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편지를 주고 받은 기억조차 흐려져 버렸다. 전화가 등장하면서 서로 안부를 묻는 행위는 수화기를 통해 진행되었고,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메신저를 통해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졌다. 또한 이메일의 등장으로 직접 종이에 글씨를 적어 보내는 일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따금씩 신문지상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결혼소식을 스스로 알리는 손편지가 새롭게 보일 정도다.
이 책은 켐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작가 사이먼 시벡 몬티피오리가 지은 책이다. 저자는 '예루살렘 전기'라는 책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데,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필연적으로 예수살렘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오랜 세월동안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중립적으로 서술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이런 방대한 자료조사의 저력이 드러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129통의 편지를 사랑, 가족, 창조, 용기, 발견, 여행, 전쟁, 피, 파괴, 재앙, 우정, 어리석음, 품위, 해방, 운명, 권력, 몰락, 작별이라는 테마로 구분하였다. 가장 오래된 편지는 기원전 1370년에 씌여진 편지로 바빌로니아의 왕 카다슈만엔릴이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에게 보낸 것이다. 아직 종이가 발명되지 않은 시기라서 점토판에 설형문자로 씌여졌다. 가장 최근의 편지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로, 미국 핵무기의 위력을 자랑하면서 북한을 위협하는 내용이다. 이례적인 편지였으나, 다행히 북한은 화해의 편지로 화답했다.
특히나 공식적인 편지가 아닌 개인적인 편지는 개인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가 그렇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굴복시키고 아내에게 짧은 메모를 보내는데, 피곤한 몸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음과 동시에 러시아 군대를 완파한 것에 대한 자랑도 곁들인다.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이 친구 노먼에게 보낸 편지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앨런튜링은 동성애자 친구였던 아널드 머리의 강도피해 사건으로 경찰조사를 받다가 부주의하게 동성애자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결국 튜링은 외설죄로 기소되었고, 튜링은 유죄를 인정하고 화학적 거세 치료를 받는다는 전제하에 형집행이 면제된다. 이로써 파멸의 길로 들어선 튜링은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자살하기 전에 친구 노먼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튜링이 느끼는 불안과 비참함이 잘 나타나 있다.
편지는 다시금 더욱더 비밀스런 대화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 스파이, 범죄자, 혹은 연인 사이에서 그렇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는 해킹되어 누군가에게 노출되어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가 편리하기는 하지만 무언가 덧없는 느낌을 준다. 오랫동안 지낼 인연이라면 손편지를 한번 주고받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지원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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