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요리로 말하다

etc 2020. 12. 7. 20:06

- 면이 가지는 탄성을 끓는 물에 삶으면서도 부여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는 사람들의 존재가 흥미로운데, 더 놀라운 점은 그들 대부분이 경력이 아주 화려한 요리사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면을 삶으면서 젓가락 또는 다른 도구로 면을 삶고 있는 냄비 밖으로 잠시(그래봐야 몇 초) 들어 올렸다가 다시 담 그는 과정을 삶는 내내 반복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차가운 냄비의 외부와 그렇지 않은 냄비 내부와의 온도 차이로 면의 성상을 바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난센스다. 건드릴수록 냄비 속 물의 온도는 내려 가고 내려간 만큼 쿠킹타임도 길어지는데 그럴 바에야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은 별론으로 하고 아예 끓는 물에 넣었다가 낮은 온도(끓는점 이하 - 그들이 냄비 밖의 공기에 잠시 노출시키는 것으로도 면의 탄성이 높아진다고 말하기에)에서 조리를 하든지 차라리 큼지막한 얼음 조각을 냄비에 넣든지 하면 될 일을 왜 그리 어려운 방법을 택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말이다. 차라리 면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여(혼합된 곡물의 종류, 단백질의 함량, 숙성 여부 등) 그특성에 맞는 조리시간을 지키면 된다. 또 일단 끓여서 익힌 면을 찬물에 씻어 탄성을 부여한 후에 적당히 따뜻한 물에서 다시 한 번 온기를 전하여 국물을 끼얹으면 될 일이다(물론 뜨거운 국물로 인해 결정화되어 가던 단백질과 전분은 다시 원래의 성상으로 풀어지게 된다). 이미 결론이 난 일(곡물이 함유한 단백질의 함량과 특정의 반죽 법으로 면의 탄성도가 개별화되어 버린 이후)을 젓가락질 몇 번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 밀가루 반죽을 한동안 치대다가 물에 씻어 흘려보내면 흰색의 그물망 구조가 껌처럼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글루텐 덩어리다. 글루텐은 단백질 혼합물이며 물을 머금기 시작하면 활 성화되면서 상호작용을 시작한다. 글루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이며, 글리아딘의 사슬 구조가 글루테 닌과 결합되어 있고 각 글루테닌들은 서로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 다. 글루테닌이 가지고 있는 결합성 아미노산은 글루테닌의 말단을 연결하여 코일처럼 생긴 글루테닌의 사슬을 길고 강하게 만들어 다른 단백질의 사슬과 연결되어 그물 구조를 만드는데, 이것이 글루텐이다. 글루텐은 가소성과 탄성을 가지고 있다. 밀가루 반죽 을 눌러보면 푹 꺼지는데, 이러한 성질이 가소성이고 원래의 모양 으로 되돌아오는 성질이 탄성이다. 이 두 성질 때문에 반죽은 성형이 가능해지고 가스를 담고 있을 정도로 팽창할 수 있는 것이다. 글리아딘은 글루테닌 사이에서 베어링 역할을 하여 글루테닌들이 잘 미끄러질 수 있도록 해주어 복잡한 코일의 사슬이 끊어지지 않고 잘 변형되도록 해준다. 글루텐의 코일 구조는 잘 늘어나는 성질이 있지만 원래대로 되돌아가려는 성질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반죽을 치대고 늘렸을 때 서서히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글루텐이 가지는 가소성과 탄성의 원리다. 소금은 글루텐을 더 단단하게 결합시킨다. 설탕은 글루텐의 발달을 제한한다. 지방은 단백질 사슬들의 결합력을 방해하여 글 루텐을 약화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던 단백질 사슬들이 느슨하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갓 반죽한 도우보다 한두 시간 지난 후의 도우가 성형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사실들은 '오토리즈(autolyse)'라는 반죽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금을 가장 나중에 넣음으로써 밀가루 반죽이 물을 더 많이 머금을 수 있도록 하고 상대적으로 단백질 사슬이 짧아지게 함과 동시에 반죽을 치대는 시간을 줄여주어 지나치게 질긴 도우를 지양하고 밀의 풍미를 더 많이 살릴 수 있는 반죽이 되는 것이다.
