는 문해율이 특허등록으로 나타나는 혁신 역량에 긍정적 영 향을 미쳤다. 29) 더 놀라운 사례도 있다. 어떤 연구는 18세기 프랑스 각 도시의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 규모를 반영하는) 《백과전서 Encyclopédie》 구독자 수가 만 1세기 후 같은 도시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기술혁신과 긍정적 관계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3) 그와 비슷한 국가 간 분석에 따르면 각국의 기술자 수가 1인당 소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31) 오늘날 세계에서 인적자본 형성은 기업가정신을 북돋우고, 새로운 기술과 작업 방식을 채택하도록 장려하며, 더 넓게는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 
-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산업화 도중에 있던 대부분 국가의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지던 때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는 그 추세가 반전됐다. 선진국의 인구 증가율과 출산율은 가파르게 낮아졌다. 이 패턴은 20세기에 나머지 지역에서도 더욱 빠른 속도로 되풀이됐다. 1870년부터 1920년까지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 출산율은 30~50퍼센트 낮아졌고(도표 8), 미 국의 하락세는 더욱 급격했다. 이와 같은 출산율 추락은 이에 앞서 나타나는 사망률 하락과 더불어 인구변천이라 일컫는 현상이다.
이 인구변천은 맬서스 기제를 지탱하던 주춧돌 중 하나를 부숴 버렸다. 이제 높아진 소득이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는 데 흘러가지 않았다. 더 많은 자녀가 '남는 빵'을 나눌 필요가 없어졌다. 인류사 에서 처음으로 기술 진보가 장기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불러왔다. 정체의 연대에 조종을 울린 셈이다.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나 지속적으 로 성장하는 현대의 탄생을 알린 것은 낮아지는 출산율이었다.
- 산업혁명의 기술 진보는 양과 질의 상충 관계에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기술 진보에 따른 부모의 소득 증가다. 즉, 원 한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이 소득효과income effect는 전체적으로 양육에 투자하는 자원 을 늘려 주는 쪽으로 작용했다. 둘째, 소득 창출 능력이 늘어남에 따 라 양육의 기회비용opportunity cost(무엇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모든 것. 명시적 비용뿐만 아니라 암묵적 비용도 포함된다-옮긴이)이 늘어났다. 즉, 부모가 일하는 대신 양육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났 다. 이러한 대체효과 substitution effect는 출산 횟수를 줄이는 쪽으로 작 용했다. 역사적으로는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를 압도해 출산율이 높 아졌다고 볼 수 있다. 실증 연구는 실제로 맬서스 연대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가구 소득 증가가 정확히 이러한 결과를 낳았음을 보여 준다.
- 19세기 국제무역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무역 확대는 유럽 북서부의 급속한 산업화가 촉발하고, 식민주의가 기름을 부은 결과였다. 무역은 낮아진 무역 장벽과 운송비에 더욱 고무됐다.
1800년에는 세계의 생산액 중 단 2퍼센트만이 국제적으로 거래 됐다. 이 비율은 1870년까지 5배로 늘어 10퍼센트가 됐다. 1900년 에는 17퍼센트, 1차 세계대전 전야인 1913년에는 21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러한 무역의 대부분은 산업화된 국가 사이에서 이뤄졌지 만, 개발도상국의 경제도 중요한 시장으로 주목받으면서 무역 규모 가 커졌다. 당시 무역 패턴은 명백했다. 북서부 유럽 국가는 제조업 상품의 순수출국이었고,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각국은 원재료와 더불어 농업 기반 생산품의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 다." 이때 기술 발전 수준은 국제무역의 도움 없이도 산업혁명을 낳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유럽 국가의 산업화 속도와 성장률은 국제무역 덕분에 더욱 높아졌다. 서유럽의 성장은 그들의 식민지와 자원, 원주민,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그 후손에 대한 착취에 더해 이러한 국제무역에 힘입은 결과다. 또한 그 전 몇 세기 동안 절정에 달했던 대서양 삼각무역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상대로 한 무역도 서유럽 경 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상품 교역은 그 자체로 수익성이 매우 높았고 산업화 과정 에 필요한 목재와 고무, 원면 같은 원재료를 공급하는 역할도 했는 데, 이는 모두 노예와 강제 노동을 통해 값싸게 생산됐다. 그렇게 식 민지에서 얻은 밀과 쌀, 설탕, 차 같은 농산물을 통해 서유럽 국가는 공업 제품 생산에서 전문성을 높이고, 식민지에 자국 상품 시장을 확대해 이득을 볼 수 있었다. 
