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 활동가들은 자제하자고 외친다. 소비를 조금 줄이거나 '바이오' 표시가 붙은 제품을 구매하자는 뜻이다. 결국 지금과 똑같이 살자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 하고 전국 곳곳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전혀 다른 형태의 '모빌리티'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필요한 자원은 어떤 식으로 채굴해야 하는지 (또 충 분한 양의 자원이 얼마나 오래 공급되고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아야 할지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말이다. 효과적인 기후정책을 세울 때 중요한 조건은 항공 여행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되 가족 여행을 막을 정도로 비싸면 안 된다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을 올리지만 차를 세워둘 정도로 높으면 곤란하다. 우리는 지금처럼 일상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다. 단지 조금 더 녹색으로, 더 비싸게, 또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더 느낄 뿐이다.
이로써 대답을 대신할수 있을까?
- 독일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나무와의 관계는 각별하다. 우리가 어느 정도) 기독 교화되기 전만 해도 게르마니아 땅에서는 거대한 나무가 신성 한 존재로 숭배되었다. 조상들에게는 '위그드라실', 즉 우주수(우 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옮긴이)가 세상의 중심이었 다. '라타토스크'라는 이름의 다람쥐 한 마리가 위아래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메시지 전달자 역할을 했다. 물론 크리스마스트리도 빠질 수 없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나무 앞에 경건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놀랍지 않은가? 각종 동화와 신화도 떠올 려보자. 비록 야생의 존재가 사는 곳이지만 거기서도 숲은 문명 의 도피처로, 동경의 장소로 찬양받는다.
- 자연은 어머니가 아니다. 암 역시 자연이고, 가장 유독한 물질도 자연물질이다. 자연은 혼자 힘으로 살아남고자 경 쟁자를 죽이고 배척하는, 도덕과는 무관한 영역이다. 우리의 친 구인 숲조차 냉혹하기는 마찬가지다. 빛과 생활 터전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무자비한 싸움이 일상다반사다. 엉켜 있는 이웃 나무들에게 가는 햇빛을 가리고 치명타를 입힌다. 자연은 작고 힘없고 여린 것들은 죄다 쓰러뜨려 버린다. 어린 노루들은 숲에 오면 가장 싱싱한 나뭇잎부터 갉아먹는데, 새로 자라는 어린나 무들이 첫 희생양이 된다.
자연은 냉혹하다. 흔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고 부러 움을 사는 이들이 정작 누구보다 그런 면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위대한 작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 (19세기 초 프랑스의 사상가옮긴이)는 자연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자연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라 고, 이른바 자연인을 보라고 말한다.
자연인은 먹고살려고 죽이고, 몸에 걸칠 것을 구하려고 죽인다.
- 하프에서 마법 같은 소리가 나게 하려고 양의 배 속에서 창자를 끄집어내고, 아이들 장난감을 만들려고 코끼리의 상아를 잘라낸다. 자연인의 식탁은 온통 시체투성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미화하기 좋아하던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 맨들이 들판에 불을 지르고, 사냥하거나 가축 떼를 방목할 터전 을 마련하고자 지역 전체를 불사르는 등 예로부터 무자비한 짓 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산업혁명과 함께 비로소 동식물 서식지가 파괴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착각이다. 자연 친화적이었다는 우리 조상들은 명백한 환경파괴자였다. 태곳적부 터 인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급속도로 종의 멸종이 이루어졌 다. 그리고 일찍이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인들도 단일작물 재배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인류가 언제부터 광기 어린 파괴를 일삼기 시작했는지는 불 분명하다. 안타깝지만 아주 오래전, 대략 1만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되는데, 인류가 수렵채집꾼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기로 결심 하고 정착하게 된 시점이다. 이 같은 농업혁명은 인류사의 위대 하고도 불가역적인 전환점으로서 인류의 생활을 완전히 새롭게 규정했다. 이때부터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고 자연에 맞 서 생활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연을 수탈하고 길들이고 지배 하기 시작했다.
