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사회 2023. 12. 24. 09:20

- 반다 대학살이 자행될 무렵, 그리고 피쿼 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출간한 책 《성전에 관한 광고(An Advertisement Touching an Holy War)>에서 베이컨은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 의한 특정 집단의 존재 말살이 왜 합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소상히 늘어 놓았다. "일부 국가에서 민법에 의해 불법화되고 금지된 특정인이 존재하 듯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에 의해,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 불법 화되거나 금지된 국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베이컨의 주장에 따르면, 이 런 방탕한 국가는 기실 국가도 아니요, 그저 자연법칙에 비추어볼 때 완 전히 뒤떨어진 "불온한 사람들의 떼거리" 일 따름이다. 그런 연유로 “시민 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가 ............ 그들을 이 지구상에서 제 거하는 것은 합법적일뿐더러 신의 뜻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16 이 교리는 18세기 말엽 국제법을 성문화한 스위스 법학자 에메르 드 바텔 (Emer de Vattel: 1714~1767)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그는 "그와 같은 야만적인 민족을 처벌하고, 심지어 말살하는 목적을 함께하는 데에서 각국은 정당하다" 고 판결했다.
이 주장은 사실상 기독교를 믿는 유럽인에게 그들 눈에 잘못되었거나 괴물처럼 보이는 민족을 공격하고 말살할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부여했 다.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와 마커스 레디커(Marcus Rediker)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노사이드와 신성이 교차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결정적 생 각'에 힘입은 결과였다. 따라서 성전(聖戰)에 대한 베이컨의 광고는 여러 유형의 제노사이드를 촉구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성경>과 고대의 고 전적 풍습에서 승인을 구하는 제노사이드 말이다."
베이컨의 추론은 고풍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줄곧 제국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는 잘 통치되는 국가(즉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치안이 잘 갖춰진 국가)는 “뒤떨어지고" "자연의 법 및 여러 국가의 법을 위반하는 국가들을 침략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 를 가진다고 주장한 셈이다. 물론 이것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al interventionism)'의 근본 교리로서, 최근 수십 년간 서구 열강이 일으킨 '선 택에 의한 전쟁(war of choice)'을 정당화하기 위해 누차 언급되곤 했다.
- 이름 바꾸기(renaming)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제가 정복한 풍경의 옛 의 미를 지우는 중요한 도구 가운데 하나였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 은 피쿼트족을 말살한 직후, 존 메이슨의 말마따나 “그들을 떠오르게 하 는 것을 지상에서 차단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 코네티컷주 총 회(General Assembly of Connecticut)는 생존자들이 스스로를 피쿼트라고 부르는 행위를 불허하기로, 피쿼트강을 템스강(Thames)으로 바꿔 부르기로, 그리고 피쿼트라고 알려진 마을을 뉴런던(New London)으로 개칭하기로 결정했다. 뉴런던으로의 개칭과 관련해 입법가들은 "친애하는 우리 고국 의 주요 도시를 추억하기 위해서"라고 선언했다.
이 같은 이름 바꾸기 행위에서 형용사 '뉴(new)'는 이례적일 정도의 의 미론적·상징적 폭력과 함께 쓰이기에 이른다. 이것은 과거를 지움으로써 백지상태(tabula rasa)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모종의 장소("친애 하는 우리 고국")에서 가져온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 지구가 1세기 반 동안 냉각을 겪어왔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려 진 사실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까지 절정을 이룬 이 시기는 흔 히 '소빙기(Little Ice Age)'라고 불린다. 그 시기에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급 격하게 하락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 현상 (anomalies)은 일반적으로 태양 활동이나 지진 활동의 변동 같은 '자연적 요인 탓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상 현상은 유럽이 북·남미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을 때 일어났는데, 이 사실은 오랫동안 그저 우연 의 결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 다. 즉, 유럽의 살육으로 시작된 북·남미의 재앙에 가까운 인구 감소가 소빙기의 전 지구적 평균 기온 하락에 얼마간 기여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너무나 많은 아메리카 인디언-추 정치는 두 대륙 인구의 약 70~95퍼센트까지 조금씩 차이가 난다-이 숨 져서 한때 식량 재배 용도로 쓰이던 방대한 경작지가 숲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남미와 중미의 정글에서 아직까지도 도시와 사원 단지(temple complexes) 가 발굴되는 이유다.) 15 북·남미 대륙에서 갑작스럽게 푸른 나무가 늘어나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격리되고, 그에 따라 전 지구 차원의 평균 기온 하락에 기여한 역온실가스 효과가 생겨났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결코 입증된 적이 없다. 16 하지만 만약 소빙기가 부분적으로나마 인간 활동에 의해 야기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인류가 기후 변화를 유발한 우리 시대와 17세기 간의 또 한 가지 연관성을 규명하는 것일 수 도 있다.
