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본능의 미래

인문 2021. 2. 19. 20:34

- 일단 동물 성체에서 줄기세포를 떼어낸다. 자라고 분열해서 지방과 근육이 될 능력을 갖춘 이 세포 를 시작 세포starter cell' 라고 부른다. (칼에 베었을 때 상처를 재생시키는 게 바로 이 세포다.) 처음에는 시작 세포가 아주 조금만 있어도 된다. 참깨 씨앗만큼만 채취해도 상관없다. 원한다면 마취 상태로 살아 있는 동 물에게서 떼어낼 수 있다. 시작 세포를 접시에 놓고 영양분과 성장인 자가 든 용액에 담근 뒤 생물 반응기에 넣고 분열하기를 기다린다. 세 포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고, 마침내 수조 개의 세포가 된다. 그다음에 겔 형태의 틀에 정렬해 근섬유 모양을 이 루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겹겹이 쌓는다. 햄버거 하나를 만들 정 도의 양으로 자라는 데는 약 10주가 걸린다. 하지만 세포 성장이 기하 급수적이기 때문에 햄버거 10만 개 분량을 만드는 데는 12주밖에 걸리지 않는다. (포스트에 따르면, 소 한 마리로 만드는 햄버거는 2,000개이며, 적어도 18개월은 기른 뒤에 도살해야 한다.) 햄버거와 크로켓, 소시지용 고기는 구조랄 게 별로 없어서 비교적 만들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지방 과 연골, 근육을 제대로 된 질감과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 채끝 스테이 크는 상당한 연구가 필요하다. 섹스로봇 시장 때문에 인공지능의 발 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 배양 기술도 고깃덩어리 를 만들 잠재성 덕분에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동물 고기와 달리 깨끗한 고기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완전하게 관 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 잠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동물성 지방이 유발하는 심장병을 줄이기 위해 오메가3 지방산을 늘린 고기, 내장도 없고 도살될 때 두려움에 똥을 지리는(복지시설이 잘된 농장에서도 일어 나는 일이다) 일도 없는 덕분에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의 위험이 없는 고기, 동물 스스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질감과 맛과 형태를 지닌 고기, 강제로 먹이지 않고 만든 푸아그라, 돼지고기 맛이 나는 코셔 (전통 유대교 율법에 따라 선택하고 조리한 음식,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돼지는 코셔에서 제외돼 먹지 않는다 옮긴이) 베이컨 등
- 현재 물고기에만 집중하는 깨끗한 고기 기업은 세 곳뿐이다. 육류 문제보다 어류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고기가 살해라고 한다면, 물고기는 학살이다. 나날이 탐욕스러워지는 상업적 어업을 수십 년 동안 해온 결과 우리 바다에서는 생태적 재앙 이 일어났다. 모든 물고기의 3분의 1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빠른 속 도로 사라졌다. 과도하게 잡아들인 나머지 개체수 회복이 안 되고 먹 이사슬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나머지 60%는 이미 한계에 이를 정도 까지 잡히고 있다. 지금 수준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다. 그러면 오직 7%만이 어업의 대상이 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이들은 종종 육지에서 너무 멀어서 상업성이 떨어지거나 정치적인 분쟁이 있는(항해해 들어가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는) 해역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바다에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를 이미 거의 다 잡는 셈이다. 이제 어선들은 더 많은 연료를 태워 더 먼 곳으로 나가서 전보다 더 작은 물고기를 더 적게 잡아온다. 그러고도 상업 어선이 잡는 물고 기의 40%는 그대로 버려진다. 이를 부수 어획물이라 하는데, 의도치 않게 그물에 걸려서 죽은 채로 버려지는, 필요 없는 물고기와 거북, 새, 해양 포유류 등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 단백질보다 물고기를 많이 먹으며, 십억 명이 단백질을 물고기에 의존한다. 생존을 위해 어업에 의존하는 가난한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이 생태적 재난의 영향을 우리보다 더 많이 체감하고 있다.  양식이 바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해결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집중적인 축산업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좁은 영역에 갇힌 대량의 물고기는 곧 똥으로 가득 찬 거대한 통을 뜻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번 성하는 바닷물이sea lice를 죽이기 위해 살충제와 살균제를 써야 했다. 게다가 상당수의 물고기는 통 안에서 살지 못한다. 블루핀 참치는 아주 많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통 속에 든 정어리 떼처럼 뭉쳐 있으면 죽고 만다.
