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직한 삶이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며, 목적이 아니라 방향이다. (칼 로저스)
-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면, 웬만큼이라도 자유로워져라 (랠프 월도 애머슨)
-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칼 융)
- 가방을 푼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을 왜 들고 다니는지 찬찬히 되돌아본다는 것. 지금 소유하고 책임지고 있으며 관계맺고 있는 것들이 과연 앞으로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발목을 붙들어 매게 되지는 않을까? 가방을 다시 꾸린다는 것은 끝없는 재평가와 재창조를 의미. 우선순위를 정한 뒤 바람직한 삶의 조건들을 바꾸고,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을 되살리는 것. 우리가 믿어왔던 삶의 방식들이 앞길을 인도하기는커녕 걸림돌이나 족쇄가 되지 않게 하려면 가방을 다시 꾸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함. 가방을 다시 꾸리고 집을 나서는 중년의 발걸음은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는 젊은이보다 가볍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길은 가장 멋진 인생의 여정이 될 수 있다. 가방을 다시 꾸려본 사람들은 인생의 황혼기가 사실은 진정한 황금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언젠가 포브스가 출잔 75주년을 기념하여 '왜 우리는 그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불만인가?' 라는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거기 실린 유명한 저술가들의 글들은 모두 한가지 공통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뉴는 그들의 삶에 뭔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며, 그 빈자리는 세상의 어떤 신기한 발명품이나 재미있는 장난감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었다.
- 사람들은 행복이란 것을 마치 붙잡아서 새장 안에 가둬둘 수 있는 물건인 양 언제나 욕망의 잠자리채를 들고 다니며 허공을 휘젓는다. 그러나 행복이란 줄에 묶인 애완견이 아니라 어깨 위에 앉은 매와 같다. 주인은 매와 함께 할 수는 있지만 매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언제든 날아갈 수 있고 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행복은 원래 방랑벽이 있어 결코 붙잡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행복을 줄에 묶어 둔다면 그것을 시름시름 앓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다. 너무 꽉 껴안고 있으면 사랑을 느낄 공간조차 없어지듯이 행복 또한 자유롭게 돌아다닐 공간이 필요하다. 행복을 풀워줘보라. 그러면 당신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 성공하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겪는 비애는 자기만의 성공관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은 잘 포장된 행복의 이미지를 돈으로 사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왔다. 이것은 마치 피에로의 가면을 쓰면 자신도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 당신은 인생에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라. 당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당신의 삶에서 좋았던 것은 무엇인지,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하나도 못했고, 당신의 몸과 마음이 가고자 했던 곳은 한 군데도 가보지 못했다고 느낄 것이다. (조셉 캠벨, 신화의 힘)
- 삶이 무엇인지는 삶의 뒤편에서 봐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삶은 반드시 앞을 향해 살아나가야 한다. (키에르케고르)
- 융은 중년을 인생의 오후라고 했고, 이때야말로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자기모습을 내다볼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레빈슨은 자신의 개성과 인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제 날개로 날 준비가 된 성인기'라고 했다. 이때가 되면 우리는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 천직으로서의 직업(voaction)은 부르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vocare에서 유래. 자기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일이 곧 직업이다. 진정한 소명을 찾아가는 자기만의 여행은 평생을 통해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늘 자신을 새롭게 하고 내면을 파고들어야먄 조금씩 길이 열리는 이 여행을 두고 조셉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나팔이 울리고 커튼이 올라가면 무대 뒤엔 언제다 지난 허물을 벗고 새로운 몸으로 거듭나는 신비한 광경이 펼쳐진다 익숙했던 삶의 수평선은 저물어간다. 낡은 개념, 빛바랜 이상, 그리고 해묵은 감정의 틀은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이제 변화할 때가 온 것이다."
- 생의 절반에 이르러 자기 일, 자기 삶에 변화를 꾀할 때면 종종 이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단지 직업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 일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성의 문턱을 넘어 자신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 장인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무슨 일에 써야할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장인과 예술가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었다. 중세 사회에서는 화가나 조각가도 도자기공이나 직조공처럼 장인 길드에 속해 있었다. 화가면 화가, 목수면 목수, 그 사람이 하는 일과 살아가는 방식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이었다. 중세 사람들에게 직업이란 신을 발견하고, 신과 자신을 연결하기 위해 자기삶을 하나로 모아주는 수단을 의미했다. 공예는 말 그대로 아름답고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 혹은 궁극적으로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결코 혼자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같이 노력하고 결과도 함께 누나어 갖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장인길드의 회원들은 자기 작품에 이름을 넣지 않았다. 긍지나 명예보다 성취하는 기쁨, 그 자체에서 더 큰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는 아랑곳 없이 오로지 만들어진 결과만을 중시하는 오늘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자신의 직업을 통해 단지 금전적 만족만이 아닌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고 당연하다. 사람들은 내면의 갈증을 풀어내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 병이나 깡통, 신문따위를 재활용할 수 있는데, '나'라고 재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직업세계라는 이 변덕스런 바닥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재활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즉, 가지고 있는 가방들을 다시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 어느정도 고통이 따르긴 하지만 내적 탐험은 자신을 다시 설계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만약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면, 너희가 밖으로 끌어낸 그것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만약 너희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너희가 밖으로 끌어내지 않은 그것이 너희를 파멸시킬 것이다."(토마스의 복음서)
- 완벽한 직업은 삶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이며 존재의 상태다. 완벽한 직업이란 자신의 가치관에 가장 알맞은 환경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재능을, 자신의 관심을 가장 강렬히 사로잡는 일에 쏟아붓는 것이다.