- 오늘날 호사스러운 삶은 '로하스LOHAs', 즉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삶의 방 식)'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사회 정책적으로 비주류 단체들의 독 차지였던 생태학이란 주제가 어느덧 도시 엘리트를 구별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물론 쾌락주의의 뒷맛이 거기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바른 양심을 곁들여 - 내 행복만이 최우선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종종 욕을 얻어 먹곤하는 고상한 환경주의자들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할리우드의 골칫거리들이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타고 에너지 절 약 램프를 사용하고 탄소상쇄기금에 기부하는 행위를 통해 클라 우디아 로트Claudia Roth (독일 녹색당 정치인-옮긴이) 같은 정치인들 이 수십 년간 행한 연설보다 친환경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에 훨씬 더 이바지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두려움을 느끼라는 잔 소리를 끊임없이 듣기보다는 녹색 삶을 살면서도 삶을 즐길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편이 훨씬 좋아 보인다. 일론 머스크는 그 점을 이해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에코 라이프스타일은 매 력적이어야 하고, 이제는 포르쉐보다는 테슬라를 모는 것이 더 쿨하게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기후 논쟁이 불러일으킨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은, 때 로 도를 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제공되 는 무한 리필식의 광기 어린 소비와 차별화되는 생활 방식을 실 현할 적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양심을 달래주는 미봉책에 안주하지 않고 삶 전반에 걸쳐 진정한 사고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방문한-F. X. 마이어의 이론을 따르는 요양소에서도 장청소(글라우버염과 비슷한 물질이 들어 있는 끔찍한 아침 음료의 도움을 받아)를 주요 원칙으로 삼아 하루 일과를 진행했다. 그럼 확실히 하루 이틀만 지나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다. 마이어와 부힝거 에 따르면 소화관이 비는 순간 우리 몸은 저장된 지방을 갉아먹 는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음을 깨닫는 순간 제 몸에 있는 영양분 을 섭취하는 것이다. 여러 날을 차와 물만 마시며 음식을 완전히 끊는 극단적 단식을 하면 얼마 뒤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 다. 뇌에서 어서 당분을 달라고 하는데, 체내에서 쉽사리 에너지 를 구할 수 없게 된 우리 몸은 까다로운 뇌를 위해 지방을 케톤체 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 결과 정신적 각성 상태와 쾌감을 느끼며 단식의 황홀경에 빠진다. 그럴 때는 몸속에서 왠지 모를 힘이 솟 는 기분이 든다. 이 단계에서 나는 산으로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고 나중엔 더 이상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상태로 해지 기 전에 겨우 하산할 수 있었다.
- 요시노리 오스미는 매일 16시간 동안 음 식을 섭취하지 않을 때('간헐적 단식') 몸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일 어나는지를 밝혀낸 공적으로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세포가 깨끗이 청소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데, 구글 검색을 통해 이를 지칭하는 '자가포식autophagy'이라는 전문용어를 만날 수 있다. 영양분 공급이 지체되면 우리 몸은 세 포 내에서 오래전 밖으로 내보내고자 했던, 결함 있는 단백질을 우선 사용한다. 이런 식으로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와 활성산소로 손상된 단백질이 배출된다. 단식이 시작되고 2시간에서 14시간이 지나면 이미 이런 정화 작용이 시작된다고 한다.
- SUV는 고상한 기원을 갖고 있다. 원래는 영국 귀족을 위해 만들어진 차였다. 도시 외출용 차량을 따로 두고 싶지 않았던 귀족들은 사냥한 꿩 같은 짐승이나 사냥개를 싣는 용도로 주중에 사용하던 차량을 몰고서 도시 나들이에 나섰다. 1980년 대 런던에서는 진흙과 오물이 묻은 채로 첼시와 벨그레이비어 지역에 주차된 레인지로버가 특별한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런 차량은 그 소유자가 도시에 제2의 주택을 소유한 귀족 지주 임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러자 이웃의 신흥 부자들이 곧 이들 을 흉내 냈다.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새로운 레인지로버 소 유자들은 귀족 지주인 이웃과 보조를 맞추고자 고용인을 시켜 자신의 차량에 진흙을 바르게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는 너도 나도 이런 차량을 몰기 시작하면서 오래된 신분 상징들에서 흔히 보듯-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그러므로 지 금 우리는 '교통수단의 전환' 같은 사업에 나서기보다 먼저 SUV 차량부터 도시에서 몰아낼 필요가 있다. 비싼 이용료를 부과하는 조건에서만 개별적으로 예외가 허용되어야 한다. 또 다른 조건도 필요하다. 안전 삼각대와 안전조끼를 의무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트렁크에 죽은 꿩을 한 마리씩 싣고 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 어쨌거나 '모빌리티'를 반드시 차량 소유와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 물론 개인에게 판매되는 자동차는 계속해서 생산될 것 이다. 하지만 그것은 럭셔리카 같은 틈새시장 상품이거나 대중 용일지라도 지금까지 알던 차와는 다른 아주 미니멀하고 무난 한, 순전히 실용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둔 일종의 운전용 컴퓨터 기기의 성격을 띨 것이다. 전기자동차 시장의 주요 기업인 지리 자동차가 다임러 벤츠와 조인트벤처를 맺어 2022년부터 중국에 서 양산할 차세대 '스마트' 차량도 이런 경우다.