-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펜 (Elizabeth Fenn)은 상(1999년 루이스 펠저 기념상 (Louis Pelzer Memorial Award)-옮긴이)을 받은 논문 <18세기 북미의 생물전 (Biological Warfare in Eighteenth-Century North America)>에서 애머스트와 부 켓 간의 서신 교환은 이례적인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쟁터들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천연두가 18세기 말의 전쟁에서 비록 불규칙적이긴 하나 확고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믿었다." 펜은 전쟁 무기로서 천연두의 전파는 또 다른 이점, 즉 "가해자의 신원과 의도를 분명 하게 밝힐 수 있는 강간, 약탈, 기타 잔혹 행위와 달리, 관련 사실을 부인 할 수 있는 이점”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영국인이 질병을 이용한 대상에 는 아메리카 원주민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들은 독립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백인 미국인을 상대로도 이 같은 형태의 전쟁 방식을 써먹었다.43 19세기에 백인 정착민은 때로 천연두와 우두 유리병(그들은 이것을 예방접 종을 위해 지니고 다녔다)을 그야말로 무기로 활용하곤 했다. 1805년 이후, 그 와 관련한 사례가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Lewis and Clark expedition)'에 대해 출판한 글에 등장한다. "수족(Sioux)은 봄에 우릴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는 천연두를 퍼뜨리겠다고 위협하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때로 질병은 다른 방식 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토착민을 야영지에 몰아넣으면 그곳에 서 치명률이 치솟았다. 그게 아니면 정착민 공동체가 이웃 원주민의 치료 를 보류하고 '자연'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이것은 북·남미 에서 수 세기 동안 이어진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정부 기관들이 토착민에게 제공하곤 하는 표준 이하의 의료와 불충분한 영양은 그 자체로 '보류'의 한 형태다. 이는 직접적인 행동(action)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 는게 아니라 무행동(inaction)을 통해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반다제도의 정복자들이 그곳을 바라본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규정한다. 그것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틀 짓기로 써, 그 틀 속에서 풍경(또는 행성)은 공장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자 싸구려로 여겨진다!
원칙적으로는 어떤 특정 영토를 자원으로 삼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미나 생산성 면에서 고갈로 이어질 이유는 딱히 없다. 어쨌거나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키면서 영토를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 에는 그 세계를 마구 집어삼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불안정성이 내포되 어 있는 듯하다. 이것이 정확히 말루쿠에서 일어난 사태다. 네덜란드 동 인도회사의 관리들은 그 지역에서 야심을 충족하고 난 뒤에조차 자신들 의 향신료 독점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 여기에는 모종의 불가피성이 존재했다. 일단 육두구 · 메이스 그리고 정향의 공급이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해지자, 가치의 역설(paradox of value: 물은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재화이지만 가격이 매우 싼 데 반해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무방 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싼 경우에서 보듯이, 가격과 효용의 괴리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옮긴이)로 인해 그것을 정당한 권리인 양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향신료가 더 이상 희귀하지 않게 되면서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단 향신 료가 멀리 떨어진 마법적인 지역에서 비롯되는 매혹이 아니라 '열등한 종 족'이 살아가는 식민지와 연결되자, 향신료의 유래 역시 그 이미지에 이 롭게 작용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의 취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생활에 대 한 우려는 몸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혼자의 악덕(solitary vice: 자위행위-옮 긴이)'에 기울게 만드는 것으로 여겨지는 식이 품목을 멀리하도록 이끌었다. 시인 셸리는 향신료 무역뿐 아니라 향신료 자체도 인체와 국가의 도덕성에 해롭다"고 맹비난했다. 한때 향신료 식품을 즐기던 상류층 유럽 인이 이제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법에 자부심을 느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향신료의 가치 하락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크나큰 근심의 원천이었 던지라 그들은 여러 가지 조치로 그 상황에 대처했다. 그중 하나가 절멸 운동이었는데,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 들을 말루쿠로오도록 이끈 바로 그 나무 말이다. 