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세계사

역사 2023. 1. 9. 20:28

- 곡물은 소금이 필요했다
세계사에서 농업의 시작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언제나 일면적으 로 평가됐다. 하지만 미각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곡물 중심의 규 칙적인 식사로 맛이 단순해지면서 일부러 소금을 섭취해야만 하는 결점이 발생하였다. 곡물에 의존하는 생활의 시작으로 인해 소금의 섭취를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통해 섭취할 수 있는 칼륨과 동물의 살코기와 피를 통해 섭취할 수 있는 나트륨의 균형이 중요한데, 농업의 시작으로 다량의 칼륨을 섭취하게 되면서 나트륨과의 균형이 붕괴된 것이다. 곡물 등 식물성 식량의 대량 섭취는 체내의 칼륨 농도를 높이고, 대량의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시킨다. 그래서 소금을 섭취하여 매일매일 잃어버리는 나트륨을 보충할 필요가 생겼다. 소금의 생산과 분배가 인류 사회에 새롭게 투입된 것이다. 약 500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이어진 수렵 채집 사회에서 는 소금을 특별히 섭취하지 않았다. 동물과 생선의 살코기를 먹으면 그들의 체내에 있는 미량의 나트륨이 인간의 몸속에 농축되었기 때 문이다.
- 단맛을 대표하는 것은 당분을 응축시킨 설탕이다. 사탕수수 (감자)를 짜서 바짝 졸이는 설탕은 세계사에서도 크게 활약한다. 식 염으로 한정된 소금에 비해 단맛은 많은 식자재에 함유되어 있다. 그래서 소금은 권력에 의해 통제되었지만, 단맛은 권력으로부터 자 유로웠으며, 다양한 맛으로서 상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상품이 바로 설탕이었다.
사탕수수는 뉴기니, 벵골만, 인도, 아라비아해, 이슬람 세계, 지중 해, 유럽, 대서양의 여러 섬, 브라질 카리브 해역 등 다양한 곳에 옮 겨 심어지며 대표적인 감미료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설탕은 세계적 인 상품이 되었으며, 세계사를 크게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사탕수수와 사탕무로 만들어지는 설탕의 연간 생산량은 15억 톤 이상으로, 이는 쌀과 밀의 생산량의 합계보다 크다. 하얀 설 탕은 매혹적인 달콤함을 통해 욕망의 해방이라는 주문을 지구상 에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동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잎사귀나 줄기에 동물에 해로운 '알칼로이드'라는 독소를 축적하고 있다. 하 지만 모든 알칼로이드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유익 한 작용을 하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알칼로이드는 차의 카페인, 양귀비의 모르핀, 담배의 니코틴 등이다. 한방약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인류는 쓴맛의 세계에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몸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약효를 가진 식물을 끊임없 이 찾아낸 것이다.
- 쓴맛을 식별하는 미각 세포는 혀의 가장 안쪽인 목과 비강 가까 이에 있다. 그래서 쓴맛은 향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향도 미각 을 구성하는 일부인 것이다. 인류는 후각을 동원해 유익한 쓴맛과 해로운 쓴맛을 구분했다. 그 결과 허브, 향신료 등이 인류의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 십자화과의 머스터드(겨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조미료, 화장용 연고, 향유로 사용되었다. 그리스에서도 머스터드는 조미료, 해독제로 사용되었으며,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머스터드만큼 뇌수와 코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머스터드는 매운맛 조미료로서 로마의 동부를 중심으로 제국의 전역에 퍼져 있었다.
