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 자세 연구의 목적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있다." (아헹가)
-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직선적 시간관만큼 낯선 것도 없다.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라는 기준으로 나누는 행위가 그들 에게는 어색한 것이다. 고대 인도인들에게 시간은 무한히 순환하는 연속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원형의 모양이다. 진행 중인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인 동시에 다시 일어날 사건이다. 시간은 제한된 조건이 아니라 무한히 재생 가능한 자원이다. 따라서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렇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 유를 가져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 시간은 생성기와 쇠퇴기의 교체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사건, 계 절, 해와 달, 생명, 호흡 등 은하에서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이 순환의 법칙에 따른다. 힌두교 사상에서는 우주 그 자체도 두 단계의 영원한 운동 속에서 교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불변의 주기는 창 조신 브라흐마 Brahma가 깨어나고 잠드는 리듬과 관계가 있다. 즉, 우주의 출현은 브라흐마의 낮에 해당하며, 우주의 해체는 브라흐마의 밤에 해당한다. 브라흐마가 잠에 들면 우주 홍수 pralaya가 세상의 모든 생명의 흔적을 파괴하고, 브라흐마가 깨어나면 이전 창조의 잔재인 뱀 세샤 sesha 위에서 생명이 재창조된다. 100 브라흐마 년(지구상의 시간으로 수천억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 되면, 창조신 브라흐마의 생이 끝난다. 이때 지구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 주 전체가 소멸한다. 이를 마하프랄라야 mahapralaya, 즉 대홍수라고 부 른다. 뱀의 신 세샤의 똬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 Vishnu 신만이 남아 태초의 물 위를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수천만 년 동안 무엇으로도 나뉘지 않은 미분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창조의 힘이 잠재되어 있는 이 상태는 새로운 우주 주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어지며,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우주 또한 동일한 과정을 거 쳐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우주는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미분화 상태 에 접어든다. 우주는 창조와 소멸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따라서 진정한 시작도 끝도 없다. 다만 반복만 있을 뿐이다.
- 인도에서는 뱀과 인간이 항상 가까이 살았기 때문인지 뱀과 관련된 풍부한 상징들이 전해 내려온다. 힌두교 사상에서 뱀은 세상을 떠받 드는 존재, 비슈누의 잠자리, 과거 세계의 잔재이자 미래 세계의 기원 이다.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의 능력도 이러한 상징성과 관련이 있 을 것이다. 이처럼 뱀은 반복되는 창조와 소멸 과정에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 뱀의 중요성은 요가 철학과 수행에도 반영된다. 탄트라(고대 힌두교 경전) 시각에서 뱀은 우리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에너지는 '똘똘 감긴 것'이라는 의미의 쿤달리니 Kundalini라 불린다. 쿤 달리니는 깨어나게 되면 척추 아래에 머문다. 쿤달리니가 잠들어 있 을 때, 우리는 의식이 각성하지 않은 채로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다양한 연습을 통해 요기는 쿤달리니를 깨워 척추를 통해 정수리까 지 끌어 올리는 시도를 하게 된다.  아난타 뱀은 태초의 바다에 머물다가 브라흐마가 깨어난 걸 알아 차리는 순간, 창조의 토대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하게 쿤달리니는 개 인이 잠재적 에너지를 자각할 때 변화를 보인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 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펼치는 것은 자신의 쿤달리니를 자각하는 것 에서 시작된다. 코브라 자세는 이 각성 단계를 상징한다. 배를 대고 엎드린 상태 에서 머리와 상체를 들어 올리는 이 자세는 똬리를 풀고 몸을 일으켜 자신의 모습을 더 크게 만드는 코브라와 닮았다.
- 아기들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다. 힌두교 사상에서 현자들은 이러한 아기들의 특징을 지닌다. 모든 집착이나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의도와 계산 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 요기가 이러한 의미를 떠올리며 아기 자세를 한다면 평온을 얻을 수 있 을 것이다. 아기 자세를 통해 우리는 상체를 허벅지 위로 구부려 주요 기관들을 보호하게 된다. 우리는 몸을 감싸 안으며 내부의 안식처를 찾고, 안정감을 느낀다. 나아가 아기 자세는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편안 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자세로 잠을 청한다. 앞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현자 마르칸데야는 한 우주의 끝과 새로운 우주의 시작 사이에 아기의 뱃속에서 휴식을 취했다. 마찬가 지로 아기 자세는 요가 수련 도중에 쉬어가는 휴식 자세의 역할을 한다. 요가 수련 과정을 떠나서도 아기 자세는 편안하게 몸을 내맡기고 스스로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돕는다. 주위에 아무리 거대한 홍수가 닥쳐도 아기 자세는 내부에 안식처를 제공해준다.