세계 시장의 향신료 공 급을 제한하기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법령을 통해서 육두구나무는 오로지 반다제도에서만, 정향나무는 오직 암본섬에서만 키우도록 명령했 다. 다른 모든 섬 - 말루쿠에는 1000개가 넘는 섬이 있었다에서 자라 는 정향나무와 육두구나무는 제거될 처지였다. 이렇게 해서 절멸, 즉 제거(엑스터패티(exterpatie)]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에 따라 수세기 동안 정향 무역의 중심지이던 테르나테섬의 술탄(Sultan: 왕-옮긴이)은 1652년 조약에 강제 서명하고 그 섬에 있는 모든 정향나무를 잘라내겠다고 약조했다. 육두구와 마찬가지로 정향도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의 담지체가 되 었다. 자원의 저주는 이후 수세기 동안 지구의 상당 지역을 휩쓰는 고통 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 상품들 가운데 '자원'으로 간주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으로는 우리가 '화 석 연료'라고 부르는 원시림의 압축적 잔존물을 따를 만한 게 없다. 이 는 상당 부분 화석 연료가 양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그것이 에너지를 생산 하기 때문에 이례적이리만치 목록화(enumeration)하기 쉽다는 특징 덕분 이다. 특정 양의 석탄·석유·천연가스로 정확히 얼마만큼의 전력을 생산 할 것인지는 더없이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다. 그만큼을 생산할 때 정확 히 얼마만큼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지도 그와 마찬가지의 정밀도로 계산 해낼 수 있다. 더군다나 비슷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도 동일한 전력량만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져 있다. 과학이 온실가스가 의심할 나위 없이 인간에게 끔찍한 위협을 제기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으 므로, (나에게, 그리고 이 위협에 대해 우려하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긴박하게 화석 연료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은 달성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같은 전환으로 가는 수많은 경로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오늘날 재생 가능 원 천에서 얻는 에너지는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폭 줄이고자 하 는 세계의 필요를 충족하고도 남는다는 사실 역시 더없이 명확하다. 그러 한 전환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 같은 다른 많은 이점을 안겨줄 수 있다. 그것이 지구 친화적인 새로운 산업혁 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같은 전환을 향한 진보가 고통스러우리만치 더 디고 일정하지 않다는 현실이 남아 있다. 실제로 새 천년의 처음 20년 동 안 화석 연료의 소비는 기후 위기가 요청하는 방향과 달리 감소하는 게 아니라 되레 (이따금 일시적으로 하락할 뿐) 꾸준히 증가해왔다. 큰 폭의 감소 가 이루어진 것은 2020년에 이르러서였는데, 이러한 하락도 정책이나 경 제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무한한 가이아 내에 자리한 외딴 요새의 숲가 장자리에서 발원한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 분명 세계는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좀더 환경친화적인 (greener)' 경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숱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그 길로 나아가는 일은 왜 그토록 더디고 지난할까?
수많은 중요한 사상가들은 세계의 미래에 더없이 중요한 이 질문을 본 격적으로 상세히 다루어왔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답변은 경제 제도, 특히 자본주의와 이윤 동기를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즉, 화석 연료로부터 막 대한 이득을 거머쥐는 소수의 기업과 개인이 비록 세계의 파괴를 수반한 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계속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덜 탄소 집약적인 경제 로의 전환을 가로막기로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나오미 오레스케스(Naomi Oreskes), 에릭 콘웨이(Erik Conway), 마이클 C. 만(Michael C. Mann)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에너지 기업들이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 연구를 약화하기 위해 막강한 재정적·정치적 힘을 휘둘러왔음을 보여주었다. 너새니얼 리치(Nathaniel Rich)도 그와 유사하게, 미국의 환경 운동이 점차 강력해지 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석유 기업들은 정치적 힘을 이용해 미국 정 부가 화석 연료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막았음을 밝혀냈다.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제는 특 히 신자유주의로 구체화한 세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그 녀를 비롯한 많은 이가 자유 시장은 그 자체에 맡겨놓으면 결코 재생 가 능 에너지의 채택을 합심해서 추진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 즉, 화석 연료의 이익은 거대 석유 기업(Big Oil)과 거대 석탄 기업 (Big Coal)이 그러한 변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낼 만 큼 너무나 막대하다.