머스터드는 으깬 흑겨자의 씨앗에 와인 제조에 사용하는 포도즙 을 더해 페이스트과 같은 상태로 만든 향신료다. 머스터드의 씨앗 자체에는 매운맛이나 향기가 없지만, 씨앗을 분말 형태로 만들어 미 온수를 섞으면 효소의 영향으로 분해 작용이 일어나 매운맛과 향을 얻을 수 있다. 머스터드mustard라는 영어의 어원은 '불타는 듯한 포 도즙'을 의미하는 라틴어 '머스텀 알덴트mustum ardens'에서 왔다. 로마인은 머스터드 분말에 미온수를 더해 잘 섞은 후, 3분 정도 방치하여 아무것도 아닌 풀의 씨앗을 매운맛 조미료, 그리고 살균력 이 강한 약제로 바꾸었다. 씨앗 안에 함유되어 있는 '시니그린'이라는 물질이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되어 향과 매운맛을 만들어내는 것 이다. 물을 넣고 반죽한 머스터드는 시간이 경과하면 향과 매운맛을 모두 잃어버렸다. 머스터드를 만들 때 포도즙이나 식초를 넣는 이유 는 그에 의해 효소의 작용이 억제되어 매운맛을 비교적 길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겨울에 목초가 부족했기 때문에 11월 즈음 많은 수의 돼지와 양을 죽여, 엄청난 양의 월동용 염장 고기를 만들었다. 머스터드는 이런 소금에 절인 고기에 곁들이는 향신료로 중요하게 취급되어 유럽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운맛 조미료가 되었다.
-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를 한 손에 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그 시점부터 새콤한 산미를 가진 사과에 최음작용이라는 속성이 더해지게 되었다. 그리스어로 '아프로디시아코 afrodisiaco'는 '최적'이라는 의미이다.
영어로 '아프로디시악aphrodisiac'이라고 하는 최음제는 아프로디 테에서 유래했다. 불의 신 헤파이토스의 아내였던 아프로디테는 군신 아레스 외에도 디오니소스, 헤르메스, 포세이돈 등 많은 신과 사 랑을 나누었으며, 미소년 아도니스와 안키세스를 애인으로 삼기도 했다. 사과를 반으로 가른 모습이 여성의 생식기와 닮았다고 하여 그런 발상이 탄생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참고로 'croquer la pomme(사과를 베어 물다)'라는 프랑스 표현 은 '유혹에 넘어가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원래 자연의 소생과 대 지의 순환을 상징하던 사과에 회춘, 청춘, 사랑, 최음이라는 이미지 가 더해진 것이다. 이는 사과의 달콤하고 새콤한 맛에 기인한 것일 지도 모른다.
- 생선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건조법과 염장법이 있다. 염분을 포함 한 채 건조하는 것은 가다랑어포 등의 건어물이 되고 염장을 하면 젓갈이 되며, 그보다 더 모양이 망가지면 액체 형태의 생선장이 된 다. 식품의 보존을 위해 소금을 사용하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소 금에 의해 부패가 억제되어 맛이 변하기 시작한 식품도 맛이 훌륭하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선장은 바닷물고기, 어란, 조개, 새우, 게, 모든 민물고기를 소금 에 절여 발효시켜 재료의 원형이 남지 않을 정도로 액체화된 조미료 를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젓갈을 숙성시키면 만들어지는 조미료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의도치 않게 오랜 기간 방치하여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젓갈 국물을 용기 내서 핥아 보고, 눈이 번쩍 뜨이는 훌륭한 짠맛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생선장은 20~50%의 소금을 더해 어패류의 부패와 단백질의 분 해를 억제하여 짭짤함과 생선 단백질의 농후한 감칠맛을 훌륭하게 혼합한 만능 짠맛 조미료다. 최근에는 슈퍼마켓의 선반에도 생선이 나 새우를 원료로 한 태국의 넘 플라num pla, 정어리의 친구까 껌ca com, 갈고등어와 비슷한 전갱이, 날치 등 다양한 종류의 생선으로 만든 베트남의 느억 맘nuoc mam, 새우로 만든 인도네시아의 테라시 terasi 등 다양한 생선장이 진열되어 있다.
- 생선장은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의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 오스 등의 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우기에 대량으로 잡히는 민물고기 를 소금에 절여 생선장을 만든다. 장과 생선장은 머지않아 벼농사와 함께 중국으로 전달되었으며, 7~8세기에는 일본에서도 만들게 되 었다. 도루묵으로 만든 아키타현의 쓰루어간장), 오징어로 만든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의 이시루, 까나리를 사용한 가가와현의 이카 나고 쇼유(까나리액젓), 가다랑어를 사용한 가고시마 섬의 가다랑어 간장 등이 일본의 대표적인 생선장이다.