- 굵고 강인한 다리와 견고한 등껍데기를 가진 거북이는 지구력의 상 징이다. 신체 구조를 통해 거북이는 안정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이유 로 수호신 비슈누는 거북이로 화신한다. 먼 옛날, 요기들은 동물을 관찰하며 큰 영감을 얻었다. 거북이 자세는 실제 거북이의 모습과 닮아 있는데, 이 자세를 만든 옛 요기들이 모방하고자 했던 것이 단지 거북이의 외형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가수트라 yoga Sutra》에 “거북이 자세는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거북이 자세는 안정을 상징하며, 요가 수련의 본 질을 함축하고 있다. 거북이의 등껍데기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요기 의 토대가 된다. 힌두 신화에서 거북이가 지탱하는 산은 에너지의 원활한 순환을 돕는 곧은 척추를 의미한다. 신체적 안정은 곧 정신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맥락에서 요기들에게 거북이 자세는 집중의 상징이다. 거북이 자세는 감각이 제 어된 프라티야하라 pratyahara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거북이가 팔다리를 완전히 접듯, 감각적 대상에서 자신의 감각을 회수할 때, 내면의 지혜는 실로 견고해진다. (《바가바드기타 Bhagavad Gita》(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 거룩한 신의 노래라는 의미))
거북이가 된 요기는 외부의 환경에서 감각을 회수하고, 정신을 내부로 향하게 한다. 외부의 어떤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는 요기는 진정한 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 길에서 서두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 예부터 공작은 뱀이나 전갈 등 독을 품은 모든 동물의 적이었다. 공작 깃털이 화려한 것은 공작이 흡수한 독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만 들어진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불멸의 상징인 공작은 어떤 독도 해 소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는 공작 자세가 요기의 몸에 가져다주는 효과와 연관이 있다.
"공작 자세는 과도하게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배꼽 부위를 자극하면 불이 일어나고, 이 불기운을 통해 백물百物의 독kalakuta 을 제거할 수 있다.” (요가 프라디피카Hatha Yoga Pradipika)
- 공작 자세는 양쪽 팔꿈치를 배꼽 부위에 대고 엎드린 후, 손바닥 으로 지면을 디디며 두 다리를 가지런히 들어 올리는 자세다. 요기는 이 과정에서 공작의 안정성을 찾고자 노력한다. 긴 목과 풍성한 꼬리를 가진 공작이 안정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몸통 중앙에 위치한 강인한 두 다리와 견고한 발가락 덕분이다. 공작처럼 바닥을 견고하게 지지하며 신체의 무게를 버텨내면 공중에 몸을 들어 올린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공작 자세를 취할 때 팔꿈치는 복부 대동맥을 압박하여 혈류를 위, 간, 비장 쪽으로 전환시킨다. 이는 소화를 돕는 작용으로 이어진다. 요기 시바난다 Sivananda는 과식을 한 경우, 네다섯 시간 후에 공작 자세를 취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공작 자세는 음식물 소화만 돕는 것이 아니다. '백물의 독' 칼라쿠 타를 제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칼라쿠타는 타마스 성향의 맹목, 무 지, 모호함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이는 삶의 독소, 유해한 경험을 가리키기도 한다. 요가 수련은 정신적 소화 능력을 키워, 삶의 우여곡 절을 소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공작 자세는 인생의 안정을 기약하는 자세다.
