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은 기본적으로 독자와의 대화입니다. 둘은 아주 조용 한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약간 어둑한 불빛의 나무 테이블이 있는 따뜻한 공간이죠. 내가 좀 더 말이 많은 상태고 독자는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 우린 우리가 쓰는 페이지 건 너편에 사람이 있단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문법의 철두철미함이나 표현의 기 발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중요하지만, 적어도 일하는 데 필요한 글에선 동료나 소비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게 먼저입니다.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소재와 제목을 뽑느냐는 차후의 문제죠.
- 사실 ‘기획을 하면 안 터지고, 대충 쓰면 터진다'는 말엔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기획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소리가 아니죠. 막 쓴 글이 터지는 이유는 특유의 생동감과 자연스러움 때문입니다. 썰을 푸는 듯한 흥미로운 스토리와 무겁지 않은 문체, 감정이 섞여 드러나는 인간미와 솔직함 등에서 매력이 태어나죠. 깊은 생각이나 논리보단 감정의 매듭으로 묶여 있는 말에 가까운 글'입니다.
기획한 글이 터지지 않는 건 기획의 잘못이 아니라 정확히는 '긴장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획해야 하는 건 글의 구성과 치밀한 개요입니다. 그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 적이 너무 강조되어서는 안 되죠. 회사에서 발행되는 글은 대부분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매출 증진이나 회원 유치, 고객 유입, 상품 소개 등이죠. 자세히 바라보면 모두 회사입장에서 이득이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글을 본 독자들은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글에 녹아 있는 욕심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책을 팔고 싶다면 '이 책이 정말 좋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하기보단, 그 책을 정말 맛깔나게 소개하 다가 너무 궁금해질 만한 지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스스로 찾아보게끔 하는 것이죠. 목적을 이루는 건 중요합니다. 그게 여러분이 글을 쓰는 이유이니까요. 우리는 그 목적을 어떻게 드러낼 지 고민해야 합니다.
- 아이러니하지만 대충 쓴 글은 터지지 않습니다. 새벽에 급하게 술 먹고 썼던 글들과 업무를 위한 목적으로 썼던 글을 구분 짓기 위해 쓴 말일 뿐,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3~4시간을 집중하여 단어를 조합해가는 과정은 언제나 치 열합니다. 글을 쓰기 전 기획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 이지, 늘 머릿속엔 관찰했던 풍경들과 메모가 있었을 것이 고 항상 생각하고 있던 무언가가 타이밍이 맞아 표출되었을 뿐이죠. 그 방식이 유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을지라도 투박함과 솔직한 매력이 부족한 기획력을 보완해준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예상과 다르게 글이 퍼져나간다면 그 것은 반드시 여러분의 내공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종 이에 쓰지 않았을 뿐 늘 기획은 하고 있었던 셈이죠. 저 또 긴장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장황함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어떤 종류의 콘텐츠 건 듣고 싶 은 말을 중심으로 해야 할 말을 녹이는 게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으며 중간중간 재미있는 농담을 한두 개 배치하는 건 오히려 글을 망치는 지름길이죠.
이런 실수를 상당히 많이 합니다. 좀 센스 있게, 재미있 는, 드립과 농담을 섞어서'라는 오더가 많은데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이 버려야 할 가장 큰 욕심 중에 하나입니다. 원래 글 자체가 가벼운 소재고 전체적인 톤이 개그스러운 느낌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글은 잔뜩 진지하고 정보는 복잡한데 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갑자기 농담을 던지는 건 좀 당황스럽죠. 글은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유기체입니다. 가벼운 톤의 농담을 던지고 싶다면 글의 서두에 살짝 배치하고, 에피소드, 주위환기, 본문 순으로 진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재미있게 쓰려고 애쓰지 맙시다. '이야기를 쓰려고 해야합니다. 너와 내가 똑같은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름과 생소함에서 오는 반전과 호기심이야말로 재미의 가장 큰 요소죠. 쓰는 여러분들 또한 나와 다른 세계를 엿보고 이해하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과감히 그리고 매우 자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단어에 노출되길 바랍니다.