- 깨끗한 고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나쁘다. 붉은 고기를 산더미처럼 먹었을 때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는 건 실험실에서 기른 고기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암과 심장병에 걸릴 것이고, 언젠가는 건강에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콜레스테롤 과 지방은 있을 것이며, 섬유질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가 깨끗하다'는 말을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허락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러면 식물 유래 고기가 정답일까? 그 피 흘리는 임파서블 버거 와 축축한 비욘드 버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식물 유 래의 동물 모방 식품은 눈이 아파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성분 으로 만들어진 고도의 가공식품이다. 내가 먹은 저스트 에그의 성분은 마치 화학 실험 기구 목록을 읽는 것 같다. 각종 분리 성분과 껌기 초제에 오일에 추출물에 착향료, 테트라쇼듐 파이로포스페이트, 트 랜스글루타미나아제, 구연산칼륨 등, 비욘드 버거는 완두콩 단백질 과 코코넛오일로 만들었다고 광고하지만 메틸셀룰로오스, 말토덱스 트린, 식물성 글리세린, 아라비아검, 숙신산 같은 성분도 들었다. 식 물을 동물성 식품 비슷하게 만들려면 건드려야 할 게 아주 많다. 게다. 가 이 모든 성분을 공장으로 운송하려면 먼 거리를 움직여야 하고, 고기인 척하지 않는 채식 요리와 비교해서 무엇이 있고 없고를 떠나 어차피 누구나 뒷마당에서 기른 재료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뭐하러 그렇게 바보같이 고생하는 걸까 싶다. 인공고기는 인류에 관한 비관적인 관점에 의존한다. 우리가 식습관을 바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식품이 지구를 대가로 삼지 않도록 확실히 보장할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고기에 대한 입맛을 잃는 것뿐이다. 결국, 진짜 문제는 축산업이 아니다. 인간의 식성이다. 
- 깨끗한 고기는 인간의 의미를 바꾸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고기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문화적인 것이라면,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문화를 바꾸는 것도 우리 힘으로 가능하다. 우리 문화는 이미 바뀌었다. 이제는 불을 피우고 죽이는 능력으로 남성성을 정의하지 않는다. 섹 스로봇이 성범죄자에게 진통제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고기는 우리가 동물을 죽이지 않도록 하는 과도기적 제품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고기 중독을 유지시켜 우리가 얼굴 없는 다국적기업에 의존하게 할 수도 있다. 고기를 포기해 동물을 지배할 힘을 버리는 대신 멀리 있는 기업에게 우리를 지배할 힘을 더 주는 것이다.
- 우리가 계속 고기를 먹는 한 깨끗한 고기는 미래의 여러 가지 가능 성 있는 식품 중 하나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고기를 원하지 않거나 훨씬 적게 원할 힘이 있다. 진짜 힘은 바로 거기,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 라 우리의 욕망에 재갈을 물리는 데 있다. 그렇게 할 때까지 우리는 우리가 먹는 식품이 나오는 곳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것이며, 책임감도 훨씬 덜 느낄 것이다. 애초에 고기를 둘러싼 이 야단법석을 초래한 사고방식을 영원히 가져갈 것이다.
- 대리모 출산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아무리 대리모가 의욕적 이고, 난임 전문 의사가 뛰어나고, 행정 처리가 빠르다고 해도 대리모 출산은 육체적, 감정적, 법적으로 가장 난잡한 형태의 제3자 생식 행 위다. 그러나 그건 인간이 여태껏 겪어왔던 임신과 출산이라는 문제 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전통적인 대리모 출산은(대리모가 임신한 아이의 유전적인 어머니지만 부모의 권리는 포기하게 되는) 창세기부터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창세기) 16장에  사라와 아브라함이 자손을 갖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이집트인 시녀 하갈과 동침하라며 “내가 혹 그 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라고 말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갈은 아들인 이스마엘을 잉태했음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의 여주 인을 멸시' 했다. 14년 뒤 스스로 생물학적인 아들, 이사악을 낳은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내쫓아버렸다. 어떤 형태로든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지만, 전통적인 대리모 출 산은 불임이라는 금기, 사생아라는 낙인, 이런 방식으로 아기를 만들 기 위해 해야 하는 그 간단한 행위 때문에 대개 드러나지 않았다. 인공수정은 전통적인 대리모 출산의 기분 나쁜 요소를 없앴지만, 나름의 어두운 역사가 있었다. 기록에 남은 최초의 사례는 1884년 필라델피아에서 윌리엄 팬코스트William Pancoast 교수가 불임인 남성과 아내 가 임신하게 도왔던 일이다. 팬코스트는 고무 주사기를 이용해 자신 의 제자 중 가장 잘생긴 남성의 신선한 정액을 클로로폼으로 기절시킨 여성의 자궁경부에 주입했다. 그 여성은 아홉 달 뒤에 아이를 낳았다. 자신이 아이를 갖게 된 과정이나 남편이 아이의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전혀 듣지 못한 채 말이다. 팬코스트가 개척한 기술은 아기를 만든다는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이제는 임신하기 위해 이성과의 성관계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동 성애 커플에게는 매우 좋은 소식이었지만, 남성 동성애 커플은 여전히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줄 여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대리모 출산이 선택지의 하나로 남아 있다. 대리모로 아이를 갖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기도 하다. 게다가 대리모가 부모 예정자 중 누군 가의 친척이라면 아이와 유전적인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장점도 있다.