- 팔과 다리가 얽힌 채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는 독수리 자세는 새들의 왕인 독수리에게 바치는 흥미로운 자세다. 흔히 독수리를 생각하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독수리 자세 는 오히려 몸을 앞으로 모은다. 이 행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독수리 자세와 같이 몸을 앞으로 모으는 이유는 더 잘 날기 위해서다. 가루다가 힘을 집중시켜 광채를 천 분의 1로 줄인 것처럼 요기는 자신의 잠재적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 집중시킨다. 이 자세는 팔꿈치를 조이면서 호흡의 폭을 줄이고, 등 위쪽의 능형근을 당긴다. 이를 통해 요 기는 견갑골(어깨뼈)을 펴게 된다. 우리는 독수리 자세를 통해 에너지, 를 집중시키고 보다 잘 발휘하는 법을 배운다.신체적 집중은 정신적 집중을 불러온다. 신화에서 가루다는 세상 을 수호하는 신인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새가 된다. 세상의 조화가 위 태로울 때, 가루다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비슈누를 호위한다. 가루다. 처럼 요기는 독수리 자세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미미한 시각적 혹은 청각적 자극만으로도 균형은 깨지기 쉽다. 시선이 흔들리기만 해도 중심을 잃을 것이다.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먼저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고정해야 한다. 요기는 시선을 고정하며 독 수리의 예리함을 배운다. 독수리의 뛰어난 시력은 사물을 실제 모습 그대로, 즉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상징한다. 온갖 장애물을 뚫고 암 리타를 획득하기 위해 가루다는 무엇보다 명확한 상황 분석력을 발 휘해야 했다.
"깨닫는 자에게는 날개가 있다." (브라흐마나(힌두교 성전 《베다》의 해설서))
- 전쟁은 인류의 끔찍한 자기파멸성을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우주의 징벌, 맹목적 파괴로 간주한다. 따라서 전사 자세를 수행하는 것은 요 가의 바탕이 되는 비폭력 원칙인 아힘사ahimsa 정신에 위배되는 것처 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사 자세에 담긴 의미는 전쟁의 파멸성과 는 무관하다. 진정한 전사는 죽이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는 구하기 위해 싸 운다. 시바를 외적 모습으로만 판단한 다크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파괴와 변형을 주관하는 시바의 에너지가 없다면 세 상은 재생과 소멸의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이러한 우주 균형의 위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역설적으로 균형을 지키려는 방어적 힘을 나타낸다. 우주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비라바드라처럼 요기는 전사 자세를 취하여 내적 균형을 추구한다. 제한된 자아에 갇히는 대 신, 요기는 더 높은 단계를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전사 자세에는 세 가지 변형 형태가 존재하며, 이 자세는 마니푸 라 Manipura 차크라의 균형으로 이어진다. 요가 철학에서 '차크라는 인 체의 에너지가 합류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로, 마니푸라 차크라 는 배꼽 부위에 위치해 있으며 태양신경총과 연결된다. 이 중심 부위는 열에너지 원칙을 지배하며 흔히 불로 상징된다. 전사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요기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 다. 마니푸라 차크라는 활력과 충만함의 중심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 한 믿음, 용기와 결단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전사 자세의 요기는 무릎을 앞으로 굽히며 겸허함도 잃지 않는다. 우리가 이끌어야 할 전쟁은 바로 내부에 있다. 이는 무기를 앞세 운 외부의 전쟁이 아니다. 요기는 전사 자세에서 목을 자르기 위해 검 을 내리치는 게 아니다. 이는 내부에 자리 잡은 진짜 적, 모든 고통의 근원인 무지와 탐욕의 사슬을 끊기 위함이다.
- 코끼리 머리에 불룩 나온 배를 가진 가네샤는 인도인들에게 가장 인 기가 좋은 신 중 하나다. 지혜와 행운의 신인 가네샤의 비호를 받으면 모든 일이 번성한다고 한다. 어머니 파르바티의 문을 지킨 가네샤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지혜를 준다고 알려져 있다. 중요한 사업을 시작 할 때 인도인들은 가네샤에게 공양을 올리며 난관을 극복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가네샤의 넉넉한 몸집은 번영의 상징이다. 가네샤 손 자세는 가슴 높이에 두 손을 모으고, 손가락을 서로 접 어 포개며, 팔꿈치를 몸에서 떨어뜨리는 자세다. 이 자세는 심장 운동 을 강화하고 기관지를 열어준다. 나아가 긴장을 완화시키고 용기와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네샤 손 자세를 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인간의 몸에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가네샤는 요가 철학에서 대우주와 소우주의 단일성을 상징한다. 우주에 속해 있는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우주를 담고 있다. 개별적 정신을 인식하며, 요기는 우주적 정 신 또한 깨닫게 된다. 단일성은 요가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이에 대 해 인도학자 알랭 다니엘루Alain Danielou는 “가네샤에 대한 인식 없이는 어떤 실현도 불가능하다”고 그 중요성을 언급했다. 코끼리는 힘, 용기, 지구력을 상징한다. 가네샤 손 자세를 통해 우 리는 이러한 성질을 구현한다. 요기는 자신이 통과하고자 하는 문 앞 에서 가네샤를 발견할 것이다. 문을 지키고 서서 인내와 용기를 북돋 아주는 가네샤를 만나보자.
