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맛을 느끼는 감각 수용체는 혀뿐만 아니라 위와 장에도 존재한다. 위장의 미각 수용체로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음식을 삼키고 나면 이들 감각 수용체는 들어온 음식의 영양성 분을 분석하여 소화를 위한 일련의 대사반응을 일으키는 데 영 향을 준다. 식품 알레르기가 아닌 이상, 위장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하여 그 음식이 특정 개인의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근 거는 없지만, 먹자마자 위장이 거북해하는 음식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키토제닉 다이어트란 뭘까? 앞에 붙은 키토제닉이란 수식어 때문에 여러 다이어트 방법 중에서도 유독 어려운 전문용어 처럼 들리지만, 쉽게 말해 평소에 잘 안 쓰는 케톤ketone이라는 연 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하여 체중을 감량하는 방법이다. 영어 단 어 ketogenic은 말 그대로 케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케톤은 당이 모자란 상태에서 우리 몸속에 저장된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쓸 때 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평소대로 식사할 때는 케톤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 하는 회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으므로, 지방을 태워 쓰되 다량 의 케톤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탄수화물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여 인체가 사용할 수 있는 당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을 때에야 지방에서 다량의 케톤이 만들어진다. 더 이상 당을 에너 지원으로 쓸 수 없는 뇌, 심장, 근육과 같은 다른 장기에서 대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도록 케톤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넓게 보아 저탄수화물low-carb 다이어트의 한 종류다. 하지만 기존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황제 다이어트, 앳킨스 다이어트, 듀칸 다 이어트, 팔레오 다이어트와 같은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는 기본 적으로 고단백에 방점이 찍힌다. 육류, 생선과 같은 고단백질 품은 많이 먹고 지방은 적당히, 탄수화물은 적게 먹는 방법이다. 반면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가장 큰 특징은 고지방식이라 는 점이다. 근육 손실을 막기 위해 적당량의 단백질 섭취를 권 하기는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지방으로 섭취하기를 권장한 다. 전체 섭취 열량에서 지방이 60~70%, 단백질이 20~30%, 탄 수화물은 10% 이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저탄수화물 다이어 트 중에서도 지방 섭취 비율이 가장 높아서 저탄고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식사법이다.
- 다른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와 달리 단백질 섭취까지 제한하는 이유는 뭘까? 케톤을 만들어내는 일에 단백질이 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속 단백질은 소화·흡수되면서 아미노산 으로 쪼개지는데 아미노산은 당으로 전환될 수 있을뿐더러 인 슐린 분비를 자극하기도 한다. 인슐린은 케톤이 너무 많이 만들 어지지 않도록 조절한다. 이런 이유로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 하면 케톤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진다.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핵심은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인체 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도록 하는 것이다. 지방을 에너지원으 로 쓰려면 먼저 지방을 분해해서 케톤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방을 많이 분해해 쓸수록 핏속에 케톤이 더 많이 쌓여 케토시스 ketosis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 빨리 도달하려면 탄수화물 섭취를 하루 50g 이하로 엄격히 제한함과 동시에 단백질도 근육량이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만 섭취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금방 케톤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이라는 탄수화물까지 모조리 사용하고 나야 비로소 인체는 탄수화물 대신 지방을 주된 에너지원으로 사용 하는 케토시스 상태가 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여기까지 보통 3~4일이 소요된다. 다이어트 초기에 체중 3~4kg이 금방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글리코겐이 소모되면서 자체 무게의 3~4배에 달하는 물도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 달고나 커피의 거품 속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무작정 젓기보다 원리를 알고 만들면 더 쉽다.
우선 중요한 것은 단백질이다. 맹물은 수천 번을 저어도 거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은 거품 이 생겨나긴 하지만 금세 사라진다. 이에 반해 맥주 거품은 더 오랜 시간 지속된다. 맥아 단백질이 거품을 안정시키기 때문이 다. 달고나 커피의 거품도 마찬가지다. 인스턴트커피 속의 단백 질이 기포 벽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본래 이들 단백질은 실타래처럼 압축된 형태로 존재한다. 인스턴트커피를 소량의 물에 녹여서 휘저으면 숟가락이나 거품기 철사를 따라 액 체가 이리저리 끌려가면서 단백질 분자가 풀린다.
이렇게 잡아끄는 힘을 더 효율적으로 가하려면 숟가락보 다는 가닥수가 더 많은 포크가 낫고 포크보다는 거품기 철사가 낫다. 힘의 방향을 액체가 흐르는 방향과 반대로 바꿔주면 더 잘 풀린다. 그릇 속의 거품기를 한 방향으로 빙빙 돌릴 때보다 좌우 또는 지그재그로 흔들어주는 동작으로 더 쉽게 거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 단백질만 거품에 중요한 재료는 아니다. 인스턴트커피에는 따로 산을 넣지 않아도 이미 약간의 산성 물질이 들어 있어 서 거품이 지속되는 것을 도와준다. 커피 속 다당류도 거품을 안정시켜서 기포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돕는다. 설탕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맛을 줄이기 위해 설탕 첨가량을 커피의 4분의 1 정도로 낮출 수는 있지만,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인스턴트커 피와 물만으로 달고나 커피를 만들기는 어렵다. 설탕은 찐득하 게 액체의 점도를 높여 공기 방울을 감싸는 벽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는 것을 막고 기포가 튼튼히 묶여 있게 해준다.