-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근거도 충분하다. 자본주의와 신자유 주의가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막강한 걸림돌이라는 사실이 내 마음속 에서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내게는 오로지 경제에만 주목 하면 쉽게 목록화할 수도 수량화할 수도 없는지라 확인하기 어려운 또 한 가지 분명한 에너지 전환의 장애물을 간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 하다. 이러한 장애물을 인식하려면 화석 연료를 원칙적으로 에너지를 생 산하는 다른 자원들과 유사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틀에서 빠져나와야 한 다. 다시 말해, 화석 연료가 생산하는 1킬로와트를 태양전지판이나 풍차 가 생성하는 동일한 양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속성에 대해 따져볼 필요 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석 연료가 오늘날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비단 화석 연료가 에너지를 생산해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화석 연료로 생산한 에너지가 그에 특유한 방식으로 권력 구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그들의 불가사의한 생명력이 놓여 있다.
- 19세기에 화석 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까닭은 정확 히 그것이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역 사가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연구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산업혁명에 관한 표준적인 내러티브-1776년 제임스 와트 (James Watt)가 석탄 화력으로 삼는 증기 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영국에 서 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했다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었 다. 산업혁명의 상당 기간 동안, 물은 여전히 영국과 미국에서 주요 에너 지원으로 남아 있었다.
- 19세기 초엽 석탄화력 제분소가 물로 움직이는 그 경쟁자들을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한 이유는 석탄이 더 저렴하고 한층 효율적이어서가 아니 었다. 물을 동력으로 삼는 제분소는 석탄화력 제분소만큼이나 생산적이 었고, 운영 비용은 그보다 훨씬 더 낮았다.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득 세한 까닭은 기술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사회적인 이유에서였다. 이를테 면 석탄화력 제분소는 그 소유주들에게 인구 밀도가 높고 값싼 노동력 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에 그들의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해주었 다. 말름은 이렇게 말했다. "증기 기관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잉여의 부 를 추출할 수 있는 빼어난 도구였다. 물레바퀴와 달리 거의 어디에든 설 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석유의 물질적 특징은 그것이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능력에서 석탄을 한층 능가하도록 만들어준다. 지배 계급이 보기에 석탄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석탄은 다수의 광부가 추출해야 하 는데, 이는 그들이 급진화하기 십상인 조건에서 작업한다는 의미다. 이 게 바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광부들이 세계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섰 던 이유다. 티머시 미첼(Timothy Mitchell)이 보여주었다시피, 이것이 영국 계 미국인 엘리트들이 석탄 대신 석유를 세계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기로 작정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석탄과 달리 석유의 추출과 운송은 많 은 수의 인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석유는 자본이 지역에 얽매이지 않은 채 세계를 마음껏 떠돌아다니도록 허락해주었다.
- 이러한 장점은 19세기 초에조차 분명했다. 1824년 선견지명 있는 수력 공학자 로버트 톰(Robert Thom)은 스코틀랜드의 도시 그리너(Greenock)을 위한 수력 생산을 다음과 같이 지지했다. "이렇게 되면 연기를 토해내고 주변 몇 킬로미터 반경 내의 공기와 대지를 오염시키는 증기 기관이 사라 질 것이다. 그와 반대로 깨끗한 '산 개울은 쉴 새 없이 풍부하게 흘러가 면서 신선함과 건강과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환경론자에게 그렇듯이 톰에게도 그린(green) 에너지는 유토피아적 꿈의 대상이었는데, 결국 정확히 그게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안드레아스 말름의 연구는 증기 기관이 물을 동력으로 삼는 기계를 상대 로 승리를 거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수리권(water rights)이 공유재이므로 공장주들이 그 권리를 획득하려면 복잡한 협상에 돌입해야 했기 때문임 을 보여준다. 이러한 거래는 "증기력 사용자들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감정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와 달리 "엔진과 보일러를 갖춘 공장주는 사실상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공장 소유주들에게 수력을 이용한 기계를 능가하는 증기 기관 의 중요한 이점 하나는, 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그들의 에너지원-석 탄을 획득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강과 바람은 풍 경 전반에서 영구히 순환하고 있기에 그것을 일부 취해서 운반하고 사유 재산으로 저장할 수 없다. 