- 대두와 곡류로 만든 장을 조미료로 이용하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 세계뿐이다. 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만능 조미료로서 다양한 요리의 맛의 기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장은 조미료가 아닌, 소금을 첨가하여 고기와 생선 의 부패를 억제하고 발효시켜 만든 반찬이었다. 여기에 차츰 소금뿐 만 아니라 후추도 첨가하고, 재료가 콩과 조, 보리, 밀 등으로 확대되 면서 발효 조미료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 는 누룩이 동아시아 고유의 맛있는 짭짤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 유럽에서 향신료와 허브는 맛을 내기 위한 미각 작용 외에도 향 을 피우는 방향 작용, 색을 입히는 착색 작용, 고기의 악취를 제거하 는 교취작용 등의 기능이 있다고 여겨졌다. 기본적으로 육식 문 화였던 유럽에서는 미각이 시각이나 후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 었으며, 특히 냄새의 비중이 높았다. 향이 좋은 향신료와 허브가 유 럽에서 귀하게 여겨졌던 이유다.
수많은 허브와 향신료 가운데, 매운맛이라는 미각을 중시한 것은 머스터드, 홀스래디시, 생강, 고추 등이고, 방향성을 중시한 것이 바 질, 파슬리, 민트, 시나몬, 육두구 등, 채색용으로 이용한 것이 사프 란, 강황, 파프리카이며,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이용한 것은 마늘, 타임, 로즈메리, 양파, 세이지, 카르다몸 등이었다.
- 대서양을 횡단하여 '신대륙'에 다다른 콜럼버스의 항로 개발은 재배 작물과 가축의 세계적인 대교류를 단숨에 진행하고, 미각의 세 계를 크게 혁신시켰다. 1만 년 전, 농업의 시작에 따른 먹거리 대변 동을 '음식의 제1차 혁명', 유럽인이 중개하는 '대항해 시대' 이후의 먹거리 교류를 '음식의 제2차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지구의 생태계를 바꿀 정도인 재배 작물과 가축의 교류는 '콜럼 버스의 교환'이라고 부르는데, '신대륙'에서 '대륙'으로 옥수수, 감자, 고구마, 호박, 카사바, 토마토, 강낭콩, 땅콩, 고추, 피망, 파프리 카, 카카오, 파인애플, 파파야, 아보카도, 딸기, 바닐라, 칠면조 등이 전달되고, 반대로 '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보리, 밀, 쌀, 채소류, 오렌지, 올리브, 사과, 커피, 소, 양 등이 건너갔다.
이러한 교환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 이었다. 새롭고 다양한 식자재가 전파되면서 먹거리의 안정과 미각 의 확대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신대륙'의 대농장(플랜테이션)과 대목장을 경영하며 많은 식자재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유럽 의 맛의 세계가 다른 여러 지역보다 앞장서 넓게 확장된 것이다. 즉 '음식의 제2차 혁명'은 유럽에 '새로운 맛의 세계'를 탄생시켰다고 할수 있다.
- 대항해 시대 이후에 진행된 '콜럼버스의 교환'은 세계사에서 이 루어진 가장 큰 규모의 맛의 교환이었다. 그 결과, 맛의 세계 지도의 원형을 완성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맛의 세계'가 한데 모인 것이다. 일본의 문화 인류학자 이시게 나오미치의 《동아시아의 식의 문화》 에서는 조미료와 약미를 바탕으로 한 전 세계의 '맛의 세계'를 8가지 로 분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각 지역에는 문명의 탄생이래의 고 유한 맛의 역사가 있으며, 외부 세계에서 가져온 새로운 맛이 수용 되고 맛의 체계가 재조합을 이루어, 각각의 '맛의 세계'가 성립하게 된다. 4대 문명의 맛과 그것의 전파가 맛의 세계의 토대가 되지만, 참깨, 후추 등의 향신료와 '신대륙'의 고추가 맛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소금, 유럽인에 의해 대량으로 생산된 설탕이 세계적 인 맛의 기본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부터 4대 요리권을 중 심으로 '맛의 세계'의 범위에 관해 서술하겠다.