- 완벽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그들은 자신의 욕구나 소망보다 더 원대한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자신들의 삶과 일을 어떻게 하면 그 원대한 계획에 맞출 것인가를 고민한다
* 그들은 내면의 나침반을 갖고 있어서 방향을 잃지 않고 언제나 삶의 목적을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
* 그들은 가장 소중한 것 두가지, 즉 시간과 돈에 대해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 놓고 있다.
* 그들은 잠재된 재능이 무엇인지, 아직 충분히 시험해보지 못한 자신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 그들은 난관에 부딪쳤을 때 탁월한 적응력을 보인다. 다시 말해 난관을 그저 삶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들이 지닌 풍부한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다. 그 에너지는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쉽게 전염된다.
* 그들은 뛰어난 영적 감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삶 안에 있는 자기보다 더 큰 어떤 힘을 느낄 줄 안다
* 그들은 어깨가 가볍다. 그래서 자신이 지고 있는 짐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 우리는 늘 경험하고 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이 어디에 있는지, 가끔은 계시처럼 들려올지도 모를 그런 경험을, 그것을 놓치지 마라. 그 축복이 훗날 무엇이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당신 스스로 당신의 깊이를 알아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세상을 정복하려는 욕망, 그 모든 욕망의 동기를 모두 한 냄비에 담아 끓여보면, 단 하나만 남게 됨. 바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다. 우리가 안달하고 만들어내는 모든 것, 우리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내뱉는 첫마디, 이 안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하나의 동기만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가족, 심지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이라도 우리를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짐을 꾸려 넣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그와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가방을 풀어야 한다. 마음과 영혼과 입을 열어 자신이 느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자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생각, 희망, 꿈, 그리고 욕망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두려움을 이기고자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 소유를 기준으로 삼는 삶은 존재를 기준으로 삼는 삶보다 자유롭지 못하다. (윌리엄 제임스)
- 내가 숲으로 들어온 것은 깊이 생각하고 살고 싶어서였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만 마주하고 싶어서, 삶이 내게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할 것들을 숲에서 혼자 살면서도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기에,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나의 삶은 산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월든)
- 이 세상의 혼란 중 대부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
- 부처도 지도를 남겼고, 예수도 지도를 남겼다. 크리슈나도 지도를 남겼고, 랜드 맥넬리도 지도를 남겼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 자신이 걸어야 한다. (스티븐 레빈)
- 사람들이 나이보다 더 빨리 늙고 삶의 생기를 잃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리처드 그렉은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삶을 정돈하는 것, 외적 혼란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삶의 주된 목적과 무관한 많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 성공이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갖는 사치를 누리는 것이다. (레온타인 프라이스)
- 사람들이 공허하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은 죽음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기에 꼭 해야할 일도 아주 쉽게 뒤로 미루게 된다. 내일의 준비와 어제의 기억 속에 갇혀 오늘은 언제나 잃어버리고 만다.
- 길을 잃었다면 당신은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르는데도 길을 잃었다는 명제가 성립될 수 있을까? 길을 잃었다는 것은 결국 목적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
-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자신을 발견하는 첫걸음이다. 길을 잃었다면 적어도 당신은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설사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 60세가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보면 항상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대부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두려움은 의미없는 삶을 산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내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주어진 것보다 내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건 아닐까? 갈데까지 내 자신을 던져보지 못한 건 아닐까?
- 관광객들은 그저 인생이라는 관광지를 발견해서 명단에 나온 장소만 둘러볼 뿐이다. 하지만 탐험가는 삶을 체험하고, 삶의 모든 것에 온 가슴과 머리를 다해 몰두한다. 둘의 차이는 결국 기꺼이 길을 잃어버릴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리게 성공하기  (0) 2018.05.01
내 머릿속 원숭이 죽이기  (0) 2018.04.30
판단의 버릇  (0) 2018.04.28
우리가 머무는 세상  (0) 2018.04.21
  (0) 2018.04.18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