한마디로 증기, 그리고 그에 따라 석탄이 물을 제압한 것은 정확히 그 것이 지배 계급에 권능을 부여한 데다 그들이 선호하는 재산 체제에 한층 부합했기 때문이다.
- 또한 재생 가능 에너지의 해방적 잠재력은 더없이 중요한 국제적 차원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만약 충분한 정도로 채택된다면 오늘날의 전 세계 적 질서를 사실상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각국은 더 이상 예측 불 가능한 석유 국가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석유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연간 예산 가운데 상당액을 따로 떼어놓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더는 멀 리 떨어진 국가들에서 일어난 혁명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이 끊길까 봐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으로, 각국은 유 조선이 통과해야 하는 해수로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초강대국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세계가 이 같은 전망을 수용하길 그토록 꺼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전개를 달가워하지 않을 법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 사우디아라비아나 브루나이 같은 석유 국가들은 필시 전 지구적인 화 석 연료 경제의 지속에 분명한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자국 경 제가 그에 묶여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석유는 석탄과 마찬가 지로 본래의 속성상 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국제적 권력 위계와 뒤 엉킴으로써 경제적이지도 목록화할 수도 없는 기득권을 만들어냈다. 이 는 석유가 지닌 물질성의 또 다른 측면 때문에 불거졌다. 그것이 배나 송 유관을 통해 추출 지점에서 다른 장소로 운송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이로부터 정향과 육두구를 둘러싸고 펼쳐진 분쟁들로 곧바로 돌 아가는 지정학적 역학이 생겨난다.
- 간단히 말해, 20세기 전반에 걸쳐 석유에 대한 접근은 세계 지정학 전략의 중요한 핵심으로 떠올랐다. 강대국에 석유의 흐름을 보장하거나 가 로막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적국의 급소를 가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0세기 상반기에 석유의 흐름을 보증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바통은 여러 개의 영국 해군 기지와 더불어 미국으로 넘어 갔다. 세계 에너지 흐름의 보증 수표로서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지배와 세계 패권국이라는 지위에 결정적이다.
엘리자베스 들러리(Elizabeth DeLoughrey)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점차 군사화하기에 이르렀는데, 지구상에서 최대 규모인 미 해군이 그것을 단단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역사학자 마이클 클레어(Michael Klare)의 말에 따르면,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미군이 "송유관, 정유소, 그리고 중동 및 기타 지역의 적재 시설을 보호하는 세계적인 석유 보호 서비스'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유 흐름의 통제가 지니는 전략적 가치가 미국의 에너지 요구와는 별 다른 관련이 없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군이 "세계적인 석유 보호 서비스"로 거듭난 시기는 미국이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 으로 나아가던 때였다. 오늘날 미국이 화석 연료를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사실은 권력 투사(projection, 投射) 도구로서 석유의 전략적 중요성을 결코 약화시키지 않았다.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니라 경쟁국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 원래 병참이라는 군사적 개념으로 쓰이던 물류(logistics)는 이제 무 역과 전쟁 간의 융합을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올려놓을 만큼 사업의 핵심 으로 떠올랐다. 물류 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이 일구어낸 군 사적 혁신인 선적 컨테이너의 발명 덕에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 상업적 용도로 전환한 컨테이너는 이어지는 몇십 년 동안 해상 횡단 무역이 믿기 지 않을 규모로 확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73년에 선박들은 표 준화한 컨테이너 400만 개를 운송했다. 반면 2010년에는 그 수치가 5억 6000만개로 껑충 불어났다. 오늘날 총 세계 무역의 90퍼센트, 그리고 미 국행 화물의 95퍼센트가 선박에 의존한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 전개는 그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생산 공정의 변화 를 수반했다. 오늘날 공장들은 더 이상 한 장소를 고집하지 않으며, 지구 전역에 걸쳐 뻗어 있는 공급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따라 수요 변동 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물류를 분 단위로 조정한다. 선도적인 택배 회사가 “물류는 현대 경제를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자랑 스럽게 내세우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긴 공급망은 오늘날 경제를 붕괴에 훨씬 취약하도록 내몰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두바이(Dubai)가 개척한 모델에 뒤이은 이른바 '물류도시'를 중심으로 보안상의 필요성을 야기했다.