- 메뚜기는 비록 작지만 그의 능력은 엄청나다. 메뚜기는 자신의 몇 배나 되는 높이를 뛰어넘는 뒷다리 힘과 순발력을 지녔다. 메뚜기 자세를 통해 요기는 목부터 발뒤꿈치까지 몸의 뒷부분 전체를 단련한다. 시바는 세상이 창조된 직후, 메뚜기 자세를 태양의 신 수리야에게 전수했다. 수리야는 이를 자신의 아들이자 인류 최초로 법을 제정한 마누에게 전했다. 이처럼 메뚜기 자세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메뚜기 자세에 접근해야 한다. 수련을 통해 언젠가는 다리를 수직에 가깝게 들어 올리게 될 것이다.
- 막대 자세는 척추와 다리를 곧게 펴고 앉는 자세다. 순례자의 지 팡이처럼 척추는 버팀목이자 안내자다. 요가에서 막대 자세는 중요한 기본 자세로 작용한다. 모든 아사나의 토대와 호흡법의 기본이 척추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서서 하는 동작이든 앉아서 하는 동작이든 척추를 곧게 세워 공간을 만들어줘야 바른 심호흡이 가능 해진다. 바로 선 척추는 활발한 에너지 순환의 첫 번째 조건이다. 막대 자세에서 척추는 지팡이의 힘과 곧음을 얻는다. 이를 통해 척추는 요가의 길에 반드시 필요한 안내자가 되고,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다. 막대 자세는 겉보기에는 정적이지만, 내부에서는 수많은 움직임이 일어난다. 곧게 뻗은 강한 척추는 단단한 자세를 통해 이완된 몸을 잊게 해준다. 요기는 막대 자세로 이를 훈련할 수 있다.
- 끈은 구속과 해방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운명의 신이 마르칸데야 를 끌어당기기 위해 올가미를 사용했을 때, 이는 죽음의 도래이자 속박을 구체화하는 사물이 됐다. 한편 끈은 연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르칸데야는 기도를 통해 시 바와 연결됐고, 이로써 죽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연결은 속 박이 아닌 자유를 의미한다. 올가미 자세에서 요기는 한쪽 팔을 넓적다리 주위로 비틀고 다른 팔을 뒤로 돌려 양손을 등 뒤에서 잡는다. 팔로 다리와 다른 신체 부분을 연결하는 올가미를 만드는 것이다. 강도와 지속 시간에 변화를 주며 요기는 팔의 올가미 힘을 조절하는 연습을 한다. 몸을 속박하는 올가미를 연결의 역할을 하는 끈으로 발전시킬 때, 요기는 지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 팔각 자세의 상징성  : 아쉬타바크라는 요가 자세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아쉬타바크라아 사나는 두 손에 균형을 맞추고 비틀어진 상체를 팔꿈치에 지지하여 다리를 공중에 올리는 자세다. 이 자세를 실행하려면 근력과 균형 그리고 무엇보다 끈기가 필요하다. 아쉬타바크라의 이야기와 교훈을 기억하며, 요기는 8자를 그리는 곡선을 만든다. 주의할 점은 이 자세의 성공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관심이 집착으로 바뀔 때, 외적인 면을 내적인 면보다 우선으로 여길 때, 요기는 요가의 길에서 멀어진다. 팔각 자세를 수행하며 몸을 자세에 맞추는 것이 아닌, 자세를 몸에 맞게 이용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요기는 성취를 위해 요가를 수행하지 않는다. 요가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다.
