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망의 발굴 전까지 사람들은 창조적 사고를 하려면 커다란 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류가 창조적 사고를 하게 된 과정을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Homo는 지금으로부터 200만 년 전쯤 기후변화로 식량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창조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호모는 당시 이미 도 구를 만들고, 그 도구로 새로운 영양공급원을 개척해나갈 수 있 을 만큼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호모는 고기를 자르기 위 해 돌로 무기와 칼을 만들었다. 그 덕분에 원래 약한 축에 속하던 호모는 사바나의 가장 큰 동물과 겨룰 수 있는 사냥꾼으로 변신했다. 육식은 호모에게 양질의 영양을 공급해주었고, 덕분에 호모는 더 커다란 뇌로 무장할 수 있었다. 커다란 뇌를 가지고 더 똑똑해질수록, 더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호모는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포식자이자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맞지 않는다. 첫째, 로메크위의 석기산업은 200만 년 전의 기후변화보다 훨씬 앞서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지구온난화가 원시림을 바싹 말려버리고 아프리카에 사바나가 생겨나기 최소 50만 년 전에 이미 이곳에서 뗀석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둘째, 소니아 아르망 팀이 발굴한 연장들은 육식을 위한 칼이나 무기가 아니었다. 그곳 어디에도 칼자국이 난 동물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날에 남은 흔적도 이런 연장이 식물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도구들은 분명히 호두 같은 것을 깨뜨리거나 덩이줄기를 수확하거나 나무줄기에서 곤충들 을 제거하는 일에 쓰였던 것 같다. 셋째, 이런 기구를 만든 이들은 뇌가 크지 않았다. 평평한 얼굴의 케냔트로푸스 플라티옵스는 현생인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뇌 용적은 오늘날 인간의 3분의 1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300만 년 전에는 다른 종의 초기 인류도 생존했지만, 어느 종도 현대의 침팬지보다 뇌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창조적 사고로 현실을 일구어갈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 창조성이 이해력과 독창성만의 문제라면 유인원은 우리 조상보다 훨씬 먼저 돌칼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동물원에서도 그런 능력을 선보여 우리의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하지만 창조성이 단순히 즉흥적으로 번득이는 영감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화뿐이다.
돌을 깨뜨려 뗀석기 하나를 만드는 데도 창조적 사고는 아이 디어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뚜렷한 보상이 보이지 않아도 실패 를 감수하고, 부단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 하다. 꽤나 복잡한 창조적 과업을 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오랜 시간을 미지의 영역에서 보낸다. 침팬지가 석기 제작에 실패하는 것은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제력과 장기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이 부족해서다. 솔직히 말해 우리 역시 이로 말미암아 좌절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 인간이 언제부터 말로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목소리는 고고학적 흔적을 남기지 않으므로, 인류의 언어 사용에 대한 가설은 열 가지가 넘는다. 아이와 어머니 간의 옹알이가 최초의 발화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언어를 사용한 시점을 훨씬 나중으로 가정하여, 모닥불 앞에서 노닥거리던 행동이 언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로메크위의 발굴물에 비추어 보면 이 모든 이론은 별 로 신빙성이 없다. 300만 년 전에 석기를 만든 사람들이 이미 서 로 의사소통을 할 줄 알았다는 사실에 별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후세 사람들처럼 유창하게 말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대와 입이 아직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3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가 내는 소리는 휘파람 소리, 개 짖는 소리, 유인원의 그르렁거리는 웃음소리와 비 슷했을 수도 있고, 유인원처럼 개별적인 소리와 제스처로 의사소 통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유인 원의 제스처와 소리는 타고난 것이라서 그 상태에서 더 이상 발 전이 없는 반면, 투르카나 호숫가에서 석기를 만들던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상황을 위한 신호를 만들어냈던 것이 틀림없다. 서 로의 뜻에 맞춰주고 서로 복잡한 의견을 주고받는 능력이 없었다면, 석기 제작을 수천 년간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 많은 교양서, 심지어 전문서들까지도 호모사피엔스가 이름에 걸맞게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덕분에 약 4만 년 전에 본격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설명은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 즉 현대의 호모사피엔스의 귀에 좋 게 들린다. 하지만 설명하기 편하고 자존감에 도움이 된다고 해 서 꼭 사실인 것은 아니다. 세계사를 호모사피엔스의 우수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꽤 유쾌할지 모르겠지만, 세 가지 사실이 그 설명에 들어맞지 않는다.