- 흑당버블밀크티에 숨겨진 사실
흑설탕과 황설탕(갈색설탕)과 흑당은 어떻게 다른가. 대만 에서는 흑설탕이 곧 흑당인데 한국에서는 그런 듯 아닌 듯 헷갈 린다. 정제당에 캐러멜을 넣어 만든 흑설탕, 황설탕을 재래식 흑 당인 줄 알고 사 먹던 시절도 있었다. 식품 역사 연구자 이은희는 설탕, 근대의 혁명에서 이러한 혼동이 일제 전시체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한다. 설탕은 검은색의 끈끈한 액체인 당밀 을 분리해서 제거하느냐 그대로 두느냐에 따라 분밀당과 함밀 당으로 나눌 수 있다. 흑당 또는 비정제 흑설탕은 당밀을 제거 하지 않고 재래방식으로 만든 함밀당이고, 갈색설탕 또는 황설 탕은 당밀을 산업적으로 제거하고 만든 분밀당이다. 분밀당의 불순물을 여러 번 씻어내고 탈색해야 비로소 백설탕이 된다. 이 러한 추가 공정 때문에 백설탕이 황설탕보다 더 비싸다. 흑당 같은 비정제당에 미네랄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흑당 이 건강에 더 좋은 당이 되진 않는다. 우유 한 잔 속 칼슘을 흑당 으로 섭취하려면 200g 넘게 먹어야 한다.
- 20세기 초 백설탕을 효율적 에너지 공급원으로 권장하던 조선총독부는 중일전쟁으로 식량 사정이 나빠지자, 모자란 백 설탕의 소비를 줄이고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흑설탕을 내세우 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대만 분밀당인 황설탕을 가져 다 팔았다. 당시 값이 더 비쌌던 정제 백설탕은 일본에서 소비하 고, 제조비용이 적게 드는 황설탕을 조선에 공급한 것이다.
흑설탕과 백설탕의 영양상 차이도 크지 않지만, 황설탕(갈 색설탕)과 백설탕의 차이는 더 미미하다. 미네랄이 백설탕보다 많이 들어 있다며 요즘 광고하는 갈색설탕의 영양성분을 봐도 100g당 칼슘 함량은 고작 4mg에 불과하다. 흑당과 갈색설탕의 뜻이 뒤섞이고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몸에 좋다는 대중의 편견 이 생긴 것은 과거 조선총독부가 알면서도 사기를 친 결과다. 해방 이후 한국 제당업체는 그런 거짓말을 거짓말로 이어받았 다. 백설탕(정제당)에 캐러멜 색소를 넣어 색깔을 입히는 방식으 로 황설탕, 흑설탕을 생산했다. 백설탕과 영양성분은 동일하고 추가 공정으로 인해 가격만 더 비싼 제품을 만든 셈이다. 그래 도 잘 팔렸다. 일제의 황설탕에 대한 거짓 선전이 소비자에게 여 전히 먹힌 덕분이다. 씁쓸한 역사다.
- 《생리학과 행동 Physiology and Behavior》에 발표했다. 만약 초콜릿속 화학물질이 내는 약리학적 효과가 욕구의 원천이라면 코코아 가 루를 캡슐에 넣어 삼켜도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고, 입 속에서 살며시 녹아내리는 초콜릿의 특별한 녹는점 때문이라면 화이트 초콜릿으로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화 이트초콜릿은 초콜릿이 아니다. 코코아 고형물이 전혀 들어 있 지 않기 때문이다. 카카오버터에 설탕과 유지방, 향료를 넣어 만 든 화이트초콜릿은 달콤한 맛과 사람의 체온 부근에서 부드럽 게 녹는 물성 면에서만 초콜릿을 닮았다.
실험에서는 밀크초콜릿, 화이트초콜릿, 코코아 가루를 넣은 캡슐, 화이트초콜릿+코코아 가루 캡슐, 가짜 알약, 그냥 물만 마시는 6가지 경우를 비교했다. 실험 결과, 초콜릿의 마력은 그 물성에 있었다. 초콜릿 욕구를 강하게 느낄 때 실험 참가자를 가장 만족시킨 것은 물론 초콜릿이었지만, 화이트초콜릿을 먹 어도 초콜릿의 69%에 달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코코아 가루 캡슐에는 가짜 알약 이상의 효과가 없었다. 화이트초콜릿 과 코코아 가루 캡슐을 함께 먹은 경우에도 효과는 화이트초콜 릿만 먹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코코아 가루 캡슐에 초콜 릿과 동일한 양의 약리 활성 물질이 들어 있었음에도 초콜릿을 먹을 때만큼 온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 음식에 관한 한, 상식은 진리가 아니다. 초콜릿 속 성분의 효과는 크지 않으며 만족감의 대부분은 물성에서 온다. 베개 위 에 놓인 초콜릿을 보고 생겨난 욕구는, 아름다운 갈색의 초콜릿 을 눈으로 보고 입에 넣어 녹이며 다양한 화학물질이 복합적으 로 만들어내는 향기와 맛과 조직감을 혀와 코와 피부로 직접 체 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채워진다. 동일한 성분의 알약으로는 불 가능한 일이다.

- 16세기만 해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역사가 지롤라모 벤조니 Girolamo Benzoni가 「신세계의 역사La historia del Mondo Nuovo」에서 "인간의 음료라기보다는 돼지의 음료”라며 초콜릿을 혹평한 기록이 나 온다. 비슷한 시기 가톨릭교회에서는 초콜릿을 사순절 기간에 먹어도 되는 것으로 허용했는데, 초콜릿의 맛이 워낙 고약하여 그걸 먹는다고 사순절에 신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희생을 위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이렇게 맛없는 음료가 엄 청난 성공을 거뒀다면 뭔가 효과가 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성공 비결 중 하나는 틀림없이 초콜릿이 고칼로리의 영양 식이라는 점일 것이다. 카카오 열매를 발효한 다음 건조와 로스 팅 과정을 거쳐 갈아 만든 액체에는 코코아버터 55%, 당분 17%, 단백질 10%가 들어 있다. 액체에 무엇을 더하든 기본적으로 영 양이 풍부한 음식이 된다. 이에 더해, 초콜릿 속의 각성 물질 카페인과 테오브로민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테오브로민은 카페인보다 10배 정도 많이 들어 있지만 카페인에 비해 각성 효 과가 낮은 편이다. 다크초콜릿 50g에 든 카페인 양이 20~30mg 정도로 커피 한 잔의 4분의 1 정도다. 커피에 비해 적은 양이지 만 집중력을 높이고 기분을 향상하기에 충분하다. 맛볼수록 초 콜릿이 더 좋아지는 이유다.
이쯤에서 마리화나 성분인 카나비노이드가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보자. 그뿐 아니다. 초콜릿에는 뇌 에서 암페타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각성 물질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이들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초콜릿에 마약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초콜릿 1kg에 든 페닐에틸아 민의 양이 3mg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소시지와 김치에도 같은 성분이 들어 있다. 초콜릿 속 페닐에틸아민 때문에 기분이 좋아 지는 효과를 본다면 갓김치를 먹고서도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 는 말이다. 마약 같은 물질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음식이 마약 은 아니다. 함량이 마약만큼 되어야 마약이다.

- 생각해보면, 먹으며 갈등하는 사람만큼이나 초콜릿도 모순이 가득한 음식이다. 잘 만든 초콜릿은 손에서는 딱 부러지지 만 입에서는 부드럽게 녹는다. 지방 함량을 생각하면 금방이라 도 몸에 열이 날 듯한 음식이지만, 막상 초콜릿을 입에 넣으면 지방 결정이 녹으면서 입 안의 열을 흡수하여 시원한 느낌을 준 다. 레드와인 속 타닌이 스테이크 속 지방의 느끼함을 씻어내듯 초콜릿 속 지방과 타닌은 서로를 보완하며 균형을 맞춘다. 그래 서일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마다 인생 의 모순과 갈등이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에 행복해진다.