- 사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이유는, 이보다 일찍 이뤄진 제도적 개혁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 2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14세 기의 흑사병으로 영국제도의 거주자 중 거의 40퍼센트가 죽었다. 그 에 따라 노동자가 부족해지면서 농노의 협상력이 세졌고, 지주 귀족 은 소작농의 도시 이주를 막기 위해 임금을 올려 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흑사병은 영국 봉건 체제에 치명타를 안겼고, 포용성을 늘리고 착취를 줄이도록 정치제도를 바꾸었다. 그 제도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분산하고 사회적 이동성을 장려하며, 사회의 더 많은 부문이 혁신을 이루며 부를 창출하는 데 참여하도록 고무했다.
- 영국과 달리, 동유럽에서는 흑사병이 휩쓸고 간 후 오히려 지주 귀족의 착취가 강화됐다.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느렸던 데다 더 가혹 한 봉건 질서가 존속했고, 지역 농산물에 대한 서유럽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그 수요에 맞추려 동유럽 영주는 농노를 더욱 가혹하게 쥐어짰다-옮긴이). 흑사병 창궐 이전이라면 사소했을 수도 있는 서유 럽과 동유럽 사이의 제도적 차이가 흑사병 후에는 중대한 분기分岐를 초래해 서유럽을 동유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장 궤도에 올려놓았다.
다른 국가에 비해 길드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도 영국이 산업혁명에 앞서 일부 제도적 변화를 이루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유럽 전역에서 운영된 길드는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숙련된 장인을 회원으로 두고 그들의 이익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독점력 을 기업가정신과 기술 진보를 억누르는 데 썼다. 15세기 후반 파리 의 필경사 길드 Scribes Guild는 파리의 인쇄기 도입을 거의 20년에 걸쳐 막아 냈다. 1561년 뉘른베르크의 적금 선반공 길드Red-Metal Turners Guild(동을 80퍼센트 이상 함유한 황동을 적금이라 한다-옮긴이)는 시의회 에 압력을 가해, 한스 슈파이히Hans Spaichi가 발명한 슬라이드 공구대 선반이 더 퍼지지 못하도록 했고, 심지어 해당 기술이나 제품을 채택 한다면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10) 1579년 폴란드 단치히(그단스크) 시의회는 새로운 직기를 발명한 이를 익사시키도록 명령했다. 전통 방식으로 띠를 짜는 이들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11) 19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직공 길드 Weavers Guild의 분노한 무리가 천 공카드를 쓰는 혁신적 직기의 발명가 조셉-마리 자카르Joseph-Marie Jacquard를 상대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카르의 직기는 후에 첫 세대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영감을 준 기술로 작동했다.
하지만 영국의 길드는 유럽 대륙 길드에 비해 힘이 약했는데, 부 분적으로 여러 지역의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면서 장인에 대한 수요가 길드의 공급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또한 1666년 대화재 Great Fire 직후 시티 오브 런던 City of London 지역을 신속히 재건하기 위해 대체로 규제하지 않는 방식을 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길드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의회가 발명가를 보호하고 힘을 실어 주기가 더욱 쉬웠고, 산업가가 새로운 기술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물론 영국이라도 토지에 기반을 둔 엘리트 계층은 기술 진보를 단호히 회피하고 권력을 영속화하려 했다. 하지만 영국이 그들의 이 해관계에 휘둘리기보다는 상인과 기업가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영향 을 받은 것은 앞서 이야기한 제도 개혁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 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현대적 경제로 나아갔고, 서유럽의 다른 국가 는 재빨리 그 뒤를 따라야 했다. 인류 전체가 맬서스 시대의 끝자락 에서 성장의 시대를 눈앞에 둔 상태이긴 했지만, 영국은 곧이어 살펴 볼 다른 요인에 더해 이러한 제도적 발전을 빠르게 이룬 덕분에 인류가 상전이를 맞을 여건이 무르익은 바로 그때, 급속한 기술 발전이 가능했다.