- 아무리 세계 곳곳의 여러 기꺼워하는 대리모가 다른 사람의 아이 를 대신 낳아 아이를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부모가 되는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고 주장해도 대리모 출산은 엄연히 여성을 그릇이나 인큐베이터로 사용하는 행위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대리모 출산은 대리모 가 스스로 착취당한다고 생각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여성의 임신 능력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2015년 12월 유럽 의회는 여성의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며 모든 형태의 대리모 출산을 비난했 고, 그중에서도 생식을 위해 인간의 몸을 착취하고 이용한다'는 이유 로 체외수정 대리모 출산을 콕 집어서 거론했다. 그러나 대리모 출산을 금지한다고 해서 수요가 사라지지는 않는 다.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다. 임신하지 않고도 유전적인 자손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문을 간단히 치워버릴 방법은 없다. 사하키안의 고객 목록이 불어난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임신하지 않고 부모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매년 새로 나타난다.
- 부분적인 체외 발생은 향후 몇 년 안에 가능해질 전망이지만, 수정 에서 탄생에 이르는 완전한 체외 발생은 현실적으로 아직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수정 이후 몇 주 동안 자궁 밖에서 배아의 생명을 연장 하는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점점 더 미성숙한 아기의 생명을 유 지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이 두 지점이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매년 그 순간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원래 자궁 밖에서는 인간의 배아를 수정 이후 일주일까지만 기를 수 있다는 게 통념이었다. 보통 그 시기에 자궁내막에 배아를 이식했다. 그러나 201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막달레나 제르니카 겟츠 Magdalena Zernicka- Goetz,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인간의 배아를 특수 배양액에 담가 길러 인체 밖에서 13일 동안 온전하게 생명을 유지시 키는 데 성공했다. 성장인자를 올바로 섞어주자 접시 바닥에 이식한 배아와 초기 태반 세포가 발달했다.? 과학자들은 체외수정으로 만든 인간 배아의 생명을 14일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 15일째에 생기는 원시선조(향후 뇌와 척수가 될 부분이 생기기 시작함을 알려주는 세포의 구조)'가 나타나기 전에 연구를 중단해 야 한다는 윤리 규정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도 이 14일 규정 때문에 배아를 죽여야 했다.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 아마 한참 더 생존했을 것이다. 인체 밖에서 배아의 발달 과정을 자세히 관 찰할 수 있다면 과학적인 잠재성이 엄청나기 때문에 2016년 이후 이 제한을 21일이나 심지어는 28일로 늘려야 하는지를 놓고 광범위한 논쟁이 벌어졌다. 14일이라는 데드라인은 고작 17개국만이 공식적으 로 준수하는 자발적인 윤리 규정이다. 북한이나 러시아 과학자들이 사람의 배아를 기르고 싶은 만큼 기르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다. 동물 실험으로는 이보다 좀 더 나아갔다. 2003년 코넬 대학교의 생 식의학 & 불임센터 헬렌 훙-칭 리우Helen Hung-Ching Liu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생체공학으로 만든 자궁 조직을 올린 장치를 이용해 수 정된 쥐의 배아를 거의 출산에 가까운 시기까지 기르는 데 성공했다. 깨끗한 고기 산업에 연구개발 비용을 계속 쏟아붓는다면, 조직 배양 능력을 자궁 조직을 기르는 데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배아의 발달 방식은 아직 블랙박스 안에 들어 있다. 임신 1분기 (임신 기간을 삼등분한 것, 각 분기는 3개월에 해당한다 - 옮긴이)와 2분기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지금보다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배아를 인체 밖에서 더 오랫동안 기르게 되면서 블랙박스의 뚜껑이 열리고 있다. 생식의학은 야망 있는 의사와 연구자들이 주도하고, 번식하려는 인간 의 강력한 욕구가 뒤를 받치며, 그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고객층이 비용을 댄다. 우리가 더 많이 이 해할수록, 완전한 체외 발생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일이 일 어나지 않기에는 과학적인, 의학적인, 그리고 역시 상업적인 압력이 너무 크다. 장애물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와 법일 것이다. 체외수정은 한때 SF의 소재였다가 윤리적 난제가 되었고, 이어서 첨단 생식 보조 기술이 됐다. 이제 체외수정은 가정을 만드는 평범한 방식이다. 누구나 알며, 유튜브에서 광고를 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방법이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도 자궁 밖에서 아기를 만들 권 리를 인정하며, 이 방법으로 생물학적 자녀를 임신하려고 시도하는 부부에게 비용을 지원한다. 한때 부자연스럽게 보였던 일도 쉽게 평 범한 일이 될 수 있다. 비닐팩과 관이 자궁을 대체하기만 하면, 임신과 탄생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임신이 여성의 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더 이상 여성의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분유가 남성도 똑같이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게 만들었던 것처럼 체외 발생은 임 신과 출산이 더 이상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면 모성의 의미 역시 바뀔 것이다. 영원히..