- 1992년 영국의 스타 셰프 헤스턴 블루먼솔Heston Blumenthal과 향미화학자 프랑수아 벤지 Francois Benzi는 '푸드 페어링 가설food pairing hypothesis'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비슷한 풍미를 내는 화합물을 공 통으로 갖고 있는 식재료들일수록 요리에서 잘 어울릴 가능성 이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초콜릿과 캐비어는 생뚱맞은 조합처럼 들리지만 트리메틸아민을 비롯한 여러 종의 향미화합물을 공통 적으로 갖고 있으므로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초콜릿과 블루치즈도 서로 맞지 않을 듯한 음식이지만 73가지 향미화합 물이 공통된다. 레스토랑 팻덕의 유명한 디저트 메뉴 '몰튼 초콜 릿과 블루치즈'는 여기에 착안해 만든 메뉴다. 푸드 페어링 가설 이 치즈닭갈비에도 들어맞을까 궁금해진다.
- 다행히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푸드 페어링 가설이 나오고 20년이 지난 2011년 12월, 「링크로 유명한 앨버트 라슬 로 바라바시 Albert-Laszló Barabási를 포함한 4명의 이론물리학자들이 레시피 5만 6,000종을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 이다. 블루먼솔과 벤지의 가설에 착안하여 식재료의 향미화합 물 공유도에 따른 연결망을 그려보았더니, 서구식 레시피의 경 우 공통된 풍미물질이 더 많은 식재료들일수록 함께 쓰고, 그렇 지 않은 것일수록 조합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모차렐라 치즈, 파르메산 치즈, 버섯, 토마토는 강한 치즈 향의 4-메틸발레르산이라는 향미성분을 공통으로 갖고 있어서 피자와 같은 음식에 흔히 함께 쓰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자료에 의하면 구운 닭고기와 치즈는 무려 62가지의 향미화합물이 공통된다. 치즈와 닭갈비는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이 정도면, 맛을 모르는 젊은이들의 음식이 아니라 맛을 제대로 아는 젊은이들의 선택이라고 봐야 맞겠다.
- 푸드 페어링 가설만으로 치즈닭갈비의 조합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음식의 향미성분이 겹치는 게 반드시 좋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참치김밥을 먹을 때 커피를 함께 마시면 생선 비린내가 날 때가 있다. 커피와 참 치에는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트리메틸아민이란 향미성분이 공 통으로 들어 있다. 각각을 따로 먹을 때는 농도가 낮아서 느끼 지 못할 수준인데, 둘을 함께 먹으면 비린내가 강해진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구의 조리법은 향미성 분이 공통된 재료들을 묶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동아시아 음식 조리법은 푸드 페어링 가설과는 반대로 중복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동아시아에서 푸드 페어링 가설이 통하지 않는 까닭 이 비린내 같은 불쾌한 맛을 피하기 위해서인가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게다가 치즈는 다른 음식의 향미를 억눌러서 감지하기 어 렵게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대 힐데가드 헤이만 Hildegarde Heymann 교수에 따르면, 치즈를 먼저 시식하도록 한 뒤 와 인 맛을 평가하도록 하면 전문가들도 와인의 섬세한 향미를 감 별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우리가 냄새를 맡으려면 우선 향미 성분이 휘발하여 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치즈 속 카세인과 같은 단백질이 와인의 향미성분과 결합하여 휘발을 막기 때문 이라는 추측이다. 특정 와인과 치즈의 페어링이 더 맛있다고 느 낀다면 순전히 당신의 상상 또는 소믈리에의 멋진 설명 덕분이라는 게 헤이만 교수의 결론이다.
- 다시 치즈닭갈비로 돌아가 보자. 닭갈비에 뿌려주는 치즈는 닭갈비의 강한 풍미를 부드럽게 완화해서 조금 더 먹기 편하 게 만들어주는 역할일 수도 있다. 치즈떡볶이, 치즈불닭, 치즈등 갈비에서 치즈닭갈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한식의 계보에 치즈 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은 맵고 자극성 강한 음식 맛을 즐기려 는 방편일지 모른다. 매운 음식을 먹고 우유나 요구르트를 마시 면 도움이 되듯, 모차렐라 치즈 속 카세인 단백질이 닭갈비 양념 의 캡사이신과 결합하여 입 안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 오킨 교수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1억 6,300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먹는 음식 칼로리는 프랑스 전체 인구의 1년 음식 섭취 칼로리와 맞먹는다. 이로 인한 탄소 배출 량이 매년 자동차 1,360만 대가 뿜어내는 양과 맞먹는다. 이들 반려동물의 식단이 인간의 식단보다 육류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하면 미국에서 소비되는 동물성 음식의 25%는 개 와 고양이가 먹는 셈이다. 오킨 교수는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에 게 가는 고기의 4분의 1만 사람이 소비하도록 돌려놓아도 텍사스주 인구에 달하는 2,600만 명이 먹는 고기 양에 해당할 것으 로 추산한다.