첫째, 호모사피엔스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호모 속에 속한 여러 종을 서로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서로 다른 종으로 본다. 그러나 생물학에는 '종'이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가 최소 대여섯 가지는 된다. 가장 널리 퍼진 견해는 서로 교 배하여 번식이 가능한 생물을 하나의 종으로 보는 것이다. 아랍말과 하플링거는 서로 교배하여 번식 가능한 후손을 만들어낼 수 있으므로, 같은 종인 '가축화된 말 Equus ferus caballus'에 속한다. 반 면 가축화된 말과 당나귀는 다른 종이다. 이들의 후손인 노새 혹 은 버새는 번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만 년 전쯤 유럽으로 이주한 호모사피엔스와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함께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 았다. 그 후손이 바로 유럽인이다. 오늘날 유럽인의 유전자에는 이주민인 호모사피엔스와 원주민인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 유럽인의 조상 중에는 최소한 한 명의 네안데르탈인이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에 의해 멸절되지도 멸종되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이주민들에게 흡수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현대 유럽인의 게놈에 1~4퍼센트 정도 반영되어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유럽인의 두 조상 중 몸집은 더 작았지만, 더 성공적인 조상이 되었다. 이주민의 유전자가 더 잘 퍼져나간 것은 단지 그들이 수적으로 원주민보다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는 새로운 종의 인류가 아니라 초기 인 류 중에서 우리와 가장 유사한 해부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 따름이다.
둘째, 4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는 전혀 신인류가 아니었다.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약 30만 년 전에 이미 아프리카에서 해 부학적으로 현대적인 인간이 호모에렉투스로부터 진화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왜 훨씬 나중에야 급속히 전개되기 시작했을까?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클라인 Richard Klein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는 5만 년 전 "신경계의 변화"가 갑자기 호모사피엔스를 더 똑똑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이 비상한 혁신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한 유전자 돌연변이 덕분에 갑자기 머리가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호모사피엔스보다 먼저 유럽에 살던 초기 인류는 지능도 상상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들은 뼈로 물건을 만들고, 예리한 칼, 접착제, 배를 고안했다. 문화가 서서히 전개된 것은 결코 창의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문제는 새로운 것이 생겨나도 거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잊힌다는 것이었다. 이주민인 호모사피엔스의 위대한 업적은 좋은 아이디어가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 읽기를 배우면서 우리의 뇌는 개조되고 재프로그래밍된다. 그리하여 시각적 지각은 이제 미세한 선에 더욱 강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른 뇌 활성화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읽기에 능숙해지면, 어린아이들과 문맹자들이 얼굴 인식에 활용하는 대뇌의 좌반구 중추가 재프로그래밍되어 상징을 해독하는 역할을 한다. 대신 에 대뇌 우반구에 얼굴을 인식하는 새로운 중추가 발달한다. 진 화적으로 굉장히 오래된 뇌간은 호모사피엔스와 파충류 사이에 별 차이가 없지만, 문자에 친숙해지면 뇌간조차도 재조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상징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뇌가 일단 그렇게 프로그래밍되면 기호는 눈과 귀가 지각하는 현실에 대한 평형추로 작용한다. 상징이 일단 활성화되면, 그것을 끄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호를 다루는 능력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 한 역할을 하는지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인간과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상징을 도입했을 때 행동과 사고의 가능성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 상징은 세 가지 방식으로 지성을 확장한다. 
첫째, 상징은 세상을 묘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상징과 더불어 우리는 감각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 입자물리학은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토대로 하고, 화학은 원자를 철자로, 원자결합을 선으로 표시하는 구조식을 토대로 한다.