- 문화적 특성과 경제 성장 간의 관계에 대한 현대적 사상은 프로 테스탄티즘이 처음 뿌린 씨앗에서 싹텄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05 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이다. 베버는 현 세에서 부를 쌓는 능력은 천국에 이를 가능성을 보여 주는 강력한 표시라는 신념을 굳혀 부 자체를 목적으로 정당화하며, 게으름을 부 끄러운 것으로 재인식시키는 데 프로테스탄티즘이 기여했다고 주장 했다. 서유럽에선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베버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부상에 대해 마르크스가 강조한 물질적 힘보다 관념의 힘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는 문화적 특성이 출현하는데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 19세기 프로이센을 보자. 프로테스탄트 비중이 높은 지역은 실제로 타 지역보다 높은 문해율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교육에 더 투자하려는 프로테스탄트의 성향은 장기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이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데 일조했다. 더욱이 과거에 신성로 마제국 Holy Roman Empire (962년 오토 1세 즉위 때부터 1806년 프란츠 2세가 물러날 때까지의 독일 제국. 로마제국의 부활과 연장, 기독교와의 일체를 강조 하기 위한 국명이다-옮긴이)이었던 지역에서의 증거 역시 프로테스탄 티즘이 오늘날의 기업가를 키울 가능성을 훨씬 높였음을 시사한다.  [Nunziata and Rocco(2016, 2018) 논문은 이 지역의 종교적 소수 집단을 분석 해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따르는 이들이 기업가가 될 확률은 가톨릭교 교도 대비 약 5퍼센트포인트 높다고 밝혔다-옮긴이]
-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중앙집권화로 이어진 지리적 연결성 geographical connectivity은 중세 시대에는 분명 경제와 기술 측면에서 유 익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전야에는 결국 부정적 효과를 냈다. 기술적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하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경쟁과 문화적 유동 성이 더욱 유용했기 때문이다. 
지리적 연결성이 상충되는 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경제 발전의 다 양한 단계에 있는 사회가 각기 다른 정도의 연결성에서 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기술 진보의 잠재적 속도가 비교적 느린 단계라면 중국처럼 높은 지리적 통일성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킨다. 통일성이 경쟁과 혁신에 부정적 효과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면서 법의 지배를 확립하고 공공재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진보가 가속화될 단계에서는 더 낮은 수준의 연결성이 번영을 촉진한다. 사회적 결속 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경쟁과 혁신을 원활히 하기 때문이다. 달 리 말하면 변화의 톱니바퀴가 빠르게 움직이고 기술 진보가 속도를 높이면 성장을 위한 지리적 연결성의 최적 수준이 낮아진다는 뜻이 다. 이러한 변화가 두 지역 문명의 운명을 뒤바꿨다.
다만 지금의 중국은 새로운 기술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거치지 않고도 현대적 성장 체제로 이행한 상태다. 그러므로 중국의 경제 규 모를 고려할 때 지리적 연결성과 정치의 중앙집권화 그리고 사회적 결속이 중국을 세계적 번영의 최전선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 대륙 간 혹은 대륙 내에서 농작물 산출률이 불균등하게 분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도표 17). 실제로 기원후 1500년 이전 유럽 (보리)과 아시아(벼)의 지배적인 작물은 아프리카의 작물(콩류)과 비교 해 에이커당 잠재적 산출 열량이 거의 2배였으나 파종부터 수확까지 의 경작 기간은 3분의 2에 불과했다.
농작물 재배의 잠재적 수익률이 높은 지역 출신자들이 많은 국가 는 실제로 더 장기 지향적 경향이 있음을 실증 자료로도 알 수 있다. 다른 지리적·문화적·역사적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더욱 이 유럽사회조사 European Social Survey (2002~2014)와 세계가치조사 World Values Survey(1981~2014)가 수행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 분석 역시 농작물 재배의 잠재적 수익률이 높은 지역 출신자들은 미래 지향적 성향이 높음을 시사한다. 