- 글을 쓰는 손은 무언가에 점점 익숙해지지만, 세상은 꾸준히 변합니다. 시대에 따라 관통하는 문체와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엔 ‘무언가에 미쳐라, 공부해라, 도전해라, 아껴라, 독기를 품어라'는 식의 다소 강압적인 문체가 인기였다면 4~5년 전쯤부턴 '괜찮아, 힘내자, 네가 옳아'라는 위로의 문장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2~3년 전엔 심화된 사회 갈등 양상을 대변하듯 한쪽 입장에서 변을 토하는 사이다 발언이 유행했습니다.
- 글쓰기가 점점 쉬워지고 익숙한 패턴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 좋은 신호이지만, 숙달’과 ‘성장’은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게 숙달이라면 정해진 패턴을 계속 반복하며 소위 '손버릇'을 최대 강점으로 만들어야겠지만 성장을 원한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익숙함에 질문을 던지고, 눈에 담긴 풍경을 부술 용기. 펜의 예리함은 여백의 고요함을 깨고, 통념의 단단함을 파고듭니다. 태도는 굳건히, 손은 유연하게 해봅시다.
- 단락 쪼개기는 논리적인 흐름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한 단락을 다섯에서 일곱 문장 정도로 구성하고 화제가 바뀌거나 그러나, 그런데, 하지만, 반면에, 예를 들어' 등 의 역접 접속사나 부연 설명 단락이 시작될 때 줄바꿈을 해주세요. 특히 디지털 콘텐츠는 모바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단락이 너무 길면 집중도가 굉장히 떨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단락이 쪼개지는 부분에 소제목을 붙여주거나 색깔, 굵기 변화 등의 시각적 효과를 더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만, 기울임이나 밑줄 등 가로선을 활용한 방 식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좀 어지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폰트 크기는 본문은 모두 일정하게 유지하고, 대제목/중제목 부분만 일정한 규칙에 의해 크기를 달리합니다. 소제목은 보통 크기 변화 없이 굵기만 달리해서 적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따옴표나 괄호, 각주의 사용은 가급적 지양합니다. 특히 괄호는 웬만하 면 안 쓰려고 하는데, 쭉 읽는 도중에 괄호가 나오면 다시 앞 단어를 확인해야 하거나 괄호 앞뒤 단어를 이어야 해서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괄호로 덧붙여 설 명해야 하는 개념은 가급적 본문에 미리 풀어서 쉽게 설명 해주고, 출처표기 등은 본문이 아닌 글 하단에 작게 표기해줍니다.
- 월터 옹(Walter Ong)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따르면 글은 소리의 세계와 뗄 수 없습니다. '사과'라는 단어는 말로 하든, 글로 쓰든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글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 말은 글로 쓸 수 있습니다. 문자가 생기면서 말과 글은 서로 교환 가능한 표현 수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월터는 '기록과 연구'의 측면을 덧붙입니다. 연구나 학습과 같은 높은 차원의 사고에는 글이 다소 유리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보를 나누거나 나열하고, 분석하는 등의 행위에선 쓰고 읽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공감 하기 쉬울 겁니다. 이 말은 글이 더 우위에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글과 말은 서로 다른 역할이 있는 셈이죠. 
글은 기본적으로 능동적인 독자의 개입을 허용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치거나 옆에 적을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같은 문장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독자의 개입과 정보의 위계를 더 고려합니다. 해석과 맥락에 특화되어 있 습니다. 했던 얘길 반복할 수 없고, 독자의 반응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문장을 전개함에 있어 맥락이 매우 중요해지죠.
반면 말은 화자와 청자 간의 시간차가 없죠. 말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습니다. 청자는 화자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그의 정보에 집중하게 되죠. 말하는 사람은 청자의 집중력과 분위기를 움직입니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반복을 통해 자극을 주고,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 싶으면 바로 바로 바꾸거나 덧붙일 수 있죠.
콘텐츠를 만드는 여러분은 이러한 말과 글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둘의 차이가 극명하다고 해서 글의 특징인 맥락과 위계만을 고집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 일단 퇴고의 기본은 보고 또 보는 것입니다. 보통 글을 쓸 때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저처럼 뭔가 감이 왔을 때 끝까지 쭉 써 내려가는 일필휘지 스타일이 있고,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하면서 쓰는 장인정신 스타일이 있습니다. 당연히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순 없습니다. 다만 둘 다 장단점은 존재합니다.