(1) 장문화권: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곡물, 콩 등을 원료로 하는 만능 조미료인 여러 가지 장이 기본 적인 조미료가 되며, 생강, 후추, 마늘, 참깨 등이 약미로 이용 된다.
(2) 카레 문화권: 인도 세계
복합조미료인 카레와 소의 유지인 기ghee가 기본적인 조미료 이며 강황, 후추, 생강, 카르다몸, 씨앗류, 참깨가 약미로 이용 된다.
(3) 강렬한 향신료 문화권: 페르시아(이란), 아랍, 터키 등의 맛
문화가 서로 겹치는 서아시아
양을 주요 식재로 하고, 고추, 후추, 클로브, 시나몬, 카르다몸, 생강, 마늘 등 강렬한 향신료가 많이 존재한다.
(4) 허브와 향신료 문화권: 유럽
고기 요리가 많아 허브나 후추, 클로브 등의 향신료, 씨앗류, 올리브, 사프란 등이 맛을 내는 데 이용되었다.
4대 요리권의 특징을 비교하면 동아시아나 인도에는 만능 조미료와 복합조미료가 있으며 서아시아와 유럽은 이러한 것이 없고 다양한 향신료 등의 조합에 의해 맛을 만든다는 특색이 있다. 이 외에도 (5) '신대륙은 고추를 주요 조미료로 사용하고, 토마토 등을 이용하는 고추 문화권인데, 이는 전파에 의해 말레이반도, 인 도네시아 등의 동아시아로 날아가 또 하나의 구역을 만들었다. (6)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은 생선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선장 문화권 으로, 코코야자, 생강, 후추 등의 향신료가 병용되었다. (7) 광대한 사하라 사막의 주변은 참깨를 중심으로 하는 유료작물 문화권이다.
- 설탕에 의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보장되자, 인류는 생리적인 맛보다 문화적인 맛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맛 의 시대로의 전환이 찾아왔다. 향신료의 시대와 설탕의 시대를 거쳐 '식자재의 맛 그 자체를 즐기는 시대로 들어온 것이다. '맛이란 무 엇인가'라는 질문이 새로운 고찰의 대상이 되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맛을 추구하였다. 가스트로노미의 시대가 온 것이다. 식자재가 가진 본연의 맛과 그 맛의 조합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과도한 향신료와 설 탕은 배척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식사의 기본은 짠맛이 되고, 단맛이 디저 트를 통솔해야 한다는 맛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였다. 17세기 말 이후, 단맛과 짝을 지은 쓴맛, 신맛, 향기가 새로운 기호품의 분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셔벗, 커피, 홍차, 코코아 등 기호품 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서민의 생활을 침투해나갔다. 맛의 세계가 다양화되고 식사도, 기호품도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맛의 세계를 크게 변혁시킨 저렴한 설탕을 대량으로 생산한 곳이 브라질과 카리브 해의 섬들이었다. 욕망을 해방하는 맛의 설탕은 유 럽으로 유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수출되었다. 네덜란드 는 자바섬에서 설탕의 재배를 확장하였으며, 그 욕망의 맛은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거쳐 에도성 깊은 곳의 여성들까지 매료시켰 다. 자본주의 경제는 힘으로 세계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설탕이라 는 매혹적인 맛도 이용한 것이다.
설탕의 달콤함은 유럽에서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로 확산되면 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수용하게 했다. 미각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욕망 해방의 시대는 카리브 해의 설탕 플랜테이션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영국의 식탁에서 활개를 펼친 단맛
머지않아 상인들은 설탕을 이슬람 세계의 커피, 중국의 홍차, '신 대륙'의 카카오와 결부하여 기호품이라는 새로운 맛의 장르를 만들 어냈다. 홍차와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습관이 지배층에서 민중 으로 확산되고, 설탕의 파트너인 커피, 홍차, 카카오 등이 식탁의 단 골손님이 되었다.