전형적으로 '물류 도시'는 노동력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고도로 보안이 잘된 유통 중심지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 문을 연 두바이 물류 도시(Dubai Logistics City)는 온통 보안이라는 미명 아 래 기업에는 군사화한 안전 보호막을 제공해주는 반면, 노동자에게는 최 소한의 기본권마저 보장하지 않고 있다.
- 오늘날 미 국방부는 단일 기관으로 미국에서 그리고 아마도 세계에서-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다. 미 군부는 방대한 규모의 차 량·군함 ·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상당수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 료를 소비한다. 비핵 항공모함은 시간당 5621갤런의 연료를 해치운다. 다 시 말해, 단 하루 동안 작은 중서부 도시의 연간 사용량에 맞먹는 연료를 써서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F-16 항공기 한 대는 단 1시간의 통상적 가 동에도 항공모함의 3분의 1, 즉 약 1700갤런의 연료를 소비한다. 만약 애 프터버너(afterburner 제트 엔진 재연소장치-옮긴이)를 쓰고 있다면 그 항공기는 시간당 항공모함보다 2.5배나 많은 대략 1만4400갤런의 연료를 사용 할 것이다. 미 공군은 F-16을 약 1000대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공군 병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전투용 탱크, 장갑차, 군용 지프 등도 다량의 연료를 필요로 한다. 이들 차량은 평화 시에도 놀고 있 지 않는다. 그중 상당수는 상시적으로 활용된다. 훈련과 유지를 위해서이 기도 하고, 900개에 이르는 미국 내 군사 시설을 타국에 있는 약 1000개 의 군사 기지 네트워크와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는 미군의 3개 부문(미군은 육군·해군·공군·해안경비대 · 해병대· 우주군 등 6개 부문으로 편제되어 있다-옮긴이)이 연간 대략 2500만 톤의 연료를 소비했다. 이 수치는 미국 총 연료 소비량의 20퍼센트를 넘고 "전 세계 국가 약 3분의 2의 상업용 에너지 소비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이라 크 전쟁 기간에 미군은 중동의 군사 작전 하나를 위해서만 연간 13억 갤런가량의 석유를 사용했다. 이것은 인구 1억 8000만 명의 방글라데시가 연간 소비하는 양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러한 활동은 다른 환경적 비용 을 낳기도 한다. 군사 장비를 가동하기 위해 희석제 · 용제 · 살충제 등 다 양한 종류의 유독성 화학 물질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방부는 "미국의 상위 5대 화학사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연간 50만 톤의 독성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세계 주요 강대국들의 군대는 세계 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유해 폐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무기류 · 전함 · 전투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오염 물 질의 배출과 폐기물 생성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또한 군부와 관련한 또 한 가지 분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방위 산업 체의 급속한 팽창도 고려하지 않았다.