- 에너지 음료에는 카페인에 더해 에너지 대사를 돕는 비타민B 몇 종과 인간의 뇌가 가장 선호하는 에너지원인 당류가 함 께 들어 있다. 인삼, 과라나, 타우린, 말토덱스트린, 글루쿠로노 락톤도 에너지 음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분이다. 이들 성분을 더한다고 하여 얼마나 더 효과를 내는가는 의문스럽지만, 카페 인을 함유한 음료를 마신 뒤에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기분이 살짝 좋아지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인지기능과 운 동기능이 향상된다. 2010년 미국 연구에서는 에너지 음료를 마신 참가자가 가짜 에너지 음료를 마신 경우보다 트레드밀 위에서 뛰면서 버티는 시간이 12.5%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에 너지음료를 마신 참가자들은 운동 뒤에 피로감이 줄고 집중력 과 에너지가 향상되는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 미국 펩시코는 2020년 12월, 수면을 돕는 음료를 출시한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음료 이름이 드리프트웰Driftwell이다. 마시면 스르륵 잠이 들 거라는 효과를 암시하는 상품명이다. L- 테아닌 200mg과 하루 권장량의 10%에 해당하는 마그네슘이 들 어 있어 수면의 질을 향상하고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 움을 줄 거라는 설명이다.
L-테아닌은 녹차 속의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다. 1940년대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했고 관련 연구도 일본에서 진행된 게 많다. 마치 명상할 때처럼 긴장을 풀어주면서도 집중하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 하여 기능성 음료나 건강기능식품에 종종 쓰 인다. 카페인으로 인한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도 있다. 차를 마시고 나서 잠이 안 올 때의 느낌이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올 때와 달리 왠지 편안하다면 아마도 L-테아닌 때문이다.
마그네슘은 근육 긴장을 염두에 두고 포함했겠지만, 하루 권장량의 10% 정도로는 실제 효과보다는 심리적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듯하다. 제조사에서도 마그네슘보다는 L-테아 닌을 전면에 내세우며 효과를 입증할 임상 자료가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국내에 언제 출시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오면 한번 마셔보고 싶긴 하다. 일본에서 약대 5학년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L-테아닌을 복용한 학생들이 가짜 약을 복용한 그룹 보다 약국 실습 중에 스트레스 레벨이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 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이런 연구 대다수가 제조 사의 협찬을 받아 진행되고 아무래도 자금을 지원한 회사에 유 리한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 구자들도 있다. 2004년 호주 연구에서는 L-테아닌이 이미 편안 하게 쉬고 있는 상태에서는 안정감을 높여주지만, 스트레스 주 는 일을 앞두고 불안감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으 로 나타났다.

-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 음식의 효능을 강조하려다 보면 특정성분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대파 흰 줄기에 사과보다 5배 많 은 비타민C가 들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 교는 오해를 낳는다. 사과는 애초에 비타민C 함량이 높지 않은 과일이다. 애꿎은 사과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대파에 비타민C 가 많다고 설명하면, 사과만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사과에 식 이섬유가 풍부하여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기사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말이다.
특정 음식 또는 영양성분이 면역력을 키워준다는 단순한 주장은 옳지 않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과 같은 거대 영양소, 비타민, 미네랄 같은 미량 영양소가 결핍되거나 부족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맞는다. 하 지만 딱 거기까지다. 비타민A는 면역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 며 점막과 표피를 보호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결핍될 경우 우 리 몸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하지만 비타민A를 과잉 섭취하면 골다공증, 피로감, 간독성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비타민A 과잉 섭취가 면역반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오래가면서 무슨 음식, 어떤 영양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강해진다는 주장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지 만, 실은 면역력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용어다. 면역은 무조건 강하면 좋은 어떤 힘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작동하 는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이다. 땅콩과 같은 음식에 대한 알레 르기 반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의 경우처럼 복잡한 면역체계 일부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건강에 도리어 해가 된다. 면역력은 학술 전문용어가 아니라 마케팅에 남용되는 잘못된 개념일 뿐 이다.

- 가끔 집에서 요리하다 보면 냄새에 질려서 완성 뒤에는 정작 식욕이 떨어질 때가 있다. 생리학에서 감각 특정적 포만sensory specific satiety 이라고 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요리를 하는 사람은 냄새에 질려 다른 사람보다 적게 먹고 그만큼 체중 유지 가 쉬우며 건강하지 않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연구 결과는 내 예상과 정반대였다. 식욕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증가했다.
잠깐 냄새를 맡거나 10~20분에 걸쳐 오래 냄새를 맡거나 식욕 자극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냄새의 종류에 따라 식욕이 달 라졌다. 감칠맛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감칠맛 음식에 대한 식욕이 늘고, 대신 달콤한 음식에 대한 식욕은 줄어드는 식이었다.
과학 실험 결과를 읽고 다시 생각해보니, 요리 뒤에 식욕 이 줄었다고 느낀 적은 있지만 내가 실제로 식사를 거른 적은 없었다. 역시 느낌이나 직관보다는 과학적 근거가 더 중요하고, 직접 만든 요리냐 아니냐보다는 식사량이 더 중요하다. 이거야 말로 코로나19의 시대 집에서 식사하며 내가 배운 교훈이다.

- 실제로 실험해보면 너구리와 같은 유탕면의 경우 찬물에 면과 스프를 넣고 끓인 라면이 끓는 물에 넣은 경우보다 면발이 부드럽고 덜 쫄깃하다. 기름에 튀겨낸 면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 어서 끓기 전에도 물을 어느 정도 흡수하기 때문이다. 찬물에 면 을 넣고 물이 끓으면 1분 만에 조리를 멈추어야 하는 것은 조리 시간 단축에 더해 면이 지나치게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찬물에 면을 넣어 짧게 끓이면 전분이 국물로 덜 녹아 나오기 때문에 국물이 더 맑다. 대신 국물 맛이 덜 진하고 면과 따로 노는 느낌이 든다. 물에 녹은 전분이 라면을 튀긴 기름을 물과 섞어주는 유화제 역할을 하는데, 전분이 물에 녹아 나올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튀기지 않은 건면으로 실험할 경우는 결과물의 차이가 그 리 크지 않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맞히기 어려울 정도다.
건면은 유탕면과 비교하면 파스타에 더 가까운 형태로, 끓기 전 까지는 물을 적게 흡수하기 때문이다.