18세기 말, 커피와 홍차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빵과 함께 먹는 간단하고 포근한 식사 방식이 민중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식탁 위에서 중앙아메리카의 설탕, 자바 섬과 실론 섬의 커피, 중국의 홍차가 만나면서 유럽의 식탁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범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식탁 혁명'이라고 한다.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그의 저서 《설탕과 권력》에서 “1775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설탕 소비량은 1663년에 비해 약 20배 증가 하였다”라고 기술한 것처럼 카리브 해역에서 영국으로 수출되는 설 탕의 양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1600년, 영국인 1인당 설탕 소비 량은 400~500그램이었으나, 17세기에 약 2킬로그램, 18세기에 약 7킬로그램으로 증가하였다. 즉 1650년경에 특권층의 지위를 나타 내는 귀중품이자 약품, 양념이었던 설탕이 1750년경에는 부유층의 사치품이 되고, 1850년에는 고가의 생활필수품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서민의 맛의 세계까지 침투한 것이다.
- 1900년, 영국인은 칼로리 섭취량의 3분의 1을 설탕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설탕이 영국을 제패한 것이다. 설탕을 소비하는 것이 영국인이라는 증명으로 간주할 될 정도로, 영국인은 달콤한 설 탕의 포로가 되었다. 설탕을 넣은 홍차와 잼을 바른 빵이 서민의 아 침 식사로 정착된 것이다.
설탕의 대유행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의 정치가 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은 그의 저서 《미식예찬》에서 설탕이 보급된 상황을 보고 “설탕은 루이 13세(재위: 1610~1640) 시대에 프랑스인에게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새로운 식품이지만, 19세기의 우리에게는 이미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오늘 날의 부인, 특히 부유층의 부인들은 예외 없이 빵보다 설탕에 더 많 은 돈을 소비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설탕은 세계를 제패하였으며, 이미 빵을 까마득히 앞지르고 있다.
- 로스팅을 통해 주류가 된 커피
브리야 사바랭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커피의 생명은 커피콩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이다. 로스팅이라는 공정이 더해지면서 커피는 처음으로 커피가 되었다. 1450년경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로스팅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로스팅이 그렇게 새로운 것일까? 로스팅이 새롭다는 것은 기호품인 커피의 역사도 새롭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커피를 향기가 있는 음료로 인식하게 된 경위를 기록한 서적으 로는 1587년에 저술된 아브달 가딜의 《커피 유래서 커피의 정당성 에 관한 결백한 주장이 유명하다. 1278년, 수행자 오마르가 도덕 적 실수를 저질러 모카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우사브 지 방의 산중으로 추방되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오마르가 스승 알 샤드힐리의 이름을 외치자 작고 아름다운 새가 날아와 어느 나무의 가지에 앉아 신비한 소리로 울었다. 오마르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나무에는 커피 열매가 있었다. 그 열매를 먹고 너무 맛있었던 오 마르는 동굴로 열매를 가지고 들어가 끓여보고는, 그것이 훌륭한 향 과 약효를 가진 열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오마르는 우 려낸 커피로 신자들의 질병을 치료하였는데, 그 평판이 장관의 귀에 도 들어갔다. 그 결과 오마르는 사면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성인으 로도 존경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 오마르는 13세기의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커피 열매를 달여 마시는 관습은 아라비아반도 남단부의 예멘 지 방에서 직관과 명상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이슬람 신비주 의(수피) 수행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로 와인을 의미하는 '카와qahwa'이다. 카와는 달여서 만든 음료를 가리키는데, 원래 과실주의 이름이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당분이 많은 커피콩 을 가루로 만들고 발효시켜 만든 술이 수행자 사이에서 비밀리에 퍼 졌다고 하는데,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서는 음주를 금지하고 있 기 때문에 커피콩이 발효하지 않도록 열을 가한 것이 로스팅의 시작 이라고 전해진다. 카와는 터키어로 'kahve(카베)'라고 하며, 이는 영 어 'coffee(커피)'와 프랑스어 'café (카페)'로 바뀌었다고 한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연대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라 비아반도의 각지에서 생산된 커피를 홍해 동부 연안의 시장에 모아 배를 통해 수에즈로 운반하고, 심지어 낙타의 등에 싣고 알렉산드리아로 운반하였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생산된 향신료와 함께 커피는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 건너간 것이다.