- 흔히 "군사회는 단일 요소로서 생태계를 가장 크게 파괴하는 인간 활동으로 지목되어왔다. 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그 분야의 선도적인 학자 3명이 "군국주의가 환경에 미 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사회과학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해당 분야의 연구에 몸담은 학자들 가운데 몇은 이른바 '파괴의 트레드밀(treadmill of destruction: 군사적 활동과 지출 및 사회-환경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현저한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전 세계적 현상-옮긴이)' 사회학파에 속해 있다.  그 학파가 내놓은 일관된 연구 결과 중 하나는 “군산복합체는 물론 경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긴 하나, 그 자체의 책무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의 논리를 따르는지라 결코 경제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은 그 자체로 경제의 주요 원동력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도록 도와주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이미 1992년에 참여과학자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UCS)은 인 류가 전쟁 및 폭력에 자원을 소비하는 것과 파괴적인 환경 피해를 막는 데 자원을 소비하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냉혹한 상황에 직 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 보고서에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다수를 포함해 1700명의 과학자가 서명했다. 2017년 그 경고가 재등장했고, 이 번에는 자그마치 1만 5000명의 과학자가 서명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의 상태가 전보다 훨씬 더 악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처음에 나온 참여과학자모임의 보고서는 상당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두 번째 보고서는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
- 만약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떤 분명한 메시지를 드러낸다면, 그것은 바 로 부유하든 가난하든 세계의 어느 지역도 그 지구 위기를 모면할 수 없 으리라는 점이다. 정확히 그것이 전 지구적인 데다 국경을 인식하지 못하 기 때문이다. 위기의 본질이 그러하기에 세계는 그 문제를 다루려면 숲처 럼 생각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숲처럼 생각한다(thinking like a forest)'는 시스 템적 사고(systems thinking)를 의미한다. 세계를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복잡계)'으로서, 즉 얽히고설킨 상호 관련 있는 생명의 그물망으로서 바라보는 사고다-옮긴이) 가장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하는 이들이다. 그 어떤 나 라도 자국민 모두를 구조할 만큼 구명정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지는 못 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에서 안전한 피난처로 추정되는 장소는 벽으로 둘러싸인 사유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공동체, 그리고 초부유층만 이 소유할 수 있는 슈퍼요트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이지 이런 피난처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딘의 구명 정윤리에서 최대 아이러니는 하딘 자신도 슈퍼리치들의 배에 승선할 가 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세계의 상황이 악화하기 시작하면 본인은 구명 정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겠지만 말이다. 그 자신의 주 장은 필시 그를 배제하는 데 쓰일 것이다.
- 인류 대다수에 대한 유럽 식민지 지배자의 침묵시키기는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자연'에 대한 침묵시키기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식민지화는 그저 인간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때는 행위 주체성,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의미를 창출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온갖 존재-동물, 나무, 화산, 육 두구를 정복하고 그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침묵시키기는 경제 추출 과정에 더없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철학자 아킬 빌그라미(Akeel Bilgrami: 1950~. 인도 출신의 언어·정신 철학자-옮긴이)가 말한 바와 같이, 뭔가를 그저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려면 “우리는 먼 저 그것을 야수로, 즉 우리에게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을 기울이라는 규범적 요구를 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 식민지 지배자들은 노예 · 하인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그들을 '자원'에 불과한 존재로 바꿔놓았는데, 그 작업은 다름 아니라 방대한 인간 및 비 인간 존재의 연속체를 '야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인간뿐 아니라 이 연속체 전체는 특정 종을 멸종이나 말살로 내모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나는 린드크비스트가 “모든 야수를 말살하라"는 문장을 제노사이드에 대한 촉구로 해석하면서 결정적 뉘앙스를 놓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커츠가 말살의 대상으로 떠올린 야수는 인간만이 아니다. 그의 주변에는 인간 말고도 동물, 정글, 그리고 풍경 그 자체 등 다른 수많은 야수가 있다.
- 누가 야수이고 누가 완전한 인간인가, 누가 의미를 만들고 누가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지구 위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인류를 전 지구적 대재앙 직전까지 몰고 간 궤적을 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처한 곤경이 실제로는 소수인 특정 부류의 인간이 다른 부류의 다수 인간을 지상에서의 존재가 그저 물질적 피조물에 그치는) 야수 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적극적으로 침묵시킨 데 따른 결과임을 깨닫 는다. 바로 이런 가정 탓에 인류 대부분이 지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산업 화할 능력이 없다는 게 당연시되었다. 그런 착각 자체가 오늘날 전 지구 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대재앙의 중요한 일부다.