재미있는 점은 스마트 차가 신모델을 통해 자신의 원래 뿌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스위스의 천재적 선구자 니콜라스 하이에크 Nicolas Hayek가 발명한 원조 스마트 차는 자동차에 대한 기존 관념을 혁명적으로 뒤바꿀 의도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를 구상할 무렵, 하이에크는 연료 절약형 친환경 초소형 차만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자동차 대기업이 철판과 알루미늄 대신 서비스나 수리를 포함해 운행 한 킬로미터 수만큼 돈을 내는 '모빌리티'를 고객에게 판매해야 한다는 비전을 품었다. 그리고 하드웨어는 회사 소유로 남아 차 량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그 당시에 하이에크는 이미 부품을 회수해 완전 재사용하는 가능성을 논했다. 따라서 애초 '스마트' 모델의 각 부품을 용접하지 않은 채 접착해 만들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5년 정도 사용한 후 - 농담이 아니다- 효소에 푹 담가 접착제가 용해되면 부품들을 새로운 차량 제작에 쓰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하이에크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차량이 아닌 모빌리티를 판매한다는 그의 비전은 30년 전만 해도 허황된 꿈 으로 비웃음을 샀지만, 이제는 어엿한 현실이 되었다. 예전에는 자가용차를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각자 취향껏 '리틀트리' 방향제나 코바늘 장식물로 차를 꾸미곤 했다. 하지만 이젠 '공유 모빌리티'가 당연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혁신에는 종종 오랜 시 간이 걸리지만 일단 혁신에 성공하면 누구도 이전의 상황을 기 억하지 못한다.
- 항공 로비를 펼치는 쪽에서는 비행 금지 조치나 정당한 세금을 피하고자 '오프셋 offset'이라고도 하는 마법의 단어 '탄소 상 쇄'를 들먹이곤 한다. 그 취지는 비행마다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1톤당 추가 요금을 매겨 이 돈을 아트모스페어Atmosfair (항공 여행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탄소 상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독일의 비영리단체-옮긴이)나 마이클라이밋Myclimate(기후보호 프로젝트를 지 원하는 스위스 기반의 비영리단체 - 옮긴이) 같은 비영리단체에 전달 해 제3세계 기후 보호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일이 확인이 어려운 데다 이 같은 프로젝트의 대다수가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특히 열대우림의 벌 목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들이 비판을 받는데, 장소만 바꿔 벌목을 계속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예약할 때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자발적으로 지불하는, 비행기 티켓 값을 상승시키는 그 기부금은 인증서 거래라는 번창하는 신흥 사업 분야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 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우리 덕분에 일부 약삭 빠른 장사꾼들이 삽시간에 갑부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탄소 상쇄라는 도덕적으로 수상한 면죄부를 사는 꼴이다. 그 목적은 높은 구매력을 가진 인간의 양심을 달래는 데에 있다. 이 제 사람들은 전처럼 끊임없이 세계 곳곳을 제트기로 돌아다닐 수 있다. 면죄부를 산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둘러 카리브 해로 떠나는 다음 비행편을 예약한다. 아트모스페어 같은 단체 들은 문명적 전환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부유층의 잦은 제트기 여 행에 사회적 면죄부를 발행한다. 이런 논리라면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처럼 헬리콥터나 호화 요트만으로 이동해도 아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우림 한 조각을 사들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답은 간단하다, 적게 구매하라