- 국물 음식의 과학
우리가 사랑하는 국물 맛은 글루탐산의 맛이기도 하다.
국물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봐도 그렇다. 유리 글루탐산이 많이 들어 있는 것들이 주로 쓰인다.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에는 100g당 10~20mg의 유리 글루탐산이 들어 있다. 아주 많은 양은 아니다. 글루탐산은 고기 단백질의 주성분 중 하나로, 동 물성 단백질의 약 20%에 해당할 만큼 많지만 대부분은 단백질 사슬에 묶여 있어서 맛을 낼 수 없다. 하지만 재료를 물과 함께 가열하면 근육세포 속에 붙잡혀 있던 감칠맛 성분이 따로 떨어 져 국물 속으로 녹아 나온다(유리 글루탐산의 '유遊離는 따로 떨어 져 나왔다는 뜻이다).
2015년 12월 식품과학저널Journal of Food Science》에 실린 핀란드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온도와 가열시간에 따라 감칠맛 성분이 달라진다. 돼지고기를 수비드로 80°C에서 조리할 때 60°C, 70°C에서보다 흘러나온 육즙 속 글루탐산을 비롯한 유리 아미노산 농도가 증가했다. 특히 고기보다 육즙에서 유리 글루 탐산 농도가 2배 높았다. 아마도 고온에서 단백질과 펩타이드 의 가수분해가 더 격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일 거다. 수비드 조리 에 대한 실험이지만 국물 요리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국물에 고기를 넣고 고온으로 끓이는 과정에서 감칠맛 성분이 증가한다. 무작정 오래 끓인다고 단백질이 엄청나게 더 많이 분 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온도와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 라 국물 맛이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채소와 과일로 국물을 낼 때도 글루탐산이 중요하다. 양파, 버섯, 토마토에는 유리 글루탐산이 고기보다 더 많이 들어있다. 고기보다 단백질의 양은 적지만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유리 글루탐산 형태로 존재하는 비율이 높다. 물에 넣고 가열하면 단단한 식물 세포벽에 싸여 있던 당과 감칠맛 성분이 녹아 나온 다. 온도와 시간을 어떻게 조절하고, 채소마다 다른 풍미의 강 약을 어떻게 맞춰주느냐에 따라 국물 맛의 차이가 크다. 각각의 채소를 넣는 시점과 조리방법에 따라서도 전체 풍미가 달라진 다. 고기 육수와 채소 육수를 언제 합치느냐도 중요하다. 채소 육수를 너무 오래 끓이면 풍미를 내는 방향성 물질이 대부분 날 아가 도리어 맛을 해칠 수도 있다.
- MSG로 대표되는 글루탐산은 대부분의 동식물성 식품에 존재한다. 그러나 국물 음식의 감칠맛을 내는 데는 글루탐산이 다가 아니다. 맛이 더 약하긴 하지만 아스파트산도 감칠맛을 내 는 아미노산 중 하나다. 핵산계 조미료로 불리는 이노신산, 아데 닐산, 구아닐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글루탐산과 힘을 합하면 글루탐산 단독일 때보다 수십 배까지 감칠맛이 증 가한다. 이노신산은 어류와 육류에 존재하며, 아데닐산은 갑각 류, 연체동물류, 채소에 들어 있다. 버섯에는 글루탐산도 많지만 감칠맛 증폭 효과가 강력한 구아닐산도 많다. 소고기와 버섯을 넣고 국을 끓이면 별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이 폭발 하는 이유다. 뜨거운 국물 속에서 재료는 분해되고, 향미물질을 서로 주고받으며 새로운 맛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국물 요리의 맛은 개별 재료를 아무리 오랫동안 입에 넣고 씹어도 느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층위의 맛이다.

- 2가지 불고기의 경쟁
역사를 뒤돌아보면, 불고기에는 치열한 2가지 조리방법 사이의 경쟁이 있다. 보통은 국물의 유무에 따라 나눈다. 등심, 안심 같은 연한 부위를 조금 두껍게 잘라 너비아니처럼 양념하 여 석쇠에 구워 먹는 옛 방식과 목심, 앞다리, 설도, 우둔 같은 더 질긴 부위를 육절기로 얇게 잘라 국물이 자작한 불판에 구워 먹 는, 현대에 더 가까운 방식이다.
하지만 진짜 경쟁은 불과 물 사이에 있다. 물이 조리에 얼마나 개입하느냐에 따라 화학반응이 달라진다. 가운데가 봉긋 솟은 형태의 불고기 판에 구울 때의 고기 상태는 숯불 위에서 석쇠를 돌려가며 구울 때와 비슷한 점이 많다. 불판 중심 부분 의 온도가 140°C에 이르면 당과 아미노산이 화학적으로 반응하 여 구운 고기 특유의 풍미와 갈색을 만들어내는 마이야르 반응 이 격렬해진다.
경사진 불고기 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물에 삶은 고기보 다 불로 구운 고기를 더 좋아했던 것이 틀림없다. 고기에서 흘러 나온 수분이 기울어진 불판을 타고 가장자리로 내려가므로, 고기 표면 수분의 양이 줄어들고 온도가 상승하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기 더 쉬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이사이 구멍이 뚫린 불판을 벌건 숯 위에 올린 경우는 석쇠로 구울 때 와 거의 차이가 없다.
반면에 전골냄비나 팬에 양파, 당근, 파를 듬뿍 올려 불고 기를 조리할 때의 화학반응은 다르다. 채소에서 흘러나온 수분 과 양념이 섞여 만들어진 국물이 빠져나갈 여지 없이 고기와 함 께 끓는다. 100°C에서 끓는 물의 속성 때문에 온도가 더 이상 높 아지지 않으므로 마이야르 반응이 훨씬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 물을 매개로 익는 국물 불고기에 '불맛'은 없다. 불고기라는 이 름이 무색하다. 국물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는 어찌 보면 불고기보다 '물고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음식이다.

- 구운 고기 먹어도 괜찮은가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처럼 남쪽에는 수분 없이 불에 굽는 방식이 건재한데, 서울에서는 왜 국물 불고기가 크게 유행 한 걸까. 더 저렴한 부위를 사용할 수 있으며 빨리 익혀 먹을 수 있다는 장점에 더해, 탄 고기와 건강에 대한 염려가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다.