- "당신은 몸에 속해 있지 않으며, 몸도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 은 행동의 주인이 아니며, 그 결과를 거두는 자도 아니다. 당신은 순수한 의식이고 지각이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목격자 다. 그러니 당신은 자유롭고 행복하다.”《아쉬타바크라 기타》
- "인도에서는 모든 무용수들이 춤을 추기 전에, 땅을 밟는 것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절한다.” (니콜 엘피Nicole Elhi, 인도의 뿌리)
나타라자는 춤의 왕이자 요가의 창시자인 시바 신을 기리는 호칭이고, 나타라자아사나는 시바 신의 춤의 왕'으로서의 면모에 바쳐진 자세다. 시바는 춤의 창시자이자 대가이다. 나아가 춤은 시바의 본질 이다. 시바의 우주적 춤은 그의 창조, 유지, 파괴의 역할을 상징한다. 힌두 신화에서 시바의 춤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다른 시대를 여는 기능을 한다. 각 우주가 끝날 때 추는 파괴의 춤, 싸움을 끝내거나 결과를 예고하는 승리의 춤, 요가 수련에서 자연스럽게 솟아나오는 기쁨의 춤 등 춤은 시바의 궁극적 표현이다. 춤의 왕 자세는 결코 쉽지 않다. 선 활 자세로도 불리는 이 자세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난이도가 있어서 무용을 접해온 사람들에게 더 유리한 자세다. 그러나 신체적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인내와 끈기 를 가지고 자세를 익혀나가는 것이다. 시바는 창조와 파괴, 구원과 분노를 모두 상징하는 신이다. 시바의 춤은 요기의 경험을 내포하고 있다. 춤의 왕 자세는 내면의 수련에서 오는 순수하고 맑은 환희를 표현한다. 요가에 바치는 자세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 안잘리 Anjali라는 단어는 경배하다'라는 뜻의 'ani'에서 온 말이다. 합장 자세는 경배와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 손을 모으는 자세지 만, 손가락 바로 밑 부분의 관절이 약간 구부러져 있어서 두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이렇게 손바닥을 약간 오목하게 만들 어 가슴에 대는 모습은 꽃봉오리를 연상시킨다. 이 자세는 마음이 열리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요가 수련에서 합장 자세는 산 자세나 나무 자세 등 두 손을 맞대 는 모든 자세에 수반된다. 이는 평온함을 의미하며,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몸짓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자세를 통해 수련자는 자신에게 집중하여 명상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된다. 합장 자세는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합장 자세를 통해 요기는 자아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며, 요가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요가를 수련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요가 자세를 취하는 데 있지 않다. 깨달음을 향해 걸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요가 수련이다.
- 쟁기는 파종하기 전에 흙을 갈아엎을 때 쓰는 도구다. 그 용도와 관련 하여 쟁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라마야나》에서 쟁기는 풍요의 여신 락슈미의 아바타르로, 시타의 탄생 부분에 등장 한다. 쟁기 자세에서 요기의 몸은 원시 쟁기의 모양과 유사해진다. 또한 쟁기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요가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파종 전에 땅을 갈아엎는 것은 겨우내 굳어진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 안에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와 마찬가지로 쟁기 자세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원활한 신진대사를 돕는다. 쟁기 자세는 목덜미부터 뒤꿈치까지 몸 뒷부분 전체를 이완시켜서, 척추를 건강하고 유연하게 유지하도록 돕는다. 여느 자세들과 마찬가지로 쟁기 자세를 통해 요기는 호흡, 집중, 명상 등 다른 요가 수련을 하는 데 필요한 신체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요가 아사나 수련에서는 육체적 수련과 정신적 수련이 언제나 함 께 이루어진다. 해마다 농부가 땅을 갈아엎어 토양의 다공성을 유지 하는 것처럼, 요기는 정신의 개방성과 수용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토 대를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게 요기는 자만, 무지, 두려움의 근원을 제거하고, 깨달음의 씨앗을 뿌린다. 생생하게 날이 선 쟁기와 같이 요기는 마음의 분별력을 바로 세워 자신의 삶을 비옥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은 농부와 같아야 한다. 농부가 씨 뿌리는 날 행복한 이유는 훗날의 추수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날 제대로 씨를 뿌리고 심었기 때문이다.” (아헹가)
요가 수련은 농부가 쟁기를 다루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것이다. 요기는 서두르지 않는 일정함으로 수행의 속도와 방향을 선택 한다. 나아가 요가의 길에서 수련자는 초연해지는 법을 배운다. 무엇 을 행하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나카 왕을 떠올려보라. 그가 밭을 갈다가 사랑하는 딸 시타를 발견하게 될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 원숭이 자세는 요가의 길에서 헌신과 겸손의 중요성을 알린다. 힌두 신화에서 원숭이는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처럼 통제하기 어려워서, 정제되지 않은 생명의 에너 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원숭이로서 하누만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지 만, 바람의 신의 아들인 하누만은 이를 다스린다. 원숭이 자세를 수련하며 요기는 헌신과 겸손의 마음을 가지고 보폭을 넓히는 연습을 하게 된다. 이 훈련은 우리가 소중한 이들에게 정성을 다해, 그러나 조바심 내지 않고 헌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곰의 왕 잠바반이 우리 귀에 속삭이는 말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가능성 을 펼칠 용기를 얻어보자.