그런 패션업계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디퓨저 스틱 향이 코를 찌르 는 공정무역 가게에서만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는 사안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가령 H&M은 자사 제 품에서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 라벨이 붙은 바지를 자주 입는다 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방글라데시에서 오랫동안 독일 대사 로 지낸 지인이 최근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서구권 국 가의 의류공장들이 수십 년 동안 선의로 이루어진 원조 정책보다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방글라데시에 끼쳤다. 서구의 노동자 보호 정책과 노동권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권리를 몰랐던 나라들에 수출한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소득 증가 혜택을 톡톡히 누렸는데, 합리적 가계 관리에 능한 여성들이 아동, 교육, 건강관리 등에 지출을 늘린 덕에 지역 전체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따라서 패션업계 전체를 싸잡아 환경범죄자로 몰아가는 것 은 불공평하다. 저임금 국가에서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의류업계 를 비난하는 것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상은 훨씬 복잡하면 서도 동시에 아주 간단하다. 팔리는 만큼 제품도 생산하는 법이 다. 인디텍스 같은 대기업은 필요한 물량만큼만 생산하도록 하 청업체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 사실상 온디맨드on-Demand, 즉 수요 중심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자라와 H&M은 각 라인의 수요에 맞춰 생산을 조정한다. 그러니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적게 구매할수록 생산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 스마트폰으로 10분 정도 동영상을 보면 2,000와트짜리 전기오븐을 5분간 최대출력으로 가열하는 만큼의 전기가 소비된다는 사 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었는가? 또 스마트폰 한 대를 생산할 때 60킬로그램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사 실은? 구글 검색 한 번에 0.2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데, 2019년 통계에 따르면 1분당 380만 건의 검색이 이루어지면서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구글 검색이 1분당 760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한다는 사실은? 가전제품 중에서도 빨래건조기와 식기세척기가(냉장고와 세탁기가 그 뒤를 잇는다) 가정 내 에너지 낭 비의 주범인 만큼 손과 솔로 설거지를 했던 미풍양속을 되살리 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빨래를 말릴 때도 건조기 사용을 피한 다면 전기 소비를 확 줄여 행복한 북극곰이 재주를 넘을지도 모 른다는 사실은?
당신이 TV를 살 때는 4,000가지 화학약품이 들어 있는 상자를 사려는 것이 아니다. TV를 시청하고자 할 뿐이다. 따라서 1만 시 간 동안 시청할 권리를 구매하고 이후에는 생산자에게 반환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 부품 재사용이 가능해 경비 절감이 가능 하다면 생산자는 제품 회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물론 생산자에게는 보관과 재활용에 따른 큰 책임이 생긴다. 바로 그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닐까? 브라운가르트는 “이런 시스템 이 완전히 정착되면 위험한 폐기물이 배출될 일도 없고, 기업은 자원을 적게 소비하고 제조비를 엄청나게 절약할 것"이라고 말 한다.
- '요람에서 요람으로 원칙은 산업생산 전반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브라운가르트가 정신병원으로 가 거나 10년 뒤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서 모든 제품이 C2C 원칙에 따라 생산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활용가 능한 재료로만 만들어진 핸드폰, 즉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핸드폰을 생산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브라운가르트는 단 언한다.
- 플라스틱의 최대 장점은 썩지 않고 오래간다는 것인데, 이는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의 분해 기간은 두께와 밀도에 따라 다르지만 500년부터 2,000년에 걸쳐 있다. 1909년 2월 5일 뉴욕 화학자클럽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까 지 83억 톤가량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었다. 이 중 63억 톤 정도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대부분 바닷속에 있다) 서서히 분해되는 과정 에서 독성물질과 가스를 내뿜으며 인간의 먹이사슬에 유입되고 있다.