- 열은 수분을 보유하고 있는 근 구조를 파괴하고 증발을 일으켜 밀도가 높고 강한 구조를 형성하게끔 한다. 열과 고기의 상관관계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콜라겐이다. 콜라겐은 동물 단백질의 1/3을 차지하며 근섬유 다발들을 묶어 놓는 결합조직은 이 콜라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 밀도가 높고 섬유조직이 굵을수록 더 많은 결합조직이 존재한다. 이 결합조직은 그물 구조의 막으로 근섬유 다발을 감싸고 한쪽 끝에 모여 힘줄을 형성한 다음 골격에 붙어 있는데, 이것이 골격과 근육을 움직이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물의 신체 구조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콜라겐이지만 콜라겐이 많다는 것은 곧 고기가 질기다는 뜻으로 두껍고 교차점이 많은 천일수록 자르기 힘든 이치 와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콜라겐은 가수분해라고 하는 열과 물의 작용을 통해 젤라틴으로 분해가 가능하다. 교차결합이 많은 콜라겐일수록 분해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 나이가 많은 동물일수록 어린 동물보다 가수분해 시간이 더 길다. 하지만 가수분해도 만능열쇠는 아니라서 이 반응이 일어나는 온도의 통제가 중 요하다. 너무 높은 온도로 갑자기 상승하게 되면 콜라겐막은 수축하기 시작해서 근육의 수분을 쥐어짜게 되어 결국 밀도가 높고 건조한 고기가 된다. 콜라겐의 가수분해는 50°C(122°F)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체중을 지탱하거나 운동을 많이 한 근 육일수록 저온 장시간 조리법이 요구되며, 고온에서 조리할수록 콜라겐이 더 강하게 수축하여 고기는 퍽퍽하고 질겨진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질긴 고기의 경우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할수록 콜라겐은 완전히 분해되어 젤라틴으로 변하고, 이 젤라틴을 함유한 수분이 남아 더 맛있는 고기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부드러운 고기의 경우에는 구태여 저온 장시간 조리법이 필요 없다. 이는 내부에 연약한 콜라겐이 소량만 존재하기 때문인데, 조리 중 심부 온도를 60 °C(140°F) 이하로 유지하면 콜라겐의 수축과 수분 손실 을 방지할 수 있어 매우 부드러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이 원리 는 곧 질긴 고기를 연하게 먹기 위해 행하는 장시간의 로스팅이 나 콜라겐과 근단백질을 완전히 변형시켜 버리는 저온 수비드의 지향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 건식숙성의 역사는 그것이 자연적이었든 인위적이었든 습식숙성의 역사보다 훨씬 더 길다. 인간은 힘들게 사냥한 큰 동물의 먹고 남은 고기를 어떻게든 보관할 수밖에 없었고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자 생존의 필수품인 고기를 보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왔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고기를 땅에 묻고 나무에 걸고 연기에 노출시켰다. 잘 보관한 고기가 갓 잡은 생고기보다 저작성이 증대되고 풍미도 좋아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인류는 아마도 숙성의 프로세스를 인지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숙성의 프
로세스는 인간이 사냥을 하게 되면서 고기 먹는 법을 알게 된 역사와 시작점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은 식품을 갈색으로 만드는 꽤나 복잡한 화학반응이다. 고기를 구울 때는 이 두 반응이 약간의 온도차를 두고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애매하긴 하지만, 캐러멜화 반응(Caramelization)은 당이 가열될 때 일어나는 반응이고 마이야르 반응은 당과 단백질이 함께 가열될 때 일어나는 반응이다.마이야르 반응을 이해할 때 갈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반응이 야기하는 풍미의 개선이다. 내부적으로는 복잡한 반응이 지속적으로 일어나 수많은 분자들을 재생산해내고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응이지만, 결과적으로 고기나 빵을 구울 때 또는 튀김을 할 때 군침을 돌게 하는 향미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 반응은 익힌 육류뿐만 아니라 익힌 해산물에서도 공히 일어나는 반응이지만 단순히 익혔다고 해서 이 반응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끓는 물에 익힌 고기나 해산물에서는 전술한 향미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를 두고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났다고 하 지 않는데, 마이야르 반응은 물이 끓는 온도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고온 상태에서 식품의 표면 건조화가 필수인데 식품이 건조할 경우 화합물의 반응 이 가속화되고 온도도 더 빨리 상승하기 때문이다. 식품 표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수분이 증발하는 90°C에 도달하면 이 반응이 매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해서 115°C에 이르면 그 표면은 충분히 건조되어 반응이 가속화되고 130°C에 이르면 완전한 궤도에 오르게 된다. 따라서 식품 표면의 수분을 되도록 많이 제거할 경우 먹음직스러운 색과 풍미를 얻게 되는 마이야르 반응이 가속화되어 시간이 단축되고 과조리도 예방할 수 있다. 이외에 가 능한 방법으로는 베이킹소다 등으로 ph를 상승시켜 표면을 알 칼리성으로 바꿔주거나 염지액에 당을 추가해주는 방법이 있다.