향기 문화의 중심지에서 기른 커피는 당연히 향기 음료이며, 을 볶으면서 식탁의 스타가 되었다. 브리야 사바랭은 "생두를 달인 국물 따위는 일반적으로 의미가 없는 음료이다. 오히려 탄화 덕분에 향기와 기름이 추출되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특징이 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열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커피의 향 기를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16세기로 들어서자 아라비아인 사이에서는 커피콩을 볶아 막자 사발에 간 후, 끓인 물을 넣고 향신료를 추가하여 마시는 습관이 확산되었다.
- 18세기 이후, 프랑스의 요리사는 향신료 등 이국적인 재료의 과도한 사용을 피하고, 요리 기술로 경쟁하게 되었다. 요리는 맛의 균 형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강해지면서 식자재의 미묘한 맛 을 끌어내기 위한 요리 기술의 복잡화와 세련화가 요구되었다. 가스 트로노미가 시대의 흐름이 되어, 맛의 주인공은 식자재 그 자체의 감칠맛으로 변하였다. 사치스러운 향신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귀족 요리를 서민 요리와 차별화시키는 것이 프랑스 요리법의 복잡화와 세련화를 진행시켰다.
- 요리사에 의해 기존의 요리법이 세련화되고, 섬세한 맛의 조화를 탐구하게 되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식자재와 향신료, 조미료 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등이 연구되었다. 프랑스 요리를 중심 으로 가스트로노미가 유럽의 맛의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플랜테이션으로 대량 생산된 설탕은 커피, 홍차, 코코아, 케이크, 과자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달콤함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식사에서 분리된 기호품이 맛의 세계에서 가장 큰 부분으로 성장한 것이다.
- 프랑스 요리의 가스트로노미로 대표할 수 있듯이 19~20세기의 맛의 세계는 식자재 본연의 맛을 끌어내고 재료의 조화를 통한 미묘 한 맛의 변화를 음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장醬을 조미 료로 사용하는 일본 요리와 중화요리, 그리고 생선장을 조미료로 하 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요리에서는 예로부터 감칠맛을 맛의 본질이 라고 여겼다. 이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일본에는 '우마이 ( )', 중 국에는 '시안웨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나 만능 조미료가 존재하지 않는 유럽에서는 다양한 향신료 를 조합하여 맛을 만든다는 전통적인 발상을 바탕으로, '맛있는 맛'은 짠맛, 단맛 등이 혼합되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요리를 만드는 현장에서는 소스의 감칠맛을 위해 송아지의 뼈나 힘줄을 푹 고아 만든 육수인 'fond'주나 수프에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소나 닭, 생선 등과 채소를 푹 우려낸 '부이용bouillon'이라는 국물을 사용하였으나, 감칠맛이라는 특별한 맛의 존재를 생각하지는 못했 다. 하지만 헤닝이 정의한 짠맛, 단맛, 신맛, 쓴맛을 섞어 '감칠맛'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헤닝의 4원미 이후, 짠맛은 나트륨, 단맛은 에너지원이 되는 당류 를 식별하고 신맛과 쓴맛은 신체에 해로운 식자재를 판별하는 센서 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류는 생명 유지에 빼놓을 수 없는 단백질을 식별하는 센서가 없는지 궁금해졌다.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감칠맛은 단백질과 핵산을 풍부하게 가진 세포의 원형질에 함유되어 있는데, 20세기에 그를 탐지하는 미각이 '감칠맛'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감칠맛 성분이 밝혀졌으며, 대표적인 감칠맛 성분으로는 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글루탐산, 동물에 함유된 핵산의 한 종류인 이노신산이 있다. 아미노산계의 감칠맛 성분과 핵산계의 감칠맛 성분이 어우러지면 시너지효과로 감칠맛이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요즘에는 헤닝의 4원미에 감칠맛을 더해 5원미로 생각하게 되었다.