- 덴마크 코펜하겐대 식품자원경제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영양학적 지식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나타나지 않는다. 당류와 포화지방을 적게,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는 게 건강에 좋 다고 생각하는 건,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이나 가난한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계층별 음식 선택에서 차이가 나 타나는 것은 누적된 경험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접해서 친숙한 음식의 맛을 더 높이 평가한 다. 아이가 처음 접하는 생소한 음식을 좋아하고 받아들이려면 최소한 8회에서 15회까지 그 음식을 경험해봐야 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려지는 음식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8 회에서 15회까지 버려지는 음식을 감당할 수 없다. 버클리대에 서 영양정책을 연구하는 케이틀린 대니얼Caitlin Daniel 박사는 음식 낭비를 우려하여 채소와 과일의 구매를 꺼리는 게 자녀의 입맛 형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 덴마크 연구에서 밝혀진 점도 비슷하다. 고학력·고소득인 경우 자라면서 채소와 과일을 접할 기회가 많으니 사람들의 입 맛도 그에 맞춰지고, 저학력·저소득인 사람은 가공식품을 접할 기회가 많으니 포화지방과 당류를 선호하는 입맛을 갖게 된다 는 추측이다. 덴마크 연구에서 고학력자일수록 소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저술가 하이드룬 메르클레Heidrun Merkle는 식탁 위의 쾌락 에서 오늘날 부유층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을 선택함으로써 사 회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영화 <기생충>의 다송이는 부잣집 아이지만 아직 어려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입 맛 차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한우 채끝살 짜파구리는 다송이 엄마가 그 경계선을 자녀의 마음에도 긋고 싶어 한다는 걸 보 여주는 장치다. 음식을 통해 그어진 경계선은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 코로 냄새 맡을 때와 입 속에 넣었 을 때의 풍미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들숨과 날숨 때 후각의 차이 때문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는 코로 들이마시 는 공기를 통해 그 향기를 인식한다. 전문용어로 정비측 후각 orthonasal olfaction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음식을 입에 넣고 씹을 때 방 출되는 향기는 입 뒤쪽에서 비인두를 타고 비강의 빈 공간으로 흘러들어 가며 냄새를 인식하므로 후비측 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라 고 부른다.
개는 정비측 후각이 발달해 있지만 사람은 후비측 후각이 더 중요하며 잘 발달한 감각이다. 음식을 먹을 때 추억이 떠오 르고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은 주로 후비측 후각 덕분이다. 와인을 마실 때만 들숨과 날숨의 향이 다른게 아니다. 짱구허니시나몬 볶음면도 그렇다. 들숨 때는 짱구 향, 날숨 때는 볶 음면 맛이다. 들숨 때는 재미있고 신기하지만 날숨 때는 먹을 만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달콤한 콘치즈 같은 냄새가 나지만 막상 입에 콘치즈면을 넣고 씹으면 스위트콘을 넣어 만든 수프 맛이 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 사실 채식에 대해 묘한 편견이 있다. 고기 대신 풀만 먹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달 은건 2001년 토론토에서 친구 자낙의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자낙의 고향인 인도 구자라트주에서는 전체 인구의 60~70%가 채식을 한다. 자낙 가족도 모두 채식을 했다. 하지만 간식으로 내온 음식은 곡물로 만든 튀김과자 몇 가지가 전부였다. 채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에 거의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풀밭이 그려졌지만 내 편견에 불과했다. 자낙 가족 이 주로 먹는 음식도 곡물이었다.
먹지 않는 음식을 놓고 보면 보통 식단과 채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공통으로 겹치는 음식이 훨씬 더 많다. 저명한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설탕과 권력에서 알곡이나 뿌리식물로 된 복합 탄수화물 주식에 맛을 내는 보조식품 또는 양념을 결합한 방식이 인간 식사의 기본적 양상이라고 단언한다. 마사이족처럼 예외가 있긴 하지만 농업 정착민이 세운 문명은 대부분 복합 탄수화물을 제공하는 식물 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인류 문화의 기초는 채식이다. 채식이 건 강이나 환경에 더 유익한가, 윤리적인가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기억해야 할 점이다.

- 비타민B12의 부족은 또 다른 문제다. 비타민B12는 동물성 식품에서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여서, 별도로 보충제를 복용 하지 않을 경우 일주일에 육류 섭취를 한 번 이하로 제한하는 세미베지테리언의 경우 정상치 이하인 경우가 20%에 불과한 데 반해 락토오보베지테리언은 47%, 락토베지테리언은 64%, 비건은 92%에 달할 정도로 정상치 이하인 사람의 비율이 증가 한다(미국 위스콘신대 1982년 연구 결과). 엄격한 기준의 채식일수 록 부족하기 쉽다는 의미다.
비타민B12는 간에 저장된 양으로 1~2년을 버틸 수 있으므로 갑작스럽게 결핍 증상이 나타나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악 성 빈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된장과 같은 발 효식품, 해조류에도 비타민B12가 들어 있긴 하지만 인체에서 흡 수해 활용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어서 별 도움이 못 된다. 비건 식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보충제나 영양강화 식품으로 비타 민B12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식단을 식물성 식품으로 제한하더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 의 종류는 다양하다. 채식이 주는 건강상의 이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좋기만 한 건 세상에 없다. 균형을 잘 잡아야 유익을 얻 고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 소비자가 못난이 농산물 구매를 기피하는 것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선택하는 순간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기신호효과self-signalling effecd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품 구매를 통해 내가 누구인 가에 대한 신호를 자신에게 보내게 된다. 고가의 자동차나 명품 가방을 구입하면 스스로 성공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처럼 이미지를 그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레이월 교수는 못난이 농산물의 판매를 촉진할 방법도 실험을 통해 보여줬다. 그냥 "못난이 농산물을 사세요"라는 문구만 있을 때보다 “당신은 정말 멋져요! 못난이 농산물을 사세 요”라는 문구를 놓았을 때 못난이 농산물을 선택하는 소비자 수 가 93.3%나 증가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문구가 있어서 못난 이 농산물을 사더라도 자기 지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아지고 긍정적 자기 이미지가 강화된 것이다.
그레이월 교수의 실험 결과는 <맛남의 광장> 방송 뒤에 못 난이 감자가 팔려나간 현상에 잘 들어맞는다. 전에는 못난이 감 자를 사면 그 순간 자신도 못난 것처럼 느껴져 기피하던 소비자 들에게 방송 내용은 “당신은 정말 멋져요! 못난이 농산물을 사 세요"라고 적힌 광고판처럼 작용했다. 못난이 감자 선택이 스스 로를 더 긍정적으로 보게 해준다면 못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한국식 중화요리의 불편한 진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풍미 원산지>를 보라. 광둥성 차오 산 요리만 해도 재료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양념게장부터 푸닝 된장, 말린 무, 해초, 날생선, 액젓, 어묵, 익모초까지 이어지는 요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기름에 볶고 튀기는 방식의 고열량 음식이 중화요리의 전부가 아니며 전통 한식에도 중국의 영향 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반도에서 중국 음식 하면 짜장, 짬뽕, 탕수육으로 범위가 좁아졌을까.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람을 빠뜨린 미식 담론은 공허 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식 중화요리는 누가 만든 것이며 누가 먹 는 음식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본래 세계 화교의 주류는 광둥성 또는 푸젠성 출신이며 중국 요리도 이들 중심이다. 반면 근대 한반도의 중화요리는 거리상 가까운 산둥성에서 넘어온 화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초창기 중국음식점은 중국에서 이 주한 화교를 주요 고객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고객 층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인천대 중국학술원의 이정희 교수는 화교가 없는 나라 에서 일제강점기에 세 종류의 중화요리점이 있었다고 설명한 다. 종업원이 20~40명 되는 고급 중화요리점, 그보다 규모가 작 은 종업원 2~10명의 중화요리음식점, 그리고 호떡집이다. 고급 중화요리점에서는 산동요리에 더해 북경요리와 광동요리 등 다 양한 고급 요리를 팔았고, 중화요리음식점은 우동, 잡채, 양장피, 만두를 주메뉴로 했다. 호떡집에서는 호떡만 판게 아니라 꽈배기, 계란빵, 국화빵, 공갈빵과 같은 중국식 빵을 팔았다.
이정희 교수가 책에 쓴 것처럼 "화교 중화요리점은 한국 식중화요리를 창조하고 조선과 한국의 외식산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한국의 중화요리가 기름지고 고열량에 채소는 부족한 음식인 것처럼 무시당할 때가 많지만, 중화요리에는 다양한 채 소가 많이 쓰인다. 과거 화교는 조선 주요 도시의 상업용 채소 재배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조선 화교는 오이, 가지, 파, 양배추, 토마토, 호박과 같은 다양한 채소를 집약적으로 재배했 다. 이들의 고향이 채소 재배의 오랜 역사를 가진 산둥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은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에 대한 차 별과 편견에서 비롯된다. 중국 음식의 범위가 좁아지고 중국 음 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편견이 생긴 것은 사람들이 중화요리음 식점에서 다양한 요리를 즐길 만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과도 관련되지만, 1960년대 말 한국 정부의 화교에 대한 규제 와 차별이 강화되면서 많은 화교 중화요리점 업주가 식당 문을 닫고 해외로 재이주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화교의 고향인 중국 본토와 한국 간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이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사회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함께 중국과의 교류가 다시 활발해지 고대림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신화교 사회가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양꼬치, 마라탕, 훠궈와 같은 새로운 중국 음식이 유행 하기 시작했다. 