서구 국가는 만약 (그들 자체가 수많은 비서구적 관례와 기술을 채택했듯이) 세계 의 나머지 국가 역시 부국의 산업화를 가능케 한 관례를 채택할 날이 오리라고 상상했다면, 과연 그렇듯 무모한 자원 사용에 착수할 수 있었을 까? 만약 그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100년 전에 인식했더라면, 아마도 그 로 인한 결과를 따져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이들 사이에서는 비서구인 대부분이 그야말로 워낙 어리석고 야만적이어서 대규모 산업 문명으로 이행할 수 없으리라는 암 묵적 가정이 퍼져 있었다. 추상적 관념에 가려진 이러한 가정은 개발학, 일부 경제학 및 사회학 분과 같은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든든히 받쳐주었 다. 그런 학문 분야에서는 빈곤을 (흔히 낡은 인종 차별적 사고로 얼룩져 있던 용어 인) '문화'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가정은 삭제할 엄두도 낼 수 없을 만큼 이들 학문 분야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서구 국가들이 과거에는 가능하다고 생각지 못한 어떤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고작 20~30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즉, 비서구 국가들도 얼마든지 자원 착취적, 탄소 집약적 경제를, 그리고 그에 걸맞은 모든 것, 이를 테면 과학적·기술적 연구와 특정 장르의 예술과 문학을 채택할 수 있다 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이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기본적으로 모방적 생명체이며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완벽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좀더 일찍 받아들였더라면, 아마 지속 가능성은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시 급한 사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야수들이 자신은 결코 야수가 아 님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까지, 오랫동안 견지된 엘리트 가정은 그 같은 가능성을 한사코 배제해왔다.
비서구 중산층이 야수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럽의 식민지 정복으로 시작된 야수화 과정의 반복 및 심화 때문이라는 사실이 야말로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도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숲 거주 부족들의 믿음, 관례, 그리고 생계 수단이 전에 없이 공격을 당했다.
- 정착형 식민주의자들이 토착민을 대하던 상황과 흉측하리만치 닮은꼴로서, 점점 더 많은 삼림 지역이 광산업과 여행업에 자리를 내주었다. 더러 이런 일은 생태 보호라는 미명 아래 삼림 거주자의 제거를 옹호하는 배타 적 보존주의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행되기도 했다. 숲 거주 부족들이 신성시하던 산은 훼손되었고, 그들의 땅은 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며, 그들 의 믿음과 의식은 '원시적 미신'바로 과거 식민지 시대의 행정가 · 과학 자·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용어-이라며 공격받았다. 식민지 관행의 되풀 이는 심지어 부족 아이들을 기숙학교로 옮기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 와 비슷한 과정이 위구르족(Uighur)과 관련해 중국에서도, 그리고 파푸아인(Papuan)과 관련해 인도네시아에서도 전개 중이다.
- 여기에서 차이점은 그 같은 식민지적 야수화 과정의 모방이 수 세기에 걸쳐서가 아니라 1990년에 이은 단 몇십 년 동안 집중적으로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의 절반이 지난 30년 동안 배 출된 것이다. 인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까닭은 바로 전 세계가 식민지 적 추출과 소비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엄청난 가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비인간도 과거와 달리 더는 침묵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준 것이 바로 이 같은 기간의 압축이다. 다른 존재와 힘들-박테리아, 바이러스, 빙하, 숲, 제트 기류 역시 이제 침묵을 깨고 더없이 다급하게 우리 주목을 끌고 있는지라,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비활성 지구 요소로 취급하거나 묵살하 기 어렵게 되었다.
- 캐럴린 머천트는 그녀의 중요한 책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 (1980)에서 마녀에 대한 고문은, 자연을 기본적으로 여성적 무질서 영역으 로서 그 비밀을 끌어내기 위해 정복하고 예속하고 고문해야 하는 대상으 로 간주하는 과학철학의 부상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은유였다고 주장했 다.25 따라서 그녀는 많은 이들이 과학철학의 창시자로 믿고 있는 프랜시 스 베이컨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가 자신의 새로운 과학적 목적과 방법 론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이미지 대부분은 법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리고 그것은 자연을 기계적 발명품에 의해 고문당해야 하는 여성으로 간 주하는지라, 마녀 고문에 쓰인 기계 장치와 마녀 재판의 심문을 강력하 게 시사한다.”26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마녀의 몸에 대한 고문(즉 '괴롭힘 (vexing)')이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개념의 출현에 결정적 은유를 제공했다 는 것이다." 이는 다시 “천연자원의 수탈을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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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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