해양 쓰레기 청소에 앞장서는 비영리단체 오션 클린업 Ocean Cleanup의 프로젝트 같은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 다. 무수한 쓰레기가 끝없이 밀려드는 현실은 마치 부엌이 물에 잠기는 상황에서 수도를 잠그는 대신 걸레로 바닥부터 닦는 것 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200년 전까지는 쓰레기란 말조차 낯설었다. 늘 모든 것을 재활용했던 시골에서는 어차피 쓰레기란 게 있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도시인들은 무조건 내다 버려야 하는 것을 '운라 트Unrat(독일어로 '쓰레기, 오물'이라는 뜻옮긴이)'라고 불렀는데, 이 를 처리할 때는 지극히 속된 방식을 동원했다. 즉 창밖으로 쏟아 버리거나,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을 쓴다면 분뇨구덩이에 버리는 식이었다. 뮌헨에는 수백 년에 걸친 아주 특별한 쓰레기 처리법 이 있었다. 이른바 '달리는 돼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도시 전 역에 돼지들을 풀어 쓰레기를 먹어 치우게 한 것이다. 돼지들이 뮌헨 시민들의 쓰레기를 먹어 치우고 나면 시민들은 나중에 그 돼지를 구워 먹거나 소시지로 만들어 먹었다. 가히 순환 경제의 모범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 들어 도시가 커지고 조밀해지면서 뒤뜰에 있던 퇴비더미와 분뇨구덩이도 사라지고, 쓰레기 처리 문제를 두고 고민도 깊어졌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쓰레기는 주로 분뇨를 뜻했고, 그 뒤처리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부터 독일 대도시에 하수도 망이 갖춰졌고,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분뇨 비 료 공장이 생기면서 인간의 배설물을 가루로 만들어 농사에 거 름으로 썼다. 합성수지가 발명되기 전만 해도 가정 쓰레기는 오 늘날 유기 폐기물이라 불리는 먹다 남은 고기와 채소, 재로 이루 어진 미세 폐기물 등이 대부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말 전 국민을 위한 번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폐기물을 둘러싼 상황도 돌변했다. 급증하는 쓰레기는 도시계획가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합성수지의 대중화 는 처음으로 포장재 쓰레기라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에 도시 당국은 대형 쓰레기차를 투입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정용 쓰레 기통을 늘리고 쓰레기 소각을 통해 폐기물을 발전소와 공장 원 료로 사용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다시 말해 지하수로 스며든 유해물질이 유독가스를 발생시킬 수 있어 오래된 광산 등지에 폐기물을 쏟아버리면 위험함을 이미 깨달은 것이다. 플라스틱 덕분에 쓰레기는 여기저기서 탐내는 재화가 되었다. 지난날 가연 물, 분뇨, 재, 깨진 조각, 헌 옷 등에 국한되었던 쓰레기가 이제는 인기 좋은 연료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렇다.
- 집에서 요구르트 용기를 깨끗이 세척하고(폐기물 수거 규정에 따라 "잔여물을 없애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내용물을 완전히 비우 고), 플라스틱병을 노란 비닐봉투에 담아 배출할 때 우리는 그렇 게 버린 플라스틱 컵에서 수많은 작은 플라스틱 컵이 새로 태어 나리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의 경우-유리를 재생 하는 오래된 방법을 일컫는 '재료 리사이클링'이 번거롭고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연료로서의 수요도 높은 편이다. 현재 사용되는 포장재는 재료 리사이클링이 어려운데 (이 자리를 빌려 테트라팩을 발명한 라우싱 씨에게 인사드린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고 이렇게 혼합 성분이 많을수록 재분리 작업도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스틱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근대의 발명품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 기후변화에 맞서서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단연 효과적인 조치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에 따르면, 식단의 변화다. 고기를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예전 식습 관으로 돌아가 고기 섭취량을 줄이되, 고기를 먹을 때는 되도록 야생동물을 먹자고 약속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크랜베리 와 붉은 양배추를 듬뿍 곁들여서 일요일 하루만 먹는 것이다. 적 어도 야생동물들은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전까지는 삶이란 것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닭과 칠면조, 소, 송아지, 돼지는 대 부분 그런 행운조차 누리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 미세먼지가 이토록 위험한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울름 폐질환센터의 저명한 호흡기내과 의사 미하엘 바르초크Michael Barczok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세먼지 입자는 워낙 작아서 코와 기도 등에서 유해물질을 막 아주는 일반적인 필터를 쉽게 통과한다. 폐포의 벽도 미세먼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얇은 막을 쉽게 뚫은 미세먼지 입자는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뒤쪽 혈관으로 들어간 다. 혈액에 스며든 입자는 무임승차자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혈관 벽에 달라붙는다. 거기서 서서히 염증을 유발하고, 염 증 부위 주변으로 콜레스테롤 결정체가 쌓이면서 혈관이 서서히 좁아진다.
- 바르초크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해도 이 같은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스모그가 심해지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사망자 수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들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연구를 통해 심장 및 혈액순환 관련 질병과 미세먼지 사이의 연관성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름 0.1μm 미만인 초미세먼지 다. 바르초크는 검댕처럼 잘 알려진 유해물질이 공기 중에 떠 있 을 때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언급한다. 이는 미세 먼지가 더 큰 입자들과 결합해 덩어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르 초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코와 기관지에 있는 필터 시스템은 이런 큼직한 유해물질에 대처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전에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저녁에 집에 오면 크게 기침을 하고 코를 풀 어 새카만 콧물이 빠져나오게 했다. 우리 몸에는 그런 유해물질 을 막아주고 재배출하는 놀라운 시스템이 있다. 다만 초미세먼지 는 너무 작은 탓에 이런 필터마저 모조리 통과하는데, 일시에 쏟 아지는 운석처럼 폐포까지 돌진해 장기 내부에 쌓이면서 비로소 그 움직임을 멈춘다.