- 중화요리나 일본 요리는 식자재의 조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발상 에 기초하고 있으며, 유럽의 맛의 형상과는 다른 발상이었다. 맛의 세계의 기본 동향이 감칠맛의 추구로 변화하면서 중화요리와 일본 요리의 맛을 내는 기술과 발상이 맛의 세계사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오랫동안 축적된 요리 가운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감칠맛의 시너 지효과'를 체험적으로 깨닫고 식물성인 아미노산과 동물성인 핵산 을 섞어 감칠맛을 만들어냈다. 프랑스에서 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 는 소스를 통해 감칠맛을 추구했다면, 일본에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섬세한 감칠맛을 끌어냈다. 일본 요리의 전형적인 육수 제조 방법인 다시마 육수와 가다랑어 육수의 조합은 그러한 선진성을 나타내고 있다. 중화요리에서는 표고버섯과 닭 뼈 육수 분말을 주로 배합한다.
- 일본 요리는 기름을 베이스로하는 중화요리나 프랑스 요리와는 달리 독특하게 물을 베이스로 사용한다. 중화 냄비를 가열하여 많은 식자재를 한데 섞는 중화요 리나, 버터와 요리용 돼지기름인 라드 등으로 고기를 굽고 소스를 더하는 프랑스 요리에 비해 물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요리는 기름을 더하지 않는다. 초밥처럼 식자재 본연의 맛을 즐기는 요리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 요리를 규정하는 요리는 전골 요리이다. 전골요리는 국물이 중요한 열쇠가 되는데, 어묵이나 라멘도 육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전골 요리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 제철 식재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고 쌀의 진하지 않은 단맛이 미각의 기본이 되며, 담백한 맛을 선호하고, 기름이 고가라는 등의 이 유로 일본 요리는 전골요리에 특화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식자재를 섞어 베이스가 되는 육수 제조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감칠맛'을 위해서는 무엇이 유용한지 경험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유럽 요리는 우여곡절 끝에 식자재가 지닌 감칠맛과 소스에 다다 르지만, 일본에서는 '화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는 발상으로 이질적인 식자재를 조화시키며 '감칠맛의 합성을 끊임없이 시도했 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남성과 여성, 노인과 청년, 장애인과 비장애 인, 다른 종교 등을 공존시키는 시스템이다. 간단히 말해 이질성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골 요리는 맛의 민주주의를 체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감칠맛을 내는 식자재로 다시마, 말린 멸치, 가다랑어, 말린 표고버섯 등 훌륭한 재료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친화력이 있는 감칠맛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등 어떤 맛과도 어 울릴 수 있다. 인공적으로 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식자재들의 자 체적인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맛을 중시하는 일본 요리의 발상이 19~20세기, 식자재의 감칠맛을 중요하게 생각한 '맛의 세계'를 주 도하게 되었다.
- 일본에서 뻗어나간 감칠맛
감칠맛의 기본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과 핵산이다. 짠맛에 식염, 단맛에 설탕이 있듯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감칠맛 물질의 추출에 성공하여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맛의 세계사에서 감칠맛 조미료의 출현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다시마, 가다랑어, 표고버섯을 함께 넣고 푹 끓여 만드는 감칠맛은 확실히 바람직했지만, 수요가 증가하면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미생물을 사용해 발효에 가까운 형태로 감칠맛을 생산하는 것이 맛 의 근현대사의 큰 과제가 되었다.