두 번째로 상징은 생각을 조직화해준다. 그래서 현실을 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도 상징이 필요하다. 화학자는 구조식을 이리저리 활용하여, 새로운 약품, 플라스틱, 때로는 독극물을 만들어낸다. 작곡가는 종이에 음악을 쓴다. 록 밴드가 연습실에서 악기 연주를 하며 곡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머릿속에 이미 음표, 화음, 리듬이라는 상징적 표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조화로운 공동생활을 위해 상징이 필요하다. 사회 가 복잡할수록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그 의미를 아는 기호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래야 낯선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매개로 상품과 노동력을 교환할 수 있다. 축구팀의 색깔은 서로 알지 못하는 팬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다. 상징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이론가 낸시 에이킨 Nancy Aiken은 현대의 예술 시장과 화려 한 전시회는 예술을 무엇보다 흥미로운 여가활동으로 보여주고 자 하지만, 원래 예술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에이에 따르면 예술은 상징을 만들어 인간 무리를 생존에 유리하 게 하며, 인간을 서로 뭉치게 한다. 더 많은 사람이 공동생활을 할수록 예술의 비중은 높아진다. 가령 장신구로 변신한 조개껍데기는 신분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즉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상징 삼아 다른 대상을 나타낼 수 있다면, 색칠된 조개껍데기는 단순히 연체동물의 석회질 껍데기이기를 중단하고, 공동생활의 표지가 된다.
- 인구가 아주 적고 사람 간의 교류가 별로 없는 사회라면 그런 상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가족끼리 있을 때는 목걸이를 착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무리가 커지고 다양 해지자마자 그런 물건이 도움이 되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마크 토머스 Mark Thomas는 아프리카 남부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굴된
조개껍데기 장신구와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인구가 증가하던 시대에 생겨난 것임을 증명했다.상징은 신화를 만들고 사람들을 결집시킨다. 호주 원주민의 선사시대 암벽화 역시 예술의 발전이 공동체의 형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호주 원주민들은 지역에 따라 굉장히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갔다. 무더운 내륙 사막 지역의 경우 아주 넓은 땅에 소수의 주민만이 거주했다. 그러다 보니 비옥한 해안 지역보다 부족의 영토가 훨씬 넓었다. 영토가 넓으면 좁은 지 역에 모여 사는 것보다 더 다양한 스타일의 예술이 생겨날 거라 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다. 적은 인구가 널리 흩어진 가운데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극한의 기후 지역에서는 상징이 서로를 이어준다. 그리하여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바위에 새겨진 무늬와 그림이 늘 같은 모티브를 보여준다. 하지만 강수량이 풍부한 해안 지역에서는 좁은 반경에 여러 부족이 서로 공존했고 서로 다름에 가치를 두었다. 이들은 이웃들과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예술을 활용했다. 그리하여 상당히 다양한 상징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단합하고 구분 짓기 위해 상징을 고안했으며, 이런 기호가 생각의 도구로서 지니는 가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 사람들은 어떤 가정을 변치 않는 사실로 여기곤 한다. 창조 적 사고는 이런 가정이 가정임을 깨닫고 새로운 생각의 여지를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아이디어 를 떠올릴 수 있다.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는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영감이 무엇이든, 그 것은 끊임없이 난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했다.
모든 예술작품은 '난 알지 못한다'는 태도에서 탄생한다. 그 러나 쉼보르스카는 영감이 예술가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했다. 영감은 마음을 여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온다. 아주 오랫동안 창의적 사고는 운 좋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특별한 뇌기능 같은 것은 없음을 알고 있다. 창조성은 기본적인 지각 메커니 즘을 활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가 지각한 것들을 지어낸다.
-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모든 인식의 시작에는 감각적 인상이 아니라 선입견이 있다. 우리는 선입견으로부터 상상을 만들어낸 다. 상상이 곧 가설이다. 감각기관은 이제야 비로소 작동한다. 그러나 눈과 귀가 제공하는 정보는 상상을 강화하거나 보완하거나, 반박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감각에 의해 상상이 확인되면, 우리 는 그것을 현실로 여긴다. 상상이 확인되지 않아도 나쁠 것 없다. 그 가설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만큼 더 똑똑 해진 셈이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상상을 지어내면 된다.