먼저 일필휘지로 쓴 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감정과잉입니다. 필자가 글에 매몰되는 것이죠. 글에 감정이 너무 차고 넘치면 주장이 강해집니다. 그리고 논리가 깨질 염려가 높습니다. 마치 술에 취해서 친구에게 울부짖는 목소리 와도 같죠. 글에 감정이 담기는 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글의 본질은 '전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받는 사람의 감정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에 흥분을 고스란히 담는 것이 아니라 흥분의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본적으 로 쓰는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이죠. 반면 장인정신 스타일은 너무 고민이 많은 나머지 호흡이 끊길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을 쓰고, 한참 고민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이 문장에 묻어납니다. 문장마다 색깔이 달라질 수 있죠. 글을 크게 보지 않고 문장 단위로 끊어 생각하 기 때문에 맥락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높습니다. 더불어 글 하나를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완성까지의 시간이 꽤나 길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 다. 업무로써 글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무척 큰 리스크죠. 
여러분이 어느 쪽이든 퇴고는 필요합니다. 퇴고란 기본적으로 초고의 완성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일 필휘지형이라면 전체의 감정과 논리를, 장인정신형이라면 문장 간의 맥락과 톤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겠죠. 이 점을 고려해두고 퇴고를 시작해봅시다.
- 다음은 접속사나 조사, 전치사, 번역체, 외래어 등의 사용을 체크합니다. 불필요한 단어들을 정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아지면 단어가 추상 적으로 변하거나 번역체가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주어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건만을 생각하다 보니 자꾸 피동문이 등장하는 것이죠. 육하원칙이 무너졌을 때 자주 발생합 니다. 뺄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은 최대한 빼줍니다. 여기서 '어렵다'의 기준은 여러분의 글을 읽는 독자의 지식 수준 보다 좀 더 쉽게 잡도록 합니다. 피동문은 능동문으로 바꿔 주고, 외래어는 가급적 우리말로 씁니다. 번역체 중에서 ~ 에 대해’, ‘~를 통해’, ‘~에 관하여'와 같은 전치사 번역체들 은 특히 조심해주세요. 흐름을 해치고 읽는 속도를 떨어뜨 립니다. 속독이 힘들어지면 글은 지루해집니다. '등, 및, ~것, 의' 등의 조사나 부사들도 최대한 삭제합니다. 호흡을 딱딱 끊는 단어들입니다.
- 기억되는 글의 핵심은 꼼꼼한 정독'이 아닙니다. 모든 정 보는 선택적 인지 과정을 거칩니다. 아무리 눈에 잘 띄게 큰 글씨로 적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한계가 있죠. 우리의 목표는 '기억해야 할 것만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 장 최악은 '엉뚱한 것만 기억하는 상태입니다. 때문에 이런 종류의 글은 설계에 가깝습니다. 기억하게 만들어야 할 정보를 선택하고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상위 단계로 올리고, 문두에 배치하고, 주어를 독자로 바꾸고, 행위를 강조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보세요.
- 무게감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어려운 단어를 쓸 필요는 없 지만, 단어를 쓸 땐 적확한 단어를 쓰셔야 합니다. 애매한 단어들은 가급적 피하세요.
예를 들어 간주된다, 여겨진다, 보여진다, 생각된다' 등 의 주관적인 어미들. '가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추 상적인 단어. 명징한, 핍진성, 경세적, 징구'와 같은 비일상 적이고 어려운 단어들이죠.
특히 '패러다임, 알레고리, 에피스테메, 디아스포라' 등과 같은 복잡한 개념을 사용할 땐 정확한 뜻과 문맥 간의 관계 를 꼭 살펴보셔야 합니다. 이런 단어들은 다양한 철학적 의 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하나의 의미로 쓰이지 않습니다. 일 반적인 사전적 정의로만 쓰기에 함축된 의미들이 묵직하죠. 예를 들어 '에피스테메’와 같은 단어는 플라톤이 주장한 뜻과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언급한 뜻이 각각 달라서 자칫 오해를 부르거나 괜히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 이 단어를 설명하면서 뜻을 설명해드려야 하나 고민을 잠시 했는데 이 뜻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간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멈칫했습니다.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단어들은 오히려 여러분들의 글을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정확한 글을 쓰려고 하는 거지 어려운 글을 쓰려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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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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