- 다리 자세의 상징성 : 삼각 자세나 활 자세와 마찬가지로 다리 자세는 그 모양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다리 자세에서 요기는 발과 어깨를 바닥에 대고 골반을 들 어 올려서 자신의 몸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다리를 만들고자 한다. 요기는 심장이 턱에 가까워질 정도로 척추를 들어 올린다. 다리 자세를 완성하면 몸과 정신을 연결하는 호흡이 척추 아래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자유롭게 순환하게 된다.
- 악어 자세에서 요기는 배를 깔고 누워 긴장을 내려놓는다. 이마는 포갠 손목 위에 대고 발은 바깥쪽을 향하게 둔다. 들숨에서 요기는 바 닥에 맞댄 배가 부풀어 오르고 허리가 들리는 걸 느끼게 된다. 날숨에 서는 배가 납작해지고 허리가 내려가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일어난 다. 척추에 집중하면 척추를 따라 흐르는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 다. 고른 호흡을 통해 악어 자세는 단순한 근육 이완을 넘어서는 깊은 휴식을 제공한다. 요기는 의식의 잔잔한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며 호 흡하고, 악어의 유동성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렇게 요기는 존재의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힘과 직관적 인식의 여행에서 요기가 무엇을 가져오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 요기는 두 팔에 체중을 싣고 습지를 걷는 두루미의 모습을 모방한 다. 두루미의 다리는 가늘고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고 견고하다. 두루미는 두 다리로 크고 육중한 자신의 몸을 지탱한다. 요기의 두 팔은 주저하는 요기의 몸을 거뜬히 들어 올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두루미의 안정된 평온함을 갖 추기 위해서는 아마도 무수한 노력과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두루미 의 고귀한 자태에 도달하려면 주의와 집중을 갖춰야 한다. 인도에서 이 두 가지 덕목은 두루미로 상징된다.
- 낙타 자세에서 요기의 몸은 낙타를 연상시킨다. 뒷다리는 뻗어 있고 앞다리는 구부린, 일어서고 있는 (혹은 앉고 있는) 낙타의 모습이 요기 의 몸을 통해 표현된다. 낙타는 독립성, 지구력, 저항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낙타는 등에 지방을 저장하고 필요시에 이를 물, 영양분, 에너지로 바꿀 수 있기에 일정 기간 동안 자급자족할 수 있다. 또한 내부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 으로 극한 온도에서 몸을 보호한다. 낙타 자세를 통해 요기는 낙타의 탁월한 능력들을 기르고자 한다. 낙타 자세를 통해 우리는 오아시스가 나타나지 않는 길도 묵묵히 걸 어갈 힘을 키울 수 있다. 무릎을 꿇고, 척추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활짝 연 낙타 자세는 낙타의 겸손과 유연함을 환기한다.
- 요기들은 아래를 향한 개 자세에서 개가 낮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 취하는 자세를 모방한다. 가슴은 아래로 향하고,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두 앞다리는 앞으로 뻗고, 등은 최대한 늘 린다. 개들은 자신의 열정이나 놀고 싶은 욕망을 표출할 때도 이 자세를 취한다. 요기에게도 이러한 의미가 적용된다. 실제로 아래를 향한 개 자세는 등과 어깨를 넓게 펴서 열정을 불어넣는 효과를 낳는다. 아래를 향한 개 자세를 얼마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열정이 샘솟고 용기가 북돋는 걸 느낄 수 있다. 아래를 향한 개 자세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을 다지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활력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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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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