- 신생아를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을 못 주는 엄마가 있다면, 임신을 대체할 방법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 엄마를 믿고 임신하게 할 수 있 을까? 자식을 돌보기에 부적합한 엄마가 애초에 책임감 있는 인큐베 이터가 될 수 있을까? 탄생의 미래가 체외 발생과 자연스러운 임신 사이의 선택을 뜻한다면, 자연스러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완전히 변할 것이다. 이미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곳에서 직원들이 가장 생산적인 시기에 일에 집중하도록 난자 냉동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들이 임신과 출 산 기간 내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인공자궁에서 아기를 기르게 해주는 서비스도 지원하는 미래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몸 안에 있는 진 짜 자궁을 이용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하위 계급, 빈곤, 혼란스러운 삶, 계획하지 않은 임신, 혹은 위험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로 다산하는 엄마를 뜻하는 표식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임신과 출산에 아무 런 의학적 도움도 받지 않으려 하는 자가 분만 여성'에 대해 생각하 는 것과 똑같다. 자연스러운' 출산 자체가 무책임하고 무모한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영국인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다. 자기 살해'는 13세기 중반에 영국 관습법에서 범죄가 되었고, 자살은 1961년에야 비범죄화되었다. 다른 사람이 목숨을 끊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범죄이며, 감옥에서 최대 14년을 보낼 수 있다. 영국 국민의 84%가 죽을 권리를 원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의회는 6개월 이하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의사 두 명의 감독하에 도움을 받아 생을 마치게 해주는 법안을 압도적 반대로 거부했다. 그러나 자발적인 안락사(요청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숨을 끊 어주는 것)는 조력에 의한 죽음(요청에 따라 남은 생이 몇 달밖에 되지 않 는 사람이 목숨을 끊게 돕는 것)이든 조력 자살(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든 세계적으로 죽을 권리가 점차 법으로 보장되는 추세다. 스위스는 1942년에 조력 자살을 허용했고, 350명 정도의 영국인이 취리히의 디그니타스 병원에 가서 죽었다.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 2001년부터 합법이었고, 벨기에에서는 2002년부터, 룩셈부르크에서 는 2008년부터 합법이었다. 이들 국가에서는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 니라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까지 대상을 넓혔다. 즉 알코올 중독자나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합법적으로 도움을 받아 죽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약 4%가 안락사다.) 북 아메리카에서는 조력에 의한 죽음이 1997년 오리건주에서, 2008년 워싱턴주에서, 2016년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에서 합법화됐다. 사람들이 더 오래 살지만 그게 반드시 더 나은 삶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기, 만성적이고 고통스럽고 몸을 피폐하게 만드는 질환, 치매, 자립 능력과 존엄의 결여를 겪으며 살 가능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도 큰 노년을 맞이하는 시기에는 부유한 국가에서 죽을 권리를 요구 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도미노 효과로 언젠가는 죽을 권리가 당연해 질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을 권리는 의사와 정신의학자의 승인에 달려 있다. 그러면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를 거부하고 전문가에게서 등을 돌리는(기후 변화부터 백신, 브렉시트까지) 시기에 의료계 종사자가 전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필요한 걸 온라인에서 다 찾 을 수 있는데 굳이 이름에 호칭 몇 글자 더 붙은 사람의 의견에 따를 필요가 있을까?