1847년, 독일의 화학자 리비히가 고기의 추출액에서 이노신산을 발견하고, 이것이 고기의 감칠맛을 낸다고 주장하였다. 감칠맛의 발 견이다. 1908년, 일본인이 세계에서 최초로 감칠맛 물질을 추출하 는 쉽지 않은 작업을 시행했다. 당시 도쿄 제국대학 교수였던 이케 다 기쿠나에 박사는 일본 전골요리의 맛의 주역인 다시마 육수의 맛이 감칠맛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감칠맛 물질인 글루탐산나트륨의 결정을 분리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생각해 보면 이 케다 박사의 업적은 일본 식문화를 대표하는 전골 요리의 감칠맛에 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며, 맛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글루탐산의 존재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케다 박사의 공 적은 알칼리로 중화하여 글루탐산나트륨을 추출한 것이다. 그는 이 맛을 '우마미(감칠맛)'이라고 명명하였다. 영어로 '맛있다'를 의 미하는 'delicious(딜리셔스)'는 어원이 '완전히 사로잡다'인데, 이 는 감칠맛과는 다른 뉘앙스를 가진다. 그래서 감칠맛은 영어로도 'UMAMI(우마미)'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맛이 좋다는 의미의 '우마이'는 높은 기술력을 의미하는 'I巧(우마이)'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글루탐산의 발견과 합성으로 감칠맛은 단백질의 맛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으며, 오늘날에는 헤닝의 4원미에 감칠맛을 더해 맛에 5원 미가 있다는 견해가 일반화되었다. 미각은 소금과 당분을 판별하는 센서일 뿐, 단백질을 느끼는 기능은 없다는 주장은 분명 옳지 않다. 1909년 5월 20일, 스즈키 사부로스케라는 사람이 이케다 박사 의 연구를 기업화하고, 밀가루 단백질의 글루텐을 가수분해하여 감 칠맛 물질과 글루탐산 나트륨을 제조하면서 세상에 감칠맛 조미료 인 '미림'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일본 식품 제조 기업 '아지노모토'의 전신이다. 한때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세계적 명성을 얻은 기업을 세운 스즈키 회장의 공적을 칭찬하는 의미에서 가와 사키시에는 아직도 스즈키 마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오늘날에 는 도요타나 소니 등의 기업이 일본을 대표하지만, 과거에는 아지노 모토가 일본 기업의 대표선수였다. 오늘날 '아지노모토' 등의 감칠 맛조미료는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오늘날에는 당분을 추출한 후의 사탕수수를 이용하여 미 생물의 발효 작용에 의한 글루탐산을 생성시키고 그것을 수산화나 트륨으로 중화시켜 결정화한 후, 가다랑어의 감칠맛 성분인 이노신 산나트륨, 표고버섯의 감칠맛 성분인 구아닐산나트륨 등을 추가하 여 제품화하고 있다. 화학조미료에서 발효를 통한 조미료로 바뀌는 것이다.
감칠맛은 꽤 복잡한 요소로 이루어진다. 1929년, 미국의 화학자 빙햄은 음식의 탄성(변형)과 점성(유동), 두 가지 측면에서 과학적으 로 분석하는 '리올로지rheology'라는 방법을 제창하였다. 감칠맛에 대해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식품의 리올로 지적 특징, 인간의 생리적, 심리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심리 리올로지psychorheology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맛 문화의 중심을 차 지하는 감칠맛에 대해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인류가 자연 속에서 음식을 선별하기 위한 센서였던 미각은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매운맛과 향이 주술력을 가졌던 향신료 시대, 욕 망의 맛인 설탕이 해방되었던 시대, 근대 이후의 감칠맛의 시대 등 '문화적인 맛의 시대를 거쳐 오늘날 혼란스러운 상태인 가스트로아 노미 시대에 진입하였다. 미각이라는 센서를 재편하고 식문화를 잘 정돈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온 것이다. 다만 미식을 추구하고 식자재 사이를 헤매며 식재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계속 축적해 온 맛을 소중히 여기고, 지적이면서도 문화적인 맛의 세계를 재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풍부한 사계절의 식자재로 둘러싸여 그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은 자연의 맛을 중시하고 자연이 주는 감칠맛을 끌어내는 데 뛰 어났다. 남북으로 길고, 바다와 산이 제공하는 다채로운 식자재를 돋보이게 하는 일본 고유의 맛 문화를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초밥과 인스턴트 라면이 세계화된 이유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모 히브리스  (17) 2023.06.09
인류의 여정  (0) 2023.05.24
자원쟁탈의 세계사  (1) 2022.10.13
날씨가 바꾼 세계의 역사  (1) 2022.10.09
패션의 흑역사  (0) 2022.07.30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