- 초미세먼지는 앞서 말한 심장 및 혈관 질환을 비롯해 암과 치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및 폐암 같은 중증 폐 질환 등 우리 가 겪는 문명병의 주범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우리 몸이 비소, 납, 카드뮴 같은 물질의 지속적인 침투에 대항할 때 이것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 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미세먼지에 노출되면서 우리가 체내의 비상사태, 즉 신체가 침입자에 저항하며 일으키는 자잘한 염증들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해결책이 있을까?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미세먼지 노출은 '완전히 피하기 힘든 환경위험'으로 분류된다. 이는 명명백백한 사실로, 나처럼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변에 사는 사람들은 나쁜 공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특히 국가와 도시 지자체 에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정말이지 이제부터 제대로 기후 보호 정책을 펼치고자 한다 면 경제와 사회 전반은 물론 우리 일상의 혁명적 변화가 필수적 이다. 생태학적 의제들이 갑자기 유권자들에게 큰 비용을 청구 한다면, 그 무수한 변화를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까? 세계의 구원이라는 더 큰 선을 위해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얼마 나 포기할 수 있을까? '비상' 얼마나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훼 손해야 할까? 또 비상 상황이 언제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일 까? 1960년대 독일 대학생들은 비상사태에 반대하며 길거리 로 나섰는데, 지금이야말로 비상사태가 필요한 때이다. 여기서 고려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비상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개인의 자유권 침해도 커진다. 둘째, "비상시에는 법이 따로 없다”는 명 언대로 시민의 인권을 박탈하고자 일부러 비상사태를 선포한 독 재 정부도 있었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자들은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으며, 공포가 퍼지면 누구나 쉽게 밟혀 죽는 법이다. 팔렌다 철학신학대학의 교수인 내 친구 프란치스쿠스 폰 헤레만Franziskus von Heeremann은 최근 이런 말을 들려줬다.
위기의 시대에는 전문가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일단 외형상 민주주의가 완성되면 우 월한 위치를 차지한 전문가 집단에서는 시종일관 위기를 찾아내 려 할 것이고 이에 맞선 저항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네.
- 대도시의 고소득 부르주아지들이 교육 수준이 낮고 일상에서 기후 보호에 소극적인 서민층을 업신여기는 현상은 이미 진 행 중인 사회적 냉담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고소득 대졸자들은 녹색 양심에 더욱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폐 기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만 보고도 그 집 사람들의 소득 수준을 알아맞힌다고 한 다. 부자들은 주로 신선 식품을 구매하는 반면 빈곤층이 내다 버 리는 쓰레기는 포장재투성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녹색당을 찍는 도시 엘리트층은 도덕적 이중잣대에 빠져 심리학에서 '셀프 라이선싱self-licensing'이라 하는 '도덕적 자기합리화'에 나선다. 녹색당에 표를 주고 유기농 마켓에서 공 정무역 제품만 구매함으로써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스키 휴가 를 떠나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한다. 녹색당 지지자들이 비행기 를 가장 많이 탄다는 통계에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 면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고연봉을 받으며 직업상 비 행기를 탈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는 앨 고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 셀프 라이선싱 현상을 두고서 여러 흥미로운 연구가 이루어 졌다. 이를테면 녹색당이나 좌파 정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 중에 자선 목적으로 기부하는 비율이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투표 시 옳은 선택을 했으니 이미 사회에 좋은 일을 했다고 믿기 때문 이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녹색당 지지자가 '나는 녹색당을 찍으 니까 그래도 괜찮아'라고 변명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실 험사회심리학 저널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실린 논 문에 따르면 도덕적 자기합리화에 빠진 사람은 일상에서 자기 도 모르게 자신의 가치관을 무력화시킨다. 예를 들어 백인 실 험 대상자들은 자신이 흑인 대통령에 투표한 것을 직장 내에서 흑인 차별을 묵인하는 허가증으로 여기는 무의식적 경향을 보였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계로 미리보는 핵심키워드 7  (0) 2024.01.31
글로벌 그린 뉴딜  (1) 2024.01.11
육두구의 저주  (1) 2023.12.24
최소한의 중동수업  (2) 2023.12.16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3) 2023.11.21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