- 기대수명이 짧고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는 죽음이 삶의 일부였다. 죽음을 자주 접했다. 1945년에는 대부분의 죽음이 집에서 일 어났지만 1980년에는 17%에 불과했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이 다가 오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죽음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는 삶을 산다. 과거보다 죽음이 훨씬 무섭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고통 없고, 품위 있고, 통제된 죽음을 약속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거대한 시장이 열려 있다. 실제로 제공할 수만 있다면.
- 남성은 기술 산업을 지배했다. 남성이 만든 발명품은 남성의 자아 와 욕망을 반영했다. 반면 섹스로봇이나 인공자궁뿐 아니라 내가 직접 본 모든 기술에 영향을 받는 건 여성이다. 케보키언의 기계를 이용해 죽은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전반적으로 자살은 남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현상임에도 도움을 받아 죽는 게 합법인 곳 어디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그 길을 선택했다. 여성은 배우자보다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고 돌봄을 받기보다 돌보는 데 더 익숙하다. 짐 이 된다는 두려움을 여성이 훨씬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또 마크 포스트가 말했듯이 '고기는 언제나 힘과 연관이 있었다. 고기는 '남 자답게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다. 고기는 남성적이며, 많은 해를 끼치는 왕성한 과잉 섭취로 이어진다. 그 해결책이 실험실에서 기른 고기라면 우리가 한때 자급자족했던 욕구를,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특화된 기술에 의존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도 고기를 향한 본연의 욕구와는 상관 없이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혁신은 식품과 섹스에 대한 남성의 기호에 관해, 탄생과 죽음을 통제하려는 남성의 욕망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 모두 무질서와 무력함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환경을, 우리 식품을, 우리 몸과 상대방을 통제하기를 원한다. 섹스로 봇은 인간관계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자율성이 없는, 배우자의 대체 물이다. 깨끗한 고기는 똥과 질병, 우리를 멸종으로 이끄는 오염이 없 는, 동물의 대체물이다. 인공자궁은 고장 나기 쉬운 몸과 엄마답지 못 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는, 임신부의 대체물이다. 죽음의 기계는 예 측할 수 없고 존엄하지 못한 죽음의 대체물이다. 이들은 우리를 우리 본성으로부터 떨어뜨려 놓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서로로부터 떨 어뜨려 놓는 대용물이다. 우리가 통제한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 식품과 섹스, 탄생, 죽음을 기계에 청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공감력, 우리의 불완전함, 우리의 능동성, 우리 존재의 우연성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기술은 우리를 비인간화한다. 아무리 지구를 구하자! 조그만 아기를 구하 자! 외로운 사람들에게 반려자를 제공하자! 아픈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자!' 라는 고귀한 의도를 가지고 개발했다고 해도 우리는 이런 발명품이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갈지, 그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 그게 궁극적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모른다. 이 책에서 다룬 혁신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애초에 기술 때문 에 생겨났다. 기업형 농업은 동물 고기가 지속가능하지 않게 만들었고, 의료 행위는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임신이 더욱 위험한 것처 럼 보이게 했으며, 의학의 발전은 노화와 질병, 죽음이 끔찍해 보이게 했다. 우리가 기술적인 해결책에 의존할 때마다 우리가 언제나 자연 스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차원의 복잡성에 의지하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잃 는다.
- “지난 세대가 꿈도 꾸지 못했던 계획이 우리의 직계 자손을 집어삼킬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힘이 그들의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안락함, 활기, 쾌적함, 즐거움이 그들에게 밀어닥치겠지만,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는 통찰력이 없다면, 그들의 가슴은 아프고, 삶은 황폐할 것이다.” (처칠, 에세이 50년 후)
- “윤리적인 개혁, 혁명, 폭동이 아니라 기술로 고쳐보겠다고 생각하 면... 기술이 윤리를 대신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학대하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버리는 거죠.” (비건 사회학자 매튜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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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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