- 간헐적 단식의 실제 효과
단식이 필요한 이유는 인슐린 때문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잘게 쪼개져 소화·흡수되는 포도당을 인체는 에너지로 쓰거나 또는 저장한다. 이때 세포 속으로 당이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있어야 세포가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인슐린에는 쓰고 남은 포 도당을 지방세포로 밀어 넣어 저장하는 효과도 있다.
배가 고파지면 처음에는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지방 세포에 저장된 지방을 꺼내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면 먼저 인슐린이 줄어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굶어야 한다. 반대로 간식을 하면 인슐린 수치가 떨어지기 어 렵고 그만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도 어렵다. 복부 지방을 줄이고 싶으면 최소한 10~12시간은 굶어야 한다는 말은 여기 서 나온 것이다.
이론은 그렇다 치고 실제 효과는 어떨까? 간헐적 단식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긍정적이다. 2015년 호주 연구팀 에서 40건의 연구를 모아서 분석한 결과 10주 동안 체중이 3~5kg 줄어든 경우가 제일 많았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다음 날 폭식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식욕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았다. 하루 굶는다고 해서 다음 날 2배를 먹는 게 아니라 평소보다 10~20%를 더 먹는 정도에 그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의 체중감량 효과가 기존 방식의 칼로 리 제한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이진 않았다. 2017년 미국에서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도 100명의 비만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간헐적 단식과 기존의 칼로리 섭취 제한 다이어트의 효과를 비 교해보았다. 그 결과 둘 다 평소대로 먹는 것보다는 낫지만 체 중감량 정도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섭취 칼로리 제한이 살 빼기 의 핵심이라는 명제에는 변함이 없는 셈이다.

- 흔히 닭고기를 백색육이라고 부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부위별로 색상이 둘로 나뉜다. 백색육이라는 명칭에 걸 맞은 옅은 색의 가슴살과 그보다 더 진한 색의 다릿살이다. 천적 을 피해 잠시 날아오를 때 사용하는 날개와 가슴살을 이루는 근 육은 짧은 순간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 딱 알맞다. 이들 근섬유에 는 지방을 태우는 장치가 들어 있지 않으니 주변에 지방을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닭가슴살에 지방 함량이 낮은 이유다.
반면 다릿살을 이루는 근육은 하루 종일 몸통을 떠받치 고 서 있거나 걷고 뛰어다닐 때 사용된다. 지구력이 필요한 이 들 근육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며, 또한 산소를 필요로 한다. 산소를 운반하고 사용하는 데 미오글로빈이라는 적색의 단백질이 사용된다. 이로 인해 단지 색상만 짙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과 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 한 풍미의 화합물은 다릿살을 무미에 가까운 가슴살보다 훨씬 풍부한 맛의 고기로 만들어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짙은 색 고기와 연한 색 고기는 맛만 다른 게 아니라 조리 특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 는 결합조직의 비율 때문이다. 닭,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 고기 의 연한 정도는 결합조직을 이루는 콜라겐의 함량에 달려 있 다. 다릿살은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만큼 튼튼해야 하므로 결합 조직 콜라겐의 비중이 높고 그래서 질기다.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녹여 연하게 익히려면 70°C 이상의 고온으로 비교적 장시간 조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는 가슴살이 버텨내질 못한다. 
- 거대 기업이 병아리와 사료와 동물 약과 기자재를 농가에 공급하고, 농가는 병아리를 키우는 위탁 사육비용을 기업에 지 급받는 방식의 수직계열화가 굳건히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어 딜 가도 작은 닭뿐이다. 프라이드치킨에 최적화된 어리고 작은 닭이 대세가 되면서 어떤 닭요리를 먹어도 닭고기 자체의 맛은 비슷해지고 말았다. 가슴살이나 다릿살이나 윙이나 맛과 조직 감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최적화라는 정답이 다양성을 죽였다.
작은 닭 일색의 프라이드치킨 시장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 아오고 있긴 하다. 15호 닭을 튀겨내는 치킨 전문점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15호 닭으로 튀겨낸 프라이드치킨의 맛은 어떨까? 좋고 나쁨의 문제를 떠나 큰 닭답게 부위별로 맛이 정말 다르다는 것과 둘이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 다. 그러나 큰 닭이 작은 닭을 대체하여 또 다른 정답으로 자리 잡는 식으로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의 중심이 9, 10 호 닭에서 15호 닭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닭고기 판매가 한 마리 기준에서 부분육으로 바뀐다고 해서 다양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답을 포기해야 다양한 답이 보인다. TV에 출연한 맛 전 문가는 옛날 씨암탉은 맛이 없었을 거라며 미식의 정답이 아니 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만, 진정한 미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요리 와 식문화의 꽃은 수많은 알을 낳고 폐계가 된 닭을 잡아 갖은양념으로 요리하여 내놓는 폐계 전문식당에서도 피어난다. 폐계는 못 먹을 음식이 아니다. 시골형 고기에 가까운 음식일 뿐이다.
도시에서는 순전히 고기를 먹기 위한 목적으로 동물을 사 육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동물 각각의 가치와 생산력을 최대 한 활용하고 돌보다가 최종적으로 고기로 활용한다. 소가 더 이 상 농사일에 도움이 안 되고 닭이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할 때에 야 도축하는 것이다. 겨우 한 달 사육해서 잡는 육계보다 18개월 이 지나 잡는 산란계인 폐계가 더 질기긴 하다. 하지만 바꿔 생각 하면 18개월 사육한 닭이 풍미와 씹는 맛은 더 좋다. 폐계는 요즘 맛보기 힘든 시골형 고기의 맛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식이다.