- 늘 그렇듯이, 앞의 연구 결과는 거꾸로 된 인과관계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미래 지향적 사고가 강한 사회는 곧 장기적 투자가 필요 한 농사를 선택하는 사회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농업의 수익 성과 미래지향성의 상관관계는 잠재적 일일 열량 산출률에 관한 것 인데, 이는 특정 지역에서 실제 기른 작물의 산출률이 아니라, 순전 히 농업 기후적 특성으로 추정하는 산출률이다. 농업 기후적 특성이 (대체로 인류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의 인과성 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잠재적 일일 열량 산출 률이 (아니나 다를까) 실제 산출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산출률이 정말로 미래 지향적 사고의 강화를 촉발하는 기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미래 지향적 사고가 강한 사회가 장기적 산출률이 높은 작물에 적합한 지역으로 이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교류 이후 아메리카에서 온 옥수수와 감자처럼 산출률이 높은 작물의 도입은 이미 정착한 구세계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31) 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택적 이주가 아니라 문화적 적응 과정을 통해 미래 지향적 사고가 생겼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재 유럽과 미국에 거주하는 이민자 2세대 에 관한 연구에서 발견된다. 이민자 2세대가 얼마나 미래 지향적 사 고를 갖는지는 그 세대가 태어나서 자란 국가보다 그들 부모의 고 국에서 자라는 농작물의 잠재적 산출률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다. 이런 경우 농작물 산출률(혹은 그 바탕에 있는 농업 기후적 특성)이 미래 지향적 사고에 주는 영향은 지리적 조건의 직접적 효과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체화해 세대 간에 전해지는 것이다.
지리적 조건을 문화적 특성으로 바꾸는 것은 농작물 산출률뿐만 이 아니다. 농작물에 적합한 경작 유형 또한 그 역할을 한다. 중국의 경우 벼농사에 맞는 토양의 적합성이 집산주의적이고 상호 의존적 인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 실제로 벼농사를 지으려면 공용의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요하다. 반면 비교 적 낮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한 밀 재배의 경우 개인주의적 문화 출현 에 이바지했다. 마찬가지로 국가 간 비교를 통해 더 노동집약적인 농작물에 적합한 토지가 집산주의적 문화 출현과 관련이 있음도 알 수 있다.
- 인류가 정체기에서 성장의 시대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여성의 임금노동 참가다. 이는 주로 산업화에 따른 것이었다. 산업화에 따라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면서 소가족에 대한 유인이 커지고 인구변천이 촉진됐다. 하지만 성별 역할에 대한 각 사회의 지 배적 태도 역시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이 요인은 어떤 지역에서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과 발전 과정을 촉진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방해했다. 여기서도 그러한 문화적 특성이 어디서 비롯됐 는지 추적하면 결국 지리적 조건에 이른다.
1970년 덴마크 경제학자 에스테르 보세루프Esther Boserup는 오늘 날 노동시장에서 여성 역할에 대한 태도 차이는 산업화 이전 경작 방 식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에 따르면, 지역별로 토양의 특성과 우세한 작물은 다르기 마련인데 어떤 지역에선 농부가 직접 괭이와 갈퀴로 땅을 갈았지만, 다른 지역에선 말이나 소가 끄는 쟁기를 이용했다. 동물을 다루며 쟁기를 쓰려면 상체의 강한 힘이 필 요하므로 남성이 훨씬 유리했다. 쟁기를 많이 쓰는 지역 여성의 일은 인류사 내내 집안일에 한정됐다. 한마디로 쟁기에 적합한 토양의 특 성이 노동의 성별 분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전 세계의 농업사회에서 나온 증거가 보세루프의 가설을 뒷받침한다. 쟁기를 쓰는 지역은 가계 내의 노동 분화가 뚜렷했다. 남성은 주로 농사를, 여성은 가사를 맡았다. 그렇다면 괭이와 갈퀴 를 쓰는 지역은 어땠을까? 물론 가사가 주로 여성의 영역이긴 했지 만, 물을 긷고, 소젖을 짜고, 땔감을 모으는 여타 노동뿐 아니라 농 사도 땅을 가는 일부터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까지 나눠 일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쟁기는 농사뿐 아니라 모든 활동에서 노동 분화를 초래 했다. 세계가치조사가 수행한 여론조사(2004~2011)를 기초로 한 분 석을 보면, 지금의 다양한 성별 편향성이 쟁기 채택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왜 쟁기를 더 일찍 쓴 지역일수록 노동시장과 기업이 사회, 정치계에 여성이 더 적은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35) 여성에 대한 태도에 쟁기가 미친 영향은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쟁기를 쓰는 국가에서 온 이민자 2세대는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여성에 대한 평등주의적 견해가 희박했고, 여성의 경 우 같은 경제적 유인과 기회가 있더라도 노동시장 참여율이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들이 선조의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은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가 세대를 걸쳐 전달됐음을 시사한다. - 언어는 복잡해지는 세계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히 도울 뿐 아니라 말하는 이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준다. 