베이즈 정리에 주목하기 전까지는 참이냐 거짓이냐만 존재했다. 가설은 들어맞거나, 아니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틀린 것은 곧 무가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이즈 정리는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해도 불확실한 믿음이 얼마나 유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인식은 단순히 어떤 사실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각과 사고는 늘 선입견을 배경으로 일어난다. 그 선입견은 달이 우리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하늘에 떠 있다고 말하며,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당신의 두 손이 같은 크기라고 말한다. 동물원 우리의 덤불 속에 숨어 있는 명확하지 않은 얼룩 패턴이 표범의 등이라고 말하며, 통화 품질이 나쁜 휴대전화 너머에서 자꾸 지지직거리며 끊기는 목소리가 여자 친구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또한 레스토랑의 소믈리에가 추천해준 보르도 와인이 미각의 향연을 경험하게 해줄 거라고 말한다. 이런 선입견들이 대략 맞아떨어진다면 당신은 저녁 하늘에 쟁반같이 떠오르는 주 황빛 보름달을 보게 될 것이고, 양손이 같은 크기로 보일 것이며, 표범을 분간해낼 것이고, 여자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와인에서 소믈리에가 약속한, 강하지 않고 섬세한 타닌감과 구스베리 및 감초의 향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경험은 상상력 덕분에 가능하다. 동물원의 먼 덤불 사이에서 우리의 눈은 움직이는 몇몇 밝은 얼룩만 포착한 다. 왼손의 상은 망막에서 오른손의 두 배에 해당하는 면적을 차 지한다. 휴대전화에 바짝 가져다 댄 귀에는 음향 샐러드’가 들린다. 안대를 한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조차 잘 구분하지 못한다.
-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크리스 프리스Chris Frith 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상상”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종종 현실과 놀랍게도 맞아떨어지는 상상'이라고 보충해야 할 것이다. 우선 뇌는 감각이 제공하지 않는 데이터를 보충해서 우리가 맹점을 느끼지 않고 평생 살 수 있게 해준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눈과 귀가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냥 없어져버리는 정보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 정보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너무 낭비이기 때문이다. 가령 눈은 1초당 약 1000만 비트의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이것은 700페이지짜리 책에 담긴 정보량에 맞먹는다. 하지만 그중 100비트만 의식에 다다른다. 100비트는 단어 두 개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 밖의 모든 정보는 눈에서 뇌로 전달되는 동안 걸러진다. 그렇게 남은 정보는 너무 적어서 주변에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못한다.
- 창조적 과정은 대개 4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에서는 논리적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하며 해당 주제에 열심히 몰두한다. 하지만 모든 숙고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몇 번이나 헛된 도움닫기를 시도한 끝에 이성은 백기를 든다.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던 사람은 실패를 자각한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준비 prepare 시간을 거쳤을 뿐이고, 창조적 사고가 자기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2단계는 알을 품듯 문제를 품고 부화incubation 시키는 단계다. 당사자는 더는 의식적으로 문제에 골몰하지 않는다. 해결 가망 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기억된 내용이 무의식 속에서 계속 작동한다. 종종 이런 제어되지 않는 두뇌 활 동이 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밤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기억 나게 하는 이미지와 생각의 파편들이 떠오르지만, 이로부터 어떤 의미도 유추되지는 않는다.
2단계에서 전혀, 혹은 거의 의식되지 않았던 정신적 과정의 결과가 3단계에서 눈앞에 드러난다. 이른바 조망illumination의 단계다. 뇌과학에 따르면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번개가 친 것에 비유한 유레카 경험은 객관적으로도 증명된다. 이런 조망이 비정상적인 뇌파 증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 오른쪽 뒷머리, 귀 윗부분에서 감지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런 신호는 당사자가 자신의 통찰을 지각하기 약 2초 전에 나타난다. 주의력을 조절하는 우측 뒷머리의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벌어지는 일인 듯하 다. 이 영역이 주의력을 주변으로부터 내면에 있는 상상의 세계 로 향하게 하면서 아이디어에 무대를 마련해준다.
조망이 찾아오면 굉장히 기쁘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 생각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언뜻 아주 기발해 보이는 많은 착상이 곧 적절치 않은 것으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문제 해결에 부적합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과정의 마지막 4단계인 검증.verification이 이루어진다. 논리적 사고가 다시 활발하게 작동하여, 그 아이디어가 설득력이 있고 쓸 만한 것인지 확인하는 단계다. 좋은 아이디어로 판명되면 이제 정말로 발견에 대한 행복감이 밀려든다. 이런 일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에 속한다.