- 고기를 익힐 때는 바삭한 외피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크러스트(빵의 외피도 크러스트라고 하는데 이들의 공통분모는 갈색이고 다소 건조하며 먹음직스러운 풍미를 발산한다는 것이다)라고 하는 이 외피는 고기의 표면을 둘러싸서 육즙의 유출을 막고 고기의 익힘 정도를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 주장이 허황된 것임을 증명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이제 고기 내부에 존재하는 육즙은 가두어둘 수 없는 것이며 조리된 고기의 외피는 그것이 얼마나 두껍든지 간에 육즙의 유출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콜라겐 수축이 시작되는 온도에 도달하면 육즙은 유출될 수밖에 없으며 크러스트가 생겼다는 것은 이미 그 단계를 지나 건조된 상태라는 것이고 그 크러스트에 인접한 회갈색의 고기는 이미 그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즉 크러스트 층은 다량의 육즙이 이미 소실되어 건조한 상태이고 육색을 유지하고 있는 심부는 아직 육즙이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미오글로빈의 변성으로 회갈색으로 변했다고 해서 육즙을 완전히 소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뒤집기는 과조리의 위험에서 안전하지 못하며 고기를 골고루 균일하게 익힐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 고기를 굽는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의 고기 바깥쪽 수분 손실을 감내하고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복잡한 풍미를 응집하고 증대시킴과 동시에 가열된 고기 자체의 열과 수분으로 심부를 익히는 것이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기존의 굽는 방식을 뒤집어보면 완벽한 크러스트를 만들 정도의 시어링이 굳이 최초 단계에서 적용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는 수비드의 원리와 일치한다. 따라서 고기를 구울 때 자주 뒤집어주어 최대한 골고루 부드럽게 익힌 후 마지막 단계에서 강하게 시어링을 해주어도 아름다운 크러 스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육즙의 손실은 줄이면서 말이다. 삼겹 살과 목살을 구워 먹으면서 과연 단 한 번만 뒤집었는지를 되새겨 보면 인과관계는 쉽게 도출된다.
- 고기 조각에 일정 양의 소금을 뿌렸을 때 세포 안쪽의 수분이 세포 반대편의 소금을 희석하기 위해 세포막을 통 과하여 이동을 시작한다. 일단 세포 내부의 수분이 외부보다 적 어지면 외부의 염분을 머금은 수분은 다시 세포 내부로 흡수되 어 유해한 병원균을 파괴하는데 이것이 소금을 이용한 육류 염장의 본질이다. 이렇게 자유 이동이 가능한 물의 존재는 식품 간에 미생물 작 용에 의한 상호 감염의 지표 중 하나가 된다. 식품을 맛있게 그리고 시각적으로도 충족시키면서 안전하게 오래 보관하고 싶다면 소금을 이용하여 '남는 수분을 되도록 많이 제거하는 것이 중요 하다. 육류는 소금이 수분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부터 건조되 기 시작하고 미생물은 그 활동을 방해받는다. 보존기간의 통제를 위해 공기나 열에 노출시키는 것은 수분의 증발을 가능하게 하므 로 결국 육류의 전체 부피와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 수비드의 원리는 이러하다. 예를 들어 고기를 익힐 때 미디엄 정도를 원한다면 심부가 약 57~60°C에 도달해야 하는데 심부가 이 온도에 도달하는 동안 외부는 고열에 장시간 노출되므로 건 조되기 마련이고 과조리될 위험마저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60°C 에서 조리를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심부가 이 온도에 도달하려 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심부는 정확한 온도에 도달할 것 이다. 그런데 이때 장시간 노출된 외부는 여전히 건조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반대로 건조되지 않게 하기 위해 너무 일찍 조리를 완료하면 적정 온도에 도달하지 못한 심부는 여전히 날것 그대로인 상태일 것이다. 여기에 수비드가 적용되면 건조와 과조 리의 제약에서 한꺼번에 자유로울 수 있고 조리된 고기 전체를 원하는 익힘 정도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콜라겐과 결합조직의 고른 변성이 야기되어 식감이 비약적으로 개선된다. 즉 수비드는 원하는 질감과 맛을 얻기 위해 완벽한 심부 온도를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한 것이 한때 유행했던 '온센타마고(溫泉玉子)'다. 이 달걀의 경우 요리사마다 자신의 요리에 딱 알맞은 익힘 정도의 달걀을 얻기 위해 각기 다른 온도를 설정하여 여러 번의 테스트를 한다. 그렇게 익힌 달걀은 접시 위에서 특유의 질감과 풍미로 요리사의 개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열은 각 온도별로 서로 다른 화학적 변화를 야기하는데 예를 들어 달걀의 알부민을 구성하는 몇몇 단백질들은 특정 온도에서 응고되기 때문에 단 몇 도 차이만 나더라도 이들의 고형화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질긴 고기는 콜라겐 함량이 높기 때문에 이것이 분해될 수 있도록 좀 더 높은 온도에서 더 오랜 시 간 동안 익혀야 하며 그렇지 않은 부드러운 고기는 상대적으로 저온에서 단시간 동안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수비드의 기본 원리다. 결국 식재료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그 특성에 대한 정확 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효과적인 조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자 요리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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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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