생각하고 인식하고 서로 관 련짓는 방식과 세계 전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언어는 기존의 문화적 태도를 강화하는 잠재력을 지닌다. 5) 문화와 언어의 특성이 세 가지 핵심적인 쌍을 이뤄 공진화한 것이 이 패턴을 잘 보여 준 다. 40) 그 세 쌍의 특성은 각기 그 언어가 생겨난 지역의 지리적 환경 에 뿌리를 두고 발전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첫 번째 쌍은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토양이 쟁기 사 용에 적합해 성별로 뚜렷한 노동 분화가 이뤄진 남유럽 같은 지역은 로망스어 Romance languages (라틴어에서 갈라진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따위 - 옮긴이)처럼 문법상 성을 구분하는 언어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쟁기 사용이 어려운 지역에선 성별에 중립적인 언어가 생겨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문법상의 성 구분은 성에 대한 편견 과 노동의 성별 분화를 더욱 굳히고 지속시켰으며 여성의 인적자본 형성과 노동시장 참여, 전반적인 경제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 쌍은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한쪽은 사막과, 다른 쪽은 바다와 마주한 산악 지대를 생각해 보자. 이렇게 생태적 다양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다양한 생태 환경에 사는 이들이 각자 전문화된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공동체 사이의 교역이 촉진된다. 이러한 환경은 교역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한 기반 시설을 제공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출현시킨다.48) 이러한 제도와 통치 권력은 위계적 사회 발전에 기여하며, 사회적 위계를 분 명히 하는 공손성 구분politeness distinction 의 언어 체계가 나타나는 데 일조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전통적으로 손윗사람이나 낯선 이를 호칭 할 때는 '지sie'(당신-옮긴이)를 쓰고, 자녀나 친구, 친척과 대화할 때 '두'(너, 자네 - 옮긴이)를 쓴다. 스페인어의 '뚜'(너, 자네 옮긴이)와 '우스뗀usted'(당신, 귀하 - 옮긴이)처럼 다른 언어에도 비슷한 구분이 있다. 이러한 언어 체계는 사회적 지위가 다른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더 원활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 자체로 강력한 힘으로서, 사회적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면서 사회적 결속력을 높이지만, 개인주의나 기업가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쌍은 미래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우리가 보았듯이 열 량이 풍부한 농작물을 키우는 데 유리한 기후와 지리 조건은 미래 지향적 사고를 강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지역에서는 우회적인 미래 시제가 출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의지와 소 망, 미래 계획을 나타내기 위해 'shall'이나 '월will', '고잉 투 going to 같은 조동사를 쓰는 식이다. 어떤 언어학자들은 (조동사를 사용하 는- 옮긴이) 우회적인 미래 시제가 장기적으로 사고하며 미래의 행동 을 결의하는 성향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런 구문을 쓰는 사회일수록 미래 지향적 사고가 강한 특징을 보인다. 
-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의 격차는 수천 년간 이어진 여러 과정에 뿌리를 뒀기 때문에 아무리 효율적인 개혁이라도 빈곤의 늪에 빠 진 국가를 하루아침에 선진 경제로 탈바꿈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먼 과거에 생긴 제도적·문화적 · 지리적·사회적 특성은 문명이 저마다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걷도록 추동하며, 국가 간 부의 격차가 더 벌어 지도록 조장했다. 확실히 경제적 번영에 도움이 되는 문화와 제도는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채택될 수 있다. 지리와 다양성 측면에서 나타 난 장벽의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이때 각국의 발전 경 로에서 나타난 특성을 무시하면 어떤 개입으로도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고, 오히려 좌절과 혼란 그리고 오랜 정체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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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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