- 철분이 부족한 우유와 철분이 풍부한 팥이 만났으니 우유팥빙수는 환상의 궁합이며 최고의 건강식이라고 무릎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다 헛소리며 잘못된 상상이다. 음식 속 영양성분이 늘 사이좋게 우리 몸으로 들어오려고 춤을 추진 않는다. 서로 훼방을 놓다가 장을 타고 그대로 빠져나가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우유에 풍부한 칼슘은 팥 속의 철분(팥 자체의 폴 리페놀 때문에 흡수가 어렵다는 그 철분)이 흡수되는 것을 추가로 방해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있긴 할까? 혹시 후식으로 빙수 먹기 전에 미리 배에 채워 넣은 삼겹살을 잊으신 건 아닌지 (철분 함량과 흡수율에서는 붉은 고기가 최고다).
음식 속의 다양한 영양물질들이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며, 아무 상관 없이 따로 놀 때도 있지만, 우리가 식탁에서 그런 영양소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을 걱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배추김치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초 빙허각이씨가 엮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이르러서인데, 이 당시 배추김 치도 우리가 먹는 김치와는 차이가 크다. 일제강점기의 《조선무 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용기 지음)과 같은 조리서로 가면 김치의 조리법이 현대와 비슷해지지만, 닭고기, 꿩고기, 소 고기, 돼지고기 등의 다양한 고기가 재료로 사용되고, 국물로 설 렁탕까지 넣었다는 기록을 보고 있으면, 이게 대체 김치가 맞나 의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전통 식품의 상징 김치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게 고작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야 토마토가 이탈리아 음식의 상징 같지만,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신대륙 발견 전까지 토마토는 이탈리아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식재료이고, 지금처럼 토마토소스를 얹은 피자와 파스 타를 즐겨 먹은 건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는 치즈 또는 설탕과 향신료를 뿌려 먹는 파스타가 주류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토마토를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시간 이 걸렸던 것처럼 고춧가루가 김치 속으로 들어오는 데도 시간 이 걸렸다. 이수광이 1613년에 펴낸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고추 를 '남만초라는 센 독'으로 언급하면서 이것을 소주에 타서 마 시면 대부분 죽었다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말 먹고 죽 은 사람이야 없었겠지만, 생소하며 강렬한 매운맛을 내는 음식 이 독으로 느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침내 고춧 가루가 채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김치가 탄생하자, 그것은 한국 인의 맛이 되었고, 주류로 자리 잡았다.

- 시대에 따라 선물 세트도 변한다. 1960년대에는 설탕과 조미료, 맥주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라면과 칼국수가 들어간 선물 세트도 있었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심 지어 콜라도 선물 세트에 들어갔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 도 어린이를 위한 종합 과자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정육, 과일, 고가의 주류 선물 세트가 인기를 끌면서 선물 세트 에도 양극화 논쟁이 일어났다.
2000년대 이후, 건강과 체중 문제에 민감한 트렌드에 맞 춰 통곡물, 견과류, 올리브유를 선물하는 일도 늘어났지만, 채소 가 주류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세 유럽 귀족들만 과일은 먹고 채소는 천시한 게 아니다. 선물 세트를 놓고 보면, 우리도 채소를 뒷자리에 둔다. 과거 오랫동안 인류가 식량 부족에 시달 렸으며, 고열량 식품을 갈망했다는 사실이 우리가 주고받는 명 절 선물 세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실은 명절 자체가 살을 찌우기 위한 장치다. 미국 터프츠 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연말연시 휴일 기간에 사람들의 체 중은 평균 0.4kg이 증가하며, 이미 과체중인 사람들의 체중은 2.3kg이 증가한다. 불행히도, 이렇게 연말 휴일 동안 증가하는 체중은 1년 체중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하며, 매년 축적되어 중년 이후 과체중과 비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춘궁기를 걱정해야 하던 시절에야 연말에 살을 최대한 찌우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었으련만 새해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는 한숨거리만 더해줄 뿐이다.

- 돼지는 소보다 사육 기간이 짧아서 근육과 결합조직의 발달이 덜하며, 따라서 고기도 더 연하다. 돼지고기 부위 중에 서도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은 평범한 일상에서 고기 굽는 기술 없이 구워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이 보장된다. 이른바 지방의 보장 이론이다. 육류를 고온으로 조리하다 보면 너무 지나치게 익혀 근섬유 속 수분이 빠져나오고 이로 인해 질겨지는데, 지 방이 이를 늦춰주는 보호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지방이 풍부한 고기일수록 지방의 단열효과로 열이 천천히 전달되고 따라서 수분 소실과 단백질 변성을 막아 조리 뒤에 더 부드럽 게 느껴진다. 친구들과 떠들며 삼겹살을 굽다가 너무 바싹 익 히거나 편의점에서 냉동 삼겹살을 사다가 대충 구워 먹어도 크 게 실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 함량이 높은 고기일수록 구워 먹을 때 더 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은 그 밖에도 3가지가 더 있다. 단 백질에 비해 밀도가 낮고 씹을 때 저항이 덜한 지방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할수록 부드럽고 연하다는 부피 밀도 이론, 근내지 방이 고기를 씹을 때 근섬유와 근섬유 사이를 미끄러지도록 하 여 더 연하다는 윤활 이론, 지방이 주위 결합조직을 약화해서 덜 질기다는 변형 이론도 있다. 이들 이론을 실제로 검증하기 는 어렵고 지방 함량과 고기의 연한 정도 사이에 직접 관계가 없다는 일부 연구 결과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전문가 또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관능평가에서는 지방 함량이 높은 고기일수록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며 풍미가 좋다는 쪽으로 응답이 모인다. 삼겹살의 승리는 지방의 승리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인과 결과의 법칙  (0) 2024.02.04
나이가 든다는 착각  (2) 2024.01.28
음식으로 보는 미래과학  (2) 2024.01.24
다크호스  (2) 2024.01.14
오늘도 딴생각에 빠진 당신에게  (0) 2024.01.12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