- 경마에 참가한 말과 기수처럼 모드 1과 모드 2는 창조적 과정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둘이 함께해야만 목표에 이를 수 있다. 꿈꿀 수 없는 이성은 느리고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를 외면하고 꺼리는 정신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창조성은 고립된 재능이 아니라 대립적인 것을 머릿속에서 통합시키는 기술이다. 논리가 꿈을 만날 때 아이디어가 생겨난다.  명료한 이성은 목적 없이 배회하는 모드 1의 연상을 조심스럽게 한 방향으로 유도하지만, 결코 많은 통제를 가해 아이디어의 흐름을 막지는 않는다. 냉철한 사고는 현실과의 관계를 잃지 않게 하고, 쓸데없는 환상을 걸러낼 뿐만 아니라, 늘 똑같은 고민 을 중단시키고, 자칫 백일몽에 빠지기 쉬운 생각의 고리를 끊는다. 그리하여 창조적 과정에서는 꿈과 분석, 무의식과 의식, 허황된 생각과 계획적인 생각, 관심의 넓은 포커스와 좁은 포커스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이 이루어진다.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직관과 논리가 서로 대립된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 뇌 안에서 모드 1과 모드 2는 서로 맞수다. 즉 일반적으로는 서로를 배제한다. 디폴트모드 네트워크가 켜져서 모드 1 상태가 되자마자 모드 2를 조성하는 실행 네트워크는 꺼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공상에 잠길 수 없다.
- 조형예술의 걸작 또한 탐구적 창조성에서 비롯되었다.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모나리자〉는 수수께끼 같고 신비한 얼굴 표정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빈치는 기괴한 초상화를 연 속적으로 그리면서 유사한 형태와 과장된 형태를 계속 변형시켜 보았다. 심지어 모양에 따라 코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기까지 했다. 코가 직선으로 뻗었는지, 동그란 모양인지에 따라 네 가지 기 본 유형으로 나누었고, 콧등의 굴곡 정도에 따라서도 형태를 구 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런 식으로 표정을 보여주는 갖가 지 요소를 담아 도구상자를 마련했고, 덕분에 이전의 어떤 화가보다 감정을 풍부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 세기말이 되면, 말의 사용이 (......) 크게 달라져서 모순 없이 정확하게 생각하는 기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앨런 튜링)
- 변혁의 기술은 규칙을 토대로 하지 않으며, 특정 목표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변혁적 창조성은 기존 목표를 포기하고 새로운 목표를 발견한다. 규칙을 파괴하고 자신의 규 칙을 정립한다.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착상들은 그렇게 생겨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300년 전에 정립된 뉴턴 역 학을 뛰어넘어 물리학에 새로운 개념을 선사했다. 베토벤이 교향 곡 5번을 쓸 때만 해도 멜로디가 아닌, 네 개의 리듬감 있는 천둥소리로 교향곡을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마르셀 뒤샹은 자신의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은 숙련된 솜씨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기대를 영원히 불식시켰다.
- 변혁을 이루는 열쇠는 지능이라기보다는 자율성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의도를 변화시킬 자유를 부여해주고, 생각을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해준다. 감정은 우리가 야심찬 목표를 추구하게 하고,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의 말처럼 “수천 척의 지적인 배를 띄우고, 이것을 조종하도록 도와준다.” 감정은 신체의 생존에 도움을 주고 신체는 이런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신체와 정신은 상호작용한다. 창조적 사고가 인간을 자연계에서 조금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적 사고에 식량과 후손으로 보답한 자연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로 남았다. 우리의 창조 성과 신체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천재, 그것은 기꺼이 되찾아온 유년 시절을 의미한다. (샤를 보들레르)
- 변혁이 가능하려면 혼란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수필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창조적 과정에 관해 고찰하면서 사회가 변화를 그토록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볼드윈은 기존의 것에 달라붙어 있으려는 경향은 특권을 포기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불안을 견디지 못해서 나타나는 것이 라고 설명했다. “사회의 목적은 내적, 외적 혼란에 맞서는 방벽을 처줌으로써 사람들이 무난히 살아가게 하고 인간 종이 생명을 유 지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전통이든 일단 한번 굳어지면 대부분 의 사람은 마치 이런 전통이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되어온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변화를 상상하기가 싫고 상상할 수도 없다. 자신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준 전통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포기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 그들은 패닉 반응을 보인다.” 1962년에 볼드 윈이 쓴 이 글은 지금 읽어도 예언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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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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